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길이 있다 - 김두식 인터뷰집
김두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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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 교수의 책을 여러 권 읽었다. 특유의 따뜻함과 소심함이 버물어진 그의 글은 부담 없다. 그렇다고 가볍지 않다. 「칼을 쳐서 보습을」이라는 책을 통해 양심적병역거부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 시킨 바 있다. 당시만 해도 양심적병역거부에 대한 이슈가 미미했었고 더군다나 기독교인으로써 그런 문제에 대해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터부시 되던 시기였다. 양심적병역거부에서 그치지 않고 기독교 평화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재미있고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이었다. 나도 대학 시절 기독교 관련 책을 많이 읽었는데 주로 외국 사람들이 쓴 책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의 신학교에 입학하는 신학생 대부분은 목회를 위해 입학한다. 기독교 사상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이들은 극소수다. 그런 와중에 목회자나 성직자도 아니고 평범한 신자가 쓴 책이 기독교 청년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입소문이 퍼지고 퍼져 꽤 많은 이들에게 읽힌 책이었다. 그리고「불멸의 신성가족」을 통해 대한민국 사법부가 살아온 구조와 카르텔을 폭로한다. 폭로라고 해서 탐사보도를 하는 언론인이 쓴 책처럼 그렇게 스펙터클 하지는 않지만 이 책 역시 일반인이 보기에도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쓴 책이라 사법구조와 그들의 행동방식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 책이다. 이후에는 괜찮아 시리즈 「불편해도 괜찮아」, 「욕망해도 괜찮아」는 누구나 생각하고 겪은 소소한 일상을 향한 김두식 교수의 따뜻한 시선과 때로는 날카로운 지적과 성찰이 담긴 책이다. 나는 괜찮아 시리즈가 가장 좋았다. 김두식 특유의 글 냄새가 나는 책이었다. 마치 딸아이에게 재미있는 이야기 하는 것처럼 그렇게 책을 풀어내 준다.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 이를테면, 인권과 성문제, 시대를 대표하는 욕망의 문제들이 주를 이룬다. 이후 그의 팬이 되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 반갑기도 했다. 우연찮게 김두식 교수가 진행하는 <라디오 책다방> 이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접하게 되었는데, 요즘 꾸준히 듣고 있다. 소설가 황정은씨와 함께 진행하는 방송인데, 유명한 작가들을 초대해서 그들의 책과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좋다.

 

이 책 「다른 길이 있다」는 벙커1에서 열린 북토크쇼를 먼저 듣고 구입해 읽게 되었다.

 

 

“인터뷰의 90퍼센트는 섭외라고, 나는 생각한다.” (p.8)

 

이 책은 한겨레에서 1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김두식 교수가 인터뷰를 연재했는데, 그것을 엮은 책이다. 인터뷰어로 나선 김두식 교수의 매력은 또 무엇일까 궁금해 하며 책을 읽었다. 이 인터뷰를 처음 기획한 한겨레 토요판은 김두식 교수를 인터뷰하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썼는데, 계속 거절을 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김두식 교수가 한겨레 토요판에 자신이 인터뷰어로 진행되는 인터뷰를 연재하기로 하고 인터뷰이들을 섭외하면서 예전에 자기가 토요판 관계자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인터뷰의 90퍼센트는 섭외다. 라는 말에 100% 동감한다.

대학 때 부전공 수업 중 동성애자에 관련된 주제가 있었다. 매체를 찾고 책을 찾아봐도 생생한 그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 없었다. 함께 과제를 맡았던 친구들과 오랜 시간 상의한 끝에 직접 동성애자를 만나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떻게 어떻게 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알게 되어 쪽지를 보냈다. 주말 저녁 약속 장소를 정하고 레즈비언 커플을 만났다. 1시간30분 정도 대화를 나눴는데, 정말 10권이 넘는 책을 읽고 몇날 며칠 동안 인터넷을 뒤지는 것보다 더 생생하고 리얼한 그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다른 동성애자들을 만난 다른 팀은 제대로 인터뷰가 진행되지도 않아 과제를 완전히 망쳐버리기도 했다. 물론, 복불복이라 우리에게 행운이 온 것이겠지만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는 정말 중요한 문제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남자들은 군대에서 나는 괴롭히는 놈은 꼭 하나씩 있다. 반드시 있다. 반대로 나를 도와는 사람도 꼭 하나씩 있다. 반드시 있다. 그래서 정말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중요하다.

김두식 인터뷰의 특징은 최대한 편안하게 말을 들어주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꼰대를 싫어한다. 중년들도 노년들의 꼰대를 싫어한다.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꼰대가 된다면 슬픈 일이다. 내 개인적으로 어른과 꼰대를 구분 짓는 기준이 있다. 어른은 들으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고 꼰대는 말하고 싶은 의지만 있는 사람이다. 다소 투박한 기준이지만 의외로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정말 좋은 어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어떤 분인지, 정말 이상한 꼰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다. 어김없이 저 기준에 들어맞는다.

김두식 인터뷰는 최소한 꼰대들의 말잔치는 아닌 것 같다. 인터뷰이를 최대한 편안하게 해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사람이다. 변영주 감독과 함께 진행한 이 책의 북토크쇼에 잠시 출연한 한겨레 토요판의 고경태 기자는 김두식 교수를 가리켜 ‘소심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준비가 철저하며 마감 한번 어긴 적 없는 최상의 인터뷰어’라고 표현했다. 작가를 인터뷰하게 되면 그 작가의 작품들을 거의 찾아보고 그 중에서도 가장 팔리지 않은 작품을 꼼꼼히 살펴 인터뷰 초반에 그것에 대한 언급을 툭툭 던지면 인터뷰이가 마음 문을 활짝 열게 된다고 했다. 그만의 노하우이기도 하지만 성실함이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질문을 던지거나 인터뷰이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그런 인터뷰도 재미있기는 하지만 나는 김두식 스타일의 인터뷰를 더 좋아한다. 따뜻하고 배려가 있는, 그러면서도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한 인터뷰 말이다.

 

책의 제목처럼 이렇게 하수상한 때에 뭔가 화두가 되고 대안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사실 별다를 것은 없었다. 각계에서 자신만의 색깔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지 딱히 다른 길을 제시해 줘서 이 책을 읽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빼앗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래도 평소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의 인터뷰도 많았고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도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현실 정치 10년, 할 만큼 해봤지만 내가 졌다.” (p.61)

“왜 환멸을 느끼겠어요? 정치는 흥미진진하고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활동이에요.” (p.62)

 

2008년 유시민이 대구 수성구에 총선 출마를 했다. 미친 짓이었다. 유시민 하면 열혈 노빠, 노무현이 오른팔, 왼팔, 싸가지 없는 국회의원 등등 팬보다 안티가 많은 정치인이었다. 그런 그가 대구, 대구중에서도 ‘대구의 강남’으로 불리는 수성구에 출마했다. 나는 대번에 미쳤다고 생각했다. 내가 결혼 전 혼자 살던 동네가 그 동네였다. 아무리 그가 대구에서 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만만하게 찍어 줄 대구사람들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낙선했다. 하지만 30%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최초라고 했다. 대구에도 뭔가 희망의 조짐이 보인다고 들썩였다. 그러나 낙선은 낙선이다. 이후 진보정당에 몸담던 그는 작년 돌연 직업 정치인의 길을 마무리했다. 그를 열렬하게 지지하거나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의 정치판에 반드시 있어야 할 정치인이라 생각했던 터라 그의 은퇴 소식에 적잖이 놀랐는데, “할 만큼 해봤지만 내가졌다.”라는 그의 말을 글로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었다. 이제는 그를 놔줘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치인을 무작정 싫어하거나 기피하시면 안 돼요. 모든 정치인이 나쁜 사람도 아니고 저질도 아니에요. 정치인을 그렇게 보이게 하는 구조가 있는데 그 구조가 바뀌기 전에는 정치가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p.72)

 

유시민 만큼 말 잘하고 논리적이며 토론을 잘 하는 정치인을 본 적이 없다.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국회의원 선서 당시 신선한 복장으로 화제가 되었다. 물론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 세력은 십자포화를 날렸다. 유시민이 정치인을 싫어하지 마시고 그 구조를 봐주세요. 라고 이야기하면 또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끝까지 지 잘났다고 하네. 어유 싸기지~’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더러운 거야. 정치는 도저히 바뀌지 않는 거야. 정치에는 손도 담그지 말아야 해. 정치에 관심 갖는 시간에 다른 걸 해. 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하는 구조가 존재한다. 정치가 정말 중요하고 살가우며 당장 내 생활과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친구 같은 존재라고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무조건 적인 정치 혐오를 심는 구조가 반드시 존재한다.

이런 얘기조차 국회에서 하는 국회의원이 이제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그는 보수 진영보다 같은 편에게 할 말이 많았습니다. 운동권 출신에게는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말을 하기 바쁘며, 남을 평결하고, 진리를 독점한 듯 독선적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반성했습니다.” (p.131)

“흔히 386들은 자기가 잘못한 거는 말 안 하고 고생한 무용담만 얘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옛날에 뭐했는지가 뭐가 중요해요. 지금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하죠.” (p.339)

 

여성 운동가 유시주씨와 이진순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왜 이런 이야기는 꼭 여성들의 입에서 나올까?’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가장 진보적이고 평등적이라고 생각이 되는 운동권

안에서도 남녀차별이 엄연히 존재했고, 그들이 기성세대가 된 뒤에는 앞서 말했듯이 어른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꼰대가 되어 있었다. 언제가 자신들의 20대만 추억하며 ‘그때는 그랬었지, 요즘 젊은 애들은 정말 행동하지 않아’라고 이야기 한다. 이런 이야기는 여성들에게서 나온다. 운동권 출신 386남성은 어느새 꼰대가 되었다.

 

 

재작년 파리에서 전 세계 <지큐>편집장들이 다 모였는데, 독일 편집장이 제 옆에서 ‘한국<지큐> 너무 좋아. 스타일 좋고 불가능한 게 없어 보여’라고 하기에 제가 그랬어요. ‘난 이미 알고 있어. 하지만 난 독일 <지큐>안 봐. 넌 한국말부터 배워야 해.’ 이런 자랑 듣기 싫죠?” (p.163)

 

<GQ>의 편집장인 이충걸의 호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몇 번 GQ를 본 적은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나와는 다른 세계의 옷과 자동차와 각종 제품이 난무하고 있어 어지러웠다. 당연히 잡지에 실린 글은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 나는 잡지는 사진만 보는 매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잡지 에디터, 편집장 이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김두식 교수가 만난 이충걸씨는 정말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으로 보였다. 아무리 세상이 나를 비아냥대고 아무도 날 알아주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나를 세우고 나를 품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재수 없고 싸가지 없어 보일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나를 지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이충걸씨는 프로페셔널이다. 단지 잡지 편집장 자리만 꿰차고 앉아 여러 명의 에디터를 못살게 구는 상사가 아니라 에디터의 글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그 지적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잡아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에디터가 가져 온 글을 집어 던지며 “뭐 이따위야! 다시 써와!”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충걸 편집장은 “요는 연결형 어미이고, 오는 종결형 어미잖아!. 시제가 일치해야 하는데 어긋나잖아!”(p.167)라고 지적을 한다고 한다. 에디터들에게는 악마일 수 있지만 결국 그들의 능력을 이끌어 내는 것은 편집장, 이충걸이다.

그의 인터뷰에는 “남루하지 않는”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간지나는 잡지의 편집장 아니랄까봐 남루함을 가장 경계하는 듯 보인다. 남루하지 않다는 것이 단순히 멋만 내고 외모에만 신경 쓴다는 것이 아님은 책을 읽으면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내가 나를 더 존중하고 내가 존중받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솔직히 이 책은 김두식 교수의 이전 책들보다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의 특유의 글 냄새도 최대한 배제한 것 같다. 피식 웃으며 ‘맞아, 맞아’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었다. 정말 이 책에서는 인터뷰어로 최선을 다한 것 같다. 그것 또한 김두식 교수가 가진 매력일 수 있지만 나는 원래 그의 색깔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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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빛나는 순간 - 르네상스를 만든 상인들
성제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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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챔피언스리그라는 축구 경기와 플레이스테이션에서 구동되던 FIFA축구 게임을 통해 유럽의 도시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생전 가보지 않을 수많은 도시들을 마치 옆 동네 부르듯이 친근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중·고등학교시절 아무리 들어도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수학시간과 물리시간에는 사회과부도와 지리과부도를 꺼내놓고 온갖 지도들을 탐독했었다. 주로 좋아하던 축구선수들이 뛰는 리그는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였고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뛰는 팀의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보고(그 경기가 새벽3시나 4시에 중계되더라도) 게임에서는 그 팀으로 유럽을 재패했다. 유럽의 각국의 축구팀은 자국의 리그경기 뿐만 아니라 유럽축구연맹(UEFA)이 주관하는 리그에도 참여한다. 내가 좋아하고 응원하는 팀이 UEFA리그에 출전하면 당연히 TV로 시청했다. 그리고 당연히 게임에서도 빼놓지 않고 전 유럽을 돌아다니며 경기를 치렀다.

이 책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의 배경이 되는 도시는 이탈리아의 피렌체다. 피렌체에는 AC피오렌티나 라는 축구팀이 있다. 피오렌티나 하면 전설적인 축구선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바로 떠오른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공격수로 활약한 선수이다. 피오렌티나의 팬들이 가장 사랑한 선수이기도 하고 자신의 팀 피오렌티나에 대한 공헌도와 충성도가 무척 강했던 선수였다. 유럽 축구팬이라면 많이 알고 있을 일화인데, 9년 동안 피오렌티나에서 뛰던 파티스투타는 자신의 팀 피오렌티나가 1부리그에서 2부리그로 강등되었음에도 타 1부리그의 팀으로 이적하지 않고 슈퍼스타지만 팀에 남아 뛰게 되었다. 이후로 그는 절대적인 팬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결국 1부리그 명문팀 AS로마로 이적해 친정팀 피오렌티나를 상대로 일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제는 상대팀의 팬이된 친정팀의 팬들을 향해 변함없는 애정을 표시하고 친정팀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은 후 세리모니를 전혀 하지 않은 채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인터넷을 검색하면 바로 그 장면을 볼 수 있다.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고 있는 지금 나는 피렌체라고 하면 바티스투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피렌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바티스투타 만큼은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 메디치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이 중세 피렌체를 어떻게 재편하고 만들었는지에 대한 것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메디치 가문의 힘은 부유한 상인들과의 연대가 아니라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메디치 가문을 영속시킬, 시민 공동체를 중시하는 가치관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p.131)

“오랫동안 피렌체 자치정부를 장악해오면서 부자들의 이익만을 고려했던 신흥상인들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메디치 가문의 수장 코시모를 경계했다. 그들은 코시모를 자신들의 정부를 전복하려는 혁명가로 보았다.” (p.139)

 

중세 이탈리아는 여러 개의 도시국가로 나뉘어 있었다. 그중 피렌체는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다. 책에서 설명하는 신흥상인들은 지금으로 봐도 어지간한 중견 기업 이상의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피렌체는 다른 도시국가들과는 달리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 있었다. 종교와 정치가 완전하게 겹쳐져 막장도 그런 막장이 없는 스토리를 역사책에 남긴 보르지아가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제레미 아이언스가 선과악의 모호한 경계를 연기로 그려내는 천연덕스러움이 빛을 발하는 드라마 <더 보르지아>의 내용은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의 제왕>에서 코믹스럽게 그려내는 막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막장이다. 그런 현실적 분위기에서 적어도 피렌체는 어느 정도의 순수함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책에서도 분명히 지적하고 있지만 메디치가가 기존의 기득권의 목소리보다 일반 피렌체 시민과 그 공동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했던 이면의 이유는 적자라는 태생적 한계에 있다. 이미 오랜 기간 피렌체의 기득권으로 모든 도시의 기능을 통제하고 구조화한 부유한 신흥상인들 틈에는 감히 낄 수 없었던 것이다. 돈도 그들만큼 있고 당시 신흥상인들이 하던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지만 피렌체의 패권을 잡기 위해서는 신흥상인들, 피렌체의 기득권의 눈에 혁명이나 전복으로 느낄만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고 메디치가는 그것을 잡아챈 것이다.

 

 

“다른 가문들 같으면 가장 먼저 선조들의 영혼이 안장된 기도실부터 장식했겠지만 코시모는 반대로 움직였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피렌체 자치정부의 권력을 이어받은 코시모는 피렌체 시민들의 새로운 신앙생활 중심지부터 신축하기로 결정했다.” (p.130)

 

책에서 메디치가를 다루기 전에 소개하는 다른 부유한 신흥상인과 가문은 도시의 수도원을 재건하는 데 있어 가장 우선순위에 둔 것이 본인들의 기도실이나 영묘 였다. 주교와 수도사들의 기도실보다 더 호화롭고 웅장하게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적으로 자신들의 주머니에서 나간 돈으로 만들고 고치는 작업이니 그들 손아귀에서 그림이 그려지고 설계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메디치가는 생각을 달리했던 것이다.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는 수도원과 종교시설을 새롭게 만들거나 기존의 것을 리인테리어 해놓고 어차피 가진 자들끼리, 기득권들끼리 회합하는 장소로 귀결하는 것을 지켜보는 시민들에게는 어차피 다른 세상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깨뜨린 것이 메디치가였다는 것이다. 피렌체 시민들이 기도하고 그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을 만들었다. 자기들 것이어야 하는데 없는 놈들, 비천한 이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되니 신흥상인들을 위시한 기득권의 눈에 메디치가가 얼마나 미웠을지 상상이 간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중세 유럽, 이탈리아의 부유한 상인들과 가문들은 수도원에 매달렸을까?

 

 

“막대한 부를 축적한 피렌체의 상인들은 현세에서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었다. 이들의 관심사는 사후 세계였다” (p.23)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는 칙령을 내려 신앙이 두터운 평신도들의 시신을 탁발 수도원 지하에 매장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것이 1244년의 일이다. 교황은 천국의 열쇠를 상인들에게 내주는 대가로 그들의 금고를 열 수 있게 된 것이다.” (p.24)

 

루터의 종교개혁 이전 시기다. 교황이라는 자가 천국의 열쇠를 부자들의 손에 쥐어 주고 돈을 받아먹은 것이다. 책에서의 설명처럼 부유한 상인들에게는 아쉬울 것이 없는 장사였다. 모든 것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들의 주요 수입원이던 고리대금업은 당시 교회에서 금지하고 죄악시 하던 일이었다. 아무리 좋은 저택을 짓고 유명한 화가를 데려와 최고의 작품을 내 집안에 그려 넣어도 고리대금업자라는 태생적 정체성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수도원을 짓고 수도원에 성화를 그려 넣고 수도원을 후원하는 길이 열리면서 그들의 죄마저 돈으로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메디치가는 보르지아 가문이나 피렌체의 기득권을 움켜쥐고 있던 신흥상인들보다는 분명 일반 시민들을 배려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해서 그들의 정체성이 변할 수 없듯이 메디치가도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누리며 더 오랫동안 그들의 기득권을 영위하려는 욕심마저 변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그대로 정체성이었다.

 

 

“이성을 되찾은 피렌체 시민들은 자신들의 피렌체의 황금시대가 아니라, 메디치 가문의 독재 치하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p.307)

 

피렌체의 시민들은 메디치가의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메디치가의 몰락과 공화국의 탄생, 그리고 재차 메디치가의 복권 등이 점철되면서 그 유명한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마키아벨리의 굴곡진 삶도 겹쳐진다.

사실 책에서는 그림 이야기가 많다. 주로 수도원의 천장이나 건물의 벽에 그려진 성화가 대부분이다. 메디치가의 집권 초기에는 성경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었고 이후 인문학자들의 유입으로 인해 그리스, 로마의 신화가 부활하면서 다비드 상 같은 성(聖)인들과 성경의 인물들이 그려졌다. 그림의 형태와 특징은 달라졌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았던 특징은 자신들을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가문의 수장을 성인들과 성경의 인물들 틈에 끼워 그려 넣고 가문의 상징물을 그려 넣었다. 내 돈 주고 그리는 그림이니 이 정도는 당연히 용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인지 수백 년이 지나도록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기억하기를 바라는 희망이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개인적 욕심이었음은 틀림없다. 어찌됐건 간에 중세 도시국가의 부자들이 만들고 그려 넣은 수도원과 그림은 현재까지 전해진다. 여유가 된다면 직접 피렌체로 날아가 책에 등장하는 수도원의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오백년도 더 지난 후세들을 위해 남겨 준 정성에는 감사를 표한다.

 

아직도 AC피오렌티나의 팬들은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를 기억할 것이다. 자신들의 팀을 위해서 헌신했고 더 좋은 팀을 찾아 떠날 수 있었음에도 그는 피오렌티나에 남았다. 아직까지 메디치가가 피렌체의 가장 힘 있는 세력이라면 그들의 대저택에 바티스투타의 친필 사인이 적힌 피오렌티나 유니폼은 당연하고 데뷔 골과 마지막 골을 넣었던 축구화와 축구동도 멋지게 유리관 속에 소장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매년 바티스투타가 피렌체의 메디치가를 방문해 메디치가의 수장과 식사를 하고 축구 경기를 함께 하는 이벤트도 열리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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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폭력의 자유

 

 

 

 

 

 

 

 

 

 

 

 

 

해직기자 김종철, 한겨레 창간 멤버로 유명한 김종철 기자의 책입니다. 한국의 현대사와 언론사에 관심이 많은 제게 <폭력의 자유>는 베스트5 중에서도 넘버원입니다. 일제시대부터 한국의 언론에 보여온 역사에 대해 화장이나 뽀샵하나 없이 민낯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소 불편하기도 하고 열불이 올라와 책장을 덮기가 일쑤였으나 찬찬히 언론의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여전히 한국의 언론환경이 균형을 잃은 상태이고, 언론자유지수가 50위 밖으로 밀려 났음에도 '그 정도면 선방했다.'의 인식을 가진 정권에서 살고 있는 지금, 이런 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펜을 쥐고 있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키도드를 쥐고 있습니다. 그들의 펜끝과 손가락 끝에서 세상을 만들고 조종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대중에게는 폭력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마음대로 폭력을 휘두를 자유가 있다면 대중에게도 맞지 않을 자유, 저항할 자유, 보지 않을 자유, 믿지 않을 자유도 있는 것입니다.

 

 

 

2. 일베의 사상

 

 

 

 

 

 

 

 

 

 

 

 

 

한 동안 이슈메이커도 톡톡히 역할을 해낸 일베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과 심층적인 해석이 담긴 책입니다. 단순히 '일베 저런 거 상종도 하지마'나 '일베니까 다 맞아'라는 이분법적인 생각을 버리고 일베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연유했고 어디에까지 이르렀는지 파고 들어가는 책입니다. 기존의 연구나 리서치가 충분치 않기 때문에 저자가 직접 알아보고 찾아보고 들어가서 부대끼며 쓴 책입니다. 일본의 재특회를 위시한 극우 단체와는 또 다른 특성을 가진 일베의 생리를 추적하고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일베를 다소 과도하게 인정하는 것은 아닌 가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일베에는 사상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책에서 일베의 사상을 찾아내 소개하는데 100%동의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한때 반짝하다가 또 금세 잊혀질 현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3. 공범들의 도시

 

 

 

 

 

 

 

 

 

 

 

 

 

표창원 교수와 인터뷰어 지승호의 인터뷰를 엮은 책입니다. 재작년 대선 직전 경찰대 교수직을 버리고 과감히 정치적 커밍아웃을 한 표창원 교수에 대한 열기는 여전히 뜨거운 것 같습니다. 정치적 지향이 어떻든지 간에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안정되고 편안한 자리를 박차고 나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아직 우리 사회는 박수는 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습니다. 한때의 객기로 치부하기 마련입니다. 지난 대선 이후 수많은 책이 쏟아졌습니다. 이래서 이렇다. 저래서 저렇다. 하고 싶은 말이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왜 대선 전에는 그렇게 조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선 직후에는 또 그렇게 반짝하다가 지금은 또 잠잠합니다. 표창원 교수는 지금도 열성적으로 뛰어다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불러주는 곳에 가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독려하고 함께 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이 흐뭇합니다. 가까이 본 적은 없지만 응원하는 많은 분들을 대신해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4. 우상의 추락

 

 

 

 

 

 

 

 

 

 

 

 

 

프로이트, 뭐 누구나 알고 있는 너무나도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관심이 없다보면 저처럼 프로이트에 관한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프로이트 평전이나 그가 직접 쓴 책보다 먼저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적 글쓰기가 담긴 이 책을 읽은 것이 오히려 더 프로이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해주었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하고 많이 알려진 인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혀 몰랐는데 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먼저 소개받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미쉘 옹프레는 결코 우상이 된 프로이트를 끌어 내리려는 의도는 없다고 하지만 제가 읽기에는 그런 의도가 다분해 보였습니다. 프로이트의 저작부터 말년의 행동까지 자세하게 기록하면서 '자~ 이런 사람이다. 그런데도 프로이트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옹프레씨가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저같은 프로이트 문외한에게는 옹프레씨의 비판적 접근이 오히려 프로이트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니까요.

 

 

5. 지구의 정복자

 

 

 

 

 

 

 

 

 

 

 

 

 

개인적으로는 가장 관심이 없고 잘 모르는 분야인 과학 분야의 책입니다. 함께 <인문/사회/과학/예술>분야에서 활동하신 분들 중 어떤 분들은 인문/사회 분야에는 별로 관심없는데 계속 인문/사회 책들만 선정되어 불만이 있으신 것 같던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분들의 심정을 공감해보려는 의도에서 정말 이 책을 정성을 다해 읽었습니다. 그런데 정성을 다 할수록 더 어렵고 자꾸만 잠이 오고... 최재천씨의 해설을 읽고서야 대충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었고 저자가 기존의 통념을 완전히 전복시킨 유전학계에서는 혁명적인 사건의 당사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구의 정복자가 인간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가장 큰 소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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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 문학과 예술로 읽는 서울의 일상
류신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지난여름 휴가를 서울로 떠났다. 모두들 산으로, 강으로, 해외로 떠나는 여름휴가를 나와 아내는 2년 째 서울로 떠났다. 한 여름 휴가철 서울은 명절의 그것만큼은 아니지만 조용하고 덜 분주하다. 무엇보다 값이 싸다. 모두들 떠나는 시기라 서울은 자연스럽게 비수기가 된다. 올 여름 ‘여름휴가 In 서울’의 숙소는 강남역 근처 레지던스로 정했다. 대구에서 KTX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 강남역까지 지하철을 이용해 이동한 후 강남대로가 펼쳐진 지상으로 나왔다. 한 여름 땡볕은 대구나 서울이나 다르지 않았다. 강남대로를 등지고 숙소를 찾아 들어선 첫 번째 골목에서 무시무시한 괴물 같은 건물을 마주했다. 30년 넘게 살았지만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아무런 간판도, 아무런 표시도 없는 거대한 유리 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있는 빌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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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외벽은 하나같이 유리였다. 거대한 사각 부빙처럼 빗속에서 번쩍거렸다. 길 건너편에 삼성전자 사옥과 삼성생명 빌딩이 코발트블루 빛을 머금고 검은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었다.”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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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어떤 건물인지 몰랐다. 어릴 때 친구들과 농담으로 “야, 야! 청와대 지하에 태권브이가 있대~ 그래서 김일성이 쳐들어오면 청와대가 지붕이 반으로 빙~하고 열려서 태권브이가 출동한대~”라고 이야기 했던 그런 광경이 갑자기 떠올랐다. 내게 그 빌딩은 흡사 불시착한 외계 우주선 같기도 하고, 지구 내부에서 돌출된 거대한 암석 같기도 했다. 진귀한 광경에 반은 놀라고 반은 무서워 고개를 들었는데 한 여름 뙤약볕에 눈이 부셔 빌딩의 끝을 볼 수가 없었다. 마치 ‘네 까짓 게 어딜 쳐다 봐!!!’라고 비웃는 것처럼 뙤약볕은 그 강도와 세기를 더했다. 뭐 저런 희한한 빌딩이 다 있어 라고 애써 집어먹은 겁을 내리 누르며 숙소를 찾아 들어갔다. 저녁나절 다시 그곳을 지나며 살펴보니 삼성전자 서초사옥이라 했다. 저녁에 봐도 그 빌딩은 기괴하고 낯설었다. 삼성이라는 재벌 집단에 대한 개인적 감정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건물 자체가 타오르는 사우론의 눈을 품은 모르도르를 보는 듯 했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관광객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었다. 나는 더 기괴했다.

이 책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삼성전자 사옥을 묘사하는 부분을 읽는데 그 때 느꼈던 기괴함이 다시 물일 듯 나를 압도했다.



“나는 서울에 살지 않는다.”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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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서울에 살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도 나도 서울을 떠나 살 수 없다. 공간적으로는 서울에 있지 않지만 저자도 나도 서울을 지향한다. 지양하지 못하고 지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회·정치·문화적으로 다각도로 해석할 수 있지만 크게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에 가면 많고 크고 다양하다. 어떻게 해서든지 IN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려고 용을 쓰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서울을 이상향으로 추구하는 슬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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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눈으로 서울의 아케이드를 탐색하고 그가 머금었을 사유이미지를 따라서 그려 보려고 애썼다.”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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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쩌면 발터 벤야민에게 바치는 오마쥬다. 벤야민의 대작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얼마 전 재발간 되면서 나의 위시리스트에도 올려두고 있지만 2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을 읽을 기세도 10만원이 넘는 돈을 쾌척해 살 용기도 없어서 뭉그적거리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 류신씨 덕분에 벤야민의 아케이드에 대한 심미적 해석을 소개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는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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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 전화 회의론자였던 구보가 귀국 후 최신 스마트폰을 구입한 것도 견디기 힘든 외로움 때문이었다.” (p.23)

“진보적 정치 이상을 품고 있지만 그 뜻을 실천하기에는 인성이 심약하고 기질이 우울하다. 지리멸렬한 삶에 덧없음을 느끼다가도 현실을 냉소하고, 소심하면서 과대망상에 시달린다. 디지털 중독자이면서 디지털 반성자다. 문명 비판론자이면서 도회적 감수성을 향유하는 도시의 아이다.”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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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구보라는 인물의 1인칭 시각에서 서울을 배회하며 아케이드로 가득찬 서울을 열거한다. 저자는 자세하게 구보를 설정하는데, 지금 시대를 사는 청춘을 잘 묘사하고 있다. SNS와 각종 게시판에서는 키보드 워리어로 활동하지만 당장 짱돌을 들고 거리로 나가거나 하다못해 촛불이라도 한 번 들 용기도 성실함도 없다. 현실에 초연한 듯 말하고 글을 쓰고 생각하고 고민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라고 변명하며 어떤 제안이나 설득조차 시도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끄적인 글을 보고 출판사에서 출판 제의를 하지 않을까, 담배 한 갑사며 심심풀이로 산 삼천 원짜리 로또 종이가 1등, 아니 2등에 당첨되지 않을까 과대망상에 빠져 자위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물질문명이 가진 천박함과 문제에 대해 당장 A4를 가득 채워 말 할 수 있지만 여전히 그 물질과 문명이 주는 호화로움에서 벗어날 생각은 없다.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이며 찌질한 현대인의 모습이 바로 구보다. 구보는 아침에 거리로 나와 저녁에 들어간다. 집에 틀어박혀 자신만의 세계에서 유영하다 나온다.

맞다. 현대인은 외롭다. 외로워 몸서리를 치면서도 외롭지 않다고 한다. 스마트폰도 있고 인터넷도 있고 TV도 있고 친구도 있고 가족도 있다고 핏대를 세우지만 외롭다. 외로워 치를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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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는 교통수단의 위험뿐만 아니라 변덕스러운 비바람도 차단하여 궂은 날씨에도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거나 안락한 기분 속에서 진열된 상품을 구경할 수 있는 안전지대를 확보한다.”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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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는 서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기 시골에서도 아케이드가 있다. 들판에 덩그러니 놓인 버스정류장도 아케이드다. 재래시장에 들어 가 고개를 들면 아케이드가 펼쳐진다. 당장 내가 리뷰를 작성하고 있는 내 방 창문 건너편 초등학교에도 아케이드가 보인다.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공중 복도를 만들었는데 지붕이 초록색 아케이드로 덮여 있다. 관심을 기울여 찾아보면 아케이드는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 아케이드가 19세기 초에 처음 등장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중세 유럽에는 상하수도 체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각 가정에서 나오는 배변을 처리할 수 없어서 그냥 창밖 거리로 던졌다. 그래서 언제 거리를 걷다 남의 똥오줌을 맞을 위험이 있어서 여성을 도로 안쪽으로 걷게 하는 에티켓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만약 아케이드가 몇 백 년 미리 발견되었다면 그런 에티켓은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거리를 다니다 똥오줌에 맞을 위험도 없고 말이다.

어쨌든 19세기 초에 처음 등장해 전성기를 구가하던 아케이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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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에 처음 등장해 전성기를 구가하던 아케이드는 1867년 파리 만국 박람회의 성공 이후 점차 쇠락하기 시작했다. 상업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면서 급격하게 늘어난 생산품을 진열하고 판매하기에도, 급증한 대중의 소비량을 감당하기에도 아케이드의 면적은 턱없이 부족했다."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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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를 대체한 것이 백화점이다. 아케이드보다 훨씬 작은 면적으로 더 많은 생산품을 진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아직도 아케이드는 산재해 있는 것을 볼 때 아케이드는 몰락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구보의 시선에서 발견되는 서울시내의 아케이드는 내가 본 것도 있고 보지 못한 것도 있다. 느릿느릿 하지만 심미적이고 문학적인 구보의 시선을 따라 서울 아케이드 구경을 한 바퀴 하고 나니 머리가 좀 어지러웠다. 일단 삽입된 각종 책의 구절이 너무 많다. 정말 많아도 너무 많다. 구보의 독서량이 엄청난 것인지 자자인 류신씨의 독서량이 엄청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문학에서부터 철학에까지 각종 책의 구절이 소개되는데, ‘이거 너무 많은 거 아니야’생각될 정도다. 처음 책의 앞부분을 읽을 때에는 메모를 했는데 너무 많아 중간에 포기했다.

그렇다 보니 책의 중심 흐름인 구보의 시선보다 이런 삽입된 다른 책의 구절들에 더 눈이 가기도 했다.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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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가 우르르 사람들을 토해 낸 빈 배 속으로 구보는 인파에 휩쓸려 떠밀려 들어갔다. 사람들이 ‘네모난 상자에 빽빽이 들어찬 시든 귤처럼, 혹은 나무 궤짝에 겹겹이 줄 맞춰 누운 죽은 갈치처럼’”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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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우와 정말 좋다.’라는 문장을 발견하면 갑자기 구보에게서 멀어 진다. 저 문장이 발췌된 책을 찾게 되고 그 책을 쓴 사람을 찾게 된다. 그렇게 한참 뒤적이다가 다시 구보로 돌아오고 나면 ‘어디까지 했더라?’

어쨌든 구보는 자신이 명명한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위해 서울 시내를 배회한 후 자신만의 세계인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2년 째 여름휴가를 서울로 가는 나로서는 두 번의 여름 휴가 때 미처 보지 못한 서울의 모습을 책을 통해, 구보씨의 시선을 통해 가이드 받은 것 같았다. 올 여름에도 서울로 간다면 강남대로 뒤편 골목에서 기괴하게 마주했던 아케이드 건물 말고도 다른 서울 아케이드에 관심을 가져 볼 작정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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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체포하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시인을 체포하라 - 14인 사건을 통해 보는 18세기 파리의 의사소통망
로버트 단턴 지음, 김지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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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RO조직의 조직원이라 하던 사람들이 “내란음모죄”로 실형을 받았다. 검찰이 내놓은 녹취록에는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도 섞여 들렸다고 하는데 그런 곳에서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체제와 국가를 전복할 만한 이야기들이 오갔을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아직까지 70-80년대 구리고 촌티 나는 운동방식과 그들만의 언어와 위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고 당연히 없어진 줄 알았던 “내란음모죄”라는 국가보안법상 범죄 항목이 버젓이 21세기에도 통용되는 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사건의 초기 녹취록이 발견되고 언론에 기사화 된 편집된 부분만 들어본 후 사람들은 열폭했다. 진보와 보수, 전라도와 경상도, 5-60대와 3-40대는 막론하고 모두들 욕하기에 바빴다. 자기들 연금이나 복지법안을 상정할 때를 제외하고는 모두 싸우는데 주력하는 여당과 야당도 합심해서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위해 뛰었다. 보수언론과 진보언론도 앞 다투어 심해에서 레비아탄을 끌어 올린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누구하나 브레이크를 거는 사람이 없었다. 대선 전 지금의 대통령에게 무시무시한 막말을 쏟아내고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의 과거를 농락하던 그 여자를 함께 끌어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을 것이다. 한꺼번에 싹을 잘라버리는 이런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한때 저들과 한 지붕 밑에서 진보네, 개혁이네 손잡고 생활했던 사람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당내 부정선거 논란으로 아비규환이 되고 당 안팎은 물론 그나마 진보정당에 대한 동정을 가지고 있던 일반들에게 마저 싸늘한 비판을 받아야 했던 사태에서 발을 뺄 수 있었다. ‘저들과 나는 완전히 다르다.’라고 만천하에 소리 지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건 진보정당과 대중과의 괴리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시절 원내에 들어가 법안을 상정할 수 있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내란음모 이런 키워드로 한 데 묶여 ‘저런 똑같은 빨갱이 놈들’로 치부되고 있다. 단순히 오랜 시간 보수여당을 지지한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들도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와 신뢰, 관심 자체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것이 너무 안타깝다. 수십 년 진보정당을 위해 싸워 온 그들의 노력과 피와 땀과 눈물이 ‘내란음모’라는 거대한 보자기에 한 데 싸여 내동댕이쳐졌다. 앞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다시 원내로 진출한 진보정당이 나올지 알 수 없다.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너무 암담해 추측조차 하기 두렵다.

 


“루이 15세를 비방하는 시를 낭송한 혐의로 한 의대생이 체포되면서 14인 사건이 시작되었다.” (p.7)

 

18세기 중반 프랑스에서는 황제를 비방하는 시를 낭송한 혐의로 한 의대생이 체포되었다. 지금보다 수백, 수천 배는 더 막강한 권력을 집중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황제를 향해 조롱 한 것이다. 이 사건은 한 의대생을 체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와 관련된 14명을 추가로 체포하는 줄줄이 비엔나소시지 같은 사건으로 이어졌다.

 


“대신들이 백성들을 약탈하고 왕국이 지옥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루이는 자신의 쾌락에만 빠져 있다.”

매춘부 사생아가

궁정에서 출세하네.

사랑에서나 술에서나

루이는 손쉬운 영광을 바라네.

아! 저기 그가 있어, 아! 여기 그가 있네

근심걱정 하나 없는 그 사람. (p.78)

 

온갖 방법으로 제 몫을 챙기기 위해 있는 대로 백성을 약탈하는 대신들이 판을 치던 세상이었던 가 보다. 왕궁에 갇혀 여전히 그의 선조 태양왕이 누렸던 호화와 사치에 눈이 먼 황제는 시국을 제대로 돌아볼 눈이 없었다. 왕국이 몰락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여전히 근심걱정 하나 없이 자신의 쾌락에만 몰두하는 황제. 어쩌면 수십 년 후 프랑스를 뒤흔든 대혁명의 전초가 이미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패러디, 풍자는 기본적으로 약자가 강자에게 하는 행위다. 1:1로 붙을 수 없는 힘의 역학관계에서 맞대어 치받을 수 없으니 뒤에서 소심하게 놀리는 것이다. 최소한 그 힘의 역학관계를 인지하고 있는 강자라면 허허허 하고 웃어넘기면 될 일이다. 그런데 18세기 프랑스에서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그것은 통용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이석기씨와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에 대한 혐의가 얼마나 중차대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란음모’라는 죄명만으로도 무시무시하다. 국가를 전복하고 체제를 무너뜨릴 의지를 담은 것이 ‘내란음모’ 아닌가! 그런데 지난 이명박 정권 시절 <가카새끼짬뽕> 이라고 게시물을 올린 판사가 사직을 하게 되었고 올 초 변호사 개업조차 잠정보류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현역 육군대위가 이명박씨를 비난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사문화된 <상관모욕죄>가 적용되어 전역을 하는 일도 있었다. 블루하우스에서 끌어내어 단두대로 끌고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저 뒤에서 비꼬고 조롱하고 풍자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끌어 내렸다. 최소한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강자들은 약자들의 소심한 하소연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꼼꼼함을 선보이시고 있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루이15세 황제를 비난한 시를 낭송하고 전하고 쓴 사람들의 죄가 어떤 것이고 그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에 있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 프랑스에서 어떻게 그 시가 폭발적으로 전해졌는지에 주목 한다.

 


“시는 쪽지에 필사되어 건네졌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베껴 쓰고 암기하고 낭독했다. 그리고 지하 출판물로 인쇄되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들에 맞춰 노래로 불리기도 했다.” (p.17)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전할 수 있는 도구가 너무나 많다. SNS의 대중화는 여론의 형성과 전파를 가히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인터넷의 각종 게시판과 개인 블로그나 개인 홈페이지 등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전파하고 선전·선동(그러나 아무 말이나 막 해서는 곤란하다. 언론자유지수가 뭐 세계 50몇 위라나……. 자기검열이 중요하다. 아무 말 막 하다가 고소·고발을 당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250년 전 프랑스에서는 어떻게 황제를 비방하는 시가 전해졌을까? 저자는 시가 전해진 형태에 주목한다. 필사되어 건네졌고, 더 많은 사람들이 베껴 쓰고 암기하고 낭독했으며,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노래를 개사해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전해진 형태보다 당시의 분위기에 주목한다. 지금도 인터넷 청원이나 서명운동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주로 정치적인 주제가 많다. 아무리 떠들고 SNS 상에서 청원과 서명을 요구해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소치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자 그에 대한 청원이 불일 듯 일어났고 이미 100만 명을 넘겼다고 한다. 더 많은 대중의 기저에 관심이 되는 사항이었던 것이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문제는 이미 1년 이상 지지부진 하고 있고, 이미 철 지나고 별 관심 없는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단지 클릭 몇 번 하는 것으로 서명에 동참할 수 있지만 행동으로 이끌어 내지 못하는데 김연아 선수의 경기에는 모두가 관심을 기울인다. 재미있다. 물론, 김연아 선수의 경기와 결과에 대해서 연일 TV에서 말을 쏟아내는 것도 금세 100만 명의 서명을 받아내는데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지만 어쨌든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다. 클릭 몇 번으로 국보급 보물인 김연아 선수의 억울함(본인은 억울한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을 풀 수 있다면 기꺼이 동참한다.

250년 전 프랑스에서도 참다 참다 못한 사람들의 공분이 시와 노래와 각종 인쇄물과 샹송에 실려 구체화 되고 대중화 되었다. 시기와 방법과 형태가 삼위일체를 이룬 것이다.

 


“시의 작법은 아주 단순해 누구라도 시를 지어 노래하고 옛 멜로디에 새로운 시를 입혀 유행시킬 수 있었다.” (p.79)

 

그리고 쉬웠다는 것이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시절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를 개사해 재미있는 노래를 친구들과 불렀던 경험이 있다. 아마 여자아이들의 이름을 넣어 놀리는 용도로 사용했던 것 같다. 고무줄놀이를 하는 여자아이들 옆에서 깐족대며 노래를 부르다 등짝을 후려 맞으면서도 낄낄 대고는 했었다. 250년 전 프랑스에서도 고귀한 문학가가 도저히 뜻을 알 수 없고 따라 낭송할 수도 없는 시를 지어 일반 백성들에게 하사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시를 지어 노래했고, 부르고 전했다.

 


“문화가 위에서 아래로만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도 흐른다는 점을 강조한” (p.229)

 

중세 유럽의 르네상스가 일반 백성들과 시민들에게 계몽을 선사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시혜성 교조주의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쏟아내는 것에는 귀를 기울일 시간도 없는 시민들은 먹고 사는 일이 더 시급했다. 18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여전히 문맹이고 여전히 밑바닥에서 처절한 일상을 소화하지만 낄낄 대며 황제를 조롱하고 그것을 전파하고 나만의 시와 노래로 재해석하는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은 1798년 프랑스혁명을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황제를 비방하는 시를 짓고 낭송한 사람들이 체포되는 일을 눈앞에서 지켜봤지만 삽시간에 퍼진 여론형성의 경험은 황제를 단두대로 끌어내리는 결과에까지 이르렀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과 세력, 조직도 이것에 주목했으면 한다. 현학적이고 이론적이고 고매한 글은 결코 대중의 귀를 열 수 없다. 더 이상 대중은 가르치고 계몽하고 선도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에 힘쓰지 말고 밑 빠진 독부터 허리 숙여 살피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이상 아무리 지지를 요구하고 관심을 요구한다 해도 헛일 일 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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