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온 넷우익 -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
야스다 고이치 지음, 김현욱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일베에 대해서 한 동안 엄청나게 뉴스를 쏟아내더니 요즘은 통 소식이 없다. 매일매일 새롭고 놀라운 뉴스가 쏟아지는 ‘다이내믹 코리아’다 보니 일베 뉴스쯤은 과감하게 묻혀 버린 것 같다. 한국에 존재하는 뉴스를 전하는 언론사가 제대로 된 곳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한창 일베 문제로 뜨겁던 때 이 책을 사놓고 이제야 읽었다.

이 책 「거리고 나온 넷우익」은 일본 내 우익 시민 단체 ‘재특회’에 대한 탐사보도를 담은내용이다. 사실 엄밀히 보자면 한국의 일베나 일부 극우 트위터가 쏟아내는 내용과는 의미상 많은 차이가 있다. 일본의 그것과 한국의 그것이 존재론적으로는 비슷한 형태로 존재하고 유지되고 있지만 지향하는 바는 많이 다르다. 이것이 꽤 흥미로웠다.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는 재일 코리안을 비롯한 외국인이 일본에서 부당한 권리를 누리고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세력을 키워 온 우파 시민 단체이다.” (p.12)

 

재특회는 일본 내 재일 코리안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존재한다. 특히 그들의 주된 공략대상은 재일코리안이다. 우리가 흔히 재일동포라 부르는 이들이다. 사실 재일코리안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은 큰 관심이 없다. 예전에야 당연히 차별을 받았으려니 생각했는데 이제는 일본과 관계도 좋고 두 나라 모두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적으로 발전을 이뤘는데 실제적인 차별이 존재할까 싶었다. 그런데 여전히 재일코리안들은 차별에 더해 꼴통 같은 우익 단체에 의해 테러를 당하는 지경이라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한국의 일베와 극우 트위터들 또한 비슷한 맥락이다. 이미 다 검증되고 끝난 역사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을 이야기하고 이미 결론난 광주 민주화 항쟁이나 여타 민주항쟁을 폄하하는 등 한쪽으로 과도하게 경도된 역사의식을 그대로 현재에 대입한다.

 

 

“재일코리안은 불과 50만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소수자다. 재일 코리안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1억2천만 명이나 되는 일본인의 수야말로 두렵지 않을까?” (p.217)

“무섭게도, 재일특권에 관한 헛소문은 아무런 검증도 없이 인터넷에서 널리 확산되고 있다. 이것을 보고 ‘진실을 알았다.’며 충격을 받아 재일 코리안을 증오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p.221)

 

일본 내에서 ‘한류’다 뭐다 해서 한국의 보이, 걸그룹들이 한창 판을 치던 때 일본 내 시민들이 후지TV를 향해 반한류 시위를 벌인 뉴스가 뒤늦게 한국에서 보도된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도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재특회라는 단체에 가입하거나 그들을 후원하고 지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가입, 후원, 지지에 대한 동기가 있었다. 2002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의 반일본 정서(일본과 터키의 16강전에서 터키가 승리하자 길거리 응원에 나선 한국 사람들이 엄청나게 좋아하고 기뻐했던 장면)를 확인 한 후 가입한 사람, 인터넷에서 재특회가 올린 자료들을 보고 후원하게 된 사람, 「험한류」라는 책을 읽고 난 후 지지하게 된 사람 등 다양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었다. 한국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이다.

이것을 가장 극적으로, 감정적으로 사용한 사람들이 바로 재특회라는 것이다.

90년대 경제 불황이 가속화되고 청년일자리가 급격하게 감소하게 되면서 은둔형 외톨이 내지는 사회부적응자가 대량으로 양산되었다. 남들처럼 대학공부를 마치고 노력했음에도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없고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인터넷으로 돌파구를 삼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절망과 허탈함의 칼날을 겨눌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경향이 2000년대 초반까지는 어느 정도 정화가 가능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2000년 중반을 넘어서면서 극단적인 형태로 기형적으로 진화된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비슷하다. 최초 진보적 색채가 강하던 게시판들이 어지러워지고 색채가 불분명해지면서 여러 게시판과 사이트가 속출했다. 포털 또한 한때 대단한 인기가 있었지만 이런 게시판과 사이트들의 대부분이 그렇듯 생존 주기가 굉장히 짧다. 비슷비슷한 성향과 분위기의 게시판과 사이트들이 많아지면서 조금 더 자극적이고 조금 더 극단적인 곳이 생겼다. 사람들의 본성을 계속해서 건드리며 커진 것이다.

 

 

“채널 사쿠라는 사쿠라이의 비상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아니, 인터넷 세계에 머무르던 ‘Doronpa’를 한국 문제 전문가 ‘사쿠라이 마코토’로 만든 최대 공로자이자 산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44)

 

재특회의 회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사쿠라이 다카다는 언론이 키워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너도나도 개인이 가진 의견을 마음대로 피력할 수 있는 곳(물론, 한국은 제외)이기에 다카다도 사쿠라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 인터넷 내에서 어느 정도 지지자 내지는 추종자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오프라인의 지지와 인기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재특회의 사쿠라이의 경우와 같이 언론의 보도로 인해 순식간에 영향력 있는 사람과 단체가 되는 경우가 가장 빠른 케이스다. 사쿠라이와 재특회는 더 자극적이고 더 재미있는 것을 찾는 언론사의 생리에 그대로 부합하는 사례였다. 그들로 인해 사쿠라이와 재특회는 일본 내에서 급속도로 인기를 얻는다.

한국의 경우도 동일하다. 특정 보수 트위터리안의 경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름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종편이라는 기형적 괴물의 탄생으로 인해 그 트위터리안이 하루에도 여러 종편사의 프로그램에 나와 소위 보수논객이라 불리며 활동했다. 인터넷에서는 이미 유명했지만 종편에서 처음 그 사람을 본 시청자들은 재특회와 사쿠라이의 등장에 환호 했던 그들의 지지자들과 추종자들의 그것과 비슷한 형태의 지지와 응원을 보냈다.

 

 

“언론 따위는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비판적인 논조라도 자신들의 활동이 언론에 보도되면 순수하게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취재를 받을 때마다 일부러 블로그에 보고 할 정도니까요. 아마도 세상으로부터 보수파 논객으로 인정받고, 높은 평가를 받고 싶은 거겠죠. 그렇지만 그를 지식인으로 평가하는 언론은 없었어요. 학계에서도, 언론에서도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죠? 그래서 애태우고 있을 거예요.” (p.264)

 

이쯤에서 정말 궁금했다. 왜 사람들은 조금만 살펴보면 말도 안 되는 논리에 그치는 것에 열광할 수 있는 것일까? 단순히 사회로부터 거절당하는 아픔을 알고 있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이해받거나 공감을 얻지 못한 개인적인 경험이 전부일까?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노력했지만 안정된 삶을 구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특정 소수에 대한 증오로 표출되는 것이 과연 사회심리학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타자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단순히 인터넷 댓글이나 게시판의 글 작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감히 오프라인으로 뛰쳐나와 목소리를 내고 심지어 기가 막힌 행동도 서슴지 않는 지경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대형마트 전자제품 매장에 고 노무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바탕화면이 깔린 적이 있었다. 그것을 손님이 항의하고 언론사에 알리면서 뉴스가 되었다. 경찰이 그 게시물을 올린 사람을 잡고 보니 대형마트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젊은 남자였다. 별 생각 없이 재미로 올렸다고 했다.

 

 

“내가 접한 수많은 재특회 회원이나 넷우익의 얼굴이 오카모토의 착한 표정과 겹쳐 보였다.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우면서도 그들은 무언가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연대를 원하고, 모순에 얽매인 채, 실상조차 명확하지 않은 적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고 있었다.” (p144)

 

이 책의 저자 야스다 고이치는 재특회를 수년 간 취재해 온 사람이다. 재특회에 속해 있거나 탈퇴한 수많은 사람을 만나서 밥을 먹으며 대화하고 취재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일본 내에서도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재일코리안과 외국인들에 대한 맹목적인 공격과 적개심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그들은 거리에서는 전사였다고 한다. 분노로 가득찬 눈빛과 표정, 때로는 살의가 느껴지는 그들의 말과 행동. 하지만 또 대다수의 재특회 회원이나 넷우익 사람들을 거리가 아닌 일대일로 만났을 때는 착하고 선량한 시민들이었다는 것이다. 대형마트 전자제품 판매장의 한 제품 바탕화면에 그런 화면을 설치하는 행위 자체에 별다른 법적·도덕적·상식적 판단을 하지 않고, 단지 재미로 그 행위를 했다는 그 선량한 젊은 남성의 모습도 동일한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명확하지 않은 적을 설정한 채 그저 그들만의 폐쇄된 리그에서 좀 더 재미있고 좀 더 클릭과 추천을 받을 수 있는 글을 위해 더 자극적이고 더 극단적인 것에 골몰하는 그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더 무섭다. 공포다. 차라리 예전처럼 명확한 적을 두고 하는 싸움이라면 무섭기는 하지만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맞붙을 수 있다.

 

 

“재특회는 명쾌하죠.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하지만, 너무 명쾌해서 공포를 느끼지는 않아요. 제가 무서운 건 재특회를 인터넷에서 칭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을 거라고 생각하면 솔직히 너무 괴로워요.” (p.368)

 

실제로 재특회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조선학교 학생의 학부모이자 재일코리안의 하소연이다. 재특회에서 탈퇴하거나 그전보다 재특회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이것이다. ‘나중에 돌아보니 재특회의 운동 방법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좀 지나친 면이 있어요.’ 이 책에서 가장 놀랐던 재특회 구성원의 고백은 ‘내 친구들 중 60%가 재일코리안이에요. 재특회를 벗어나고 보니 내가 왜 그랬나 싶어요. 내 친구들에게 “바퀴벌레 같은 조선놈들”, “죽어라.”, “꺼져라.” 한 것이잖아요.’ 명확하게 오프라인에서 대놓고 활동을 한 사람들은 돌이키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키보드 뒤에서 클릭으로 무언의 동조와 지지를 보내는 불특정 다수의 병리적 심리가 더 무서운 것이다.

일베와 우익 트위터리안에 대한 사그라지지 않는 지지와 추종은 재특회의 명확한 대상과는 다른 형태일 뿐 존재방식은 비슷하다. 보수층에서도 부담스러워하고 그들의 폭주를 한심스러워하지만 대놓고 말리지는 않는다. 왜?? 내 손에 똥 묻히지 않아도 되니까. 궂은 일 나서서 해주는 데 왜 말리나!! 일정 정도 거리만 두고 있다는 스탠스만 취해주면 만사 오케이다. 나서서 진보 진영과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을 공격해 주고 있는데 상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나서서 혹은 대놓고 응원하고 격려하지 못할 뿐이지 한 편이다. 한 통속이다.

 

 

“보수파는 예의 바르고 얌전하며 말을 잘 못하는 사람들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쿠라이는 달랐다. 사쿠라이의 입은 속사포 같았다. 한없이 공격적이고 무자비했다. 보수파에도 이렇게 강력한 사람이 있나 싶어 감동했다. 평소 자신이 가진 불만이나 의문을 사쿠라이가 모두 대변해 주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p.73)

 

좀 부담스럽고 논리에 맞지 않는 것 같고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우리 쪽에도 저렇게 젊은 사람이 가감 없이 말하고 나서서 입진보들과 친북, 종북 세력들을 깨부숴 주니까 속 시원한 것이다.

 

 

“그날은 회장인 사쿠라이도 왔는데 연설을 잘하더군요. 난해한 말도 없고 명쾌해요. 그런데 노조는 싸움을 해도 어려운 말을 해요. 재특회가 훨씬 더 인민에 가깝죠.” (p.347)

 

지난 주 서울로 휴가를 다녀왔다. 대규모로 열린 촛불집회에 잠시 참석했다. 열기는 뜨거웠다. 특정 세력이 집회를 움직이거나 선전·선동하지 않았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싸온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집회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시청광장을 완전히 가로막은 경찰버스와 여전히 무대에 올라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연설이 귀에 거슬렸다. 무슨 말인지 별로 관심 없는데 자꾸만 군중연설을 이어갔다. 좀 더 세련되고 간지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형태는 없나 싶었다.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분면 달라졌는데 집회 형식은 여전히 70∼80년대의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이 집회가 얼마나 갈까?’ 회의가 들었다.

많은 일본인들이 사쿠라이와 재특회에 열광한 이유 중 큰 요인이 사쿠라이 개인의 매력이었다. 과도한 행동과 무분별하고 폭력적인 구호가 많기는 하지만 쉽고 명쾌하게 연설을 하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늘 진보입네 하는 노조는 어려운 말만 하더라는 것이다. ‘재특회가 훨씬 더 인민에 가깝다.’라는 말은 충격적이다. 촛불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정치인, 단체장, 노조지부장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외칠 뿐이었다.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언어로 이야기 했다면 더 큰 호응과 지지, 응원을 받았을 것이다.

한국의 진보는 늘 입진보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늘 아귀다툼이다. 조금만 틀어지면 갈라선다. 입법하나 제출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한 것 같다. 자기들만의 언어로 부르짖으니 들을 수 없다. 여전히 자신들이 ‘가장 옳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그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한국의 진보가 대중과 국민, 인민과 점점 괴리된다면 표류하는 민심은 또 다른 형태의 한국판 사쿠라이와 재특회에 열광할 지도 모를 일이다. 또 다른 형태의 일베가 계속해서 탄생할지도 모른다.

 

대중은, 국민은, 인민은 더 이상 영웅을 원하지 않는다. 영웅 한 명이 세상을 구원하지 못한다. 진보입네 하는 양반들께서는 이제 그만 상석에서 내려 오셔서 대중과 국민과 인민의 눈높이에 기꺼이 당신들의 눈을 맞추고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 노력이 없는 이상 거리로 나서는 촛불민심도 당연히 당신들 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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