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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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으로 억누르고 가리면 호기심이 더 생긴다. ‘하지 마라, 하지 마라.’ 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유독 한국에서는, 유독 경상도에서는, 유독 교회에서는 ‘하지 마라!’라는 것이 ‘해라!’라는 것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유독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1층 입구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예배가 끝난 뒤 예배당을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무심코 살피게 되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열에 여덟은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게 덥지 않은 날씨였고 예배당 안은 풀 에어컨 가동으로 인해 늦가을 정도의 서늘함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더워서 그런 건 아니었을 테고……. 일요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일이 적어도 다른 일상의 일들보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로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텐데…….

‘왜들 저렇게 인상을 쓰고 있는 걸까?’ 싶었다. 천상의 즐거움을 맛본 표정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자신의 내재된 종교성을 표출하고 그것으로 인한 위안과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새롭게 다가 올 일주일을 살아갈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 예배 시간이었을 텐데…….


뭐, 매주 보는 찡그린 인상들이라 개의치 않고 있다가 이 책 「욕망해도 괜찮아」를 읽으며 답을 찾았다.


모두들 다른 욕망을 꾹~꾹~! 짓누른 채 예배당에 앉아 예배를 드려봤자 그것이 진정한 삶의 예배, 진실한 제의(祭儀)가 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는 사람에게 높은 강대상 위의 설교는 이미 ‘아웃 오브 안중’이다.

가끔 나는 일요일 오전에 교회에 가는 것이 싫을 때가 있다.

토요일 오전에 출발해서 하루 종일 놀다 밤늦게 돌아오는 것과 토요일 오후에 출발해서 하룻밤 자고 일요일 오후에 돌아오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가끔은 ‘에이~! 그냥 이번 주는 빠져버려???’라고 혼자 일탈을 꿈꾸지만 제대로 실행해 본 적은 없다.


주일성수(일주일에 한 번 주일날 예배드리는 것을 꼭 지켜야 한다는 일종의 관습)개념이 강한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주일날 예배를 빠지는 것을 일종의 죄로 여기는 것 같다. 나이가 많은 성도일수록 더욱 이러한 경향을 심하다. 실제로 어렸을 때 어떤 권사님은 주일날은 돈을 써도 안 되고 운동을 해서도 안 되며 나쁜 생각은 더더욱 해서도 안 된다고 하였었다.

주일성수는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개념이 아니라 한국사회에 토착화되면서 자연스레 생긴 관습의 개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죄가 아님에도 나는 한 번도 주일날 땡땡이를 치고 놀러간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집에서 교회 가는 길에 고속도로 IC가 있는데, 몇 번 핸들을 틀어 뻥 뚫린 고속도로로 가고 싶었으나 실행하지 못했다. 그런 날은 예배당에 앉아 있어도 멍~하고 딴 생각 할뿐 집중하지 못한다.

색(色)으로 가득 차 있지만 따지고 보면 별 것 아닌 계(戒)에 눌려 스스로 내 자신을 재단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1. 나는 ‘은근자랑’ 타입


“제 삶이 우리 사회의 경계선을 넓히는 도구로 쓰였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너무 규범에 갇히지 말고 살살 놀면서 살자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p.293)

김두식 교수의 다른 책 「헌법의 풍경」, 「불편해도 괜찮아」, 「칼을 쳐서 보습을」을 읽으며 보수기독교인이 이전까지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던 ‘동성애’,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등을 사려 깊고 따뜻하게 풀어내는 능력에 감탄했었다. 따지고 보면 불편하고 유쾌하지 않은 주제들이었음에도 동네형, 교회 착한 형이 시원한 음료수 하나 사 주며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모태신앙에 중·고등학교 시절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대학시절 선교단체 활동까지 했다면 전형적인 ‘교회엄친아’라 불릴 만하다. 거기다 고시패스, 기독교대학 교수, 로스쿨 교수의 스펙은 십여 년 전 대형 교회 목사가 부르짖었던 ‘고지론’에 가장 적확하게 들어맞는 모델이다.


하지만 김두식 교수는 자신에 대한 세간과 지인, 팬들의 평가와 칭찬에 손사래를 치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내재된 욕망의 정형을 발견한다.


“누구나 자신의 은근한 자랑이 상대방에게 먹혀들기를 원하지만, 누구도 상대방의 은근한 자랑을 듣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은근해도 내 자랑이 상대방에게 순수하게 받아들여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p.147)


너무 맞는 말 아닌가? 나는 이 부분을 읽다 오른쪽 허벅지를 후려 쳤다. 아팠다.

대놓고 자랑하는 사람은 한참 하수다. 스스로 질릴 때까지 들어주고 고개 끄덕여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나는 ‘은근자랑’ 타입이었던 것 같다.

예스24 블로그 활동을 제대로 시작하고 파워블로그가 되어 명함을 받았다. 각고의 노력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름 열심히 읽고 쓴 덕에 받은 상이라 너무 기뻤다. 너무 자랑하고 싶고 알리고 싶었지만 대놓고 할 수 없었다. 일부러 가방에 명함을 수십 장 넣고 다니며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어?? 이 명함 들어있었네? 아~! 이거 이번에 그..뭐.. 파워블로그라고.. 뭐.. 별거 아냐!! 근데 명함을 줘서 허허허. 자! 이거 받아라~ 이게 뭐냐면 말이지~’


내 명함을 받은 사람들이 나의 ‘은근자랑’을 간파하고도 은근히 놀라는 척, 대단하게 여기는 척 했다고 생각하니 온 몸이 화끈거린다. 차라리 만나자마자 대놓고 자랑하며 명함을 주고 자랑질을 늘어놓았다면 좀 덜했을까? 모르겠다. 얼굴이 화끈거려 터질 것 같다.

‘은근자랑’ 타입을 버리고 ‘완전자랑’ 타입이 되어야지.




2. 내가 하면 ‘로맨스’ 니가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부탁’이고 남이 하면 ‘청탁’이 됩니다.”

“희생양에게 손을 얹어 우리 모두의 죄를 전가한 후, 그 희생양의 멱을 따고 불태우는 제사과정과 하나도 다를 게 없습니다. 그를 잡음으로써 우리는 평화를 얻습니다. 참 무서운 구조입니다.” (p.67)


연예계 가십이 다음날 모든 포털의 메인을 장식하는 나라가 한국말고 또 있을까? 선거철과 우연하게 맞물린다는 정치적 해석은 차치하고서라도 ‘공인’이라는 탈을 씌운 채 정죄하고 나의 죄를 전가하는 것은 제사의식에 다름 아니다. 신정아씨에 대한 기사가 아직도 뉴스에 나오고 잘나가던 MC가 10년 전 했던 말로 인해 하루아침에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쓰레기’취급을 받아야 하는 무서운 곳이다.


한국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너무 억눌려 살아 왔고 요즘 문제가 되는 교육의 문제가 워낙 뒤틀리고 비정상적이 되다 보니 제대로 된 인성·인문교육은 전무한 상태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이웃·배려’ 이런 단어들에 대한 이미지 연상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왕따 현상을 아무렇지 않게 방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인성·인문적 소양을 기르고 닦을 수 있는 토양은 없고 어려서부터 상대보다 높은 성적을 얻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다 보니 내재된 폭력성이 분출되면 감당할 수 없다.


포털 댓글의 심각성은 물론이고 뭐 대단한 일도 아닌 것에 우르르 몰려 희생 제사를 치르는 것을 보면 무섭다. 혹 희생양의 편이라도 들면 그 사람 또한 희생양에 추가된다.


“이번 글쓰기는 어떻게든 욕망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겠다는 제 결심의 첫걸음입니다.”

“지신이 욕망의 덩어리임을 인정하고 나면 남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길은 한결 따뜻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p.44)


내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고 문제가 있는 존재임을 인식할 때 상대의 존재가치를 바라보는 눈도 달라질 것이다.

‘어려서부터 이렇게 자랐어. 엄마·아빠는 돈 벌기 바빠서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어. 학교 선생들은 공부 잘하는 애들만 좋아해. 이 사회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 거지같은 세상.’

결국 애써 감추려 했을 뿐이지 우리 모두는 욕망의 덩어리를 짊어진 채 살아간다. 그것을 오롯이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내가 하는 것이 ‘로맨스’면 니가 하는 것도 ‘로맨스’라고 인정해야 한다.




3. ‘다투며 성내는 아내와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언21장)

성경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굉장히 재미있다. 다투며 성내는 아내와 사는 것보다 광야(사막)에 나가서 혼자 지내는 편이 낫다니. 내 아내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전제를 미리 하고. 으흠.


“‘결혼식 전날이라도 잘 안 맞는 것 같으면 헤어지라’는 것이었습니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평생을 보내는 것보다는 하루의 망신을 감수하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p.118)


그런데 사실 부부문제는 상호적인 것 같다. 짧은 1년 반의 결혼생활을 통해 얻은 성찰이지만 맞는 것 같다. 서로의 입장을 까놓고 얘기만 해도 문제의 90%는 해결되는 것 같다.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저 사람은 왜 내 마음을 몰라줘.’ 라면서 초점을 내가 아닌 배우자에게 맞출 때 갈등이 시작되고 골이 깊어진다.

성경 잠언에 나와 있는 것도 다투며 성을 내는 아내의 말도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말이 잘 통한다. 10년을 연애하고 결혼해도 또 다른 사랑과 추억이 쌓인다.

나는 절대로 광야에 나갈 일은 없을 듯하다.

‘대놓고 자랑, 완전자랑’ 하는 것이다.

“결혼 전에 천 번쯤은 자위행위를 하면서 으르가즘을 느껴본 남성이 단지 여성과의 성기결합 경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동정’을 자랑하며 파트너 여성의 성경험을 단죄하는 게 말이 되는가?” (p.221)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사회는 ‘처녀’, ‘첫 경험’이라는 것에 대해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총각’이라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말이다.

실제로 이전 직장에서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었음에도 룸살롱에서 술을 진탕마시고 2차를 나가는 놈을 봤다. 며칠 후 그놈의 아내가 출산을 하여 병원을 찾았을 때는 세상에 그렇게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 없었고 태어난 아이를 자상하게 바라보는 아버지가 없었다. 이후에도 그의 술자리 2차 행각은 계속됐다.


돈3만원으로 성을 살 수 있는 세상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성’, ‘여성’, ‘잠자리’에 대한 폭발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나이·지위·학력의 고하, 종교의 신실성 여부는 둘째다. 똑같다. 100% 장담한다.

저자의 말대로 결혼 전 수천 번 자위를 한 남자가 무슨 자격으로 여자의 과거를 따져 묻거나 그것을 문제 삼을 수 있을까? 성기의 결합만이 성관계일까? 성경에서는 상상 속에서 여자를 취하는 것도 간음이라 한다. 굉장히 높은 수준의 성기준이다. 하지만 교회 내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사례가 있다. 성직자에서부터 교회 내 미혼커플에 이르기까지.


결국 말만 번지르르 하는 것뿐이다.


차라리 까놓고 얘기했으면 좋겠다. 교회 내에서도 그렇지만 직장에서도 말이다. 가정에서는…….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 저자는 상담하던 내용 중 ‘내 딸아이가 2박3일 애인과 여행간 다면 콘돔을 꼭 챙겨줄거야.’라고 했다는데 나라면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다.

남자라면 누구가 겪었던, 겪고 있는 문제이기에 처음에 말만 잘 꺼내면 모두 동감하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해 본 경험이기에 확신한다. 해결할 수 없더라도 최소한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다들 그렇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면 굉장히 자유해지고 편안해진다. 위로가 되는 것이다.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저자는 이런 생각들을 버려버리라고 한다.


내 속에 내재된 꿈틀대는 욕망의 덩어리를 건강하게 표출하라고 한다. 실제적인 지침을 내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찾아야 한다.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때론 계(戒)에 묶인 채 질질 끌려 다니지만 말고 일탈도 해보고, 계(戒) 때문에 속마음을 숨긴 채 은근히 자랑하지 말고 떠벌려 자랑해 보고, 계(戒)에 눌려 하고 싶은 생각과 행동도 못한 채 슬금슬금 눈치들만 보지 말고 먼저 얘기해보자.


욕망해도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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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진화한다
권율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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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저자 권율씨가 나온 서바이버 에피소드를 다 보지는 못했다. 중간쯤과 마지막쯤을 봤었던 기억이 있다. 얼마 전 슈퍼스타K라는 프로그램이 악마의 편집이니 뭐니 해서 말이 많았는데, 미국 CBS의 서바이버에 비하면 세발의 피였다. 서바이버는 인간의 탐욕과 위선, 속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당시만 해도 국내 TV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었던 포맷이었기 때문에 재미도 있었지만 불편하게 봤었다.


최종 우승을 한국계 미국인 권율씨가 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그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없다가 이 책 「나는 매일 진화한다」를 통해 다시 그를 만나게 되었다.

서바이버 우승 후 권율씨의 행보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 있는 것이 없었기에 이 책도 ‘서바이버 우승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뭐 자질구레한 이야기가 있겠지’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서바이버 우승에 대한 부분은 책의 앞부분 한 챕터에서 언급할 뿐이고 뒤에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아오며 겪었던 많은 이야기와 자신의 꿈에 대한 다짐으로 가득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쓰는 사람이라면 자기자랑이 책의 대부분이 될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소수계 인종에 대한 암묵적 차별과 편견을 어떻게 겪어왔는지, (이겨냈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아직도 그것과 싸우고 있으며 앞으로도 싸워야 함을 책 전체에 걸쳐 얘기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이겨내기 위해 노력할 것인지에 대

한 담담한 고백이 담겨 있다.



“나는 약하고, 결단력이 없고, 존재감이 부족하고, 걱정이 많았다. 나는 줄곧 내 자신의 결정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미적거렸다.” (p.246)


책에서 여러 번 언급하지만 권율씨는 어려서부터 무척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아이였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늘 괴롭힘을 당하고 아버지의 강압적인 교육과 훈계로 더욱 강박적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폐쇄공포증과 결벽증까지 겹쳐지면서 더욱 사회와 멀어지고 학교와 멀어지게 되었다.

“자신감이 없더라도 자신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당당한 척, 자신감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게 첫 번째야.” (p.124)


권율은 형의 도움과 학교에서 만난 또 다른 아시아계 미국인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서 차차 이러한 아픔과 약함 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움츠러들면 움츠러들수록 더 괴롭힘을 당하고 차별을 당한 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학교 수업시간에 한 번도 하지 않던 질문도 많이 하게 되고 운동써클에도 가입하면서 적극적인 아이로 변모하게 된다.

성적도 최상위권을 유지하게 되고 일류 대학과 일류 로스쿨을 졸업하고 로펌, 의회, 구글 등 많은 사회경험도 쌓게 된다. 남들이 보기에도 엘리트 코스를 밟아오고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된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자신을 암흑에서 구해주었던 중국계 미국인 친구 에반의 투병과 죽음을 통해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나는 에반의 투병과 죽음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골수 기증 캠페인을 벌일 때 나는 미국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목격했다. 동양계 사람들은 미국 사회를 움직일 영향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p.182)

“사방을 돌아다니며 캠페인에 대한 확신을 심어 줄 동양계 리더를 찾으려 애썼지만 그런 역할을 할 만한 정치인도, 영화배우도, TV스타도 찾기 어려웠다.” (p.182)


백혈병으로 고통 받는 친구 에반의 골수 기증자를 찾기 위해 학업까지 포기한 채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노력했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수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있고 이제는 정치·경제·사회 분야에도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진출해 맹활약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에반에게 골수를 기증해 줄 지원자를 찾는 과정에서 모래알처럼 흩어진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단합력을 확인했다. 아무리 자기 혼자 백방으로 노력해도 정말 미국 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동양계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래서 권율씨는 자기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한 자만이 담긴 다짐이라 할 수 있겠지만 책을 통해 알게 된 그의 어린 시절의 상처와 아픔,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 수많은 노력과 실패들을 생각하면 자만이 아니다. 그는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누구를 의지하거나 누구의 도움을 기대하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자신감을 심고 스스로에게 당당해지기 위해 더욱 노력한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위의 다짐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100% 공감할 수 있다.


‘왜 이렇게 도와주지 않지?, 동양계 미국인들은 왜 이렇게 힘이 없지? 영향력이 없지?’라고 생각하며 낙담하지 않는 것이다.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던 중 CBS의 서바이버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온다. 당시 그는 모든 선망의 대상인 ‘구글’에서 일하고 있던 차였다. 모두들 그의 출연 승낙을 반대하고 아버지는 더욱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결국 ‘구글’에 사표를 내고 서바이버에 출연한다.



“치열하게 게임에 임하면서도 동시에 경쟁자로부터 존경심까지 끌어내야 할 만큼 상대방의 신뢰를 받아야 하는 탁월한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p.8)

“반대로 잃게 될 것은 너무 많았다... 지금껏 내가 쌓아온 커리어를 한 순간에 망칠 수도 있었다.” (p.48)


앞서도 잠시 말했지만 서바이버라는 프로그램은 내가 본 바로 출연자들에게는 굉장히 고통스럽고 혹독한 과정인 것 같았다. TV로 시청하는 우리들에게야 ‘이야~ 이거 완전 리얼인데~~ 싸우고 배신하고 질투하고 하는 게 진짜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지만 그 속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실제 상황인 것이다. 극한의 육체적 한계를 경험하고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몇 주간의 삶은 그 사람의 마지막 한 줌까지도 모두 까발려지는 어찌 보면 치욕스러운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권율씨는 다르게 생각했다. 자신의 출연으로 인해 미국인들의 동양계 남성에 대한 편견이 바뀌기를 꿈꾸었다. 그가 출연한 서바이버 시즌13은 시즌1이 거뒀던 성과를 넘어서는 대단한 흥행을 기록했고 그 시즌에서 우승한 한국계 미국인 권율에 대한 관심으로 전미가 떠들썩했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더 많은 스토리가 있을수록, 더 많은 경험을 할수록 삶은 풍요로워지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p.189)


이후 수많은 학교와 기업, 관공서에 특강을 하고 서바이버 우승으로 받은 거액의 상금도 기부했다고 한다. 오바마 선거캠프 측의 제의로 선거운동에도 참여하게 되고 이후 정부단체에서 일도 하게 된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거치며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에 당당해진 청년으로 성장한 그는 자신의 삶도 더 많은 스토리로 점철되기를 소망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에서 일도 해보고 TV에도 출연하고 캠페인도 하고, 안주하지 않는 것이다.

제대로 된 리더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피부색이 달라도 미국사회 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리더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수계 인종으로 자신처럼 어려움을 겪을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참 멋있었다.

자신이 이제껏 쌓아올린 커리어로도 충분히 여유 있고 보람된 삶을 영위할 수 있음에도 더 큰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이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율씨가 이 책에서 얘기하고 다짐한 것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 확실히 알수는 없지만 앞으로 그의 행보에 진심을 담은 응원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혹시 그가 안정된 위치를 고수한 채 안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왜 뱉은 말을 지키지 않냐~!’라고 비난할 생각이 없다.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왜 너는 그렇지 살지 않냐라고 얘기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조용히, 그리고 멀리에서 마음으로 응원할 뿐이다.

나도 멋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국계 최초로 미국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고자 하는 그의 꿈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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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인맥이 필요할 때 - 혼자 힘으론 안 된다고 느낄 때
김기남.권일지 지음 / 지식공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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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을 3주 남겨 놓고도 신혼집을 마련하지 못해 매분, 매초 애가 탔었던 경험이 있다. 마침 집값이 폭등해 멀쩡한 매물이 있음에도 돈을 더 주지 않으면 계약하지 않겠다고 주인들이 똥배짱을 늘어놓는 통에 무진장 애를 먹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내와 하루 종일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찾아봤지만 허탕을 치고 심신이 완전히 지쳐 커피전문점에 들어가 엎드려 있었다. 차창 밖으로 수많은 아파트가 보이는데 우리 두 식구 들어가 살 집이 없나 싶었다. 물론, 우리 수중에 있는 돈에 2배 정도가 있었다면 훨씬 넓은 평수를 전화 몇 통화로 바로 계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내와 혹시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나 생각해 봤다. 부동산을 많이 소유하고 있거나 그런 사람을 잘 알고 있거나 그런 사람의 친척이 혹시 없나 하고. 그런데 없었다. 단 한 명도.

‘너희 신혼집 구한다며? 왜 진작 연락 안 했니? 우리 아파트 몇 채 있잖아. 깨끗하고 살기 좋은 데 있으니까 그리고 들어와서 살아~. 돈은 너희들 마련한 만큼만 주고~.’

라는 전화를 한 통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내 영혼과 모든 것을 팔아버릴 수 있었다.

다행히 어렵사리 신혼집이 구해져 지금은 잘 살고 있다. 물론, 내 전화번호를 뿌려댄 수많은 부동산 중 한 곳에서 전화를 줘서 구했다.

그때 처음 인맥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내가 참 인맥이 없구나~’생각했다.

꼭 도움을 얻기 위한 인맥이 아니라도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닥쳤을 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인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맥을 넓히는 데 목적을 두지 마시고, 한 사람이라도 진솔하게 만나세요. 그게 인맥을 넓히는 방법입니다.” (p.12)

“인맥이란 ‘나’ 중심의 인간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각자 중심인 사람들이 만나서 이루는 관계가 인맥이에요.” (p.30)

“그런 사람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면 됩니다. 내가 변치 않는 사람이 되면 돼요.” (p.34)


이 책 「서른, 인맥이 필요할 때」는 시중에 나와 있는 여러 처세술 관련 책들과 다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실용서라 자칭하면서 실제적인 지침으로 가득 차 있는 내용 없는 책들과는 달랐다. 30대 청년 직장인이 인맥의 달인이라 통하는 멘토 김기남씨를 만나 멘토링을 받는 것을 대화체로 기술한 편집도 신선했다.

 

 

책의 전반부에 멘토 김기남씨가 이야기 한 것처럼 인맥을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 힘 있는 정치인이나 경제인, 기업인, 교육인, 공무원들이 아니라면 평소에 인맥을 동원하고 인맥에게 청탁을 할 기회는 거의 없다. 나처럼 신혼집이 안 구해져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인맥은 당연히 청탁이나 특별한 도움을 얻고자 찾는 것이라는 인식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멘티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분명히 지적한다.

그림에서처럼 중심은 ‘나’ 한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관계 맺는 ‘각자’에게 다 있는 것이다.


“인맥 멘토 김기남은 ‘인맥’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그는 ‘동행’이라는 표현이 더 좋다고 했다.” (p.55)

“함께 간다는 뜻입니다. 이 말에는 조건이 없어요. 무엇을 하기 위해 함께 간다가 아니라, 그저 함께 간다예요.” (p.87)

“사람을 만날 때는 그 인연이 어떻든 10년 사귈 사람으로 생각하고 만나는 게 중요해요. 길게 보고 만나면 사소한 오해 따위에 연연하지 않아요.” (p.82)


아직 어린 30대의 멘티 권일지씨는 멘토의 ‘인맥론’을 선뜻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나도 그랬다. ‘인맥’과 ‘우정’, ‘인맥’과 ‘인기’, ‘인맥’과 ‘동행’에 대한 구분이 쉽게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물음에 대해 멘토 김기남씨는 삶의 경험이 충분히 녹아든 후에야 자연적으로 알게 된다고 했는데 사실 이게 맞는 말인 것 같다.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미리 그런 삶을 산 멘토에게 멘토링을 받으며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래서 멘토링을 받는 다는 것은 설레고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불편하고 두려운 과정이 될 수도 있다.


“발가벗겨지는 느낌, 첫날 멘토와의 만남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내가 발가벗겨지는 듯 한 느낌이었다. 밑천이 드러나고, 내가 품고 있던 인맥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p.44)


그래도 젊은 시절 이런 멘토 한명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눈을 씻고 찾아도 없는 판에 말이다. 거기다 책까지 내고. 더 나이먹이 전에 인생의 멘토를 만나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를 일이다. 이 책의 멘토 김기남씨의 말대로 내가 멘토를 찾기 전에 내가 그런 멘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 더 빠른 길일 것 같다는 체념도 하게 된다.


“비즈니스로 만나든 다른 일로 만나든 사람을 만날 때는 사람 자체만을 보아야 합니다. 사람을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p.218)


‘인맥의 달인’ 김기남씨는 시종일관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강조한다. 저 사람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얻어 낼까?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얼굴 앞에서는 웃으며 얘기하고 온갖 예의범절을 지켜도 그 속내를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즈니스를 하러 그 사람을 만났더라도 비즈니스보다 우선 사람을 알아가고 그 사람과 친밀해 지는 것이 첫째이고 가장 중요한 ‘인맥쌓기’의 방법이라 말한다.

참 쉬운 해답 같으면서도 참 어려운 해답이다. 실제로 당장 납품을 위해 찾아간 상대 회사에서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아까운 판국에 사는 게 어떻다는 둥, 어떤 생각을 한다는 둥, 세상 돌아가는 게 어떻다는 둥 태평하게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기남씨는 그런 상황일지라도 사람에 우선하라고 얘기한다. 설사 한 번의 계약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무리해서 계약을 넘어서 관계가 깨어진다면 다시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한 번의 손해가 전부인 것 같지만 차분히 인맥을 형성하고 신뢰를 쌓아 가면 다음번엔 이번의 손해를 해결하고도 남을 만큼의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식당 아주머니에게 인사할 것, 남을 탓하지 말 것” (p.119)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잘하는 것이 곧 인맥이다. 다른 데서 찾아서는 안 된다.” (p.205)


아주 작은 제조업체를 몇 년 만에 튼튼한 기업으로 만든 김기남씨의 직업철칙은 두 가지라고 한다. 식당 아주머니에게 인사하고 남을 탓하지 말 것. 여기서도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 담겨있다. 승진을 하고 부하직원을 많이 거느린다고 할지라도 한 조직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그 공동체 의식으로 타 부서나 타 조직원들을 탓하지 말 것을 권면한다.

이것도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지만 실제로 김기남씨가 그렇게 회사생활을 했기 때문에 뭐 토를 달수가 없다.


“제가 일하는 방식을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한 걸음씩 가면 가지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해요. 우보천리(牛步千里), 소 걸음으로 천 리 길을 간다” (p.106)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이다.

인맥을 쌓거나 회사 생활을 하거나 블로그 운영을 하는 것에 있어 똑같은 마음자세를 가졌다는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조바심 내지 않고 한 걸음씩 간다면 못할 일이 없다.

단순히 ‘인맥’을 어떻게 쌓아야 하나? 라는 물음에 답하는 책이 아니라 삶의 자세와 방향을 진실하게 코치해주는 인생 선배의 멘토링이라 좋았다.

배울 점이 많았다.



또 하나,


 

명함정리 팁인데, 이것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다. 의도를 가지고 명함의 앞뒷면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다음번에 만났을 경우에도 낯설지 않도로고 자기 최면을 거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관심이고 노력이다.

필요로 하는 인맥은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지갑에 있는 명함 몇 개를 꺼내 실습을 해봤다.

쉽지 않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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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 곽세라 힐링노블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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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결핍에 산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 다만 그 결핍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아 모른 채 하거나 애써 무시하고 있을 뿐이다

. 어떤 이는 종교에 귀의해 그 결핍을 메워보려 하고 어떤 이는 미친 듯 집중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에 매진해 결핍을 메워보려 하고 또 어떤 이는 그 결핍을 메워 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는 상처 같은 그것을 지켜볼 뿐이다.


원래 ‘힐링’ 어쩌고 ‘집시, 방랑, 유랑’ 같은 분위기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책임감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는 가지지 못한 것을 나는 가지고 있지’ 정도의 감정적 우월감이 내포된 채 툭 던져버리는 이야깃거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껏 읽어왔던 그런 유의 글들이 대부분 난삽했다. 어렵고 까다롭게 표현하면서 전혀 매끄럽지 못했다. 자기 자신도 책임지지 못하는 감정의 파편만 허공에 흩뿌렸다.

하지만 이 책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은 다르다. 곽세라 작가, 이 사람 글은 가벼워 흩날리지 않는다. 꾹꾹 눌러 담은 보온밥통 도시락 밥통의 밥알들처럼 찰지고 꽉 들어차 있다.

“뮤토(Muto, 변화, 변하는 존재라는 뜻의 라틴어)” (p.109)

“어때,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이지?” (p.124)


주인공 류짱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뮤토’가 된다. 꼭 한 가지씩 결핍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츠키극단의 배우들은 서로가 서로의 결핍을 싸안는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 결핍이 저 사람 결핍의 연고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그들이 모두 영혼을 팔아서라도 한 사람의 영혼의 결핍과 상처를 온전히 치유해주는 ‘뮤토’가 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결핍과 상처로 점철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크기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뮤토들은 종종 착각을 하지……. 네가 그들의 삶을 완성시켜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게 완성이 아니라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결핍이야. 그 결핍이 우리를 부르는 거고……. 특히 너를!” (p.162)

“잊지 마. 결핍이 사라지는 순간, 너도 사라져.” (p.165)


극단 츠키의 대표 미나 선생은 그렇게 극단 배우들과 죽음의 고통과 다름없는 결핍에 신음하는 영혼을 연결한다. ‘뮤토링’하는 것이다. 평생을 죽음과 같은 결핍의 고통에 살아 온 사람은 한번의 ‘뮤토링’에 모든 것을 건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거액을 지불한다. 극단 츠키는 그것으로 극단을 운영한다. 일본과 서울을 오가며 공연을 하고 배우들 월급도 지급한다.


결국 ‘뮤토링’은 양쪽의 결핍을 싸안는 매개가 된다.


하지만 그것이 ‘뮤토링’이 오래 가지 못하고 실패하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용재가 그랬고 요시히로가 그랬다. 복잡한 프라모델을 거의 다 조립하고 마지막 조각을 맞춰 조립하기 직전의 느낌처럼 ‘혹시 내가 만져주면……. 혹시 내가 말해주면…….’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뮤토’는 의뢰인이 부탁한 대사 한 마디만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면 힘껏 불던 풍선이 팡! 터지는 것처럼 ‘뮤토링’은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결핍의 뻘밭에서 같이 뒹굴 수 있을 뿐이다. 누가 누구를 치유할 수 있단 말인가? 누가 누구의 영혼을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절대 그럴 수 없다. 그저 같이 있어 줄 뿐이다.


“머리카락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담고 있어요. 하루에 0.35밀리미터씩 그 영혼을 밀어내고 있는 거예요…….” (p.64)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만큼만 영혼이 자란다면 사실 이렇게 힘들고 아프고 고통이 가득한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현관문을 나서면서 한숨부터 쉬는, 아니 반대로 현관문을 들어오면서부터 한숨을 내쉬는 일상에서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삶의 안식과 평안을 얻을 수 있다면] 나와 당신! 좋은 날을 기다려 볼 수 있지 않을까?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말야.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0.35밀리미터씩 결핍이, 상처가, 허물이, 한숨이 쌓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나를…. 사랑하나요? 그냥…이렇게 평범한데도?…. 너인 채로, 그대로 너를 사랑한다…. 감사합니다….” (p.247)


7년간의 극단 생활과 짧지만 강렬했던 ‘뮤토’생활을 끝낸 류짱은 말 그대로 평범한, 아주 평범한 여자의 모습이 되었다. 백화점이나 레스토랑에 들어갈 때마다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긴 보랏빛 머리카락은 짧은 갈색 머리카락이 되었다. 0.35밀리미터의 1000배인 35센티미터보다 더 머리카락이 짧아졌다. ‘이것이 영혼의 안식이고 완성이야.’ 쉽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류짱은 작은 손거울에 비친 자신의 평범한 모습에 ‘뮤토링’ 된다. 특별해서 ‘뮤토’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할 수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영혼은 ‘뮤토링’하지 못했다. 애쓰고 발버둥 치며 찾아보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방법을 말이다.

그냥 그대로, 애면글면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마법처럼 일어났다. 영혼을 팔고, 영혼을 치유하고 사랑하고 상처받는 따위의 것으로 완성할 수 없는 것 말이다. 그저 내가 이렇게 평범한데도 내 존재 자체로 나를 사랑한다는 충만함.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면 내 영혼에게, 내 뮤토에게, 그 의뢰인에게, 그 중개인에게 감사할 수 있겠다. 나도.

좋은 날을 맞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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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가, 카레를, 밥이랑 뒤섞지도 않고, 허물어뜨리지도 않고 조심조심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녀가 묘하게 균형이 무너져 있는 나를, 바로 잡지 않고 온전히 구석구석 안아주는 것 같아서, 그냥 위윙 소리가 나면서 멍해져요.” (p.48)

“이불에서 잘 말린 햇빛 냄새가 나!” (p.258)

“과일과 나를 차례로 내동댕이친다. 과일은 나를 보고 나는 과일을 본다. 촉촉한 심장을 드러낸 잘린 과일들과 내가 그렇게 함께 수분을 잃어간다.” (p.298)

좋은 표현들이 가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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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김영명 지음 / 개마고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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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본 불교방송에서 성철스님이 나왔었다. 화질도 좋지 않고 전문 촬영기사의 손을 거치지 않은 듯 내내 흔들리는 화면이 계속 됐다. 성철스님은 절 경내와 계곡, 산을 돌아다니며 가르침을 쏟아 냈다. 흔히 알고 있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정도의 가르침이 아니라 나로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단어와 어휘가 가득했다. 경상도 사투리에 성철스님의 말투가 워낙 빨라 자막을 따라 읽으면서도 버거웠다.

 

일반인들에게 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행려승들에게 하는 가르침 같았다. 기본적인 지식과 공부가 없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의 저자 김영명씨도 여기에서 출발했다. 우연히 들른 절에서 금강경 강의를 신청하게 되고 그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불교에 대해 더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애매모호해지고 불교에 대한 이해가 어려워 진 것이다.

 

“불교학자나 승려들이 쉬운 현대 한국어에 익숙지 않은 것도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p.19)

“한국 불교는 한문에 갇혀서 발전을 못하고 있다.” (p.29)

“한국 불교가 대중이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지나치게 고답적이고 신비화된 데는 한문이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p.32)

 

[한글문화연대] 대표를 맡고 있는 저자에게 불교 경전과 그것을 강해하는 스님들의 가르침은 한글의 발전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었다. 쉽게 풀이할 수 있는 한글이 존재함에도 이해하기 어렵고 현학적인 한문으로 가득한 것에 대해 비판한다. 오히려 영어로 번역된 책이 더 이해하기 쉽다고도 한다. 동양에서 태동한 종교인 불교의 경전이 불과 100여년의 역사밖에 안된 서구의 언어로 더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도 한다.

공감이 가는 지적이었다. 그리고 불교 경전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대학 때 호기심으로 읽었던 김용옥 교수의 [금강경 강해]가 내가 본 유일한 불교 경전이었는데, 무수히 많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저자는 많은 불교 경전이 더군다나 이해하기 어렵고 접근하기 어려운 한문 일색으로 되어 있으며 이것을 쉬운 한글로 풀어내지 않는 것은 불교가 대중 속으로 더 깊이 넓게 들어가지 못하는 가장 큰 한계라고 지적했다.

 

“체계적이고 간단명료하게 ‘불교는 이것이다’라고 정리해놓은 것을 찾기 어려웠다.” (p.15)

“언어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불교는 좀 더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p.56)

 

거기에 더해 일반 불교 신자나 불교 입문자가 쉽게 찾아 읽을 수 있는 불교입문서가 없다는 것도 여러 번 지적한다.

혹 종단에서나 불교 학자 중 불교 입문서를 출간한다 해도 대게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입문서임에도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설명이라는 것들이 대부분 하나마나한 소리들의 반복이다. 자아가 왜 없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그저 자아가 없다는 선언이 있을 뿐이다.” (p.153)

 

현학적이고 고답적인 질문과 대답의 반복은 불교를 하나의 신비한 동양사상이나 현세의 복을 빌기 위한 기복신앙 정도로 한계 지어버리는 결정적인 요인이라 지적한다.

 

앞서 얘기한 성철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전 국민이 알고 있는 법문도 저자는 ‘그래서 뭐요?’ 라고 접근한다. 생각해 보니 저자의 지적도 옳은 듯하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 큰 스님이었던 성철스님이 한 말이라 신비화된 것뿐이라고 한다.

하긴 가끔 절에 가보면 스님들이 하는 기도나 염불 같은 것들을 알아들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대승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다. 깨달은 자, 뛰어난 자로 보는 데 만족하지 않고 신과 같은 존재로 부각하는 것이다.” (p.63)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인데 석가모니 부처님을 신격화하는 것에도 딴죽을 건다.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대승불교의 가장 큰 목적인데, 깨달음을 얻은 자에 불과한 석가모니 부처를 신으로 모시고 경외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유일신 사상을 가진 기독교와 이슬람은 물론 동양사상의 거두인 공자와 노자를 대하는 학자나 종교인 일반인들도 적절한 비판과 견제 없이 ‘무조건 좋은 것~!’, ‘비판할 수 없는 것~!’이라 여기고 숭상하는 현상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불교의 두 가지 목표는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다.” (p.217)

“대승불교는 개인의 수행도 중시하지만 중생구제의 자비를 더 중시한다.” (p.85)

 

대승불교는 중생구제의 자비를 더 중시함에도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의 적자라 자칭하면서도 중생의 구제는 물론 사회적 부정의에 대해서도 극도로 소극적이라 비판한다. 대승불교의 간판은 달고 있지만 소승불교의 모습인 개인적 수행과 깨달음,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가정의 복만을 비는 기복적 신앙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커다란 사회문제에는 눈을 감고 있다가 템플 스테이 예산을 삭감했다고 벌겋게 들고 일어나고 조계종 총무원장을 일개 경찰관이 홀대했다고 흥분할 뿐이다.” (p.237)

“선불교를 중심으로 한 한국 불교에는 사회정의를 위해 싸울 정신적 바탕이 부족해 보인다. 깨달음만 강조하다가 깨닫지도 못하고 중생구제는 아예 뒷전인 한국 불교에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해 보인다.” (p.239)

 

절에 들어가 살고 시주를 엄청나게 많이 한 그 어떤 불교 신자보다 한국 불교를 제대로 간파한 사람이다. 하지만 무작정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님은 이 책의 곳곳에서 풍겨나는 한국 불교에 대한 저자의 사랑과 애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좀 더 대중적이고 좀 더 베푸는 제대로 된 한국 불교의 모습을 찾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큰 뉴스였던 스님들의 도박과 주기적으로 계속되는 조계종 내 파벌싸움 들은 그나마 ‘기독교보다는 낫다.’ 라고 생각했던 일반인들에게 ‘불교도 스님들도 똑같구먼!’ 이라는 실망만 안겨 줄 뿐이었다.

지난 달 갔었던 대구 동화사에는 높이30m의 거대한 통일약사대불이 있었고 그 뒤로 국제관광선체험관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나오는 길에 공사연혁이 있어 잠시 들여다보니 통일약사대불과 선 체험관을 만드는데 200억 정도의 돈이 들었다고 했다.

 

그 날이 마침 주말이라 외국인들이 단체로 템플스테이를 하는 것인지 외국인도 굉장히 많았다.

좋은 절이고 팔공산이라는 좋은 산 속에 있어 꼭 교세확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포교와 홍보를 위해서 수백억의 돈을 들여 좋은 것을 만들고 템플스테이를 활성화 한다 변명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저자의 말처럼 중생구제는 뒷전으로 내던진 채 껍데기만 대승불교인 한국 불교에는 반드시 근본적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성직자들만이 향유하는 어려운 책이 아닌 일반 대중의 삶과 마음을 파고드는 가르침이 되도록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제 배만 채우는 욕심을 버리고 대승불교의 가장 큰 가르침인 중생구제에 초점을 맞추어 베푸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한국 불교가 변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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