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온 넷우익 -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
야스다 고이치 지음, 김현욱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일베에 대해서 한 동안 엄청나게 뉴스를 쏟아내더니 요즘은 통 소식이 없다. 매일매일 새롭고 놀라운 뉴스가 쏟아지는 ‘다이내믹 코리아’다 보니 일베 뉴스쯤은 과감하게 묻혀 버린 것 같다. 한국에 존재하는 뉴스를 전하는 언론사가 제대로 된 곳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한창 일베 문제로 뜨겁던 때 이 책을 사놓고 이제야 읽었다.

이 책 「거리고 나온 넷우익」은 일본 내 우익 시민 단체 ‘재특회’에 대한 탐사보도를 담은내용이다. 사실 엄밀히 보자면 한국의 일베나 일부 극우 트위터가 쏟아내는 내용과는 의미상 많은 차이가 있다. 일본의 그것과 한국의 그것이 존재론적으로는 비슷한 형태로 존재하고 유지되고 있지만 지향하는 바는 많이 다르다. 이것이 꽤 흥미로웠다.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는 재일 코리안을 비롯한 외국인이 일본에서 부당한 권리를 누리고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세력을 키워 온 우파 시민 단체이다.” (p.12)

 

재특회는 일본 내 재일 코리안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존재한다. 특히 그들의 주된 공략대상은 재일코리안이다. 우리가 흔히 재일동포라 부르는 이들이다. 사실 재일코리안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은 큰 관심이 없다. 예전에야 당연히 차별을 받았으려니 생각했는데 이제는 일본과 관계도 좋고 두 나라 모두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적으로 발전을 이뤘는데 실제적인 차별이 존재할까 싶었다. 그런데 여전히 재일코리안들은 차별에 더해 꼴통 같은 우익 단체에 의해 테러를 당하는 지경이라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한국의 일베와 극우 트위터들 또한 비슷한 맥락이다. 이미 다 검증되고 끝난 역사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을 이야기하고 이미 결론난 광주 민주화 항쟁이나 여타 민주항쟁을 폄하하는 등 한쪽으로 과도하게 경도된 역사의식을 그대로 현재에 대입한다.

 

 

“재일코리안은 불과 50만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소수자다. 재일 코리안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1억2천만 명이나 되는 일본인의 수야말로 두렵지 않을까?” (p.217)

“무섭게도, 재일특권에 관한 헛소문은 아무런 검증도 없이 인터넷에서 널리 확산되고 있다. 이것을 보고 ‘진실을 알았다.’며 충격을 받아 재일 코리안을 증오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p.221)

 

일본 내에서 ‘한류’다 뭐다 해서 한국의 보이, 걸그룹들이 한창 판을 치던 때 일본 내 시민들이 후지TV를 향해 반한류 시위를 벌인 뉴스가 뒤늦게 한국에서 보도된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도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재특회라는 단체에 가입하거나 그들을 후원하고 지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가입, 후원, 지지에 대한 동기가 있었다. 2002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의 반일본 정서(일본과 터키의 16강전에서 터키가 승리하자 길거리 응원에 나선 한국 사람들이 엄청나게 좋아하고 기뻐했던 장면)를 확인 한 후 가입한 사람, 인터넷에서 재특회가 올린 자료들을 보고 후원하게 된 사람, 「험한류」라는 책을 읽고 난 후 지지하게 된 사람 등 다양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었다. 한국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이다.

이것을 가장 극적으로, 감정적으로 사용한 사람들이 바로 재특회라는 것이다.

90년대 경제 불황이 가속화되고 청년일자리가 급격하게 감소하게 되면서 은둔형 외톨이 내지는 사회부적응자가 대량으로 양산되었다. 남들처럼 대학공부를 마치고 노력했음에도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없고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인터넷으로 돌파구를 삼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절망과 허탈함의 칼날을 겨눌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경향이 2000년대 초반까지는 어느 정도 정화가 가능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2000년 중반을 넘어서면서 극단적인 형태로 기형적으로 진화된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비슷하다. 최초 진보적 색채가 강하던 게시판들이 어지러워지고 색채가 불분명해지면서 여러 게시판과 사이트가 속출했다. 포털 또한 한때 대단한 인기가 있었지만 이런 게시판과 사이트들의 대부분이 그렇듯 생존 주기가 굉장히 짧다. 비슷비슷한 성향과 분위기의 게시판과 사이트들이 많아지면서 조금 더 자극적이고 조금 더 극단적인 곳이 생겼다. 사람들의 본성을 계속해서 건드리며 커진 것이다.

 

 

“채널 사쿠라는 사쿠라이의 비상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아니, 인터넷 세계에 머무르던 ‘Doronpa’를 한국 문제 전문가 ‘사쿠라이 마코토’로 만든 최대 공로자이자 산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44)

 

재특회의 회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사쿠라이 다카다는 언론이 키워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너도나도 개인이 가진 의견을 마음대로 피력할 수 있는 곳(물론, 한국은 제외)이기에 다카다도 사쿠라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 인터넷 내에서 어느 정도 지지자 내지는 추종자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오프라인의 지지와 인기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재특회의 사쿠라이의 경우와 같이 언론의 보도로 인해 순식간에 영향력 있는 사람과 단체가 되는 경우가 가장 빠른 케이스다. 사쿠라이와 재특회는 더 자극적이고 더 재미있는 것을 찾는 언론사의 생리에 그대로 부합하는 사례였다. 그들로 인해 사쿠라이와 재특회는 일본 내에서 급속도로 인기를 얻는다.

한국의 경우도 동일하다. 특정 보수 트위터리안의 경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름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종편이라는 기형적 괴물의 탄생으로 인해 그 트위터리안이 하루에도 여러 종편사의 프로그램에 나와 소위 보수논객이라 불리며 활동했다. 인터넷에서는 이미 유명했지만 종편에서 처음 그 사람을 본 시청자들은 재특회와 사쿠라이의 등장에 환호 했던 그들의 지지자들과 추종자들의 그것과 비슷한 형태의 지지와 응원을 보냈다.

 

 

“언론 따위는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비판적인 논조라도 자신들의 활동이 언론에 보도되면 순수하게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취재를 받을 때마다 일부러 블로그에 보고 할 정도니까요. 아마도 세상으로부터 보수파 논객으로 인정받고, 높은 평가를 받고 싶은 거겠죠. 그렇지만 그를 지식인으로 평가하는 언론은 없었어요. 학계에서도, 언론에서도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죠? 그래서 애태우고 있을 거예요.” (p.264)

 

이쯤에서 정말 궁금했다. 왜 사람들은 조금만 살펴보면 말도 안 되는 논리에 그치는 것에 열광할 수 있는 것일까? 단순히 사회로부터 거절당하는 아픔을 알고 있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이해받거나 공감을 얻지 못한 개인적인 경험이 전부일까?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노력했지만 안정된 삶을 구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특정 소수에 대한 증오로 표출되는 것이 과연 사회심리학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타자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단순히 인터넷 댓글이나 게시판의 글 작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감히 오프라인으로 뛰쳐나와 목소리를 내고 심지어 기가 막힌 행동도 서슴지 않는 지경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대형마트 전자제품 매장에 고 노무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바탕화면이 깔린 적이 있었다. 그것을 손님이 항의하고 언론사에 알리면서 뉴스가 되었다. 경찰이 그 게시물을 올린 사람을 잡고 보니 대형마트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젊은 남자였다. 별 생각 없이 재미로 올렸다고 했다.

 

 

“내가 접한 수많은 재특회 회원이나 넷우익의 얼굴이 오카모토의 착한 표정과 겹쳐 보였다.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우면서도 그들은 무언가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연대를 원하고, 모순에 얽매인 채, 실상조차 명확하지 않은 적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고 있었다.” (p144)

 

이 책의 저자 야스다 고이치는 재특회를 수년 간 취재해 온 사람이다. 재특회에 속해 있거나 탈퇴한 수많은 사람을 만나서 밥을 먹으며 대화하고 취재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일본 내에서도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재일코리안과 외국인들에 대한 맹목적인 공격과 적개심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그들은 거리에서는 전사였다고 한다. 분노로 가득찬 눈빛과 표정, 때로는 살의가 느껴지는 그들의 말과 행동. 하지만 또 대다수의 재특회 회원이나 넷우익 사람들을 거리가 아닌 일대일로 만났을 때는 착하고 선량한 시민들이었다는 것이다. 대형마트 전자제품 판매장의 한 제품 바탕화면에 그런 화면을 설치하는 행위 자체에 별다른 법적·도덕적·상식적 판단을 하지 않고, 단지 재미로 그 행위를 했다는 그 선량한 젊은 남성의 모습도 동일한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명확하지 않은 적을 설정한 채 그저 그들만의 폐쇄된 리그에서 좀 더 재미있고 좀 더 클릭과 추천을 받을 수 있는 글을 위해 더 자극적이고 더 극단적인 것에 골몰하는 그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더 무섭다. 공포다. 차라리 예전처럼 명확한 적을 두고 하는 싸움이라면 무섭기는 하지만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맞붙을 수 있다.

 

 

“재특회는 명쾌하죠.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하지만, 너무 명쾌해서 공포를 느끼지는 않아요. 제가 무서운 건 재특회를 인터넷에서 칭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을 거라고 생각하면 솔직히 너무 괴로워요.” (p.368)

 

실제로 재특회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조선학교 학생의 학부모이자 재일코리안의 하소연이다. 재특회에서 탈퇴하거나 그전보다 재특회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이것이다. ‘나중에 돌아보니 재특회의 운동 방법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좀 지나친 면이 있어요.’ 이 책에서 가장 놀랐던 재특회 구성원의 고백은 ‘내 친구들 중 60%가 재일코리안이에요. 재특회를 벗어나고 보니 내가 왜 그랬나 싶어요. 내 친구들에게 “바퀴벌레 같은 조선놈들”, “죽어라.”, “꺼져라.” 한 것이잖아요.’ 명확하게 오프라인에서 대놓고 활동을 한 사람들은 돌이키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키보드 뒤에서 클릭으로 무언의 동조와 지지를 보내는 불특정 다수의 병리적 심리가 더 무서운 것이다.

일베와 우익 트위터리안에 대한 사그라지지 않는 지지와 추종은 재특회의 명확한 대상과는 다른 형태일 뿐 존재방식은 비슷하다. 보수층에서도 부담스러워하고 그들의 폭주를 한심스러워하지만 대놓고 말리지는 않는다. 왜?? 내 손에 똥 묻히지 않아도 되니까. 궂은 일 나서서 해주는 데 왜 말리나!! 일정 정도 거리만 두고 있다는 스탠스만 취해주면 만사 오케이다. 나서서 진보 진영과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을 공격해 주고 있는데 상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나서서 혹은 대놓고 응원하고 격려하지 못할 뿐이지 한 편이다. 한 통속이다.

 

 

“보수파는 예의 바르고 얌전하며 말을 잘 못하는 사람들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쿠라이는 달랐다. 사쿠라이의 입은 속사포 같았다. 한없이 공격적이고 무자비했다. 보수파에도 이렇게 강력한 사람이 있나 싶어 감동했다. 평소 자신이 가진 불만이나 의문을 사쿠라이가 모두 대변해 주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p.73)

 

좀 부담스럽고 논리에 맞지 않는 것 같고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우리 쪽에도 저렇게 젊은 사람이 가감 없이 말하고 나서서 입진보들과 친북, 종북 세력들을 깨부숴 주니까 속 시원한 것이다.

 

 

“그날은 회장인 사쿠라이도 왔는데 연설을 잘하더군요. 난해한 말도 없고 명쾌해요. 그런데 노조는 싸움을 해도 어려운 말을 해요. 재특회가 훨씬 더 인민에 가깝죠.” (p.347)

 

지난 주 서울로 휴가를 다녀왔다. 대규모로 열린 촛불집회에 잠시 참석했다. 열기는 뜨거웠다. 특정 세력이 집회를 움직이거나 선전·선동하지 않았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싸온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집회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시청광장을 완전히 가로막은 경찰버스와 여전히 무대에 올라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연설이 귀에 거슬렸다. 무슨 말인지 별로 관심 없는데 자꾸만 군중연설을 이어갔다. 좀 더 세련되고 간지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형태는 없나 싶었다.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분면 달라졌는데 집회 형식은 여전히 70∼80년대의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이 집회가 얼마나 갈까?’ 회의가 들었다.

많은 일본인들이 사쿠라이와 재특회에 열광한 이유 중 큰 요인이 사쿠라이 개인의 매력이었다. 과도한 행동과 무분별하고 폭력적인 구호가 많기는 하지만 쉽고 명쾌하게 연설을 하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늘 진보입네 하는 노조는 어려운 말만 하더라는 것이다. ‘재특회가 훨씬 더 인민에 가깝다.’라는 말은 충격적이다. 촛불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정치인, 단체장, 노조지부장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외칠 뿐이었다.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언어로 이야기 했다면 더 큰 호응과 지지, 응원을 받았을 것이다.

한국의 진보는 늘 입진보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늘 아귀다툼이다. 조금만 틀어지면 갈라선다. 입법하나 제출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한 것 같다. 자기들만의 언어로 부르짖으니 들을 수 없다. 여전히 자신들이 ‘가장 옳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그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한국의 진보가 대중과 국민, 인민과 점점 괴리된다면 표류하는 민심은 또 다른 형태의 한국판 사쿠라이와 재특회에 열광할 지도 모를 일이다. 또 다른 형태의 일베가 계속해서 탄생할지도 모른다.

 

대중은, 국민은, 인민은 더 이상 영웅을 원하지 않는다. 영웅 한 명이 세상을 구원하지 못한다. 진보입네 하는 양반들께서는 이제 그만 상석에서 내려 오셔서 대중과 국민과 인민의 눈높이에 기꺼이 당신들의 눈을 맞추고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 노력이 없는 이상 거리로 나서는 촛불민심도 당연히 당신들 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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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리 마타이 - 아프리카에 3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 문학동네 세계 인물 그림책 8
프랑크 프레보 글, 오렐리아 프롱티 그림, 정지현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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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1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꿈을 꾸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의 꿈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아이들이 말하는 꿈이 부모의 꿈인지, 사회가 어느 정도 선에서 안정을 기준지은 꿈인지 알 수가 없다. 일단 수능을 치고 원서를 쓰고 대학에 입학한 뒤에는 더 이상의 꿈이 이어지지 않는다. 활어와 같이 팔딱팔딱 살아 숨 쉬어야 할 아이들의 입에서는 ‘안정된’이라는 형용사가 바로 나온다. ‘안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모르겠다.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의 입에서 ‘안정’, ‘안정된’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게 만든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그 아이들의 부모? 학교? 사회? TV? 하나의 대상으로 특정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다. 어쩌면 그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한 후 직장 생활을 하고 배우자를 만나 결혼한 후에도 딱 떨어지는 해답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안정’과 ‘안정된’것을 추구한다. 직장도, 가정도, 대인관계도, 종교도……. 위험하지는 않지만 뭔가를 바꿀 수 있는 동력은 상실 된다.

 


이 책 「왕가리 마타이」의 주인공 왕가리 마타이는 ‘안정’과 ‘안정된’것을 추구하기보다 ‘변화’와 ‘모험’을 추구했다. 그래서 보다 나은 삶과 사회, 공동체를 만든 사람이다. 아프리카의 어린 소녀들의 대다수가 그런 것처럼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엄마의 일을 돕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면 결코 그녀를 통해 만들어진 변화와 발전은 꿈꿀 수도 없었을 것이다.

‘왜 나는 학교에 가지 않고 집안일을 해야 하지?’ 라는 물음에서 ‘변화’와 ‘모험’이 출발된 것이다.

 

“무화과나무 그늘에서 엄마는 ‘한 그루 나무가 숲보다 귀하단다.’ 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왕가리는 이 말을 평생 동안 마음속에 간직했습니다.” (p.11)

“영국인들 좋은 땅을 차지하고는 이름을 마음대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을요. 또 차를 재배하려고 수많은 나무를 베어 버렸다는 것도요.” (p.13)

 

엄마를 통해 알게 된 무화과나무와 그 나무의 그늘이 주는 따뜻함과 포근함을 기억 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주는 유익에 감사 했다. 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고 책을 읽으면서 어떤 사람들이 숲에서 나무를 베어 가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무를 심는 ‘단 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 한다.

얼마나 무모하고 어이없으며 콧방귀 뀔 결심인가?

 

‘뭐!! 나무를 심는 다고? 나무를 베야 커피도 심고 다른 작물도 재배해서 돈을 벌지?’

‘쳇!! 니까짓 게 뭐? 나무를 심는 다고? 몇 그루나 심는 지 보자!!’

 


“나무의 소중함을 모르는 새로운 지도자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케냐 사람들은 스스로 숲을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케냐를 지배하던 영국인이 그랬던 것처럼 나무를 베어서 팔았습니다. 그다음엔 숲을 없앤 땅에 차나 커피, 담배처럼 부유한 나라에서 원하는 작물을 재배해 돈을 벌었습니다.” (p.19)

 

그녀는 나무를 심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여자의 몸으로 말이다. 케냐를 식민 지배하던 영국인들이 물러간 후에도 숲을 파괴하고 나무를 베어가는 일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케냐인들 스스로 그들의 숲을 도려내고 나무를 뽑아냈다. 그렇게 하면 영국인들이 식민 지배하면서 돈을 벌어간 것처럼 그들도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왕가리는 케냐땅 곳곳에 묘목장을 세워 사람들에게 나눠 줄 묘목을 키우고, 사람들이 나무 한 그루를 제대로 키워 낼 때마다 보상금을 주기로 합니다.” (p.24)

“왕가리는 나무를 심는 일에 힘쓰면서도, 한편으로 케냐에 민주주의를 자라게 하고 싶습니다. 민주주의는 이 나라의 법을 모두가 함께 자유롭게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p.31)

 

왕가리 마타이는 그녀의 조국 케냐가 여전히 궁핍한 형편을 벗어날 수 없었던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미국 유학은 출셋길이 열리고 안정되고 탄탄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비밀 도면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케냐인들을 압제하던 영국인들도 몰려갔고, 미국 유학도 갔다 온 엘리트. 그녀는 새롭게 힘을 가진 지도자들과 함께 ‘잘 먹고 잘 살 수’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세계 최고의 학구열로 교육되어 온 한국의 고3들이 기계처럼 엄마의 꿈을 자신의 꿈인 것처럼 말하듯이, 왕가리 마타이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고 엘리트들이 살아가는 코스로 갈 수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자신의 삶을 선택했더라도 아무도 그녀를 비난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모두들 그렇게 살아가니까.

그런데 그녀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바보같이.

 

“왕가리는 그녀를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과 함께 3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지금도 매일 새로운 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p.35)

<!

조국 케냐에서 그녀는 두 가지에 매진했다. 조국 케냐의 민주화와 나무 심기. 두 가지 모두 무모하고 어리석고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 재미없고 지루한 주제다. 베어내기에 급급했던 벌거숭이 땅에 3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3만 그루도 아니고 3천만 그루.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후 기형적으로 탄생된 독재정부가 물러난 후 그녀는 정부 요직에 진출했다. 환경부 차관일을 하면서도 그녀는 케냐의 숲과 나무를 살리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고 한다.

혀를 차고, 콧방귀를 뀌고, 모두들 불가능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하던 일이 그녀 한 사람의 결심과 용기 있는 한 걸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이 고사상어를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신영복 선생은 이 고사성어를 이렇게 풀었다.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 갑니다.’

똑똑한 사람이,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모두들 가는 성공코스로 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잘할 수 있으며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에 매진하고 용기 있게 한 걸음씩 내딛는 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바뀌어 간다는 것이다. 결코 ‘안정’과 ‘안정된’것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이미애씨가 쓴「사막에 숲이 있다」라는 책이 생각났다. 중국 내륙 마오우쑤 사막에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든 ‘인위쩐’이라는 여성에 대한 내용이 담긴 책이다. 황량하고 모든 것이 포기된 것 같은 사막 한 가운데서 희망의 끈을 결코 포기하지 않은 한 여성 ‘인위쩐’의 이야기는 그대로 책이 되고 드라마가 되었다. 당국에서도 포기해버린 곳에 그녀의 남편과 내던져 졌지만 그녀는 그녀의 삶을 내팽개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도저히 뿌리를 내릴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막에 어리고 여린 묘목을 심었다. 수많은 실패와 착오와 자연재해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인위쩐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살고자 하는 의지와 ‘내가 처한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만들자’라는 말도 안 되는 다짐과 의지로 사막에 나무 묘목을 심었다.

그녀는 7년 만에 제대로 된 나무군락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기적을 만들어냈다. 80만 그루의 나무. 1400만 평의 숲. 1400만 평은 여의도공원의 200배 정도 되는 크기이다.(여의도 공원은 약 6만9천 평) 일부러 국가정책으로 특정한 산에 나무를 심는다 해도 여의도 공원의 200배나 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숲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심은 수많은 희망의 씨앗 덕분에 왕가리 마타이는 2004년 10월 8일 노벨 평화상을 받습니다. 그녀는 이 영예를 안은 첫 번째 아프리카 여성입니다.” (p.37)

 

왕가리 마타이는 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인위쩐은 불모지 사막 숲을 이루어 내는 기적을 만들었다.

그들은 ‘어리석어 보였지만’ 결코 어리석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우직함’이 세상을 바꾸었다. 모두가 가는 ‘편한 길’, ‘안정적인 자리’에 연연했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실패가 뻔히 보이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았다. 벌거숭이가 된 땅에 묘목을 심었다. 저주의 땅으로 보이던 사막 한 가운데 묘목을 심었다.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공무원 시험과 각종 임용 시험에 매달리는 한국이라는 곳은 분명 기형적인 곳이다. 가장 활발하게 꿈을 이야기 하고 이것저것 실패와 몸부림 쳐보고 우왕좌왕 하며 꿈을 설계해야 할 젊은이, 청소년들이 다들 ‘안정’과 ‘안정된’것만을 찾는다. 꿈꾸는 사람들이 없다면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우직하게 자신의 꿈과 길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을 내딛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없다면 사회는 결코 발전하지 않는다.

왕가리 마타이처럼 인위쩐처럼 꼭 그렇게 살라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내가’ 생각하는 ‘나’의 길과 ‘나’의 꿈은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주변 사람들이 나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다.

수능을 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 아이들에게 꼭 왕가리 마타이의 인생을 소개해야겠다.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결코 허황된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왕가리 마타이처럼 3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지 못하더라도, 인위쩐처럼 여의도 200배 크기의 숲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자신만의 나무를 심는 신실함과 용기를 꼭 가져주기를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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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들의 사생활, 궁중의 비사. 이런 것들은 늘 사람들의 관심을 잡아끈다. 역사를 평가하는 가장 우매한 자세가 바로 ‘만약~’이라는 가정법에 의한 역사접근 방법인데, 본래 역사라는 것은 이미 지나간 일. 절대로 돌이킬 수 없다는 진리를 너무나도 분명하고 또렷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과거의 일에 관심을 두는 것 같다. 또한 현재는 역사를 등한시 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아예 역사라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지만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알고는 싶은 데 알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없어서 이런 주제의 역사 서술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나도 후자 쪽에 가깝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국사와 세계사, 지리과목을 유별나게 좋아했다. 국어와 외국어도 엄청 좋아했지만 그런 과목보다 더 역사 과목을 좋아 했다. 당연히 수학과 물리, 화학 이쪽은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얼마나 그런 과목을 좋아했냐면 그렇게 무서웠던 사탄의 인형(고등학교 수학 선생님. 160cm 중반의 작은 키에 인형 같은 외모지만 근육질의 몸매였던 선생님. 수업 시간에 “오늘은 몇 번, 몇 번” 이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로또 번호처럼 무작위로 “23번, 51번, 7번, 30번” 학생을 칠판 앞으로 호출해 연습 문제를 풀게 했던 선생님. 문제를 못 풀거나 혹여 두려움에 손바닥이나 팔뚝에 컨닝 페이퍼를 만들어 오면 영화 「사탄의 인형」의 처키처럼 변신해 무자비한 체벌을 가했던 선생님. 고등학교를 통틀어 ‘개장수 선생님’, ‘피바다 선생님’과 함께 3대 악마로 불렸던 선생님)선생님의 수학 시간에도 사회과부도 혹은 국사 교과서를 펴 놓고 딴 짓을 할 정도였다.

지금도 내가 가장 관심이 있는 분야는 한국현대사다. 좋아하는 학자의 책은 중고서점을 뒤져서라도 찾아낸다. 헌책에 메모와 밑줄을 긋는 것이 그렇게 짜릿할 수 없다.

 

역사 서술에 있어서 서술의 주체가 갖는 의미는 다른 학문 분야에 비해 엄청나게 크다. 역사라는 것이 애초에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무언의 합의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서술의 주체가 갖는 의미에 더해 책임감은 막중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정치적·경제적 힘에 의해 왜곡되고 편향된다면 굉장히 큰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라는 것 자체에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아서 아무렇게나 입맛에 맞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뒤틀고 삭제하고 추가하는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분명히 있다. 이것은 비단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역사를 서술하는 주체의 판단과 인식에 의해 동일한 사건이라도 달라질 개연성이 있다. 이것을 두고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이것이 역사가 주는 또 하나의 재미라 본다. 커다란 코끼리를 처음 만져 본 사람들이 각자 만진 부위만을 보고 벽이라고 뱀이라고 판단하는 것처럼 어떻게 같은 역사적 사건을 모두 똑같게만 서술할 수 있나? 나는 오히려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가진 인식에 따라 가치 판단의 차이에 따라 각자의 서술이 나올 수밖에 없다. 만약 서술의 주체가 모두 다른 사람인데 그 서술이 모두 일치한다면 후에 특정한 목적으로 모든 서술을 왜곡했거나 동일한 특정 서술의 필사본일 뿐이다.

 

 

이 책 「제왕들의 사생활」은 꽤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다.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이 아닌 역사를 이야기하는 책이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 신기 했다. 한국의 상황에서는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얼마 전 읽었던 「궁녀의 하루」와 비슷한 서술 방식을 예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역사를 다루지만 논픽션과 같은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어 다소(?) 실망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네로의 성격에 부족함이 많았기에 우린 그의 좋은 점을 잊기 쉽다. 그가 스물한 살이 되어서야 자기 어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p.75)

“알렉산드로스는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3년 동안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교육받았다. 이 철학자가 사고사를 당하지 않은 것을 보면 웅덩이나 처마 밑은 피해 다녔던 모양이다.” (p.104)

“알렉산드로스는 술에 취한 상태가 아니고서는 가까운 친구들을 죽이진 않았지만, 언제나 일을 저질러 놓고 나서 나중에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p.109)

 

저저의 서술 방식이 특이하고 재미있으면서 조금 고약했다. 책에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몇몇 동유럽과 유목 민족의 제왕들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특히 네로와 알렉산더 대왕의 어린 시절을 묘사하는 저자의 태도에서는 마치 스탠딩 코미디의 콘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마치 그 시대 제왕들은 하나같이 인명을 경시하고 자신의 뜻이나 명령에 조금이라도 반하거나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친구나 가족, 심지어 어머니라도 반드시 죽이고야 마는 아무 파렴치한 인물로 묘사 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네로와 알렉산더를 예시로 든 것은 자신의 책이 보편성과 대중성을 확보하기를 원했던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유명한 제왕들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고약하고 파렴치한 제왕들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묘사하면서 저자는 굳이 그들의 죄에 대해 비판하거나 후세에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교훈을 삼고자 하는 의도는 배제한다. 그냥 그대로 묘사한다. 살짝 비꼬면서, 놀리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수위로 그들을 고발한다.

‘아이구~ 제왕님들이 어련하시겠습니까~~ 당시 제왕이라 하면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보다 더 위에 있는 살아있는 신이신데요. 친구들 몇 명 쯤 죽이는 거. 말 안 듣는 일가친척쯤. 어머니라도.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었겠죠~ 그죠? 에이~ 그렇지 않고서야~ 그래도 십 몇 년 잘 참으셨네~’

 

 

“이것저것 전성기를 맞이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런 사생아들이 눈에 띄게 많이 태어났다. 남자들은 인생의 여러 가지 가능성에 눈뜨기 시작했고 망설임 없이 인생을 즐겨야 참다운 삶을 사는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곳곳에서 사생아들이 급속히 불어났는데 이때 이탈리아에 나타났던 이러한 경향을 ‘르네상스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p.200)

 

저자는 미국 사람인데 글에서는 영국 사람 냄새가 났다. 뭔가 배배 꼬여 있어 심술을 부리는 것 같은. 암흑을 벗어난 중세의 탈출구로 배웠던 ‘르네상스 시대’도 저자의 묘사 앞에서는 난장판으로 둔갑된다. 기가 막히고 통쾌 했다. 현재 이탈리아의 어떤 역사학자가 ‘르네상스 시대’를 이렇게 서술할 수 있을까? 재미있다.

 

 

“훈족은 서기 4세기에 작고 지저분한 조랑말들을 타고 유럽으로 몰려와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른 아시아계 유목민이었다.” (p.116)

 

미국 사람으로서 유럽을 볼 때는 비록 우스꽝스럽고 심술궂게 표현하지만 경멸하지는 않았지만 동양인, 아시아계의 유목민에게는 가차가 없었다. 고약한 블랙코미디를 하던 개그맨이 갑자기 차갑고 냉철한 연기파 배우로 돌변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훈족을 묘사할 때는 길게 하지도 않는다. 지저분하고 나쁜 놈들. 영국 사람들이 프랑스와 독일 사람들을 싫어하고 미국 사람들도 싫어하고, 미국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을 싫어하고 해도 결국 그들은 모두 백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고 전 세계 어디를 가나 환영받는 인종. 그런데 동양인에 대해서는 은 인정할 수 없었나 보다. 이 책을 서술한 수십 년 전 백인들의 시각과 지금의 시각이 다를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여전히 동양인은 물론이고 백인을 제외한 인종은 차별을 받는다. 공식적으로 노예제가 폐지되고 인종차별이 금지되었지만 비공식적으로 암묵적으로 공공연하게 차별은 벌어진다.

이 책을 읽으며 아쉬운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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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위한 다섯 가지 선물
에란 카츠 지음, 김현정 옮김 / 민음인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참 재미있는 책이다. <뇌를 위한 다섯 가지 선물>이라는 제목 자체도 무척 신선했는데 내용은 더욱 그랬다. 이미 동아시아, 특히 한국에서 유명한 저자 에란 카츠의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기술이 흥미로웠다. ‘통섭’이라는 개념이 최근 들어 큰 관심을 받고 있는데, 이 책의 서술은 그 ‘통섭’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책의 서술에 있어 인문학과 과학 문학은 만나기 어려운 접점이 많았다. 비슷한 주제로 인해 교집합 정도 되는 것은 사례가 많았으나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 ‘통섭’의 기준이 그대로 적용되는 책은 본 적이 없었다. 이 책은 특히, 뇌과학과 심리학 그리고 문학이 ‘통섭’되어 있다. 세 분야 모두 나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주제이다. 아마 이 책이 뇌과학과 관련된 전문적인 개념이나 연구로 가득차 있었다면 읽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고 흥미롭게 저자인 에란 카츠는 뇌과학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문학의 방법을 빌려 일반인인 나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을 서술했다.

 

 

“에란 카츠는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지만 미처 깨닫지 못하는 잠재력을 깨워 주고자”

 

머리말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잠재력을 깨워 주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바, 아직 현대의 과학은 뇌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뇌가 가진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창조가 되었든지, 진화가 되었든지 어쨌든 뇌는 아직 우리에게 미지의 영역이다. 저런 말을 한 저자조차도 자신이 가진 뇌의 능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사람 중 한명 이다. 다만, 그런 진실을 알고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위해, 행복한 삶을 위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잠재력을 깨워주고자 한다. 그런데 미처 깨닫지 못하는 뇌의 잠재력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해서 살아가는 데 크게 지장이 없다. 그것이 조물주의 섭리이든, 최적화된 진화의 조건이든 인간으로 하여금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선물인 듯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제롬 좀머 교수와 미선, 리한과 여자 K.와이 4명이다. 보스턴과 서울, 뭄바이, 방콕, 베이징, 도쿄을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 된다. 미상의 여인으로부터 받은 편지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꽤 흥미진진하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이 정도의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신기 했다. 그리고 머리말에서부터 저자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동아시아, 특히 한국의 독자들에게 큰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주인공 이름이 미선이기도 하고 사건이 진행 되는 곳 중 하나로 서울이 등장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전체 스토리의 가장 중요한 매개가 되는 사건이 한국전쟁이라는 점도 마치 한국 독자들만을 위해 책을 출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도 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영국군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한 제롬 좀머 교수의 아버지의 폭격으로 인해 당시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이 죽데 된다. 반세기가 훨씬 지난 일에 대한 복수극을 치밀하게 그려 내는 리한과 그 도구로 이용 되는 여자 K.와이, 그리고 K.와이와 오래 전 연인이었던 제롬 좀머 교수 간의 스토리 전개가 흥미진진하기도 했다.

단순히 이런 첩보, 복수 스토리만으로 가득한 책이었다면 지루할 수도 있었을 텐데 중간 중간 <뇌를 위한 다섯 가지 선물>에 대한 소개가 절묘하게 삽입되어 있었다. K.와이와 리한이 만든 복수극에 제롬 좀머와 미선이 들어오게 되고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 적극적으로 개입되면서 그 스토리 한 가운데에 저자의 의도가 투영 된다.

 

 

첫 번째는 <망각의 선물>이다.

 

“하지만 용서하기는 무척 힘들어요. 마치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듯한 기분이 드니까요.” (p.51)

“기억을 지우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그 기억에 수반된 감정을 지워 버리는 거지.” (p.53)

 

전혀 예상치 못했던 국가와 도시로 이동하게 된 제롬 좀머 교수와 미선은 이미 리한과 K.와이가 만들어놓고 배치해 놓은 인물을 만나게 된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15년 동안 감금된 최민식에게 일정하게 최면을 걸어 탈출하자마자 자연스럽게 초밥집에 있는 강혜정을 찾아가는 것처럼 이 책의 스토리 전개도 비슷하다.

책의 초반부에는 제롬 좀머와 미선은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숲을 보지 못하고 있다. 왜 자신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편지를 보내는 미상의 여인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다만, 거대한 스토리가 자신의 아버지와 한국전쟁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아차렸을 뿐이다.

뇌를 위한 선물 중 첫 번째는 <망각의 선물>이다. 망각하지 못한다면 아마 인간은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걱정과 염려와 두려움과 고민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들 동일하다. 망각이 없다면 모두 차곡차곡 쌓아야 할 것이다. 어디로 재활용 할 수도 없고 폐기할 수도 없다면 미쳐 버릴 것이다. 대를 이은 복수 스토리는 이제는 너무 예전 스토리가 되어 버렸지만 이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된다면 상황과 마음가짐을 달라질 것이다. 남의 일이라면 ‘이미 지나간 일, 잊어 버려라!’ 쉽게 말할 수 있지만 내 일이라면 쉽지 않다. 그래서 망각은 더욱 절실하다. 망각하지 못한다면 타오르는 복수심을 소화할 수가 없다.

 

 

 

두 번째는 <안전하다는 믿음이 주는 선물>

 

“저희 아버지가 마오쩌둥의 아들을 죽였다는 말씀이시군요. 제롬은 현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망설이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 (p.171)

“폭탄을 투하한 조종사의 아들인 자네를 죽이려고 꾸민 사고였어. 네가 주요 목표물이었던 거지.” (p.173)

 

두 번째 스토리에서 좀머 교수는 K.와이와 리한이 자신에게 어떤 복수극을 준비하고 실제로 실행했는지 알게 된다. 우연이라 믿었었던 사건과 사고들이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계획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 것이다. 더군다나 그 일이 자신으로 인해 야기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때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이다. 퍼즐처럼 맞춰지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음모가 서서히 목을 죄어 오는 것이다.

 

“자아 때문에 잘못된 감정이 생겨납니다. 산토쉬가 말을 이었다. 자아는 직관을 왜곡시킵니다. 자신의 신념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많은 변명을 찾아냅니다.” (p.144)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데도 의연하게 마치 제3자처럼 그 일을 객관화 할 수 있는 사람은 초인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두려움과 공포로 제대로 된 일상을 이어갈 수 없을 것이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고, 두려움과 공포는 더 큰 두려움과 공포를 낳는다. 계속 나에게로 향하는 두려움과 공포와 고민은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저자의 표현대로 수많은 변명을 찾고 만들어내는 것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어렵겠지만 이런 때일수록 오히려 나를 객관화 하는 노력이 필요 하다. 나에게로 침잠하지 않는 자세, 그것이 필요하다. ‘나는 괜찮을 것이다.’, ‘나는 안전할 것이다.’라는 믿음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내 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고 수년 동안 암이라는 놈과 싸우실 때 나머지 가족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바로 이런 긍정적인 자기 최면화였다. 그것마저 없으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좀머 교수에게 이런 긍정적인 자기 최면은 어쩌면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욕망관리의 선물>

 

“가령 집 전체를 청소하는 게 아니라 방 하나를 청소하는 거죠. 일주일 동안 정해 놓은 방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겁니다. 목표를 달성하면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그다음 주에 또 다른 방 하나를 추가하는 겁니다.” (p.192)

 

욕망이라는 불구덩이... 모두가 부담스러워 하지만 모두가 꿈꾸는 것이다. 내 욕망이 다 이루어진다면 영혼이라도 갖다 바칠 수 있다. 자신에게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과거의 사건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파악한 좀머 교수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겨내고 싶었다. 용솟음치는 욕망의 덩어리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인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참 공평하게도 모든 욕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잔인하지만 공평한 룰이다. 그런 룰이 어떤 경우에는 야속해 보이기도 하지만 채울 수 없는 욕망의 부나비를 하염없이 바라는 것보다야 실제적인 욕망을 관리하는 편이 훨씬 나에게는 이득이다.

 

 

 

<설득의 선물>

 

“너무 완벽한 사람은 적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연약한 모습과 결점은 오히려 호감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p.266)

 

너무 완벽한 사람에게는 질투심이 생기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이 아닌 가 싶다. 어디에도 꼭 있다. 완벽한 사람.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말도 잘 하고 잘 생기고 거기다가 겸손하기까지 한 사람. 적대감과 질투심도 있기는 하지만 부담스럽다. 나는 완벽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업무에서 만큼은 완벽하고 싶어 하고 약속을 이행하는 것에 대해허도 완벽을 기한다. 그런데 나를 잘 알고 있는 아내는 이런 말을 했다. “자기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에게는 철저하다.‘고. 1000% 정답이었다.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고 그 사람을 보다 더 잘 설득하기 위해서 나의 모자란 성격과 기질, 그리고 연약한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나에게 한없이 관대한 것처럼 상대방에게도 그래야 하는 것이다. 내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그게 공평한 것이다.

 

이 책은 뇌과학과 심리학, 문학을 하나의 글로 ‘통섭’하는 작가의 능력으로 채워져 있다. 사건의 전개에 따라 각 학문과 분야가 이어지고 분리되며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 낸다. 마지막까지 분명하게 사건이 해결되거나 갈등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런 열린 결말이 책의 성격과 맞는 것 같다. 이어질 이후의 전개 과정은 이 책을 읽는 각자의 미처 깨닫지 못한 잠재력을 사용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배려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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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한국전쟁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국전쟁은 미소냉전이 첨예화되는 뿌리가 되었고 2차대전 이후 다시 한번 한반도에서 일어난 세계전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2013년 한국은 여전히 한국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분단이라는 지리적 정치적, 사회문화적 현실은 기형적이고 비상식적인 여러 가지 망령을 만들어 냈습니다.

안보교육의 세뇌를 받던 초등학교 시절 반공 포스터와 표어를 만들며 북한군을 도깨비로 그리고 귀신이나 악마로 표현하고는 했었죠.

한국전쟁에 대한 미국과 구소련의 기밀 문서들이 차례로 해제되면서 국내외 여러 학자들의 한국전쟁 관련 서적이 출간되었습니다. 이제 겨우 "수정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학계를 제외하고는 역사, 특히 한국의 현대사에 대해서 가르치거나 이야기 하는 곳이 적습니다. 학교에서조차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김동춘 교수의 이 책은 거시적 요인에 대한 접근보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민간인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어제는 인공기를 들고 흔들고 오늘은 태극기를 들고 흔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들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입으로만 전해지던 민간인 학살에 대한 내용이 민주정부 집권 이후 차례로 밝혀지면서 재조명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진행형인 문제입니다.

왜 죄없는 민간인들이 학살을 당해야 했는지 이 책을 통해 찾아볼 수 있을거라 기대합니다.


















2.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노동의 배신]의 저자 '바버라 애런라이크'가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와 나란히 두어야 할 책"이라고 추천한 책입니다. 저자인 "샘 피지개티"는 이 책을 통해 미국경제사 100년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난 100년 간 미국은 말그대로 세계를 주물러 온 슈퍼파워 네이션입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그들의 달러는 사랑받는 화폐였고 그들의 영어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무조건 잡아야 할 동아줄이 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파생된 금융위기와 이제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국의 부상으로 더불어 미국경제에 대한 파워가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월스트리트로 대변되는 금융대부호들의 파산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저들도 별 수 없구나'생각했지만 여전히 똑똑한 전문가들인 그들은 자신들만의 성을 쌓고 부를 축적하고 있을 것이 당연합니다.

책의 제언처럼 슈퍼리치가 앞으로도 계속 무너지고, 중산층이 부활하는 과정을 가정이 아니라 확신이 가도록 책을 통해 설득 당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3. [폭력의 자유]

수십 년을 언론자유와 언론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언론인 김종철씨의 책입니다.

한국의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다이내믹하고 어이없으며 기상천외한 분야가 언론의 역사라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자세한 소개를 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언론 상황이 얼마나 왜곡되고 기형적인 지는 다들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렇죠. 지상파 TV 뉴스는 더 이상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고 메이저 신문사들에 대한 불신은 깊고 깊습니다. 언론이 제대로 서지 못하고 그들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제대로 된 정보와 뉴스를 다른 곳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하는 뉴스는 오늘 9시 뉴스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마치 언론사만 모르고 있는 것처럼, 아니면 사람들이 당연히 모를 거라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이 없는 뉴스가 매일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언론의 역사를 훑습니다. 정치적 힘, 경제적 힘에 의해 압제받아온 언론의 역사라 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과연 2013년 현재 한국에 존재하는 많은 언론 중 그런 정치적 힘과 경제적 힘에 자유한 언론이 몇 개나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어딘가의 힘에 종속된 언론은 그 사명을 다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제대로 된 언론의 역사를 탐구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책입니다.

 
















4. [헤겔 레스토랑]

현존하는 철학자 중 가장 활발한 저작과 활동을 하고 있는 "슬라보예 지젝"의 책입니다. 아직 그의 책을 한 권도 읽지 못했는데, 이 책의 제목에 무작정 끌려 추천해 봅니다. 대학 시절 헤겔을 대상으로 과제를 한 적이 있는데요. 제 생애 가장 어려운 책을 읽었던 경험이 잊히지 않습니다. 거의 두 달 동안 헤겔에 매달렸는데 결국 제대로 과제를 해내지 못했었죠. 학점도 곤두박질^^;;

아직 헤겔에 대한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요. 괴물 철학자 지젝으로부터 그 상처를 치유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분량도 그렇고 일단 '헤겔'이라는 단어 자체로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책입니다.


















5. [약산 김원봉 평전]

"약산 김원봉" 선생은 일제강점기 김구 선생과 양대산맥을 이룬 대단한 독립운동가 였습니다. "의열단"의 단장이기도 했습니다. 평생을 민족해방을 위해 헌신한 김원봉 선생은 사실 김구 선생에 비해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아마, 월북을 한 이력이 터부시된 것이 아닌 가 싶습니다. 일제가 가장 무서워 한 항일 단체가 "의열단"이라고 했는데, 그 명성만큼 후손들이 김원봉 선생을 재조명 하지 않은 것은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 책을 통해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약산 김원봉 선생의 삶을 들여다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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