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고르세요
켄트 그린필드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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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h와 Death의 중간에는 Choice가 있다]라는 격언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선택이 아닐까 싶다.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확신에 찬 선택을 하기도 하고 우물쭈물 대다 선택을 놓쳐버리기도 하고 내가 선택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지 못할 때도 있다. ‘선택’은 ‘삶 자체’라고 얘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발달심리학에서도 인지적 능력이 확립되지 않은 유아에게도 분명히 선호의 선택이 있다고 한다. 또 정상적인 인지적 능력이 결여된 알츠하이머를 앓는 노인에게서도 분명한 선호의 선택이 있을 것이다.

지난 추석에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 산소에 찾아갔는데 돌아가시기 전 유언으로 남기신 산소의 형태 그대로 만들어진 것을 보고 ‘할머니께서 하늘에서도 무척 좋아하실 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택은 삶 그 자체이다.

 

 

10월이 내게는 꽤나 힘든 달이었다. 초순부터 하순까지 줄곧 어려움이 쉴 새 없이 닥쳐왔다.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묵혀두고 있었던 일부터 당장 몇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할 시급한 일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하나를 해결하고 잠시 허리를 펴고 기지개를 켤라치면 또 다른 놈이 훌쩍 코앞에 다가왔다. 정신도 없고 몸도 지치고 마음까지 흐트러졌다. 다행히 거의 모든 일들이 해결되고 마무리되고 업무를 처리하고 나니 새로 태어난 기분까지 들었다.

몇 년을 주기로 이런 힘든 시기가 한 번씩 찾아오는 듯하다. 나를 너무 소중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조물주께서 더 열심히 가열차게 살라는 메시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나는 꽤 잔인한 조물주를 믿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너무 힘들었으니까.

 

11월에 넘어오면서 이 책 「마음대로 고르세요」를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지난 내 10월이 생각났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10월 한 달 동안 내게 한 선택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끙끙대며 일하고 고민하고 해결하고 몸부림치던 그 순간순간이 바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일의 향배가 결정되었다. 어떤 일이든 마지막의 선택이 결론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제가 더 설득력이 있다.

「The Myth of Choice」선택의 신화!

 

 

“이 책은 우리가 선택에 집착하고, 선택에 일관성 없는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꼬집고 있다.” (p.37)

 

앞서 말했듯이 선택은 우리의 삶 그 자체이다. 잠깐만 나의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면 내가 얼마나 많은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은 어떤 것이었는지(내가 정말 하고 싶은 선택이었는지, 별 생각 없이 한 선택이었는지, 내가 하기 싫은 선택이었는지) 그 선택의 결과가 오늘 내 하루를 어떻게 결정지어 왔는지, 한참동안 생각해 볼 거리를 만들 수 있다. 늘 마시고 있는 공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듯이 선택 또한 그렇다. 달콤한 새벽잠을 깨우는 이뇨감에 ‘일어날까 말까’를 이불 속에서 한참을 고민한 뒤 선택한다. 잠자리에 든 이불 속에서도 이런 저런 망상과 고민과 생각이 뭉쳐져 공허한 선택의 틈을 채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우리가 선택에 집착한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우리의 선택에는 일관성이 없다고도 말한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선택은 때로 ‘압도적’이다. 사람들은 선택의 가짓수에 ‘압도’당한 나머지 결국에는 제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할 가능설이 많고 결정하더라도 후회할 위험이 높다.” (p.50)

 

우리는 선택에 압도되어 있는가? 처음 보는 문장이었다. 처음 보는 개념이었다. 내가 선택에 압도되어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선택의 주체는 ‘나’이기 때문에 선택은 주체를 수반하는 객체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또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자의 말이 맞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집에서 짬뽕과 짜장면 사이를 한참 고민하다 하나를 주문해 놓고 속으로 생각한다. ‘아이~ 딴 거 시킬걸~’. 점심시간 메뉴결정은 임원에게 보고해야 하는 프리젠테이션만큼 고민 되고 위력적이다.

그러고 나서는 꼭 후회한다. 나는 선택의 주체인데 말이다. 객체처럼 인식하고 후회한다.

 

 

“사회에 만연한 문화적 영향력에도 우리가 휘둘린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동안의 믿음과 달리 우리가 그다지 자율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p.143)

 

아끼는 여자 후배가 내년 2월에 결혼을 한다. 5년 넘게 사귀어 온 남자와 결혼하는 데 결혼식 날짜를 잡고 양가에서 본격적으로 결혼 논의를 시작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나는 상대 남자도 잘 알고 있고 아내도 내 여자 후배를 잘 아는 사이어서 이런 저런 상담을 했다. 결혼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 둘이 생각하고 있던 결혼 과정이 양가 어른들에 의해 완전히 무시되고 결국 부모가 원하는 쪽으로 일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가만히 돌아보니 나도 그랬다. 하고 싶은 것은 하지 못하고 안 한다고 했던 것은 모조리 하게 되었다. 나의 선택도 중요하지만 내 부모의 선택 또한 중요했고 더 결정적인 것은 저자의 말대로 사회에 만연한 결혼에 대한 인식과 관념이 내 선택을 압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선택이 자율적이지 못하다는 저자의 말이 완전한 설득력을 구비하게 된다. 나는 나의 선택에 있어 분명한 주체라고 생각했는데 주체는커녕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는 비닐봉지 정도였던 것이다.

 

 

“애국심은 우리에게 너무 관례적인 것이어서, 때로는 비판적인 사고를 가로막는다……. 국가를 부르는 관습은 국민에게 자부심을 주입하고 국가를 찬양하는 효과가 있다.” (p.136)

 

사회에 만연한 영향력은 비단 가정에서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속한 사회와 국가에서 규정하고 관습이 되어버린 것들은 우리의 선택을 가로막는다. 어린 시절 늘 궁금했던 것은 야구장의 국민의례였다. 거의 매일 야구를 하는 데 만약 홈 3연전을 한다면 첫 번째 경기에만 하던지, 아니면 마지막 경기에만 하던지. 매 경기마다 국민의례를 하고 애국가를 부르는 것이 불편했다.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함양하기 위해서라면 당장 스포츠 경기 시작 전 국민의례는 없애야 한다. 적어도 내가 경기장에서 지켜 본 주위 사람들 대다수는 제대로 국민의례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무생물이지만 유기체다. 내가 그 국가에 속해 있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애국심을 강요받고 내가 국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선택에 부당한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 무작정 애국가 반주 틀어주고 불러라~! 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단지 애국가나 국민의례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지만 또 가만히 돌이켜보면 불편해야 할 불필요하고 도를 넘은 국가적 간섭이 많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부르카는 종교적인 상징이 아니라 복종의 상징이자 비하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국회는 이후 공공장소에서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다.” (p.112)

 

민주주의의 첨병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의 대통령과 국회에서도 저런 어이없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어떻게 부르카를 입는 선택을 한 사람에 대한 판단을 마음대로 할 수 있나!! 복종의 상징이자 비하의 상징이라는 결론은 도대체 누가 내린 것인가!! 사르코지와 프랑스 국회가 보기에 불편하고 복종과 비하의 상징으로 보이는 부르카를 입은 그 여인의 선택이 주체적인지 객체적인지 어떻게 국가가 판단할 수 있나!!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자기네 말을 믿지 않고 정부와 권력에 대해 싫은 소리하면 친북좌파!! 빨갱이!! 라면서 어이없는 가면을 덮어씌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우리의 선택은 이 책의 제목 「마음대로 고르세요」라는 신화에 빠져있다. 결코 마음대로 고르지 못하고 매번 후회하며 사회에 만연한 온갖 영향력(관습, 규정, 법, 공권력 등)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선택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때론 싫은 선택도 해야 하고 바보 같은 선택도 해야 한다. 매번 내가 원하는 선택만 할 수 없다. 내가 하는 선택이 가장 옳은 것이라는 신화에 빠지지 않도록 매번의 선택에 집중하고 면밀하게 따져야 한다. 그런데 사실 쉽지 않다. 그러기에는 해야 할 선택이 너무 많다. 새벽잠의 이뇨감과 직장에서의 점심메뉴 결정조차 갖은 애를 써서 해야 한다면 우리의 뇌가 견디지 못할 것이고 지독한 정신적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농후해 질 것이다.

 

 

“우리가 진정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건 우리의 능력이 아니다. 우리의 선택이다.” (앨버스 덤블도어, <‘헤리 포터와 비밀의 방’ 중에서>,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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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미래
스코트 A. 헌트 지음, 김문호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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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평화로운 곳인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TV를 24시간 쉬지 않고 본다면 그 사람은 분명 폭력적인 성향을 보일 것이 뻔하다. 하루 종일 쏟아지는 뉴스는 갈등, 폭력, 사건, 싸움이 전부다. 싸울 일이 얼마나 많고 다퉈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그리고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 것 같다. 예전에는 노년층에서나 일어나던 탈모현상이 20.30대는 물론 10대 학생들에게까지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과도한 스트레스. 깨어진 가정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단절된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많은 방송국에서 앞 다투어 부부간, 부모·자식 간 갈등을 소개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을 담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영화가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듯이 TV프로그램도 그렇다. 그런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런 가정이 있을까? 저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지만 등장하는 사람들이 연출된 사람들이 아닌 이상 현 시대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묻지 마 폭행, 살인이 횡행하고 세대 간 지역 간 갈등의 골을 깊어진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 살아간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분쟁과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평화’라는 개념은 ‘자유’가 답보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다. 자유롭지 않은 데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것은 종교적 현자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일 것이다.

물질문명은 첨단화 되었고 전 세계가 하나의 통로로 만나기도 하고 소통하기도 하는 이때 여전히 폭력과 압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기적과 같은 일이다.

사회를 지탱하는 구조적인 한계를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은 그냥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 책 「평화의 미래」는 스코트 A.헌트 라는 저널리스트에 의해 쓰여진 책이다. 아무리 구조적인 한계가 명백하고 견고하지만 나름대로 평화의 미래를 모색해 보고 이런 한계 속에서도 자신의 영역에서 평화를 실천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평화실천가들을 만난 르포이다. 어수선하고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세상이지만 공공의 선과 대의를 위해서 헌신하는 평화실천가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힘을 얻기도 한다.

 

“우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텔레비전을 통해서 끔찍한 사건들을 보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방방곡곡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절제와 친절과 선한 행동들이 실천되고 있다.” (p.13)

 

실제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직접 체험해 보지 못해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저자의 말대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실제적 행동들이 실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가슴속에, 누군가의 마음속에 감동의 파문을 일으키고 삶에의 의지를 북돋우는 계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책이나 TV를 통해서 알고 있었던 세계적인 평화실천가들을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은 점을 생각하면 꽤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버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

“기억하면서도 용서하는 것, 나는 그것이 진정한 용서라고 생각합니다.” (p.72)

 

버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만큼 힘든 삶의 궤적을 산 여인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버마의 힘없고 돈 없는, 그래서 하루 밥벌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민중들의 삶과 비교할 수 없지만 아버지로 인해 해외로 망명을 가고 제대로 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가택연금과 갖은 수모를 당할 것을 알면서도 버마로 되돌아 온 그녀의 삶은 파란만장 했다. 정치적 정적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탄압을 여전히 일삼고 있는 버마 정부는 백인 남성인 미국 저널리스트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샅샅이 감시하고 지켜봤다고 한다. 아버지의 피와 땀이 그대로 녹아 있는 고국에 돌아왔지만 자신의 집에 갇혀서 오랜 시간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웅 산 수치 여사를 인터뷰 한다. 절제되고 품위 있고 기품 있는 그녀의 모습과 미소와 평화와 자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저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왜 가택에 연금되어 있지만 버마 민중과 전 세계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가족에 대해 일삼은 폭력과 공격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면서 용서해야 함을 피력한다.

누구나 기억하기 싫은 경험이 있다. 애써 잊어버리든지 의도치 않게 잊혀졌다든지 하는 것은 진정한 용서가 아니라고 한다. 여전히 자신을 공격하고 자신을 못 살게 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그래서 그 기억으로 오늘도 매 순간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용서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나에게 적용해 보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내가 받은 수모와 피해, 상처가 여전한데 그것을 그대로 기억하면서 용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달라이 라마

“우리가 상호의존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겁니다.” (p.129)

 

달라이 라마 만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 만큼 중국이 싫어하는 인물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 만큼 제자가 많은 인물은 단연코 없을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조국 티베트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종교 지도자이며 정치가이기도 하다. 중국에 의해서 나라를 빼앗기고 그들에게는 전부와 다름없는 종교까지 탄압받게 되었다. 티베트 고원 지대에 있는 엄청난 양의 지하자원 확보가 주된 이유였다. 언어, 종교, 인종적으로 완전히 다른 나라임에도 무력으로 굴복시켜 속국으로 삼아버린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망명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중국의 티베트에 대한 잘못된 정책과 무수한 탄압과 폭력을 전 세계에 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달라이 라마는 그가 가는 곳마다 티베트의 현재를 이야기 했다. 하지만 결코 보복이나 국제적 조치를 주문한 것이 아니라 평화적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으로 대변되던 서양사상의 한계가 극에 달해 다른 어떤 곳으로 정신적 궁핍을 해소하고자 했던 그들의 필요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달라이 라마는 비록 조국을 빼앗기고 탄압으로 인해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신세였지만 누구보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평화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감동을 주는 평화 실천가가 되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실천가들

“망각은 대안이 되지 못한다. 화해를 위해서는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의 양보가 필요할 것이다.” (p.255)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 중 하나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다. 이들의 갈등은 너무나도 많이 알려져 있다. 한 쪽이 공격하면 보복하고 그 보복이 또 다른 보복을 낳는 일을 수십 년째 반복해 오고 있다. 극렬한 보복과 복수를 결의하는 사람과 단체들도 있지만 이름 없이 화약고 안에서 평화를 위해 안간힘을 쏟는 평화실천가들이 있다. ‘니가 우리 편을 죽였으니 나도 너희 편을 죽인다.’라는 마음으로는 결코 평화를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어쨌든 현재를 살아가는 서로가 마음의 벽을 허물고 과거의 단절을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단순히 망각으로 인해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양보해서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베트남의 희망의 투사 ‘틱 캉 도’ 스님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p.292)

“내 정신은 아무도 가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요.” (p.300)

 

베트남은 미국과의 전쟁 이후 급격히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유일하게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자신감은 그들의 정치체제까지도 공고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굳어진 체제는 반드시 균열을 낳는 법. 공산주의자들은 어김없이 잔인한 숙청과 탄압을 자행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아침에는 국군, 저녁에는 인민군 깃발을 들었다는 얘기처럼 베트남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전쟁 후 자신들과 반대편에 섰거나 잠시라도 발을 담갔던 모든 사람들은 없애버렸다. 종교·교육은 말살 할 대상에 불과했다. 수많은 학교와 지식인들에 의해 시위가 일어나고 부패한 공산정권을 갈아 엎기 위해 힘썼다. 베트남 불교의 가장 큰 스승이기도 한 틱 캉 도 스님은 그 속에서도 평화의 메시지를 설파했다. 거의 모든 베트남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틱 캉 도 스님은 정부의 입장에서는 가장 악질적인 반동분자일 뿐이었다. 그래서 구속해 수년을 독방에 가두었고 석방되고 난 후에도 집에서 제대로 나올 수조차 없게끔 만들어 버렸다.

베트남 하면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경제성장이 가장 잘 이루어지고 여러 가지 사정이 가장 좋은 나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저자도 틱 캉 도 스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전히 탄압적이고 억압적인 정권으로 인해 베트남 국민들의 자유가 엄청나게 침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앙아메리카의 평화의 대사 오스카 아리아스

“평화는 국가주의적인 태도나 군비경쟁으로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필요들을 보살핌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p.369)

“각국의 예산안에서 군사비가 우선으로 되어있는 비뚤어진 순서를 변경시키는 것이 우리의 도덕적인 지상과제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p.378)

 

중앙아메리카의 평화의 대사. 오스카 아리아스는 코스타리카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비호와 협박, 회유 아래 미국의 필요와 이익에 따라 움직인 중·남미 여러 국가들의 암담한 현실에 처음으로 정면 대결한 사람이다. 당시만 해도 중·남미는 개발도상국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빈국이었고 미국의 원조가 절실하게 필요하던 시기였다.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고 미국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리아스는 다르게 생각했다. 오히려 바로 옆에 있는 나라들과 손을 잡고 대항하면 미국과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미국 정부와 다국적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중·남미 국가 정부 하나쯤은 간단하게 쿠데타로 엎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에 딴지를 건다는 것은 목숨을 내 놓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리아스는 그것을 해냈다. 쭈뼛하며 망설이던 주변 국가들을 설득해 한 목소릴 낸 것이다. 근래 남미에게 여전히 불고 있는 우고 차베스, 룰라 대통령의 인기와 바람은 이미 코스타리카의 아리아스에 의해 시작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 대통령 재임 시절 코스타리가 정규군을 해산시킨 것은 놀라웠다. 세상에 어떤 대통령이 군대를 해산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저자가 아리아스를 인터뷰 하며 그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함께 거리로 나간 적이 있는데 그들의 전직 대통령을 보고 환호하고 반가워하며 사진을 찍는 코스타리카 국민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내용이 있다.

평화를 위해 헌신한 정치인은 국민들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캄보디아의 간디 마하 고사난다

“미국이 캄보디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일에서 한 몫을 했다는 잘못과 그 학살을 막지 못한 잘못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p.385)

“닉슨과 키신저가 시작한 것을 폴 포트가 완성했다.” (p.403)

“‘미움은 미움으로 평정될 수 없다. 사랑을 통해서만 미움은 평정될 수 있다.’ 그것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나는 또 사람들에게 마음의 전쟁이 총으로 하는 전쟁보다 끝내려면 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법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p.427)

 

캄보디아의 간디로 불리는 ‘마하 고사난다’ 스님은 킬링필드의 상처가 아직 채 치유되지 않은 캄보디아에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킬링필드 이후 집권자가 바뀌고 전 세계적인 관심으로 상황은 어느 정도 호전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지뢰로 인한 장애율이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캄보디아에는 수십 년의 시간만으로 치유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가 상존하고 있다. 결코 그들이 바라지 않았고 원하지 않았던 잔혹하고 무서운 일이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미국의 동조와 방관에 의해 저질러졌고 극악한 폴 포트에 의해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정말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책에 소개된 세계적인 평화실천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이해되지 않고 해소되지 않는 울분이 캄보디아의 ‘마하 고사난다’ 스님 이야기를 들으며 폭발했다. 총으로 하는 전쟁은 이미 끝났지만 마음의 전쟁은 진행 중이고 그것의 방법이 보복이나 복수가 아닌 사랑이라니. 쉽게 이해되지 않는 메시지가 머리를 맴돌았다.

폴 포트에 의한 학살이 한 창 진행 중이던 한 수용소에 스님이 갇히게 되었을 때 노란 법복을 입은 스님 곁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미 수 년 간 끔찍한 지옥을 경험하고 바로 옆에서 가족과 친구가 죽어가는 것을 본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 마음속에 스님의 노란색 법복은 인간성의 회복이었다. 스님의 입에서 전해지는 메시지와 나누어 준 경전을 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지옥과 같은 현실에서도 아주 작은 평화의 메시지를 붙잡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성의 근본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세계적인 평화실천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고역이었다. 왜 여전히 세상에는 악이 가득하고 해결되지 않은 상처가 많은 지 이해되지 않았다. 새로운 가르침과 평화의 메시지 보다 여전한 현실에 치가 떨렸다.

 

“우리가 결국 해야만 하는 것은 지속적인 평화의 약속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일이다.” (p.533)

“이 책에 등장하는 위대한 평화실천가들이 이룩해놓은 것을 이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소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 (p.544)

 

실제로 책에 등장하는 평화실천가들을 여러 가지 위험을 무릅쓰고 만난 저자에게는 더욱 이해되지 않는 현실일 것이다. 그래서 책의 말미에도 뭐 커다란 제안을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 현실의 무저갱에서도 여전히 평화의 꽃을 피우고 있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많은 상황 속에서 갈등의 칼을 세우기보다 어떻게 해서든지 평화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깨닫는다.

 

실제적인 행동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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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미래인가 - 위기 이후 세계를 위한 토플러의 제언
앨빈 토플러 지음, 김원호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대학 때 앨빈 토플러의 「미래쇼크」를 읽었다. 「제3의물결」,「권력이동」보다 더 미래지향적이고 신선한 내용이 많았다. 학회에서 이 책을 가지고 토론을 할 정도로 새로웠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이 책이 1970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이었다. 30년이나 지난 후 대학생이던 우리가 읽으면서 얼마나 고개를 끄덕이고 동의를 했는지 모르는데 30년 후를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정확하게 예측한 그의 능력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2000년 밀레니엄이 오기 전 세상의 멸망을 예측했던 노스트라다무스와 그 외 수많은 사이비 미래예측가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역사의 수많은 지식인 내지는 철학자들의 가장 큰 숙원이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었을 텐데 정확한 예측보다는 이상한 예측이 많았다. 당장 1시간 뒤 내게 일어날 일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앨빈 토플러가 예측한 미래가 100% 정확하게 현실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그가 여러 책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자신은 미래예측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미래예측가·미래주의자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지만 자신은 사회비평가에 불과하다고 얘기한다. 현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인식하며 진단하면 다가 올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 「누구를 위한 미래인가」의 2부에서도 이러한 언급은 여러 번 반복된다.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권력을 한꺼번에 가지거나 그것에 편승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내일 일어날 일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사람을 가진 자는 실수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미래는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이고 제언일 뿐이다.

 

이 책도 1983년에 출간된 책으로 ‘사우스엔드프레스’라는 작은 언론사가 제안한 인터뷰를 앨빈 토플러가 수용하면서 이루어진 인터뷰의 내용이다. 당시만 해도 세계의 유수한 언론들이 앨빈 토플러를 인터뷰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을 때인데 ‘사우스엔드프레스’의 조금은 대담한 듯한 인터뷰 내용과 흔하디흔한 질문의 반복이 아닌 신선한 질문이 있는 인터뷰 방식이 앨빈 토플러의 마음을 움직였으리라 생각된다.

 

이 인터뷰가 진행되던 당시에는 이미 출간된 토플러의 유명한 책들이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시기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읽고 각국의 정치인·언론인·지식인들을 만나던 중이었다. 10년 전 책을 통해 예측한 미래들이 어느 정도 현실로 드러나던 때였다. 아마 기고만장의 정도를 수치화 할 수 있었다면 최고치를 기록하고도 남았을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인터뷰 내용에서도 이런 토플러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정확하게 어떤 부분이라고 짚어낼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내용에서 받는 느낌이 그렇다.

 

“인터뷰의 흐름이 허락한다면 좌익적 관점에서 제시된 다소 민감한 질문들에 대한 그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p.11)

 

인터뷰를 진행한 ‘사우스엔드프레스’의 입장대로 인터뷰 곳곳에는 좀 민감한 사안에 대한 질문이 많았지만 꾸물거리거나 이상한 답변을 한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단순히 책의 출간 과정에서 편집되고 각색되었다고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자신감 넘치고 확신에 찬 지식인의 모습이 가득하다.

토플러는 이 책에서 분명히 말하지만 좌와우의 이념적 등식에 대한 불필요함을 역설한다. 당시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고 전 세계 곳곳에서 이념전쟁이라 불리는 소요가 많았던 시기였다. 한국만 해도 군부독재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고 길거리에서 노상방뇨만 해도 삼청교육대로 끌려가던 시기였다. 이념적 등식이 세계를 구분하고 인식을 결정하던 때였다. 그런데 토플러는 이미 그것은 과거의 것이라고 단정했다. 인터뷰 질문 자체가 ‘당신은 사회주의를 배신하고 자본주의에 편승한 지식인이 아닌가?’라는 인식을 기본하고 있는 듯 한 느낌을 주는 질문이 많았다. 하지만 토플러는 분명하게 여러 번 얘기한다. 자신이 젊은 시절에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분명했지만 미래에 대한 예측은커녕 현실에 대한 적응조차 하지 못하는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보면서 한계를 절실하게 느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에 편승한 기회주의자가 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매일의 현실과 심각할 정도로 상충되는 미래 예견을 내놓으면서부터입니다. (p.316)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1930년대에 겪었던 대공황보다 더욱 심각한 공황을 겪게 될 것이고 이것은 자본주의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한다. 하지만 종전 후 1950∼60년대 미국의 경제는 역사상 가장 큰 호황을 누렸고 미국의 노동자는 머리띠를 하고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구호아래 모인 것이 아니라 큰 집에 큰 자동차에 멋진 옷으로 치장된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이러한 잘못된 예측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계급갈등에 주력하고 교조적 맹목에 붙잡혀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이것이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결별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고 했다.

 

한국의 광역시장 중에서도 어떤 분은 누구보다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한 번 전향하고 나서는 완전히 그쪽의 파수꾼이 되어서 누구보다 정신 못차리고 있는 분이 계시는데 사실 토플러는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념투쟁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은 되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에 기생한 지식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고 싶은 가장 큰 것은 제2의 물결, 제3의 물결이 바로 내 코앞에까지 밀어 닥치고 있는데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구시대의 대량생산산업에서 중요한 것이 근육이었다면, 첨단 탈대량화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와 상상력입니다.” (p.66)

“학교로 대표되는 대량교육 시스템을 깨뜨려야 합니다.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개인에 특화되고, 분권화된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계적인 암기보다는 창의성을 살려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p.107)

“제2의 물결이 ‘프롤레타리아’를 만들어냈다면, 제3의 물결은 ‘코그니타리아트(Cognitariat)'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겠습니다. 육체노동이 아니라 지식과 정신노동에 근간을 두는 계급을 의미합니다.” (p.157)

 

첨단 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와 상상력이 되었다. 학교의 대량교육 시스템은 거의 무너졌다.(물론,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구태의연하다) 육체노동이 아니라 지식과 정신노동에 근간을 두는 노동계급이 일반화되었다.

이미 30년 전에 말한 것들이 대부분 현실화된 것은 토플러의 미래예측이 그만큼 정확했다는 반증인데 이것은 그의 말대로 당시 사회를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분석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쇼크]는 워싱턴에서의 경험이 동기가 되었습니다.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저는 거대한 사회 변화와 기술 변화가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미국 정부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있었죠. 정부는 미래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었고, 가장 기본적인 변화조차 예측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정치인들은 그저 다가오는 선거 이후의 상황에만 관심이 있는 듯 보였습니다.” (p.274)

 

미래에 대해 가장 민감한 사람들은 정치인들일 것이다. 자신의 당선과 낙선에 대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면 최고의 정치인이 될 수 있다. 일단 ‘지르고 보자’식의 선거용 이벤트 선전문구, 정책홍보를 더욱 강화하거나 상대에 대한 네거티브에 총력을 기울일 수 있다. 왜? 결과를 알 수 있으니까. 하지만 토플러는 그의 경험 상 그런 정치인은 반드시 실패한다고 말한다. 단지 정치인뿐만 아니라 거시적 안목으로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단지 인기를 끌거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이벤트용으로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유권자의 가장 기본적인 변화를 인지하고 인식해야 한다. 권력기관이 제대로 된 수요 측정이나 미래 예측을 하지 못하니까 토플러의 책 같은 것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던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미래’를 먼저 점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결정 할 요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주 민감하고 센스 있게 접근해야 한다. 대중적 요구와 필요를 충분히 파악해야 하고 ‘미래’를 결정지을 힘의 원천을 찾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단지 예측에 불과하고 상상에 불과한 일도 많겠지만 지혜를 담은 제언이 많아질 때 우리에게 닥칠 미래는 더욱 희망에 차 있을 것이다. 갑자기 집안에 밀어닥쳐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홍수가 아니라 미리 예상하고 대비하는 홍수대책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가장 정확한 미래예측을 하고 있는 앨빈 토플러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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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다이어트 8주 플랜 - 슈퍼모델 김사라의 완벽 몸매 따라잡기
김사라 지음 / 리스컴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군 제대 후 직장 생활을 바로 시작하면서 늘어나는 체중과 불어나는 뱃살을 감당할 수 없었다. 출근 시간 전 회사 근처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해보기도 하고 퇴근 후에 해보기도 했는데 큰 효과가 없었다. 비싼 피트니스 센터 이용료는 그대로 날리고 몸은 더 피곤하고 뱃살은 빠질 기미가 없고. 결혼식을 앞두고 날렵한 턱선과 잘록한 배라인을 되살리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하지 못했다. 그래서 웨딩촬영한 사진과 결혼식 당일 사진을 보면 턱선이 실종되고 숨통을 조여 오는 턱시도 라인에 숨가빠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다.

결혼생활 1년 6개월이 지난 올 6월 무렵부터 내 건강과 2세 계획을 위해 다이어트 겸 운동을 지속해 오고 있다. 결혼 전 무참히 실패했던 다이어트 경험에서 한 가지 중요하게 깨달았던 것은 ‘지속성’이다. 일주일에 한 번 피트니스 센터 가서 2-3시간 죽어라 운동하는 것보다 30분이라도 일주일에 4-5회 하는 것이 훨씬 다이어트와 건강에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퇴근 후 1시간 걷기를 처음 시작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걷기 좋은 코스가 6km정도 된다. 왕복 8차선 대로에 있는 인도에서 걷는 것인데 차량 통행량이 많지 않고 자전거 도로와도 따로 구분되어 있어 인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걷는 코스이다. 괜한 돈 쓰지 말고 일단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걷는 것부터 시작하자 다짐하고 발에 맞는 운동화와 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 트레이닝복만 구입하고 바로 시작했다.

이번 여름. 숨 막힐 듯 한 대구의 열대야 속에서도 꾸준하게 했다. 물론, 매주 4-5회 이상씩 꼭 운동을 하지는 못했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했고 8월 말쯤 되자 운동을 시작하기 전 체중보다 8kg이 줄어 있었다. 턱선은 이미 되살아났고 두툼하던 중부지방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다이어트는 단거리달리기가 아니에요. 마라톤이라고 할 수 있지요. 습관처럼 몸에 배는 게 중요하니까요.” (p.3)

“그런데 왜 꼭 걷기 다이어트일까. 걷기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좋고, 도중에 포기하거나 실패할 확률이 적다.” (p.9)

 

‘습관처럼 몸에 밴다.’라는 말의 의미를 완전히 알 수 있었다. 아무리 피곤하고 아무리 날씨가 좋지 않아도 최소한 30분 정도는 꼭 걸으려고 노력했다.

 

이 책에서도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처음부터 무리하게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의 심신을 넘어서는 과도한 운동을 하게 되면 으레 포기는 빨라지기 마련이다. 요즘 다이어트 관련 정보가 얼마나 많나. 조금만 인터넷을 찾아보면 별별 다이어트 종류가 다 나오고 별별 보조식품이 다 나오고 별별 프로그램이 다 나온다. 늘씬하고 멋있는 남녀모델들이 나와서 ‘이렇게 이렇게 하면 나와 같은 몸매가 될 수 있다.’라고 하면 따라하고 싶고 쉽게 될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식단을 완전히 바꿔보기도 하고 갑자기 운동에 불이 붙어 허겁지겁 바벨부터 들거나 우사인 볼트처럼 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책에서도 지적하고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그렇게 무작정 시작한 다이어트와 운동은 필패한다. ‘이렇게 해가지고 살 빠지겠어?? 운동 되겠어??’하는 정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가 처음 걷기를 시작할 때는 전혀 뛰지 않았다. 평소 보폭과 평소 걸음속도로만 지속했다. 여기서는 서술어 ‘지속했다.’가 중요하다. 어느 정도 내 몸에 걷기가 익숙해 진 후 책에서의 표현은 파워워크지만 내 나름대로는 빨리 걷기를 추가하고 가볍게 뛰기를 추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 내가 걷는 코스에 구민운동장이 있는데 그곳에는 웬만한 피트니스 센터 수준의 운동기구가 마련되어 있어 적절한 근력운동도 병행할 수 있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조금씩 드러나는 턱선과 조금씩 들어가는 뱃살을 확인할 때마다 소소한 기쁨을 말로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점점 건강해 지는 기분을 몸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 좋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식이요법과 잘 병행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아~ 이건 정말 쉽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식이요법과 운동까지 함께 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현실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식이요법을 했다. 야식은 절대로 먹지 않았고 아침을 든든히 먹었다. 되도록 짜고 매운 음식은 피하고 회식 자리에서도 절대로 아쉬워하지 않는 최면을 걸기도 했다.

책에서는 [정체기와 유지기에 실패 없이 살아남기]라는 섹션을 따로 만들어 여러 가지 제안을 하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공감이 갔던 것은 “배가 부를 때까지 먹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크하하하. 나는 식탐이 많은 것은 아닌데 포만감을 느끼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뭘 먹으면 좀 거하게 먹고 배 두드리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배가 부를 때까지 먹지 않는다. 라니!!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좋은 방법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배부름을 느낄 때까지 음식을 먹는다. 정도에 따라서는 더 먹는 사람도 있고 그만 먹는 사람도 있지만 대동소이하다. 나도 그렇고. 근데 운동을 시작하면서 나는 이미 그걸 실천하고 있었다. 아침식사를 할 때 평소 먹는 밥의 양보다 적게 먹었다. 한 숟가락 더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참았다.

 

“살찌는 식습관 뿌리 뽑기. 피해할 음식 중 첫 번째는 라면 - 짜고 기름지고 영양 면에서도 좋지 않다.” (p.97)

“고칼로기 음식을 먹을 때는... 치킨은 껍질을 벗기고, 고기는 오로지 고기만” (p.109)

 

운동과 음식 조절은 따로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운동해도 먹을 것 마음대로 먹어버리면 운동의 효과는 나타날래야 나타날 수 없을 것이다. 산악회 아저씨들이 힘든 산행을 마치고 식당에서 부어라 마셔라 하는 것, 내가 운동할 때도 운동장에서 퇴근 후 유니폼을 갖춰 입고 축구를 하는 아저씨들이 있는데 경기 중에 골대 뒤에서 큰 드럼통으로 만든 불판에다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는 것들로는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실 나의 다이어트와 운동이 어느 정도 좋은 결과를 낳은 것은 전적으로 아내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꼭 피해야 할 음식에 ‘라면’이 있는데, 나는 결혼 후부터는 책에서 제안한 것처럼 이미 라면을 그렇게 먹고 있었다. 라면 스프는 반만 넣고 대신 다신물에 마늘을 많이 넣고 끓인 라면을 먹었었다. 덜 짜고 덜 기름지면서도 몸에 좋은 음식이 들어 간 라면을 먹었다.

 

아직 치킨은 껍질도 먹고 고기도 기름이 붙어있는 것을 더 좋아하지만 날씨가 추워지고 일주일에 2-3회도 제대로 운동하지 못하는 지금도 체중이 다시 불어나지 않은 것을 보면 꾸준한 운동과 적절한 식이요법, 음식 조절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닫게 된다.

처음부터 과도한 운동 계획을 세우고 철저한 식이요법 식단과 음식조절 계획을 세웠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몸에 맞게 운동을 하면서도 처음부터 높은 기준을 세우지 않고 차근차근히 시작하고 식이요법과 음식조절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게 하면서 조금씩 강도를 더했을 때 꾸준함과 지속성에서 오는 몸에 밴 습관은 잘 사라지지 않았다. 책에서도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꾸준함과 지속성.

 

날씨가 더 추워지고 겨울이 본격화되면 마음도 쉽게 풀려 버린다. 외투를 껴입게 되니 몸의 라인을 감출 수 있게 되고 밤이 길어지니 먹을거리 생각이 많이 난다. 정말 조심해야 할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나도 그 전과 같이 일주일 4-5회까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하게 운동을 하려고 한다. 조금만 방심하면 금세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몸이니 말이다.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음식이 너무나도 많지만 조절하면서, 때론 맛있게 먹으면서.

 

걷기 다이어트 8주 플랜은 꾸준함과 지속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 책대로 한다고 해서 분명히 체중이 감량하고 원하는 건강 수준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닐 것이다. 책의 처음에 말한 것처럼 내 몸에 습관처럼 배도록, 몸이 기억하도록 만드는 것이 8주 정도라고 보는 것 같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12주, 3개월 정도는 꾸준히 해야 어떤 상황에서도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는 습관이 되었던 것 같다. 말이 쉽지. 8주, 12주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몸이 변하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할 때의 그 쾌감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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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폐허를 응시하라 -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사회적 탐사
레베카 솔닛 지음, 정해영 옮김 / 펜타그램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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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1호선 중앙로역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나는 영천 3사관학교에서 후보생 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훈련 중이던 우리를 갑작스레 집합시켜 대구 지하철 참사에 대한 소식을 전해줬고 대구에 살고 있는 후보생들에게 집이나 지인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도록 시켰었다.

지금의 아내는 그때 사고가 난 중앙로역 근처 지상에 위치한 패밀리레스토랑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전화를 했더니 시커먼 연기가 시내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고 사이렌 소리, 고함 소리로 아비규환이라 했다.

 

사고가 사고였던 만큼 다음 날도 훈련과 교육 중간 중간에 전화를 할 수 있도록 했고 TV를 통해 본 참사 현장은 정말 참혹했다. 어이없는 사람 하나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지하철 공사는 화재에 취약한 내구재를 쓰는 바람에 화재를 키웠고 제대로 된 대피대책 조차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나와 직접 연관된 지인들에게 피해는 없었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내가 아는 사람 몇몇의 가족이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탈출 해 목숨을 건진 사람도 알고 있다.(그는 아직까지 정기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구시와 국가는 부랴부랴 덮어버리려 했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레 군 병력을 동원해 현장을 청소해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해당 사항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대구시장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고 시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좋은 자리를 역임했다.

거의 200명에 가까운 사람이 사망한 재난이자 참사였다. 가까스로 생존한 100명이 넘는 사람들은 9년이 지난 오늘도 고통 받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사건이었다.

대구 사람들은 한 번씩 그때의 참사를 얘기할 때마다 대구시를 욕하고 지하철 공사를 욕하고 정부를 욕한다.

 

제대로 한 것이 하나도 없다.!!!!!” 라고.

 

나중에 아내로부터 당시 상황을 들었다. 사고가 난 저녁부터 아내가 일하던 패밀리레스토랑은 영업을 중단하고 경미한 부상자들 및 구조대원·경찰·관계자, 유가족에게 무료로 음식과 음료를 제공하고 쉴만한 자리를 마련해 줬다는 것이다. 기관이나 행정당국에서 요청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판단을 내렸다고 했다. 사고가 났던 지역은 대구 시내 한복판이고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어서 식당이나 카페,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얼마나 많은 식당이 그런 자체 판단으로 구조 작업을 도왔는지 알수는 없지만 볶음밥을 만들어 소방관들에게 전해줄 때 다른 곳에서도 그런 도움을 주는 것을 많이 봤다고 했다. 결국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 것이다.

 

“도움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읽으며 계속 대구지하철 참사와 아내가 겪었던 경험이 생각났다. 길지만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의 도움 없이 가족과 이웃을 구조하고, 서로 먹을 것과 잠자리를 해결해주고, 구조대와 청소대 등을 편성하는 일을 무난하게 해낸 시민들은 비상사태가 정리된 뒤에도 권력과, 연대, 가능성에 대한 수준 높은 의식을 잃지 않았다. 이 지진은 멕시코 사람들의 시민사회(civil society)라고 부르는 것을 탄생시켰다.” (p.218)

 

책에서는 멕시코 대지진과 카트리나 참사, 9.11참사 등이 소개된다. 하나같이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참사였다. 시간과 공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 참사의 원인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과 참사 가운데서도, 그 폐허를 응시할 때 그 속에서 꽃피워지는 기적과 같은 일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통되는 것이다.

 

“명령도 중앙집중식 조직도 없었지만, 사람들은 지역사회와 거리에서 그 순간에 필요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p.15)

 

평소 나를 지켜주고 우리를 지켜준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사회구조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더디고 관료적이고 수동적이었다는 것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 때는 거대한 돔구장에 피해자들을 몰아넣어 놓고 좀비 퇴치하듯이 절대로 다리를 건너 이곳으로 건너오지 못하도록 총부리를 겨누기까지 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행정조직과 사회, 국가는 가장 빠르고 힘이 되는 도움은커녕 외면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마무리해 덮어버리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재난이 닥치면 우리가 평소와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고 두려워하며, 무력하거나 야만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한다. 또는 그런 모습이 사회의 상부구조가 무너졌을 때 드러나는 우리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한다.” (p.112)

“위기가 지속되는 동안, 사람들은 서로를 사랑했다.” (p.97)

 

하지만 사람들은 그 폐허 속에서도 서로를 응시했다.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어떤 참사나 재난이 일어났을 때 TV 화면을 통해 그 장소를 보는 거와 실제 그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TV에서는 자극적인 장면, 피해자가 우는 장면, 폭도들이 난동을 치는 장면들이 위주다. 하지만 실제 참사와 재난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다른 실제를 전한다고 소개한다.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것은 거리에서의 경험과 사뭇 달랐어요. 거리에서 나는 사람들과 연결되었다는 걸 느꼈고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p.294)

“사회학자들이 표현하는 것처럼, 사실 할리우드 영화는 실제 재난에 반대되는 사례다.” (p.195)

 

TV와 행정당국은 재난이 닥치면 대중은 공황과 광란에 빠져 우르르 몰려다니고 사람들은 서로를 짓밟고 동료들을 걱정하는 마음을 잃어버린다고 불안을 가중시키고는 한다.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이며 비사회적인 행위와 상황이 일어날 것을 경고한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책의 내용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두고 아직도 많은 대구 사람들이 당시 시장을 욕하는 것은 그때 시장이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 당국과 국가에서 내린 조치가 타당하지 않고 진정 시민과 국민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큰 참사와 재난은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너무 고통스러운 비극이기 때문이다. 원인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무고한 사람들이 죽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반복될 수 있는 것이 참사와 재난이다. 언제 백화점이 무너질지 다리가 끊어질지 지하철에서 불이 날지 지진이 일어날지 쓰나미가 덮칠지 알 수 없다. 이상 기후와 혹독해진 자연의 역습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고 강력해 지고 있다. 언제든 사람의 잘못으로 인한 재해와 자연의 재해가 일어날 수 있다.

 

예측하고 대비한다고 해서 완전히 막을 수 없다.

 

지난 번 일본에 닥친 쓰나미와 원전사태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집을 떠나 생활해야 했다. 하지만 생필품을 사기 위해 끝을 알 수 없는 줄을 늘어선 일본인들의 집단의식과 공공선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어떤 이들은 그것조차 ‘무섭다, 역시 일본 놈들이다, 저게 제 정신이냐’ 흠잡으려 애쓰고는 했다. 참 불쌍한 인생들이다. 만약 한국의 해운대에 영화처럼 그런 쓰나미가 몰아닥치고 수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 일본인들이 보여 준 경악스러운 집단의식과 공공선에 대한 행동을 보여줄 수 있을까?

 

우리는 응시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단순히 대 참사를 대비한 훈련이 아니라 평소에도 주변을 좀 둘러보고 관심을 기울이는 연습 말이다. 대 참사와 재난에서만 뜨거운 인간애와 사랑을 공유하고 교환하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지 않나?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이지만 내 옆에 앉아 일하는 직장 동료, 옆집에 사는 이웃, 같은 출·퇴근 시간 신호대기 하며 종종 보는 그와 그녀들. 아니, 내 가족들에게 먼저!! 응시하는 훈련을 하자. 그냥 지나쳐 버리고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것이 아니라 응시하자. ‘눈길을 모아 한곳을 똑바로 봄’ 이라는 응시의 사전적 의미를 제대로 인식했으면 좋겠다.

 

“업타운의 부유한 백인들과 알제 포인트의 블루칼라 백인들로 이루어진, 중무장한 백인 집단들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나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실이 믿음에 부합하지 않으면, 명백한 살인도 대체로 그냥 간과될 수 있다.” (p.388)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피해자들은 당국의 차별과 무관심, 어이없는 조치에 2차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극심한 이기주의로 똘똘 뭉쳐진 사람들의 총에 죽는 3차 피해까지 입게 되었다. 마치 사냥하듯이 자기 재산과 집을 지키려 흑인들에게 총을 쐈다고 한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행위가 실제로 일어났다. TV나 다른 책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내용이다.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응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 없고 게으르고 무식한 흑인들은 저 위험한 저지대에 몰려 살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돈 있고 부지런하고 유식해서 업타운에 살며 호의호식했다. 같은 공간에 살지만 다른 세계를 살았던 것이다. 참사 속에서도 그들에게 응시하지 못하고 자기들 것에만 응시했다. 귀찮은 좀비에 불과했던 것이다.

참사 자체도 비극인데 2차, 3차 비극은 더욱 서글프다.

 

 

눈길을 모아 한곳을 똑바로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잠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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