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고르세요
켄트 그린필드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h와 Death의 중간에는 Choice가 있다]라는 격언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선택이 아닐까 싶다.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확신에 찬 선택을 하기도 하고 우물쭈물 대다 선택을 놓쳐버리기도 하고 내가 선택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지 못할 때도 있다. ‘선택’은 ‘삶 자체’라고 얘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발달심리학에서도 인지적 능력이 확립되지 않은 유아에게도 분명히 선호의 선택이 있다고 한다. 또 정상적인 인지적 능력이 결여된 알츠하이머를 앓는 노인에게서도 분명한 선호의 선택이 있을 것이다.

지난 추석에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 산소에 찾아갔는데 돌아가시기 전 유언으로 남기신 산소의 형태 그대로 만들어진 것을 보고 ‘할머니께서 하늘에서도 무척 좋아하실 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택은 삶 그 자체이다.

 

 

10월이 내게는 꽤나 힘든 달이었다. 초순부터 하순까지 줄곧 어려움이 쉴 새 없이 닥쳐왔다.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묵혀두고 있었던 일부터 당장 몇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할 시급한 일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하나를 해결하고 잠시 허리를 펴고 기지개를 켤라치면 또 다른 놈이 훌쩍 코앞에 다가왔다. 정신도 없고 몸도 지치고 마음까지 흐트러졌다. 다행히 거의 모든 일들이 해결되고 마무리되고 업무를 처리하고 나니 새로 태어난 기분까지 들었다.

몇 년을 주기로 이런 힘든 시기가 한 번씩 찾아오는 듯하다. 나를 너무 소중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조물주께서 더 열심히 가열차게 살라는 메시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나는 꽤 잔인한 조물주를 믿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너무 힘들었으니까.

 

11월에 넘어오면서 이 책 「마음대로 고르세요」를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지난 내 10월이 생각났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10월 한 달 동안 내게 한 선택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끙끙대며 일하고 고민하고 해결하고 몸부림치던 그 순간순간이 바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일의 향배가 결정되었다. 어떤 일이든 마지막의 선택이 결론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제가 더 설득력이 있다.

「The Myth of Choice」선택의 신화!

 

 

“이 책은 우리가 선택에 집착하고, 선택에 일관성 없는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꼬집고 있다.” (p.37)

 

앞서 말했듯이 선택은 우리의 삶 그 자체이다. 잠깐만 나의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면 내가 얼마나 많은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은 어떤 것이었는지(내가 정말 하고 싶은 선택이었는지, 별 생각 없이 한 선택이었는지, 내가 하기 싫은 선택이었는지) 그 선택의 결과가 오늘 내 하루를 어떻게 결정지어 왔는지, 한참동안 생각해 볼 거리를 만들 수 있다. 늘 마시고 있는 공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듯이 선택 또한 그렇다. 달콤한 새벽잠을 깨우는 이뇨감에 ‘일어날까 말까’를 이불 속에서 한참을 고민한 뒤 선택한다. 잠자리에 든 이불 속에서도 이런 저런 망상과 고민과 생각이 뭉쳐져 공허한 선택의 틈을 채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우리가 선택에 집착한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우리의 선택에는 일관성이 없다고도 말한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선택은 때로 ‘압도적’이다. 사람들은 선택의 가짓수에 ‘압도’당한 나머지 결국에는 제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할 가능설이 많고 결정하더라도 후회할 위험이 높다.” (p.50)

 

우리는 선택에 압도되어 있는가? 처음 보는 문장이었다. 처음 보는 개념이었다. 내가 선택에 압도되어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선택의 주체는 ‘나’이기 때문에 선택은 주체를 수반하는 객체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또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자의 말이 맞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집에서 짬뽕과 짜장면 사이를 한참 고민하다 하나를 주문해 놓고 속으로 생각한다. ‘아이~ 딴 거 시킬걸~’. 점심시간 메뉴결정은 임원에게 보고해야 하는 프리젠테이션만큼 고민 되고 위력적이다.

그러고 나서는 꼭 후회한다. 나는 선택의 주체인데 말이다. 객체처럼 인식하고 후회한다.

 

 

“사회에 만연한 문화적 영향력에도 우리가 휘둘린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동안의 믿음과 달리 우리가 그다지 자율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p.143)

 

아끼는 여자 후배가 내년 2월에 결혼을 한다. 5년 넘게 사귀어 온 남자와 결혼하는 데 결혼식 날짜를 잡고 양가에서 본격적으로 결혼 논의를 시작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나는 상대 남자도 잘 알고 있고 아내도 내 여자 후배를 잘 아는 사이어서 이런 저런 상담을 했다. 결혼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 둘이 생각하고 있던 결혼 과정이 양가 어른들에 의해 완전히 무시되고 결국 부모가 원하는 쪽으로 일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가만히 돌아보니 나도 그랬다. 하고 싶은 것은 하지 못하고 안 한다고 했던 것은 모조리 하게 되었다. 나의 선택도 중요하지만 내 부모의 선택 또한 중요했고 더 결정적인 것은 저자의 말대로 사회에 만연한 결혼에 대한 인식과 관념이 내 선택을 압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선택이 자율적이지 못하다는 저자의 말이 완전한 설득력을 구비하게 된다. 나는 나의 선택에 있어 분명한 주체라고 생각했는데 주체는커녕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는 비닐봉지 정도였던 것이다.

 

 

“애국심은 우리에게 너무 관례적인 것이어서, 때로는 비판적인 사고를 가로막는다……. 국가를 부르는 관습은 국민에게 자부심을 주입하고 국가를 찬양하는 효과가 있다.” (p.136)

 

사회에 만연한 영향력은 비단 가정에서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속한 사회와 국가에서 규정하고 관습이 되어버린 것들은 우리의 선택을 가로막는다. 어린 시절 늘 궁금했던 것은 야구장의 국민의례였다. 거의 매일 야구를 하는 데 만약 홈 3연전을 한다면 첫 번째 경기에만 하던지, 아니면 마지막 경기에만 하던지. 매 경기마다 국민의례를 하고 애국가를 부르는 것이 불편했다.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함양하기 위해서라면 당장 스포츠 경기 시작 전 국민의례는 없애야 한다. 적어도 내가 경기장에서 지켜 본 주위 사람들 대다수는 제대로 국민의례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무생물이지만 유기체다. 내가 그 국가에 속해 있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애국심을 강요받고 내가 국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선택에 부당한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 무작정 애국가 반주 틀어주고 불러라~! 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단지 애국가나 국민의례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지만 또 가만히 돌이켜보면 불편해야 할 불필요하고 도를 넘은 국가적 간섭이 많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부르카는 종교적인 상징이 아니라 복종의 상징이자 비하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국회는 이후 공공장소에서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다.” (p.112)

 

민주주의의 첨병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의 대통령과 국회에서도 저런 어이없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어떻게 부르카를 입는 선택을 한 사람에 대한 판단을 마음대로 할 수 있나!! 복종의 상징이자 비하의 상징이라는 결론은 도대체 누가 내린 것인가!! 사르코지와 프랑스 국회가 보기에 불편하고 복종과 비하의 상징으로 보이는 부르카를 입은 그 여인의 선택이 주체적인지 객체적인지 어떻게 국가가 판단할 수 있나!!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자기네 말을 믿지 않고 정부와 권력에 대해 싫은 소리하면 친북좌파!! 빨갱이!! 라면서 어이없는 가면을 덮어씌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우리의 선택은 이 책의 제목 「마음대로 고르세요」라는 신화에 빠져있다. 결코 마음대로 고르지 못하고 매번 후회하며 사회에 만연한 온갖 영향력(관습, 규정, 법, 공권력 등)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선택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때론 싫은 선택도 해야 하고 바보 같은 선택도 해야 한다. 매번 내가 원하는 선택만 할 수 없다. 내가 하는 선택이 가장 옳은 것이라는 신화에 빠지지 않도록 매번의 선택에 집중하고 면밀하게 따져야 한다. 그런데 사실 쉽지 않다. 그러기에는 해야 할 선택이 너무 많다. 새벽잠의 이뇨감과 직장에서의 점심메뉴 결정조차 갖은 애를 써서 해야 한다면 우리의 뇌가 견디지 못할 것이고 지독한 정신적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농후해 질 것이다.

 

 

“우리가 진정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건 우리의 능력이 아니다. 우리의 선택이다.” (앨버스 덤블도어, <‘헤리 포터와 비밀의 방’ 중에서>,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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