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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상륙 작전 1 - 해방과 혼란 ㅣ 인천 상륙 작전 1
윤태호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945년 해방 후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한반도의 상황은 아비규환이었다.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가장 첨예한 갈등과 배신과 암투와 공작과 투쟁이 있었던 시기다. 이 책 「인천상륙작전 1」은 이 시기를 그리고 있는 만화책이다. 한국의 만화가 중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윤태호 작가의 작품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전쟁과 한국현대사에 관심이 많아 관련된 책을 꽤 읽는 편이다. 특히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기를 소재로 한 책을 읽으면 가슴이 답답해 올때가 많다. 뭔가 해결되지 않고 쌓여오기만 한 부채를 잔뜩 짊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책은 예의 윤태호 작가 특유의 날카롭고 굵은 그림 특성이 인상적이다. 그의 전작 「이끼」나 「미생」의 터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뭐,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것이 아닌 전적인 내 느낌이다. 아마 역사라는 팩트를 기초로 한 작품인지라 좀 더 굵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작품에는 주로 6명의 인물이 그려진다. 김상배는 유약하고 능력없는 가장이다. 김상근은 김상배의 동생으로 식민지 시절에는 일본 순사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처신에 능하고 욕심이 많고 거칠지만 식구들을 챙기는 정은 끊지 않았다. 인천댁은 김상배의 부인으로 전형적인 아내와 어머니로 억척같은 삶을 이어간다. 철구는 김상배와 인천댁의 아들로 책 속에서는 콧물이 그려진 전형적인 근현대사 교과서에 나오던 아이로 그려지지만 동네에서는 골목대장 노릇을 하는 아이다. 김상호는 식민지 시절 독립군 군자금 지원과 동시에 일제에 부역해 사업을 한 인물이다. 해방 직후 일제가 손을 놓고 간 적산을 그대로 손에 움켜 쥐었고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기 좌익과 우익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정치적 입신을 노리고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김동일은 김상호의 아들로 식민 시절 부자인 아버지를 만나 일본 유학을 다녀왔지만 시킨 공부값을 하지 못하고 집에서 빈둥빈둥 노는 인물이다. 하지만 미군정시절을 통찰하는 눈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김상배는 김상근의 소개로 철물점에서 일하게 된다. 일본 사람의 일을 맡아 돌아오면서 철물점 사장과 나누는 대화다. 미군들하고 술판을 벌이는 일본 놈들. 일제가 패망하고 한반도와 조선인들은 해방의 기쁨을 누렸다. 그 어떤 식민지를 겪은 나라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민주적인 체제로 건준과 인민위원회가 조직되고 퍼져나갔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는 것이 골자였다. 그런데 일제가 물러 난 한반도를 노리고 있는 더 큰 승냥이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마련해 놓지 못했다. 아니 40년 동안 숨통이 틀어 막혀 발버둥조차 칠 수 없었는데 대책은 무슨. 한반도로 군홧발을 옮긴 미군은 철저하게 그들의 안보논리로 미군정을 구조화했다. 식민지 청산, 반민족행위자처단 등은 그들에게는 아웃오브안중이다.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건준과 인민위원회를 단순히 좌익, 빨갱이로 몰았다. 그래서 그들은 일제를 그대로 등용했다. 주요 행정 요직에 그들을 다시 앉혔고 친일 경찰을 그대로 한국경찰로 이었다. 미국 장교 수뇌부들에게 일제 치하 40년의 수모와 민족적 한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일제가 패망한 후 한반도 안에서 미군들이 일본의 꽤나 잘 나가는 놈들과 술판을 벌일 수 었었던 것이다.

김상근은 형과는 달리 처신에 능한 인물이다. 자세하게 그려지지는 않지만 건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식민 시절에는 일본 형사의 앞잡이가 되어 조선인을 때려 잡는 데 앞장 선 인물이다. 어떤 학자의 표현대로 “해방은 도둑같이 왔다.” 일본 군대는 이미 패망의 기운이 짙었고 각종 전투에서 실제로 패배하고 있었음에도 식민지에서는 늘 “황군의 위대한 승리”만 전해지고 있었다. 거짓으로 가득했던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해방이 되어서도 긴가민가 했다고 한다. 김상근은 백주대낮에 시장통에서 이 소식을 듣는다. 해방의 기쁨을 외치던 사람들이 곧바로 일본놈들 앞잡이 노릇을 했던 자들을 찾는다. 김상근은 바로 그들의 눈에 띄었다. 그는 개처럼 복종하던 일본 형사를 때려 죽여 시장통으로 뛰쳐나오며 소리친다. 그리고
“세상이 바뀌었다고 이놈아!”
“세상만 바뀌었지... 사람은 그대로 아니냐고!!” (p.32)
라고 어디든 도망가라고 재촉하는 유약한 형에게 소리친다. 세상만 바뀌었지, 사람은 그대로라고!!

이 작품의 시기를 소재로 한 책들의 많은 부분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이 시기의 혼란함이다. 나는 폭발적인 진공상태라고 표현한다. 폭발과 진공은 과학적으로는 맞지 않겠지만 일제의 공백으로 진공상태가 된 한반도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약과 같은 일이 매일 일어났으니 폭발적인 진공상태다. 매일 좌익과 우익의 테러와 보복이 이어지고 수많은 언론이 만들어지고 정당과 단체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것이 반복되었다.
이런 시기 김상호와 같은 인물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온 몸을 던지지 않는다. 이곳, 저곳 간을 보며 밀당을 한다. 그는 김상근을 부하로 부리며 잡다한 일을 처리한다. 그리고 허망한 일제의 패망에 미쳐 다 처리하지 못하고 떠난 일제의 재산과 적산을 그대로 차지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재벌과 대기업 중에서 그 출발이 적산기업이 아닌 곳이 몇 곳이나 될까? 한 손가락으로 꼽아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김상호는 정치적 욕심과 야욕이 있는 인물이었다. 일본놈들의 재산이나 차지하자고 했던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게 된 것이다. 미군들이 들어오면서 일본놈들이 다시 머리로 올라가고 어쨌거나 미군에게 잘 보여야 뭐라도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친일이고 자시고 나는 생존당이오.”는 결코 변명이 되지 못한다. 일제를 적극적으로 찬양한 어떤 친일 문학가가 그랬다지 않나. “일본이 그렇게 허망하게 질지 몰랐다.” 고 말이다.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들의 대표적인 변명이 그것이다. “그때는 너라도 나처럼 그랬을 거다.” 어쩔수 없었다는 말. 김상호는 민족이고 해방이고 자시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살아남아 부를 쌓고 정치적 명예를 얻는 것이 전부였다.

김상호의 아들 김동일은 당시 엘리트 지식인이었다. 유학 후 집에서 빈둥대고는 있었지만 엘리트 지식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돌아가는 정세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 김상호에게 좌익이나 우익에게 붙을 것이 아니라 미군에 붙을 것을 권유한다. 정확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해방 후 공간은 좌익세력의 것이었다. 이미 민족 전체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고 풀뿌리 지방 조직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함정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있었고 너무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너무 잘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좌익은 분열한다. 이후로 계속. 지금까지.
당장 자신들의 황군이 패망하고 살아서 일본 본토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던 총독부와 조선 내 일본인들은 해방 직전 조선의 최고 지도자 중 하나였던 여윤형을 만난다. 그들의 안전한 귀국을 보장하는 대신 모든 치안과 행정을 넘겨받는 다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미군이 들어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굳이 도망가지 않아도 되었다. 미군은 일본인들을 숙청하기는커녕 옆자리에 앉혀 술을 마시고 요직에 그대로 등용하는 가 하면, 이미 풀뿌리 조직까지 갖추고 있던 좌익세력을 몰아내려 했다.
책에서는 그려지지 않지만 김동일의 이후의 삶이 어떻게 그려질지 감이 온다. 엘리트 지식인에 영어를 할 줄 알고 아버지는 부자다. 김상호와 김동일이 가졌던 기득권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또 답답해져 온다. 지금 살아있으면서 기득권을 가진 이들의 시작이 김상호와 김동일이었을 것이다.
“천지가 욕망에 싸여 있다.” (p.167)
그때는 천지가 욕망에 싸여 있던 시기였다. 지금도 그렇다. IMF이후 준비가 되기도 전에 천박한 자본주의의 바다에 빠진 한국인들은 온갖 물신의 욕망에 빠져 있다. 더 이상 옳고 그름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잘 되고 내 새끼가 잘 되면 그만이다. 정의? 자유? 평등? 그 따위 말 할 시간 있으면 토익공부 더 하고 공무원 임용 공부 더 하라고 한다. 5,60대들의 생각만이 아니다. 지금은 20대도 그런 생각을 한다. 철도노조의 파업이 귀족노조의 파업이라고 부르짖는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그대로 넘어간다. 그래서 20년을 죽어라 일해도 6천만을 겨우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를 향해 비난한다. 그런 사회다. 그런 시대다. 나는 1945년과 1950년을 살지 못했다. 그래서 책에서 그려지고 있는 것처럼 얼마나 크고 잔인한 욕망이 천지를 덮었는지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살고있는 2014년 대한민국의 천지도 천박한 욕망과 물신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침 뉴스를 보니 점점 피아노학원이 없어지고 있단다. 학부모들이 더 이상 피아노를 가르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피아노 학원 갈 시간과 돈으로 영어와 수학 학원 하나 더 보낸다는 것이다. 이제는 체르니30번 쯤은 기본으로 떼는 아이들이 없어질 것만 같다. 슬프다.
2권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