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폐허를 응시하라 -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사회적 탐사
레베카 솔닛 지음, 정해영 옮김 / 펜타그램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1호선 중앙로역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나는 영천 3사관학교에서 후보생 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훈련 중이던 우리를 갑작스레 집합시켜 대구 지하철 참사에 대한 소식을 전해줬고 대구에 살고 있는 후보생들에게 집이나 지인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도록 시켰었다.

지금의 아내는 그때 사고가 난 중앙로역 근처 지상에 위치한 패밀리레스토랑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전화를 했더니 시커먼 연기가 시내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고 사이렌 소리, 고함 소리로 아비규환이라 했다.

 

사고가 사고였던 만큼 다음 날도 훈련과 교육 중간 중간에 전화를 할 수 있도록 했고 TV를 통해 본 참사 현장은 정말 참혹했다. 어이없는 사람 하나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지하철 공사는 화재에 취약한 내구재를 쓰는 바람에 화재를 키웠고 제대로 된 대피대책 조차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나와 직접 연관된 지인들에게 피해는 없었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내가 아는 사람 몇몇의 가족이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탈출 해 목숨을 건진 사람도 알고 있다.(그는 아직까지 정기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구시와 국가는 부랴부랴 덮어버리려 했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레 군 병력을 동원해 현장을 청소해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해당 사항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대구시장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고 시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좋은 자리를 역임했다.

거의 200명에 가까운 사람이 사망한 재난이자 참사였다. 가까스로 생존한 100명이 넘는 사람들은 9년이 지난 오늘도 고통 받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사건이었다.

대구 사람들은 한 번씩 그때의 참사를 얘기할 때마다 대구시를 욕하고 지하철 공사를 욕하고 정부를 욕한다.

 

제대로 한 것이 하나도 없다.!!!!!” 라고.

 

나중에 아내로부터 당시 상황을 들었다. 사고가 난 저녁부터 아내가 일하던 패밀리레스토랑은 영업을 중단하고 경미한 부상자들 및 구조대원·경찰·관계자, 유가족에게 무료로 음식과 음료를 제공하고 쉴만한 자리를 마련해 줬다는 것이다. 기관이나 행정당국에서 요청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판단을 내렸다고 했다. 사고가 났던 지역은 대구 시내 한복판이고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어서 식당이나 카페,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얼마나 많은 식당이 그런 자체 판단으로 구조 작업을 도왔는지 알수는 없지만 볶음밥을 만들어 소방관들에게 전해줄 때 다른 곳에서도 그런 도움을 주는 것을 많이 봤다고 했다. 결국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 것이다.

 

“도움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읽으며 계속 대구지하철 참사와 아내가 겪었던 경험이 생각났다. 길지만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의 도움 없이 가족과 이웃을 구조하고, 서로 먹을 것과 잠자리를 해결해주고, 구조대와 청소대 등을 편성하는 일을 무난하게 해낸 시민들은 비상사태가 정리된 뒤에도 권력과, 연대, 가능성에 대한 수준 높은 의식을 잃지 않았다. 이 지진은 멕시코 사람들의 시민사회(civil society)라고 부르는 것을 탄생시켰다.” (p.218)

 

책에서는 멕시코 대지진과 카트리나 참사, 9.11참사 등이 소개된다. 하나같이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참사였다. 시간과 공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 참사의 원인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과 참사 가운데서도, 그 폐허를 응시할 때 그 속에서 꽃피워지는 기적과 같은 일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통되는 것이다.

 

“명령도 중앙집중식 조직도 없었지만, 사람들은 지역사회와 거리에서 그 순간에 필요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p.15)

 

평소 나를 지켜주고 우리를 지켜준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사회구조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더디고 관료적이고 수동적이었다는 것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 때는 거대한 돔구장에 피해자들을 몰아넣어 놓고 좀비 퇴치하듯이 절대로 다리를 건너 이곳으로 건너오지 못하도록 총부리를 겨누기까지 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행정조직과 사회, 국가는 가장 빠르고 힘이 되는 도움은커녕 외면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마무리해 덮어버리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재난이 닥치면 우리가 평소와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고 두려워하며, 무력하거나 야만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한다. 또는 그런 모습이 사회의 상부구조가 무너졌을 때 드러나는 우리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한다.” (p.112)

“위기가 지속되는 동안, 사람들은 서로를 사랑했다.” (p.97)

 

하지만 사람들은 그 폐허 속에서도 서로를 응시했다.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어떤 참사나 재난이 일어났을 때 TV 화면을 통해 그 장소를 보는 거와 실제 그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TV에서는 자극적인 장면, 피해자가 우는 장면, 폭도들이 난동을 치는 장면들이 위주다. 하지만 실제 참사와 재난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다른 실제를 전한다고 소개한다.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것은 거리에서의 경험과 사뭇 달랐어요. 거리에서 나는 사람들과 연결되었다는 걸 느꼈고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p.294)

“사회학자들이 표현하는 것처럼, 사실 할리우드 영화는 실제 재난에 반대되는 사례다.” (p.195)

 

TV와 행정당국은 재난이 닥치면 대중은 공황과 광란에 빠져 우르르 몰려다니고 사람들은 서로를 짓밟고 동료들을 걱정하는 마음을 잃어버린다고 불안을 가중시키고는 한다.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이며 비사회적인 행위와 상황이 일어날 것을 경고한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책의 내용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두고 아직도 많은 대구 사람들이 당시 시장을 욕하는 것은 그때 시장이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 당국과 국가에서 내린 조치가 타당하지 않고 진정 시민과 국민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큰 참사와 재난은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너무 고통스러운 비극이기 때문이다. 원인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무고한 사람들이 죽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반복될 수 있는 것이 참사와 재난이다. 언제 백화점이 무너질지 다리가 끊어질지 지하철에서 불이 날지 지진이 일어날지 쓰나미가 덮칠지 알 수 없다. 이상 기후와 혹독해진 자연의 역습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고 강력해 지고 있다. 언제든 사람의 잘못으로 인한 재해와 자연의 재해가 일어날 수 있다.

 

예측하고 대비한다고 해서 완전히 막을 수 없다.

 

지난 번 일본에 닥친 쓰나미와 원전사태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집을 떠나 생활해야 했다. 하지만 생필품을 사기 위해 끝을 알 수 없는 줄을 늘어선 일본인들의 집단의식과 공공선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어떤 이들은 그것조차 ‘무섭다, 역시 일본 놈들이다, 저게 제 정신이냐’ 흠잡으려 애쓰고는 했다. 참 불쌍한 인생들이다. 만약 한국의 해운대에 영화처럼 그런 쓰나미가 몰아닥치고 수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 일본인들이 보여 준 경악스러운 집단의식과 공공선에 대한 행동을 보여줄 수 있을까?

 

우리는 응시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단순히 대 참사를 대비한 훈련이 아니라 평소에도 주변을 좀 둘러보고 관심을 기울이는 연습 말이다. 대 참사와 재난에서만 뜨거운 인간애와 사랑을 공유하고 교환하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지 않나?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이지만 내 옆에 앉아 일하는 직장 동료, 옆집에 사는 이웃, 같은 출·퇴근 시간 신호대기 하며 종종 보는 그와 그녀들. 아니, 내 가족들에게 먼저!! 응시하는 훈련을 하자. 그냥 지나쳐 버리고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것이 아니라 응시하자. ‘눈길을 모아 한곳을 똑바로 봄’ 이라는 응시의 사전적 의미를 제대로 인식했으면 좋겠다.

 

“업타운의 부유한 백인들과 알제 포인트의 블루칼라 백인들로 이루어진, 중무장한 백인 집단들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나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실이 믿음에 부합하지 않으면, 명백한 살인도 대체로 그냥 간과될 수 있다.” (p.388)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피해자들은 당국의 차별과 무관심, 어이없는 조치에 2차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극심한 이기주의로 똘똘 뭉쳐진 사람들의 총에 죽는 3차 피해까지 입게 되었다. 마치 사냥하듯이 자기 재산과 집을 지키려 흑인들에게 총을 쐈다고 한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행위가 실제로 일어났다. TV나 다른 책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내용이다.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응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 없고 게으르고 무식한 흑인들은 저 위험한 저지대에 몰려 살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돈 있고 부지런하고 유식해서 업타운에 살며 호의호식했다. 같은 공간에 살지만 다른 세계를 살았던 것이다. 참사 속에서도 그들에게 응시하지 못하고 자기들 것에만 응시했다. 귀찮은 좀비에 불과했던 것이다.

참사 자체도 비극인데 2차, 3차 비극은 더욱 서글프다.

 

 

눈길을 모아 한곳을 똑바로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잠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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