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8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할머니 댁은 시골이다. 시골 중에서도 시골.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때까지 소를 키웠다. 아궁이에 불을 떼어 소죽을 끓이시던 할아버지 모습이 생생하다. 아궁이는 하루 종일 따뜻했다. 그래서 유독 고양이가 많았다. 검은 색 고양이였는데 이름은 나비였다. 고양이가 여러 마리 있었는데 모두 이름이 나비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눈에는 똑같은 고양이로 보이셨는지 밭일, 논일 하기도 바쁜데 한 마리 한 마리 구분해가며 이름을 지어줄 시간이 없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검은 고양이는 모두 나비였다. 가만히 아궁이 앞에 서서 나비를 보고 있으면 재미있었다. 따뜻한 아궁이 옆에 웅크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시골에는 고양이 말고도 내가 좋아하던 강아지도 있었다. 깐돌이라 불리던 강아지인데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녀석이었다. 소죽 끓이던 구수한 냄새도 나고 따뜻한 아궁이 곁에 놓아두고 놀고 싶었는데 매번 그곳은 매번 나비 차지였다. 매번 그런 나비에게 어느 날인가 괜히 심통이 나서 그날도 어김없이 아궁이 곁에서 자고 있던 나비를 부지깽이로 쿡 찔렀다. 자다가 갑자기 봉변을 당해 후다닥 담벼락으로 뛰어 올라갔다. 이후에도 나비가 보이면 돌멩이를 던지기도 하고 소리를 질러 쫓아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할머니에게 된통 혼이 났다. 개든 고양이든 괴롭히면 안 된다고 하셨다. 숨 붙어 있는 것들은 사람이나 매 한가지니 괴롭히지 말라고 하셨다.

요즘은 동물애호가다 생태주의자다 해서 동물들을 위해 손발 걷어붙이고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나는 별로 달갑지 않다. 채식주의자에다 동물애호가라고 떠벌리던 여자 연예인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가죽 가방을 들고 다니는 걸 보면서 가식이고 위선이다 싶었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가 동물들을 대할 때 우리가 보기에 함부로 하는 것도 같고 큰 관심이 없어서 먹던 음식 담아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같은 생명을 대하는 마음은 그 분들이 훨씬 낫다. 애써 떠벌리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한 집 안에서 살고 있는 개, 고양이, 소, 염소 한 마리 한 마리를 가족 같이 여기는 마음은 본받을 만하다.

 

이 책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를 읽으며 계속 돌아가신 내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귀하디귀한 손주에게 버럭 화를 낼 정도로 분명히 가르치시고자 했던 생명을 대하는 마음자세를 곱씹었다.

이 책은 참 착한 책이다. 원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화로 만들어졌다가 성인들까지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책에는 총 6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나산강의 물귀신 소동>, <두발로 걷는 족제비>, <밤의 사냥꾼 살쾡이>, <긴 꼬리 들쥐에 대한 추억>, <조폭의 개>

작가가 책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6편의 작품들은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했거나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작품들이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들과 더불어 잘 사는 것도 너무나 버거운 숙제가 되어버린 현실이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곁에 있는 동물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돌아가신 고(故)권정생 선생님의 책 「우리들의 하느님」을 읽으며 나를 둘러싼 자연에 대한 느꼈던 고마움을 다시 상기했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결코 놓치지 않아야 할 우리들의 하느님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책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오리와 살쾡이, 수달, 족제비, 들쥐, 개는 우리들과 가까운 녀석들도 있고 아닌 녀석들도 있다. 하지만 다 같이 숨이 쉬는 존재들이다. 그들이 나의 하느님이 될 수도 있고 내가 그들의 하느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검둥오리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오리야말로 너무 약한 동물이라고 탄식했다. 날카로운 발톱이나 송곳니도 없고, 다람쥐처럼 나무를 잘 타지도 못하고, 노루처럼 빠르지도 않고, 두꺼비 모양으로 몸을 크게 부풀려서 상대방에게 겁을 주지도 못한다. 새들같이 날 수도 없고, 두더지마냥 땅을 파고 숨는 재주도 없다.” (p.29)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에서 검둥오리가 양갑수씨 댁 연못에 살면서 주변 동물들에게 친구들을 모두 잃고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앞에서 하는 푸념이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동물들의 생김새와 특성, 무엇보다 습성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나와 있는데 이 작품을 읽는 소소한 재미가 되었다. 애초에 동물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쉽게 지나칠 수 있을 텐데 작가인 이상권씨는 놓치지 않고 자세하게 그려낸다. 일상에서 쉽게 만나지 못하는 수달과 살쾡이, 족제비 같은 녀석들의 특성과 습성에 대한 묘사는 동물이 나오는 다큐멘터리의 나레이션처럼 친절했다

 

 

“당연히 보이지 않겠지. 그놈들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 어디론가 갔을 거야. 어미 수달이 다 나았으니까 다시는 강으로 내려오지 않을 거다. 이제 더 이상 찾지 마라.” (p.74)

 

<나산강의 물귀신 소동>에 나오는 수달은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지는 오래지만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것은 2012년이라고 한다. 흔히 볼 수는 없지만 도심 하천에서도 종종 보이기도 하는 동물이어서 멸종위기종인지는 몰랐다. 물속에서는 그 어떤 동물보다 날렵하고 재빠른 수달을 보고 물귀신이 있는 것으로 오해한 사람들은 물귀신의 존재가 수달인 것을 알자 다시금 들러붙는다. 예전에 무분별한 포획으로 멸종위기까지 왔는데도 불구하고 몸에 좋다는 이유만으로 그물을 놓고 잡으려고 혈안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 하다. 예전에 무슨 동물이 몸에 좋다. 정력에 좋다. 소문이 퍼지면 전국적으로 그 동물이 씨가 마를 때까지 잡아댄다. 무슨 식물이 항암효과가 있다더라. 하면 삽시간에 온 동네 야산은 쑥대밭이 된다. 늘 그래왔던 것 같다.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던 것 같다. 사람은, 인간은 늘 일방적으로 가해자였다. 다시는 사람 곁으로, 인간 곁으로 내려오지 않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그 탐욕을, 그 욕심을.

 

 

“문태야, 이제 그만둬라. 틀림없이 그 족제비가 물어 갔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족제비는 절대 가축은 물어 가지 않았는데….” (p.101)

“할머니, 지금은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이 아닙니다. 어떻게 족제비가 복수를 해요? 족제비는 어디까지나 짐승입니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한낱 짐승한테 잘못했다고 빕니까? 참, 누가 들으면 웃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더 이상 병아리는 없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p.103)

 

수달만큼 족제비도 흔한 동물은 아니다. 기껏해야 동물원이나 TV를 통해서 볼 뿐이다. <두발로 걷는 족제비>에 나오는 족제비는 <나산강의 물귀신 소동>에 등장하는 수달보다 더 집요하고 철저하게 공격 받는다. 문태라는 한 사람에 의해서. 돌아가신 내 할머니가 곁에 있는 동물들은 소중히 여기라고 하시면서 특히 고양이는 영험한 동물이니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었는데, 족제비도 그런가 보다. 단순히 미신이 아니라 오랜 세월 살아온 삶의 지혜이기도 하고 그 어른의 어른으로부터, 또 그 어른의 어른으로부터 전해 내려오고 삶의 가르침으로 이어 온 가르침이기 하다. 나산강에서 살던 수달은 인간들을 피해 강을 떠나는 것으로 끝났지만 두발로 걷는 족제비는 원래 습성에서 벗어나 가축을 공격하는 데 까지 이른다.

무분별한 에너지 사용과 대책 없는 낭비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 되면서 이제 지구의 복수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 여름 폭염은 기승을 부리고 한 겨울 혹한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오랜 시간 가만히 있다가 한 번에 터뜨린 것처럼 두발로 걷는 족제비는 문태의 공격에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밤의 사냥꾼 살쾡이>에 등장하는 살쾡이도, <긴 꼬리 들쥐에 대한 추억>에 등장하는 들쥐도, <조폭의 개>에 등장하는 콜리의 삶은 결국 인간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인간들이 그들을 대하는 마음과 자세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인정은 해야 한다. 성경을 잘못 인용해 자연을 인간이 다스려야 할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사람들은 당장 마음을 바꿔 먹어야 한다. 성경 인용이 아니더라도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존재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도 돌이켜야 한다. 더군다나 그들을 인정하고 배려하고 도와주는 척 하면서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당장 그 행동을 그만두어야 한다.

말하지 못하는 짐승조차도 자기 식구처럼 대하고 함께 살던 예전 어른들의 삶의 자세와 겸허한 마음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에는 우리, 사람들 곁에는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욕심과 탐욕으로, 우리의 무지와 몰이해로, 우리의 위선과 가식으로, 우리의 성급함과 아집으로 그들을 놓쳐버릴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터전을 뺏고 우리만의 잣대로 그들을 판단하고 가치를 매겨버릴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가 성인도 대상으로 볼 수 있게 새롭게 출간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오히려 이런 내용의 책은 성인들이 더 많이 읽어야 한다. 어린 아이이던 시절 가졌던 순수한 마음과 욕심 없는 눈망울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 순수함과 욕심 없음을 충전해야 한다.

가만히. 한참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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