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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의 힘 - 능청 백단들의 감칠맛 나는 인생 이야기
남덕현 지음 / 양철북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충청도 아저씨, 효진이 아빠
부모님 고향이 충청도다. 이 책을 산 건 순전히 부모님 고향이 충청도였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물설고 사람 선 경상도 땅에서 살아 온 부모님은 시장에서 혹시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 “혹시 고향이 어디에요?” 물으시곤 했다. 혹시나 하는 물음에 “충청도 어딘데요~” 대답을 들으면 고향 친구 만난 것처럼 좋아하시곤 했다. 두 분에게는 늘 고향 충청도가 그 자체로 그리움이었던가 보다. 그렇게 오며 가며 알게 된 동향의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기도 하셨다. 회사에서도 ‘충청향우회’ 총무, 회장을 두루 역임하셨다. 어릴 때부터 가족 모임을 따라 가면 흔하게 듣던 사투리가 충청도 사투리였다. 경상도에서도 억양이 걸걸하고 드센 바닷가에 위치한 도시가 고향인 나는 집에서 늘 듣는 부모님의 충청도 사투리 영향으로 학교 친구들과는 좀 다른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했다. 그런데 부모님을 따라 가는 ‘충청향우회’ 모임에서 듣는 충청도 사투리는 부모님의 그것과는 또 달랐다. 부모님은 충북 단양이 고향이신데, 그 지역은 충북 이남과 충남 지역 사투리와는 많이 다르다. 오히려 강원도 태백과 정선 사투리와 유사하다. 그래서 집에서 늘 듣던 부모님의 충청도 억양과 다른 사투리를 들을 수 있는 ‘충청향우회’모임이 어린 내게도 재미있었다.
효진이 아빠는 아버지와 같은 회사를 다니시고 ‘충청향우회’ 초창기 멤버이자 지금은 부모님과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면서 가까이 지내시는, 충남 논산이 고향인 분이다. 딸 이름이 효진이라 효진이 아빠라 불린다. 효진이 엄마도 충남 조치원이 고향인 분이다.
아버지와 효진이 아빠는 많이 다르다. 구사하는 충청도 사투리도 완전히 다르고 성격도 완전히 다르다. 아버지는 온통 산으로 둘러진 충북 단양이 고향이시라 그런지 급하고 뾰족하신 반면 효진이 아빠는 느리고 둥글둥글 하시다. 아버지는 효진이 아빠를 늘 나무라신다. 워낙 성격이 급하고 버럭! 하시는 터라 ‘너무 심하신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런데 효진이 아빠는 늘 ‘허허~ 그렇지 뭐~어~, 알았어~ 님자 말이 맞어~ 허허~.’
워낙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얼큰하게 취하시면 나와 동생을 불러다
‘이놈~ 받어~ 맛있는고 사 묵고 공부 열심히 혀고, 아부지 어무니 말씀 잘 듣고 햐~’
만 원짜리 한 장씩 찔러주시고는 했다.
그런 효진이 아빠가 작년 초 숭한(흉한) 암진단을 받으셨다. 뭐 그런 것 까지 급하게 먼저 하시려고 했는지 내 아버지는 4년째 암과 싸우고 계시고, 효진이 아빠는 굳이 안 따라오셔도 되는데 아버지의 급한 걸음을 따라 가셨다.
효진이 아저씨의 쾌유를 빈다.
충청도의 뜬금포 - 너무 웃기고 너무 슬픈
유명하게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충청도 시골의 외딴 2차선 국도를 가던 서울 운전자 앞에 규정 속도에 한참 미치지 않는 속도로 느릿느릿 가는 앞차. 상향등을 총을 쏘듯 발사하고 클락션을 아무리 눌러대도 앞차는 여전히 느릿느릿 가는 둥 마는 둥. 한참을 그렇게 옥신각신 하다 드디어 앞차가 길가에 멈춰 섰다. 운전자가 내리고 뒤차로 느릿느릿 걸어와서 운전석 옆에 서더니 손가락을 까딱까딱 창을 내리라고 했다. 너무 심하게 해서 화가 났나 싶은 서울 운전자는 약간 무서운 심정으로 살짝 창문을 내린다.
앞차 운전자 왈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슈~~”
충청도 뜬금포 발사!!
“심판 읎는 소리! 갸가 달아 준다니께 허지 말라믄 섭섭헐게 비 내비 뒀는디, 배람박에 달린 거 드러누워서 치다볼라믄 댈꾸(자꾸) 목에 심이 들어가니께. 아침에 인나믄 목이 안 돌아가서 죽겄어 아주. 시엄니 모가지 뿌러지라구 그런 걸 달구 갔나 싶구, 심란허다니께!” (p.69)
이 책 「충청도의 힘」을 읽기가 힘들었다. 부모님이 충청도 분이시지만 부모님이 구사하시는 사투리와는 전혀 다른 사투리가 그대로 책에 쓰여 있다. 충남 보령, 대천. 진짜 충청도 사투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도 충청도 특유의 뜬금포가 기상천외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반응과 어투, 표정이 그대로 그려진다. 시골에 사시는 시어머니가 조금 더 큰 화면으로 조금 더 선명한 화질로 6시 내고향부터 9시 뉴스까지 보시라고 고급 평면TV를 벽걸이형으로 설치해 드렸는데, 고맙고 자랑하지 싶은 마음을 은근히 메누리(며느리) 숭(흉)보는 투로 뜬금포를 발사하시는 충청도 할머니. 흐흐흐. ‘시엄니 모가지 뿌러지라구 그런 걸 달구 갔나 싶구’ 에구~ 할머니…….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르신을 사랑하십니다.”
충청도 시골 중에서도 시골 심심하고 지루한 버스 정류장에 시골 교회 전도사가 충청도 할아버지께 전도를 시도 한다.
“얼래? 돌아가신 우덜 아버지두 나라믄 아주 진절머리를 치셨는디 워쩐 일이랴? 쌩판 모르는 양반이! 별일이네.” (p.151)
이 부분을 읽고 방바닥을 뒹굴었다. 최근 가장 크게 웃었다. ‘우덜 아버지두 나라믄 아주 진절머리를 치셨는디 워쩐 일이야? 생판 모르는 양반이!’ 어떻게 이런 대답을 하실 수 있을까 싶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가 충청도를 온 몸으로 살아오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의 흔적. 갈래갈래 갈라진 그분들의 손가락처럼, 가뭄 든 논바닥 갈라지듯 갈라진 그분들의 뒷목 주금처럼 살아내지 않으면 도무지 흉내 내지도 못할 그 자욱들을 고스란히 옮기고 싶었다고 했다. 데굴빡에 피도 마르지 않아 보이는 젊은 전도사 냥반이 일정시대의 고약함과 동란의 처절함을 알아낼 수 있을까? “됐어요.” 차갑게 돌아서거나 아예 못 들은 척 지나가는 차도할(차가운 도시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의 냉점한과는 차원이 다른 것일 테다. ‘우덜 아버지두 나라믄 아주 진절머리를 치셨는디’
어김없이 뜬금포를 장전해 발사하신다!! 하하하하
“워째유?”
“백발이 성성한 약사가 ‘어디가 어떻게 아파서 왔냐’는 말을 단 세 마디로 끝낸다.” (p.28)
‘그렇게 바쁘면 어제 오지 그랬슈~~’ 이 뜬금포와 거의 비슷한 맥락이다. ‘워째유?’ 어디가 어떻게 아프셔서 오셨어요? 라는 4음절, 14단어를 단 3단어로 압축하여 발사하신다. 워째유~~.
책에는 충청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질펀한 농담과 진담이 가득이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비유와 속담(?), 은유로 가득하다. 기상천외하고 뜬금없지만 재밌다. 입 꼬리를 씰룩씰룩 올리며 웃다가 빵빵 터지게 웃다가 방바닥을 뒹굴기 일쑤다. 경상도 사람 둘이 대화를 하는 걸 보고 서울 사람들이 싸우는 걸로 오해한다고 하는데, 이 책에 담긴 충청도 할아버지 할머니에 비하면 약과다. 저주와 욕설과 비아냥거림과 몽땅 지워내고 싶은 과거사를 또 들추어낸다. 그런데 불편하지 않다. 눈살도 전혀 찌푸려지지 않는다.
‘아~ 이분은 이렇게 살아오셨구나~’ 싶다.
웃지만 슬프다. 웃프다.
노인들 때문에? -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
“쓰나미 선금은 뭐여?”
“접때 일본 눔들 바닷물이 넘쳐 갖구서 욕본 적 있잖여? 시 노인회에서 십시일반으로 보태자구 혀서 우덜두 낸 겨. 일정 때 당헌 거 생각허믄 아직꺼정 심쟁이 바들바들허는디 울구불구허는 거 보니께 참말루 딱허드라구.” (p.224)
충청도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우덜(우리들)보다 낫다. 이 어르신들은 일정을 겪으셨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왜놈 말은 말이 듣고 책도 읽고 화면으로도 보기는 했지만 일정 때가 어땠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서도 일정 때에 대해 들어본 바 없다. 굳이 아프고 힘든 얘기를 손주놈에게 꺼내고 싶지는 않으셨을 거다. ‘아직꺼정 생각만 혀도 심쟁이 바들바들 헐정도인디’ 그것은 그것이고, 딱헌 사람들 돕는 그분들의 마음씀이 감사하다. 삼십년을 훌쩍 살아 왔지만 여전히 이것저것 재는 내 모습을 돌아본다. ‘무슨 의도가 있을까? 무슨 이면의 뜻이 있을까?’ 직접 당해보지 않은 고통에도 무분별한 의심과 불만을 쏟아내는 내가 부끄럽다.
“근디, 그 귓구녕이 이조 오백 년만 조져 먹구 말 구녕은 아닌가 벼. 대통령 선거? 우덜은 시답지 않은 짓거리여 그것이. 우덜이 시방까정 한번두 안 까먹구 꼬박 꼬박 이눔 저눔 가믄서 찍었는디, 다 그 구녕이 그 구녕이지 뭐 밸반 안 달브드라니께. 특별히, 니 맴 다 안다구 설레발치는 눔들은 종국에 가서는 더 지랄 발광으루다가 읎는 눔들을 조지드라니께?” (p.244)
노인들 때문이라고? 작년 대선이 끝나고 원하는 결과를 받아 들지 못한 젊은이들은 특정 노인들을 향해 비수를 쏟아냈다. ‘노인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연금, 내지 말자.’, ‘버스나 지하철 타면 자리 양보 하지 말자.’, ‘큰 선거가 있으면 노인들 단체로 해외여행 보내자.’ 말이 말을 낳고 비수가 비수를 낳는다. 허탈을 이기지 못한 잠깐의 젊은 객기였겠거니 싶다가도 나도 그것에서 다르지 않음을 깨달으니 시내 한복판에 벌거벗고 있는 것 마냥 정신이 온통 오그라든다.
“뭔 눔의 세상이 우덜 때보덤 살기가 더 심들어 도대체가? 아, 가르치질 못혔어, 전셋집을 못 얻어 줬어! 근디 맨날 빚 타령에 직장 타령에... 아주 기냥 서울서 전화 오믄 가심이 떨려서 반갑지두 앉다니께!” (p.166)
새벽같이 밭으로, 논으로 나가셔서 9시 뉴스가 시작하기도 무섭게 잠드시는 충청도 할아버지 할머니께 ‘서울전화’가 얼마나 반가울까? 자식들 손주들 목소리 한 번 듣는 것으로 하루의 피로를 노년의 쓸쓸함을 달래는 것이 유일한 낙일텐데, 그 ‘서울전화’조차 반갑지 않은 요즘이라니... 괜스레 죄송하고 마음 아프다. 일정 때와 동란, 보릿고개보다 더 무서운 것이 오랜만에 걸려 온 ‘서울전화’ 라니. 허리가 직각으로 꺾일 만큼 애를 쓰고 피땀을 흘려 뒷바라지를 했는데, 여전히 자식 걱정에 편안할 날이 없는 분들이다. 그런데 이 충청도 어르신들은 ‘나 죽는다. 나 죽는다.’가 아니시다. 동네 친구와 성님 동상과 서로 누가 더 속상하고 걱정이 많나 내기라도 하시는 것처럼 토해내듯 쏟아내시며 한바탕 웃어버리신다.
“별거 있간디?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지.”
“별거 읎다니께? 그란 줄만 알구 살믄 되는 겨!”
사는 게 팍팍하고 고되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내는 것이 인생이고 ‘별 거 아닌 하루’라 생각 된다.
그것이 충청도의 힘일 테다.
“심연 속에서, 기쁨과 슬픔이 고유한 무게로 자리 잡아 갈 때 비로소 사람은 정갈해진다.” (p.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