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 - 암을 치유하며 써내려간 용기와 희망의 선언
이브 엔슬러 지음, 정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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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까지 추적추적 오는 오늘, 내 아버지는 또 일산 암센터로 가고 계신다. 벌써 몇 번째 인지 셀 수조차 없다. 지난 해 10월 암센터에서 퇴원한 후 3개월 만에 다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저혈압과 패혈증 초기 증상으로 인한 쇼크로 본가 근처 병원 응급실에서 앰뷸런스 타고 일산 암센터로 입원했다. 한 달이 넘는 입원 기간 동안 아버지를 간병하신 어머니는 허리와 무릎, 어깨가 망가졌다. 그래도 치료를 받고 내려 오셔서 본가에서 회복중이셨기에 시간이 지나고, 계속 본가 근처 병원에서 감염치료를 받으면 천천히 회복할 것으로 희망했다. 그런데, 아버지 몸속에 있는 농양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더 이상 약이 들지 않아 더 큰 병원으로 입원해서 외과적 치료(수술, 시술)를 받으라는 담당의사의 상담을 받은 것이 그저께다. 동생이 휴가를 내 경북 포항에서 경기도 일산까지 부모님을 모시고 갔다. 지난 연말부터 지금까지 정말 나는 정신이 없다. 안 좋은 일은 겹쳐서 온다는 말을 남의 일로 생각하고 흘려들었는데, 겹쳐서 와도 너무 겹쳐서 잔인하게 내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나름 열심히 살고 나름 신실한 신앙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힘들다. 하늘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고 원망을 쏟아냈다. 아주 작은 반응이라도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그저 내 바람 만 흩날릴 뿐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다. 8년 째 투병 중이신 아버지 간병은 어머니가 전적으로 맡아 하신다. 지난 입원 기간 동안 어머니가 너무 힘드셔서 간병인을 알아봤다. 장루를 차고 오랜 항암치료와 양성자치료로 하반신 근육이 대부분 없어져 제대로 걷지를 못하는 아버지를 맡겠다는 간병인은 없었다. 정해진 간병비 이상을 주겠다고 해도 모두 손 사레를 치며 도망가듯 병실을 나갔다. 나는 대구에 살고 있고, 동생은 강릉에 살고 있다. 본가는 포항이다. 나와 동생은 대구와 강릉에서 일산과 포항을 오갔다. 내 아버지, 내 부모니까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이다. 8년 째 아버지를 간병하시는 어머니를 두고 힘들다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참 힘들다. 신이 내 기도를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

 

이 책 「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를 읽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요즘 같이 심신이 모조리 상실된 힘든 상황에서 책을 읽고 기한에 맞춰 서평을 쓰는 것 자체도 힘들지만 저자인 엔슬러가 책에서 표현하는 항암·화학치료의 과정에 너무 세세하고 너무 공감이 되는 것이 더 힘들었다. 2번의 수술, 3번의 시술, 3번의 항암치료와 1번의 양성자치료, 지금까지 진행 중인 농양치료…….

 

 

“나는 사투를 벌이고 있다. 내 주머니는 권총집이다. 그 안에는 농양과 배설물이 아니라 총이 들어 있고, 그것을 재빨리 꺼내 슬론-케터링을 겨누고는 탕! 총을 발사한다.” (p.102)

“살고 싶어요, 뎁. 살고 싶다고. 죽기 싫어.” (p.219)

 

 

이렇게 힘든 매일 중, 지난 주 금요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모님은 입원 중이시고, 동생은 중요한 진급시험이 있어 알리지 않았다. 아버지 병원 입·퇴원 일로 여러 번 휴가를 냈던 터라, 눈치가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3일 동안 친지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아버지 때문에 니가 고생이 많다. 그래도 환자가 제일 고생이다. 얼마나 힘드시겠니?”

 

 

맞다. 아버지는 얼마나 힘드실까? 당연한 것인데 쉽게 까먹고 있었다. 병원 냄새만 나도 속이 뒤틀리는 아버지가 가장 힘드실 텐데, 그런 아버지를 가장 가까이서, 가장 오랫동안 지키고 계시는 어머니가 가장 힘드실 텐데……. 생각하면서 전혀 좋아지지 않은 나를 둘러싼 어려움에서 잠시나마 탈출해 본다.

 

 

이 부분을 읽으며 멈췄다. 엔슬러가 겪은 고통과 참담함과 절망을 고스란히 아버지가 겪으셨을 것을 생각하니,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맞다. 나는 그 고통의 100분의 1도 가늠할 수 없다.

 

 

 

“내 인생 초반의 많은 부분을 이렇듯 비몽사몽 상태에서 보냈다. 그 상태에서는 한밤중에 아빠가 내 침대로 찾아올 때마다 시달렸던, 엄마를 배신했다는 뒤틀린 고통과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다.” (p.32)

“또한 나는 계속해서 섹스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이였다. 섹스를 하면 고통이 완화되었는데, 나는 거의 항상 고통스러웠으므로 엄청나게 섹스를 해야 했다.” (p.149)

“나 자신의 오만함과 반항, 독선으로 엄청난 기회를 모두 잃어버렸다. 술과 마약을 끊는 것이 내가 평생 한 일 중 가장 힘든 일이었다.” (p.152)

 

 

암이 발병하기 전, 엔슬러의 인생 초기는 불행이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성적 학대와 폭력은 고스란히 상처로 그녀의 몸에 새겨졌다. 쉽게 치료하거나 지워 내거나 도려낼 수 없는 상처로. 평생을 고통 받아야 할 폭력이 다름 아닌 아버지로부터였고, 그 폭력과 상처에서 자신을 지켜줘야 할 어머니는 딸을 방치했다. 그녀가 기댈 수 있는 것과 곳은 아무도, 아무데도 없었다. 상처로 인해 너덜해진 자신의 몸뿐이었다. 그 몸을 향해 가학적 주사를 꼽아 넣었다. 술을 밀어 넣고 마약을 쏟아 부었다. 자신의 생식기로는 온갖 남성의 생식기를 받아 냈다. 마음대로 몸을 내버려뒀다.

 

 

“당신은 아주 많은 일을 해왔어요.”

“하지만 환자였던 적은 한 번도 없으셨죠. 이제 환자가 되는 법을 배우셔야 해요. 당신에게는 좀 어려울 거예요.” (p.82)

 

 

다행히 절망의 구렁텅이 나락 끝으로 떨어지기 전, 정신을 차렸다. 마약과 술을 끊어내고 자신의 몸에서부터 자신의 몸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처럼 폭력과 강간, 차별과 야만의 한 가운데로 내 몰린 여성들을 향해 자신의 몸을 던졌다. 각종 시민단체에서 왕성한 활동가로 살았다. 베스트셀러「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출간했다. 여성으로써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수많은 여성과 남성들에게 고민거리를 던졌다. 암 발병 전까지 그녀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그녀의 몸을 던져 넣었던 것은 콩고의 여성들이었다.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벌어진 내전과 콩고를 둘러싼 이해 집단(국가, 기업 등)들 간의 전쟁으로 피해를 본 것은 콩고의 여성들이었다. 수많은 여성들이 전쟁으로 인해 강간을 당하고 그 강간으로 인해 잉태된 생명을 낳아야 했다. 한 번 강간을 당하고 그만이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무자비한 폭력이 동반된 강간으로 인해 입은 질병과 상처를 치유하고 치료할 길은 없었다. 엔슬러는 콩고의 피해 여성들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재확인하고, 그 여성들을 돕는 것으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갔다. 그러다가 암이 발병했다.

이제는 환자가 되는 법을 배우라는 의료진의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암환자를 가족으로 두고 있는 내게 이 책의 내용은 참 힘들었다. 엔슬러가 표현한 고통과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냥 ‘아~ 정말 힘들었겠다. 아팠겠다.’정도가 아니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 마취에서 깨어나 끝을 알 수 없는 고통 속으로 빠져드는 아버지의 절규가 귓가에 다시 들렸다. 힘들었다.

 

 

“포트를 빼낼 때가 되자 간호사들은 기뻐하며 내게 와서, 최근 2년 동안 자신들이 포트를 삽입하고 또 제거한 사람이 내가 유일하다고 말한다.” (p.202)

 

또 한 번 다행히 엔슬러는 항암·화학치료를 잘 견뎌냈다. 회복이 되기 전 콩고로 다시 날아간 것이 걱정되었지만, 그래도 참 부러웠다. 암이라는 것이 워낙 고약한 병이라서 재발하는 가능성이 크다. 내 아버지가 그랬듯이. 엔슬러씨는 재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재발해 또 다시 입원하고 수술하고 치료하고 회복하는 과정 또한 이 책에서 다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우니까. 나는 알고 있으니까.

재발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내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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