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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피드백의 기술 - 밀어붙이는 피드백에서 끌어당기는 피드백으로
더글러스 스톤 & 쉴라 힌 지음, 김현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뒷담화가 넘친다.
자애롭고 은혜로운 아내님 덕분에 쉬는 날이면 노트북을 싸
들고 밀린 서평을 쓰느라 카페로 향한다. 내가 자주 가는 카페는 세 군데다. 세 군데를 랜덤으로 다닌다. 자리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고 커피
주문을 하는 기준은 단 한 가지.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멀티 플레이가 불가능한 나는 노트북으로 한글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작업을 하지 못한다. 한글 작업을 하면서 음악을 듣다 보면 어느새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노래 가사를 타이핑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어폰만 귀에 꽂은 채 작업을 한다. 이어폰이라는 것이 음악을 듣지 않은 채 꽂고 있으면 꽂지 않은 것보다는 주위 소음이 차단되지만 잠시,
집중력이 떨어지면 금세 귓구멍과 이어캡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커플이 나누는 달콤한 밀어(蜜語)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가장 참기 어려운
소음은 아주머니들의 뒷담화다. 그들의 내밀한 일상과 시댁 어르신들과 남편님들과 지독스럽게 말 안 듣고 공부 안 하는 자제분들의 일상까지, 의도치
않게 듣게 된다. 귓구멍과 이어캡 사이를 밀봉하거나 문맥에 전혀 상관없는 노래 가사가 갑자기 타이핑되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음악을 재생하지
않는 이상, 아주머니들의 뒷담화를 피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그 아주머니들의 뒷담화가
떠올랐다.
뒷담화의 대상이 되었던 그 시댁 어르신들과 남편님들과
자제분들이.
만약, 그 아주머니들의 질펀한 뒷담화를 옆 테이블에서
몰래 녹음해 대상자들에게 들려 드린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뒷담화에 인색하다. 모두들 뒷담화를 하지만
자기가 그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싫어한다. 왁자지껄 뒷담화를 나누다 참기 어려울 만큼 화장실에 가고 싶지만, 참는다. 참아야
한다.
직장에서도 이런 일은 일반적이다.
“네가 하는 행동 중 어떤 것이 직원들의 학습을 방해하는
걸까?”
“직원들의 학습을 방해하다니? 농담하는 거야?”
“나의 어떤 행동이 직원들의 학습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p.412)
360도 피드백 평가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360도
피드백 평가가 다면평가 정도로 해석된다면 그건 해본 적이 있다. 그때는 다면평가도 흔하지 않아서, 동료들끼리 낄낄거리며 설문조사 하듯이 했던
것이 전부다. 현재 직장에서 360도 피드백 평가를 해본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더 현장감 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피드백에 대한 무지와 편견은 오해를 낳는다. 나는 정말
잘하고, 잘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그런 피드백을
부하직원들로부터 듣는다면 화부터 날 테고, 상사에게 듣는다면 억울함이 치솟을 테다. 360도 피드백 평가를 통해 알게 된 나에 대한 ‘전혀 다른
동료들의 생각’에 대해서 당장 직장에서는 반응하지 못한다. 집에 돌아오는 퇴근길에, 욕실 안에서 샤워기를 틀어 놓은 채, 잠자리에서 뒤척이며
곱씹고 곱씹는다.
‘왜 그럴까?’
‘그 사람은 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피드백의 효과를 높이려면 직장에서건 가정에서건 피드백을 ‘받는 사람’에게 초점을 둬야
한다. 즉 우리 모두가 좀 더 노련하게 학습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p.15)
나에게 피드백을 준 사람에게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근데
이게 어려운 일이다.
‘아~ 저 사람은 나를 저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내가 오해했네. 참 안타까운 일이네.
내가 더 노력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성인군자도 아니고 말이다.
저자는 학습의 필요성을 이야기 한다.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선물해 주는 것도 아니고 타고나는 천성도 아니다. 학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이것은 위로다. 새롭게 배우고 익히면 될
일이니까.
‘나는 글러 먹었어. 안 될 거야.’ 가 아니니까.
“당신이 피드백을 주거나 받는 주된 목표가 무엇인가? 조언인가, 평가인가, 인정인가?
개선을 원하는가? 평가를 원하는가?” (p.67)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피드백의 정확한 방향이다.
아무리 훈련을 많이 하고 연봉을 많이 받는 투수라 할지라도 중요한 경기, 중요한 순간에, 정확한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투수가 정확한 방향에 공을 던져야 하는 것처럼 내가 주는 피드백과 내가 받는 피드백에 대한 반응은 정확해야 한다. 주고받는 피드백이 상대와
일치하면 금상첨화다. 저자는 대화를 하는 동안 이것을 주기적으로 확인할 것을 주문한다. ‘나는 지금 너에게 조언을 하는 거야, 네 귀에 조언처럼
들리니?’ 확인하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대화의 기술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성장환경이나 기질의 특성 상 상대와의 원활한 대화가 어려운 사람도 분명히 있다. 반대로 너무 쉽게 대화를 풀어내는 껍데기뿐인 대화를 남발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많은 횟수로 주고받는 직장이나
가정에서의 피드백은 중요한 만큼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기 싫어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듯이,
부정적인 피드백도 피하고 싶은 것이 일반적일 테니까 말이다.
“누가 당신을 볼 수 있을까? 모두가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당신이다.” (p.123)
“당신에게 주어지는 당신에 관한 정보도 피드백에 포함된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피드백은
우리의 경험과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는 방식, 즉 인생을 배워나가는 방식을 뜻한다.”
(p.12)
당연한 진리를 모른 채 살아간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당연히 ‘나’라고 생각하니까. 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딱 두 부류다. 엄마.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
이것도 정말 쉽지 않다.
세상 어느 누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할까? 삽십이 넘고 사십이 넘어도 여전히 어머니의 똑같은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을 누가 좋아할까? 발가벗은 채 시내 번화가 한
가운데 서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을 누가 곧이곧대로,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이거 정말 중요하다.
꼭 내 모습이나 내 행동의 특정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서,
바꾸기 위해서 성인군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혹독했다던 공산주의 치하, 총살형만큼 치욕적이고 무서웠다는 ‘자아비판’정도를 요하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 동아리나 선교단체, 교회 청년부 같은 곳에서는 내 얘기, 네 얘기를 많이 주고받는 편이다. 그래서 내 얘기를 듣고 남 얘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 보다는 익숙한 편이다. 첫 직장에서 신입사원인 나를 많이 도와주고 챙겨주던 선배가 있었다. 이런
선배만 있으면 직장생활 참 좋다. 정도까지 생각될 만큼 나에게 잘해주던 선배다. 어느 날 그 선배와 둘이 속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내게 익숙한 방법으로 내 얘기를 쏟아냈다. 내 얘기를 듣기 전에 그 선배도 직장생활의 어려움, 당시 결혼을 앞두고 있던 터라 결혼준비에 대한
고민 등을 토로했다. 선배가 5분 정도 얘기를 했다면, 나는 20분 정도는 넘게 내 얘기를 쏟아냈다. 그리고 난 후 자리를 파할 때쯤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그런 얘기 나 같은 다른 사람한테 하는 거 어렵지 않냐?” 현실의 어려움, 고민들에 대해서는 많은 대화를 나눠 봤지만 정말
자신만의 고민이나 어려움, 과거의 상처 같은 것들을 들어본 적이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그 선배는 그런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 충격이었고, 나는
내게 익숙한 방식으로만 생각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책에서도 줄곧 강조하는 바, 피드백을 주고받는 모든
경우와 상황에 있어서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냥 내게 익숙한 방법, 내게 편한 방법으로 피드백을 주고 또 받는 것이
아니라. 피드백이 오고 가는 중에도 계속해서 그(그녀)를 이해하기 위해서, 좀 더 정확하게 전달되고 전달 받을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피드백과 당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라.”
“저는 애매한 건 딱
질색입니다. 정말로 솔직하게 구는 게 좋습니다. 제가 마음을 다칠까 봐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상처받지 않습니다.”
(p.395)
나 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피드백 방법이다. 나는 에둘러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당연히 우유부단하고 뜨뜻미지근한 대화도 싫어하고. 물론, 내가 직설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듣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 차이의 정도가 크지는 않지만 솔직한 고백이다. 하지만 내가 불편하다고 해서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편치 않지만 정확하게
얘기해주고 평가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이제까지의 짧은 인생의 경험을 되돌아볼 때, 관계에서의 짧은 따뜻함과 원만함을 위해 두루뭉술 덮어두고
지나가는 일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직설이 주는 당장의 차가움과 어려움은 결국 도움이 된다. 어려움도 있다. 종종 나로 인해, 내가 해
준 말과 피드백으로 인해 상처를 받거나 마음의 아픔을 겪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나는 진심으로 사과한다. 사과를 하고 난 후 그럴
의도가 없었음을 말한다. 그리고 난 후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는 경우도 있고, 나의 사과가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결국 나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해 나가고 모두를 껴안고 살 것이 아니라면 정확한 직선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당신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해줄
것을 부탁해보자. 그들이 무엇을 제안하건 무조건 시도해보기 바란다. 당신이 조직 내에서 하는 일이 무엇이든 당신은 당신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p.446)
부탁하는 거 쉽지 않다. 부탁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런
부탁을 받은 사람도 힘들다. 해본 적이 없으니까. 일단,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어떻게 말 잘하고 피드백 잘 해드려서 인사고가에 잘
반영될까? 어떻게 말 잘하고 피드백 잘 해줘서 나를 믿고 따르는 부하직원 한 명 더 늘려볼까? 어떻게 말 잘하고 피드백 잘 해줘서 나를 더
좋아해 줄 친구를 만들까? 하는 생각으로는 서로를 갉아먹는 피드백에 불과하다. 너를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를 이해하기 위해
나를 나보다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