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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들의 사생활 - 역사책이 가르쳐주지 않는
윌리엄 제이콥 쿠피 지음, 남기철 옮김 / 이숲 / 2013년 6월
평점 :
제왕들의 사생활, 궁중의 비사. 이런 것들은 늘 사람들의 관심을 잡아끈다. 역사를 평가하는 가장 우매한 자세가 바로 ‘만약~’이라는 가정법에 의한 역사접근 방법인데, 본래 역사라는 것은 이미 지나간 일. 절대로 돌이킬 수 없다는 진리를 너무나도 분명하고 또렷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과거의 일에 관심을 두는 것 같다. 또한 현재는 역사를 등한시 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아예 역사라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지만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알고는 싶은 데 알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없어서 이런 주제의 역사 서술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나도 후자 쪽에 가깝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국사와 세계사, 지리과목을 유별나게 좋아했다. 국어와 외국어도 엄청 좋아했지만 그런 과목보다 더 역사 과목을 좋아 했다. 당연히 수학과 물리, 화학 이쪽은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얼마나 그런 과목을 좋아했냐면 그렇게 무서웠던 사탄의 인형(고등학교 수학 선생님. 160cm 중반의 작은 키에 인형 같은 외모지만 근육질의 몸매였던 선생님. 수업 시간에 “오늘은 몇 번, 몇 번” 이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로또 번호처럼 무작위로 “23번, 51번, 7번, 30번” 학생을 칠판 앞으로 호출해 연습 문제를 풀게 했던 선생님. 문제를 못 풀거나 혹여 두려움에 손바닥이나 팔뚝에 컨닝 페이퍼를 만들어 오면 영화 「사탄의 인형」의 처키처럼 변신해 무자비한 체벌을 가했던 선생님. 고등학교를 통틀어 ‘개장수 선생님’, ‘피바다 선생님’과 함께 3대 악마로 불렸던 선생님)선생님의 수학 시간에도 사회과부도 혹은 국사 교과서를 펴 놓고 딴 짓을 할 정도였다.
지금도 내가 가장 관심이 있는 분야는 한국현대사다. 좋아하는 학자의 책은 중고서점을 뒤져서라도 찾아낸다. 헌책에 메모와 밑줄을 긋는 것이 그렇게 짜릿할 수 없다.
역사 서술에 있어서 서술의 주체가 갖는 의미는 다른 학문 분야에 비해 엄청나게 크다. 역사라는 것이 애초에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무언의 합의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서술의 주체가 갖는 의미에 더해 책임감은 막중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정치적·경제적 힘에 의해 왜곡되고 편향된다면 굉장히 큰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라는 것 자체에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아서 아무렇게나 입맛에 맞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뒤틀고 삭제하고 추가하는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분명히 있다. 이것은 비단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역사를 서술하는 주체의 판단과 인식에 의해 동일한 사건이라도 달라질 개연성이 있다. 이것을 두고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이것이 역사가 주는 또 하나의 재미라 본다. 커다란 코끼리를 처음 만져 본 사람들이 각자 만진 부위만을 보고 벽이라고 뱀이라고 판단하는 것처럼 어떻게 같은 역사적 사건을 모두 똑같게만 서술할 수 있나? 나는 오히려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가진 인식에 따라 가치 판단의 차이에 따라 각자의 서술이 나올 수밖에 없다. 만약 서술의 주체가 모두 다른 사람인데 그 서술이 모두 일치한다면 후에 특정한 목적으로 모든 서술을 왜곡했거나 동일한 특정 서술의 필사본일 뿐이다.
이 책 「제왕들의 사생활」은 꽤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다.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이 아닌 역사를 이야기하는 책이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 신기 했다. 한국의 상황에서는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얼마 전 읽었던 「궁녀의 하루」와 비슷한 서술 방식을 예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역사를 다루지만 논픽션과 같은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어 다소(?) 실망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네로의 성격에 부족함이 많았기에 우린 그의 좋은 점을 잊기 쉽다. 그가 스물한 살이 되어서야 자기 어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p.75)
“알렉산드로스는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3년 동안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교육받았다. 이 철학자가 사고사를 당하지 않은 것을 보면 웅덩이나 처마 밑은 피해 다녔던 모양이다.” (p.104)
“알렉산드로스는 술에 취한 상태가 아니고서는 가까운 친구들을 죽이진 않았지만, 언제나 일을 저질러 놓고 나서 나중에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p.109)
저저의 서술 방식이 특이하고 재미있으면서 조금 고약했다. 책에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몇몇 동유럽과 유목 민족의 제왕들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특히 네로와 알렉산더 대왕의 어린 시절을 묘사하는 저자의 태도에서는 마치 스탠딩 코미디의 콘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마치 그 시대 제왕들은 하나같이 인명을 경시하고 자신의 뜻이나 명령에 조금이라도 반하거나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친구나 가족, 심지어 어머니라도 반드시 죽이고야 마는 아무 파렴치한 인물로 묘사 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네로와 알렉산더를 예시로 든 것은 자신의 책이 보편성과 대중성을 확보하기를 원했던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유명한 제왕들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고약하고 파렴치한 제왕들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묘사하면서 저자는 굳이 그들의 죄에 대해 비판하거나 후세에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교훈을 삼고자 하는 의도는 배제한다. 그냥 그대로 묘사한다. 살짝 비꼬면서, 놀리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수위로 그들을 고발한다.
‘아이구~ 제왕님들이 어련하시겠습니까~~ 당시 제왕이라 하면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보다 더 위에 있는 살아있는 신이신데요. 친구들 몇 명 쯤 죽이는 거. 말 안 듣는 일가친척쯤. 어머니라도.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었겠죠~ 그죠? 에이~ 그렇지 않고서야~ 그래도 십 몇 년 잘 참으셨네~’
“이것저것 전성기를 맞이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런 사생아들이 눈에 띄게 많이 태어났다. 남자들은 인생의 여러 가지 가능성에 눈뜨기 시작했고 망설임 없이 인생을 즐겨야 참다운 삶을 사는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곳곳에서 사생아들이 급속히 불어났는데 이때 이탈리아에 나타났던 이러한 경향을 ‘르네상스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p.200)
저자는 미국 사람인데 글에서는 영국 사람 냄새가 났다. 뭔가 배배 꼬여 있어 심술을 부리는 것 같은. 암흑을 벗어난 중세의 탈출구로 배웠던 ‘르네상스 시대’도 저자의 묘사 앞에서는 난장판으로 둔갑된다. 기가 막히고 통쾌 했다. 현재 이탈리아의 어떤 역사학자가 ‘르네상스 시대’를 이렇게 서술할 수 있을까? 재미있다.
“훈족은 서기 4세기에 작고 지저분한 조랑말들을 타고 유럽으로 몰려와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른 아시아계 유목민이었다.” (p.116)
미국 사람으로서 유럽을 볼 때는 비록 우스꽝스럽고 심술궂게 표현하지만 경멸하지는 않았지만 동양인, 아시아계의 유목민에게는 가차가 없었다. 고약한 블랙코미디를 하던 개그맨이 갑자기 차갑고 냉철한 연기파 배우로 돌변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훈족을 묘사할 때는 길게 하지도 않는다. 지저분하고 나쁜 놈들. 영국 사람들이 프랑스와 독일 사람들을 싫어하고 미국 사람들도 싫어하고, 미국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을 싫어하고 해도 결국 그들은 모두 백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고 전 세계 어디를 가나 환영받는 인종. 그런데 동양인에 대해서는 은 인정할 수 없었나 보다. 이 책을 서술한 수십 년 전 백인들의 시각과 지금의 시각이 다를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여전히 동양인은 물론이고 백인을 제외한 인종은 차별을 받는다. 공식적으로 노예제가 폐지되고 인종차별이 금지되었지만 비공식적으로 암묵적으로 공공연하게 차별은 벌어진다.
이 책을 읽으며 아쉬운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