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상륙 작전 1 - 해방과 혼란 인천 상륙 작전 1
윤태호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945년 해방 후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한반도의 상황은 아비규환이었다.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가장 첨예한 갈등과 배신과 암투와 공작과 투쟁이 있었던 시기다. 이 책 「인천상륙작전 1」은 이 시기를 그리고 있는 만화책이다. 한국의 만화가 중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윤태호 작가의 작품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전쟁과 한국현대사에 관심이 많아 관련된 책을 꽤 읽는 편이다. 특히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기를 소재로 한 책을 읽으면 가슴이 답답해 올때가 많다. 뭔가 해결되지 않고 쌓여오기만 한 부채를 잔뜩 짊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책은 예의 윤태호 작가 특유의 날카롭고 굵은 그림 특성이 인상적이다. 그의 전작 「이끼」나 「미생」의 터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뭐,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것이 아닌 전적인 내 느낌이다. 아마 역사라는 팩트를 기초로 한 작품인지라 좀 더 굵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작품에는 주로 6명의 인물이 그려진다. 김상배는 유약하고 능력없는 가장이다. 김상근은 김상배의 동생으로 식민지 시절에는 일본 순사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처신에 능하고 욕심이 많고 거칠지만 식구들을 챙기는 정은 끊지 않았다. 인천댁은 김상배의 부인으로 전형적인 아내와 어머니로 억척같은 삶을 이어간다. 철구는 김상배와 인천댁의 아들로 책 속에서는 콧물이 그려진 전형적인 근현대사 교과서에 나오던 아이로 그려지지만 동네에서는 골목대장 노릇을 하는 아이다. 김상호는 식민지 시절 독립군 군자금 지원과 동시에 일제에 부역해 사업을 한 인물이다. 해방 직후 일제가 손을 놓고 간 적산을 그대로 손에 움켜 쥐었고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기 좌익과 우익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정치적 입신을 노리고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김동일은 김상호의 아들로 식민 시절 부자인 아버지를 만나 일본 유학을 다녀왔지만 시킨 공부값을 하지 못하고 집에서 빈둥빈둥 노는 인물이다. 하지만 미군정시절을 통찰하는 눈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김상배는 김상근의 소개로 철물점에서 일하게 된다. 일본 사람의 일을 맡아 돌아오면서 철물점 사장과 나누는 대화다. 미군들하고 술판을 벌이는 일본 놈들. 일제가 패망하고 한반도와 조선인들은 해방의 기쁨을 누렸다. 그 어떤 식민지를 겪은 나라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민주적인 체제로 건준과 인민위원회가 조직되고 퍼져나갔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는 것이 골자였다. 그런데 일제가 물러 난 한반도를 노리고 있는 더 큰 승냥이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마련해 놓지 못했다. 아니 40년 동안 숨통이 틀어 막혀 발버둥조차 칠 수 없었는데 대책은 무슨. 한반도로 군홧발을 옮긴 미군은 철저하게 그들의 안보논리로 미군정을 구조화했다. 식민지 청산, 반민족행위자처단 등은 그들에게는 아웃오브안중이다.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건준과 인민위원회를 단순히 좌익, 빨갱이로 몰았다. 그래서 그들은 일제를 그대로 등용했다. 주요 행정 요직에 그들을 다시 앉혔고 친일 경찰을 그대로 한국경찰로 이었다. 미국 장교 수뇌부들에게 일제 치하 40년의 수모와 민족적 한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일제가 패망한 후 한반도 안에서 미군들이 일본의 꽤나 잘 나가는 놈들과 술판을 벌일 수 었었던 것이다.



김상근은 형과는 달리 처신에 능한 인물이다. 자세하게 그려지지는 않지만 건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식민 시절에는 일본 형사의 앞잡이가 되어 조선인을 때려 잡는 데 앞장 선 인물이다. 어떤 학자의 표현대로 “해방은 도둑같이 왔다.” 일본 군대는 이미 패망의 기운이 짙었고 각종 전투에서 실제로 패배하고 있었음에도 식민지에서는 늘 “황군의 위대한 승리”만 전해지고 있었다. 거짓으로 가득했던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해방이 되어서도 긴가민가 했다고 한다. 김상근은 백주대낮에 시장통에서 이 소식을 듣는다. 해방의 기쁨을 외치던 사람들이 곧바로 일본놈들 앞잡이 노릇을 했던 자들을 찾는다. 김상근은 바로 그들의 눈에 띄었다. 그는 개처럼 복종하던 일본 형사를 때려 죽여 시장통으로 뛰쳐나오며 소리친다. 그리고


“세상이 바뀌었다고 이놈아!”

“세상만 바뀌었지... 사람은 그대로 아니냐고!!” (p.32)


라고 어디든 도망가라고 재촉하는 유약한 형에게 소리친다. 세상만 바뀌었지, 사람은 그대로라고!!



이 작품의 시기를 소재로 한 책들의 많은 부분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이 시기의 혼란함이다. 나는 폭발적인 진공상태라고 표현한다. 폭발과 진공은 과학적으로는 맞지 않겠지만 일제의 공백으로 진공상태가 된 한반도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약과 같은 일이 매일 일어났으니 폭발적인 진공상태다. 매일 좌익과 우익의 테러와 보복이 이어지고 수많은 언론이 만들어지고 정당과 단체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것이 반복되었다.

이런 시기 김상호와 같은 인물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온 몸을 던지지 않는다. 이곳, 저곳 간을 보며 밀당을 한다. 그는 김상근을 부하로 부리며 잡다한 일을 처리한다. 그리고 허망한 일제의 패망에 미쳐 다 처리하지 못하고 떠난 일제의 재산과 적산을 그대로 차지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재벌과 대기업 중에서 그 출발이 적산기업이 아닌 곳이 몇 곳이나 될까? 한 손가락으로 꼽아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김상호는 정치적 욕심과 야욕이 있는 인물이었다. 일본놈들의 재산이나 차지하자고 했던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게 된 것이다. 미군들이 들어오면서 일본놈들이 다시 머리로 올라가고 어쨌거나 미군에게 잘 보여야 뭐라도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친일이고 자시고 나는 생존당이오.”는 결코 변명이 되지 못한다. 일제를 적극적으로 찬양한 어떤 친일 문학가가 그랬다지 않나. “일본이 그렇게 허망하게 질지 몰랐다.” 고 말이다.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들의 대표적인 변명이 그것이다. “그때는 너라도 나처럼 그랬을 거다.” 어쩔수 없었다는 말. 김상호는 민족이고 해방이고 자시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살아남아 부를 쌓고 정치적 명예를 얻는 것이 전부였다.



김상호의 아들 김동일은 당시 엘리트 지식인이었다. 유학 후 집에서 빈둥대고는 있었지만 엘리트 지식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돌아가는 정세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 김상호에게 좌익이나 우익에게 붙을 것이 아니라 미군에 붙을 것을 권유한다. 정확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해방 후 공간은 좌익세력의 것이었다. 이미 민족 전체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고 풀뿌리 지방 조직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함정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있었고 너무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너무 잘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좌익은 분열한다. 이후로 계속. 지금까지.

당장 자신들의 황군이 패망하고 살아서 일본 본토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던 총독부와 조선 내 일본인들은 해방 직전 조선의 최고 지도자 중 하나였던 여윤형을 만난다. 그들의 안전한 귀국을 보장하는 대신 모든 치안과 행정을 넘겨받는 다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미군이 들어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굳이 도망가지 않아도 되었다. 미군은 일본인들을 숙청하기는커녕 옆자리에 앉혀 술을 마시고 요직에 그대로 등용하는 가 하면, 이미 풀뿌리 조직까지 갖추고 있던 좌익세력을 몰아내려 했다.

책에서는 그려지지 않지만 김동일의 이후의 삶이 어떻게 그려질지 감이 온다. 엘리트 지식인에 영어를 할 줄 알고 아버지는 부자다. 김상호와 김동일이 가졌던 기득권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또 답답해져 온다. 지금 살아있으면서 기득권을 가진 이들의 시작이 김상호와 김동일이었을 것이다.

 


“천지가 욕망에 싸여 있다.” (p.167)

 

그때는 천지가 욕망에 싸여 있던 시기였다. 지금도 그렇다. IMF이후 준비가 되기도 전에 천박한 자본주의의 바다에 빠진 한국인들은 온갖 물신의 욕망에 빠져 있다. 더 이상 옳고 그름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잘 되고 내 새끼가 잘 되면 그만이다. 정의? 자유? 평등? 그 따위 말 할 시간 있으면 토익공부 더 하고 공무원 임용 공부 더 하라고 한다. 5,60대들의 생각만이 아니다. 지금은 20대도 그런 생각을 한다. 철도노조의 파업이 귀족노조의 파업이라고 부르짖는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그대로 넘어간다. 그래서 20년을 죽어라 일해도 6천만을 겨우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를 향해 비난한다. 그런 사회다. 그런 시대다. 나는 1945년과 1950년을 살지 못했다. 그래서 책에서 그려지고 있는 것처럼 얼마나 크고 잔인한 욕망이 천지를 덮었는지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살고있는 2014년 대한민국의 천지도 천박한 욕망과 물신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침 뉴스를 보니 점점 피아노학원이 없어지고 있단다. 학부모들이 더 이상 피아노를 가르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피아노 학원 갈 시간과 돈으로 영어와 수학 학원 하나 더 보낸다는 것이다. 이제는 체르니30번 쯤은 기본으로 떼는 아이들이 없어질 것만 같다. 슬프다.

2권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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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인간
이석원 지음 / 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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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디에선가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남자가 허풍이 심한 사람이라나. 잘난 척, 잘하는 척 하는 것도 그만큼 싫어하나 보다. 사실 그런 사람은 남자들도 싫어한다. 술자리에서 군대 얘기하고 소싯적 놀아 봤던 얘기하면 누구나 군대 영웅으로 변신하고 누구나 학창시절 안 놀아본 사람들이 없을 정도니 말이다. 나는 말 많은 사람이 싫다. 더 적확하게 말하자면 말만 많은 사람을 싫어한다. 말하는 걸 좋아하고 나서기를 좋아하지만 늘 그 끝은 흐지부지 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그리고 또 하나.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싫어한다. 이제껏 내가 겪은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매번 약속에 늦는 사람들이다. 갑자기 길이 엄청나게 막히거나, 사고가 나거나, 부득의한 사정이 있어서 늦는 경우는 거의 없다. 5분 늦는 사람은 매번 5분 늦고 30분 늦는 사람은 매번 30분씩 늦는다. 일로 만나거나 사적 친분이 있는 사람이거나 상관없이 이 두 가지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을 싫어한다. 그런데 이것이 나와 아주 친한 친구라면 예외일 때도 있다. 아니, 있었다. 내 친한 친구 중 하나는 늘 말하기를 좋아한다. 언변이 있다. 그리고 유머도 있다. 십 수 년을 곁에서 있다 보면 레퍼토리를 모조리 파악하고 있지만 그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배꼽을 잡는다. 귀가 얇아 어떤 것이 좋다. 어떤 길이 좋다라고 하면 어김없이 내게 와 주저리 말한다. 누구를 만났는데 이런 길이 있어서 이렇게 하기로 했다고. 나는 그냥 흘려듣는다. 며칠 안에 다른 사람을 만나 다른 이야기를 들으면 또 그쪽으로 쏠려 갈 것이 뻔 하니까. 일 벌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일 맡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 단 한 번도 한 가지 일을 끝까지 해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 늘 용두사미로 끝난다. 나를 비롯한 그 친구를 잘 아는 사람들은 또 새로운 일을 맡아 열변을 토하는 그 친구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한다. ‘저러다 또 말텐데’ 약속시간에는 늘 늦는 편이다. 시간을 지킬 때도 있지만 지키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다. 어릴 때부터 봐오던 친구라 그냥 그렇게 인정하고 살았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 두 가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두 가지를 상쇄하고도 남을 또 다른 모습이 있었다. 어릴 때, 30대 이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점점 그 친구의 그 모습이 내가 평소 싫어하고, 직장 후배라면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호통을 칠 그 모습에 오버랩 되고 있었다.

지난 해 중반부터 친구의 고질병이 심화되었다. 외국을 나가겠다. 지금 사귀는 여자와 결혼하겠다(이 친구는 여자 친구가 없었던 적이 없었다) 대학원에 들어가 새로운 공부를 하겠다. 연말이 되어서 보니 또 하나도 말한 대로 된 게 없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던 ‘또 저러다 말겠지’가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안타깝지 않았다. 속상하지도 않았다. 고소했다. 여자 친구와 헤어져 괴로워하고 못 마시는 술을 퍼 마시고 하는 일들을 보며 고소해 하고 있었다. 몇 안 되는 정말 친한 친구인데 말이다. 며칠 후 나는 깨달았다. 이 친구를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친구라는 허울로 덮어버리려 했지만 나는 줄곧 이 친구를 좋아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용휘는 처음부터 사람들한테 해명할 일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난 말로만 그를 친구라고 하면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한 번도 그를 조건 없이 믿어준 적이 없었던 것이고, 단지 두둔했을 뿐. 단지 이해하는 척했을 뿐.” (p.223)

 

이 책 「실내인간」의 용휘, 방세옥은 처음으로 자신의 아지트 주변에 겁도 없이(?) 찾아 온 용우와 친구가 되었다.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방세옥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기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자신의 작업 공간을 성처럼 만들어 놓고 그 주변의 주택과 빌라를 모조리 사들여 성채를 만들었다.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접근금지 구역을 만든 것이다. 단골로 드나들던 대형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에게 한 눈에 반해 버리고 그녀에게 느닷없는 거짓말을 해버렸다. 그녀를 웃게 하고 그녀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는 평생 단 한권도 소설을 읽지 않은 소설가가 되었다.

대단한 소설가가 되고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럴수록 그는 자신에게 더 천착해 들어갔고 반드시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게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작품이 반드시 그녀를 처음 만난 그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올라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성을 만들고 그 안에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용우는 우연히 만난 용휘와 친구가 되었다. 진짜 어른으로 대했고 배웠다. 불평과 불만과 의심 투성이인 룸메이트 제롬의 반복되는 비아냥거림에도 용우는 용휘를 두둔했다. 싫어하는 내색이 노골적인 제롬을 설득해 용휘를 초대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얼굴없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방세옥에게 강박적이리만큼 열등감과 열패감을 가지고 있는 이름 없는 무명작가가 기자로 행세하며 결국 방세옥의 실체를 세상에 폭로한다. 이상한 동네에 이상한 집들이 모인 그곳에 이상한 행색과 정체를 의심하기 딱 좋은 용휘와 기꺼이 친구가 된 용우는 용휘를 향한 배신감에 치를 떤다.

 


“근데 말야, 만약…… 언젠가 내가 너한테 한 가지쯤 무례를 범한다고 해도 용서해줄 수 있겠냐?” (p.59)

“암흑이 되어버린 사각의 브라운관 안에 소파에 누워 웃고 있는 용휘의 모습이 무슨 액자 속 흑백사진처럼 담겨졌다. 순간 난, 왠지 그를 거기서 꺼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친구를. 그 정체 모를 사각의 틀 안에서.” (p.143)

 

하지만 용우는 용휘를 결국 이해한다. 이해하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한다.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진심으로 이해하려 한다. 실내인간은 잘못 된 것이니 실외인간이 되어야 한다며 굳이 설득을 하거나 물리력으로 끌어내려 하지 않는다. 다만 방세옥을, 용휘를 스스로 유폐할 수밖에 없었던 그간의 사정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자신 또한 시련의 상처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상한 동네로 들어온 것처럼, 용휘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처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가식적이고 위선적이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다. 말로만 그를 친구라고 하면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한 번도 용휘를 조건 없이 믿어준 적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그를 단지 두둔하기만 했을 뿐, 이해하는 척만 했을 뿐임을 알게 된다.

나 또한 그렇다. 십 수 년 동안 친하게 잘 지내오던 친구 놈이 갑자기 싫어질 리가 없다. 그 친구가 갑자기 그 전보다 더 귀가 얇아지고, 말이 많아지고, 우유부단해지고, 시간 약속을 더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다. 용휘가 용우가 친구가 되기 전 망설이며 건넨 이야기처럼. 그렇게 내게 미리 메시지를 보낸 것이 아닌 가 싶다. ‘언젠가 니가 내 모습이 싫어질 때 나를 이해해줄 수 있겠냐?’ 그 친구 놈이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변한 것이 아닐까? 유독 힘이 든 한해였다 작년은. 바쁘기도 하고 힘든 일도 겹쳤다. 11월 달쯤 되니 정신이 나가 멍한 채로 연말까지 지냈던 것 같다. 당연히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것은 곧 주변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분출했다는 말이 된다. 결국 내가 그 친구를 이해하고 받아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그것을 직시하면 내가 비겁하고 속 좁은 놈이 될까봐 미리 친구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얼굴이 맑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눈코입이 흐릿하게 생겼다는 거지?”

“아니, 너무 진하게 생기지 않았으면서도 예쁘다는 뜻이야. 난 그런 게 좋은데.”

“난 싫어.” (p.118)

 

애인과 8년을 연애한 용우는 느닷없이 헤어졌다. 헤어진 충격과 이별의 쓸쓸함에서 서서히 벗어나갈 무렵 느닷없이 헤어진 것이 아님을 알아가게 된다. 용우와 전 애인은 처음부터 맞지 않았다. 여자 친구의 얼굴이 맑아서 좋은 용우에게 여자 친구는 타박한다. 얼굴이 맑다는 표현이 그녀에게는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은 뭉뚱그려진 얼굴이라고 받아들여졌나 보다. 용우는 처음부터 진하게 생기지 않은 그녀를 좋아 했다. 그리고 그런 얼굴을 좋아했다. 그런데 여자 친구는 그렇게 생긴 자신의 얼굴을 싫어한다. 또 그렇게 표현하는 남자친구의 표현도 싫어한다. 이런 사람들이 결혼하면 어떻게 될까? 결혼한 지 30년이 지나도 그걸로 싸운다. 100% 확실하다.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가려 멋진 옷을 빼입고 옷에 맞는 악세사리를 이리 끼고 저리 끼고 걸고 하며 바쁘게 왔다 갔다 하며 남편에게 묻는다.

 


“여보~ 이게 더 어울려? 저게 더 어울려?”

“둘 다”

쨍그랑.

“여보~ 이게 더 어울려? 저게 더 어울려?”

“둘 다 이뻐.”

우장창.

 

남편은 도무지 두 개의 악세사리를 구분해 낼 수 없다. 최선을 다해 이쁘다고 해주는 데도 불구하고 아내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아내는

“왼쪽 것은 보석 자체가 커서 밝은 톤의 투피스에 어울리지 않는다. 오른쪽 것은 은은한 진주라 당신의 투피스에 딱 어울려”

라고 말해주기를 원한다. 쨍그랑~ 우장창~ 하고 나면 동창회에 나가는 아내 마음도 당연히 좋지 않고 집에 있는 남편의 마음도 좋지 않을 것이다.

 

다른 것은 다른 것대로 인정해야 한다. 용휘가 방세옥이 되어 왜 그렇게 베스트셀러에 집착했는지, 방세옥의 정체를 밝혀내려 그 무명의 작가는 기자로 사칭하면서 왜 그렇게 집착했는지 그것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늘 투정과 불만 싸움이다. 나도 내 친구 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그 친구가 달라진 것이 아니다.

어느 누구는 실내인간에 가까울 것이고 어느 누구는 실외인간에 가까울 것이다. 서로 나와라, 들어가라 해서는 안 된다. 실내와 실외를 서로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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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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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 언제 그랬냐는 듯 식었다. 충분히 예측을 할 수 있었고 누구나 예상하던 결과다. 이놈의 냄비근성은 벗어 내지를 못한다. 줄을 이어 퍼지던 대자보를 두고 말하고 진단하고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치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과 글자를 쏟아냈다. 손가락 발가락이 오그라드는 칭찬에서부터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종북몰이 밖에 없는 치들의 격앙된 장단을 탄 종북타령까지. 신드롬과 철없음의 사맛디 아니한 위치는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 대자보를 내다 붙인 20대들에게 있던 것이 혈기인지, 신음인지조차 알 수 없다. 가만히 피어오른 아지랑이가 눈 깜짝할 새 사그라진 것처럼 그렇게 사막 한가운데 타는 듯 갈증처럼 무뎌졌다.

고대 문서에서조차 요즘 젊은 것들이 문제라는 말이 나왔었다는 것은 유명하다. 언제나 젊은 것들은 철없고 부질없으며 아직 떼지 못한 젖비린내가 진동하는 것들이었다. 지난 대선 직후 늙은 사람들에 대한 SNS에서의 복수의 다짐이 넘쳐났다. 각종 연금을 내지 않겠다 에서부터 대중교통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까지 종류와 방법이 다양했다. 그 복수의 다짐이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졌는지에 대한 수치적 결과는 알 수 없다. 그런 것을 수치로 통계 내는 잉여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소심한 복수의 다짐조차 노인들과 장년들에게는 우습게 보였을 것이 또한 틀림없다. 젊은 놈들이 뭘 하겠어. 어른 노무 자식들이 말이야. 공부나 하고 취업이나 할 생각을 해야지 말이야. 겉멋만 들고 빨간 물만 들어가지고 말이야. 요즘 것들은 말이야 도무지 노력을 안 해 노력을.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 급속도로 꺼지고 노인들을 향한 복수가 그들만의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20대는 물론 다른 세대도 정확하게 목도했다. 혈기 하나로 돌도 씹어 먹어야 할 나이에 20대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가? 뭐가 그들을 그렇게 바쁘게, 혹은 무기력하게 만든 것인가?

 

 

이 책「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이런 질문에 어퍼컷을 날리는 20대들의 카운터블로우다.

 

“암울하기 그지없는 승자독식 사회에서 더 암울하게 변해버린 이십대, 다소 과격하게 말하자면 괴물이 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괴물이 되어버린 이십대이다.” (p.5)

 

저자 오찬호는 20대를 괴물로 표현한다. 단순히 바쁘고 무기력하고 의욕 없는 20대가 아니라 괴물로 변해버린 세대라고 한다. 강사로 여러 대학을 다니며 만난 20대들에게서 내린 결론이다. 사양(斜陽)하는 학문 중 하나인 사회학을 가르치면서 좀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강의를 하고자 의욕적으로 20대에게 덤벼든 후 카운터블로우를 맞은 것이다. 그들과 나눈 대화와 토론은 저자에게 충격과 공포였다. 20대와 더불어 젊은이로 불려도 무방할 저자에게도, 나에게도 이 책에 등장하는 20대의 모습은 내가 생각하던 20대와 내가 겪은 20대의 그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어떻게 그들은 지금의 괴물이 되었을까?

저자는 IMF의 추억과 경영학과의 사회학으로의 전환, 그리고 before/after의 덫 자기계발서. 이 세 가지로 20대를 진단한다. 아니, 진단이 아니라 괴물이 되어버린 그들의 원인을 들여다본다.

먼저 IMF의 추억. 1997년 IMF체제 이후 한국 사회는 급속도로 피폐해졌다. 경쟁과 우위, 비교와 차별은 핵심 가치가 되었다. 신자유주의의 파고는 무섭고 높았다. 국가 전체를 뒤엎어 잡아먹었다. 어제까지 공장의 사장이던 가장이 오늘 부도를 낸 채무자가 되고 잘나가는 기업의 간부이던 가장이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정리해고와 줄도산은 하릴없고 대책 없는 자영업자를 양산했고 이후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이어졌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듣기 좋은 듯 하지만 실상은 참담한 노동대책은 비정상적으로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용이 나던 개천은 마르고 말라 도랑물이 되었고 거기에서조차 경쟁과 비교는 고착화 되어 용을 꿈꾸는 이무기들의 무한경쟁이 펼쳐졌다. 그 속에서 태어난 20대는 아주 어려서부터 이런 것에 익숙했다. 어린이집부터 더 좋은 곳으로 가야했다. 그들이 생활한 초·중·고등학교는 이미 무너진 공교육의 실체였다. 아무런 대책도 희망도 찾을 수 없는 현실의 학교교육에서 그들은 오로지 수능을 치기 위한 기계로 길러졌을 뿐이다.

그들에게 경쟁과 비교, 현실적 삶의 위치에 대한 우위와 서열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이들은 미네르바나 용산 철거민들이 ‘어떤 선’을 넘어선 주장을 한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만든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말이다. 그 책임감이라는 건 ‘전문대 주제에’ 할 수 있는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본인이 그렇게 자영업자가 되었으면’ 건물이 철거당할지도 모르는 위험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p.68)

 

“다른 말로, ‘평소에 좀 더 노력했으면’ 전문대를 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굳이 그렇게 임대업장에서 장사를 하지 않아도 되었으리란 것이다. 이 얼마나 명쾌한 논리인가.”

너무 명쾌해서 귀싸대기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다. 20대에게 미네르바에 대한 처벌과 용산 철거민에 대한 공권력의 투입은 고민할 것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학력차별을 확대재생산하는 데 더 열심이고, 자기계발서를 인생 최고의 경전인 듯 떠받들며 안으로는 극단적 자기관리의 고통에 피가 마르면서도 밖으로는 사소한 경쟁우위를 위해 어떤 차별도 서슴지 않는 걸 ‘공정’하다고까지 여긴다.” (p.6)

 

저자가 만난 대학생들은 대부분 인서울이다. 그중에서도 많은 고등학생들이 진학하고 싶어 하는 대학의 대학생들이 많다. 그들에게 차별과 서열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무서울 정도로 침착하고 진지하게 자기가 다니는 학교보다 수능성적표에 의한 서열상 낮은 단계의 학교와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 대해 갖는 비하와 비교우위의 뿌듯함은 무서울 지경이다. 책에서도 여러 번 지적하고 있는 바 이들은 이명박 정권 시절 미국산 쇠고기 파동 촛불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들이다. 거리로 나와 이명박OUT과 정권퇴진을 외치던 이들이다. 그런데 이들에게서 청소노동자들과 용산철거민에 대한 양가적 태도를 발견한다. 이들에게 쇠고기 촛불 집회가 이전 세대의 가두집회나 투쟁방식과는 전혀 달랐던 것처럼 이전 세대가 청소노동자들과 용산철거민에 대해 갖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동정과 그런 사회적 약자를 양산하고 공권력으로 억압하는 폭력적 정권에 대한 분노를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충격적이었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또한 기성 언론과 진보·개혁 진영이 기대하는 것처럼 참다 참다 못해 드디어 들고 일어난 20대의 응어리진 분노의 표출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게 되면서 나는 아득해 진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통해 주장하는 내용에는 대체로 반대 입장에 섰다. 이유는 노동자들이 겪는 고난의 일차적인 원인이 개인의 ‘노력 부족’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p.76)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은, 어쨌든 모든 건 자기 할 탓이라는 자기계발 논리에 길들여진 결과이다.” (p.91)

 

사실 IMF의 추억과 경영학과의 사회학으로의 전환, 그리고 before/after의 덫 <자기계발서>는 자연스런 논리로 귀결되는 하나의 설득체다. 경쟁과 비교우위가 내재화 된 그들에게 자기계발서와 모든 것의 경영학적 접근은 20대들을 사우론을 맹목적으로 지키는 오크들처럼 만들어 버렸다.

 

“‘자기계발서’라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이십대들은 자기통제의 고통을 참아내고자 스스로에게 방어막을 친다. 자신이 경험하는 차별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순간 ‘자기계발의 패배자’로 낙인찍히는 사회를 살아야 하는 이십대들은, ‘사회적 차별’을 수긍할 수밖에 없다.” (p.232)

 

저자가 분석한 통계에 의하면 인터넷 서점에서 20대를 검색하면 자기계발서 분야에 대한 결과물이 가장 많이 나온다. 실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도 대부분 자기계발서다. 지난 대선 이후 48%를 위한답시고 각종 힐링이 난무했다. 책 제목에서부터 구역질이 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아프지 않은 청춘들조차 아프게 만들었다.

자기계발서는 ‘무기력한’(before) 현재를 ‘화려하게’(after)변화시킬 매뉴얼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거의 불가능한 기적을 연출한 주인공들이 ‘내경우를 보라’면서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격려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서울대 교수가 서울대생들을 상대로 한 강연이다. 서울대생들이 아프다면 비서울대생들은 이미 죽었다. 그따위로 최면을 걸 듯 20대에게 끊임없는 자기계발의 최면을 걸고 있다.

 

 

“하지만 자기계발서는 이를 착시하게끔 한다. 사회에 만연한 반칙과 장애물은 건너뛰고, 그런 대로 공정한 룰에 따라 돌아가는 사회를 전제로 얘기한다.” (p.215)

“이십대의 상황을 분명한 사회문제라고 다들 동의하면서도, 이들에게 한다는 조언에는 어째서 하나같이 개인은 사회를 바꿀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가.” (p.192)

 

자기계발이 개인에게, 특히 20대 젊은이들에게 기어코 얻어내고 마는 대답의 실상은 ‘나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 그러니 나부터 이기고 보자!’이다. 저자의 말에 백번 동감한다. 자기계발서가 주는 최면과 착시는 사회와 국가 조직은 정상이고 나와 너와 개인들은 부족하고 더 노력하고 더 노력하며 더욱 노력해야 할 미성숙한 존재가 된다. 어설프고 비상식적인 논리지만 그들은 이것에 열광한다. 자기계발서의 상당수가 이른바 사회에서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방대를 나오고 어려운 가정환경이었지만 피와 눈물이 나는 노력 끝에 성공해낸 사람들의 이야기. 수백만 명 중 몇 명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스토리를 ‘너도 이 책만 읽고 나처럼 하면 돼’라고 현혹한다. 저자가 분석해 낸 수치에서처럼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자기계발서를 읽고 그 중 몇 명이 자기계발서의 스토리대로 인생을 역전시킨다면 이 시장은 결코 줄어들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성공스토리는 나오게 마련이다. 도무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매주 로또 1등의 대박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기계발서가 이야기하는 ‘사회는 어쩔 수 없다. 사회는 무지막지하다.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미리미리 준비하라!’라는 논리는 100% 인생 해결책이 된다.

 

 

“취업이라는 게 ‘MUST(해야만 한다)’식의 자기계발 분위기 아래 이야기되면, 결국 취업이 안 되는 것은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이 평소 마땅히 해야 할 자기계발에 매진 안 한 결과가 될 뿐이다.” (p.58)

“취업준비 어렵다는 하소연은 한순간에 ‘입 닥쳐야 할 징징거림’이 된다. 이는 자연스레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을 저하시킨다.” (p.92)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어린놈의 자식들이 말이야’라는 꼰대들의 역정은 자기계발서가 이야기하는 ‘입 닥쳐야 할 징징거림’과 일맥상통 한다. 더 심각한 것은 20대들이 이것을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는 데에 있다. 취업이 최우선 과제가 되고 그 무한경쟁을 뚫기 위해 오늘도 자기를 계발한다. 이미 서열화된 그들의 수능점수와 재학 혹은 졸업한 대학은 다른 20대들과의 학력차별을 확대재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원료가 된다. 사회와 자기계발서가 요구하는 스펙을 위해 그 어떤 세대가 거쳐 간 20대보다 바쁘고 치열하게 살고 노력하지만 늘 부족하고 모자란 자신을 확인하고 학대한다. 철저하게 내면을 억누르면서도 밖으로는 아주 사소한 경쟁과 비교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어떤 사회적 차별도 서슴지 않는다. 더불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공정’하다고까지 여기게 되는 괴물로 진화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9번만 틀어놓고 보는 노인들과 식당과 가게에 하루 종일 틀어져 있는 종편 채널을 보는 사람들과 동일하게 지난 철도노조의 파업을 ‘귀족노조의 파업’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20년 동안 죽어라 일해야 6천만 원의 연봉을 받는 노동자들이 더 나쁜 놈들로 인식된다. ‘최소한 너희들은 일자리가 있지 않느냐’라는 논리는 그들의 기저에 깔려 있다. 그들이 앞으로 진출할 사회에서 20년 동안 죽어라 일해도 연봉 6천만 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그들 자신의 문제인가?

 

 

“어떤 사람들은 투 스트라이크를 맞은 상태로 인생을 시작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3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기가 3루타를 쳤다고 생각하며 산다.” (p.214)

 

<3루에 있는 사람은 홈이 바로 눈앞이니 홈인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투 스트라이크에 몰린 사람은 그런 희망을 품기조차 힘들고, 마음이 쫓겨 삼진당할 확률이 높다. 이런 상황을 공정하다 할 수 있을까?>

그들을 차별에 찬성할 수밖에 없게 만든 사회와 구조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부모와 학교, 선배와 선생, 자기계발서와 종교, TV와 친구들. 그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는다. 너희들의 문제가 아니라고. 너희들을 이렇게 만든 사회와 구조의 책임이라고. 이제 그만 자기계발서를 찢어버리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며칠 전 갑자기 TV도 나오지 않고 인터넷도 되지 않아 KT콜센터에 전화를 했다. 밤11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라 당연히 ARS로 고장 신고를 하려 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상담원과 통화 연결이 되었다. 고장 원인을 전해 듣고 그 시간에 기사가 이미 출동해 고장 조치를 하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 시간에도 상담을 하냐고 물으니 24시간 콜센터가 돌아간다고 했다. 수고가 많으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마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이었을 거다. 그 상담원도 자기계발서를 읽을까? 밤 11시가 넘어서도 상담원과 통화를 할 수 있고 고장조치를 받을 수 있는 이렇게 편리하고 원활한 국가에서 살고 있는 것이 불편하고 거북했다. 이 책에서 만난 20대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자기가 더 노력하지 않았으니 그 시간에 상담원이나 하고 있겠지~’

무섭다. 진짜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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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독재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새로운 강준만을 만났다. 그간 읽었던 강준만과는 사뭇 달랐다. 이 책의 제목은 「감정독재」이다. 제목만 보고 책을 구입했는데 내가 생각하던 내용과는 많이 달랐다. ‘감정’이라는 단어와 ‘독재’라는 단어가 합해졌을 때, 뭔가 기똥차고 기발한 강준만의 논리로 가득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 책은 사회비평이라기 보다 대중심리에 가까운 책이다.

이 책에는 50가지의 감정독재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일부는 이미 알고 있는 것도 있고 일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것도 있다. 두 부류 모두 공통적인 것은 인간의 행동과 삶에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머리말에서도 언급하듯이 우리의 행동과 삶을 결정짓는 많은 요인 중 감정은 가장 주된 요인이다. 이성과 논리, 경험과 조언 등 많은 요인 중에서도 독보적인 것이 감정이다. 이런 감정을 대하는 태도는 다양하기도 하고 양가적이기도 하다. 사람의 성격과 기질에 따라서 감정을 더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더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또는 분명히 감정에 치우친 결정과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전혀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고 이성적이라고 여기는 양가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도 있다.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상의 아주 작은 선택에서부터 중요한 삶의 기로에서의 선택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적으로 우리의 삶에 간섭한다. 인생은 B와 D사이의 C라는 말이 있다. 태어나면서부터(Birth) 죽을 때까지(Dead) 선택(Choice)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그만큼 중요하면서도 일반적이고 흔한 것이 선택인데, 이것을 결정짓는 아주 주요한 요소가 감정이다. 그렇다면 각 개인의 성격과 기질에 따라 감정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할지라도 감정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더군다나 책의 제목처럼 때로는 감정이 독재적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면 필수적으로 그것을 알아야 한다.

책에 소개된 50가지의 감정독재가 주는 효과 중 인상 깊었던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콩코드 효과

“‘콩코드 효과’는 학술적으론 ‘매몰 비용 효과’라고 한다. 매몰 비용은 이미 매몰되어 버려서 되돌릴 수 없는 비용으로 ‘함몰 비용’이라고도 한다.” (p.95)

 

마하 2.2의 속도로 날아가는 초특급 여객기 콩코드를 두고 천문학적인 돈이 쏟아졌다. 기존 여객기보다 2배나 빠르고 몇 배나 더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콩코드에 대해 많은 걱정과 염려 또한 쏟아졌다.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대해서 의구심이 많았다. 하지만 휘황찬란한 광고와 문구에 현혹되어 콩코드를 밀어 붙였다. 결과는 당연히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이미 쏟아 부은 천문학적인 돈을 거둬들일 수 없게 되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손을 떼고 포기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지난 이명박 시절 강바닥에 쏟아 부은 22조원이 도대체 어디로 날아갔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한반도대운하를 한다고 했다가 강한 반대에 부딪치자 슬그머니 대운하를 빼고 4대강 공사라 했다. 가만히 두면 자연적으로 갈수가 해결되고 물이 흐르고 생태가 지속되는 4대강을 파고 묻고 바르는데 22조를 들였다. 4대강 공사를 하는 내내 각장 반대 여론과 비판과 행동이 이어졌으나 일단 파고 본다는 그들만의 노가다 심보는 기어코 그 일을 하고 말았다. 4대강과 22조는 그대로 매몰 되었다. 지난 대선 전 양 후보는 4대강에 대한 분명한 재고의 여지가 있었다. 선거 이후 1년이 지나도록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문제에 매몰되어 있다 보니 4대강 문제는 입도 벙긋 하지 못하고 있다. 남은 4년 동안도 이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문제가 모든 사안을 잡아먹을 콩코드 효과를 발휘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된다.

 

 

확증편향

“자기이행적 예언은 확증 편향의 일종이다. 확증 편향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 인지 부조화 이론이 내적 일관성에 관한 것이라면, 확증 편향은 외적 일관성에 관한 것이다.” (p.130)

 

확증편향. 재미있는 현상이다. 대한민국의 정치판을 가장 명확하게 설명하는 개념이다. 북조선TV라 불리기도 하는 TV조선을 위시한 종편은 북한 내 권력투쟁에 대한 뉴스를 몇 주 동안 속보로 전했다. 바로 전 편성에서 속보를 한 후 다음 편성에서 탈북자들과 평론가들이 나와 평론을 했다. 철도가 멈추고 난리가 나도 그들에게는 북한이 더 중요한 뉴스 소스가 되었다. 지상파TV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SNS를 전혀 하지 않고 진보언론을 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북조선TV를 위시한 종편과 지상파TV 뉴스가 확증편향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이 보는 것이 정답이고 100%진실이라 생각한다. SNS를 활발히 하고 진보언론만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확증편향은 고스란히 일어난다. 자기들만 맞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이렇게 조그만 나라에 온갖 목소리가 가득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다양성이 아니라 맹목적인 극단이다. 종교인들의 집회에 군복을 입고 권총을 찬 노인들이 등장해 위협하는 모습이 공존하는 곳이 한국이다. 일간베스트와 대치되는 일간워스트가 등장한다. 확증편향이 과해도 너~무 과하다.

 

“한국 정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주로 정치인들만 욕할 뿐 대중은 늘 피해자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정치인들은 대중의 확증 편향에 영합할 뿐이라고 보는 게 진실에 더 가깝다.” (p.134)

 

강준만의 분석에 동의한다. 적어도 한국의 대중, 유권자들은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물론, 대중이 갖는 확증 편향을 구조화하고 내재화 한 것에는 정치인과 권력의 영향이 크지만 대중 스스로 확보했어야 할 객관성과 정치의식은 발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금번 선거에 출마한 저 사람이 독재 권력에 빌붙었든, 제수를 성추행 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든, 어차피 뽑아줘도 다음 선거까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또 뽑아준다. 지역주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확증편향이다. 한 번 뽑아 준 곳에는 또 뽑아 준다.

 

 

브래들리 효과

“백인 유권자가 흑인 조사원에게 백인을 지지한다고 밝히면 자신이 인종적 편견을 가진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꺼려서 실제 투표 행위와 상반된 응답을 했다는 것. 브래들리 효과.” (p.210)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의 흑인 후보였던 토머스 브래들리는 공화당의 백인 후보인 조지 듀크미지언과 경쟁했다. 1973년부터 로스엔젤레tm 시장으로 일해 온 브래들리는 선거 전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더 높은 지지율을 얻은 것은 물론, 선거 날의 출구 조사에서도 듀크미지언에 앞섰다. 그러나 개표 결과, 브래들리는 1.2퍼센트의 근소한 차이로 듀크미지언에게 패배했다.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편견이 있다. 인종, 지역, 학교, 성 등등 다양하고 일반적이다. 투표를 하고 나오는 젊은층에게 어느 후보에게 투표했는지 물어보면 주로 야당일 경우가 많다.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는 당연히 젊은층은 야당을 지지할거라는 편견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젊은 유권자가 여당을 지지하고 좋아해서 여당에 투표를 했더라도 타인의 물음 앞에서는 여지없이 ‘브래들리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앞으로는 떳떳하게 여당 지지를 밝히는 젊은 층의 출구조사를 많이 볼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회가 급속도로 보수화되어 가고 젊은이들조차 보수여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는 ‘브래들리 효과’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슬프다고 해야 할지.

 

“‘감정독재’와 ‘싸우는 법’은 사실 상 ‘타협하는 법’이다. 정면 승부를 해선 결코 이길 수 없으며, 감정과 이성이 완전 분리가 가능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성의 적이 아니라 동료로서 감정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고, 타협이 가능한 것들을 긍정적으로 살려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p.12)

 

콩코드 효과와 확증편향, 브래들리 효과 말고도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애초에 기대하던 시원하고 날카로운 사회비평 내용은 아니지만 알차다.

이 책은 저자의 말처럼 ‘감정독재’와 싸우라고 말하지 않는다. 혹시 있을지 모를 ‘독재권력’과는 싸워야 하겠지만 ‘감정독재’와는 ‘타협하라’고 말한다. 누구나 갖고 있지만 잘 모르는 감정의 영역은 다스리고 싸워 눌러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이성과 대치하거나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영역 또한 아니다. ‘동료로서 감정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그래서 타협을 모색하는 것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고치고 싶어 하는 자신의 성격이나 기질이 있다. 혹은 부모님의 모습 중에 정말 닮기 싫었던 모습이 있다. 그런데 어김없이 닮아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렇게 고치고 싶어 하는 성격과 기질은 거의 고쳐지지 않는다. 다스리고 고치고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척을 져서 등 돌리고 살 수도 없다. 일상과 일생 대부분의 시간동안 동행하는 것이 감정이다. 적절하게 타협하고 양보하고 살아야 한다. 어르고 달래면서 말이다. 내가 정말 싫어하고 고치고 싶은 내 성격과 기질이 있는 반면 한 가지 정도는 마음에 드는 구석도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살려나가고 ‘동료로서 내 감정을 바라보는’ 시각을 기르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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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탐식가들
김정호 지음 / 따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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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같이 밥 먹기가 부끄러운 친구가 있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의 푸드 코트에서는 덜한데 백반집이나 국밥집 같은 곳에서 그 부끄러움의 정도는 배가 된다. 일단 이 친구는 식사가 나오기 전 반찬을 다 먹는다. 보통 백반집이나 국밥집에 가면 반찬이 먼저 나오는데 그걸 다 먹는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반찬을 달라고 한다. 최대 세 번까지 반찬을 풀 세팅해 리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음식을 너무 짜게 먹는다. 국밥집에 가서 조그만 간장종지 같은 곳에 새우젓을 주는 데 그걸 통째로 다 넣고 다시 달라고 해서 추가로 새우젓을 또 넣는다. 워낙 친한 친구라 면전에서 나무라기도 수십 번 했으나 뭐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터라 바뀌지 않는다. 이 친구가 전형적인 탐식가다. 20대 어린 시절에는 먹는 양 자체도 어마어마했다. 돼지국밥에 공깃밥 2-3공기는 당연한 정도였다.

조선 시대에도 탐식가가 있었던 가 보다. 탐식가도 있고 미식가도 있었던 가 보다. 탐식가도 있고 미식가도 있고 악식가도 있었던 가 보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천재로 불린 뛰어난 시인이었고, 사대부들이 식탐을 경계했던 것과 달리 탐식가였다. 자신을 ‘먹을 것만 탐한 사람’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p.195)

“<도문대작>은 허균이 조선 팔도의 명물 토산품과 별미 음식을 소개한 책이다. 책 제목은 ‘푸줏간 앞에서 입을 크게 벌려 고기 씹는 시늉을 해 본다’는 뜻이다.” (p.205)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은 조선시대 ‘식식로드’ 내지는 ‘맛지도’를 그린 식객이었다. 인터넷 블로그 중 대다수가 맛집 블로그인 점을 감안하면 허균은 수백 년을 앞선 파워블로그였던 셈이다. 그는 스스로 ‘나는 음식을 탐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유명한 탐식가였다고 한다. 책에 소개된 바로는 지방의 수령직을 요청하면서도 풍미가 있고 유명한 맛을 경험할 수 있는 지역을 직접 말했다고 할 정도니 그의 음식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당시만 해도 양반과 사대부는 표면적으로는 음식을 탐하는 것을 죄로 여기고 체통이 없는 것으로 여겼다. 당연히 허균의 이러한 음식에 대한 탐함은 다른 사대부들과 양반들에게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더군다나 관직에 진출하기 전부터 자유롭고 호방한 기개와 가치관을 지녀 조선의 성리학과 유교정책과는 조금 다른 기이한 행동과 말을 일삼은 허균이었기에 여러 차례 파직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허균은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고 마음껏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탐식가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허균은 완고한 유교질서와 도덕규범을 억압으로 느꼈고, 현실로부터 도피하려 했다. 도가의 신선사상과 불교가 바로 그의 피난처였다. 그는 신선처럼 살고 싶어 했고, 실제로 은둔생활을 꿈꿨으며, 방에 불상을 들여놓고 불경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기도 했다.” (p.203)

 

허균의 이러한 탐식가로서의 모습에 대해서 저자는 완고한 지배이념과 가치체계에 대한 반감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허균이 직접 그가 가고 싶은 곳에 관직 자리를 요청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는 음식 자체를 사랑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가 맛의 세계에 탐닉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사대부 양반이라는 신분적 특권 때문이기도 했지만 기성 지배체제와는 다른 아웃사이더의 모습으로 일생을 살았기에 자유로운 맛기행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허균의 탐식에 대해서 기성 사대부와 양반은 비판하고 비난했다고 이미 언급했다. 사극이나 영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당시 사대부와 양반들은 빳빳하게 세운 옷을 입고 갓을 쓰고 정좌한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당시 그들의 절개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392년, 새 나라 조선이 들어섰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변화는, 아주 미미했지만 밥상에 찾아왔다. ‘육식 금지’가 풀린 것이다.” (p.13)

 

숭불정책을 쓰던 고려가 망하고 새 왕국 조선이 들어서 숭유정책을 썼다.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지하기 때문에 고기도 먹을 수 없었는데 이제 마음껏 고기를 먹게 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성리학과 유교의 영향으로 너저분하게 음식에 집착하고 먹는 것에 탐닉하는 것을 금기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숭불정책을 쓰던 고려시대에, 성리학과 유교의 교리에 천착한 조선시대에 고기를 먹지 않았을까? 먹는 것을 금기시하기만 했을까?

이 책 「조선의 탐식가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혀 아니었다. 고려시대에도 조선시대에도 그들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일반 백성들이야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생활이 몇 백 년을 이어왔는데 고기를 먹으라고 해서 당장 장에 나가 소고기 한 근 떼어 올 수 없는 처지였다. 어차피 양반과 사대부에게 적용되는 것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에헴~ 하면서 뒤로는 온갖 맛있는 것들을 다 쳐드셨다.

 

 

“탐식은 소수 권세가들이 누린 특권이었고, 인구의 다수는 기아에 항구적으로 시달렸다. 따라서 정부가 틀어쥐려 한 것은 일반 민중이 아닌 특권층의 목구멍이었다. 특권층의 식욕을 적절히 통제하지 않으면 하층민의 분노가 폭발하여 사회가 붕괴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성리학의 청빈과 근검 정신은 그런 현실이 낳은 고육지책이었던 것이다.” (p.328)

 

고려후기 권문세족과 지방토후들의 비리와 폭정이 극에 달했다. 결국 그것이 고려의 멸망을 가져온 가장 큰 요인이기도 했다. 어차피 백성들이야 왕이 바뀌든 나라가 바뀌든 그들의 처지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한 치도 나아지지 않았을 것임이 자명하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기념으로 백성들에게 떡 한 덩이 돌렸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우심적은 선비들끼리만 통하는 꽤나 진중한 음식이었다. 그리고 우심적은 고기를 먹었다는 사실보다, 상대방으로부터 존경과 인정을 받았다는 기쁨 때문에 절로 배가 불러지는 음식이었다.” (p.31)

“가장 이란 여름에 개고기를 삶아 먹는 풍속, 또는 개고기 요리를 가리킨다.” (p.95)

 

우심적은 물론 사슴의 태, 곰발바닥, 표범, 사슴 꼬리 등 들어보지도 못한 음식에 대해 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단순히 그런 음식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요리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록된 책이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러 가지 진귀한 음식들 중에서도 우심적이 놀라웠다. 우심적은 소심장 요리다. 소심장을 구워 먹기도 하고 전을 부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심적이 조선의 사대부와 양반 사이에서 유명해진 계기가 더 어처구니없었다. 중국의 유명한 시인이자 문인이 자신의 시에서 우심적을 언급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자기 집에서 온갖 수발을 들고 자기 땅뙈기에 소작하며 허리가 굽은 백성들은 낱알 하나 긁어 가며 목숨을 연명하는 데 이 사대부 양반 놈들은 중국의 시인이 먹은 음식이 멋있어 보여 따라한 것이다. 유행처럼 사대부와 양반들 사이에서 우심적이 번져 나가 ‘우심적쯤 먹어줘야’ 사대부, 양반 소리 좀 들어보는 정도였다 하니 기가 막히다.

 

 

“다산은 ‘음식이란 목숨만 이어 가면 되는 것’이라며 음식이 지닌 맛을 이성적으로 아예 무시했다. ‘아무리 맛있는 고기나 생선이라도 입 안으로 들어가면 이미 더러운 물건이 되어 버린다.’라는 게 다산의 음식철학이었다. 다산은 어떤 음식을 먹든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심지어 그는 가난을 이기려면 자신의 입과 입술을 속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p.236)

 

반대로 다산 정약용의 예는 ‘악식가’라 표현한다. ‘악’이 즐겁다는 뜻이 아니라 어렵다는 뜻에 가까운 ‘악식가’다. 다산은 책에 소개된 대로 먹는 것에 대해서 지나칠 만큼 조심스럽고 자제를 한 측면이 있는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청렴결백했던 목민관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의 성장환경도 있고 관직에 나섰지만 모략에 의해 긴 유배 생활을 했던 터라 청렴과 근검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먼 유배생활 중에도 아들들에게 편지를 썼는데 늘 근검을 강조하고 탐식을 경계하라 했다 하니 그의 ‘악식가’로서의 면모를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다. 지금에야 강진에 위치한 다산초당에 올라가는 길이 잘 닦여 있지만 예전에는 산골 오지 중 오지였을 것이다. 찾아오는 관광객을 위함인지 다산의 업적 때문인지 현대에 들어와 원래 초가집이 아닌 기와집을 지어 올려 유배지 같지 않은 유배지로 만들어 놓았지만 유배 당시에는 섬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산에서 나는 나물을 주로 먹었다고 알려진 다산은 상추쌈을 한 움큼 먹으며 포만감을 느꼈다고 한다. 실제로 상추쌈을 얼마만큼 먹어야 포만감이 생길까. 다산의 말대로 입과 입술을 속이는 것일 터. 마음으로 포만감을 느끼고 먹는 것에는 크게 개의치 않겠다는 결기로 해석할 수 있다.

조선의 수많았던 반정과 반란, 붕당과 정쟁으로 인해 유배와 하옥과 처형이 반복되었지만 제 몸 하나 잘 건사해 살다 간 많은 사대부와 양반들도 있다. 그들은 누릴 부귀와 영화를 생전에 다 했다. 소심장을 요리하고 사슴의 태를 요리해 먹고 귀하디귀한 표범을 잡아다 요리해 먹었다. 곡식 낱알 하나 긁어모아 나무껍질과 함께 죽을 쑤어 먹은 백성들의 삶과는 천양지차다. 또한 사대부와 양반들이 누릴 탐식을 위해 고통 받았을 그들의 노비들과 백성들의 삶을 생각하니 열불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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