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창비에서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 <라디오 책다방>을 챙겨 듣는다. 활자로만 보던 작가와 저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꽤 재미있는 일이다. 문학에서부터 인문,사회,예술 분야의 책까지 다양한 작가와 저자가 출연한다. 지난 주 방송에는 「차남들의 세계사」를 쓴 이기호 작가가 출연했다. 마침 그 책을 얼마 전에 읽은 터라 방송 처음부터 끝까지 귀를 쫑긋 세운 채 집중해서 들었다. 「차남들의 세계사」는 굴곡진 한국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밀어내며 살아간 한 사내의 기막힌 블랙코미디를 그려낸 작품이다. 책을 읽는 내내 웃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한, 복잡오묘한 감정선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이기호 작가의 작품을 처음이었고, 포털 검색으로라도 한 번도 그의 이름을 입력해 본 적이 없던 터라 팟캐스트 방송에서 전해오는 작가의 목소리는 고스란히 직전에 읽었던 그의 활자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 같았다. 새롭게 책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작품의 소재나 내용과는 사뭇 다른 작가의 목소리가 가장 특징적이었다. 나긋나긋 하고 여리여리 하고 바람이 불면 툭 넘어질 듯, 쿵 하고 떨어지면 바스러질 듯한 목소리라고나 할까. 방송을 진행하는 김두식 교수와 황정은 작가의 목소리 톤 자체도 여린 편인데도, 두 사람이 고래힘줄 마냥 큰소리를 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이기호 작가의 목소리는 작고 여렸다. 그의 작품을 미리 읽지 않고 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목소리만 들었다면 소설을 쓰는 작가보다는 서정시를 쓰는 시인이나 풍경화를 그리는 서양화가로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따뜻하면서도 애틋한 멜로드라마를 쓴 시나리오 작가로 생각했을 수도.

이기호 작가는 진행자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 중, 최근 작품「차남들의 세계사」를 쓰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자료 조사를 위해서는 그 시대를 다시 들추어 볼 수밖에 없고 소소한 웃음이 많은 작품이지만 전반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애틋하고 불쌍하며 엄혹하다. 독자로서 그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부터 끝내는 순간까지 참 힘들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기호 작가는「소년이 온다」의 한강 작가를 비롯한 최근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동료 작가들의 예를 든다. 미리 합을 맞추거나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밝고 유쾌하며 긍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작품보다 어둡고 슬프고 엄혹하며 과거 지향적인 작품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시대의 영향이다.

다른 예술의 장르들 중 소설이나 시를 쓰는 작가들은 유독 시대와 맞붙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문학을 하는 작가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땅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장함과 처절함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호흡하는 이들이 문학을 하는 작가들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2012년 가을에 이르러 내 생각은 미묘하게 변했다. 제대로 메시지를 송출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사는 사회 안으로 탐침을 깊숙이 찔러 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p.209)

 

베스트셀러 작가 김영하의 이번 작품 「보다」의 탄생도 그랬다. 잠시 떠난 외국에서도 들려오는 코미디 같은 고국의 상황은 전기충격기를 맞댄 살 떨림 같이 작가의 폐부 깊숙이 찔러 들어갔다.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그들의 얄궂은 운명이야 독자인 우리가 보듬어야 할 오지랖은 없다. 하지만, 그런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필요는 있다. ‘뭘 해도 안 될 거야.’, ‘어쩌면 저 치들이 말하는 게 진짜인 지도 몰라.’ 라며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 문학을 탐해야 한다.

서두를 무겁게 시작하다 보니, 이 책도 무거운 얘기 일색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책은 김영하 작가의 짧은 생각을 모은 에세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어렵지 않고 복잡하지 않으며 무겁지 않다.

시대를 날카롭게 꼬집는 비판이나 짙은 정치적 색채도 없다.

다만, 예민하고 예민한 작가의 눈과 비치고 피부에 부딪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풀어 놓았다. 개인적으로는 각 에세이마다 제목을 정말 잘 붙였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철학적·거시적 담론이나 수십 시간 떨어뜨린 더치커피 같은 농축된 그런 멋들어진 제목도 아니다.

 

 

“이 모든 군상을 싣고 오늘도 기차는 설원의 소실점을 향해 무정하게 달려간다.” (p.38)

 

<머리칸과 꼬리칸>이라는 제목의 마지막 문장이다. 영화『설국열차』에서 편집당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가상으로 만들어 낸 에세이 속 단편소설이라 봐도 무방하다.

“이제는 애원해도 소용없겠지~ 변해버린 당신이기에~” 좋아하는 노래, <무정부르스>의 첫 가사다. 결국은 소실(燒失)할 인간의 군상과 욕망이, 무정하게 소실점(消失點)을 향해 달려간다. 시적이다. 뭔가. <무정부르스>를 부른 가수 강승모의 목소리는 슬프다. 처음부터 “소용 없겠지”다. 이미 “변해버린 당신”을 붙잡아봐야... 1절의 마지막 가사는 “미련 없이 가야지”다. 그래. 미련 없이 가는 것이다. 사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을 만큼 처절하고 힘겨운 하루하루다. 내가 타고 있는 기차가 설국열차인지, 파국열차인지 고민해 볼 겨를도 없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영화상의 열차를 탄 이들의 하루하루도 투쟁의 반복이다. 실제의 세상도 똑같다. 그렇다면 차라리 미련 없이 가는 게 맞다. 저런 사람도 있고 이런 사람도 있고, 자식 잃은 부모가 무릎을 꿇고 애원해도 눈길 주지 않는 사람도 있고, 자식 잃은 부모들이 경찰과 경호원의 벽을 겨우 기대 울며불며 사정해도 투명인간 취급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같이 가야 한다. 같이 무정한 기차에 올라타 있다. 이미.

현실이다.

    

 

“우리의 내면은 언제 틈입해 들어왔는지 모를 타자의 욕망들로 어지럽다. 그래서 늘 흥미롭다. 인간이라는 이 작은 지옥은.” (P.75)

“누군가에겐 선택의 여지없이 닥치고 받아들여야 하는 상태가 누군가에게는 선택 가능한 쿨한 옵션일 뿐인 세계. 세상의 불평등은 이렇게 진화하고 있다.” (p.31)

 

<인간이라는 이 작은 지옥>이 모이고 모여, 인두겁을 쓴 거대한 파국열차의 쇳덩어리를 굴러가게 한다.

<세상의 불평등이 진화하고 있다>는 별스럽지 않은 듯 참담한 현실은 정말 슬프다.

<>에 들어 간 문장들은 짧지만 여운은 길다. 한참을 생각하게 한다. 이것 또한 작가의 힘이라 생각된다. 짧은 문장으로 시대를 비유하고 은유한다.

작가 김영하는 에세이를 통해 시대의 속살과 조응한다. 허투루 표현하거나 남루한 미사여구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미건조하고 심각하지만은 않다. 이것이 이 책을 통한 작가의 메시지를 강하게 뒷받침한다. 피하지 않고 보는 괴로움이 전해진다. 이런 것들이 독자가 작가에게 기대하는 것이리라.

파국열차에 올라탄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이렇게 무겁지 않은데, 병인가 보다. 도착적 비관주의 서평가. 도착적 비관주의에서 도착적 현실주의로 바뀌었으면 한다.

 

    

 

추신.

사람들이 책값을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다. 과다경쟁과 적은 이윤율로 출판계가 공멸하고 사람들은 책이 없는 상황에 익숙해지고, 그리하여 책이 더 이상 필수품이 아니게 된다면 말이다.” (p.162)

    

<패스트패션의 시대의 책>라는 제목의 에세이다. 도서정가제 시행을 앞두고 말이 많다. 나도 생각이 많다. 전 세계 어떤 나라보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정책을 옹호하고 떠받든다는 나라에서, 왜 작고 작은 출판시장에 개입하려 드는지 모르겠다.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는 표면적 이유야 선수들이라면 언론에 보여주기식 이유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는 터, 도대체 누구를 위해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는 지 정말 궁금한 지경이다. 결국 나중에야 알게 되겠지. 도서정가제로 인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주체가 누구인지 말이다.

분명한 것은, 그 주체의 대상으로 각 출판사나 동네 작은 서점들은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 정도?

이것도 파국열차의 한 칸 인가?

왠지 으스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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