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8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할머니 댁은 시골이다. 시골 중에서도 시골.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때까지 소를 키웠다. 아궁이에 불을 떼어 소죽을 끓이시던 할아버지 모습이 생생하다. 아궁이는 하루 종일 따뜻했다. 그래서 유독 고양이가 많았다. 검은 색 고양이였는데 이름은 나비였다. 고양이가 여러 마리 있었는데 모두 이름이 나비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눈에는 똑같은 고양이로 보이셨는지 밭일, 논일 하기도 바쁜데 한 마리 한 마리 구분해가며 이름을 지어줄 시간이 없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검은 고양이는 모두 나비였다. 가만히 아궁이 앞에 서서 나비를 보고 있으면 재미있었다. 따뜻한 아궁이 옆에 웅크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시골에는 고양이 말고도 내가 좋아하던 강아지도 있었다. 깐돌이라 불리던 강아지인데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녀석이었다. 소죽 끓이던 구수한 냄새도 나고 따뜻한 아궁이 곁에 놓아두고 놀고 싶었는데 매번 그곳은 매번 나비 차지였다. 매번 그런 나비에게 어느 날인가 괜히 심통이 나서 그날도 어김없이 아궁이 곁에서 자고 있던 나비를 부지깽이로 쿡 찔렀다. 자다가 갑자기 봉변을 당해 후다닥 담벼락으로 뛰어 올라갔다. 이후에도 나비가 보이면 돌멩이를 던지기도 하고 소리를 질러 쫓아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할머니에게 된통 혼이 났다. 개든 고양이든 괴롭히면 안 된다고 하셨다. 숨 붙어 있는 것들은 사람이나 매 한가지니 괴롭히지 말라고 하셨다.

요즘은 동물애호가다 생태주의자다 해서 동물들을 위해 손발 걷어붙이고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나는 별로 달갑지 않다. 채식주의자에다 동물애호가라고 떠벌리던 여자 연예인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가죽 가방을 들고 다니는 걸 보면서 가식이고 위선이다 싶었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가 동물들을 대할 때 우리가 보기에 함부로 하는 것도 같고 큰 관심이 없어서 먹던 음식 담아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같은 생명을 대하는 마음은 그 분들이 훨씬 낫다. 애써 떠벌리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한 집 안에서 살고 있는 개, 고양이, 소, 염소 한 마리 한 마리를 가족 같이 여기는 마음은 본받을 만하다.

 

이 책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를 읽으며 계속 돌아가신 내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귀하디귀한 손주에게 버럭 화를 낼 정도로 분명히 가르치시고자 했던 생명을 대하는 마음자세를 곱씹었다.

이 책은 참 착한 책이다. 원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화로 만들어졌다가 성인들까지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책에는 총 6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나산강의 물귀신 소동>, <두발로 걷는 족제비>, <밤의 사냥꾼 살쾡이>, <긴 꼬리 들쥐에 대한 추억>, <조폭의 개>

작가가 책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6편의 작품들은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했거나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작품들이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들과 더불어 잘 사는 것도 너무나 버거운 숙제가 되어버린 현실이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곁에 있는 동물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돌아가신 고(故)권정생 선생님의 책 「우리들의 하느님」을 읽으며 나를 둘러싼 자연에 대한 느꼈던 고마움을 다시 상기했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결코 놓치지 않아야 할 우리들의 하느님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책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오리와 살쾡이, 수달, 족제비, 들쥐, 개는 우리들과 가까운 녀석들도 있고 아닌 녀석들도 있다. 하지만 다 같이 숨이 쉬는 존재들이다. 그들이 나의 하느님이 될 수도 있고 내가 그들의 하느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검둥오리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오리야말로 너무 약한 동물이라고 탄식했다. 날카로운 발톱이나 송곳니도 없고, 다람쥐처럼 나무를 잘 타지도 못하고, 노루처럼 빠르지도 않고, 두꺼비 모양으로 몸을 크게 부풀려서 상대방에게 겁을 주지도 못한다. 새들같이 날 수도 없고, 두더지마냥 땅을 파고 숨는 재주도 없다.” (p.29)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에서 검둥오리가 양갑수씨 댁 연못에 살면서 주변 동물들에게 친구들을 모두 잃고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앞에서 하는 푸념이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동물들의 생김새와 특성, 무엇보다 습성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나와 있는데 이 작품을 읽는 소소한 재미가 되었다. 애초에 동물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쉽게 지나칠 수 있을 텐데 작가인 이상권씨는 놓치지 않고 자세하게 그려낸다. 일상에서 쉽게 만나지 못하는 수달과 살쾡이, 족제비 같은 녀석들의 특성과 습성에 대한 묘사는 동물이 나오는 다큐멘터리의 나레이션처럼 친절했다

 

 

“당연히 보이지 않겠지. 그놈들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 어디론가 갔을 거야. 어미 수달이 다 나았으니까 다시는 강으로 내려오지 않을 거다. 이제 더 이상 찾지 마라.” (p.74)

 

<나산강의 물귀신 소동>에 나오는 수달은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지는 오래지만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것은 2012년이라고 한다. 흔히 볼 수는 없지만 도심 하천에서도 종종 보이기도 하는 동물이어서 멸종위기종인지는 몰랐다. 물속에서는 그 어떤 동물보다 날렵하고 재빠른 수달을 보고 물귀신이 있는 것으로 오해한 사람들은 물귀신의 존재가 수달인 것을 알자 다시금 들러붙는다. 예전에 무분별한 포획으로 멸종위기까지 왔는데도 불구하고 몸에 좋다는 이유만으로 그물을 놓고 잡으려고 혈안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 하다. 예전에 무슨 동물이 몸에 좋다. 정력에 좋다. 소문이 퍼지면 전국적으로 그 동물이 씨가 마를 때까지 잡아댄다. 무슨 식물이 항암효과가 있다더라. 하면 삽시간에 온 동네 야산은 쑥대밭이 된다. 늘 그래왔던 것 같다.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던 것 같다. 사람은, 인간은 늘 일방적으로 가해자였다. 다시는 사람 곁으로, 인간 곁으로 내려오지 않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그 탐욕을, 그 욕심을.

 

 

“문태야, 이제 그만둬라. 틀림없이 그 족제비가 물어 갔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족제비는 절대 가축은 물어 가지 않았는데….” (p.101)

“할머니, 지금은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이 아닙니다. 어떻게 족제비가 복수를 해요? 족제비는 어디까지나 짐승입니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한낱 짐승한테 잘못했다고 빕니까? 참, 누가 들으면 웃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더 이상 병아리는 없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p.103)

 

수달만큼 족제비도 흔한 동물은 아니다. 기껏해야 동물원이나 TV를 통해서 볼 뿐이다. <두발로 걷는 족제비>에 나오는 족제비는 <나산강의 물귀신 소동>에 등장하는 수달보다 더 집요하고 철저하게 공격 받는다. 문태라는 한 사람에 의해서. 돌아가신 내 할머니가 곁에 있는 동물들은 소중히 여기라고 하시면서 특히 고양이는 영험한 동물이니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었는데, 족제비도 그런가 보다. 단순히 미신이 아니라 오랜 세월 살아온 삶의 지혜이기도 하고 그 어른의 어른으로부터, 또 그 어른의 어른으로부터 전해 내려오고 삶의 가르침으로 이어 온 가르침이기 하다. 나산강에서 살던 수달은 인간들을 피해 강을 떠나는 것으로 끝났지만 두발로 걷는 족제비는 원래 습성에서 벗어나 가축을 공격하는 데 까지 이른다.

무분별한 에너지 사용과 대책 없는 낭비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 되면서 이제 지구의 복수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 여름 폭염은 기승을 부리고 한 겨울 혹한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오랜 시간 가만히 있다가 한 번에 터뜨린 것처럼 두발로 걷는 족제비는 문태의 공격에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밤의 사냥꾼 살쾡이>에 등장하는 살쾡이도, <긴 꼬리 들쥐에 대한 추억>에 등장하는 들쥐도, <조폭의 개>에 등장하는 콜리의 삶은 결국 인간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인간들이 그들을 대하는 마음과 자세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인정은 해야 한다. 성경을 잘못 인용해 자연을 인간이 다스려야 할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사람들은 당장 마음을 바꿔 먹어야 한다. 성경 인용이 아니더라도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존재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도 돌이켜야 한다. 더군다나 그들을 인정하고 배려하고 도와주는 척 하면서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당장 그 행동을 그만두어야 한다.

말하지 못하는 짐승조차도 자기 식구처럼 대하고 함께 살던 예전 어른들의 삶의 자세와 겸허한 마음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에는 우리, 사람들 곁에는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욕심과 탐욕으로, 우리의 무지와 몰이해로, 우리의 위선과 가식으로, 우리의 성급함과 아집으로 그들을 놓쳐버릴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터전을 뺏고 우리만의 잣대로 그들을 판단하고 가치를 매겨버릴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가 성인도 대상으로 볼 수 있게 새롭게 출간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오히려 이런 내용의 책은 성인들이 더 많이 읽어야 한다. 어린 아이이던 시절 가졌던 순수한 마음과 욕심 없는 눈망울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 순수함과 욕심 없음을 충전해야 한다.

가만히. 한참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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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단단하게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을 엄청 재미있게 봤다. 한국의 현대사에 대해 유독 관심이 많은 내게 이 영화는 대단한 의미였다. 임상수 감독 특유의 블랙 코미디는 10.26사건 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진 영화를 피식피식 실소하며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바탕이 되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더욱 말도 안 되는 것이 많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난다. 18년 동안 군림해온 독재자가 하루아침에 죽었다. 영화에서 김재규가 박정희에게 총을 발사한 다음부터 더 재미있다. 왕처럼 군림한 독재자가 죽었는데, 그 엄청난 사태를 대하는 1국의 위정자들이 보이는 태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제 한 몸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자, 그 상황에서도 정치적 이해타산을 따지는 자, 각하의 은밀한 부분의 노출을 가리고자 모자를 벗어 덮어주는 자 등. 전시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를 대하는 그들의 꾸밈없는 속살에 피식피식 실소가 터져 나온다. 오히려 독재자 아래 신음하던 국민들은 그래도 나랏님 돌아가셨다고 대성통곡한다. 정말 슬프게 안타깝게 불쌍하게 운다. 하지만 1국을 움직이고 1국의 방향을 잡아가야 하는 자들은 국가 위기고 나발이고, 비상사태고 나발이고 바보짓만 해댄다.

 

이 책 「물처럼 단단하게」는 사실 제목만으로 충분하다. 물이 단단할 수 있나? 물론 목욕탕에 가면 사우나 앞에 폭포수가 어김없이 있다. 버튼을 꾹 누르면 정말 폭포수와 같은 높은 수압의 물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데 그런 물을 맞으면 아플 만큼 단단하기는 하다. 하지만 ‘물처럼 단단하게’는 이율배반이다. 말이 안 되는 말이다. 그런데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나 이 책 「물처럼 단단하게」보다 더 말이 안 되는 말이 많고 말이 안 되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곳은 우리의 일상이다. 단지 우리가 너무 바쁘고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인지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중국 공산군의 대장정을 마친 것으로 보이는 주인공 가오아이쥔은 제대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대장정을 통해 혁명 군인이 되었고 중국 공산군의 혁명 사상에 완전히 도취되었다. 당시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마오주의는 유럽의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맑스·레닌주의 이상이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봉건제의 사슬을 끊어낼 수 없었던 중국의 젊은이들은 자연스럽게 마오주의에 경도되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공산당에 입당하거나 공산군에 입대하였다. 가오아이쥔 마찬가지였다. 군 생활은 마쳤지만 이 젊은이에게는 고향을 혁명시키고자 하는 불꽃같은 의지가 있었다. 비록 군에 입대한 이유가 지역 유지인 장인이 ‘군에 다녀오면 진의 간부로 일하게 해주겠네’라는 말에 혹 해서 그런 것이었지만, 이유야 어쨌든 그는 이제 혁명 투사가 되었다. 애초에 자신과 같은 찢어지게 가난한 남자에게 시집 온 그의 아내 구이즈는 못생긴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그와 맞지 않았다. 세상을 뒤흔들 혁명가이기는 하지만 아내에 대한 증오는 바뀌지 않는다. 혁명 완수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에게 훙메이가 나타난다. 우연히 철길에서 만난 가오아이쥔과 훙메이는 단번에 사랑에 빠진다. 둘은 유부남, 유부녀다. 혁명 아래서는 불륜도 혁명이 된다. 혁명을 위한 동인이 된다. 흠……. 혁명이니까…….

 

 

“맹렬한 사랑과 혁명이 그렇게 폭풍우처럼 시작되었습니다.” (p.50)

“아이쥔, 우리가 미친 걸까요?”

“훙메이, 우리는 혁명과 교제하고 혁명과 사랑하는 것이지 절대 미친 게 아니에요.” (p.166)

 

폭풍우처럼 시작된 그들의 혁명은 깊어져 갔다. 본디 혁명이란 널리 알리고 더 많은 사람에게 선전하고 선동해야 하는 것임에도 그들의 혁명은 너무 소중하고 너무 애달팠나 보다. 그들 자신조차 자신들이 미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그렇게 맹렬한 혁명에 빠져들었다.

 

 

“아내는 일어나서 짐을 받지 않았습니다.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미래의 혁명가이지 농촌 정치가라는 것을 알지 못했지요” (p.57)

“아버지는 혁명을 할 거란다. 혁명이 성공하면 매일 카스텔라를 줄게.” (p.70)

 

하긴 마오 주석의 뒤를 이어 장차 적어도 현의 성장이나 당 서기쯤은 가뿐히 될 자신에게 아내 구이즈는 진의 간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도구에 불과했다. 못생긴 것에 더해 자신의 혁명에 불타는 자유로운 성애의 표현을 벌레 보듯 본 그녀는 혁명 완수를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목숨을 건 대장정을 마치고 온 미래 혁명가에게 장인과 아들은 카스텔라를 주는 자에 불과했고 아내에게는 돈 벌어다 주는 가장에 불과했다. 어찌 이런 자들과 혁명을 논할 수 있겠으며 혁명 완수를 위해 목숨을 나눌 수 있었겠나.

 

 

“저희는 위대한 혁명을 하는 동시에 초라한 밀애를 즐겼습니다.” (p.260)

 

가오아이쥔은 훙메이에게 빠져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훙메이와는 모든 것이 통했다. 성애를 나누는 것부터 혁명 완수를 위한 방향과 방법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아내 구이즈와 달랐다. 아내 구이즈가 집에서 자살을 하게 되고 가오아이쥔은 진 간부가 되지만 훙메이와의 밀애는 끊지 못한다. 작가의 표현대로 위대하지만 초라한 밀애였다.

혁명 완수를 위해서 둘의 밀애는 절대로 들키지 않아야 했다. 블랙코미디다. 가오아이쥔은 마음 놓고 훙메이와의 일을 치르기 위해 땅굴을 판다. 자신의 집에서 훙메이의 집까지 직접 땅굴을 파서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이 땅굴 안에서 그들만의 혁명 신방을 차린 것이다. 낮에는 촉망받는 당의 젊은 간부로 혁명을 부르짖고 밤에는 훙메이와의 밀애를 위해 흙먼지를 뒤집어 쓴 발정 난 수캐가 되었다.

 

 

“지하 통로의 자연적인 울림 덕분에 행군 대열의 구호가 나오기만 하면, 주요 혁명 지도자의 강연이나 최신 혹은 최고 지시가 나오기만 하면, 그럴 때면 저와 훙메이 모두 참을 수 없게 되었지요.” (p.371)

 

그들의 밀애는 작가에 의해 과도하게 자세하게 묘사된다. 어릴 때 얼굴을 온통 붉히며 읽었던 「돈 쥬앙」의 그런 자세한 묘사와는 다르게 대단한 혁명적 거사를 치르는 듯한 묘사다. 쓸데없이 마오 주석의 말을 옮기기도 하고 유별나게 혁명…….혁명을 들먹인다. 초라한 밀애와 불륜을 위대한 혁명으로 포장하기 위해서 그들은 스스로 혁명에 취해야 했다. 심리적으로 취하고 나니 몸까지 그렇게 따라 갔다. 가오아이쥔은 수개월에 걸쳐 땅굴을 완성해 이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들킬 염려도 없이 훙메이와 땅굴 신방에서 마음껏 일을 치를 수 있게 되었는데, 아뿔싸!! 훙메이의 남편 청칭둥이 평소 고생했던 ‘고개 숙인 남자 병’이 생겼다. 그런데 땅굴 신방에 마련해 둔 라디오에서 혁명 행군 대열의 구호가 나오거나 혁명에 대한 연설이나 지시가 나오면 이 병은 갑자기 씻은 듯이 낫게 되었다. 갑자기 반금련의 서문강처럼 옹녀의 변강쇠처럼 그런 엄청난(?) 남자가 되었다. 웃기는 일이다. 손으로는 온갖 지저분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 얼굴은 천사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책의 저자 옌롄커는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이런 조롱과 풍자를 늘어놓는다. 이 책이 중국 내에서 과도하게 검열을 많이 받고 당국의 견제를 받기도 하고 일부 내용이 삭제가 되기도 한 것은 순전히 작가의 이런 조롱과 풍자 때문이다. 명목 상 지나친 성애의 표현이 이유가 되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혁명에 대한 조롱이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여전히 마오쩌둥은 그들에게는 영웅이고 중국 공산당은 거대 중국을 이끌어 가는 가장 큰 힘이다. 그런데 옌롄커는 가오아이쥔을 통해 대장정과 대혁명을 비꼰다. 가오아이쥔에게 혁명을 거저 자신의 출세를 위한 동아줄에 불과했고 훙메이와의 초라한 밀애를 유지하기 위한 둘만의 자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오아이쥔과 훙메이에 의해 혁명을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전락했다. 서두에 말한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을 통해 박정희라는 독재자가 사망한 10.26사건과 그 이후에 일어난 일련의 일들이 블랙 코미디가 된 것처럼.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때 그 사람들』영화를 볼 때 터져 나왔던 그 조소가 여전히 튀어나왔다.

 

 

“어떤 사람은 영화를 틀다가 잘못해서 필름을 거꾸로 끼우는 바람에 주석님 머리가 바닥을 향해 유기징역 20년을 선고 받았고. 당신 딸이 목을 맸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몇 번이나 총살을 당했을 거요.” (p.242)

“그녀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허리 높이의 돌기둥에서 뛰어내렸어요. 하지만 그때 눈처럼 희고 피처럼 붉은 따귀 소리가 제 왼뺨에서 울렸습니다.”

“당장 돌아가거라! 또 소란을 피우면 이 패방에 머리를 부딪고 죽어버릴 게다!”

“········.” (p.138)

 

혁명은 때로는 아주 우스운 꼴이 되고는 하는 것 같다. 목숨을 걸고 민주화 운동, 노동자 운동을 하던 이가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욕하고 잡아 죽일 듯 덤벼들던 저쪽 패거리에 기어 들어가는 꼴이 이 땅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혹자는 박쥐라고도 하던데 최소한 박쥐는 깊은 밤에도 장애물을 멋지게 피해가며 비행할 수 있는 감각을 지녔다고 하는데 여의도 이슬람 궁전과 같이 생긴 건물에 틀어 박혀 있는 양반들은 온 몸으로 돌진하는 감각 없는 박쥐들인 가 보다.

혁명을 위해, 아니 자신의 출세를 위해 혁명을 부르짖고 핏대를 세우며 벽진 고향 마을의 봉건 잔재를 깨기 위해 나선 그에게도 어머니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던 가 보다. 어머니의 벼락같은 꾸지람 한 마디에 혁명이고 나발이고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진짜 웃기다. 이 참을 수 없는 혁명의 가벼움이란…….

 

가오아이쥔은 출세를 위해 혁명을 부르짖으면서도 훙메이와의 불륜 유지를 위해 그의 남편 청칭둥을 죽이기에 이른다.

운이 좋았던 탓인지 능력이 있었던 탓인지 훙메이를 만난 것이 복이었던 탓인지 가오아이쥔은 당과 현의 간부들에게 인정받는 젊은 혁명가로 불리게 되었다.

 

 

“왕 진장과 그의 고향인 왕자위 대대의 여자 지부 서기 자오슈위 사이에 모종의 남녀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 (p.438)

 

진의 간부로 승진하게 되고 현의 간부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가오아이쥔은 당의 중심으로 점점 들어간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젊은 당원 동지들에게 인정을 받고 전체 당에서도 주목받는 진장이 가오아이쥔과 훙메이처럼 모종의 불륜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첩보를 얻게 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이 공식으로 가오아이쥔은 왕 진장을 밀어 낸다. 그러면서도 훙메이와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로맨스라 포장된 불륜은 계속해서 이어 간다.

 

 

“눈물을 흘리는 훙메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따귀를 한 대 때릴 수 없다는 게, 물어뜯을 수 없다는 게 한스러웠습니다. 그녀 때문에 저희 일이 드러난 것도 있지만 그보다 2-3일만 더 있었다면, 어쩌면 딱 하루만 더 있었다면 저는 현장으로, 그녀는 부현장급인 여성연합회 주임으로 공표되었을 게 더 큰 이유였습니다.” (p.576)

 

결국 그들만의 땅굴 신방이 당에 의해 발각이 되고 둘은 혁명의 이름으로 숙청 된다. 가오아이쥔이 그토록 외쳐대고 포장하고 불륜을 포장하기 위해 사용하던 혁명의 이름으로 말이다. 현의 현장 자리를 눈앞에 두고 숙청 당한다. 훙메이가 자신의 집 쪽으로 뚫린 땅굴의 입구를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해 발각된 것이다. 현장 자리 앞에서 훙메이는 가오아이쥔의 죽은 아내 구이즈 정도로 내동댕이쳐진다. 따귀를 한 대 때리고 물어뜯어서 되돌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 더 절망적이었을 거다.

 

사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독재와 유신, 운동권과 386세대 따위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저 외부 자극을 통해 얻게 된 정보와 지식이 전부다. 그래서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 독재자의 죽음에 통곡했던 사람들의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이 책 「물처럼 단단하게」에서 가오아이쥔이 그토록 부르짖었던 혁명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유부단하고 이리저리 휘둘렸던 그 사람들이 이해는 된다. 나였더라도 그랬을 것 같다. 비루한 혁명은 그 물살도 기운이 없기 마련이다. 단지 그들이 어떤 간판을 내걸고 뛰어들었던지 간에 혁명은 혁명대로 그것만으로 평가받고 역사의 심판대에 서야 한다. 가오아이쥔이 현장이 되고 나서도 훙메이와의 불륜을 계속했을 것인지 알수는 없지만 그렇게 자위하고 최면을 걸어 혁명을 위한 마음과 몸까지 그렇게 맞춰진 것처럼 이후의 혁명도 그렇게 혁명, 혁명 하며 맞춰갔을 것이다.

 

누구보다 단단하고 싶었지만 동네 초라한 개울물만큼도 기운차지 못했던 가오아이쥔의 모습을 보며 그저 조소를 던지며 어이없어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차라리 가오아이쥔이 솔직하다. 혁명을 완수해 가면서 출세도 하고 사랑도 하고. 뒤로는 온갖 일을 다 해대면서 앞으로는 깨끗한 척하는 무뢰배들보다 낫다.

 

 

“혁명가의 발걸음 소리에 개들이 놀라 몇 번 짖었지만 이내 조용해졌습니다.” (p.571)

 

아… 예… 어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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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보수의 품격
표창원.구영식 지음 / 비아북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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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미드(미국드라마) 마니아다. 미드 중에서도 범죄·수사물 마니아다. SVU, CSI, NCIS, 멘탈리스트, 캐슬, 본즈, 크리미널 마인드 시리즈는 결혼 후에도 놓치지 않고 보는 마니아 중의 마니아다. 요즘에는 수요가 많아서인지 케이블에서도 자주 이런 미드를 시리즈로 방송한다. 대부분 종료된 시즌의 에피소드이기 때문에 아내는 케이블에서 방송되는 에피소드 몇 장면만 보면 무슨 내용인지 단번에 알아맞힐 정도다. 저렇게 많은 종류가 있고 이 미드들은 자체적으로 시즌이 10이 넘어가는 것도 있는데 얼마나 좋아하고 마니아인지 내용에 더해 정확한 범인과 결과까지 알아맞힌다. 기가 막히다.

나는 전혀 관심이 없는 장르라 처음에는 보기 싫지만 아내 기분 맞춰 주느라 앉아서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이게 보면 볼수록 빠져 들었다. 재미있었다. 쪽대본이 판치는 한국의 드라마와는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연기나 구성은 한국 드라마가 낫다고 생각하지만 기술적인 부분은 차이가 많이 난다. 나는 미드 중에서도 SVU을 가장 좋아한다. 다혈질이지만 인간적인 형사 엘리엇(크리스토퍼 멜로니)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출연하지 않아 아쉽다.

미드 마니아인 아내를 통해 첨단 수사 기법과 이미 외국에서는 보편화되었고 국내에서도 발전이 많이 된 프로파일링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표창원 교수도 알게 되었다. 아내가 호들갑을 떠시며 ‘저 사람 정말 좋아~!! 멋있지? 말도 너무 잘하시고~! 저 분이 국내 프로파일링의 선구자야~’ 라며 TV를 향해 하트를 뿅뿅~ 날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참았다. TV에 나오는 늘씬하고 예쁜 연예인을 보며 입을 헤벌레 해서 있다가는 아내에게 등짝을 맞을 수 있지만 아내는 연예인의 복근과 수현이와 중기, 인성이를 보고 ‘멋있다~’를 남발해도 아무 상관은 없다ㅡ.ㅡ

 

‘표창원? 누군데 그래?’라며 봤다. 너무 말을 잘 해서 정이 가지 않았다.(아내가 좋아해서 질투 따위 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외모도 너무 차갑게 생겼고 눈매도 과도하게 매서워 정이 가지 않았다.(아내가 좋아해서 질투 따위 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그런데 이 사람, TV에 너무 많이 나왔다. 뉴스에도 나오고, 시사 프로그램에도 나오고, 범죄와 관련된 프로그램에는 모조리 나오는 것 같아 정이 가지 않았다.(아내가 좋아해서 질투 따위 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뭐, 내가 아무리 정이 가지 않더라도 인정할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말을 너무 잘했다. 조리 있고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자신이 하는 말에 힘을 더하는 톤과 특유의 어조가 있었다. 이 사람이 다단계 사장이라면 나를 30분 만에 열혈 다단계 투사로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TV에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 분야에 있어서 권위자임은 틀림없어 보여 보였다.(아내가 좋아해서 질투 따위 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흠…….;;)

 

표창원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뜨거워 졌다. 작년 말 대선 기간 중 폭발했다. 국정원 불법 댓글 사건에 대해 소신을 밝히며 글을 올리고 그 과정에서 경찰대 교수라는 직을 던졌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보수를 비판하는 보수주의자로 대선 판의 마지막을 뒤흔들었다. 사람들, 그 중에서도 젊은 사람들은 표창원 교수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미적지근하던 야권의 단일화 과정에 염증이 더해지던 찰나에 표창원의 등장은 새 시대를 향한 투신으로 비쳤다. 하지만 대선은 그와 그를 지지하고 응원한 이들의 염원대로 향하지 않았다. 대선 전과 이후 표창원 교수를 향해서 지지도 폭발했지만 비판과 곱지 않은 시선도 폭발했었다. ‘정치를 하려는 것이 아니냐? 다된 밥에 돼 재를 뿌리냐? 도대체 무슨 의도냐?’ 등등.

대선 후 그는 계속해서 사람들은 만나고 있다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의 보수와 한국사회에 필요한 정의에 대한 담론을 나누고 있다고 한다.

 

 

이 책 「표창원, 보수의 품격」은 궁금했던 표창원 교수의 지난 대선 과정의 행보와 그의 생각 전반을 전해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인터뷰를 엮은 형식이라 대화하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아주, 아주, 아주 조금 가지고 있었던 질투가 완전히 없어진 계기도 되었다. 흠…….^^;;

 

“나는 보수주의자다. 보수가 제대로 형성되고 구축되고 자리 잡기를 원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진보를 인정하고 보수와 진보가 건전하게 경쟁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보수의 본래 모습을 왜곡시킨 그들은 빨리 현실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내놓을 것은 내놓고, 사회할 것을 사죄해야 한다.” (p.119)

 사실 한국 사회에는 제대로 된 보수와 제대로 된 진보가 없다. 내 평소 생각이다. 이 책에서 표창원 교수도 동일한 시각을 보인다. 왜곡되고 굴곡진 한국의 현대사로 인해 보수와 진보 진영이 이상하게 뒤섞이고 무한 재편되면서 진영의 토양 자체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 그래서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자신들의 진영에서 토대를 다지고 발전시키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단지 선거를 위해 당선을 위해 합치고 나뉘는 일만 반복했을 뿐이다. 더군다나 친일과 독재를 거치며 제대로 된 역사 청산을 하지 못한 것이 더해져 수구와 종복 빨갱이만 존재하는 기상천외한 진영 스탠스가 짜여졌다.

 

“왜 대한민국의 보수는 이 지경이 되었을까?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리고 싶은 치부가 많아 과거를 조작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을 비판하면 먼저 입을 막으려 한다.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위협한다. 그렇게 이 땅의 자칭 보수주의자들은 권력을 연명했다.” (p.10)

 

표창원 교수는 자신이 보수주의자라고 하면서 먼저 자신이 속한 한국의 보수 진영에 대해 비판한다. 인터뷰를 진행한 구영식씨가 진보 진영에 대한 비판을 주문하자 그는 ‘내가 보수주의자이기 때문에 먼저 보수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순서다.’라는 말하는데 맞는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실 한국의 현실에서는 제대로 되지 않았던 부분이다.

그를 통해 한국의 보수가 왜 수구꼴통으로 전락했는지 명확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그간 나는 이른바 진보 진영에 속한 사람들의 시각에서만 한국의 보수를 인식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의 눈에 비친 한국의 보수의 속살이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의 보수가 수구가 되었다는 표창원 교수의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가리고 싶은 치부가 많고 그것을 자꾸만 들먹이는 진영을 빨갱이로 덮어버린다. 빨갱이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의 지적대로 여전히 한국 사회에는 한국 전쟁을 겪거나 그것의 직·간접적 공포를 체험하거나 전해들은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빨갱이는 절대악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보수는 자신들이 쌓아 온 기득권의 뿌리가 정당하거나 가치판단에 있어 대부분 옳지 않기 때문에 두렵다는 것이다. 격하게 공감했다.

한국전쟁 이후 6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러한 공식이 먹히는 곳이 한국이기 때문에 한국의 보수는 옳은 것을 지키고 수호하는 진정한 보수의 모습을 가지지 않고 수구로 살아도 그들의 기득권을 연명할 수 있었다. 굳이 들먹여서 좋을 것 없는 데 나서서 ‘내가, 우리 진영이 이런 거 그리고 저런 거 잘못했소.’ 이실직고 할 보수를 찾기는 어렵다.

 

“보수의 품격으로 평화, 신사 등을 꼽았는데 한국의 보수는 어떤가?” (p.103)

“국민 세금으로 대학 4년을 공짜로 다녔고, 경찰 간부라는 혜택도 누렸고, 유학도 다녀왔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국가와 국민들로부터 받은 혜택에 보상해야 한다는 대단히 엄중한 채무 의식에 시달리고 있었다.” (p.43)

 

책의 제목대로 표창원 교수는 한국의 보수가 품격을 갖출 것을 주문한다. 케케묵은 반공 논리와 떳떳하지 못한 과거를 덮어두는 것에만 급급한 비겁한 모습이 아니라 인정할 것은 인정할 줄 알고 잘못한 것은 사과할 줄 아는 보수가 되기를 주장한다.

80년대 국립대학인 경찰대를 나오고 경찰 간부로 생활하고 국비로 영국 유학을 다녀 온 그의 삶에 대해, 그는 당연히 돌려줘야 할 혜택이고 채무의식이라고 한다. 그 타이밍이 지난 대선 정국에서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에 의해서 터진 것이다. 분명 아닌 일이고, 잘못된 법 집행임에도 불구하고 사정기관과 사법기관은 물론 언론이 합심해 입 다물고 있는 상황이 그에게는 견디기 힘들고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한다.

조금만 제대로 살펴보면 할 말이 많을 텐데 모두가 가만히 입 다물고 있는 상황. 그는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것 같다. 이후에 있을 온갖 비난과 비아냥거림, 오해와 왜곡에도 불구하고 가장 극적인 타이밍에 말이다. 어떻게 보면 참 대책 없는 사람 같기도 하다. 가만히 입 다물고 있으면 그가 가진 권위자로서의 지위와 명예, 학자로서의 대우, 안정을 확보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참 바보 같기도 하다. 나 같으면 인터넷도 안 하고 SNS도 안 하고 입 다물고 얼른 선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을 텐데…….

 

 

“우리가 정말 자유민주주의국가고 보수라고 얘기한다면 그 본질이고 근간인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지켜내야 한다.” (p.141)

“제대로 된 보수, 진정한 보수, 합리적 보수가 갖추어야 할 핵심 역량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이 역시 소통능력, 즉 대화와 설득이다. 지금 한국 보수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그거다.” (p.223)

 

표현의 자유, 소통, 대화와 설득. 사실 이러한 것들은 보수뿐만 아니라 진보라 자칭하는 사람·조직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이제껏 이런 개념들에 소홀했기 때문에 한국에 제대로 된 보수도, 진보도 없는 것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선거에 반짝 등장해서 당선만을 위해 판을 짜고 야합하고 쪼개지는 통에 소통하고 대화하고 설득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 사실 아닌가. 표현의 자유?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이제는 정권에 조금 비판적인 말을 하거나 글을 쓰려 해도 스스로 ‘이러다가 잡혀가는 거 아냐? 고발이나 고소 당하는 거 아냐?’ 라고 자기검열을 한다.

표창원 교수는 한국의 보수가 먼저 이러한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한다. 분명 잘못된 것은 사과하고 묵은 반공 논리를 집어 던지고 다른 진영, 다른 의견일지라도 경청하고 소통하려는 노력. 진보 진영도 마찬가지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새롭게 들리는 건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멋있고 어려운 말이나 글을 쏟아내는 것보다 원론적이지만 반드시 이러한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슨 보수가 어떻고 진보가 어떻고……. 공염불 일 뿐이다.

 

 

“제3의 길을 실제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안철수 교수였다면, 나에게 제3의 길은 새로운 세력의 등장이 아니라 기존의 진보와 보수가 반칙하지 않도록 하는 감시자 역할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조정 역할, 협력 역할을 함께하는 거다.” (p.210)

 

대선 전과 이후 상황이 표창원 교수에게는 무척 힘들었을 거라 짐작된다. 책에서는 그런 넋두리는 전혀 없다. 단순히 이슈가 되기 위해서나 정치를 하기 위해 퍼포먼스를 한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해 보인다. 특히, 대선 이후 그가 보여 준 행보 그의 대선 전 행보에 대한 진정성이 담보된다.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하고 논의하고 토론하며 감시자의 역할, 조정·협력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보여 줄 그의 행보와 입장이 어떠하든지 나는 표창원 교수를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표창원 교수의 광고다.

노회찬 의원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지면 광고다. 이것이 표창원 교수가 말한 보수의 품격이 아닐까 싶다. 수구세력이 빨갱이 종북세력으로 여기는 노회찬 의원에 대한 지지를 이렇게 공공연하게 밝힌 보수가 있었나?

나는 이런 보수주의자를 계속해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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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친구야 웅진 우리그림책 21
강풀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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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만화가는 두 명이다. 윤태호 작가와 강풀 작가다.

윤태호 작가의 「이끼」와 강풀 작가의 「26년」은 몇 번을 반복해서 봤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었다. 두 작가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 더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강풀의「안녕, 친구야」를 봤다. 작가의 외모만 생각해서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예쁘고 귀여운 작품이다. 딸의 태명이 ‘은총’이었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 아기도 이름이 ‘은총’이다. 태어날 아이를 위해 만든 작품인 듯싶다.

이런 예쁘고 귀여운 작품은 있는 그대로 읽어야 하는데 자꾸만 의미를 갖다 붙이고 싶은 것은 다른 속내로 가득 찬 어른의 주책이다.

 

은총이는 어느 날 잠이 깬다. 일어나 방을 나서는 데 방문턱에 발가락을 찧는다. 으아아아~ 내성발톱으로 고생을 했던 내게 이제껏 가장 큰 고통은 내성발톱으로 곪은 엄지발가락을 방문턱에 찧은 일이었다. 조그만 은총이가 발가락을 찧었다. 아파서 울었지만 엄마, 아빠는 쿨~~쿨~~~.

“울지 마.”

창문 밖 담벼락에 은총이 같은 아기 고양이가 말했다. 하얀 눈송이가 쏟아지는 작은 담벼락.

은총이는 아기 고양이에게 말은 건다. 아기 고양이는 엄마, 아빠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돌아갈 집을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은총이는 그 조그만 발로 담을 넘어 아기 고양이와 함께 친구의 엄마, 아빠, 그리고 집을 찾아 나선다.

 

 

어른이 되면 더 겁이 많아진다. 이것저것 재느라 먼저 손 내밀지도, 손 내밀어 달라고 말하지 못한다. 친구는 점점 줄어들고 사람과 사귀는 것은 이해관계 아래에 놓이게 된다. 은총이가 들어 갈 학교에서는 경쟁만을 가르친다. 표 나게 말하지는 않지만 옆에 앉아 있는 아이보다 잘해야 한다는 암묵적 분위기에 압도당하게 되는 건 불 보듯 뻔 한 일이다.

은총이와 아기 고양이는 단번에 친구가 된다. ‘우리 친구할래? 친구하자~!’도 아니었다. 울고 있는 은총이와 엄마, 아빠와 집을 잃어버린 아기 고양이는 그대로 친구가 되었다. 아무 것도 재지 않고 따지지 않고 묻지도 않고.

우리는 얼마나 겁을 먹고 살아가는지…….

  



친구가 된 아기 고양이의 집을 찾아 나선 은총이는 이웃집의 큰 개와 담벼락의 쥐와 쓰레기통위의 무서운 동네 터줏대감 고양이에게 친구의 집을 묻는다.

큰 개와 쥐와 무서운 고양이는 어의가 없었다. 고양이를 보면 무조건 짖었던 큰 개, 고양이를 보면 무조건 숨었던 쥐, 다른 고양이를 보면 온 몸의 털을 곤두세우며 공격태세를 갖추었던 무서운 동네 터줏대감 고양이는 겁(?) 없는 은총이의 물음에 무장해제 된다.

명확한 이유 없이 그렇게 들어 왔던 것에 의해 행동하는 자신들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단번에 무장해제 되었다.

 

우리는 얼마나 신경을 쓰고 눈치를 보며 공격하고 비난하며 편을 가르고 벽을 쌓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하는 건 또 왜 그렇게 많은지. 내편이 아니면 네 편이 아니라 나쁜 편이 된다. 나와 다른 것일 뿐인데 틀리다고 얘기한다. 혹시 내 약점이 들킬까봐 먼저 상대방의 약점을 들춘다. 내가 공격 받지 않기 위해서 먼저 공격한다. 내가 비난 받지 않기 위해서 먼저 비난한다. 그러면서 나의 벽은 점점 높아져만 간다.




은총이와 아기 고양이는 ‘은총상회’ 앞에서 헤어진다. 아기 고양이 스스로 자기 집을 찾아 가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친구는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아뿔싸!! 펑펑 내리는 함박눈으로 두 친구가 걸어온 발자국이 모두 덮여 버렸다. 온통 흰 눈 천지다. 이제는 은총이가 엄마, 아빠가 쿨쿨 잠들어 있는 집을 찾아가는 일이 문제가 되어 버렸다.




은총이로 인해 뜻하지 않게, 그리고 갑자기 무장해제 되어버린 이웃집 큰 개와 담벼락 쥐와 무서운 동네 터줏대감 고양이를 만난다.

두 번째 만날 때는 은총이와 서로 친구가 되어 버렸다. 큰 개와 쥐와 터줏대감 고양이가 있어 은총이는 집을 찾아갈 수 있었다. 뜻하지 않은 순진무구와 겁(?)없음이 이들을 친구로 만들었다. 이 새로운 친구들이 없었다면 은총이는 엄마, 아빠가 쿨쿨 잠자고 있는 집을 찾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큰 개가 아이를 다시 불렀습니다.

“아까 그 아기 고양이는 집을 찾았니?”

아이가 돌아보며 대답했습니다.

“아직! 더 먼 곳으로 찾으러 갔어.”

“찾으면 좋겠구나.”

“고양이를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어?”

“싫어해. 하지만 아까처럼 말을 걸면 대답은 할 수 있지.”

“혹시 그 고양이가 다시 찾아오면 우리 집을 알려 줄래?”

“글쎄, 그 고양이가 먼저 내게 말을 걸면 생각해 볼게.”

 

은총이의 새로운 친구들은 아기 고양이와도 친구가 되려 한다. 이유 없이 공격하고 피하고 으르렁 대던 이들이 모두 함께 은총이와 친구가 되었다.



 

큰 개는 다음에 아기 고양이를 본다면 은총이에게 그랬듯 멋쩍게 먼저 말을 걸 것 같다.

 

편견 없이 무조건 싫어하지 말고 비판하지 말고 은총이처럼 그렇게 우리 어른들도 살아볼 수는 없을까? 아니 그렇게 살고 싶을 거다. 어른들도 다들 은총이 같았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린 순수함과 겁 없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강풀 작가의 딸은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위해 동화책을 만든 아빠가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나도 한 번 도전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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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메이커 혁명
베벌리 슈왈츠 지음, 전해자 옮김 / 에이지21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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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의 책에서『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간다』라는 문장을 봤을 때 ‘이거구나~!’했다. 이후 좌우명처럼 삼고 20대를 보냈다. 신영복 선생과 비슷한 말을 하는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는 걸 보며 ‘뭔가 되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바보 같고 우직한 사람들이 여전히 이 세상에 있고 그들로 인해서 더디지만 이 세상이 조금씩 바뀌어 갈 거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허망했던 지난 십여 년을 지내며 신영복 선생의 저 말이 희망고문에 불과하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우직하고 바보 같은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사라져 갔다. 여전히 이 세상은 어리석지 않고 우직하지도 않고 바보 같지도 않은 사람들이 꽉 쥐고 있을 뿐이었다. 그 어떤 것으로도 깨뜨릴 수도 부숴버릴 수도 없는 강철 같은 저 사람들에 의해 이 세상은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많은 말과 책과 권면과 힐링이 쏟아지는 데도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결국 세상을 주무르고 만들어가고 계획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렇게 어리석고 우직하게 바보같이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기록이 담긴 책을 만났다. 처음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넘쳐나는 처세술 따위를 기술하거나 어디서 짜깁기 한 듯한 내용의 경영계발서인 줄로만 알았다.

이 책 「체인지 메이커 혁명」은 종종 책의 제목만 보고 책의 내용을 판단하려고 했던 나의 아둔함에 뒤통수를 후려친 책이다.

 

“빈곤, 불평등, 부당함이라는 연못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변화의 물결” (p.42)

 

변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이 시대에도 이 세상에도 세계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위로를 받았다. 존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속한 조직과 공동체, 국가를 그 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바꾸고 있는 실례를 책에서 접하고 놀라웠다.

전 세계적인 문제인 빈곤과 불평등, 부당함이라는 도저히 바꿀 수 없고 바꿀 엄두조차 나지 않는 잘못된 시스템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소개 받는 것이 여전한 멘붕 상태에서 허우적거리는 내게 힘이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큰 연못을 마주하면 두렵다. 시커먼 물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가만히 두면 그 두려움은 실체가 되기 마련이다. 작은 돌 하나라도 던져야 연못에 파문이 인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사는 이 사회가, 이 세상이 조금 더 평화롭고 조화로우며 정의로웠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누구나 한다. 하지만 실제로 행동하고 작은 돌이 되어 거대한 연못에 파문을 일으키는 데까지 이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이 책에 소개된 18명의 체인지 메이커들은 진짜 대단한 사람들임에 틀림 없다.

 

“이 책은 특정 사회문제에 있어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한 우리 시대의 뛰어난 사회혁신가 18명에 관한 기록이다.” (p.11)

 

 

독일, 우르술라 슬라덴

 

  “주택 단지 난방 발전소와 태양열판 설치를 시작으로 EWS는 자체 에너지의 일부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백 년간 지속되어온 독일 거대 전력회사들의 독점이 깨진 것이다.” (P.55)

 

지난 해 연말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 갑자기 인상됐다. 그렇게 747을 외치던 지난 정권은 거듭된 정책 실패와 능력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공공요금만큼은 인상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정권 말기에 도둑질 하듯 5년 동안 묵혀두었던 것을 터뜨려 버렸다. 실제로 엄청나게 인상된 요금 명세서를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내려갈 때는 2원씩 많으면 5원씩 내려가는 기름 값은 올라갈 때는 10원씩 20원씩 올라간다. 모두가 독점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늘 국외 경기를 들먹거리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독·과점적 구조이다.

백 년간 지속된 독일 거대 전력회사의 독점 구조를 깨뜨린 사람은 평범한 가정주부 우르술라 였다.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공동으로 소유해 공급할 수 없을까?’라는 그녀의 생각 하나로 EWS 라는 전력 회사를 만들었고 지금은 여러 국가에서 기술을 배워가고 벤치마킹하는 미래지향적 회사로 입지를 굳혔다.

‘국가가 요금을 올리는 데 뭘 할 수 있겠어?’가 아니라 ‘바꿔보자~!’라는 생각이 변화를 가져 온 것이다.

 

 

인도, 프라딥 쿠마르 시마 박사

 

  “왜 인력거꾼은 자기 인력거를 갖지 못하는 걸까? 한번 떠오른 질문은 그 후로도 계속해서 프라딥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p.77)

 

나는 인력거를 타지 못했지만 인도에 사는 프라딥 박사는 인력거를 많이 탔다. 교통체증이 서울의 그것보다 심했으면 더 심한 인도의 거리에서 인력거는 꼭 필요한 교통수단이라고 한다. 인도에서 인력거를 이용하는 사람은 무수히 많은 것이다. 하지만 프라딥 박사처럼 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몇 이나 될까? 그는 우연히 인력거꾼과 나눈 대화 이후 계속해서 이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분명 수많은 사람들이 인력거를 이용하고 인력거꾼은 그들의 정당한 노동을 수행하고 있는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 

 

“인도 가우하티에 본부가 있는 농촌진흥센터(CRD)의 사무총장인 프라딥 쿠마르 시마 박사는 전직 수의사이다. 그는 인도의 인력거꾼들이 대물림되는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그들이 끄는 인력거의 소유주가 되도록 은행 대출과 보험 보증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수천만 인력거꾼의 지위를 향상시켜 놓았다.” (p.75)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편하게 인력거를 이용하고 나서 다음에 또 이용하면 그만이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인력거를 타고 내리고 인력거를 대량으로 소유한 채 인력거꾼에게 부당한 처우를 하는 인도 마피아들에게 작은 돌을 던지려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없다. 하지만 프라딥 박사는 그렇게 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고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끄는 사람도 불편하고 타는 사람도 불편하기만 한 인력거를 인체공학적으로 개발해 보급하고 회사와 금융당국에 직접 보증을 서기도 하고 오랜 시간 설득하고 토론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변화를 이끌어 냈다.

 

 

페루, 알비나 루이즈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를 문제로 보는 것과는 달리, 그녀는 기회로 보았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회, 환경을 향상시키는 기회, 공중위생을 향상시키는 기회, 더 많은 사회 혁신가들과 정치 및 사업적 기업가들을 창출하는 기회” (p.164)

 

페루의 알비나 루이즈는 청운의 꿈을 안고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한 아가씨였다. 잔뜩 기대를 갖고 시작한 도시의 생활은 며칠 만에 산산조각 났다. 그녀가 사는 곳이 너무 더러웠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내는 쓰레기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예전 상황처럼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온 엄청난 사람들은 제대로 된 도시계획 하에서 정착하지 못했다. 그래서 상·하수도는 물론 쓰레기 처리에 대한 시스템도 미비했다. 그리고 그녀는 발견했다. 자신이 사는 곳의 주요 골목이 쓰레기 수거 차량이 다니기에 너무 좁았던 것이다. 아주 간단한 문제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부분이다. 그래서 그녀는 기관과 행정 당국에 건의하고 아이디어를 제공해 도시의 골목골목을 누빌 수 있는 쓰레기 차량을 만들었다. 이후 남미의 많은 국가들에 이러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한다. 처리되지 않은 넘쳐 나는 쓰레기들을 보고 ‘왜 이렇게 더러워~! 아이~ 냄새야~’라며 코를 잡은 채 인상 쓰고 지나가면 아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독일, 안드레아스 하이네케

 

“‘다른 쪽으로 능력을 지는 사람들’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로 만드는 것은 바깥세상이지 그들 자신은 아닌 듯하다. ‘정상적인’사람들은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힘을 빼왔다.” (p.243)

 

‘다른 쪽으로 능력을 지닌 사람들(the differently abled)’

이렇게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장애인을 보는 우리의 관점과 인식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독일의 안드레아스는 그들을 보는 우리의 눈부터 바꾸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것도 하지 못하고 저것도 하지 못해 일일이 따라 다니며 도와줘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분명 ‘다른 쪽의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보는 전환이 필요하다.

 

“시력을 아주 잃은 이들과 약시인 이들로 구성된 안내자들은 어둠 속에서 방문객들의 눈을 뜨게 해줍니다. 그때 방문객들이 비로소 보게 되는 것은 시력을 잃은 이들의 세상이 자신들의 세상에 비해 그저 다를 뿐! 더 나쁠 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p.246)

“1988년 이래 35개국에서 열린 160회의 전시와 이벤트에 700만 명이상의 체험객이 다녀갔다.” (p.249)

 

그는 우리의 관점뿐만 아니라 ‘다른 쪽으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의 관점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불행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의 관점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기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깜깜한 건물 내부를 체험하는 프로젝트다. 이 체험은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과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가진 기존의 생각을 180도로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암흑에서 시력을 잃거나 약시인 사람들은 그들이 지닌 다른 감각 능력으로 방문객들을 안내하고 방문객들의 또 다른 눈을 뜨게 해주었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미 7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를 체험했다고 한다.

안드레아스의 작은 인식의 전환으로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덴마크, 토킬 손

 

“대부분의 자폐치료법이 역점을 두는 것은 그 사람을 기존의 사회 환경에 딱 맞도록 말 그대로 주조하는 데 있다. 그 반대의 상황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p.259)

“그들은 낡은 사고방식의 틀을 바꾸는 데 아주 탁월하다. 그들이 자폐증을 바라보는 시각을 예로 들어보자. 그들은 ‘긍정적인 산만함’으로 새롭게 정의한다.” (p.29)

 

앞서 안드레아스의 경우처럼 덴마크의 토킬 손은 자폐를 바라보는 인식을 전환하는 것에서 변화를 시작했다. 자신의 아들이 자폐 진단을 받고 나서 유럽에서 장애인 복지 제도가 가장 잘 되어 있다는 덴마크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과 권리는 모두 찾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다른 유럽의 나라들은?’, ‘다른 국가들은?’ 그는 자폐를 가진 이들에게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맞출 것을 주문한다. 억지로 그들을 우리의 것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맞추는 것이다.

 

 

“리플링(rippling) : 사회 변화의 연못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키는 것. 빈곤, 불평등, 부당함과 같은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근본 원인에 문제 제기를 하고, 이를 위한 지속적인 해결책으로써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행동, 그리고 그 행동의 영향력이 파문처럼 바깥세상으로 널리 멀리 퍼지게 하는 것.” (p.331)

 

내가 소개한 5명의 체인지 메이커들 말고도 이 책에서는 13명의 체인지 메이커들의 신나는 변화를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그들이 일으킨 잔잔한 파문으로 공동체가 변화하고 구조가 개선되는 기적과 같은 일을 함께 처험한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것처럼 재미있다. ‘한국의 체인지 메이커의 사례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운 마음 감출 수 없었지만 이러한 체인지 메이커들의 네트워크인 ‘아쇼카’라는 그룹이 얼마 전 한국에도 생겼다고 하니, 혹시 다음에 2권이 출간된다면 한국에서도 파문을 일으키는 체인지 메이커가 소개되기를 희망한다.

 

“공동체의 근간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서 이웃에게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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