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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ㅣ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평점 :
지난 일요일에도 치킨을 먹었다.
아무리 먹고 싶어도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자제를 하자던 아내와의 다짐은 통화 버튼을 누르는 힘찬 내 손가락질에 의해 단번에 날아간다.
치킨을 먹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퇴근길,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올라가기 위해서 아라비아 숫자를 누르는 찰나!
엘리베이터 구석구석에서부터 내 후각을 자극하기 위해 쏜살같이 몰려드는 치킨의 냄새! 그 향긋하고 달콤하며 고소하고 바삭한, 냄새는 맡는 것만으로도 이미 닭다리 하나를 손에 들고 있는 것 같은, 그 냄새.
나는 현관문을 열며 아내에게 소리친다.
“여보~ 치킨 먹자.”
“오래도록 관찰한 결과, 사람들은 치킨을 닭과 연결 짓지 않는다. 치킨 자체가 닭이긴 하지만 우리가 치킨이라 부르는 것은 더 이상 닭이 아니다.” (p.58)
“치킨의 승부처는 튀김 기술이 아니라 ‘소스와 염지’다. 소비자들은 닭살이 아니라 짭짤하고 부드러운 치킨 맛과 양념소스 맛에 반응한다.” (p.93)
알고 있는 얘기다. 치킨을 먹으며, 튀겨지기 전. 아니, 도축되기 전 하나의 생명체 였던 한 마리의 닭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며 어떤 과거를 가진 채 도축되어 이제는 사각 용기에 들어가기 알맞게 형체가 분해되어 내 코앞까지 와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탐구하는 사람은 없다. 이 치킨의 종이 무엇이며 어떤 색깔이었는지 하는 것들도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후리이드는 바삭하면 되고, 양념은 달짝지근하면서도 매콤하면서도 감칠맛이 나면서도 각자의 입맛에 맞으면 그만이다. ‘웰빙’ 뭐 이런 것이 유행하고, 튀김용 기름의 유해성에 대한 논란이 있은 후 ‘자사의 치킨은 건강하고 안전한 기름을 쓴다.’라는 파격적인 마케팅으로 지금까지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BBQ는 후라이드도 양념도 맛있다. 그전까지는 네네치킨을 주로 먹었다. 솔직히 말해서 BBQ와 네네치킨의 차이를 정확하게 모른다. 네네치킨보다 BBQ가 내 입에 더 맞을 뿐이다. 내 입에 더 맞는 그 비결이 특정한 ‘소스와 염지 기술’에 의한 것이라는 것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다들 그 맛에 치킨을 먹는다.
“닭(육계)시장을 제외하고도 순수하게 치킨시장의 규모만 연간 3조 원 정도로 예측” (p.18)
“현재 한국 치킨점의 수는 3만 5000에서 5만여 곳으로 추정” (p.19)
저자는 음식문화를 통해 사회를 분석하는 사람이다. 꽤나 흥미롭고 의미 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 아냐~”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다 먹고 살자고 산다. 먹고 살지도 못하는 것은 사는 게 아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먹는 것은 사는 것이다. 오죽하면 힘없는 세월호 유가족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저항이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하는 단식 투쟁이었을까. 먹지 않겠다는 것은 살지 않겠다는 의지다.
치킨시장의 규모만 연간 3조 원 정도라는 통계가 가히 충격적이다. 우리 집이나 주변 지인들의 경우만 봐도 늘 치킨을 입에 달고 사는데도,
‘우리나라 치킨 시장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치킨가게의 수는 얼마나 될까?’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치킨은 치명적이다.
일단 처음 입에 들어가 바사삭 하며 한 입 베어 물면... 그것으로 게임 끝.
지난 추석명절 당일, 본가에 다녀온 저녁. 또 치킨 생각이 났다. 늘 시켜 먹던 BBQ로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네네치킨도, BHC도, 굽네치킨도, 교촌치킨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니, 평소에는 그렇게도 많던 치킨집이 죄다 쉰단 말이야? 맞다. 그만큼 많은지 몰랐다. 몇 군데 전화를 해보고, 다급한 마음에 차를 끌고 나가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혹시 바빠서 전화를 받지 못한 치킨집이 있나 싶어 찾아봤지만 없었다.
‘근데 이렇게 치킨집이 많아서 장사가 되려나?’
문득 생각했다. 아무리 치킨이 국민음식이자 국민간식, 국민술안주가 되었다 하더라도 이렇게 한 동네에 치킨집이 많은지 몰랐다. 어떤 가게에 장사가 잘 되면 반대로 어떤 가게들은 장사가 안 될 수밖에 없는데, 괜한 걱정이 물밀 듯 밀려왔다.
“통신사와 가전제품, 음료, 화장품 광고를 두루 섭렵했던 ‘광고의 여왕’ 전지현은 군 통령 걸스데이를 밀어내고 BHC 광고 모델을 수락했다.” (p.155)
지난 8월, 결혼을 앞둔 처제 신혼집에 들어갈 가구를 보러 온 가족이 출동했다. 한샘가구몰에 찾아갔는데, 입구에 전지현이 광고를 하고 있는 입간판을 발견했다. 느닷없이 혼잣말이 튀어 나왔다.
“전지현~! 니가 다 해먹어라~~하하하”
상담을 해주던 직원이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것처럼 속삭이듯 말했다.
“9월부터 전지현씨가 저희 한샘 광고 모델입니다.”
전지현이 광고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둘러본 가구들은 이상하리만치 죄다 비싸 보였다.
언제부턴가 치킨 광고에 탑스타가 나오기 시작했다. 소녀시대, 전지현 등등. 비싼 모델을 통해 광고를 하면 치킨 값이든, 프랜차이즈 영업점에 대한 닦달이든, 어떤 형태로든 원가가 상승해 소비자의 주머니를 야금야금 털어가는 꼴이 될 텐데. 치킨을 너무 좋아하는 우리들은 별 생각 없이 오늘도 내일도 치킨을 시켜 먹는다.
“그 많은 닭은 누가 다 키웠을까” (p.263)
“시장 점유율 50퍼센트면 반독점 상태다.” (p.270)
“이제 밖에서는 하림이 만든 닭으로 치킨을 튀겨 먹고, 집에서는 하림이 만든 용가리치킨을 또 튀겨 먹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렇게 하림 닭으로 튀겨 먹다 찐 살은 하림이 만든 ‘닭가슴살 캔’을 먹어가며 다이어트를 하는 시대,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하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p.271)
“개인 양계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이 OO군에도 딱 한 명 있다. 기업한테 주도권이 있고, 계열화가 90퍼센트 이상 완료되면서 사실상 어려운 일이 되었다.” (p.284)
맞다. 그 많은 치킨이 어디에서부터 오는 지 너무 관심이 없었다. 그냥 누가 키웠겠거니, 누가 잡았겠거니, 누가 가공했겠거니 했다. TV 고발프로그램에서 정기적으로 어떤 음식은 뭐가 나쁘고요. 어떤 음식은 얼마나 비위생적이고요. 라는 내용을 방송해도 나는 뭐 여간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관심이 없었다. 한번쯤 관심을 가질 만도 한데 말이다. 그저 빨리 주문한 치킨이 배달되어 내 입과 귀와 눈과 속을 만족시켜 주기만을 바랐다.
하림. 하림 말은 많이 들었는데 저 정도 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저자의 표현대로 ‘하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시장 점유율 50퍼센트라. 수 조원대의 시장에서 점유율이 절반 이상이라는 것은 독점이다. 하림 마음대로 시장을 재편하고 구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개별 양계업자들의 처지를 보면 적확하게 알 수 있다. 단기적으로 소비자들에게는 좋다. 큰 기업 하나가 닭의 탄생에서부터 소비자의 입 속에 들어가는 직전까지의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나 이마트에 가서 생활에 필요한 모든 종류의 제품을 한 번에 구매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만약 모든 독립 양계업자들이 사라지고 난 후, 모든 동네 슈퍼와 식품점들이 사라지고 난 후의 상황은 소비자에게 결코 좋지 않을 것이다. 시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거대 ‘갑’이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시장의 판을 짤 것이니까 말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가서 사야 한다. 절대 ‘갑’을 제외하고는 원하는 제품을 구입할 수가 없게 될 테니까.
“100원에 울고 웃는 게 치킨 장사야. 말해 무엇해. 치킨 무값도 오르고 맥주 단가도 오르고, 안 오른 게 없어. 사실 각 점주들이 제일 화가 난 것이 이 부분일 거예요. 닭 값을 너무 올려 받는다는 거. 조류 독감이다 뭐다 해서 매출도 줄었는데 원료 값까지 오르면 정말 죽어나거든” (p.115)
월급 빼고 다 오른다. 는 허탈한 자조가 치킨집 사장님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을 확인하니 씁쓸하다. 장사에 필요한 거의 모든 재료와 물품의 값은 오르는 데,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뜯어가는 각종 값은 천정부지로 오르니 말이다.
“2010년 12월 9일, 롯데마트는 전국 82개 점포에서 후라이드치킨을 한 마리당 5,000원에 판매한다는 대대적인 광고를 했다. 이 치킨은 이른바 ‘통큰치킨’” (p.118)
제발 좀 작작 해주기를 바란다. 굳이 치킨사업 하지 않아도 잘 나가고 돈 잘 버는 사람들이 왜 마지막 서민 영세업자들의 운동장까지 뺏으려 하는 지... 이미 그 운동장은 적정 수용 인원을 훌쩍 넘겨 버린 상태인데도 말이다.
한시적으로 끝난 이벤트이지만 롯데마트는 ‘통큰OO’이라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브랜드 가치를 얻었다. 롯데마트가 교묘한 상술로 획득한 브랜드 가치를 보고 다른 대형회사들은 가만히 있을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 마음만 먹으면 롯데마트의 ‘통큰OO’과 같은 것들을 수시로 할 수 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것이다.
우리도 먹고 살고 치킨집 사장님들도 먹고 살자.
가능하면 배달앱 통해서 주문하지 않고 하나 더 없으면 도저히 치킨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치킨무 공짜로 달라고 생떼 부리지 말고 평소보다 조금 더 튀겨졌거나 조금 덜 튀겨졌거나 평소보다 닭이 좀 작은 것 같거나 양념이 좀 덜 묻은 것 같아도 득달같이 전화해서 따지지 말고 한 번 쯤은 넘어 가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니까 말이다.
당신도 먹고, 나도 먹고, 치킨집 사장님들도 먹고
* 이 리뷰는 알라딘 신간평가단에서 투표를 통해 추천된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