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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한국사회 - 단지 공화국에 갇힌 도시와 일상
박인석 지음 / 현암사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아파트에 처음 이사 갔던 날을 잊지 못한다. 첫 아파트는 5층짜리 아파트였다. “얘들아~ 우리 이제 우리 집으로 이사 간다.” 라고 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던 어머니의 얼굴이 아직 또렷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때로 기억 된다. 이전까지 이사를 참 많이 다녔다. 주로 주택이었고 상가 건물 1층에서 살았던 기억도 있다. 그렇다면 그전까지는 ‘우리 집’이 없었다는 것일 테다. 아무튼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 집꿈’을 이뤄내신 것이다. 이사 가던 날 1톤 봉고 트럭 2대를 나눠 타고 하얗고 크고 멋있는 ‘우리 집’으로 이사를 갔다. 무척 좋았다. 방2개짜리 집이었고 부모님이 ‘주공, 주공’ 하셔서 ‘아~ 우리 집이, 우리 아파트가 주공아파트구나~’ 하며 알았다. 5층짜리 아파트였고 우리 집은 1층이었다. 방이2개가 있었다. 동생과 나는 처음 가져본 침대에서 내려올 줄 모르고 한참을 뛰어 놀았다. 우리 주공아파트와 같은 아파트가 20개가 넘었고 우리 주공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시내버스 노선도 바뀌어 우리 아파트 입구에 정류소가 생기기도 했다. 이사하기 전까지 학교는 늘 걸어 다녔었는데, 이제는 시내버스를 타고 다녔다. 종이로 된 학생용 버스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도 좋았다. ‘우리 집’이 생기고 나서 얼마 뒤 ‘우리 차’가 처음으로 생겼다. 좋은 일이 연달아 생겼다. 부모님은 얼마 전까지 ‘우리의 첫 집’ 주공아파트를 팔지 않으시고 세를 주고 있었다. 오래 되고 좁은 아파트를 파시라고 진작부터 말씀을 드렸는데 어머니는 차마 팔지 못하겠다고 하셨다. 그래도 그 집에 들어가면서부터 일이 잘 풀리고 그 첫 집에서 살았던 기억이 좋아서 팔지 못하겠다고. 2년 전에 그 집을 파시고 그 동네 주변을 지나갈 때마다 애틋한 눈길로 쳐다보시고는 했다.
어머니에게 15평 주공아파트는 ‘첫 집’이었다. 남편을 따라 누구하나 아는 사람 없고, 말투도 다르고, 고향과는 먹는 음식이나 날씨도 완전히 다른 타향에 와서 이룬 첫 번째 꿈이었다. 주인 집 눈치 보며 두 아들 놈 마음껏 뛰어놀지도 못하게 하며 이리저리 이사 다녀야 했던 서러움을 한 번에 씻어 준 고마운 ‘첫 집’이다. 철없던 시절에는 몰랐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이 책 「아파트 한국사회」는 ‘아파트 단지’가 가진 문제점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담은 책이다. 적어도 나와 내 가족에게 ‘아파트’, ‘아파트 단지’는 좋은 기억이다. 지금도 그렇고.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아파트’와 ‘아파트 단지’는 많은 문제를 양산한 것이 사실이다. 분양이 되지 않는데도 어김없이 하늘로 솟구치며 건설되는 아파트를 보며 ‘도대체 살 사람이 있을까?’ 의문을 가져 본 적이 다들 있을 것이다. 실제로 무분별하게 건설된 아파트로 인해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일어나기도 했다. 많은 문제들 중에 가장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은 아파트 입주를 두고 먼저 입주한 주민과 이사를 오려고 하는 입주자 사이에 벌어진 대치였다. 9시 뉴스에서도 크게 보도되었는데, 똑같은 아파트를 두고 처음 입주했던 사람은 2억을 주고 들어왔는데 이후 분양이 되지 않아 회사 측에서 1억5천에 입주를 시킨 것이다. 먼저 입주한 사람은 자신들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아파트에 입주하려는 사람을 막은 것이고 후에 입주한 사람들은 정당하게 돈을 주고 법적으로 문제없이 입주하려는데 그것을 불법으로 방해하는 것이라고 대치한 것이었다.
또 하나 고위공직자나 어떤 국가기관의 수장으로 임명된 사람들의 인사청문회에서 벌어진 일. 공무원으로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이 아파트를 몇 채나 보유하고 있고 자녀교육을 위해 위장전입을 필수코스로 자행하는 꼴을 보면서 사람들은 두 가지 생각을 했다. ‘결국 잘 사는 놈들만 잘 사는 나라구나’, ‘나도 돈 있으면 저렇게 해야지’
이 책은 ‘아파트 공화국’이 된 한국사회의 여러 제반 문제들에 대해 두루 다루지 않는다. 폭을 좁혀 ‘아파트 단지’에 대한 문제와 ‘아파트의 고층화, 고립화’, 특히 ‘발코니 확장’에 관련된 문제를 주로 다룬다. 그래서 아파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생각을 한데 수렴하지는 못하지만 누구라도 한번쯤은 생각해 봤을만한 아파트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가 주인공이라면 한국사회의 도시와 주거를 진단하는 문제들 역시 ‘아파트’에서 ‘단지’로 바꾸어야 한다.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 아니라 ‘단지 공화국’인 것이다.” (p.24)
“소필지 조직 없이 아파트 단지로 채운 탓에 도시가 동맥경화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p.42)
먼저 저자는 우리가 아파트에 대한 문제를 다룰 때 ‘아파트’ 자체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의 개념을 전제해야 한다고 주장 한다. 도심이나 상권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지역에 홀로 서 있는 아파트는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다. 흔한 아파트 광고에는 반드시 ‘아파트’가 아닌 ‘아파트 단지’에 들어 설 여러 공공시설과 상권에 대한 홍보로 가득 차 있다. 아무리 인기 있는 브랜드의 아파트라도 주변에 아무런 시설 없이 홀로 동 떨어져 있다면 분양은 고사하고 외딴 섬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들어 설 ‘아파트’ 주변에 좋은 학군이 위치해 있고 지하철 몇 호선이 지나고 상권이 얼마나 발달되어 있는지, ‘아파트 단지’의 모습이 좋다면 아무리 비싸더라도 그 아파트의 분양은 순식간에 동이 난다.
책에서 소개된 대로 요즘은 아파트 안에 헬스센터나 독서실, 육상트랙이나 운동기구, 심지어 대형마트까지 갖춘 단지들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내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해 진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건설되는 고층 아파트는 그 아파트가 가진 높은 가격에 맞게 만들어진 수많은 편의시설과 보안시설로 인해 일반 주거지역에서는 엄두도 못 낼 위화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보안요원들이 새까만 양복을 입고 위용을 드러낸다.
단순한 위화감만 유발한다면 큰 문제는 아니겠지만 무분별하게 건설되는 아파트 단지들로 인해 주변의 교통과 오히려 소상권이 몰락하는 등의 전체 도시기능은 저하되는 것을 저자는 정확하게 지적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퇴를 앞둔 중년세대들이 주로 시골이나 한적한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것이 희망사항이었는데, 지금은 젊은 세대 중에서도 그런 희망사항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가까운 지인은 이미 시골에 땅을 사놓기도 했다. 아파트와 아파트단지가 무척 편리하고 유용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흙을 만지고 밟으며 살고 싶어 한다. 도시의 삭막함, 아파트의 획일성을 지적하면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척하지만 실제로 쉽게 떠나지는 못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20∼30년간 도시 기반시설에 대한 엄청난 공공투자를 통해 도시 공간 환경 수준을 크게 향상시켰다. 도시 어디에서나 공원이며 녹지, 생활체육시설, 도서관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자 굳이 자족적인 환경을 갖춘 아파트 단지를 선호할 이유가 사라졌다. 오히려 인간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골목길과 도시의 흥취가 배어나는 상점가에 가까운 동네가 훌륭한 집터로 선호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p.69)
한국사회는 너무 쉽게 아파트로 몰렸다. 그것만이 전부인 줄로 알았다. 유럽이 가진 경험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었다면 지금과 같은 아파트 공화국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혼 전 원룸에서 자취생활을 5년 동안 했다. 정말이지 너무 불편했다. 일단 주차문제. 퇴근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어디에다 주차하지?’ 생각하며 골머리를 앓았다. 특히 금요일 밤이나 일요일 밤은 지옥이다. 오죽하면 걸어서 15분이나 걸리는 인근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하기도 했었다. 또 쓰레기 처리 문제. 아파트단지 안에서는 원스톱으로 해결된다. 두 손에 잔뜩 음식쓰레기와 종량제봉투, 분리수거바구니를 들고 나가서 처리하면 끝. 원룸을 그렇지 않다. 하나하나 날짜를 맞춰야 하고 구청에서 나눠 준 규격에 맞게 기다려야 하고……. 정말 불편했다. 근처에 제대로 된 놀이터가 있기를 하나 운동 할 수 있는 공간도 없고 조깅할 수 있는 곳은 더더욱 찾기 어려워 결국 인근 학교 운동장을 찾아야 했다.
“결국 선호하는 주거 형태가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바뀌려면 우선 도시 공공공간 환경이 그만큼 좋아져야 한다. 현재 한국 도시 공간 환경이 매우 취약한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무엇보다 도시 기반시설과 시민 편의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공공투자가 필요하다.” (p.70)
급격한 경제 성장을 겪으며 유럽모델, 가까운 일본모델조차 차용하지 못한 것이었다. ‘일단 짓고 보자.’, ‘아파트 올리고 보자.’ 그리고 ‘부수고 보자.’ 공공단지, 공공공간에 대한 고민을 배제한 채 그저 아파트 올리는 것에만 급급했던 결과다. 지방의 중소도시 같은 경우에는 도로건설 또한 아파트 단지의 유무에 따라 달라진다. 새로 건설된 아파트 단지 주변으로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도로가 만들어 지고 하면서 이어붙이기식 도로건설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나마 광역시나 신도시 정도 되면 상황은 나아지지만 그것도 아파트 단지에 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편함을 초래하는 또 다른 문제가 된다. 그나마 사용하던 운동시설과 놀이터, 도로와 소필지 들이 대규모 아파트단지의 건설로 인해 파헤쳐지고 부서지고 하면서 점점 없어진다. 시민과 주민을 위한 공공공간에 대한 공공투자가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이라는 괴물로 인해 당연한 듯 사라지는 것이다.
사실, 지금 당장 내게 “너 20평짜리 아파트에 살래? 30평짜리 주택에 살래?” 물어본다면 당연히 아파트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파트가 아닌 다른 주거 형태가 아파트가 갖는 여러 장점을 뛰어넘지 않는 이상 한국의 아파트 사랑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고밀개발-고층개발-단지개발’의 불가피해 보이는 관계는 사실은 거짓말로 맺어진 불편한 삼각관계다. 도시 공공공간 환경에 대한 투자를 최소화하려는 꼼수와 단지화 전략이 그 불편한 삼각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 (p.89)
저자는 이런 과도한 사랑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지적 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공공공간 환경에 대한 투자와 계획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검토와 준비가 필요하다. 바닥부터 싹 갈아엎어야 하는 수준일 텐데 과연 한국의 행정부와 주관부서 해당지자체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당위성 없이 뛰어들까?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 공무원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저자는 ‘고밀개발-고층개발-단지개발’의 삼각관계가 거짓말로 맺어진 불편한 꼼수라고 주장 한다. 늘 그래왔듯이 대규모로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고 그 안에 공공공간 환경을 만들고 공공기관 및 시설, 교육시설, 여러 상권을 조성하면 한 번에 해결될 일이다. 그리고 책에서는 차마 지적하지는 않지만 현대 한국경제사를 통해 건설사가 해온 온갖 비리와 불법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다들 알고 있는 문제다. 한때 재벌기업들에서는 다른 사업 분야에서 본 적자를 건설 분야에서 충당한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국가기관이나 공무원들은 어디에서부터 손대야 할지조차 가늠이 안 가는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이지 않아서 좋고 건설기업들은 늘 해오던 대로 돈만 벌면 그만인데 이 좋은 일을 놔두고 단지 국민과 세입자, 주민들을 위해 이제 와서 유럽모델을 도입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한국 도시들의 인구밀도와 유럽 문화수도 선정 도시들의 인구밀도를 나란히 놓고 보면 한마디로 별 차이가 없다. 파리나 아테네는 서울과 부천, 코펜하겐이나 스톡홀롬은 목포나 부산에 견주어 인구밀도가 비슷하거나 오히려 조금 높다. 그토록 아름다운 도시라고 떠들어대는 프라하나 아비뇽, 베르겐은 인천이나 김해, 통영과 인구밀도를 견줄 만하다. 적어도 인구밀도에서 우리나라 도시들이 유럽 유수의 문화도시들에 비해 결코 높지 않다. 땅이 좁지 않은 것이다.” (p.79)
이렇게 속아 온 것이다. 학교에서부터 ‘우리나라의 인구밀도는 엄청나게 높답니다.’를 주구장창 들어 왔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사실인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중·고등학교 이후 인구밀도에 대해서 다른 나라의 도시와 직접 비교한 것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찾아볼 필요도 없었고 그럴만한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의 직접 비교는 놀라웠다. 파리, 아테네, 프라하와 같은 세계유산급 도시들과 서울, 부산, 인천과 같은 도시들의 인구밀도가 비슷하다니…….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배워왔는지 모르겠다.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한국이 주거할 땅이 좁은 것도 아니고 한국의 도시들의 인구밀도가 너무 높아 초고층·대규모 아파트 건설이 당연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런 한국의 아파트와 아파트 단지가 가진 이해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 직접 코멘트를 하지는 않지만 이런 문제들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사안을 소개한다.
바로 발코니 문제다.
“발코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은 이를 가로막는 세력들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발코니가 바닥 면적에 불가피해질 실질적인 용적률 하락과 수익률 하락을 걱정하는 건설회사의 집요한 로비, 과거의 어정쩡한 새시 설치보다는 제대로 거실이나 침실로 확장 공사를 하도록 합법화하는 쪽이 합리적이라는 엉뚱한 합리주의, 발코니 확장이 불가능해지면, 소형 아파트에서의 실질 거주 면적 축소가 걱정된다는 뚱딴지같은 충정, 새시로 막힌 발코니가 갖는 다기능적 공간 기능을 한국적 주거문화로 긍정하는 순진함 등등, 이해관계로 무장한 치열한 반대에서부터 비합리적이고 순진한 논리를 앞세운 무지한 반대 주장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고도 많다.” (p.355)
결혼 전 신혼집을 알아보기 위해 몇 개월 동안 발품을 팔았다. 발코니 확장을 한 집은 그렇지 않은 집보다 훨씬 비쌌다. 그만큼 발코니를 확장하는 데 많은 돈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같은 평수의 아파트라도 발코니를 확장한 집은 훨씬 넓고 깨끗해 보였다. 여름에 좀 더 덥고 겨울에 좀 더 춥기는 하지만 그렇게 넓은 평수를 선택할 수 없는 처지라면 차라리 좀 더 덥고 춥더라도 좀 더 넓은 공간을 소유하고 싶다. 그때도 생각했다. ‘예전엔 발코니 확장이 불법이었다고 들었는데 이런 집은 다 불법으로 확장한 것인가?’, ‘왜 처음부터 확장해서 지으면 되지, 이렇게 세대별로 나중에 골치를 먹게 하는 거지?’
저자는 정확하게 내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이유를 맞추지만 결국 자신들이 이제까지 해오던 대로 하는 것이 편하고 그렇게 해야 이렇게 저렇게 주워 먹을 콩고물도 있고 그런 것이리라 짐작해 본다.
“어차피 제값 다 받고 파는 주택이라면 처음부터 제대로 설계해야 한다. 처음부터 90m규모로 설계한다면 훨씬 자유롭게 합리적으로 좋은 설계를 할 수 있는 데 말이다. 발코니 확장 관행은 우리나라 주택 설계를 왜곡시키고 주거문화를 왜곡시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p.138)
저자는 이런 문제가 단순히 아파트단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주거문화를 왜곡시키는 주범이라고 주장 한다. ‘어차피 아파트가 가장 편하게 많으니까 거기에서 사세요.’라는 논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나 해당부처가 나서서 한국사회의 주거문화가 가진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할리 만무하고 건설 회사들이 너도나도 ‘이제 아파트 시대는 끝났다.’라며 아파트 건설을 중단할 리도 만무하다. 연일 TV에서는 친절하게도 ‘빚을 내서 내 집을 사세요. 멋진 아파트를 사세요. 그러면 당신도 이 광고하는 연예인처럼 살 수 있어요.’라는 착각을 심어준다. 최면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파트에서 계속 살고 싶다. 나의 첫 아파트이자 부모님이 처음으로 소유했던 ‘첫 집’ 주공아파트에 대한 아름답고 애틋한 기억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줄곧 아파트에 살다 5년 간 자취생활 했던 공동주택, 원룸의 불편하고 온통 스트레스였던 기억 또한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아파트 문제’, ‘아파트 단지 문제’가 저자의 지적과 주장처럼 심각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아직도 그런 아파트 하나, 내 집 하나 마련하는 것이 꿈인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크고 좋은 아파트나 그런 아파트를 몇 채나 가진 사람들이나 이제는 전원생활을 좀 해볼까 하며 멋있는 단독주택을 가질 만한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은 저자와 이 책이 던져 주는 시사점이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확 와 닿지 않는다. 아직은 연구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