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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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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에도 치킨을 먹었다.

아무리 먹고 싶어도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자제를 하자던 아내와의 다짐은 통화 버튼을 누르는 힘찬 내 손가락질에 의해 단번에 날아간다.

치킨을 먹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퇴근길,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올라가기 위해서 아라비아 숫자를 누르는 찰나!

엘리베이터 구석구석에서부터 내 후각을 자극하기 위해 쏜살같이 몰려드는 치킨의 냄새! 그 향긋하고 달콤하며 고소하고 바삭한, 냄새는 맡는 것만으로도 이미 닭다리 하나를 손에 들고 있는 것 같은, 그 냄새.

나는 현관문을 열며 아내에게 소리친다.

“여보~ 치킨 먹자.”

    

 

“오래도록 관찰한 결과, 사람들은 치킨을 닭과 연결 짓지 않는다. 치킨 자체가 닭이긴 하지만 우리가 치킨이라 부르는 것은 더 이상 닭이 아니다.” (p.58)

“치킨의 승부처는 튀김 기술이 아니라 ‘소스와 염지’다. 소비자들은 닭살이 아니라 짭짤하고 부드러운 치킨 맛과 양념소스 맛에 반응한다.” (p.93)

 

알고 있는 얘기다. 치킨을 먹으며, 튀겨지기 전. 아니, 도축되기 전 하나의 생명체 였던 한 마리의 닭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며 어떤 과거를 가진 채 도축되어 이제는 사각 용기에 들어가기 알맞게 형체가 분해되어 내 코앞까지 와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탐구하는 사람은 없다. 이 치킨의 종이 무엇이며 어떤 색깔이었는지 하는 것들도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후리이드는 바삭하면 되고, 양념은 달짝지근하면서도 매콤하면서도 감칠맛이 나면서도 각자의 입맛에 맞으면 그만이다. ‘웰빙’ 뭐 이런 것이 유행하고, 튀김용 기름의 유해성에 대한 논란이 있은 후 ‘자사의 치킨은 건강하고 안전한 기름을 쓴다.’라는 파격적인 마케팅으로 지금까지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BBQ는 후라이드도 양념도 맛있다. 그전까지는 네네치킨을 주로 먹었다. 솔직히 말해서 BBQ와 네네치킨의 차이를 정확하게 모른다. 네네치킨보다 BBQ가 내 입에 더 맞을 뿐이다. 내 입에 더 맞는 그 비결이 특정한 ‘소스와 염지 기술’에 의한 것이라는 것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다들 그 맛에 치킨을 먹는다.

    

 

“닭(육계)시장을 제외하고도 순수하게 치킨시장의 규모만 연간 3조 원 정도로 예측” (p.18)

“현재 한국 치킨점의 수는 3만 5000에서 5만여 곳으로 추정” (p.19)

 

저자는 음식문화를 통해 사회를 분석하는 사람이다. 꽤나 흥미롭고 의미 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 아냐~”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다 먹고 살자고 산다. 먹고 살지도 못하는 것은 사는 게 아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먹는 것은 사는 것이다. 오죽하면 힘없는 세월호 유가족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저항이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하는 단식 투쟁이었을까. 먹지 않겠다는 것은 살지 않겠다는 의지다.

치킨시장의 규모만 연간 3조 원 정도라는 통계가 가히 충격적이다. 우리 집이나 주변 지인들의 경우만 봐도 늘 치킨을 입에 달고 사는데도,

‘우리나라 치킨 시장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치킨가게의 수는 얼마나 될까?’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치킨은 치명적이다.

일단 처음 입에 들어가 바사삭 하며 한 입 베어 물면... 그것으로 게임 끝.

지난 추석명절 당일, 본가에 다녀온 저녁. 또 치킨 생각이 났다. 늘 시켜 먹던 BBQ로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네네치킨도, BHC도, 굽네치킨도, 교촌치킨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니, 평소에는 그렇게도 많던 치킨집이 죄다 쉰단 말이야? 맞다. 그만큼 많은지 몰랐다. 몇 군데 전화를 해보고, 다급한 마음에 차를 끌고 나가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혹시 바빠서 전화를 받지 못한 치킨집이 있나 싶어 찾아봤지만 없었다.

‘근데 이렇게 치킨집이 많아서 장사가 되려나?’

문득 생각했다. 아무리 치킨이 국민음식이자 국민간식, 국민술안주가 되었다 하더라도 이렇게 한 동네에 치킨집이 많은지 몰랐다. 어떤 가게에 장사가 잘 되면 반대로 어떤 가게들은 장사가 안 될 수밖에 없는데, 괜한 걱정이 물밀 듯 밀려왔다.

    

 

“통신사와 가전제품, 음료, 화장품 광고를 두루 섭렵했던 ‘광고의 여왕’ 전지현은 군 통령 걸스데이를 밀어내고 BHC 광고 모델을 수락했다.” (p.155)

 

지난 8월, 결혼을 앞둔 처제 신혼집에 들어갈 가구를 보러 온 가족이 출동했다. 한샘가구몰에 찾아갔는데, 입구에 전지현이 광고를 하고 있는 입간판을 발견했다. 느닷없이 혼잣말이 튀어 나왔다.

“전지현~! 니가 다 해먹어라~~하하하”

상담을 해주던 직원이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것처럼 속삭이듯 말했다.

“9월부터 전지현씨가 저희 한샘 광고 모델입니다.”

전지현이 광고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둘러본 가구들은 이상하리만치 죄다 비싸 보였다.

언제부턴가 치킨 광고에 탑스타가 나오기 시작했다. 소녀시대, 전지현 등등. 비싼 모델을 통해 광고를 하면 치킨 값이든, 프랜차이즈 영업점에 대한 닦달이든, 어떤 형태로든 원가가 상승해 소비자의 주머니를 야금야금 털어가는 꼴이 될 텐데. 치킨을 너무 좋아하는 우리들은 별 생각 없이 오늘도 내일도 치킨을 시켜 먹는다.

 

 

“그 많은 닭은 누가 다 키웠을까” (p.263)

“시장 점유율 50퍼센트면 반독점 상태다.” (p.270)

“이제 밖에서는 하림이 만든 닭으로 치킨을 튀겨 먹고, 집에서는 하림이 만든 용가리치킨을 또 튀겨 먹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렇게 하림 닭으로 튀겨 먹다 찐 살은 하림이 만든 ‘닭가슴살 캔’을 먹어가며 다이어트를 하는 시대,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하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p.271)

“개인 양계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이 OO군에도 딱 한 명 있다. 기업한테 주도권이 있고, 계열화가 90퍼센트 이상 완료되면서 사실상 어려운 일이 되었다.” (p.284)

 

맞다. 그 많은 치킨이 어디에서부터 오는 지 너무 관심이 없었다. 그냥 누가 키웠겠거니, 누가 잡았겠거니, 누가 가공했겠거니 했다. TV 고발프로그램에서 정기적으로 어떤 음식은 뭐가 나쁘고요. 어떤 음식은 얼마나 비위생적이고요. 라는 내용을 방송해도 나는 뭐 여간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관심이 없었다. 한번쯤 관심을 가질 만도 한데 말이다. 그저 빨리 주문한 치킨이 배달되어 내 입과 귀와 눈과 속을 만족시켜 주기만을 바랐다.

하림. 하림 말은 많이 들었는데 저 정도 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저자의 표현대로 ‘하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시장 점유율 50퍼센트라. 수 조원대의 시장에서 점유율이 절반 이상이라는 것은 독점이다. 하림 마음대로 시장을 재편하고 구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개별 양계업자들의 처지를 보면 적확하게 알 수 있다. 단기적으로 소비자들에게는 좋다. 큰 기업 하나가 닭의 탄생에서부터 소비자의 입 속에 들어가는 직전까지의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나 이마트에 가서 생활에 필요한 모든 종류의 제품을 한 번에 구매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만약 모든 독립 양계업자들이 사라지고 난 후, 모든 동네 슈퍼와 식품점들이 사라지고 난 후의 상황은 소비자에게 결코 좋지 않을 것이다. 시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거대 ‘갑’이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시장의 판을 짤 것이니까 말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가서 사야 한다. 절대 ‘갑’을 제외하고는 원하는 제품을 구입할 수가 없게 될 테니까.

    

 

“100원에 울고 웃는 게 치킨 장사야. 말해 무엇해. 치킨 무값도 오르고 맥주 단가도 오르고, 안 오른 게 없어. 사실 각 점주들이 제일 화가 난 것이 이 부분일 거예요. 닭 값을 너무 올려 받는다는 거. 조류 독감이다 뭐다 해서 매출도 줄었는데 원료 값까지 오르면 정말 죽어나거든” (p.115)

 

월급 빼고 다 오른다. 는 허탈한 자조가 치킨집 사장님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을 확인하니 씁쓸하다. 장사에 필요한 거의 모든 재료와 물품의 값은 오르는 데,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뜯어가는 각종 값은 천정부지로 오르니 말이다.

    

 

“2010년 12월 9일, 롯데마트는 전국 82개 점포에서 후라이드치킨을 한 마리당 5,000원에 판매한다는 대대적인 광고를 했다. 이 치킨은 이른바 ‘통큰치킨’” (p.118)

 

제발 좀 작작 해주기를 바란다. 굳이 치킨사업 하지 않아도 잘 나가고 돈 잘 버는 사람들이 왜 마지막 서민 영세업자들의 운동장까지 뺏으려 하는 지... 이미 그 운동장은 적정 수용 인원을 훌쩍 넘겨 버린 상태인데도 말이다.

한시적으로 끝난 이벤트이지만 롯데마트는 ‘통큰OO’이라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브랜드 가치를 얻었다. 롯데마트가 교묘한 상술로 획득한 브랜드 가치를 보고 다른 대형회사들은 가만히 있을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 마음만 먹으면 롯데마트의 ‘통큰OO’과 같은 것들을 수시로 할 수 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것이다.

우리도 먹고 살고 치킨집 사장님들도 먹고 살자.

가능하면 배달앱 통해서 주문하지 않고 하나 더 없으면 도저히 치킨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치킨무 공짜로 달라고 생떼 부리지 말고 평소보다 조금 더 튀겨졌거나 조금 덜 튀겨졌거나 평소보다 닭이 좀 작은 것 같거나 양념이 좀 덜 묻은 것 같아도 득달같이 전화해서 따지지 말고 한 번 쯤은 넘어 가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니까 말이다.

당신도 먹고, 나도 먹고, 치킨집 사장님들도 먹고

 

 

 

* 이 리뷰는 알라딘 신간평가단에서 투표를 통해 추천된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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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시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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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의 뉴스룸이 시작되었다.

반응을 살펴보니 대체로 긍정적이다.

 

 

“한걸음 더 들어가 진실에 접근하는 것, 그 방법에 있어서 사실을 공정하고 품위 있게 다루자는 것”

 

100분 편성이라는 파격적인 구성과 지난 세월호 참사 기간 중 꾸준한 취재와 보도로 대중으로부터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손석희 만의 브랜드가 런칭 된 것이다.

사실 나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손학규 전 의원이 아무리 합리적이고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정치를 잘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한나라당 출신이다. 태생적 한계를 벗기란 태어날 때부터 가졌던 고유의 기질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손석희의 뉴스룸은 JTBC에서 방송된다. JTBC는 종편이다. 종편의 탄생은 다분히 정치적인 이해에 의해서다. 많은 언론인들과 학자들, 대중들이 반대를 했지만 결국 공룡은 탄생했다. JTBC는 중앙일보에 속해있다. 중앙일보는 삼성에 속해있다. JTBC는 삼성과 이건희씨 일가에 대한 비판을 절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제 아무리 손석희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각에서 손석희씨의 JTBC행에 대해 비판하면서 차라리 대안언론에 참여했어야 한다. 재벌의 개가 되려 한다. 등의 노골적이고 지극히 감성적인 비판은 더 유치하다고 본다. 손석희씨의 JTBC행은 지극히 개인적인 가치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마치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알아서 좌절하고 절망하거나 맹목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지금껏 진보진영이 보여준 찌질함의 맥락과 일치한다. 강준만의 ‘진보 싸가지론’에 대해서도 기다렸다는 듯이 진보·지식인 진영에서 한마디씩 거드는 것과도 비슷한 자세다. 유치하고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는 행태다.

아무튼 나는 손석희의 뉴스룸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종편이 탄생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지금은 자사의 공신력과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손석희의 보도방향과 편집방향에 대해 별다른 압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온다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소유한 언론사에서 자기들의 치부를 까발리고 전국민들에게 알리는 바보짓을 할 재벌이 어디에 있나.

다만 뉴스라는 언론형태의 지평을 넓히고 1시간 뉴스라는 낡은 틀을 깼다는 것에는 긍정적이다. 되지도 않는 뉴스들을 보느라 피곤한 사람들이 채널을 주르르 돌리다가 손석희의 뉴스룸에 오랜 기간 멈춰 있는 일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분명 기존 뉴스들과는 다를 테니까.

    

 

“삐걱거리는 몇몇 우파와 좌파 집단들이 편향이라는 개념에 관한 우리의 인식을 장악했을지언정, 궁극적으로는 삶에 대한 시각만큼이나 수많은 편향들이 존재한다.” (p.33)

 

한국의 정치인들이 가장 잘 하는 거짓말이 있다.

“많은 국민들이... 대다수의 국민들께서...”

라는 거짓말.

그들이 규정한 ‘많은 국민들’과 ‘대다수 국민들’의 범위가 어디까지 인지 본인들도 결코 알 수 없다. 언론환경 자체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사실 보도 자체도 제대로 되지 않는 터라 알랭 드 보통의 이 책 「뉴스의 시대」가 더 불편하게 읽혔다. 이 책의 전제는 최소한 뉴스가 제대로 사실과 팩트를 보도한다는 데 있는데, 한국의 언론은 그렇지 않다. 오늘 오후 분명하게 벌어진 일이 저녁 뉴스에서는 모습을 감춘다. 정치적 이해와 언론조직의 가치 판단에 따라 희석되고 편집된 뉴스를 접한 지 오래다. 많은 국민들은 더 이상 뉴스를 믿지 않는다. 느닷없이 연예인의 열애, 범죄 뉴스가 보도 되면 ‘또 무슨 일 덮으려고 저래?’라는 무조건 반사를 하게 된다. 파블로프의 실험에 피실험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뉴스는 범죄자가 경찰차 뒷좌석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우리와 우리 사회의 무수한 병폐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지금 막 확인되어 안전하게 제거되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p.71)

    

한국에서는 범죄자가 경찰차 뒷좌석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다. 특히 힘 센 사람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고개 빳빳이 들고 조사를 받으러 들어가거나 휠체어를 탄 채 세상에서 가장 아픈 사람 코스프레를 하면 그만이다. 얼마 전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법원의 판결도 그렇다. 국정원법 위반을 하여 정치적으로는 범죄지만 선거법 위반은 아니다. 라는 판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판결이 보도된 즉시 SNS에서는 패러디가 봇물 쳤다. 사람들은 내가 발붙이고 있는 땅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알기 위해 외신을 찾아본다. 이것이 한국의 언론현실이다. 기성·제도권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않은 채 권력에 빌붙어 그들이 원하는 뉴스만 다루다 보니, 국민들은 원하는 뉴스를 접할 수 없다. 많은 대안언론이 쏟아졌지만 영향력은 아직 많이 부족해 보인다.

최소한 뉴스를 통해 나쁜 놈이 끌려가고 처벌받는 것이 보여야 하는데, 이것이 이 책과 알랭 드 보통의 전제일 텐데, 한국에서는 요원해 보인다.

    

 

“가장 중요한 사안의 맥락을 대다수 대중이 단 한순간도 붙잡을 수 없도록 무질서하고, 복잡하고, 단속적인 방식으로 사건들을 보도하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p.36)

 

그러니 쓸데없는 뉴스가 넘쳐 난다. 제대로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설익은, 뉴스라 할 수 없는 소식도 보도되기도 한다. 뉴스가 가진 가치가 땅까지 추락했다. 그런데 또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곳이 한국이다. 주구장창 종편을 틀어 놓은 식당이나 상점이 즐비하다. 그들은 하루 종일 그 종편의 뉴스가 사실인 줄 알고 산다. 얼마나 자극적이고 무책임한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TV에서 방송되는 뉴스니 사실이라 믿는다. 사실과 팩트를 전달해야 하는 뉴스를 믿음으로 반응한다.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다. 종편 탄생 전에는 생전 보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종편에 나오니 전문가가 된다. 그렇게 그 종편을 믿는 사람들은 믿게 되는 것이다.

언론자유지수가 해가 갈수록 추락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현상의 결과다.

    

 

“재난 뉴스가 완화시켜주는 것은 바로 성취의 이미지들이 지닌 학대 효과다. 교통사고, 암, 폭발, 화재는 우리의 실패를 상대화한다. 재난은 그 안에 광범하고 유익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 즉, 인간은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이다.” (p.231)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격은 전 세계로 전해졌다. 그간 최소한 한국의 언론보다는 정직하고 언론사명의 척도가 높을 것이라 기대되었던 유럽 유수의 언론들도 눈을 감고 제대로 그것을 보도하지 않았다. SNS를 통해 전해진 팔레스타인 현지의 모습은 놀라웠다. 이스라엘인들은 마치 불꽃놀이 구경하듯이 가자 지구에 떨어지는 미사일과 폭탄을 구경하며 환호했다.

유럽인은 알랭 드 보통에게는 재난뉴스가 학대 효과를 일으키고 우리의 실패를 상대화하는 것이라 생각될 수 있겠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재난뉴스를 보고 ‘나는 살아있어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너무 가슴 아프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거라 생각한다. 인간은 고통 받기 때문에 그 고통을 겪는 상대에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그 시간, 한국의 대다수 국민들은 배가 거꾸로 가라앉는 과정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잊힐 수 없는 트라우마다. 세월호 참사에서 그 어떤 “광범하고 유익한 메시지”를 나는 찾을 수 없다.

 

나는 이 책이 좀 지루했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아서인지 문장이 낯설고 표현이 난해했다.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느라 난해한 것이 아니라 쉽게 풀어도 될 문장을 굳이 문학적으로 꼬아 놓은 것 같았다. 자신의 문학 작품을 쓸 때나 사용하면 좋을 표현과 구성이 오히려 책에 대한 몰입을 방해했다.

 

 

 

 

* 이 리뷰는 알라딘 신간평가단에서 투표를 통해 추천된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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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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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태어나고 한 달이 지나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에 죽었다. 나중에 어머니께 당시에 대해 여쭤본 일이 있었다. 어머니의 대답은 간단했다.

“너 키우느라 정신없었다.”

누군가에게는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이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마침내 찾아온 해방이자 자유의 서막이었을 것이다. 태어난 지 정확하게 한 달이 된 내게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은 어떤 의미였을까? 뭐, 아무런 이유가 없었겠지. 태어난 지 한 달 된 갓난아기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잖아.

 

#2

어머니가 나와 내 남동생을 기르던 그 시절에는 필름 카메라밖에 없었다. 컬러 사진을 출력해 두껍고 큰 앨범에 하나하나 끼워 넣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우리 집은 물론 친구 집 어디를 가도 장롱 위나 서랍장에 큰 앨범 몇 개쯤은 꼭 있던 시절이었다.

내가 5살 정도? 내 동생이 3살 정도 되는 시절 사진이 있는데, 당시 세 들어 살던 주택 옥상에서 찍은 사진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뽀글뽀글 파마를 한 청년의 무릎에 내 동생이 앉아 있고 나는 그 청년 어깨를 타고 머리를 잡아당기며 사진을 찍었다. 그 청년은 둘째 외삼촌이다. 충북 단양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경북 포항에 소재한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내 부모님의 고향은 충북 단양이다. 경북 포항에 철강공단이 대규모로 들어서던 때, 철강공단의 모 기업에서 일하시던 아버지의 사촌매형의 소개로 물설고, 사람 선 포항에 정착하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괜찮은 보수에 안정적인 일자리였기에 친가쪽 삼촌과 외가쪽 삼촌 두 분이 우리 집에서 함께 살며 공장에 다녔다.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고 해안지역 도시에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게 되면서, 저 멀리 충청북도의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경상북도 포항까지 오게 된 것이다. 휴가를 받아 고향에라도 가려면 포항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경주역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경주역에서 부산발 청량리행 비둘기호를 타고 단양역에 내려야 했다. 단양역에 도착하는 시간은 밤9시. 완행버스도 거의 없던 시기에 비싼 택시를 불러 타고 신작로와 비포장이 섞인 고향 앞마당까지 갔다고 한다.

 

#3

1988년 9월 17일,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나의 생일이었다. 생일이 다가오면 친한 친구나 초대하고 싶은 친구, 혹 좋아하는 이성친구가 있으면 초대장을 쓰기도 하고 직접 초대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정성껏 준비해주신 생일상을 받아 친구들을 맞이하면 손에 하나씩 선물을 사들고 와 생일파티를 하던 것이 당시 유행이었다. 1988년 9월 17일 내 생일을 평생 잊을 수 없는 것은, 내가 좋아하던 여자 아이가 내 생일파티에 와 준 것도 있지만, 88서울올림픽 개막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한참 생일파티가 진행되고 있는데 TV에서는 자전거 바퀴 같은 것을 굴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으로 가득 찼다. 올림픽이 열린다는 것이었다.

 

#4

1997년 겨울, 수능을 망친 나는 아연실색했다. 평소 성적보다 10점정도 올랐는데, 다른 아이들이 적게는 30점에서 100점이나 올랐다. 평소 모의고사보다 훨씬 쉽게 나온 수능시험 탓이었다. 나는 당연히 재수를 마음먹었다. 서울 고시원도 알아봤다. 그런데, 마침 그 해가 IMF가 터진 해였다. 나라 전체가 망한 것이다. 잘 나가던 기업이 줄줄이 망했다. 멀쩡하게 회사에 다니던 친구 아버지들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었다. 친한 친구 집이 하던 치킨집도 갑자기 망했다. 20년 가까이 근속하며 열심히 일하신 아버지가 주식으로 엄청난 돈을 날렸다. 나라 전체가 망하니 주식은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나는 재수를 할 수 없었다. 성적에 맞추어 대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5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월드컵 4강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감격과 기쁨이었다. 내 손으로 뽑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그전 대통령과는 다른 사람이라 생각되었다. 사회와 국가가 완전히 바뀔 줄 알았다.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 그와 같은 정치인, 대통령을 내 인생에서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자각을 하는 것이 마음 아프다.

 

#6

2011년 11월 아내와 결혼했다.

2014년 4월 새봄이를 낳았다.

 



“한국현대사는 이 두 세력의 분투와 경쟁의 기록이다.” (p.26)

“오늘 우리가 누리는 어느 것 하나도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지 않았다. 청년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원래 거기 있었던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한국 경제의 50년 궤적을 몸으로 밀어왔던 사람들은 이런 것을 보면서 꿈을 꾸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p.119)

 

나의 한국현대사를 돌아보았다. 재미있다. 유시민은 참 글을 잘 쓰는 양반이다. 쉽게 쓴다. 논리는 치밀하지만 명료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한국현대사를 특징짓는 그의 논리에 설득 당했다.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의 분투와 경쟁은 사실 지금도 진행형이다. 민주화세력이 정치권에 입문하면서 분투와 경쟁의 치열함이 무뎌지고 변절과 철새짓으로 피아식별이 모호해지기는 했지만 명확한 구분법이다. 집안에 대학 나온 어른이 거의 없는 내게 민주화세력은 낯설다. 아버지도, 친가와 외가의 삼촌들도 모두 산업화세력이었다. 몸 하나로 가족을 부양하고 평생 근속하며 기계처럼 일했다. 아버지와 삼촌들 모두 당시 민주화세력의 삶의 궤적과는 판이하게 다른 궤적을 만들며 살아오셨다. 나는 그분들을 비판할 수 없다. 매번 1번을 찍고 이명박과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를 했다는 것을 비난할 수 없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유시민의 표현대로 급속도로 산업화하며 경제발전을 이룬 가장 밑바닥에 내 아버지와 삼촌들이 있었다. 내 고모들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잠을 쫓기 위해 ‘타이밍’이라는 이름의 알약을 먹으면서 철야 작업을 했고 공장 관리자들은 옷핀으로 팔을 찔러 피로에 지쳐 조는 여성 노동자를 깨웠다.” (p.139)

 

지금 이런 얘기하면 꼰대 소리듣기 딱 좋다. 무슨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 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다. 책에서 읽고 알게 된 사실이다. 나도 직장생활을 하는 생활인이 되고 나서야 옷핀으로 찔려가며, ‘타이밍’이라는 알약을 먹으며 비인간적인 노동을 해온 여성 노동자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3교대라는 지옥 같은 근무형태로 집채만 한 기계들 틈바구니에서 일해오신 아버지를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현재까지 시장소득 분배는 지속적으로 악화되어왔다. 정부가 조세와 복지지출을 통해 가처분소득 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시장소득 분배의 급격한 악화를 상쇄하기에는 부족했다.” (p.166)

 

IMF이후 2014년 현재의 한국경제를 이렇게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는 글을 보지 못했다. 정치적 민주화가 설익게나마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의식도 성장하고 성숙했다. ‘나라는 발전하는데, 소득규모는 커지는데, 왜 이렇지?’라는 물음이 커졌다. 경제적 민주화는 아직 한국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IMF이후 완전히 신자유주의 경제구조로 전환하면서 노동시장의 불균형은 고착화·심화되었다. 중산층은 무너지고 상위와 하위계층의 소득규모는 하늘과 땅차이로 벌어지게 되었다. IMF를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면서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에서는 공적연금과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정치권력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의 권력을 가져오지 못한 탓에(언론마저도) 거의 모든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장소득 분배의 급격한 악화’를 상쇄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정치권력은 물론 경제·언론권력까지 합심해 노력해도 될까 말까 한 시도였다. 전쟁터에 나가며 단지 10발만 발사할 수 있는 총을 들고 나간 것과 다름없었다.

 


“1980년대 3저 호황과 고도 성장기를 거쳐 재벌이 막대한 자본을 축적하고 정치적으로도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정부가 권력으로 기업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재벌이 돈으로 정치권력을 관리하게 되었다.” (p.147)

“재벌이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헌법 위에 군림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국가권력을 통한 정치적·민주적 개입과 통제뿐이다. 나는 이것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고 본다.” (p.151)

 

유시민은 책에서 이러한 시장소득 분배의 급격한 악화를 모두 재벌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지만 나는 재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1980년대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재벌은 대한민국의 초법적 존재가 되었다. 서초동의 기괴하고 아방가르드적인 삼성본사 건물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나는 그 건물을 보면서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착륙한 외계인의 함선 내지는 비행체로 보였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은 거의 모든 경제를 주무르고 있다. 그래서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이상한 논리가 거의 모든 국민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많은 젊은이가 삼성을 비판하지만 갖은 노력 끝에 삼성에 취업하게 되면 집안의 경사가 되는 이상한 사회다.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서울의 싱크홀 중 하나가 삼성물산의 부실시공으로 인해 생긴 것이라는 뉴스를 접했다. 얼마나 부실했으면 도무지 자신의 범실이나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는 괴물, 삼성이 잘못을 시인했는지 기가 막혔다. 일단 시인은 했지만 그 부실시공의 주체가 밝혀지고 책임자가 제대로 규명되어 처벌되는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나는 비관적이다. 현장 공사 책임자 정도 선에서 처벌받는 것으로 흐지부지 끝날 것으로 확신한다. 이제껏 한국의 재벌이 그런 형태로 한국의 현대사를 아로 새겨왔기 때문이다. 갖은 불법과 비리, 횡령과 배임, 편법상속과 노동탄압 등이 일어나 9시 뉴스를 도배해도 며칠 뒤 재벌 오너가 휠체어를 타고 나와 검찰에 한두 번 출두하면 그만이다. 한국에서 가장 좋은 병원에서도 가장 좋은 특실에 묵으며 흐지부지 될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유시민은 ‘경제민주화’의 출발은 재벌에 대한 국가권력의 정치적·민주적 개입과 통제라고 진단한다. 나는 회의적이다. 재벌에 대한 국가권력의 힘이 약해도 한참 약한데, 국가권력이 재벌에 개입하고 재벌을 통제할 수 있을까? 나는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미 어찌할 도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괴물이 된 재벌을 이제 와서 통제하고 개입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그 어떤 한국의 재벌 오너와 오너의 가족들이 알아서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제대로 된 조사를 받는다고 할까? 하늘이 두 쪽이 나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전체주의 국가 또는 병영국가는 집중을 추구하는 권력의 본성을 극단까지 밀고 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념의 통일성이다. 사상과 이념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 ‘불온사상’과 ‘잡사상’을 ‘박멸’하며 확실한 ‘우리 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간주한다.” (p.367)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김영오씨의 단식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병원에 실려 간 뒤, 김영오씨에 대한 악의적 댓글이 넘쳐나고 있다. 정말 치졸하고 비겁하며 악랄한 행위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에는 편 가르기가 당연시되고 있다. 나와 의견이 다르면 틀린 것이 되고 ‘적’이 된다. 합리적인 의심이나 궁금증을 할라치면 친노종북, 빨갱이가 된다.

지금의 재벌을 봐도 그렇고, 전체주의·병영국가의 모습을 미쳐 버리지 못한 저급한 상황을 볼 때, 앞으로의 “나의 한국현대사”가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이고 회의적일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단지 권력의 주체가 바뀐다고 해서 단번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그렇다. 여전히 북한과는 휴전 상태이고, 대치 상태이다. 언제든 전쟁은 일어날 수 있다. 내 딸아이의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리라는 확신이 없는 상태다. ‘정말 여기서 양육하고 교육해야 하나?’라는 물음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비슷한 연령대의 부모들을 만나면 하는 얘기가 거의 이런 것이다. 상황이 되고, 혹시 여건이 안 되더라도 아이를 외국에서 교육시키고 싶다는 이야기. 이민을 가고 싶다는 이야기 등.

 


“민주적 제도가 있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에 맞는 생각을 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성숙한 민주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p.260)

“각자의 욕망과 신념과 이기심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연민, 교감, 공감을 바탕으로 상호이해와 협력을 이루어야만 이 과제를 해낼 수 있다.” (p.416)

 

타인에 대한 연민과 교감과 공감이 바탕이 된 사회가 아니다. 그런 사회라면 이렇게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망발을 일삼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인간들은 없을 것이다. 곪을 대로 곪고 병들대로 병들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료해 나가야 할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 그저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겨우 전반전을 마친 “나의 한국현대사”의 후반전이 어떻게 기록될지 자못 궁금하지만, 큰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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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강희진 지음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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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대한민국은 세대 갈등이 첨예한 사회다. 압축적인 산업화를 경험한 사회의 일반적인 경향이라고 하기에는 과도하고 과격하며 비상식적이다. 산업화의 상징이라고 일컬어지는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보면 현재 대한민국이 겪는 세대갈등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조국근대화를 이룩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탈출시켜 준 구세주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헌법파괴, 헌정유진, 인권탄압으로 민주화를 파괴한 독재자로 평가된다.

대학에 들어가 책을 읽으며 사회와 인문학적 소양을 깨우친 뒤, 세상이 달리 보였다. 그간 배워왔던 것들이 모두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은 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러고 나서 서른 줄이 넘기 전까지 나는 도무지 산업화 세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명백하게 잘못된 독재자이고 나쁜 사람임에도 신처럼 떠받들며 추앙하는 기성세대를 보며 기가 막혔다.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된다. 내 부모님과의 대화만 가만히 톺아보면 된다. 2002년 대선, 나는 부모님이 노무현 후보에게 투표하시도록 설득하려 했다. 조곤조곤 말씀 드리면 상식 수준에서 이해하시고 설득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도무지 말이 먹히지 않았다. 읽었던 책, 찾아봤던 사실에 입각한 자료도 부모님께는 도무지 먹히지 않았다. 박정희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줄곧 1번에만 투표해 온 심리적 기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서른이 넘어 어떤 어른과 이야기를 하다가 이 모든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전쟁을 겪고 굶어 보지 않았으면 몰라~”

 

맞다. 나는 전쟁을 겪지도 않았고, 배를 곯아 본 적도 없다. 전쟁 후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일상과 동네, 사회와 국가가 어떻게 변해갔는지 온 몸으로 체험한 내 부모님 세대와 그 이전 세대를 나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설픈 지식과 논리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그들의 삶에 오롯이 새겨진 문신과도 같은 기억과 추억은 절대로 지워지거나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녀자들이 전쟁을 벌인 것도 아니고, 전쟁에 진 것도 아녀자들의 잘못은 아니건만 전쟁으로 인한 단죄는 아녀자들의 몫이었다. 임금은 교지를 내려 한강, 소양강, 금강, 예성강, 대동강 등을 회절강이라 칭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아녀자들에게 그곳에서 회절하는 정성으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김씨 부인은 콧방귀를 끼면서 강에서 몸 씻기를 거부하고 되레 침을 뱉고 돌아섰다.” (p.271)

 

 

화냥년이라는 욕은 아주 저속하고 불쾌하다. 욕 중에서도 아주 못된 욕이다. 일상에서도 잘 듣지 못하는 욕이다. 간혹 TV에서나 소설에서 보게 되는 단어다. 어린 시절 나는 화냥년이 사창가의 여성들을 비하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절개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들을 가리키는 ‘환향녀’라는 정확한 명칭을 알고 나서 퍼뜩 들었던 느낌은 서글픔이었다. 결코 돌아와서도 환영받지 못한 전쟁의 피해자들의 민낯을 부끄러움 없이 폭력적으로 대우한 것이니 말이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온 여성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특히 병자호란 뒤 청나라로부터 돌아온 여성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성들의 숫자보다 적을 것이다. 제도적으로 죽음을 방치하고 조장했다. 그런 와중에도 질긴 목숨을 부지해 돌아온 여성들을 향한 노골적이고 집요한 조롱과 압박은 겪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강도의 폭력이었을 것이다. 사대부나 평민, 노비를 막론하고 닥치는 대로 절개를 잃거나 청나라로 끌려갔다. 먹히지도 않을 사대사상에 찌들어 망해가는 명에 빌붙은 사대부와 조정은 청나라의 만행을 막지도 못했고, 청나라의 만행에서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피해자 여성들을 지키지도 않았다. 특히, 사대부가(家)의 여성이었다면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정절과 신념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선비(사대부)문화에서 정절을 잃은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한가지뿐이다. 조선 중기 이후 조정에서 내려진 열녀의 상당수는 만들어진 열녀라는 말도 있지 않나.

 

 

 

“누구도 전쟁에 대해, 패배와 굴욕, 죽음과 상처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꽃이 피고 또 졌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p.7)

 

 

나라의 가장 큰 어른인 임금이 한갓 오랑캐의 발아래 이마를 찧고 예를 갖추는 비극이 지난 후의 나라꼴은 어땠을까? 내가 박정희를 추앙하는 세대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처럼, 전쟁을 겪지 않은 이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작가가 묘사한 것이 그대로 마음에 다가온다. 시간은 가고 삼라만상은 여전한데, 숨길수도 없고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기운과 느낌은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임금이 글쎄~ 오랑캐놈 사타구니 아래를 기어 지나갔대~’

‘임금이 글쎄~ 오랑캐놈 발가락을 핥았대~’

‘임금이 글쎄~ 오랑캐놈 하고 붙어 먹었대~’

 

말은 말은 물고 늘어지고 고꾸라지며 도성을 떠돌았을 것이다.

 

 

 

“단지 드러내지 않을 뿐 모두가 가슴속에 공포를 숨기고 사는 세상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장안은 공포에 휩싸였다. 치욕과 분노, 감당할 수 없는 자기 비하가 가져온 공포였다.” (p.280)

 

 

짐승보다 못한 오랑캐로 치부하던 청나라 놈들에게 완전히 유린당한 조선과 그 속에서 사는 이들에게 호란은 씻을 수 없는 굴욕이었다. 하지만 변함없었던 것은 나라를 움직이는 자들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오랑캐가 아니라 자신들의 상국(上國)이 되었음에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대명, 대명’을 지껄였다. 힘도 없고 능력도 없는 자들이 도그마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뜬구름 위에서 꿈을 꾸고 있었다. 어차피 백성들, 국민들의 삶은 전쟁 전이나 후나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들이 국가를 움직이고 만들어간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코앞까지 다가온 공포였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존재기반 자체를 뒤흔들어 엎어버릴 수 있다는 공포를 겪었다.

 

 

 

“임금은 황폐한 민심으로부터 왕위를 지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반면 임금의 바로 코 밑에서는 반정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p.76)

“대감, 들으셨습니까? 전하께서 미행(微行)중에 시정잡배들과 어울려 술을 드시고 그들과 함께 주정을 부렸다 합니다.” (p.28)

 

 

정신 차리지 못한 자들은 무너진 임금의 코 밑에서 반정을 준비했다. 사대부 나라의 명분과 이념을 저버린 채 짐승보다 못한 오랑캐와의 화친을 주장한 광해를 몰아낼 때와는 다른 반정의 이유였다. 자신들에게 쏠리는 호란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기에는 임금만한 먹잇감이 없었다. 호란 이전부터 호란 이후까지 줄곧 멍청하고 유약하며 무능력의 전형을 보여준 임금을 물러내고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왕족 중 하나를 임금의 자리에 앉히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그 어떤 왕보다 완벽하게 굴욕적인 패배를 겪은 임금은 미쳤다. 미친척한 것이 아니라 미쳤다. 광해를 쫓아낸 뒤 자신을 용상의 자리에 앉힌 자들이 언제라도 자신을 폐주 광해 취급할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한 것이다. 오랑캐 장수의 발 앞에 이마를 찧으면서 어쩌면 임금은 모든 자존심을 집어 던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코 광해처럼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주 미행을 다니며 미친척했다. 시정잡배들과 어울려 놀기도 하고 자신의 코앞에서 임금을 욕하는 무리배들과도 어울렸다. 따르는 신하들과 조정의 대신들은 임금의 연기에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이신은 황제의 칙사(勅使), 조선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황제의 오른팔이었다.” (p.10)

“임금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다른 한편으로 임금은 이신이 손에 쥔 <동몽선습>을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 넣는 모습을 상상하며 내심 통쾌함을 느꼈다. 삼전도의 굴욕은 사대부들이 조선의 임금을 제후로 여기고 명나라 황제를 진짜 임금이라고 섬기는 바람에 생긴 참극이었다. 그 똥물은 오롯이 왕의 몫이었다.” (p.53)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청의 속국이 되었다. 조선의 신하와 백성과 땅과 하늘은 조선의 것이 아니라 청나라의 것이 되었다. 청의 황제는 자신의 오른팔을 제후국에 파견해 속속들이 간섭했다. 칙사 이신 이전에는 무례와 간섭이 도를 넘었다. 하지만 이신은 그렇지 않았다. 폐주 광해의 내금위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임금도 알고 조정 대신들도 알고 있었다. 황제의 입이자 귀였기에 어찌할 수 없었을 뿐, 임금에게도 조정 대신들에게도 칙사는 눈엣가시였다. 제거할 수 없으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신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돈이나, 권세로 움직일 수 없는 인사였다. 그래서 임금과 대신들에게는 더 골치였다.

 

 

 

“나쁜 왕은 죽여야 한다... 이신은 중얼거렸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진심이었다.” (p.381)

 

 

이신은 처음부터 왕을 죽이려 했다. 조정 대신들도 임금을, 왕을 죽이려 했지만 이유는 다르다. 맞다. 나쁜 왕은 죽여야 한다. 나쁜 지도자는 없어져야 한다. 왕조국가에서 왕을 죽인다는 것이 하늘을 거스르는 것이라 하여 역모라 지칭했지만, 그 어떤 왕조국가에서도 역모는 늘 시도된 일반적인 현상이다. 하늘이 있지만 하늘이 없는 것과 같다. 조정 대신들이 결코 볼 수 없었던 임금의 실체를 마주한 이신은 임금의 목을 가누던 칼을 내려놓는다.

 

 

 

“짖어라.”

이신은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멍멍!”

임금은 목청을 높여 개 짖는 소리를 냈다.

“멍멍, 멍멍!”

이신은 스르르 칼을 내렸다. 그는 임금의 목을 배고 싶었으나 어디에서 임금은 없었다. 사대부 이종도 보이지 않았다. 죽을 수 없는 자의 비애만이 가득했다. 이신은 그 비애를 임금과 함께 남겨두고 돌아섰다. (p.393)

 

 

임금은 이미 삼전도에서 곤룡포를 벗어 던졌다. 임금이지만 임금이 아니고 왕이지만 왕이 아니었다. 이미 그랬다. 그에게 공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황제의 칙사도, 조정의 늙은 여우같은 대신들도 실재하는 공포가 아니었다. 그래서 번쩍이는 칼날 앞에서 기꺼이 개가 되어 짖을 수 있었다. 별다를 창피와 수모가 아니었다. 인조는 조선의 왕이 아니라 생물학적 인간 이종에 머물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이미 왕이 아닌 자로 살기에 적합한 자(者)가 된 것이다. 그런 지도자를 가진 백성은 그것 자체가 공포다. 호러다. 절망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자꾸만 현재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비극이었다. 슬픈 소설, 슬픈 현실이다. 400년이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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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람이다 -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뜨거운 이야기
고상만 지음 / 책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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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만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나는 꼼수다>였다. 고 장준하 선생의 유골이 발견되어 그간 의혹으로만 존재했던 장준하 선생의 타살여부가 대선과 맞물려 첨예한 이슈가 되던 때였다. 그런데 그 방송을 들으며 나는 이미 고상만씨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라는 책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판문점 김훈 중위 자살 사건에 대한 의혹을 조사한 인권운동가의 책이었다. 책을 읽지 않아서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고상만씨가 출연한 <나는 꼼수다> 에피소드는 이전 에피소드와 마찬가지로 재미있고 충격적이었다. 박정희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고 장준하 선생의 죽음을 둘러싼 일련의 의혹과 그 의혹을 풀기 위해 노력했던 인권운동가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한계를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대선이 끝나고 한참 뒤 또 다른 팟캐스트에서 그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고상만의 수사반장>이라는 방송이었는데, 단지 판문점 김훈 중위 사건만이 아니라 군 인권과 다른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오랜 기간 관여하고 활동해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상만씨는 방송에서 말을 굉장히 많이 한다. 그의 말은 디테일하고 꼼꼼하다. 그리고 정확하다. <나는 꼼수다>에서는 진행자들이 중간에 고상만씨의 말을 끊을 정도였다. <고상만의 수사반장>이라는 방송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불편하지 않다. 그가 얼마나 해당 사건들에 대해 철저하고 열정적이었는지에 대한 반증이기 때문이다. 고상만씨의 노력만큼 사건들이 하나하나 해결되었다면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수많은 진상조사가 이뤄졌지만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정치권력은 바뀌었지만 그것을 제외한 거의 모든 권력은 여전히 저들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 장준하 선생의 죽음도 당시의 결론은 ‘진상규명 불능’이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후 이미 사두었던 고상만씨의 책 「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를 읽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군의 결론은 이해되지 않았다.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공중파에서도 여러 번 방송을 했지만 군의 결론은 뒤집히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아무리 진상을 규명하려 해도 번번이 실패한다면 누구라도 힘이 빠진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으면 포기하기 마련이다. 사회의 정의와 공익을 위해 전심을 다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현실적인 생활의 문제는 함께 하는 가족들에게 온전히 전가된다.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가까운 친구를 보면 더욱 암담해진다. 돈이 되지도 않고, 힘을 가질 수도 없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 「다시 사람이다」는 고상만씨의 인간과 정의에 대한 고백이다.

 

 

“「다시 사람이다」역시 이전에 냈던 책처럼 누군가의 아프고, 고통스러운 이야기 중 일부다. 내가 인권 운동 현장에서, 또는 그 언저리에서 일하며 만난 누군가의 울분과 서러움을 대신하여 쓴 글이 대부분이다.” (p.8)

“나는 우리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준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제도나 이념도 사람을 넘어설 수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p.10)

 

방송에서 듣는 투박한 말투가 그대로 전해진다. 흥분해서 말을 쏟아내면 쇳소리가 나기도 하는 그의 진심도 함께 전해진다. 단지 인권 운동 현장만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월호 유족, 김영오씨에 대한 비인간적인 공격은 도를 넘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가할 수 없는 폭력이다. 사람이 아닌 자들이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 단지 특정한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 40일을 단식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나? 정도를 넘어선 몰염치다. 사람이 사람을 향하지 못하고 함께 있지만 살이 닿은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람의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 정의와 인권과 상식은 공염불이 된다.

 

 

“함께 학생운동을 하다가 죽은 김용갑 형과 그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 달라며 분신 항거한 친구 정연석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괴로웠다.” (p.297)

 

계란으로 바위치기, 공염불로 보이는 일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고상만씨만의 이유가 있었다. 물론, 이런 일을 겪은 모든 이가 고상만씨처럼 살지는 않는다. 내놓으라하는 학생·노동운동가가 변절해서 살고 있는 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2012년 11월 26일, 당시 나는 공무원이었다. 서울특별시 교육청 감사 공무원으로 일하던 그때, 나는 사표와 함께 감사 조사관증과 공무원증을 반납했다.” (p.275)

“말은 쉽게 하지만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이전 몇 달간 나를 괴롭힌 고민과 갈등은 지옥보다도 깊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런 운동가·활동가들에게도 현실은, 생활은 괴로운 것이다. 고상만씨를 처음 알게 된 <나는 꼼수다>에 출연할 당시, 그가 공무원 신분이었다는 점이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현실과 생활의 문제에서 괴로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나? 없다. 그가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당시 그가 출연한 <나는 꼼수다>에서 두루뭉술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 애썼다는 것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신랄하게 비판하고 디테일하게 파헤친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꼼수다>출연 이후 그가 겪은 고민과 갈등이 “지옥보다도 깊었다.”고 한다. 나는 가늠할 수 없다. 딸아이를 품에 안고 밤새 잠들지 못하고 ‘잘 키울 수 있을까?’걱정했던 것의 몇 배는 될 것 같다. 아내가 있고 두 아이가 있는 가장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두 가지다. 고상만씨는 거의 모든 사람이 피해갈 결론을 내렸다. 이 사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괜찮아, 선배.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살면 되지 뭐. 양심이 시키는 대로 살아. 죽을 때 후회할 일은 하면 안 되잖아.” (p.302)

 

그의 결정에는 부인 장경희씨의 신뢰와 지지가 가장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학생운동 시절부터 알게 된 지금의 부인이 고상만씨보다 더 대단한 활동가요, 인권운동가다.

이 책을 읽기 전, 그의 전작과 방송을 들으면서도 ‘참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생각이 더 확실하게 굳어졌다.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위해 안정적인 삶과 가치를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용기다. 어렵고 어려운 태도다.

이 책은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학생인권, 성소수자 이야기, 군 의문사 등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에 대한 진실이 담겨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어떤 주제보다 책의 저자, 고상만씨에게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자꾸만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내 친구와 오버랩 되기도 하고 ‘이런 사람도 있는데, 왜 이 사회는 이 따위이지?’라는 절망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고 내가 나설 수 없는 미안함을 한꺼번에 어깨에 짊어지게 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나 또한 생활인으로 산다. 처자식이 있고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돈벌이가 있다. 지난 7년 동안은 자체검열이라는 것에 익숙해져 이런 서평 하나 쓰면서도 닥치지도 않을 일을 걱정한다. 그저 이런 책을 사서 판매부수 ‘1’을 더하고 응원을 담은 서평 작성하는 것으로 내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솔직한 심정이다. 매번 지는 싸움을 지켜보는 것도 지치고, 신념과 가치를 지키는 것에 무력감을 느낀다.

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서평에서 주저리 늘어놓을 수는 없지만 매일 밤 딸아이를 재우며 그 자그마한 귀에 대고 하는 말이 있다. 내 다짐이기도 하다. 그것 하나 붙들고 살아야겠다.

그러니 고상만씨!! 힘내시기를 바랍니다. 저처럼 고상만씨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고상만씨의 열정과 노력으로 인해 조금씩 세상이 바뀌어 간다고 믿습니다. 저처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힘이 보태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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