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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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 언제 그랬냐는 듯 식었다. 충분히 예측을 할 수 있었고 누구나 예상하던 결과다. 이놈의 냄비근성은 벗어 내지를 못한다. 줄을 이어 퍼지던 대자보를 두고 말하고 진단하고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치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과 글자를 쏟아냈다. 손가락 발가락이 오그라드는 칭찬에서부터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종북몰이 밖에 없는 치들의 격앙된 장단을 탄 종북타령까지. 신드롬과 철없음의 사맛디 아니한 위치는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 대자보를 내다 붙인 20대들에게 있던 것이 혈기인지, 신음인지조차 알 수 없다. 가만히 피어오른 아지랑이가 눈 깜짝할 새 사그라진 것처럼 그렇게 사막 한가운데 타는 듯 갈증처럼 무뎌졌다.

고대 문서에서조차 요즘 젊은 것들이 문제라는 말이 나왔었다는 것은 유명하다. 언제나 젊은 것들은 철없고 부질없으며 아직 떼지 못한 젖비린내가 진동하는 것들이었다. 지난 대선 직후 늙은 사람들에 대한 SNS에서의 복수의 다짐이 넘쳐났다. 각종 연금을 내지 않겠다 에서부터 대중교통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까지 종류와 방법이 다양했다. 그 복수의 다짐이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졌는지에 대한 수치적 결과는 알 수 없다. 그런 것을 수치로 통계 내는 잉여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소심한 복수의 다짐조차 노인들과 장년들에게는 우습게 보였을 것이 또한 틀림없다. 젊은 놈들이 뭘 하겠어. 어른 노무 자식들이 말이야. 공부나 하고 취업이나 할 생각을 해야지 말이야. 겉멋만 들고 빨간 물만 들어가지고 말이야. 요즘 것들은 말이야 도무지 노력을 안 해 노력을.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 급속도로 꺼지고 노인들을 향한 복수가 그들만의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20대는 물론 다른 세대도 정확하게 목도했다. 혈기 하나로 돌도 씹어 먹어야 할 나이에 20대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가? 뭐가 그들을 그렇게 바쁘게, 혹은 무기력하게 만든 것인가?

 

 

이 책「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이런 질문에 어퍼컷을 날리는 20대들의 카운터블로우다.

 

“암울하기 그지없는 승자독식 사회에서 더 암울하게 변해버린 이십대, 다소 과격하게 말하자면 괴물이 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괴물이 되어버린 이십대이다.” (p.5)

 

저자 오찬호는 20대를 괴물로 표현한다. 단순히 바쁘고 무기력하고 의욕 없는 20대가 아니라 괴물로 변해버린 세대라고 한다. 강사로 여러 대학을 다니며 만난 20대들에게서 내린 결론이다. 사양(斜陽)하는 학문 중 하나인 사회학을 가르치면서 좀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강의를 하고자 의욕적으로 20대에게 덤벼든 후 카운터블로우를 맞은 것이다. 그들과 나눈 대화와 토론은 저자에게 충격과 공포였다. 20대와 더불어 젊은이로 불려도 무방할 저자에게도, 나에게도 이 책에 등장하는 20대의 모습은 내가 생각하던 20대와 내가 겪은 20대의 그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어떻게 그들은 지금의 괴물이 되었을까?

저자는 IMF의 추억과 경영학과의 사회학으로의 전환, 그리고 before/after의 덫 자기계발서. 이 세 가지로 20대를 진단한다. 아니, 진단이 아니라 괴물이 되어버린 그들의 원인을 들여다본다.

먼저 IMF의 추억. 1997년 IMF체제 이후 한국 사회는 급속도로 피폐해졌다. 경쟁과 우위, 비교와 차별은 핵심 가치가 되었다. 신자유주의의 파고는 무섭고 높았다. 국가 전체를 뒤엎어 잡아먹었다. 어제까지 공장의 사장이던 가장이 오늘 부도를 낸 채무자가 되고 잘나가는 기업의 간부이던 가장이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정리해고와 줄도산은 하릴없고 대책 없는 자영업자를 양산했고 이후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이어졌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듣기 좋은 듯 하지만 실상은 참담한 노동대책은 비정상적으로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용이 나던 개천은 마르고 말라 도랑물이 되었고 거기에서조차 경쟁과 비교는 고착화 되어 용을 꿈꾸는 이무기들의 무한경쟁이 펼쳐졌다. 그 속에서 태어난 20대는 아주 어려서부터 이런 것에 익숙했다. 어린이집부터 더 좋은 곳으로 가야했다. 그들이 생활한 초·중·고등학교는 이미 무너진 공교육의 실체였다. 아무런 대책도 희망도 찾을 수 없는 현실의 학교교육에서 그들은 오로지 수능을 치기 위한 기계로 길러졌을 뿐이다.

그들에게 경쟁과 비교, 현실적 삶의 위치에 대한 우위와 서열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이들은 미네르바나 용산 철거민들이 ‘어떤 선’을 넘어선 주장을 한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만든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말이다. 그 책임감이라는 건 ‘전문대 주제에’ 할 수 있는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본인이 그렇게 자영업자가 되었으면’ 건물이 철거당할지도 모르는 위험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p.68)

 

“다른 말로, ‘평소에 좀 더 노력했으면’ 전문대를 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굳이 그렇게 임대업장에서 장사를 하지 않아도 되었으리란 것이다. 이 얼마나 명쾌한 논리인가.”

너무 명쾌해서 귀싸대기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다. 20대에게 미네르바에 대한 처벌과 용산 철거민에 대한 공권력의 투입은 고민할 것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학력차별을 확대재생산하는 데 더 열심이고, 자기계발서를 인생 최고의 경전인 듯 떠받들며 안으로는 극단적 자기관리의 고통에 피가 마르면서도 밖으로는 사소한 경쟁우위를 위해 어떤 차별도 서슴지 않는 걸 ‘공정’하다고까지 여긴다.” (p.6)

 

저자가 만난 대학생들은 대부분 인서울이다. 그중에서도 많은 고등학생들이 진학하고 싶어 하는 대학의 대학생들이 많다. 그들에게 차별과 서열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무서울 정도로 침착하고 진지하게 자기가 다니는 학교보다 수능성적표에 의한 서열상 낮은 단계의 학교와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 대해 갖는 비하와 비교우위의 뿌듯함은 무서울 지경이다. 책에서도 여러 번 지적하고 있는 바 이들은 이명박 정권 시절 미국산 쇠고기 파동 촛불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들이다. 거리로 나와 이명박OUT과 정권퇴진을 외치던 이들이다. 그런데 이들에게서 청소노동자들과 용산철거민에 대한 양가적 태도를 발견한다. 이들에게 쇠고기 촛불 집회가 이전 세대의 가두집회나 투쟁방식과는 전혀 달랐던 것처럼 이전 세대가 청소노동자들과 용산철거민에 대해 갖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동정과 그런 사회적 약자를 양산하고 공권력으로 억압하는 폭력적 정권에 대한 분노를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충격적이었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또한 기성 언론과 진보·개혁 진영이 기대하는 것처럼 참다 참다 못해 드디어 들고 일어난 20대의 응어리진 분노의 표출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게 되면서 나는 아득해 진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통해 주장하는 내용에는 대체로 반대 입장에 섰다. 이유는 노동자들이 겪는 고난의 일차적인 원인이 개인의 ‘노력 부족’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p.76)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은, 어쨌든 모든 건 자기 할 탓이라는 자기계발 논리에 길들여진 결과이다.” (p.91)

 

사실 IMF의 추억과 경영학과의 사회학으로의 전환, 그리고 before/after의 덫 <자기계발서>는 자연스런 논리로 귀결되는 하나의 설득체다. 경쟁과 비교우위가 내재화 된 그들에게 자기계발서와 모든 것의 경영학적 접근은 20대들을 사우론을 맹목적으로 지키는 오크들처럼 만들어 버렸다.

 

“‘자기계발서’라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이십대들은 자기통제의 고통을 참아내고자 스스로에게 방어막을 친다. 자신이 경험하는 차별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순간 ‘자기계발의 패배자’로 낙인찍히는 사회를 살아야 하는 이십대들은, ‘사회적 차별’을 수긍할 수밖에 없다.” (p.232)

 

저자가 분석한 통계에 의하면 인터넷 서점에서 20대를 검색하면 자기계발서 분야에 대한 결과물이 가장 많이 나온다. 실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도 대부분 자기계발서다. 지난 대선 이후 48%를 위한답시고 각종 힐링이 난무했다. 책 제목에서부터 구역질이 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아프지 않은 청춘들조차 아프게 만들었다.

자기계발서는 ‘무기력한’(before) 현재를 ‘화려하게’(after)변화시킬 매뉴얼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거의 불가능한 기적을 연출한 주인공들이 ‘내경우를 보라’면서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격려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서울대 교수가 서울대생들을 상대로 한 강연이다. 서울대생들이 아프다면 비서울대생들은 이미 죽었다. 그따위로 최면을 걸 듯 20대에게 끊임없는 자기계발의 최면을 걸고 있다.

 

 

“하지만 자기계발서는 이를 착시하게끔 한다. 사회에 만연한 반칙과 장애물은 건너뛰고, 그런 대로 공정한 룰에 따라 돌아가는 사회를 전제로 얘기한다.” (p.215)

“이십대의 상황을 분명한 사회문제라고 다들 동의하면서도, 이들에게 한다는 조언에는 어째서 하나같이 개인은 사회를 바꿀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가.” (p.192)

 

자기계발이 개인에게, 특히 20대 젊은이들에게 기어코 얻어내고 마는 대답의 실상은 ‘나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 그러니 나부터 이기고 보자!’이다. 저자의 말에 백번 동감한다. 자기계발서가 주는 최면과 착시는 사회와 국가 조직은 정상이고 나와 너와 개인들은 부족하고 더 노력하고 더 노력하며 더욱 노력해야 할 미성숙한 존재가 된다. 어설프고 비상식적인 논리지만 그들은 이것에 열광한다. 자기계발서의 상당수가 이른바 사회에서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방대를 나오고 어려운 가정환경이었지만 피와 눈물이 나는 노력 끝에 성공해낸 사람들의 이야기. 수백만 명 중 몇 명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스토리를 ‘너도 이 책만 읽고 나처럼 하면 돼’라고 현혹한다. 저자가 분석해 낸 수치에서처럼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자기계발서를 읽고 그 중 몇 명이 자기계발서의 스토리대로 인생을 역전시킨다면 이 시장은 결코 줄어들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성공스토리는 나오게 마련이다. 도무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매주 로또 1등의 대박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기계발서가 이야기하는 ‘사회는 어쩔 수 없다. 사회는 무지막지하다.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미리미리 준비하라!’라는 논리는 100% 인생 해결책이 된다.

 

 

“취업이라는 게 ‘MUST(해야만 한다)’식의 자기계발 분위기 아래 이야기되면, 결국 취업이 안 되는 것은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이 평소 마땅히 해야 할 자기계발에 매진 안 한 결과가 될 뿐이다.” (p.58)

“취업준비 어렵다는 하소연은 한순간에 ‘입 닥쳐야 할 징징거림’이 된다. 이는 자연스레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을 저하시킨다.” (p.92)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어린놈의 자식들이 말이야’라는 꼰대들의 역정은 자기계발서가 이야기하는 ‘입 닥쳐야 할 징징거림’과 일맥상통 한다. 더 심각한 것은 20대들이 이것을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는 데에 있다. 취업이 최우선 과제가 되고 그 무한경쟁을 뚫기 위해 오늘도 자기를 계발한다. 이미 서열화된 그들의 수능점수와 재학 혹은 졸업한 대학은 다른 20대들과의 학력차별을 확대재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원료가 된다. 사회와 자기계발서가 요구하는 스펙을 위해 그 어떤 세대가 거쳐 간 20대보다 바쁘고 치열하게 살고 노력하지만 늘 부족하고 모자란 자신을 확인하고 학대한다. 철저하게 내면을 억누르면서도 밖으로는 아주 사소한 경쟁과 비교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어떤 사회적 차별도 서슴지 않는다. 더불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공정’하다고까지 여기게 되는 괴물로 진화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9번만 틀어놓고 보는 노인들과 식당과 가게에 하루 종일 틀어져 있는 종편 채널을 보는 사람들과 동일하게 지난 철도노조의 파업을 ‘귀족노조의 파업’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20년 동안 죽어라 일해야 6천만 원의 연봉을 받는 노동자들이 더 나쁜 놈들로 인식된다. ‘최소한 너희들은 일자리가 있지 않느냐’라는 논리는 그들의 기저에 깔려 있다. 그들이 앞으로 진출할 사회에서 20년 동안 죽어라 일해도 연봉 6천만 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그들 자신의 문제인가?

 

 

“어떤 사람들은 투 스트라이크를 맞은 상태로 인생을 시작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3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기가 3루타를 쳤다고 생각하며 산다.” (p.214)

 

<3루에 있는 사람은 홈이 바로 눈앞이니 홈인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투 스트라이크에 몰린 사람은 그런 희망을 품기조차 힘들고, 마음이 쫓겨 삼진당할 확률이 높다. 이런 상황을 공정하다 할 수 있을까?>

그들을 차별에 찬성할 수밖에 없게 만든 사회와 구조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부모와 학교, 선배와 선생, 자기계발서와 종교, TV와 친구들. 그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는다. 너희들의 문제가 아니라고. 너희들을 이렇게 만든 사회와 구조의 책임이라고. 이제 그만 자기계발서를 찢어버리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며칠 전 갑자기 TV도 나오지 않고 인터넷도 되지 않아 KT콜센터에 전화를 했다. 밤11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라 당연히 ARS로 고장 신고를 하려 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상담원과 통화 연결이 되었다. 고장 원인을 전해 듣고 그 시간에 기사가 이미 출동해 고장 조치를 하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 시간에도 상담을 하냐고 물으니 24시간 콜센터가 돌아간다고 했다. 수고가 많으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마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이었을 거다. 그 상담원도 자기계발서를 읽을까? 밤 11시가 넘어서도 상담원과 통화를 할 수 있고 고장조치를 받을 수 있는 이렇게 편리하고 원활한 국가에서 살고 있는 것이 불편하고 거북했다. 이 책에서 만난 20대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자기가 더 노력하지 않았으니 그 시간에 상담원이나 하고 있겠지~’

무섭다. 진짜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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