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 곽세라 힐링노블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6월
평점 :
사람은 누구나 결핍에 산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 다만 그 결핍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아 모른 채 하거나 애써 무시하고 있을 뿐이다
. 어떤 이는 종교에 귀의해 그 결핍을 메워보려 하고 어떤 이는 미친 듯 집중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에 매진해 결핍을 메워보려 하고 또 어떤 이는 그 결핍을 메워 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는 상처 같은 그것을 지켜볼 뿐이다.
원래 ‘힐링’ 어쩌고 ‘집시, 방랑, 유랑’ 같은 분위기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책임감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는 가지지 못한 것을 나는 가지고 있지’ 정도의 감정적 우월감이 내포된 채 툭 던져버리는 이야깃거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껏 읽어왔던 그런 유의 글들이 대부분 난삽했다. 어렵고 까다롭게 표현하면서 전혀 매끄럽지 못했다. 자기 자신도 책임지지 못하는 감정의 파편만 허공에 흩뿌렸다.
하지만 이 책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은 다르다. 곽세라 작가, 이 사람 글은 가벼워 흩날리지 않는다. 꾹꾹 눌러 담은 보온밥통 도시락 밥통의 밥알들처럼 찰지고 꽉 들어차 있다.
“뮤토(Muto, 변화, 변하는 존재라는 뜻의 라틴어)” (p.109)
“어때,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이지?” (p.124)
주인공 류짱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뮤토’가 된다. 꼭 한 가지씩 결핍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츠키극단의 배우들은 서로가 서로의 결핍을 싸안는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 결핍이 저 사람 결핍의 연고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그들이 모두 영혼을 팔아서라도 한 사람의 영혼의 결핍과 상처를 온전히 치유해주는 ‘뮤토’가 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결핍과 상처로 점철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크기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뮤토들은 종종 착각을 하지……. 네가 그들의 삶을 완성시켜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게 완성이 아니라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결핍이야. 그 결핍이 우리를 부르는 거고……. 특히 너를!” (p.162)
“잊지 마. 결핍이 사라지는 순간, 너도 사라져.” (p.165)
극단 츠키의 대표 미나 선생은 그렇게 극단 배우들과 죽음의 고통과 다름없는 결핍에 신음하는 영혼을 연결한다. ‘뮤토링’하는 것이다. 평생을 죽음과 같은 결핍의 고통에 살아 온 사람은 한번의 ‘뮤토링’에 모든 것을 건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거액을 지불한다. 극단 츠키는 그것으로 극단을 운영한다. 일본과 서울을 오가며 공연을 하고 배우들 월급도 지급한다.
결국 ‘뮤토링’은 양쪽의 결핍을 싸안는 매개가 된다.
하지만 그것이 ‘뮤토링’이 오래 가지 못하고 실패하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용재가 그랬고 요시히로가 그랬다. 복잡한 프라모델을 거의 다 조립하고 마지막 조각을 맞춰 조립하기 직전의 느낌처럼 ‘혹시 내가 만져주면……. 혹시 내가 말해주면…….’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뮤토’는 의뢰인이 부탁한 대사 한 마디만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면 힘껏 불던 풍선이 팡! 터지는 것처럼 ‘뮤토링’은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결핍의 뻘밭에서 같이 뒹굴 수 있을 뿐이다. 누가 누구를 치유할 수 있단 말인가? 누가 누구의 영혼을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절대 그럴 수 없다. 그저 같이 있어 줄 뿐이다.
“머리카락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담고 있어요. 하루에 0.35밀리미터씩 그 영혼을 밀어내고 있는 거예요…….” (p.64)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만큼만 영혼이 자란다면 사실 이렇게 힘들고 아프고 고통이 가득한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현관문을 나서면서 한숨부터 쉬는, 아니 반대로 현관문을 들어오면서부터 한숨을 내쉬는 일상에서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삶의 안식과 평안을 얻을 수 있다면] 나와 당신! 좋은 날을 기다려 볼 수 있지 않을까?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말야.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0.35밀리미터씩 결핍이, 상처가, 허물이, 한숨이 쌓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나를…. 사랑하나요? 그냥…이렇게 평범한데도?…. 너인 채로, 그대로 너를 사랑한다…. 감사합니다….” (p.247)
7년간의 극단 생활과 짧지만 강렬했던 ‘뮤토’생활을 끝낸 류짱은 말 그대로 평범한, 아주 평범한 여자의 모습이 되었다. 백화점이나 레스토랑에 들어갈 때마다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긴 보랏빛 머리카락은 짧은 갈색 머리카락이 되었다. 0.35밀리미터의 1000배인 35센티미터보다 더 머리카락이 짧아졌다. ‘이것이 영혼의 안식이고 완성이야.’ 쉽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류짱은 작은 손거울에 비친 자신의 평범한 모습에 ‘뮤토링’ 된다. 특별해서 ‘뮤토’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할 수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영혼은 ‘뮤토링’하지 못했다. 애쓰고 발버둥 치며 찾아보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방법을 말이다.
그냥 그대로, 애면글면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마법처럼 일어났다. 영혼을 팔고, 영혼을 치유하고 사랑하고 상처받는 따위의 것으로 완성할 수 없는 것 말이다. 그저 내가 이렇게 평범한데도 내 존재 자체로 나를 사랑한다는 충만함.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면 내 영혼에게, 내 뮤토에게, 그 의뢰인에게, 그 중개인에게 감사할 수 있겠다. 나도.
좋은 날을 맞을 수 있을까?
------------------
“리에가, 카레를, 밥이랑 뒤섞지도 않고, 허물어뜨리지도 않고 조심조심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녀가 묘하게 균형이 무너져 있는 나를, 바로 잡지 않고 온전히 구석구석 안아주는 것 같아서, 그냥 위윙 소리가 나면서 멍해져요.” (p.48)
“이불에서 잘 말린 햇빛 냄새가 나!” (p.258)
“과일과 나를 차례로 내동댕이친다. 과일은 나를 보고 나는 과일을 본다. 촉촉한 심장을 드러낸 잘린 과일들과 내가 그렇게 함께 수분을 잃어간다.” (p.298)
좋은 표현들이 가슴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