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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빛나는 순간 - 르네상스를 만든 상인들
성제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평점 :
UEFA 챔피언스리그라는 축구 경기와 플레이스테이션에서 구동되던 FIFA축구 게임을 통해 유럽의 도시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생전 가보지 않을 수많은 도시들을 마치 옆 동네 부르듯이 친근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중·고등학교시절 아무리 들어도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수학시간과 물리시간에는 사회과부도와 지리과부도를 꺼내놓고 온갖 지도들을 탐독했었다. 주로 좋아하던 축구선수들이 뛰는 리그는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였고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뛰는 팀의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보고(그 경기가 새벽3시나 4시에 중계되더라도) 게임에서는 그 팀으로 유럽을 재패했다. 유럽의 각국의 축구팀은 자국의 리그경기 뿐만 아니라 유럽축구연맹(UEFA)이 주관하는 리그에도 참여한다. 내가 좋아하고 응원하는 팀이 UEFA리그에 출전하면 당연히 TV로 시청했다. 그리고 당연히 게임에서도 빼놓지 않고 전 유럽을 돌아다니며 경기를 치렀다.
이 책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의 배경이 되는 도시는 이탈리아의 피렌체다. 피렌체에는 AC피오렌티나 라는 축구팀이 있다. 피오렌티나 하면 전설적인 축구선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바로 떠오른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공격수로 활약한 선수이다. 피오렌티나의 팬들이 가장 사랑한 선수이기도 하고 자신의 팀 피오렌티나에 대한 공헌도와 충성도가 무척 강했던 선수였다. 유럽 축구팬이라면 많이 알고 있을 일화인데, 9년 동안 피오렌티나에서 뛰던 파티스투타는 자신의 팀 피오렌티나가 1부리그에서 2부리그로 강등되었음에도 타 1부리그의 팀으로 이적하지 않고 슈퍼스타지만 팀에 남아 뛰게 되었다. 이후로 그는 절대적인 팬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결국 1부리그 명문팀 AS로마로 이적해 친정팀 피오렌티나를 상대로 일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제는 상대팀의 팬이된 친정팀의 팬들을 향해 변함없는 애정을 표시하고 친정팀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은 후 세리모니를 전혀 하지 않은 채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인터넷을 검색하면 바로 그 장면을 볼 수 있다.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고 있는 지금 나는 피렌체라고 하면 바티스투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피렌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바티스투타 만큼은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 메디치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이 중세 피렌체를 어떻게 재편하고 만들었는지에 대한 것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메디치 가문의 힘은 부유한 상인들과의 연대가 아니라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메디치 가문을 영속시킬, 시민 공동체를 중시하는 가치관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p.131)
“오랫동안 피렌체 자치정부를 장악해오면서 부자들의 이익만을 고려했던 신흥상인들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메디치 가문의 수장 코시모를 경계했다. 그들은 코시모를 자신들의 정부를 전복하려는 혁명가로 보았다.” (p.139)
중세 이탈리아는 여러 개의 도시국가로 나뉘어 있었다. 그중 피렌체는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다. 책에서 설명하는 신흥상인들은 지금으로 봐도 어지간한 중견 기업 이상의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피렌체는 다른 도시국가들과는 달리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 있었다. 종교와 정치가 완전하게 겹쳐져 막장도 그런 막장이 없는 스토리를 역사책에 남긴 보르지아가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제레미 아이언스가 선과악의 모호한 경계를 연기로 그려내는 천연덕스러움이 빛을 발하는 드라마 <더 보르지아>의 내용은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의 제왕>에서 코믹스럽게 그려내는 막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막장이다. 그런 현실적 분위기에서 적어도 피렌체는 어느 정도의 순수함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책에서도 분명히 지적하고 있지만 메디치가가 기존의 기득권의 목소리보다 일반 피렌체 시민과 그 공동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했던 이면의 이유는 적자라는 태생적 한계에 있다. 이미 오랜 기간 피렌체의 기득권으로 모든 도시의 기능을 통제하고 구조화한 부유한 신흥상인들 틈에는 감히 낄 수 없었던 것이다. 돈도 그들만큼 있고 당시 신흥상인들이 하던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지만 피렌체의 패권을 잡기 위해서는 신흥상인들, 피렌체의 기득권의 눈에 혁명이나 전복으로 느낄만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고 메디치가는 그것을 잡아챈 것이다.
“다른 가문들 같으면 가장 먼저 선조들의 영혼이 안장된 기도실부터 장식했겠지만 코시모는 반대로 움직였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피렌체 자치정부의 권력을 이어받은 코시모는 피렌체 시민들의 새로운 신앙생활 중심지부터 신축하기로 결정했다.” (p.130)
책에서 메디치가를 다루기 전에 소개하는 다른 부유한 신흥상인과 가문은 도시의 수도원을 재건하는 데 있어 가장 우선순위에 둔 것이 본인들의 기도실이나 영묘 였다. 주교와 수도사들의 기도실보다 더 호화롭고 웅장하게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적으로 자신들의 주머니에서 나간 돈으로 만들고 고치는 작업이니 그들 손아귀에서 그림이 그려지고 설계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메디치가는 생각을 달리했던 것이다.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는 수도원과 종교시설을 새롭게 만들거나 기존의 것을 리인테리어 해놓고 어차피 가진 자들끼리, 기득권들끼리 회합하는 장소로 귀결하는 것을 지켜보는 시민들에게는 어차피 다른 세상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깨뜨린 것이 메디치가였다는 것이다. 피렌체 시민들이 기도하고 그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을 만들었다. 자기들 것이어야 하는데 없는 놈들, 비천한 이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되니 신흥상인들을 위시한 기득권의 눈에 메디치가가 얼마나 미웠을지 상상이 간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중세 유럽, 이탈리아의 부유한 상인들과 가문들은 수도원에 매달렸을까?
“막대한 부를 축적한 피렌체의 상인들은 현세에서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었다. 이들의 관심사는 사후 세계였다” (p.23)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는 칙령을 내려 신앙이 두터운 평신도들의 시신을 탁발 수도원 지하에 매장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것이 1244년의 일이다. 교황은 천국의 열쇠를 상인들에게 내주는 대가로 그들의 금고를 열 수 있게 된 것이다.” (p.24)
루터의 종교개혁 이전 시기다. 교황이라는 자가 천국의 열쇠를 부자들의 손에 쥐어 주고 돈을 받아먹은 것이다. 책에서의 설명처럼 부유한 상인들에게는 아쉬울 것이 없는 장사였다. 모든 것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들의 주요 수입원이던 고리대금업은 당시 교회에서 금지하고 죄악시 하던 일이었다. 아무리 좋은 저택을 짓고 유명한 화가를 데려와 최고의 작품을 내 집안에 그려 넣어도 고리대금업자라는 태생적 정체성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수도원을 짓고 수도원에 성화를 그려 넣고 수도원을 후원하는 길이 열리면서 그들의 죄마저 돈으로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메디치가는 보르지아 가문이나 피렌체의 기득권을 움켜쥐고 있던 신흥상인들보다는 분명 일반 시민들을 배려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해서 그들의 정체성이 변할 수 없듯이 메디치가도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누리며 더 오랫동안 그들의 기득권을 영위하려는 욕심마저 변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그대로 정체성이었다.
“이성을 되찾은 피렌체 시민들은 자신들의 피렌체의 황금시대가 아니라, 메디치 가문의 독재 치하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p.307)
피렌체의 시민들은 메디치가의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메디치가의 몰락과 공화국의 탄생, 그리고 재차 메디치가의 복권 등이 점철되면서 그 유명한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마키아벨리의 굴곡진 삶도 겹쳐진다.
사실 책에서는 그림 이야기가 많다. 주로 수도원의 천장이나 건물의 벽에 그려진 성화가 대부분이다. 메디치가의 집권 초기에는 성경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었고 이후 인문학자들의 유입으로 인해 그리스, 로마의 신화가 부활하면서 다비드 상 같은 성(聖)인들과 성경의 인물들이 그려졌다. 그림의 형태와 특징은 달라졌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았던 특징은 자신들을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가문의 수장을 성인들과 성경의 인물들 틈에 끼워 그려 넣고 가문의 상징물을 그려 넣었다. 내 돈 주고 그리는 그림이니 이 정도는 당연히 용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인지 수백 년이 지나도록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기억하기를 바라는 희망이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개인적 욕심이었음은 틀림없다. 어찌됐건 간에 중세 도시국가의 부자들이 만들고 그려 넣은 수도원과 그림은 현재까지 전해진다. 여유가 된다면 직접 피렌체로 날아가 책에 등장하는 수도원의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오백년도 더 지난 후세들을 위해 남겨 준 정성에는 감사를 표한다.
아직도 AC피오렌티나의 팬들은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를 기억할 것이다. 자신들의 팀을 위해서 헌신했고 더 좋은 팀을 찾아 떠날 수 있었음에도 그는 피오렌티나에 남았다. 아직까지 메디치가가 피렌체의 가장 힘 있는 세력이라면 그들의 대저택에 바티스투타의 친필 사인이 적힌 피오렌티나 유니폼은 당연하고 데뷔 골과 마지막 골을 넣었던 축구화와 축구동도 멋지게 유리관 속에 소장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매년 바티스투타가 피렌체의 메디치가를 방문해 메디치가의 수장과 식사를 하고 축구 경기를 함께 하는 이벤트도 열리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