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미래인가 - 위기 이후 세계를 위한 토플러의 제언
앨빈 토플러 지음, 김원호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대학 때 앨빈 토플러의 「미래쇼크」를 읽었다. 「제3의물결」,「권력이동」보다 더 미래지향적이고 신선한 내용이 많았다. 학회에서 이 책을 가지고 토론을 할 정도로 새로웠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이 책이 1970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이었다. 30년이나 지난 후 대학생이던 우리가 읽으면서 얼마나 고개를 끄덕이고 동의를 했는지 모르는데 30년 후를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정확하게 예측한 그의 능력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2000년 밀레니엄이 오기 전 세상의 멸망을 예측했던 노스트라다무스와 그 외 수많은 사이비 미래예측가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역사의 수많은 지식인 내지는 철학자들의 가장 큰 숙원이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었을 텐데 정확한 예측보다는 이상한 예측이 많았다. 당장 1시간 뒤 내게 일어날 일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앨빈 토플러가 예측한 미래가 100% 정확하게 현실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그가 여러 책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자신은 미래예측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미래예측가·미래주의자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지만 자신은 사회비평가에 불과하다고 얘기한다. 현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인식하며 진단하면 다가 올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 「누구를 위한 미래인가」의 2부에서도 이러한 언급은 여러 번 반복된다.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권력을 한꺼번에 가지거나 그것에 편승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내일 일어날 일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사람을 가진 자는 실수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미래는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이고 제언일 뿐이다.

 

이 책도 1983년에 출간된 책으로 ‘사우스엔드프레스’라는 작은 언론사가 제안한 인터뷰를 앨빈 토플러가 수용하면서 이루어진 인터뷰의 내용이다. 당시만 해도 세계의 유수한 언론들이 앨빈 토플러를 인터뷰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을 때인데 ‘사우스엔드프레스’의 조금은 대담한 듯한 인터뷰 내용과 흔하디흔한 질문의 반복이 아닌 신선한 질문이 있는 인터뷰 방식이 앨빈 토플러의 마음을 움직였으리라 생각된다.

 

이 인터뷰가 진행되던 당시에는 이미 출간된 토플러의 유명한 책들이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시기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읽고 각국의 정치인·언론인·지식인들을 만나던 중이었다. 10년 전 책을 통해 예측한 미래들이 어느 정도 현실로 드러나던 때였다. 아마 기고만장의 정도를 수치화 할 수 있었다면 최고치를 기록하고도 남았을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인터뷰 내용에서도 이런 토플러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정확하게 어떤 부분이라고 짚어낼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내용에서 받는 느낌이 그렇다.

 

“인터뷰의 흐름이 허락한다면 좌익적 관점에서 제시된 다소 민감한 질문들에 대한 그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p.11)

 

인터뷰를 진행한 ‘사우스엔드프레스’의 입장대로 인터뷰 곳곳에는 좀 민감한 사안에 대한 질문이 많았지만 꾸물거리거나 이상한 답변을 한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단순히 책의 출간 과정에서 편집되고 각색되었다고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자신감 넘치고 확신에 찬 지식인의 모습이 가득하다.

토플러는 이 책에서 분명히 말하지만 좌와우의 이념적 등식에 대한 불필요함을 역설한다. 당시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고 전 세계 곳곳에서 이념전쟁이라 불리는 소요가 많았던 시기였다. 한국만 해도 군부독재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고 길거리에서 노상방뇨만 해도 삼청교육대로 끌려가던 시기였다. 이념적 등식이 세계를 구분하고 인식을 결정하던 때였다. 그런데 토플러는 이미 그것은 과거의 것이라고 단정했다. 인터뷰 질문 자체가 ‘당신은 사회주의를 배신하고 자본주의에 편승한 지식인이 아닌가?’라는 인식을 기본하고 있는 듯 한 느낌을 주는 질문이 많았다. 하지만 토플러는 분명하게 여러 번 얘기한다. 자신이 젊은 시절에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분명했지만 미래에 대한 예측은커녕 현실에 대한 적응조차 하지 못하는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보면서 한계를 절실하게 느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에 편승한 기회주의자가 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매일의 현실과 심각할 정도로 상충되는 미래 예견을 내놓으면서부터입니다. (p.316)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1930년대에 겪었던 대공황보다 더욱 심각한 공황을 겪게 될 것이고 이것은 자본주의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한다. 하지만 종전 후 1950∼60년대 미국의 경제는 역사상 가장 큰 호황을 누렸고 미국의 노동자는 머리띠를 하고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구호아래 모인 것이 아니라 큰 집에 큰 자동차에 멋진 옷으로 치장된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이러한 잘못된 예측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계급갈등에 주력하고 교조적 맹목에 붙잡혀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이것이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결별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고 했다.

 

한국의 광역시장 중에서도 어떤 분은 누구보다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한 번 전향하고 나서는 완전히 그쪽의 파수꾼이 되어서 누구보다 정신 못차리고 있는 분이 계시는데 사실 토플러는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념투쟁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은 되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에 기생한 지식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고 싶은 가장 큰 것은 제2의 물결, 제3의 물결이 바로 내 코앞에까지 밀어 닥치고 있는데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구시대의 대량생산산업에서 중요한 것이 근육이었다면, 첨단 탈대량화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와 상상력입니다.” (p.66)

“학교로 대표되는 대량교육 시스템을 깨뜨려야 합니다.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개인에 특화되고, 분권화된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계적인 암기보다는 창의성을 살려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p.107)

“제2의 물결이 ‘프롤레타리아’를 만들어냈다면, 제3의 물결은 ‘코그니타리아트(Cognitariat)'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겠습니다. 육체노동이 아니라 지식과 정신노동에 근간을 두는 계급을 의미합니다.” (p.157)

 

첨단 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와 상상력이 되었다. 학교의 대량교육 시스템은 거의 무너졌다.(물론,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구태의연하다) 육체노동이 아니라 지식과 정신노동에 근간을 두는 노동계급이 일반화되었다.

이미 30년 전에 말한 것들이 대부분 현실화된 것은 토플러의 미래예측이 그만큼 정확했다는 반증인데 이것은 그의 말대로 당시 사회를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분석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쇼크]는 워싱턴에서의 경험이 동기가 되었습니다.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저는 거대한 사회 변화와 기술 변화가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미국 정부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있었죠. 정부는 미래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었고, 가장 기본적인 변화조차 예측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정치인들은 그저 다가오는 선거 이후의 상황에만 관심이 있는 듯 보였습니다.” (p.274)

 

미래에 대해 가장 민감한 사람들은 정치인들일 것이다. 자신의 당선과 낙선에 대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면 최고의 정치인이 될 수 있다. 일단 ‘지르고 보자’식의 선거용 이벤트 선전문구, 정책홍보를 더욱 강화하거나 상대에 대한 네거티브에 총력을 기울일 수 있다. 왜? 결과를 알 수 있으니까. 하지만 토플러는 그의 경험 상 그런 정치인은 반드시 실패한다고 말한다. 단지 정치인뿐만 아니라 거시적 안목으로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단지 인기를 끌거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이벤트용으로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유권자의 가장 기본적인 변화를 인지하고 인식해야 한다. 권력기관이 제대로 된 수요 측정이나 미래 예측을 하지 못하니까 토플러의 책 같은 것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던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미래’를 먼저 점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결정 할 요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주 민감하고 센스 있게 접근해야 한다. 대중적 요구와 필요를 충분히 파악해야 하고 ‘미래’를 결정지을 힘의 원천을 찾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단지 예측에 불과하고 상상에 불과한 일도 많겠지만 지혜를 담은 제언이 많아질 때 우리에게 닥칠 미래는 더욱 희망에 차 있을 것이다. 갑자기 집안에 밀어닥쳐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홍수가 아니라 미리 예상하고 대비하는 홍수대책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가장 정확한 미래예측을 하고 있는 앨빈 토플러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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