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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독서 두번째 이야기 - 길을 안다는 것, 길을 간다는 것 ㅣ 여행자의 독서 2
이희인 지음 / 북노마드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시장이 기형적으로 커지고 동네 뒷산에만 올라도 마치 히말라야 7좌를 등정하는 데 필요할 것만 같은 장비와 도구, 옷을 구비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최근 몇 년간 아웃도어 캠핑 시장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산이나 바다 어디를 가도 이제는 캠핑장이 구비되어 있고 그들이 선보이는 캠핑 장비들은 어마어마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캠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귀찮고 성가시다. 아무래도 캠핑은 여름에 많이 하게 되는데 나는 일단 여름에 밖에 나가는 것이 너무 싫다. 그렇지 않아도 더위에는 쥐약이고 선풍기를 틀어 놓아도 땀이 나는 내 눈에는, 집 살림 정도의 물건들을 굳이 밖으로 가져 나가서 사서 고생하는 것 같은 캠핑이 이해되지 않는다. 캠핑을 하면서 맛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점이 많겠지만 나는 캠핑! 하면 ‘출발 전부터 장비 챙기느라 땀으로 흠뻑, 출발해서 도착할 때까지 차 밀리며 땀 흠뻑, 도착해서 준비하면서 땀 흠뻑, 텐트에서 땀 흠뻑, 돌아오기 위해 장비 철수하면서 땀 흠뻑, 집에 와서 정리하고 장비 씻느라 땀 흠뻑’
여행도 처음에는 그랬다. 여행의 무용성을 떠들고 다니기도 했다. 여행갈 돈으로 책을 사 보면 그 여행에서 맛볼 수 없는 신세계를 경험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이런 내 생각과 확신은 몽골여행 한 번으로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나’라는 존재를 압도하며 펼쳐진 사막의 일출 장면에 눈물을 쏟았다. 참회와 부끄러움, 찬양과 경외의 눈물 이었다. 수백 권의 책에서도 차마 맛볼 수 없는 경험이었다. 여행에 대한 생각과 자세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후로는 나보다 조금이라도 어린 친구들에게 “땡빚을 내서라도 배낭짐을 싸라. 최소한 2주는 여행해라. 남들이 가지 않은 곳으로 여행해라.” 전향했다.
아웃도어 장비와 옷, 캠핑 장비들의 참맛을 경험하면 쉽게 사상전향하지 않을 까 싶기도 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톈진에서의 마지막 밤. 여행이 아쉽고 젊음이 슬프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어야 했다. 어떤 경험은 너무 아름다워 상흔이 되기도 한다.” (p.37)
이 책 「여행자의 독서 - 두 번째 이야기」의 저자는 최소한 나보다는 훨씬 많이 여행을 다닌 여행객이다. 이미 고등학교 때 자신의 힘으로 번 돈으로 여행경비를 마련 해 여행을 다녔다. 뒤늦게 사상전향한 나와는 다르다. 그런데 ‘어떤 경험은 너무 아름다워 상흔이 되기도…….’라는 말에 왜 이렇게 공감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몽골 엘승타슬라헤 사막에서 마주한 사막의 일출 앞에서 쏟아낸 눈물에는 ‘내 젊음이 슬프다. 여행이 아쉽다.’라는 속뜻은 없었는데 말이다. 나는 그저 경탄해 마지않는 자연 앞에 찬양의 눈물을 쏟은 것이었다. 저자의 표현처럼 여행 자체가 아쉽고 젊음이 슬퍼서 엉엉 울었다는 경험이 낯설기는 하지만 탐이 난다. 언제 내 자신을 두고 울어 볼 수 있을까? 쉽지 않은 경험이리라. 한 번 해보고 싶다.
“세르비아의 평화.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만난 평화는 내내 불안하고 갑갑했다. 보스니아와 코소보에서 살벌한 폭력을 저지른 이들의 도시와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듯 평온할 수 있는 것일까? 전쟁은 그저 허깨비였단 말인가? 전쟁은 과연 사람이 했던 짓인가?” (p.156∼157)
사실, 책이나 TV를 통해 알게 되는 것에는 것과 실제로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때가 많다. ‘코소보 사태’로 잘 알려진 보스니아 내전은 나치의 인종말살 정책 이후 가장 잔인하고 무모한 전쟁이었다. 유서 깊은 짧은 다리를 하나 두고 민족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매일 마주치며 인사하던 이웃을 무참히 살해 했다. 그리고 그들의 아내와 딸과 어머니를 강간했다. 다시는 그들과 같은 인종이 탄생하지 않도록. 잔인하고 무자비하다. 그런데 실제로 그 잔인한 전쟁의 주도자였던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는 평화로웠다고 한다. 책에 삽입된 베오그라드 시민들의 평화롭고 여유로운 모습에서는 전쟁의 상흔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환각 상태에 빠진 것처럼, 허깨비를 보고 있는 것인지 내가 허깨비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여행이 아니면 결코 맛볼 수 없는 경험이다. 활자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알 수 없다. 어떠한 형태로든 가공되고 수정되어 편집된 화면으로도 결코 알 수 없다. 내 눈으로 직접보고, 내 손으로 직접 만지고, 내 귀로 직접 듣고, 내 코로 직접 맡아야 알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기에 동일한 베오그라드 주민을 보고 저자와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의 만행, 특히 아우슈비츠의 기억은 서구 유럽에 씻을 수 없는 원죄의식을 심어 놓았다. 수세기 동안 세계의 중심을 자처하며 이성과 합리성을 신봉해온 콧대 높은 유럽 대륙에 극단의 야만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은 유럽인들에게 적잖은 충격이었으리라.” (p.205)
체코의 프라하와 독일의 드레스덴에 신혼여행을 갔었다. 프라하도 좋았지만 나는 드레스덴이 더 좋았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도시가 완전히 폐허가 된 드레스덴. 이미 책을 통해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직접 경험한 드레스덴은 많이 달랐다. 시민들의 힘으로 전쟁이 가져 온 폐허를 이겨내고 새로운 도시로 탄생했다는 활자를 읽었지만 실제로 그 도시에 어떻게 숨 쉬고 있는지는 직접 발로 다니며 경험할 수 있었다. 깨끗하고 단정하고 심플했다. 독일의 도시 ‘다웠다.’ 그런데 뭔가 알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다. 과도하게 절제된 것 같은 느낌.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였는데, 이미 전쟁의 상처에서 완치되었는데 차마 씻어내지 못한 슬픔, 절망, 공포 같은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드레스덴을 신나게 돌아다니고 난 후 돌아온 숙소 침대에서 갑자기 그런 느낌이 몰려 왔다. 슬펐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함께 여행하지 말라 한다. 사이가 멀어질 수 있다고? 그렇다면 진정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걷는 길이 가장 쉽고 아름다운 길이다.” (p.76∼77)
이 책은 다른 여행서적과는 많이 달랐다. 여행지에서의 경험이 주가 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의 ‘내’가 주인공이다. 여행지에 들고 간 ‘책’이 주인공이다. 저자의 탄탄한 인문학적 내공도 한 몫 한다. 저자가 책에서 ‘문학’ 쪽에 더 관심이 많다고 하는데, 책에서 소개한 많은 문학작품들 중 대부분이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중간 중간 읽고 싶은 책을 메모하고 리스트를 만들었다. 주로 한 분야의 책만 편식하는 내게 저자의 책소개는 보약과도 같다. 책이 재미있고 저자의 글에 고개가 끄덕여 지면 저자가 하는 말에도 동의하고 싶어지게 마련인데 이 책과 저자에게도 그랬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이 가장 좋았다. 혼자서 배낭 짊어지고 고생한 여행도 좋았지만 둘이서 함께 하는 여행이 주는 달콤함을 넘어설 수 없었다. 아내와 하는 여행이 가장 좋았다. 여행 중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당연한 건데 너무 자랑처럼 얘기했나?^^;;) 그저 좋았다. 기질과 성향이 비슷해 그런 것 같다. 계획하고 있는 여행도 무척 기다려진다.
“아시아나 아프리카 나라들이 번잡하고 지저분하지만 어쩐지 활기 넘쳐나는 시장통을 활보하는 기분이라면, 유럽은 조용하고 인적 드물며 경비가 삼엄한 부유한 주택가를 산책하는 것만 같다. 좀 심하게 말해 어딘가 박제가 되어버린 여행, 핏기 없는 여행을 하는 것만 같다.” (p.181)
계획하고 있는 여행이 유럽인데 이 사람이 산통을 깨고 있다. 아직 많지 않은 여행 경험이라 저자의 내공에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별로 상관할 것 없어 보인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남미를 경험하고 나서야 ‘말이지~ 아시아는 말이야~ 아프리카는~ 유럽은 말이야~’ 으름장을 놓을 수 있는 것이지.
“길 가기와 책 읽기에 관해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걸 당신에게만 말해주겠다. 부지런히 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다. 부지런히 읽는 책이 가장 빨리 읽는 독서다.” (p.329)
여행도 부지런히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다.
가세~ 가세~ 젊어서 가~ 늙어지면 못 가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