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
미즈타니 오사무 지음, 김현희 옮김 / 에이지21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괜찮아."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용기다. 나는 아직 아이가 없어 이것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 체감하지 못하지만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대단한 용기임을 알게 된다. 어설프게 걸어 다니면서부터 아이는 본격적으로 엄마와의 전쟁을 시작한다. 치우고 치워도, 챙기고 챙겨도 끝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아이가 자라고 사춘기가 되면 극렬해지고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한 이후에도 "괜찮아."라는 말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친자식과 친부모 사이에도 이런데 학생과 교사,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끈끈한 혈연관계도 없다.

핸드폰의 기술력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학교에서 벌어지는 교사의 체벌과 훈육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고3이던 시절에도 어른들이 "집안에 가장 큰 상전은 고3 자식이다."라는 우스개를 하셨는데 요즘은 초등학교 이전부터 졸업을 하고 난 이후에도 상전중의 상전이 되어 버린 듯 하다. 이제 더 이상 아이들에게 예절 따위를 가르치고 훈계하려 들다가는 예상하지 못했던 주먹이 날아들지도 모른다. 골목길 깊숙한 곳에서 몰래 피우던 담배를 이제는 교복을 입고 떳떳하게 피워도 아무도 나서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괜히 참견했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2학년 겨울방학 전까지 실컷 놀았다. 당시 불량학생으로 분류되던 아이들이 하는 짓을 모두 해봤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지역에서 두 번째로 공부를 잘하는 인문계 고등학교 였는데, 놀 때는 정말 신나게 놀았다. 경찰서에 가보기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묘기를 부리다 다치기도 했다. 괜한 의협심을 부리다 큰 싸움에 빠지기도 했다. 다행히 고3이 시작되기 전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학업에 매진하게 되었다. 대학 입학 후 노는 것이 재미가 없었다. 시시하고 지루했다. 이미 고등학교에서 다 해 본 것들이고 제대로 놀아보지 않은 아이들이라서 어설펐다.

 

이후로 교회에서 만나는 아이들이나 이전에 일하던 학원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보면 꼭 나와 같은 아이들이 먼저 눈에 들어 왔다. 교회에 꼬박꼬박 잘 나오는 성실한 아이보다, 학원에서도 성실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보다, 뭔가 불만에 가득 차 있고 유난히 눈에 독기가 가득 하고 껄렁껄렁한 아이가 있으면 단번에 눈이 가고 기어코 친해졌다.

 

 

"꽃을 활짝 피우지 못하고, 그대로 시들어버리거나 말라버리는 아이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어른들의 잘못이다. 아이들은 피해자다. 나는 그런 피해자인 아이들과 만나기 위해 오랫동안 밤거리에서 살았다. 그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들 옆에 있고 싶었다." (p.37)

 

이 책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의 미즈타니 선생님은 그저 그들 옆에 있고 싶어 하는 어른이었다. 단순히 불량학생이라 판단해서 멀리하는 어른이 아니라 불량학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요인을 생각하고 결코 이 아이들이 가해자가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사회에게 말하고자 했다. 어설프게 구원자 코스프레 하며 아이들의 삶을 단번에 바꿀 수 있을 것처럼 굴지 않았다. 미즈타니 선생님은 그들 옆에 있고자 했을 뿐이다. 밤거리에 널브러진 아이가 있으면 쉴만한 곳으로 데려가 그저 그 아이의 옆을 지켰다. 학교도 가지 않고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는 아이의 집을 찾아가 몇 날 며칠을 그저 함께 있을 뿐이었다.

 

 

"생선이야 썩을 수 있지만, 아이들은 절대로 썩지 않아. 그들이 그렇게 된 건 누군가가 그들을 썩게 만들었기 때문이야. 그런 아이들을 구하는 게 바로 교육이야!" (p.205)

 

이미 인생이 결정 난 것처럼 방치하고는 하지만 미즈타니 선생님은 결코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썩을 것처럼 보이고 그렇게 판단할 뿐 아이들은 절대로 썩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졌다. 명문 주간 고등학교에서 야간 고등학교로 자진해 전출을 하고 누가 시키거나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12년 간 매일같이 밤거리를 찾아 갔다.

사회가, 부모가, 학교가 챙기지 못해 밤이 토해낸 아이들을 찾아내 보듬었다.

 

 

"경찰에서는 나를 두고 '일본에서 가장 죽음 가까이에 서 있는 교사'라고 말한다. 입이 험한 어떤 경찰은 이런 말까지 한 적이 있다. '아마 당신은 언젠가 목이 잘려 죽게 될 거요. 아님 쥐도 새도 모르게 바닷물 속에 수장될지도 모르지." (p.34)

 

책을 읽다 보면 아찔한 장면이 더러 있다. 이미 십여 년 전에도 일본에서는 청소년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이지메와 히키코모리, 청소년 폭력조직. 약물복용에 대한 심각성이 대두되었다. 특히 폭주족에 가담하는 아이들의 사례가 책에 여러 번 등장하는데 미즈타니 선생님은 아무리 위험하고 무모해 보이는 조직과 상황 앞에서도 겁먹지 않고 주저하지 않는다. 수십 명이 뒤엉켜 있는 패싸움 한가운데 뛰어 들어 아이들 구하고 폭주족 우두머리를 만나 담판을 짓기도 한다.

 

 

"미즈타니씨. 우리도 체면이란 게 있는데, 약속을 어겼으면, 뭔가 대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소? 그들은 나의 손가락 하나를 요구했다."

"손가락 하나를 잃은 아픔은 매우 컸다. 그러나 소년의 미래를 위해서 손가락 하나쯤은 희생할 수 있었다."(p.144)

 

급기야 아이를 폭주족에서 빼내는 대신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기도 했다. 부모도 아니고 무슨 특별한 사명을 가진 영웅도 아닌데 그는 아낌없이 내어 주었다.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에 대한 에피소드 말미에는 이 아이가 취직을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아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내용이 등장하는 데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내가 가까이 알고 지낸 아이처럼 마음이 놓이고 뿌듯했다.

미즈타니 선생님은 책에서 줄곧 자신은 특별한 희생을 하거나 멋들어진 목표가 있어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데, 그것 자체가 멋있고 대단한 헌신과 희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표시내고 생색내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다. 아낌없이 희생하는 것에는 어김없이 자신과 그 주변 사람의 희생이 동반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미즈 타니 선생님이 12년 동안 밤거리를 다니며 5천 명이 넘는 아이들을 만나는 대신 어떤 개인적 삶의 희생이 있었고 주변사람들의 고통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전혀 없다. 그 정도 이야기는 살짝 곁들여줘도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아예 그런 내용은 없다.

 

 

"나는 다카시와 만날 때마다 그가 가진 훌륭한 장점들을 강조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보지 않겠냐고 권유했다." (p.92)

 

밤거리의 토사물이 되었던 아이들은 미즈타니 선생님에 의해 구원되기 시작했다. 물론,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전혀 아이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인정해 주는 것도 아닌 일을 하면서 성공하는 것보다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면 얼마나 힘이 빠질 것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가 포기하지 않으니 아이들도 포기하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에 다시 유혹에 넘어가 죄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감옥에서 마주한 선생님 얼굴 앞에서 오열 하며 뉘우치고 새 삶을 각오 한다.

 

많은 사람, 큰 힘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다. 단 한 사람. 자신을 믿고 기다려 주는 단 한 사람이 필요하다. 벌써 나도 어른이 되어 아이들의 행동을 볼 때 눈꼴사납고 훈계하고 싶을 때가 많다. 나는 실컷 놀아본 학창 시절 경험이 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기다려 주는 것이 필요하다. 미즈타니 선생님의 12년 동안의 밤거리 활동을 이 책 한 권에 다 담을 수 없듯이 우리가 만나는 혹은 이야기 듣는 불량 학생, 4가지 없는 청소년들에게도 다 이야기 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그들만의 상황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최소한 내가 주기적으로 만나는 청소년이 있다면 그 아이를 기다려 주고 옆에 있어 주는 어른이 되기를 제안해 본다. 뭔가 가르치려 들거나 훈계하려 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아이의 친구가 되어 아이가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한다면 최소한 그 아이가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한 명 생기게 되는 것이다. 책에서도 이것을 강조한다. 많은 힘이 아니라 "당신의 힘과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주위를 둘러보자. 아이를 찾아보자. 그리고 그 전에 미리 다짐하고 연습해 보자.

"아이에게 훈계하지 않기. 야단치지 않기. 가르치려 들지 않기. 아이보다 말 많이 하지 않기."

나는 당장 한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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