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지음 / 박하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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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토목건축가였던 박자청은 경회루를 건축했다. 박자청은 노비 출신이다. 그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새삼 노예제가 공식적이었던 세상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생각했었다. 노예제가 없어진 현재를 사는 나는 도무지 상상할 래야 상상할 수 없는 시대다. 단지 양반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과거에 응시할 수도 없으며 돈도 벌 수 없고, 무엇보다 노비가 낳은 자식은 계속해서 노비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시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절망이다. 조그만 희망의 빛조차 없는 시대를 살았던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그래서 가슴 아프다.

 

 

장영실.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교과서에 실린 몇 줄 정도의 설명 정도만 알고 있던 인물이다. 세종대왕을 도와 측우기, 해시계, 혼천의를 발명했다 정도?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지녔던 최초의 질문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세종대왕이라는 인물을 만난 것이 장영실이라는 인물의 행운일 수도 있지만 임금을 도와 만든 발명품들이 모두 획기적이고 혁명적인 것들이다. 그 정도의 인물이 우리의 역사에 흔하지 않다. 아니, 흔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전무후무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장영실을 잘 알지 못한다. 처음 작가가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이유가 실록에 실린 장영실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 시대 최고의 과학자요 세종의 오른팔 중의 오른팔이었던 장영실이 말직에서나 맡았을 가마를 만드는 일을 했고, 그 가마가 부러지면서 파직 당했다는 것. 자세하게 실록을 들여다보거나, 장영실이라는 역사속 인물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닌 나와 같은 사람들은 쉽게 생각한다. ‘아~ 장영실이라는 사람 대단한 사람이구나. 잘 먹고 잘 사셨겠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한복 입은 남자」라는 그림에서 작가의 상상과 작품은 시작된다. 일본에 끌려 간 조선의 어린 소년이 유럽인에 의해 노예로 팔려 나가고 그 소년을 그렸다는 정설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림 속 인물의 의복과 그림의 좌측하든 구석에 희미하게 그려진 동양의 배.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세계의 역사는 새로 써져야 해.” (p.468)

 

 

소설 속 내용이 사실이라면 정말 역사는 새로 쓰여야 한다. 소설에서 이 문제를 파고들어 실마리를 푸는 진석과 같은 사람이 실제 한다면 말이다. 물론, 중세 피렌체로 건너간 장영실일지도 모를 조선인의 이탈리아 후예가 실제하고 그가 지닌 선조의 기록을 현재의 글과 언어로 해석해 낼 진석의 친구, 강배와 같은 인물이 실제 한다면 말이다. 책을 읽지 않고 이 서평만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이런 종류의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최초 작가의 의문과 소설을 통해 풀어내는 전개에 푹 빠져 든다. 저자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이 책은 오랜 기간 동안 쓰였다. 소설의 소재와 내용 전개가 주는 허무맹랑함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사료 조사에도 충실했다는 흔적을 책을 읽는 내내 지울 수 없었다.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 역사적 고증과 관련된 전문가가 나오는 데, 실제로 작가가 만나서 인터뷰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로 사실적이다.

그리고 책이 재미있다. 이런 종류의 역사 픽션이 줄 수 있는 당혹스러움에서 벗어나 있다. 만약 철저한 사료 조사나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지 않았더라도 순전히 작가의 필력만으로도 작가의 다음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다.

 

 

 

“두 사람이 함께 배를 타고 항해에 나섰다는 사실은 상상만으로도 흥미진진하군. 조선의 위대한 과학자와 콜럼버스를 넘어서는 위대한 항해가의 만남이라니.” (p.265)

“영실이 피렌체에 정착한 지 어느덧 1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영실의 가르침을 받은 다빈치는 천문과 기계설계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p.436)

“역사적인 만남은 1459년 어느 늦가을에 이루어졌다. 당시 다빈치는 7살이었고, 장영실은 50대 후반의 나이였다.”

 

 

노비였던 장영실은 동래 관아의 오랜 가뭄을 해결한 공로로 궁에 들어가게 된다. 시련을 뚫고 임금의 총애를 받는 조선 최고의 과학자, 실학자가 된다. 뭐, 늘 그랬지만 세종 시절에도 임금이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최우선으로 하였던 반대파들의 정치적 견제가 심했다. 조선만의 문자를 만들고 조선만의 월력을 갖고 조선만의 군사무기를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기술은 있고 의지도 있지만 사대국인 명나라의 눈치를 피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숨겨야 할 일은 더 드러나는 법. 명나라의 견제와 감시를 받게 된다. 급기야 조정 내 반대파와 조선에 들어와 있던 조선인 출신 명 황제의 환관의 음모로 장영실에 의해 펼쳐지던 과학조선의 꿈은 수포로 돌아가기 직전이었다. 급기야 자객을 이용해 쥐도 새도 모르게 장영실을 죽이려 했다. 세종은 장영실을 위해 장영실을 놓아주기로 한다.

역사적 인물인 ‘정화원정대’의 정화대장과 물밑으로 연락을 취해 그를 통해 장영실을 조선에서 탈출 시킨다.

장영실과 정화, 다 빈치의 생애가 묘하게 섞이며 그럴 듯한 개연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핵심이자 묘미다.

세상의 끝을 탐험하려는 원대한 꿈을 꾸던 정화대장의 희망이 꺼져갈 무렵이었고 명나라 황실을 피해 피신해 있던 정화대장에게도 장영실의 합류는 대단한 힘이었다. 이미 세상 최고의 과학 기술을 보유한 장영실과 함께 그의 원대한 꿈을 마무리 하려 한다.

그리고 아라비아반도를 지나 이탈리아 반도에 이른다. 거기서 교황을 만나고 또 다사 위험에 빠지지만 피렌체까지 이르게 된다. 거기서 장영실은 다 빈치를 만난다. 정화대장은 또 다른 원정을 떠난다.

이것이 소설의 줄거리다.

 

 

 

“15세기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이 유럽으로 건너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교류를 했다? 더구나 자신의 초상화까지 비망록에 버젓이 남겨놓았다? 그것도 당시 유럽 최고의 화가의 손을 빌려. 증거를 눈앞에 두고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과연 세상사람 누가 믿어줄 것인가.” (p.92)

“비차와 다빈치라...” (p.15)

 

 

책을 읽고 나서 장영실의 발명품과 다 빈치의 발명품을 찾아보았다. 정말 유사한 점이 많았다. 흡사 두 사람이 공동으로 발명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시대와 공간을 뛰어 넘어 비슷한 생각과 발명을 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만 그 가능성 정도가 아니라 정말 유사했다.

 

 

 

“이거 우리 가문, 중요한 문서입니다. 우리 조상님 다이어리에요.” (p.48)

 

 

사실 이 모든 개연성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엘레나 꼬레아가 진석에게 건네 준 다이어리다. 장영실이 후손에게 남긴 기록이다. 일종의 일기다. 피렌체에서 생을 다한 장영실은 이탈리아인과 결혼해 후손을 낳았고 이탈리아 반도 어딘가에 그의 후손이 살아 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소설 속 후반부 내용이 실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빈치, 어디를 가더라도 절대 내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 내가 가르쳐준 지식은 너 혼자 연구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나에 대한 자료를 모두 지우도록 해라.” (p.439)

 

 

이 부분은 좀 아쉬운 부분이다. 굳이 장영실이 다빈치에게 “나에 대한 자료를 모두 지우라”고 했다는 내용이 필요했을까 싶다. 그런 말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중세유럽의 아귀다툼을 이겨내야 했었을 다빈치에게는 장영실의 존재를 알리기보다 당장 살아남는 일이 시급했을 것이다. 제후의 맘에 들어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중세유럽 예술가의 숙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장영실의 최후와 그의 기록이 여전히 알려지지 않는 이유를 독자의 궁금증으로 남겨 두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렇다 해도 이 책은 충분히 재미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장영실과 다빈치의 관계, 장영실의 최후를 꼭 밝혀야 해!!”라는 무리한 음모론을 제시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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