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김영명 지음 / 개마고원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우연히 본 불교방송에서 성철스님이 나왔었다. 화질도 좋지 않고 전문 촬영기사의 손을 거치지 않은 듯 내내 흔들리는 화면이 계속 됐다. 성철스님은 절 경내와 계곡, 산을 돌아다니며 가르침을 쏟아 냈다. 흔히 알고 있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정도의 가르침이 아니라 나로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단어와 어휘가 가득했다. 경상도 사투리에 성철스님의 말투가 워낙 빨라 자막을 따라 읽으면서도 버거웠다.

 

일반인들에게 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행려승들에게 하는 가르침 같았다. 기본적인 지식과 공부가 없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의 저자 김영명씨도 여기에서 출발했다. 우연히 들른 절에서 금강경 강의를 신청하게 되고 그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불교에 대해 더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애매모호해지고 불교에 대한 이해가 어려워 진 것이다.

 

“불교학자나 승려들이 쉬운 현대 한국어에 익숙지 않은 것도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p.19)

“한국 불교는 한문에 갇혀서 발전을 못하고 있다.” (p.29)

“한국 불교가 대중이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지나치게 고답적이고 신비화된 데는 한문이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p.32)

 

[한글문화연대] 대표를 맡고 있는 저자에게 불교 경전과 그것을 강해하는 스님들의 가르침은 한글의 발전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었다. 쉽게 풀이할 수 있는 한글이 존재함에도 이해하기 어렵고 현학적인 한문으로 가득한 것에 대해 비판한다. 오히려 영어로 번역된 책이 더 이해하기 쉽다고도 한다. 동양에서 태동한 종교인 불교의 경전이 불과 100여년의 역사밖에 안된 서구의 언어로 더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도 한다.

공감이 가는 지적이었다. 그리고 불교 경전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대학 때 호기심으로 읽었던 김용옥 교수의 [금강경 강해]가 내가 본 유일한 불교 경전이었는데, 무수히 많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저자는 많은 불교 경전이 더군다나 이해하기 어렵고 접근하기 어려운 한문 일색으로 되어 있으며 이것을 쉬운 한글로 풀어내지 않는 것은 불교가 대중 속으로 더 깊이 넓게 들어가지 못하는 가장 큰 한계라고 지적했다.

 

“체계적이고 간단명료하게 ‘불교는 이것이다’라고 정리해놓은 것을 찾기 어려웠다.” (p.15)

“언어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불교는 좀 더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p.56)

 

거기에 더해 일반 불교 신자나 불교 입문자가 쉽게 찾아 읽을 수 있는 불교입문서가 없다는 것도 여러 번 지적한다.

혹 종단에서나 불교 학자 중 불교 입문서를 출간한다 해도 대게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입문서임에도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설명이라는 것들이 대부분 하나마나한 소리들의 반복이다. 자아가 왜 없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그저 자아가 없다는 선언이 있을 뿐이다.” (p.153)

 

현학적이고 고답적인 질문과 대답의 반복은 불교를 하나의 신비한 동양사상이나 현세의 복을 빌기 위한 기복신앙 정도로 한계 지어버리는 결정적인 요인이라 지적한다.

 

앞서 얘기한 성철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전 국민이 알고 있는 법문도 저자는 ‘그래서 뭐요?’ 라고 접근한다. 생각해 보니 저자의 지적도 옳은 듯하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 큰 스님이었던 성철스님이 한 말이라 신비화된 것뿐이라고 한다.

하긴 가끔 절에 가보면 스님들이 하는 기도나 염불 같은 것들을 알아들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대승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다. 깨달은 자, 뛰어난 자로 보는 데 만족하지 않고 신과 같은 존재로 부각하는 것이다.” (p.63)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인데 석가모니 부처님을 신격화하는 것에도 딴죽을 건다.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대승불교의 가장 큰 목적인데, 깨달음을 얻은 자에 불과한 석가모니 부처를 신으로 모시고 경외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유일신 사상을 가진 기독교와 이슬람은 물론 동양사상의 거두인 공자와 노자를 대하는 학자나 종교인 일반인들도 적절한 비판과 견제 없이 ‘무조건 좋은 것~!’, ‘비판할 수 없는 것~!’이라 여기고 숭상하는 현상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불교의 두 가지 목표는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다.” (p.217)

“대승불교는 개인의 수행도 중시하지만 중생구제의 자비를 더 중시한다.” (p.85)

 

대승불교는 중생구제의 자비를 더 중시함에도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의 적자라 자칭하면서도 중생의 구제는 물론 사회적 부정의에 대해서도 극도로 소극적이라 비판한다. 대승불교의 간판은 달고 있지만 소승불교의 모습인 개인적 수행과 깨달음,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가정의 복만을 비는 기복적 신앙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커다란 사회문제에는 눈을 감고 있다가 템플 스테이 예산을 삭감했다고 벌겋게 들고 일어나고 조계종 총무원장을 일개 경찰관이 홀대했다고 흥분할 뿐이다.” (p.237)

“선불교를 중심으로 한 한국 불교에는 사회정의를 위해 싸울 정신적 바탕이 부족해 보인다. 깨달음만 강조하다가 깨닫지도 못하고 중생구제는 아예 뒷전인 한국 불교에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해 보인다.” (p.239)

 

절에 들어가 살고 시주를 엄청나게 많이 한 그 어떤 불교 신자보다 한국 불교를 제대로 간파한 사람이다. 하지만 무작정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님은 이 책의 곳곳에서 풍겨나는 한국 불교에 대한 저자의 사랑과 애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좀 더 대중적이고 좀 더 베푸는 제대로 된 한국 불교의 모습을 찾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큰 뉴스였던 스님들의 도박과 주기적으로 계속되는 조계종 내 파벌싸움 들은 그나마 ‘기독교보다는 낫다.’ 라고 생각했던 일반인들에게 ‘불교도 스님들도 똑같구먼!’ 이라는 실망만 안겨 줄 뿐이었다.

지난 달 갔었던 대구 동화사에는 높이30m의 거대한 통일약사대불이 있었고 그 뒤로 국제관광선체험관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나오는 길에 공사연혁이 있어 잠시 들여다보니 통일약사대불과 선 체험관을 만드는데 200억 정도의 돈이 들었다고 했다.

 

그 날이 마침 주말이라 외국인들이 단체로 템플스테이를 하는 것인지 외국인도 굉장히 많았다.

좋은 절이고 팔공산이라는 좋은 산 속에 있어 꼭 교세확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포교와 홍보를 위해서 수백억의 돈을 들여 좋은 것을 만들고 템플스테이를 활성화 한다 변명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저자의 말처럼 중생구제는 뒷전으로 내던진 채 껍데기만 대승불교인 한국 불교에는 반드시 근본적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성직자들만이 향유하는 어려운 책이 아닌 일반 대중의 삶과 마음을 파고드는 가르침이 되도록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제 배만 채우는 욕심을 버리고 대승불교의 가장 큰 가르침인 중생구제에 초점을 맞추어 베푸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한국 불교가 변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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