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의 힘 - 능청 백단들의 감칠맛 나는 인생 이야기
남덕현 지음 / 양철북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충청도 아저씨, 효진이 아빠

 

 

부모님 고향이 충청도다. 이 책을 산 건 순전히 부모님 고향이 충청도였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물설고 사람 선 경상도 땅에서 살아 온 부모님은 시장에서 혹시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 “혹시 고향이 어디에요?” 물으시곤 했다. 혹시나 하는 물음에 “충청도 어딘데요~” 대답을 들으면 고향 친구 만난 것처럼 좋아하시곤 했다. 두 분에게는 늘 고향 충청도가 그 자체로 그리움이었던가 보다. 그렇게 오며 가며 알게 된 동향의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기도 하셨다. 회사에서도 ‘충청향우회’ 총무, 회장을 두루 역임하셨다. 어릴 때부터 가족 모임을 따라 가면 흔하게 듣던 사투리가 충청도 사투리였다. 경상도에서도 억양이 걸걸하고 드센 바닷가에 위치한 도시가 고향인 나는 집에서 늘 듣는 부모님의 충청도 사투리 영향으로 학교 친구들과는 좀 다른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했다. 그런데 부모님을 따라 가는 ‘충청향우회’ 모임에서 듣는 충청도 사투리는 부모님의 그것과는 또 달랐다. 부모님은 충북 단양이 고향이신데, 그 지역은 충북 이남과 충남 지역 사투리와는 많이 다르다. 오히려 강원도 태백과 정선 사투리와 유사하다. 그래서 집에서 늘 듣던 부모님의 충청도 억양과 다른 사투리를 들을 수 있는 ‘충청향우회’모임이 어린 내게도 재미있었다.

효진이 아빠는 아버지와 같은 회사를 다니시고 ‘충청향우회’ 초창기 멤버이자 지금은 부모님과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면서 가까이 지내시는, 충남 논산이 고향인 분이다. 딸 이름이 효진이라 효진이 아빠라 불린다. 효진이 엄마도 충남 조치원이 고향인 분이다.

아버지와 효진이 아빠는 많이 다르다. 구사하는 충청도 사투리도 완전히 다르고 성격도 완전히 다르다. 아버지는 온통 산으로 둘러진 충북 단양이 고향이시라 그런지 급하고 뾰족하신 반면 효진이 아빠는 느리고 둥글둥글 하시다. 아버지는 효진이 아빠를 늘 나무라신다. 워낙 성격이 급하고 버럭! 하시는 터라 ‘너무 심하신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런데 효진이 아빠는 늘 ‘허허~ 그렇지 뭐~어~, 알았어~ 님자 말이 맞어~ 허허~.’

워낙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얼큰하게 취하시면 나와 동생을 불러다

‘이놈~ 받어~ 맛있는고 사 묵고 공부 열심히 혀고, 아부지 어무니 말씀 잘 듣고 햐~’

만 원짜리 한 장씩 찔러주시고는 했다.

그런 효진이 아빠가 작년 초 숭한(흉한) 암진단을 받으셨다. 뭐 그런 것 까지 급하게 먼저 하시려고 했는지 내 아버지는 4년째 암과 싸우고 계시고, 효진이 아빠는 굳이 안 따라오셔도 되는데 아버지의 급한 걸음을 따라 가셨다.

효진이 아저씨의 쾌유를 빈다.

 

 

 

 

충청도의 뜬금포 - 너무 웃기고 너무 슬픈

 

유명하게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충청도 시골의 외딴 2차선 국도를 가던 서울 운전자 앞에 규정 속도에 한참 미치지 않는 속도로 느릿느릿 가는 앞차. 상향등을 총을 쏘듯 발사하고 클락션을 아무리 눌러대도 앞차는 여전히 느릿느릿 가는 둥 마는 둥. 한참을 그렇게 옥신각신 하다 드디어 앞차가 길가에 멈춰 섰다. 운전자가 내리고 뒤차로 느릿느릿 걸어와서 운전석 옆에 서더니 손가락을 까딱까딱 창을 내리라고 했다. 너무 심하게 해서 화가 났나 싶은 서울 운전자는 약간 무서운 심정으로 살짝 창문을 내린다.

앞차 운전자 왈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슈~~”

 

 

충청도 뜬금포 발사!!

 

“심판 읎는 소리! 갸가 달아 준다니께 허지 말라믄 섭섭헐게 비 내비 뒀는디, 배람박에 달린 거 드러누워서 치다볼라믄 댈꾸(자꾸) 목에 심이 들어가니께. 아침에 인나믄 목이 안 돌아가서 죽겄어 아주. 시엄니 모가지 뿌러지라구 그런 걸 달구 갔나 싶구, 심란허다니께!” (p.69)

 

 

이 책 「충청도의 힘」을 읽기가 힘들었다. 부모님이 충청도 분이시지만 부모님이 구사하시는 사투리와는 전혀 다른 사투리가 그대로 책에 쓰여 있다. 충남 보령, 대천. 진짜 충청도 사투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도 충청도 특유의 뜬금포가 기상천외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반응과 어투, 표정이 그대로 그려진다. 시골에 사시는 시어머니가 조금 더 큰 화면으로 조금 더 선명한 화질로 6시 내고향부터 9시 뉴스까지 보시라고 고급 평면TV를 벽걸이형으로 설치해 드렸는데, 고맙고 자랑하지 싶은 마음을 은근히 메누리(며느리) 숭(흉)보는 투로 뜬금포를 발사하시는 충청도 할머니. 흐흐흐. ‘시엄니 모가지 뿌러지라구 그런 걸 달구 갔나 싶구’ 에구~ 할머니…….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르신을 사랑하십니다.”

 

충청도 시골 중에서도 시골 심심하고 지루한 버스 정류장에 시골 교회 전도사가 충청도 할아버지께 전도를 시도 한다.

 

“얼래? 돌아가신 우덜 아버지두 나라믄 아주 진절머리를 치셨는디 워쩐 일이랴? 쌩판 모르는 양반이! 별일이네.” (p.151)

 

 

이 부분을 읽고 방바닥을 뒹굴었다. 최근 가장 크게 웃었다. ‘우덜 아버지두 나라믄 아주 진절머리를 치셨는디 워쩐 일이야? 생판 모르는 양반이!’ 어떻게 이런 대답을 하실 수 있을까 싶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가 충청도를 온 몸으로 살아오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의 흔적. 갈래갈래 갈라진 그분들의 손가락처럼, 가뭄 든 논바닥 갈라지듯 갈라진 그분들의 뒷목 주금처럼 살아내지 않으면 도무지 흉내 내지도 못할 그 자욱들을 고스란히 옮기고 싶었다고 했다. 데굴빡에 피도 마르지 않아 보이는 젊은 전도사 냥반이 일정시대의 고약함과 동란의 처절함을 알아낼 수 있을까? “됐어요.” 차갑게 돌아서거나 아예 못 들은 척 지나가는 차도할(차가운 도시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의 냉점한과는 차원이 다른 것일 테다. ‘우덜 아버지두 나라믄 아주 진절머리를 치셨는디’

어김없이 뜬금포를 장전해 발사하신다!! 하하하하

 

 

“워째유?”

“백발이 성성한 약사가 ‘어디가 어떻게 아파서 왔냐’는 말을 단 세 마디로 끝낸다.” (p.28)

 

 

‘그렇게 바쁘면 어제 오지 그랬슈~~’ 이 뜬금포와 거의 비슷한 맥락이다. ‘워째유?’ 어디가 어떻게 아프셔서 오셨어요? 라는 4음절, 14단어를 단 3단어로 압축하여 발사하신다. 워째유~~.

책에는 충청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질펀한 농담과 진담이 가득이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비유와 속담(?), 은유로 가득하다. 기상천외하고 뜬금없지만 재밌다. 입 꼬리를 씰룩씰룩 올리며 웃다가 빵빵 터지게 웃다가 방바닥을 뒹굴기 일쑤다. 경상도 사람 둘이 대화를 하는 걸 보고 서울 사람들이 싸우는 걸로 오해한다고 하는데, 이 책에 담긴 충청도 할아버지 할머니에 비하면 약과다. 저주와 욕설과 비아냥거림과 몽땅 지워내고 싶은 과거사를 또 들추어낸다. 그런데 불편하지 않다. 눈살도 전혀 찌푸려지지 않는다.

‘아~ 이분은 이렇게 살아오셨구나~’ 싶다.

웃지만 슬프다. 웃프다.

 

 

 

 

 

노인들 때문에? -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

 

 

“쓰나미 선금은 뭐여?”

“접때 일본 눔들 바닷물이 넘쳐 갖구서 욕본 적 있잖여? 시 노인회에서 십시일반으로 보태자구 혀서 우덜두 낸 겨. 일정 때 당헌 거 생각허믄 아직꺼정 심쟁이 바들바들허는디 울구불구허는 거 보니께 참말루 딱허드라구.” (p.224)

 

 

충청도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우덜(우리들)보다 낫다. 이 어르신들은 일정을 겪으셨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왜놈 말은 말이 듣고 책도 읽고 화면으로도 보기는 했지만 일정 때가 어땠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서도 일정 때에 대해 들어본 바 없다. 굳이 아프고 힘든 얘기를 손주놈에게 꺼내고 싶지는 않으셨을 거다. ‘아직꺼정 생각만 혀도 심쟁이 바들바들 헐정도인디’ 그것은 그것이고, 딱헌 사람들 돕는 그분들의 마음씀이 감사하다. 삼십년을 훌쩍 살아 왔지만 여전히 이것저것 재는 내 모습을 돌아본다. ‘무슨 의도가 있을까? 무슨 이면의 뜻이 있을까?’ 직접 당해보지 않은 고통에도 무분별한 의심과 불만을 쏟아내는 내가 부끄럽다.

 

 

“근디, 그 귓구녕이 이조 오백 년만 조져 먹구 말 구녕은 아닌가 벼. 대통령 선거? 우덜은 시답지 않은 짓거리여 그것이. 우덜이 시방까정 한번두 안 까먹구 꼬박 꼬박 이눔 저눔 가믄서 찍었는디, 다 그 구녕이 그 구녕이지 뭐 밸반 안 달브드라니께. 특별히, 니 맴 다 안다구 설레발치는 눔들은 종국에 가서는 더 지랄 발광으루다가 읎는 눔들을 조지드라니께?” (p.244)

 

 

노인들 때문이라고? 작년 대선이 끝나고 원하는 결과를 받아 들지 못한 젊은이들은 특정 노인들을 향해 비수를 쏟아냈다. ‘노인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연금, 내지 말자.’, ‘버스나 지하철 타면 자리 양보 하지 말자.’, ‘큰 선거가 있으면 노인들 단체로 해외여행 보내자.’ 말이 말을 낳고 비수가 비수를 낳는다. 허탈을 이기지 못한 잠깐의 젊은 객기였겠거니 싶다가도 나도 그것에서 다르지 않음을 깨달으니 시내 한복판에 벌거벗고 있는 것 마냥 정신이 온통 오그라든다.

 

 

“뭔 눔의 세상이 우덜 때보덤 살기가 더 심들어 도대체가? 아, 가르치질 못혔어, 전셋집을 못 얻어 줬어! 근디 맨날 빚 타령에 직장 타령에... 아주 기냥 서울서 전화 오믄 가심이 떨려서 반갑지두 앉다니께!” (p.166)

 

 

새벽같이 밭으로, 논으로 나가셔서 9시 뉴스가 시작하기도 무섭게 잠드시는 충청도 할아버지 할머니께 ‘서울전화’가 얼마나 반가울까? 자식들 손주들 목소리 한 번 듣는 것으로 하루의 피로를 노년의 쓸쓸함을 달래는 것이 유일한 낙일텐데, 그 ‘서울전화’조차 반갑지 않은 요즘이라니... 괜스레 죄송하고 마음 아프다. 일정 때와 동란, 보릿고개보다 더 무서운 것이 오랜만에 걸려 온 ‘서울전화’ 라니. 허리가 직각으로 꺾일 만큼 애를 쓰고 피땀을 흘려 뒷바라지를 했는데, 여전히 자식 걱정에 편안할 날이 없는 분들이다. 그런데 이 충청도 어르신들은 ‘나 죽는다. 나 죽는다.’가 아니시다. 동네 친구와 성님 동상과 서로 누가 더 속상하고 걱정이 많나 내기라도 하시는 것처럼 토해내듯 쏟아내시며 한바탕 웃어버리신다.

 

 

“별거 있간디?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지.”

“별거 읎다니께? 그란 줄만 알구 살믄 되는 겨!”

 

 

사는 게 팍팍하고 고되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내는 것이 인생이고 ‘별 거 아닌 하루’라 생각 된다.

그것이 충청도의 힘일 테다.

 

 

“심연 속에서, 기쁨과 슬픔이 고유한 무게로 자리 잡아 갈 때 비로소 사람은 정갈해진다.” (p.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솔로몬의 위증 1 - 사건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9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협화음만큼 듣기 싫은 소리는 없다. 각자 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결코 아름답지도 조화롭지도 않은 모양새가 우습기만 할 뿐이다. 더 심각한 것은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 당사자들은 각자가 그 불협화음의 주인공임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경우는 꽤 자주, 흔하게 보게 된다. ‘나는 아니야~’라는 생각은 누구나 하고 있는 것이다. ‘쟤 때문이야. 저 사람 때문이야.’라고 결론부터 내버리면 뒷일은 쉽다. 이후에는 피아(彼我)식별만 눈치껏 하면 된다.

삐걱삐걱 대는 소리가 익숙할 만큼 삐걱대는 세상이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관계에서, ‘나’라는 존재 안에서조차 삐걱대고 있다. ‘언제 제대로 한 번 굴러가 본 적이 있나?’싶을 정도로 이런 상황에 적응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 세상이 완전하지 않다고 믿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광적인 원리주의 종교 집단에서도 가질 수 없는 확고한 믿음이다. 다들 소망하는 바와 그 소망하는 바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절망의 양가성 (Ambivalence)을 내포한다.

미야베 미유키는 이러한 극단적인 사회적 병리를 문학으로 표현해 낸다. 그녀의 이전 작품 중 「모방범」과 가장 닮은 작품이 바로 「솔로몬의 위증」으로 보인다.

작가는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의 병리를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다. 도무지 붙을 것 같지 않는 패를 보자마자 화투장을 엎고 판에서 이탈하는 선수의 가부좌를 풀지 못하게 한다. 직접 판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끝까지 지켜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불편하다. 어려운 표현이 많거나 전문적인 용어로 가득 차 있어서 어렵고 불편한 것이 아니라 집채만 한 거울에 비친 나와 당신의 민낯을 그대로 활자로 투영해 내기 때문이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나와 당신이 겪었던, 겪고 있는, 겪을 양가적으로 병리된 세상을 그대로 보여 준다. 날 것 그대로.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구상하고 연재한 기간은 고스란히 그녀의 몫이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작품은 이제 독자들의 몫이다. 같은 사진 한 장을 보고도 각자의 감상이 다른데 이렇게 방대한 양의 책은 오죽하겠나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을 내 방식으로 파헤쳐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나와는 다른 ‘당신’도 그럴 것이다.

소설의 배경의 되는 1990년대 초 일본의 사회·경제·문화적 배경이 2013년 한국의 그것에 그대로 겹쳐진다. ‘그러니까 아직도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했잖아!!’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어디까지나 이 책은 픽션이니까. 소설이니까. 다만 1990년대 초 일본의 상황과 2013년 한국의 상황이 어떻게 이렇게 유치원생이 하는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을까 하는 의구심은 가득 하다. 뭐, 이것 또한 내 몫이라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나도 당신도 학교를 다녔다. 아주 드물게 대안 학교라는 특수한 교육을 받거나 검정고시를 통해 교육기간을 이수한 사람도 있겠지만. 보편적인 경우에 학교를 다녔다. 학교에 대한 경험과 추억이 혼재한다. 나에게 학교는 추억보다는 경험이 많았다. 별로 추억할 아름다운 기억이 없다는 것을 에둘러 말했다.

학교와 학부모와 학생이 만들어 내는 불편하고 절망적인 불협화음 속으로 들어가 본다.

 

 

 

 

 

 

학교

 

 

“모리우치 선생님은 믿을 만한 사람이 못 된다. 선생님은 겐이치처럼 눈에 띄지 않는 학생에게 관심이 없으니 겐이치를 알지도 못한다.” (1권, p.74)

 

 

내가 다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실에는 최소한 50명이 넘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고등학교 때는 에어컨이 있었지만 3년 내내 단 한 번도 가동되지 못했다. 그 에어컨은 살아있는 시체였다. 아! 장학사인가 교육청에서 인가 양복 입은 꼰대들이 우르르 몰려 온 적이 있는데, 그때 한번 가동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이 오기 며칠 전부터 우리는 단 한 번도 맞아보지 못한 시원한 바람을 쌩쌩 내뿜어줄 것 같은 필터와 에어컨 내부 장기를 열심히 청소했었다. 50명이 넘는 우리들은 번호로 불렸다. “야! 몇 번! 이거 풀어 봐.”, “몇 번! 나와~!” 아! 물론, 공부 잘하는 몇 명의 아이들과 전교에서 이름난 불량학생 몇 명의 이름은 정확하게 불렸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도쿄의 한 공립학교에서 죽은 가시와기 타쿠야는 별로 존재감이 없는 학생이었다. 여리고 자신만의 생각에 잠긴 그를 애써 무시하기도 하고, 아예 관심이 없기도 하고, ‘어린 철학자’로 마음속으로만 추종하기도 했다. 그런 타쿠야가 죽었다.

 

 

“선생님도 완벽하지 않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전부 알지는 못한다.” (1권, p.580)

 

 

교사가 완벽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매일 출석한 콩나물시루 속 50명의 아이들 중 그 누구도 교사에게 ‘완벽’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나를 좀 알아줘요’

타쿠야의 죽음으로 도쿄3중학교는 멘붕 상태로 빠진다. 인자하고 합리적일 거라 생각했던 쓰자키 교장과 다카기 학생주임은 결국 ‘학생의 죽음’을 ‘별 것 아닌 일’로 덮어버리려 했다. 그런 시도들이 하나같이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아 일이 커지고 결국 학생재판 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다.

 

 

“머리를 굴려 함정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후지노 료코가 평소 구스야마 교이치라는 교사의 성격과 특징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날 얕보지 마라, 난 선생이니 너희보다 높은 사람이라고 입만 열면 으스대는 남자에게는 강경책이 잘 먹힌다.” (3권, p.48)

 

 

아내의 친구 중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 동사무소 직원들이 가장 상대하기 싫어하는 민원의 직업이 <교사>라는 얘기를 듣고 목이 부러질 듯 끄덕이며 공감했다. 일단 민원을 하면서 동사무소 직원을 가르치려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최근까지 관계가 굉장히 껄끄럽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도 교사다. 자기 말이 다 맞다고 결론 내리고 난 뒤부터는 대화가 아니라 가르치는 것이다. 오랜 기간 그렇게 교실에서 가르쳐 왔던 것처럼 그렇게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물론, 아닌 교사가 더 많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내 얘기를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교사들 중 대다수가 그런 교사였다. 존재감 없는 겐이치와 타쿠야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모리우치 선생과 같은 교사들이 대부분이었다. 모두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그랬다.

2000년을 넘기며 한국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학교문제’의 경우, 학교는 늘 방어하고 숨기기에 급급했다. 교육정책이라는 것이 동전 뒤집는 것만큼 쉽게 바뀌는 국가이다 보니 학교는 늘 ‘경쟁’ 메커니즘을 고육지책으로 내걸고 연명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성적으로 좋은 상급 학교에 진학시키는 것에만 혈안이 되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 학교에서 왕따니, 학교폭력이니, 자살이니 하는 문제들은 없어야 한다. 또 다른 타쿠야가 새벽 밤을 가르며 자신의 몸을 내던졌는데도 학교에서는 ‘없는 일’, ‘없어야 하는 일’이 되었다.

 

 

학교는 콘트라베이스다.

무슨 꿍꿍이인지 무겁고 어둡다.

 

 

 

 

 

 

학부모

 

 

타쿠야의 죽음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있던 간바라 가즈히코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살했다. 간바라는 타 중학교 재학생임에도 학생재판에 참여하여 3중학교 최고의 문제학생 오이데 슌지를 변호한다. 그 변호인단의 조수, 처음 타쿠야의 시신을 발견한 노다 겐이치는 부모를 살해하려 했다. 타쿠야의 형은 부모의 일방적인 편애를 견디지 못해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조부모와 산다. 고발장을 만들어 사건의 국면을 급격하게 전환시킨 미야케 주리의 어머니는 딸의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모두가 싫어하던 주리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던 아사이 마쓰코의 어머니는 그저 착한 사람일 뿐, 딸의 죽음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던 오이데 슌지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에게 정답게 물어보지 않는다. 늘 몰아세우고 다그치고 지적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작품에 등장하는 학부모들의 모습은 가관이다. 차라리 ‘이런 부모라는 없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타쿠야의 죽음이 외부로 알려진 후 부랴부랴 차려진 학부모 회의와 이후 학생재판을 참관하는 자리에서도 학부모들은 어른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내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네 아이’의 문제라는 것이다. 타쿠야의 죽음을 가져 온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무슨 수를 쓰든지 간에 빨리 범인을 잡든지, 본인의 자살로 결정 나든지, 어서 빨리 사건이 결론 나서 더 이상 소문나지 않고 자신의 아이가 마음 놓고 학교에 다시 다닐 수 있는 것에만 집중 했다.

 

내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일을 하셨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미안하다.’는 말을 하실 때가 있다. 그 때 더 신경 쓰고 챙겨주고 뒷바라지 해줬어야 하는데……. 하는 미안함이다. 나는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하실 때마다 손사래를 치며 당시 치맛바람을 일으켰던 유명한 누구누구 엄마들 얘기를 또 다시 꺼내며 대화를 급하게 마무리 한다.

내 경우를 돌이켜보면 ‘내 아이’의 문제에만 함몰되는 것이 나쁜 것이라 할 수만은 없는 문제인 듯하다. 일반적인 경우,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평균적인 교육혜택을 자식에게 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내 아이’ 신경 쓰는 것도 벅차다. ‘네 아이’까지 신경 쓸 여유가 도저히 없다. 교내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은 애석하고 마음 아프지만 ‘내 아이’가 그것 때문에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어야 한다. 그래야 ‘내 아이’만은 지킬 수 있을 테니까. 슬프지만 현실이다.

 

 

학부모는 비올라다.

담담한 듯 여리고 애처롭다.

 

 

 

 

 

 

사회

 

“최근 몇 년간 호경기를 넘어 ‘초’호경기라 할 만한 경제상황은 필연적으로 주택 건축 러시를 불러왔다. 사람들은 1960년대의 ‘내 집 마련’ 열풍과는 또 근본적으로 다른, 훨씬 호화로운 열기에 들떠 있다.” (1권, p.335)

 

 

일본의 버블경제는 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무너졌다. 이 작품의 배경은 그 직전이다.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지만 아무도 모른다. 천년만년 호황이 계속될 줄 알았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쯤은 가볍게 여겨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 정도의 호황이었다. 모두가 행복한 듯 했지만 모두가 병들어가고 있었다.

타쿠야의 죽음 이후의 상황을 크게 휘두른 사건은 모기 기자에 의해 벌어졌다. 그의 고발 프로그램에서 타쿠야의 죽음과 제3중학교를 다루면서 성장과 발전, 희망으로 질주하던 폭주기관차의 엔진 하나를 파괴했다. 모두가 장밋빛 희망만을 부르짖을 때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는 이미 중병(重病)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되어 있었다. 모기는 그것을 취재하고 폭로했다. 그로 인해 애꿎은 사람이 피해를 보기도 하고 사건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했지만 최소한 그는 불의한 것, 잘못된 것을 파헤치고 알리려 했다. 그가 출세를 위해, 명성을 위한 의도로 이 문제를 취재했다 하더라도 그에게 무조건적인 비판을 가할 수는 없다. 모기 기자와 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아무도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 말하지 않고 불의한 것에 대해 고발하지 않는 다면 그 사회는 썩은 물과 같다.

아이들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관습과 행태를 아무런 비판적 사고 없이 답습하는 사회에서 희망을 찾기란 어렵다.

 

 

“학교는 사회의 필요악이야. 하지만 지금 같으면 ― 그리고 이대로 두면 미래에는 ‘필요’가 빠지고 그저 ‘악’으로 전락할 거야. 사회악으로.” (2권, p.300)

 

 

 

사회는 드럼이다.

드럼이 박자를 놓치면 연주는 완전히 망가진다.

 

 

 

 

 

 

 

아이들

 

 

“아무도 가시와기 다쿠야를 걱정하지 않았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같이 학교에 가자고 하지도 않았다. 어떤 아이도. 어떤 학생도.” (1권, p.114)

“내용은 모두 엇비슷했다. 주리를 헐뜯고 욕하는 것들이다. ‘거짓말쟁이’, ‘여드름괴물, 죽어버려’, ‘너 때문에 우리 학교 평판이 엉망이 됐어. 지망학교에 못 들어가면 다 네 탓이야.’, ‘재판에서 유죄를 받을 사람은 바로 너야.’” (2권, p.662)

“그게 누구 얼굴인지 알았어. 내 얼굴이다. 주리는 생각했다. 가키우치 미나에의 얼굴은 나와 똑같다. 그것은 거짓말쟁이의 얼굴이다. 거짓말을 해서 남에게 상처 주고 자신도 상처받는 인간의 얼굴이다.” (p.508)

 

 

아이들은 불쌍하고 무섭다.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학교와 부모와 사회와 어른의 책임이다. 그 책임에서 발을 빼내려 발버둥치고 싶지 않다. ‘우리 때는 말이야~’라며 꼰대질 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모른 채 하고 싶지도 않다.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솔직한 심정이다. 얼마 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어떤 사이트에 몰려드는 아이들에게서는 불쌍하다 못해 무서웠다.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숨겨진 욕망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것을 찾았다. 그곳에서는 내가 가진 고민과 문제쯤은 익명성에 묻어 버릴 수 있었다. 당연히 편할 수밖에 없다. 이유 없이 불특정 대상에게 폭행을 가하고(당연히 자신보다 훨씬 어리고 힘없는 아이들에게) 그것을 촬영해 게시판에 올리거나 중범죄인 강간과 성폭행에 대한 행동지침이나 후기 같은 말세적인 내용의 글까지 게시판에 올려 베스트 게시물이 되는 등 가학과 피학이 함께 뒹구는 시궁창에 기꺼이 자신의 영혼을 내던졌다.

무작정 그 아이들, 그 사이트를 욕할 수 있을까? 이렇다 할 대안하나 마련하지 못한 채 무조건 ‘나쁘다.’, ‘안 좋다.’ 하는 것은 무책임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무섭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약간의 쾌감으로 찾아간 곳에서 그들을 끝을 생각하지 않고 폭발한다. 악의와 조롱과 선동에 그대로 넘어간다. 아이들을 무조건 ‘피해자’라 할 수 있을까? 그들은 피해자 겸 가해자다. 피해자 겸 용의자다.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들에 대한 예민하고 감수성 넘치는 작가의 묘사가 사실 이 작품의 묘미다. 중학생 아이들을 합숙을 시키며 그대로 카메라에 영상으로 담은 것 같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아이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치열한 게임을 펼치고 있었다. 어느 한 쪽을 특정해 비판하거나 추종할 수 없다. 매 순간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다만 “누군가 내 마음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 누군가 내 얘길 좀 들어줬으면 좋겠어…….”

 

 

아이들은 데쓰메탈 밴드의 보컬소리다.

그 소리가 무섭다. 그렇게 그로울링 하다가 성대가 없어져 버리는 것은 아닌가 불쌍하고 가련하다.

 

 

 

콘트라베이스와 비올라와 드럼과 데쓰메탈 보컬이 각자 최선을 다해 합주를 하는 데 불협화음이다. 도무지 맞춰질 것 같지 않다. 몇 주 동안 합숙을 해도 맞춰지지 않을 것이다. 록, 클래식, 메탈이 크로스오버 되는 세상이지만 학교와 학부모와 사회와 아이들은 결코 사위일체(四位一體)되지 못할 것이다.

 

2000년 하고도 10년이 지난 시간 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학교문제’는 말 그대로 ‘문제’였다. 왕따, 학교폭력, 체벌, 교권붕괴, 학생인권, 무상급식 등등. 도무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역사 상 가장 지혜로운 판결을 내렸다는 솔로몬 대왕조차 위증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 문제를 꼬여 있다.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악보대로 매듭을 지은 채 뒤섞이다 보니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조차 막막하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가 조금 더 밝은 음을 내고 비올라 연주자가 조금 더 묵직한 음을 내고 드럼 연주자가 인간 메트로놈이 되어 그 어떤 변주에도 박자를 놓치지 않아야 하며 데스메탈 밴드의 보컬은 그로울링을 자제하고 조금 더 악기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 이상 조화롭고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 일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1,2,3권 통합 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 청춘의 밤을 꿈을 사랑을 이야기하다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직설적이다.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싫어하고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사람은 가만 두지 않는다.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지 않는 사람은 인간 취급을 하지 않기도 한다. 나의 이런 성격과 기질이 좋은 점이 있다. 공과 사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고 누군가 해줬으면 하는 지적과 일갈을 미리 하기 때문에 꼭 은밀히 다가온 사람에게 ‘아이고~ 말 잘 했다. 내가 다 속이 시원하더라~’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나쁜 점도 있다. 순식간에 분위기를 급랭 시킨다. 대다수가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굳이 말 할 필요 있어?’, ‘말해봤자 나만 피곤해~ 그냥 넘어가~’ 이런 생각으로 입을 다물고 있을 때 나는 얘기 한다. 대놓고. 그러면 분위기는 급격하게 냉각된다. 그리고 내게 직설적인 지적이나 비판을 받은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물론, 어떤 이들은 나중에 은밀히 다가와 ‘그 이야기 들었을 때는 너무 밉고 화났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런 내 기질과 성격은 어머니에게서 80%, 아버지에게서 20%정도를 닮은 것 같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나’라는 사람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어머니라는 이야기다.

밖에서는 철두철미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불같고 칼같은 성격이 본가에만 내려가면 흐물흐물 무뎌진다.

 

 

 

“다른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 다른 사람들의 듣기 싫은 한마디를 흘려들을 수 없는 건, 웃어넘길 수 없는 건, 결국 그런 거다. 자격지심 . 나 자신도 나를,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p.271)

 

 

본가에 내려가기 전 차안에서 나는 꼭 다짐한다. ‘이번에는 절대로 어른들께 짜증내지 않고 오겠다.’ 하지만 돌아오는 차안에서는 늘, 어김없이 후회와 죄송함으로 몸 둘 바를 모르며 올라온다.

어머니는 나를 가장 잘 아신다. 그래서 아들이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이 가장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불안하고 걱정되고 염려가 되시나 보다. 어머니 입장에서도 생각을 하고 또 하시고, 말을 가리고 또 가려서 몇 마디 하시는 건데, 막상 들을 때는 왜 그렇게 짜증이 나고 귀찮고 하는 지…….

그런데 이 책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를 보며 그 원인을 발견 했다.

 

“나 자신도 나를,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다.”

충격이었다. 나는 불필요한 걱정과 염려를 하고 계신 것으로만 생각 했다. 이제는 어른인데 그만 좀 해주셨으면 하는 생각만 했다. 나이를 드실수록 잔소리의 정도가 점점 심해져 가는 것으로만 생각 했다. 그런데, 내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제대로 보는 것이 겁났던 것’이다.

어머니보다 내 자신을 더 잘 알고 있는 내가, ‘나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직면하는 것을 피해온 것이다. 그것을 숨겨 오고 회피해 오다가 어머니를 통해 재발견하게 되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되레 짜증내는 것이다. 나만 알고 있던 속마음을 들켜 버리니까 화가 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양세형씨는 너무 솔직하게 글을 썼다. 나는 원래 이런 종류의 책은 좋아하지 않는데 이렇게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글에 공감이 가는 것이 내 스스로 놀라웠다.

책의 여러 에피소드에서 헤어진 옛 애인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그 사람을 잊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내용에 오히려 마음이 갔다. 굳이 이런 이야기책에 쓰지 않아도 된다. 좀 더 좋은 이야기. 자랑할 거 넣으면 된다. 그런데 작가는 그런 염려, 부끄러움, 반응 같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녀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그녀의 전작도 읽어본 적이 없지만 오래 알고 지낸 동생 이야기 듣는 것 같았다. 자주 만나지 않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두런두런 솔직한 얘기 나눌 있는 그런 편한 친구 같았다.

 

 

 

“도시락을 먹을 때 유독 어떤 한 반찬에 선뜻 먼저 손이 가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다. 너무 싫어서 혹은 너무 좋아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반찬이라 아껴뒀다 마지막에 먹으려고 넘겨두는 경우도 있으니까. 무언가를 자꾸만 미루게 되는 것이 꼭 싫어서만은 아니란 말이다.” (p.118)

 

 

글이 어렵지 않아 더 좋았다. 요즘은 에세이도 현학적이거나 지나치게 정치적이거나 과도하게 문학적인 것이 많은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마냥 쉽거나 가볍지도 않다. 한 시간 두 시간, 하루 이틀 생각해서 두서없이 적은 글이 아니라는 것은 이 책을 몇 페이지만 읽어도 금방 알 수 있다. 학교 급식을 초등학교 때부터 한 세대는 도시락 반찬 비유를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1년 정도 만이라도 도시락을 싸 갔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작가의 도시락 비유에 ‘맞아!’했을 것이다.

자꾸만 미루게 되는 일, 머뭇거리는 일이 꼭 싫거나 두려운 것이 아니라 정말 아끼고 아껴 두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호흡이 가빠지는 설레고 짜릿한 것일 지도 모른다. 고백하고 싶은 사람, 사고 싶은 책, 읽고 싶은 책,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사람……. 멀리서 손에 닿지 않을 때 더 아름답고 나를 애타게 만드는 그 것. 당장 손만 뻗으면 움켜쥘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인생의 묘미를 선사한다.

이런 저자의 비유와 생각과 고민이 좋았다.

 

 

 

“너 그 책 봤어?”

“국문과를 졸업한 한 친구는 이 질문에 세상에서 가장 싫다고 했다. 그 책을 안 봤다고 대답했을 때”

“너 국문과 나왔잖아?”

“이렇게 이어지는 질문.”

“국문과 출신은 서점에 있는 모든 책을 다 봤을 것 같다는 편견이 너무 싫다는 거였다.” (p.100)

 

 

 

이 책은 청춘들만 공감할 수 있는 글이 아니다. 세대를 불문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중에서도 나는 이 부분.

나는 경북 포항이 고향이다. 대학, 군대, 직장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해안도시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바로 하는 질문은 몇 가지로 고정되어 있었다.

 

“이야~ 그럼 너 수영 잘 하겠다~.”

“너 회 많이 먹어 봤지?”

 

 

나는 수영을 못한다. 4살 무렵 어머니와 함께 간 대중목욕탕에 빠진 뒤로 물 공포증이 생겼다. 물을 무서워한다.

나는 오징어, 한치, 문어회를 제외하고는 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부모님은 충북 산골 출신이시라 어려서부터 시골 나물을 많이 먹었다. 부모님이 회를 좋아하시지 않으니 나도 먹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반복해서 질문을 받다 보면 이러쿵저러쿵 이유를 늘어놓는 일도 귀찮다. 그래서 그냥 “예..예..”하고 어물쩍 넘겨버릴 때가 많았다.

편견. 참 무서운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생각한다. “나는 편견이 없어. 없을 거야. 없을걸…….” 그런데 누구나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걷어내는 일이 쉽지 않다.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 굳이 자세히 알려고 노력하거나 애를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쉽게 판단하고 가볍게 선을 그으면 그만큼 편해진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라도 편견에 의해 판단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혹시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노발대발 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철저함의 반만이라도 나에게 할 수 있다면 편견의 벽은 많이 무너질 것이다.

 

 

 

“남들 보기엔 별거 아닌 고민일지라도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은 어쨌든 내 눈에 보이는 내 세상뿐.” (p.18)

 

 

군대에 다녀 온 남자들은 군대 얘기하는 것을 좋아 한다. 일단 군대 얘기를 하는 사람이 내 군대 생활을 모르기 때문에 더욱 자신감이 샘솟는다. 어차피 나도 상대방 군대 생활을 모른다. 어느 정도 허풍을 인정하고 나누는 대화다. 어쨌든 예비역 모두 자신의 군 생활이 가장 힘들었다. 사실 군대생활이 다 그렇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진짜사나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군 생활은 90%는 거짓말이다. 계급 구분 없이 그렇게 훈련하고 생활하는 것은 캠프와 다름없다. 그런데 실제 군 생활은 그렇지 않다. 병사들 군 생활은 물론 간부들 군 생활도 그렇다.

나는 육군 중위로 만기 전역을 했다. 군 생활 초반에는 해안소초에서 소초장으로 복무했다. 아주 친한 소대원과의 대화 도중 “소초장님은 그래도 월급을 저희 보다 몇 배를 더 받으시잖아요.” 나는 바로 대답했다. “그러면 니가 소초장해.” 소대원이 바로 대답했다. “그건 싫어요.” 소초장은 병사보다 월급을 훨씬 많이 받지만 병사가 감당하지 않는 책임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가까이서 나를 지켜 본 그 소대원은 내가 대대장에게 중대장에게 다른 높은 계급의 간부에게 깨지는 모습을 알고 있었다. 각종 사고로 스트레스 받고 검열과 훈련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감을 알고 있었다.

군 생활은 다 힘들다. 내가 한 군 생활이 가장 힘들다. 아무도 나만큼 내 군 생활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한대로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이나 다른 사람이 겪어 온 삶에 대한 생각 없는 판단은 곤란하다.

어차피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이고 함께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에게만이 아니라 너에게도 관대하고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작가는 책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한 것이고, 독자는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내 이야기를 생각해 본 것이다.

그것만으로 가치 있는 책이다. 여유로운 시간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읽어도 좋고, 바쁜 출

퇴근 시간을 쪼개어 읽어도 좋을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 

'반지의 제왕'시리즈를 보며 모르도르 성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해리 포터'시리즈를 보면서 호그와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갖는 설렘 중 하나 일 겁니다. 또는 누구나 죽기 전에 꼭 한번은 가고 싶은 '이상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이건, 마음속에 상상만으로 존재하는 가상의 공간이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행복해지고 팔다리가 흥분되는 그런 곳 말입니다. 최고의 독서가와 최고의 여행작가가 만들어 낸 '거의 모든 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우주가 만들어 지고 인류가 존재한 이래로 유일하게 단정하지 못한 것이 인간의 상상력이라 생각하는데, 이 상상력의 극치가 어디까지 발현되는지 이 책에서는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추상적인 관념과 단어들만 나열해 놓은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지형과 생태, 역사, 사회에 이르는 영역을 망라한 광범위함에 흠뻑 빠져보고 싶네요.

 

 

 

 

 

 

 

 

 

 

 

 

 

 

 

 

 

2. <한반도는 아프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장관에서부터 적집사 총재에 이르기까지 남북 통일과 북한 관련 업무에 관해서는 전문가 중 전문가인 한완상씨의 책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아직 제대로 되지 않는 시점이기는 하지만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실제로 대북 관련 업무를 담당하면서 겪은 실제적인 일들을 책으로 담아 제대로 된 목격담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이전 민주정부의 대북정책에서 완전히 후퇴하고 있는 실정이죠. 제대로 공과 과를 평가하는 자세가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은 '무조건 퍼주기다, 친노종북이다.'라는 잣대만으로 들이대니 객관적 평가가 있을 수 없습니다.

언제 통일이 될지 알수는 없지만 지금의 분단상황을 가지고 공생하고 있는 세력은 남과 북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당장 못 물어 죽여 안달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서로 씨익 하고 웃으며 서로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 그들의 적대적 공생관계에 아픈 건 허리가 두 동강 난 한반도, 아직도 불철주야 가족 만나기만을 고대하는 수많은 이산가족, 그리고 통일을 기다리는 수많은 남과 북의 사람들이겠죠.

 

 

 

 

 

 

 

 

 

 

 

 

 

 

 

 

 

 

3. <리얼 노스코리아>

한국의 현대사, 그 중에서도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현대사에 가장 큰 관심이 있는 제가 "안드레이 란코프"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정말 읽어야 할 책은 많군요.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우파 햇볕정책주의자라 불리는 학자입니다. 남과북 어느 한쪽, 좌파와 우파 어느 한쪽에 치우친 시각이 아니라 전적으로 객관적인 제3자적 입장에서 북한 문제를 들여다보는 전문가입니다. 그래서 서구에서 더 많이 알려진 북한문제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메카시즘이 열병처럼 뒤덮고 있습니다. 빨갱이, 친북, 종북 이런 거 하나로 한 방에 보내벼릴 수 있는 곳이죠. 그래서 이런 책이 더 많이 읽혀야 합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인 분석이 정말 필요한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좌파든 우파든, 진보든 보수든, 노인이든 젊은이든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자기가 하는 말이 옳다고 믿을 뿐이죠. 이럴 때는 오히려 제3자의 시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이 오히려 더 정확할 수 있으니까요.

 

 

 

 

 

 

 

 

 

 

 

 

 

 

 

 

 

 

4. <그린 어바니즘>

‘그린 어바니즘’은 도시와 환경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서 고안된 개념이라고 합니다. 과거 경제 발전과 도시 개발만을 염두에 두었을 때는 환경 문제는 완전히 도외시 되었었죠. 90년대 중반 이후 환경오염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부랴부랴 각종 정책과 대안을 마련하느라 난리를 쳤었죠. 아직도 많이 미진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제가 살고 있는 대구만 해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여름철 가장 기온이 많이 올라가는 도시는 대구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년 동안 그 자리를 다른 도시들에게 내어주고 있습니다. 대구 시민들의 자존심에 다소 흠집이 나는 결과이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습니다. 대구에서 15년을 살면서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최근 5-6년 동안 대구 시내와 근교에 정말 많은 나무를 심고 공원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시내에 있는 공원에 심어진 나무들은 도심의 뜨거운 열기를 낮추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계획대로 노력한 결과 울산이나 밀양같은 도시들에 최고 기온 순위를 내주기는 했지만 예전보다 덜 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만큼 도시계획은 중요합니다. 환경 문제와 연계한 도시계획은 더욱 중요합니다. 세대는 수십년을 주기로 사라지지만 도시는 문명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존재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유럽 도시들의 '그린 어바니즘'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수백년 된 주택과 건물이 여전히 도시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그들만의 노하우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리라 생각됩니다.

 

 

 

 

 

 

 

 

 

 

 

 

 

 

 

 

 

 

 

5. <낭만 미래>

글쟁이 고종석의 비평/칼럼 집입니다. 고종석씨 정말 글 잘쓰는 분이죠. 자신만의 글세계를 가지고 독자를 현혹시키는 기술자이기도 하고요. 절필을 선언했었는데 책이 출간되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시대의 아픔과 빈곤 중 하나가 스승과 어른이 없다는 것인데요. 고종석씨를 좋아하는 분들이 참 많죠. 물론, 싫어하는 분들도 굉장히 많고요.^^ 하지만 시대의 한 획을 긋고 있는 지식인이자 작가가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백성실록 - 우리 역사의 맨얼굴을 만나다
정명섭 지음 / 북로드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조선왕조실록이 아니라 「조선백성실록」이라는 제목이 이채롭다. 조선이 중심이 왕이었는지 재상이었는지 사대부였는지에 대한 이견은 많다. 역사를 보는 관점은 다양해야 한다. 그런데 이제껏 그 초점이 백성에게 맞춰진 것은 흔하지 않다. 유별나게 이름을 알린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냥 무명씨였다. 사극에 등장하는 수많은 엑스트라 중 한 명이었을지도 모를 조선백성의 삶의 어땠는지 사실 별로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런 사료 자체가 턱없이 적을 뿐만 아니라 그런 접근이 과연 얼마만큼의 의의가 있을 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생각해 보면 역사의 기록은 늘 강자의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평생 땅만 굽어보고 사느라 허리까지 90도로 꺾여버린 조선과 그 이전 국가들의 백성들의 이야기는 하찮은 것이었다. 땅으로 굽어 굽어 드디어 흙이 되고 마는 백성들의 삶 따위는 안중에 둘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가 나를 기억이나 할까?’ 하는 갑작스런 공포와 절망, 회의를 한번쯤은 경험해 봤으리라 생각 한다. ‘나’라는 인간이 이 세상에 나서 한 평생을 살다가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기억하거나 ‘나’를 기록하는 사람이나 그 의도가 없다면 얼마나 허무한 인생인가. 수백 년 전 백성들도 그랬고 지금 백성들도 그렇다. 백성들은 늘 역사의 뒤꼍에 의도치 않게 숨겨진 채 그렇게 한 평생을 살아냈다.

이 책 「조선백성실록」은 유구히 흐르는 조선의 역사 가운데 특이하고 재미있는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꼭 라디오 방송의 사연 소개 프로그램 같은 느낌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이야기들 중 왕과, 사대부, 기득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백성에 대한 이야기를 발췌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내용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연구하고 공부했을 것인데 저자의 남다른 혜안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똑같은 사료와 책을 봐도 각자 다른 접근방식이나 가치관으로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이 당연한데 그간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의 주제나 내용은 거의 동일했다. 그런 면에서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소개해주는 것 또한 이 책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조선에 보냈던 공물 가운데 가장 골칫거리였던 것은 다름 아닌 코끼리였다.”

“충청도 관찰사는 코끼리가 한 해 동안 먹어치우는 쌀이 48섬, 콩이 24섬이나 된다면서 나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 도로 섬으로 보내버리자고 건의한다.” (p.211)

 

조선에도 코끼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생전 처음 알게 되었다.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 예전 한반도가 공룡들의 천국이었다는 내용을 담은 책을 읽었다. 그러고 나서 바로 이런 생각을 했었다. ‘공룡들의 천국이었다면 매머드도 많았을 테고, 매머드가 많았다면 코끼리도 참 많았을 텐데 왜 그런 화석은 나오지 않는 걸까?’ 코끼리라는 대형 동물을 야생에서 볼 수 있는 곳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세 살 쯤이었나 서울 사는 고모 댁에 갔다가 서울대공원에 갔었다. 거기서 처음 코끼리를 봤다. 물론, 가장 놀라고 재미있었던 것은 호랑이와 사자였지만 코끼리에 대한 첫 만남도 강렬했다. 어린 내게는 코끼리가 공룡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코끼리가 조선 땅에 존재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더군다나 일본에서 공물로 바친 것이 코끼리였다니. ‘한 해도 우리 일본과 잘 지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는 의미에서 하는 것이 공물인데, 그렇다면 일본 측에서도 최대한 좋은 것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골랐을 것이다. 분명 코끼리를 주면 좋아 하겠지? 라는 기대도 있었을 것이고.

하지만 조선 땅에서 코끼리는 환영받지 못했다고 한다. 저자의 말대로 실록에 기록될 정도라면 일본에서 공물로 바치는 코끼리의 숫자가 제법 많았을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잘 조련하고 훈련시키면 군대에서도 쓸 수 있을 것 같고 주요 산업이던 농사에 투입하면 소 몇 마리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마땅히 코끼리 처리 방법을 알지 못해 지방으로 내려 보냈는데 이것이 지방 관찰사에게는 곤욕도 그런 곤욕이 없었다고 한다. 실록에 기록된 그대로 코끼리가 한 해 동안 먹어치우는 ‘쌀이 48’섬, ‘콩이 24섬’이나 된다. 1섬이 대략 2가마니 정도 되니 일본에서 조선으로 건너 온 코끼리 한 마리가 한 해 동안 쌀을 96가마니(kg으로 환산하면7680kg), 콩을 48가마니(3840kg)나 먹어치웠다고 하니 가뜩이나 귀한 쌀과 콩을 크게 쓸모없는 코끼리 먹이로 주려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을 것이다. 전라도로 내려 보내면 경상도로 보내고 경상도에서 다시 강원도로 보내는 등 골칫덩어리였다. 제대로 조련을 시키지 못해 코끼리에게 밟혀 사람이 죽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하니 실록의 기록대로 차라리 외딴 섬으로 보내는 것이 가장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에 들어 온 코끼리들이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는 실록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데 코끼리와 조선의 궁합은 최악이었음은 틀림없다. 그래도 실록에까지 실린 걸 보면 그렇게 사나웠던 코끼리 팔자는 아니었나 보다.

 

 

“<실록>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사고사는 다름 아닌 벼락에 맞아 죽은 것이었다. <실록>에서 ‘벼락’으로 검색해서 나오는 1,253건의 기사 중 상당수는 벼락에 맞아서 죽거나 다친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p.59)

 

조선왕조실록에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사고사가 벼락사라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조선 시대에도 현 시대의 중범죄인 살인, 강간, 폭행 등이 비일비재 했을 것이 분명한 일이고 그런 범죄들로 인한 사고사가 많았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농업이 주요 생산 산업이었기 때문에 가뭄이 심하거나 홍수가 심한 해에는 굶어죽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실록에 기록될 만큼 벼락사가 많았다는 것이 흥미롭다. 단순히 수십 번, 수백 번 정도가 아니라 1,253건이나 기록되었다고 한다. 지금보다 조선시대에 벼락이 유별나게 더 많이 치거나 그 강도가 유별나게 더 강한 것도 아닐 테고 지금처럼 뾰족한 건물이나 구조물이 많은 것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저자는 나름대로 해석을 하는데 나도 그것에 동의 한다. 결국 불쌍한 백성들만 죽는 것이다.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과 엇비슷한 벼락에 맞을 확률이 유달리 조선백성들에게 높았던 것은 그만큼 그들의 삶이 고단하고 팍팍했다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춥거나 덥거나 아프거나 피곤하거나 배고프거나 괴롭거나 그저 소작 주인이나 양반님들, 주인마님들을 위해서 나가야 했던 것이 그들의 하루고 삶이었다.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고 심상찮다고 해서 밭일, 논일 놔두고 집에서 놀 수 있나? 절대로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나가서 얼른 일을 하고 빨리 돌아오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이었다. 그렇게 일하다가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고 벼락이 치면 가까운 나무 밑에 숨거나 아니면 어딘가 피할 곳을 찾아 뛰어다녔을 테고. 그만큼 벼락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춥거나 덥거나 아프거나 피곤하거나 배고프거나 괴롭거나 집 안에서 책이나 보고 밤이면 술이나 퍼 먹는 지주나 양반들은 먹구름이 몰려오면 안전한 대궐 같은 집에서 두 다리 쭉 펴고 쉬고 있었을 테고.

로또 1등에 당첨되는 확률이 이렇게나 많았던 이유는 그만큼 그 시대 백성들의 삶이 고되고 힘들었다는 얘기다.

 

 

 

“성종이 창원군에 대한 처벌을 미루자 경준이라는 신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창원군은 살인과 국법을 따르지 않는 불경을 저질렀는데 그 중 살인은 가볍고 불경은 무겁습니다. 불경죄를 물어서 처벌하려고 하는데 왜 결정하지 못하십니까?” (p.127)

 

성종의 종친인 창원군이 자신의 종이 다른 남자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격분하여 그 여자 종을 죽였다. 왕의 종친인 남자에게 여종은 물건과도 같은 것이었다. 군침 돌면 가지고, 가지고 놀다가 버리고 다른 군침 도는 물건을 찾으면 그만이다. 양반도 아니고 사대부도 아닌 왕의 종친인 창원군의 살인교사가 밝혀졌다. 조선시대가 썩을 대로 썩은 사회였다고 해도 이렇게 왕의 종친을 심문해 죄를 밝혀내는 것을 보면 지금보다 훨씬 정의로운 사회였던 것 같다. 더군다나 조선시대 내내 붕당과 정쟁에만 매진했다고 생각 되는 조정 신하들이 종친인 창원군의 처벌을 유야무야 덮으려는 성종을 꾸짖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성종이 많이 알려진 대로 우유부단한 왕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왕에게 간언을 하는 신하가 있었다는 것도 지금 한국의 정부보다 훨씬 낫다.

 

 

“조선과 이슬람의 교류는 알게 모르게 계속 이어졌다. 세종 제위 시절 새로 만들어진 역법은 이슬람에서 쓰는 회회력을 참고했다. 이때 만들어진 역법은 오늘날 우리가 쓰는 음력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도자기를 만드는 데 필요했던 안료인 회회청은 페르시아에서 캐낸 것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까지 들어온 것이다.” (p.329)

 

고려가 멸망한 후 조선은 유교적 정치·문화 체제를 공고히 하고 폐쇄적인 나라가 되었다. 그 이전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활발했던 대외무역이 거의 사라졌다. 조선 후기 대원군의 쇄국정책만을 배웠는데 사실 건국 초기부터 조선은 소극적이고 배타적인 무역정책을 실시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허무하게 무너진 이유가 조선의 폐쇄성과 배타성이라 보기도 한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도 이슬람과의 교류가 계속해서 이어졌다는 것이 실록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아직도 흔하게 쓰는 음력의 기초가 이슬람의 역법이었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했던 조선의 도자기 안료도 페르시아에서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이슬람뿐만 아니라 지금의 베트남과 오키나와와도 무역을 지속하고 교류를 이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TV사극에서는 이슬람 상인을 본 적이 없다. 실록을 제대로 고증하지 못한 것 같다.

 

이 책은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일단 흔하게 접하지 못했던 백성들의 삶이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시선을 끈다. 학교에서 배웠거나 TV를 통해 접했던 내용뿐만 아니라 전혀 알지 못했던 기록까지 비밀 이야기 하듯 전해들을 수 있어 재미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