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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독재 ㅣ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새로운 강준만을 만났다. 그간 읽었던 강준만과는 사뭇 달랐다. 이 책의 제목은 「감정독재」이다. 제목만 보고 책을 구입했는데 내가 생각하던 내용과는 많이 달랐다. ‘감정’이라는 단어와 ‘독재’라는 단어가 합해졌을 때, 뭔가 기똥차고 기발한 강준만의 논리로 가득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 책은 사회비평이라기 보다 대중심리에 가까운 책이다.
이 책에는 50가지의 감정독재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일부는 이미 알고 있는 것도 있고 일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것도 있다. 두 부류 모두 공통적인 것은 인간의 행동과 삶에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머리말에서도 언급하듯이 우리의 행동과 삶을 결정짓는 많은 요인 중 감정은 가장 주된 요인이다. 이성과 논리, 경험과 조언 등 많은 요인 중에서도 독보적인 것이 감정이다. 이런 감정을 대하는 태도는 다양하기도 하고 양가적이기도 하다. 사람의 성격과 기질에 따라서 감정을 더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더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또는 분명히 감정에 치우친 결정과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전혀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고 이성적이라고 여기는 양가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도 있다.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상의 아주 작은 선택에서부터 중요한 삶의 기로에서의 선택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적으로 우리의 삶에 간섭한다. 인생은 B와 D사이의 C라는 말이 있다. 태어나면서부터(Birth) 죽을 때까지(Dead) 선택(Choice)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그만큼 중요하면서도 일반적이고 흔한 것이 선택인데, 이것을 결정짓는 아주 주요한 요소가 감정이다. 그렇다면 각 개인의 성격과 기질에 따라 감정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할지라도 감정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더군다나 책의 제목처럼 때로는 감정이 독재적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면 필수적으로 그것을 알아야 한다.
책에 소개된 50가지의 감정독재가 주는 효과 중 인상 깊었던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콩코드 효과
“‘콩코드 효과’는 학술적으론 ‘매몰 비용 효과’라고 한다. 매몰 비용은 이미 매몰되어 버려서 되돌릴 수 없는 비용으로 ‘함몰 비용’이라고도 한다.” (p.95)
마하 2.2의 속도로 날아가는 초특급 여객기 콩코드를 두고 천문학적인 돈이 쏟아졌다. 기존 여객기보다 2배나 빠르고 몇 배나 더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콩코드에 대해 많은 걱정과 염려 또한 쏟아졌다.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대해서 의구심이 많았다. 하지만 휘황찬란한 광고와 문구에 현혹되어 콩코드를 밀어 붙였다. 결과는 당연히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이미 쏟아 부은 천문학적인 돈을 거둬들일 수 없게 되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손을 떼고 포기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지난 이명박 시절 강바닥에 쏟아 부은 22조원이 도대체 어디로 날아갔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한반도대운하를 한다고 했다가 강한 반대에 부딪치자 슬그머니 대운하를 빼고 4대강 공사라 했다. 가만히 두면 자연적으로 갈수가 해결되고 물이 흐르고 생태가 지속되는 4대강을 파고 묻고 바르는데 22조를 들였다. 4대강 공사를 하는 내내 각장 반대 여론과 비판과 행동이 이어졌으나 일단 파고 본다는 그들만의 노가다 심보는 기어코 그 일을 하고 말았다. 4대강과 22조는 그대로 매몰 되었다. 지난 대선 전 양 후보는 4대강에 대한 분명한 재고의 여지가 있었다. 선거 이후 1년이 지나도록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문제에 매몰되어 있다 보니 4대강 문제는 입도 벙긋 하지 못하고 있다. 남은 4년 동안도 이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문제가 모든 사안을 잡아먹을 콩코드 효과를 발휘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된다.
확증편향
“자기이행적 예언은 확증 편향의 일종이다. 확증 편향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 인지 부조화 이론이 내적 일관성에 관한 것이라면, 확증 편향은 외적 일관성에 관한 것이다.” (p.130)
확증편향. 재미있는 현상이다. 대한민국의 정치판을 가장 명확하게 설명하는 개념이다. 북조선TV라 불리기도 하는 TV조선을 위시한 종편은 북한 내 권력투쟁에 대한 뉴스를 몇 주 동안 속보로 전했다. 바로 전 편성에서 속보를 한 후 다음 편성에서 탈북자들과 평론가들이 나와 평론을 했다. 철도가 멈추고 난리가 나도 그들에게는 북한이 더 중요한 뉴스 소스가 되었다. 지상파TV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SNS를 전혀 하지 않고 진보언론을 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북조선TV를 위시한 종편과 지상파TV 뉴스가 확증편향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이 보는 것이 정답이고 100%진실이라 생각한다. SNS를 활발히 하고 진보언론만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확증편향은 고스란히 일어난다. 자기들만 맞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이렇게 조그만 나라에 온갖 목소리가 가득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다양성이 아니라 맹목적인 극단이다. 종교인들의 집회에 군복을 입고 권총을 찬 노인들이 등장해 위협하는 모습이 공존하는 곳이 한국이다. 일간베스트와 대치되는 일간워스트가 등장한다. 확증편향이 과해도 너~무 과하다.
“한국 정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주로 정치인들만 욕할 뿐 대중은 늘 피해자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정치인들은 대중의 확증 편향에 영합할 뿐이라고 보는 게 진실에 더 가깝다.” (p.134)
강준만의 분석에 동의한다. 적어도 한국의 대중, 유권자들은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물론, 대중이 갖는 확증 편향을 구조화하고 내재화 한 것에는 정치인과 권력의 영향이 크지만 대중 스스로 확보했어야 할 객관성과 정치의식은 발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금번 선거에 출마한 저 사람이 독재 권력에 빌붙었든, 제수를 성추행 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든, 어차피 뽑아줘도 다음 선거까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또 뽑아준다. 지역주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확증편향이다. 한 번 뽑아 준 곳에는 또 뽑아 준다.
브래들리 효과
“백인 유권자가 흑인 조사원에게 백인을 지지한다고 밝히면 자신이 인종적 편견을 가진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꺼려서 실제 투표 행위와 상반된 응답을 했다는 것. 브래들리 효과.” (p.210)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의 흑인 후보였던 토머스 브래들리는 공화당의 백인 후보인 조지 듀크미지언과 경쟁했다. 1973년부터 로스엔젤레tm 시장으로 일해 온 브래들리는 선거 전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더 높은 지지율을 얻은 것은 물론, 선거 날의 출구 조사에서도 듀크미지언에 앞섰다. 그러나 개표 결과, 브래들리는 1.2퍼센트의 근소한 차이로 듀크미지언에게 패배했다.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편견이 있다. 인종, 지역, 학교, 성 등등 다양하고 일반적이다. 투표를 하고 나오는 젊은층에게 어느 후보에게 투표했는지 물어보면 주로 야당일 경우가 많다.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는 당연히 젊은층은 야당을 지지할거라는 편견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젊은 유권자가 여당을 지지하고 좋아해서 여당에 투표를 했더라도 타인의 물음 앞에서는 여지없이 ‘브래들리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앞으로는 떳떳하게 여당 지지를 밝히는 젊은 층의 출구조사를 많이 볼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회가 급속도로 보수화되어 가고 젊은이들조차 보수여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는 ‘브래들리 효과’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슬프다고 해야 할지.
“‘감정독재’와 ‘싸우는 법’은 사실 상 ‘타협하는 법’이다. 정면 승부를 해선 결코 이길 수 없으며, 감정과 이성이 완전 분리가 가능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성의 적이 아니라 동료로서 감정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고, 타협이 가능한 것들을 긍정적으로 살려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p.12)
콩코드 효과와 확증편향, 브래들리 효과 말고도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애초에 기대하던 시원하고 날카로운 사회비평 내용은 아니지만 알차다.
이 책은 저자의 말처럼 ‘감정독재’와 싸우라고 말하지 않는다. 혹시 있을지 모를 ‘독재권력’과는 싸워야 하겠지만 ‘감정독재’와는 ‘타협하라’고 말한다. 누구나 갖고 있지만 잘 모르는 감정의 영역은 다스리고 싸워 눌러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이성과 대치하거나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영역 또한 아니다. ‘동료로서 감정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그래서 타협을 모색하는 것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고치고 싶어 하는 자신의 성격이나 기질이 있다. 혹은 부모님의 모습 중에 정말 닮기 싫었던 모습이 있다. 그런데 어김없이 닮아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렇게 고치고 싶어 하는 성격과 기질은 거의 고쳐지지 않는다. 다스리고 고치고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척을 져서 등 돌리고 살 수도 없다. 일상과 일생 대부분의 시간동안 동행하는 것이 감정이다. 적절하게 타협하고 양보하고 살아야 한다. 어르고 달래면서 말이다. 내가 정말 싫어하고 고치고 싶은 내 성격과 기질이 있는 반면 한 가지 정도는 마음에 드는 구석도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살려나가고 ‘동료로서 내 감정을 바라보는’ 시각을 기르는 것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