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지음 / 박하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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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토목건축가였던 박자청은 경회루를 건축했다. 박자청은 노비 출신이다. 그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새삼 노예제가 공식적이었던 세상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생각했었다. 노예제가 없어진 현재를 사는 나는 도무지 상상할 래야 상상할 수 없는 시대다. 단지 양반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과거에 응시할 수도 없으며 돈도 벌 수 없고, 무엇보다 노비가 낳은 자식은 계속해서 노비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시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절망이다. 조그만 희망의 빛조차 없는 시대를 살았던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그래서 가슴 아프다.

 

 

장영실.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교과서에 실린 몇 줄 정도의 설명 정도만 알고 있던 인물이다. 세종대왕을 도와 측우기, 해시계, 혼천의를 발명했다 정도?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지녔던 최초의 질문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세종대왕이라는 인물을 만난 것이 장영실이라는 인물의 행운일 수도 있지만 임금을 도와 만든 발명품들이 모두 획기적이고 혁명적인 것들이다. 그 정도의 인물이 우리의 역사에 흔하지 않다. 아니, 흔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전무후무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장영실을 잘 알지 못한다. 처음 작가가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이유가 실록에 실린 장영실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 시대 최고의 과학자요 세종의 오른팔 중의 오른팔이었던 장영실이 말직에서나 맡았을 가마를 만드는 일을 했고, 그 가마가 부러지면서 파직 당했다는 것. 자세하게 실록을 들여다보거나, 장영실이라는 역사속 인물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닌 나와 같은 사람들은 쉽게 생각한다. ‘아~ 장영실이라는 사람 대단한 사람이구나. 잘 먹고 잘 사셨겠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한복 입은 남자」라는 그림에서 작가의 상상과 작품은 시작된다. 일본에 끌려 간 조선의 어린 소년이 유럽인에 의해 노예로 팔려 나가고 그 소년을 그렸다는 정설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림 속 인물의 의복과 그림의 좌측하든 구석에 희미하게 그려진 동양의 배.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세계의 역사는 새로 써져야 해.” (p.468)

 

 

소설 속 내용이 사실이라면 정말 역사는 새로 쓰여야 한다. 소설에서 이 문제를 파고들어 실마리를 푸는 진석과 같은 사람이 실제 한다면 말이다. 물론, 중세 피렌체로 건너간 장영실일지도 모를 조선인의 이탈리아 후예가 실제하고 그가 지닌 선조의 기록을 현재의 글과 언어로 해석해 낼 진석의 친구, 강배와 같은 인물이 실제 한다면 말이다. 책을 읽지 않고 이 서평만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이런 종류의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최초 작가의 의문과 소설을 통해 풀어내는 전개에 푹 빠져 든다. 저자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이 책은 오랜 기간 동안 쓰였다. 소설의 소재와 내용 전개가 주는 허무맹랑함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사료 조사에도 충실했다는 흔적을 책을 읽는 내내 지울 수 없었다.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 역사적 고증과 관련된 전문가가 나오는 데, 실제로 작가가 만나서 인터뷰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로 사실적이다.

그리고 책이 재미있다. 이런 종류의 역사 픽션이 줄 수 있는 당혹스러움에서 벗어나 있다. 만약 철저한 사료 조사나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지 않았더라도 순전히 작가의 필력만으로도 작가의 다음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다.

 

 

 

“두 사람이 함께 배를 타고 항해에 나섰다는 사실은 상상만으로도 흥미진진하군. 조선의 위대한 과학자와 콜럼버스를 넘어서는 위대한 항해가의 만남이라니.” (p.265)

“영실이 피렌체에 정착한 지 어느덧 1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영실의 가르침을 받은 다빈치는 천문과 기계설계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p.436)

“역사적인 만남은 1459년 어느 늦가을에 이루어졌다. 당시 다빈치는 7살이었고, 장영실은 50대 후반의 나이였다.”

 

 

노비였던 장영실은 동래 관아의 오랜 가뭄을 해결한 공로로 궁에 들어가게 된다. 시련을 뚫고 임금의 총애를 받는 조선 최고의 과학자, 실학자가 된다. 뭐, 늘 그랬지만 세종 시절에도 임금이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최우선으로 하였던 반대파들의 정치적 견제가 심했다. 조선만의 문자를 만들고 조선만의 월력을 갖고 조선만의 군사무기를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기술은 있고 의지도 있지만 사대국인 명나라의 눈치를 피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숨겨야 할 일은 더 드러나는 법. 명나라의 견제와 감시를 받게 된다. 급기야 조정 내 반대파와 조선에 들어와 있던 조선인 출신 명 황제의 환관의 음모로 장영실에 의해 펼쳐지던 과학조선의 꿈은 수포로 돌아가기 직전이었다. 급기야 자객을 이용해 쥐도 새도 모르게 장영실을 죽이려 했다. 세종은 장영실을 위해 장영실을 놓아주기로 한다.

역사적 인물인 ‘정화원정대’의 정화대장과 물밑으로 연락을 취해 그를 통해 장영실을 조선에서 탈출 시킨다.

장영실과 정화, 다 빈치의 생애가 묘하게 섞이며 그럴 듯한 개연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핵심이자 묘미다.

세상의 끝을 탐험하려는 원대한 꿈을 꾸던 정화대장의 희망이 꺼져갈 무렵이었고 명나라 황실을 피해 피신해 있던 정화대장에게도 장영실의 합류는 대단한 힘이었다. 이미 세상 최고의 과학 기술을 보유한 장영실과 함께 그의 원대한 꿈을 마무리 하려 한다.

그리고 아라비아반도를 지나 이탈리아 반도에 이른다. 거기서 교황을 만나고 또 다사 위험에 빠지지만 피렌체까지 이르게 된다. 거기서 장영실은 다 빈치를 만난다. 정화대장은 또 다른 원정을 떠난다.

이것이 소설의 줄거리다.

 

 

 

“15세기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이 유럽으로 건너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교류를 했다? 더구나 자신의 초상화까지 비망록에 버젓이 남겨놓았다? 그것도 당시 유럽 최고의 화가의 손을 빌려. 증거를 눈앞에 두고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과연 세상사람 누가 믿어줄 것인가.” (p.92)

“비차와 다빈치라...” (p.15)

 

 

책을 읽고 나서 장영실의 발명품과 다 빈치의 발명품을 찾아보았다. 정말 유사한 점이 많았다. 흡사 두 사람이 공동으로 발명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시대와 공간을 뛰어 넘어 비슷한 생각과 발명을 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만 그 가능성 정도가 아니라 정말 유사했다.

 

 

 

“이거 우리 가문, 중요한 문서입니다. 우리 조상님 다이어리에요.” (p.48)

 

 

사실 이 모든 개연성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엘레나 꼬레아가 진석에게 건네 준 다이어리다. 장영실이 후손에게 남긴 기록이다. 일종의 일기다. 피렌체에서 생을 다한 장영실은 이탈리아인과 결혼해 후손을 낳았고 이탈리아 반도 어딘가에 그의 후손이 살아 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소설 속 후반부 내용이 실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빈치, 어디를 가더라도 절대 내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 내가 가르쳐준 지식은 너 혼자 연구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나에 대한 자료를 모두 지우도록 해라.” (p.439)

 

 

이 부분은 좀 아쉬운 부분이다. 굳이 장영실이 다빈치에게 “나에 대한 자료를 모두 지우라”고 했다는 내용이 필요했을까 싶다. 그런 말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중세유럽의 아귀다툼을 이겨내야 했었을 다빈치에게는 장영실의 존재를 알리기보다 당장 살아남는 일이 시급했을 것이다. 제후의 맘에 들어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중세유럽 예술가의 숙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장영실의 최후와 그의 기록이 여전히 알려지지 않는 이유를 독자의 궁금증으로 남겨 두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렇다 해도 이 책은 충분히 재미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장영실과 다빈치의 관계, 장영실의 최후를 꼭 밝혀야 해!!”라는 무리한 음모론을 제시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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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 - 암을 치유하며 써내려간 용기와 희망의 선언
이브 엔슬러 지음, 정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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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까지 추적추적 오는 오늘, 내 아버지는 또 일산 암센터로 가고 계신다. 벌써 몇 번째 인지 셀 수조차 없다. 지난 해 10월 암센터에서 퇴원한 후 3개월 만에 다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저혈압과 패혈증 초기 증상으로 인한 쇼크로 본가 근처 병원 응급실에서 앰뷸런스 타고 일산 암센터로 입원했다. 한 달이 넘는 입원 기간 동안 아버지를 간병하신 어머니는 허리와 무릎, 어깨가 망가졌다. 그래도 치료를 받고 내려 오셔서 본가에서 회복중이셨기에 시간이 지나고, 계속 본가 근처 병원에서 감염치료를 받으면 천천히 회복할 것으로 희망했다. 그런데, 아버지 몸속에 있는 농양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더 이상 약이 들지 않아 더 큰 병원으로 입원해서 외과적 치료(수술, 시술)를 받으라는 담당의사의 상담을 받은 것이 그저께다. 동생이 휴가를 내 경북 포항에서 경기도 일산까지 부모님을 모시고 갔다. 지난 연말부터 지금까지 정말 나는 정신이 없다. 안 좋은 일은 겹쳐서 온다는 말을 남의 일로 생각하고 흘려들었는데, 겹쳐서 와도 너무 겹쳐서 잔인하게 내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나름 열심히 살고 나름 신실한 신앙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힘들다. 하늘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고 원망을 쏟아냈다. 아주 작은 반응이라도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그저 내 바람 만 흩날릴 뿐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다. 8년 째 투병 중이신 아버지 간병은 어머니가 전적으로 맡아 하신다. 지난 입원 기간 동안 어머니가 너무 힘드셔서 간병인을 알아봤다. 장루를 차고 오랜 항암치료와 양성자치료로 하반신 근육이 대부분 없어져 제대로 걷지를 못하는 아버지를 맡겠다는 간병인은 없었다. 정해진 간병비 이상을 주겠다고 해도 모두 손 사레를 치며 도망가듯 병실을 나갔다. 나는 대구에 살고 있고, 동생은 강릉에 살고 있다. 본가는 포항이다. 나와 동생은 대구와 강릉에서 일산과 포항을 오갔다. 내 아버지, 내 부모니까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이다. 8년 째 아버지를 간병하시는 어머니를 두고 힘들다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참 힘들다. 신이 내 기도를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

 

이 책 「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를 읽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요즘 같이 심신이 모조리 상실된 힘든 상황에서 책을 읽고 기한에 맞춰 서평을 쓰는 것 자체도 힘들지만 저자인 엔슬러가 책에서 표현하는 항암·화학치료의 과정에 너무 세세하고 너무 공감이 되는 것이 더 힘들었다. 2번의 수술, 3번의 시술, 3번의 항암치료와 1번의 양성자치료, 지금까지 진행 중인 농양치료…….

 

 

“나는 사투를 벌이고 있다. 내 주머니는 권총집이다. 그 안에는 농양과 배설물이 아니라 총이 들어 있고, 그것을 재빨리 꺼내 슬론-케터링을 겨누고는 탕! 총을 발사한다.” (p.102)

“살고 싶어요, 뎁. 살고 싶다고. 죽기 싫어.” (p.219)

 

 

이렇게 힘든 매일 중, 지난 주 금요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모님은 입원 중이시고, 동생은 중요한 진급시험이 있어 알리지 않았다. 아버지 병원 입·퇴원 일로 여러 번 휴가를 냈던 터라, 눈치가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3일 동안 친지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아버지 때문에 니가 고생이 많다. 그래도 환자가 제일 고생이다. 얼마나 힘드시겠니?”

 

 

맞다. 아버지는 얼마나 힘드실까? 당연한 것인데 쉽게 까먹고 있었다. 병원 냄새만 나도 속이 뒤틀리는 아버지가 가장 힘드실 텐데, 그런 아버지를 가장 가까이서, 가장 오랫동안 지키고 계시는 어머니가 가장 힘드실 텐데……. 생각하면서 전혀 좋아지지 않은 나를 둘러싼 어려움에서 잠시나마 탈출해 본다.

 

 

이 부분을 읽으며 멈췄다. 엔슬러가 겪은 고통과 참담함과 절망을 고스란히 아버지가 겪으셨을 것을 생각하니,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맞다. 나는 그 고통의 100분의 1도 가늠할 수 없다.

 

 

 

“내 인생 초반의 많은 부분을 이렇듯 비몽사몽 상태에서 보냈다. 그 상태에서는 한밤중에 아빠가 내 침대로 찾아올 때마다 시달렸던, 엄마를 배신했다는 뒤틀린 고통과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다.” (p.32)

“또한 나는 계속해서 섹스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이였다. 섹스를 하면 고통이 완화되었는데, 나는 거의 항상 고통스러웠으므로 엄청나게 섹스를 해야 했다.” (p.149)

“나 자신의 오만함과 반항, 독선으로 엄청난 기회를 모두 잃어버렸다. 술과 마약을 끊는 것이 내가 평생 한 일 중 가장 힘든 일이었다.” (p.152)

 

 

암이 발병하기 전, 엔슬러의 인생 초기는 불행이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성적 학대와 폭력은 고스란히 상처로 그녀의 몸에 새겨졌다. 쉽게 치료하거나 지워 내거나 도려낼 수 없는 상처로. 평생을 고통 받아야 할 폭력이 다름 아닌 아버지로부터였고, 그 폭력과 상처에서 자신을 지켜줘야 할 어머니는 딸을 방치했다. 그녀가 기댈 수 있는 것과 곳은 아무도, 아무데도 없었다. 상처로 인해 너덜해진 자신의 몸뿐이었다. 그 몸을 향해 가학적 주사를 꼽아 넣었다. 술을 밀어 넣고 마약을 쏟아 부었다. 자신의 생식기로는 온갖 남성의 생식기를 받아 냈다. 마음대로 몸을 내버려뒀다.

 

 

“당신은 아주 많은 일을 해왔어요.”

“하지만 환자였던 적은 한 번도 없으셨죠. 이제 환자가 되는 법을 배우셔야 해요. 당신에게는 좀 어려울 거예요.” (p.82)

 

 

다행히 절망의 구렁텅이 나락 끝으로 떨어지기 전, 정신을 차렸다. 마약과 술을 끊어내고 자신의 몸에서부터 자신의 몸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처럼 폭력과 강간, 차별과 야만의 한 가운데로 내 몰린 여성들을 향해 자신의 몸을 던졌다. 각종 시민단체에서 왕성한 활동가로 살았다. 베스트셀러「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출간했다. 여성으로써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수많은 여성과 남성들에게 고민거리를 던졌다. 암 발병 전까지 그녀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그녀의 몸을 던져 넣었던 것은 콩고의 여성들이었다.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벌어진 내전과 콩고를 둘러싼 이해 집단(국가, 기업 등)들 간의 전쟁으로 피해를 본 것은 콩고의 여성들이었다. 수많은 여성들이 전쟁으로 인해 강간을 당하고 그 강간으로 인해 잉태된 생명을 낳아야 했다. 한 번 강간을 당하고 그만이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무자비한 폭력이 동반된 강간으로 인해 입은 질병과 상처를 치유하고 치료할 길은 없었다. 엔슬러는 콩고의 피해 여성들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재확인하고, 그 여성들을 돕는 것으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갔다. 그러다가 암이 발병했다.

이제는 환자가 되는 법을 배우라는 의료진의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암환자를 가족으로 두고 있는 내게 이 책의 내용은 참 힘들었다. 엔슬러가 표현한 고통과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냥 ‘아~ 정말 힘들었겠다. 아팠겠다.’정도가 아니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 마취에서 깨어나 끝을 알 수 없는 고통 속으로 빠져드는 아버지의 절규가 귓가에 다시 들렸다. 힘들었다.

 

 

“포트를 빼낼 때가 되자 간호사들은 기뻐하며 내게 와서, 최근 2년 동안 자신들이 포트를 삽입하고 또 제거한 사람이 내가 유일하다고 말한다.” (p.202)

 

또 한 번 다행히 엔슬러는 항암·화학치료를 잘 견뎌냈다. 회복이 되기 전 콩고로 다시 날아간 것이 걱정되었지만, 그래도 참 부러웠다. 암이라는 것이 워낙 고약한 병이라서 재발하는 가능성이 크다. 내 아버지가 그랬듯이. 엔슬러씨는 재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재발해 또 다시 입원하고 수술하고 치료하고 회복하는 과정 또한 이 책에서 다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우니까. 나는 알고 있으니까.

재발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내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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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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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씨와 함께 나온 방송에서 처음 본 김정운씨의 인상은 정말 별로였다.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심술이 가득한 인상도, 파마 머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은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하무인. 자기가 모조리 옳다는 투로 말하는 방식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영남씨도 평소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분야가 인문학 도서와 클래식 음악, 서양화, 동양화였는데, 그런 소재가 아니었다면 나는 바로 채널을 돌렸을 것이다. 그래도 그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 받은 고바야시 타끼지의 「게 공선」이 너무 재미있었다. 진행을 한 여자 아나운서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좋은 소재와 주제였다 해도 나는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김정운씨를 TV에서 보지 못했다. 평소 별로 좋아하지 않던 인물이었던 터라 관심이 없었다. 이 책을 통해 몇 년 만에 김정운씨를 만났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문제에 대해 서로 목소리 높여가며 이야기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는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니, 남는 것은 동물적인 공격성, 분노, 적개심뿐이다.” (p.161)

 

 

역시 사람은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알 수 있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한 것은 아니지만 방송에 나온 김정운씨보다는 훨씬 나았다. 별로 싫지 않았다. 물론, 김정운씨가 쓴 책 한 권 읽고 당장 김정운씨가 좋아진 것은 아니다. 방송에서 보인 모습과 그가 쓴 글은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부정적인 면이 많이 사그라진 것 같다. 오히려 방송에서 보인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책에서 보였다면 나는 더 싫었을 것이다. 출판사에 책을 다시 보내줬을 것이다. ‘이 책 도저히 못 읽겠어요. 가져가세요.’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는데 일견 선입견을 가지고 계속 김정운씨를 판단한 것이 아닌 가 싶었다. 사회심리학을 전공한 학자답게 그가 내린 한국사회에 대한 진단은 꽤 정확하고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소통의 문제는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제오늘일도 아니다.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기에 더 골치 아픈 문제다. 나는 술을 마시는 식당에 갈 때마다 이것을 강하게 경험한다. 너무 시끄럽다. 특히 막창집, 삽겹살집 같은 곳. 가족단위로 식사를 위주로 하러 오는 식당은 덜하다. 오로지 술을 먹기 위해 가는 곳은 엄청나게 시끄럽다. 아저씨들이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흡연이 공공연하던 몇 년 전만 해도 그런 식당 안에는 자욱한 담배 연기와 자욱한 고성방가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평소 노래방이나 나이트가 시끄러워서 싫어하는 내게 이런 식당은 정말 최악이다. 굳이 듣기 싫어도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 탓에 옆자리에서 펼쳐지는 질펀한 욕지거리와 하소연을 모조리 들어야 했다. 그런 고성방가의 대부분은 욕이다. 욕. 말끔하게 차려 입은 아저씨들이 어떻게 그렇게 욕을 잘하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집에서, 직장에서, 출퇴근길에서 하지 못한 욕을 술과 함께, 담배 연기와 함께, 옆자리에서 자신의 고성방가를 참아내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욕을 쏟아낸다. 정말 남은 것은 동물적인 공격성, 분노, 적개심뿐이다.

어쩌면 이렇게 사회 곳곳에, 사람 각자마다 공격성과 분노와 적개심이 넘쳐나는 것일까?

 

 

“왜 한국 사람들이 이토록 분노와 적개심에 가득 차, 재미라고는 하나 없는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이 내 주된 관심이다.” (p.273)

 

 

사회심리학자인 저자는 이것이 궁금했다. 재미라고는 하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 책을 읽으며 생각해보니, 재미있을 여유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저자는 재미를 추구하고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를 삶의 화두로 가지고 있음에도 넘쳐나는 강의요청에 헬기까지 타고 다닌 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비판을 약간 가하기는 한다. 그런데, 정말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 저자처럼 잘 나가는 교수, 강연자들은 많은 돈을 받으면서 헬기를 타고 날아다녀 재미를 추구할 시간이 없을 테지만, 당장 다음 달 닥쳐 올 대출이자와 원금, 각종 세금과 공과금, 연말정산이라고 해봐야 토해내야 할 돈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는 김정운씨의 재미와는 많이 다른 것일 테다.

 

 

“맛있는 게 뭔지를 알아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삶의 재미와 행복이 뭔지 알아야 즐겁고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p.63)

“결국 나와 같은 철없는 중년들의 ‘김혜수의 가슴’에 대한 열광은 소통 부재의 불안과 재미없는 삶으로부터 도피하려는 퇴행적 현상인 것이다.” (p.66)

 

맞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하지만 누가 재미없게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재미있게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다. 적당한 돈을 벌고, 적당한 집에 살면서, 적당한 정도로 쉬고, 적당한 정도의 사람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은 모두의 바람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소수다. 애면글면 노력하고 온갖 수를 다 써도 매달 살아내는 것에 힘겨운 사람들이 많다. 적어도 어린 시절부터 큰 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김정운씨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아무리 심리학 공부를 많이 하고 좋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연구를 하고 논물을 쓰고 임상을 거쳐도 알 수 없는 부분이다.

김정운씨가 김선도 목사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이 책을 읽는 도중에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상을 치르는 중에 빈소에 광림교회 김정석 목사라는 이름이 적힌 화환이 있었다.

 

 

 

 

큰고모가 다니는 교회가 서울의 광림교회인데, 김정석 담임목사의 동생이 유명한 김정운교수라는 것이었다. 뜨악!!! 교회를 아들에게 세습해 넘긴 김선도 목사의 아들이란다. 그러고 보면 책에서 어린 시절 이야기가 별로 없다. 자신의 아버지가 노인임에도 종북세력을 향해 비판을 하시는 정정함을 보인다는 잠깐의 언급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잠깐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 형편이었다는 점이 언급되는 데, 갸웃했다. 광림교회 하면 한국의 대형 교회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교회인데, ‘아주 잠깐 어린 시절 가난했었나 보다’생각하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하지만 저자의 아버지가 김선도 목사고 교회를 아들에게 세습했고 다른 여러 가지 문제에 휘말렸던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저자인 김정운씨도 싫어할 필요는 없다. 그럴 수 있는 정당함도 없다. 최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책을 읽으려 노력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정신병리학에서는 ‘자폐증’이라고 한다. 폭탄주는 집단 자폐증상이다. 자폐증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아동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p.69)

 

 

앞서 언급한 술집에서의 고성방가와 똑같은 맥락이다. 빨리 취하기 위해 폭탄주를 마시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향한 가학성은 자폐증으로 치환된다. 심각한 일이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아니 취하지 않으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없고 줄담배를 피워낸 후가 아니면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현상은 분명 사회적 자폐증이다.

 

 

“충족되지 않는 감탄의 욕구는 욕구좌절이 된다. 욕구좌절은 심리학적으로 뒤집어져 분노가 된다. 적개심이 되고 공격성이 된다. 아, 이 아저씨들에게 감탄을 연발해주는 곳이 단 하나 있다. 룸살롱이다. 화려한 화장을 한 젊은 아가씨들은 밤마다 끝없이 외친다.” (p.321)

“어머, 오빠!”, “오빠는 왜 이리 멋있어?”

 

 

어머!! 오빠~! 멋있다. 대단하다~! 술도 잘 마신다~ 노래도 잘 하네~ 우와~

아저씨들이 어디서 이런 말을 듣나. 그나마 한국 중년 아저씨들의 욕구좌절에 의한 공격성과 적개심이 테러나 폭력적 일탈로 분출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유흥업소의 아가씨들 때문일 것이다. 아리따운 아가씨들에게 칭찬과 감탄을 듣기 위해 거리낌 없이 지갑을 열고 결제를 한다.

 

 

“우리는 감탄하려 산다.” (p.325)

 

 

맞다. 감탄하려 산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 들어 선 나를 향해 아내가 칭찬을 하고 감탄을 하면, 단번에 사라진다. 현관의 도어록을 누르기 직전까지 고민에 고민을 더해 다 죽은 얼굴을 하고 서 있다가도 아내의 감탄을 마주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해진다. 맞다. 생각해보니 나도 감탄을 갈구하고 감탄에 목말라하며 살고 있다. 나도 그렇고 당신들도 그렇다. 솔직하게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의 문제이지, 맞는 말이다.

나도 갈구하고 목말라하는 만큼 아내에게 그렇게 했느냐 생각해 본다. 부족하다. 오늘 저녁 도어록을 누르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쏟아낼 감탄을 연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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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행복 플러스 - 행복 지수를 높이는 시크릿
댄 해리스 지음, 정경호 옮김 / 이지북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지금 내 삶의 행복 지수에서 10%가 플러스 된다면 나는 행복할까? 장담할 수 없다. 지난 해 연말부터 시작된 골치 아픈 일은 도통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하나가 터지고 힘들게 봉합해 놓은 또 다른 하나가 불쑥 터져 버리는 통에 괴로운 연초다. 세상 일, 다른 사람 일 같은 것들에 신경 쓸 겨를조차 없다. 그나마 지금처럼 근근이 버티고 있는 힘은 오로지 주변 사람들 덕이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빠진 나를 향해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고 자기 일인 것처럼 발 벗고 나서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보고 생각했다. ‘정말 사람밖에 없다’라고. 기왕 자극적인 제목을 찾을 바에야 10%정도가 아니라 50%정도 플러스로 뻥튀기를 했으면 기분이라도 좋았을 테지만, 그건 거짓말이니까 어차피 없을 일이다.

이 책의 저자도 온갖 어려움과 고통, 고민과 갈등, 불안과 좌절 속에 있었다.

 

 

 

“‘항암제’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직후,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말았다.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면서 틱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p.17)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노이로제, 그리고 약물에 의존하려는 마음과 싸워가면서도 종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p.75)

 

 

그 어느 분야보다 경쟁이 치열하고 살아남기 위한 분투로 넘치는 TV방송, 그 중에서도 보도 분야에 몸담고 있는 저자는 늘 그런 것들과 싸웠다. 열심히 한 덕분에 지역 방송국에서 전국 방송국까지 스카우트 되고 주말 간판 프로그램 공동 진행자로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부러운 일이다. 매주 주말 TV를 틀면 나오는 사람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거의 동일할 것이다. ‘우와~ 저 사람 성공한 사람이네~ 잘 나가는 사람이네~’ 그런데 저자는 그렇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성공의 모델이 되었고, 그에 따른 부와 명예가 뒤따랐지만 내면적으로는 계속해서 헤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져 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을 ‘내 머릿속 목소리는 개망나니’로 할까 한동안 망설였다.” (p.7)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내 머릿속 목소리는 개망나니’로 할까 망설였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해결할 수 없고 떨쳐낼 수 없는 불안과 고민, 좌절과 갈등은 단지 마음속에서만 머문 것이 아니라 신체적인 반응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그것도 방송 중에! 생방송 중에 TV간판 리포터의 ‘틱 반응’을 본다는 것은 방송 사고다. 말끔하게 차려 입고 화장하고 머리를 만진 방송인이 갑자기 생방송 중에 틱을 한다?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이다.

저자는 자수성가 한 사람이다. 자수성가라는 단어가 보통 스스로 장사를 해 성공한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저자에게도 적용된다. 지역 방송국에 입사해 좋은 특종 보도를 터뜨리고 그것을 발판으로 전국 방송국에 입사한 후에도 특종 보도는 물론 분쟁 지역 곳곳에도 파견되는 성공을 누리기도 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 것이다. 자수성가한 사람들 대다수는 자존심이 세고 자기 의지가 강하다. 무언가에 의지하거나 도움을 받아서 성공한 삶의 궤적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하다. 저자는 종교에도 의지하지 않았다. 종교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자신에게는 아니라고 장담했다. 그런데 그의 표현처럼 ‘머릿속 개망나니 목소리’가 도저히 신체적·정신적으로 통제할 수 없을 때, 그는 약물에 의존한다. 약물에 취해 무아지경에 빠지면 잠시나마 잊을 수 있으니까.

 

 

“메타 수련을 시작하고 몇 개월이 지난 뒤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영적인 눈을 뜬 것도 아니고 성격이 완전히 바뀐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게 된 것뿐이었다.”

“직장에서는 특히 뒷담화 자리에 끼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p.309)

 

저자는 명상을 소개 받는다. 책에 등장하는 여러 명상 전문가들 (조 비테일, 디팩 초프라, 에크하르트 톨레, 마크 엡스타인, 조지프 골드스타인)의 책과 조언에 따라 명상을 배우기 위해 노력한다. 조 비테일부터 톨레까지는 이상한 명상 전문가들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거리를 두고 마크 엡스타인과 조지프 골드스타인을 만난 이후에야 비로소 명상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된다. 며칠 동안 자신의 일상과 멀리 떨어진 곳에 들어가 오직 명상과 수련만을 하기도 하는데, 여기에서 이 책의 장점을 발견했다. 저자는 책의 앞부분에 “나는 명상에 관한 일반의 오해를 불식하고 나아가 명상 수련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면이 책의 여러 곳에서 보인다. 단지 “명상은 정말 좋습니다. 명상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명상을 통해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손쉽게 명상의 깊은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따위의 거짓말은 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수련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매번 자세를 잡고 눈을 감는 즉시, 여기저기가 근질거렸다.” (p.175)

“자꾸 ‘비교하는 마음’이 든다. 저들은 모범생, 나는 낙제생.” (p.212)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하루만 뒤쳐져도 경쟁자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 지도 모르는 그 소중한 일상을 뒤로 한 채 떠난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들어간 명상센터에서 그는 줄곧 명상센터 입소 이전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던 ‘개망나니 생각’을 지워버리지 못한다. 그곳에서도 여전히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사소한 좌절에 크게 절망하고 자신을 향한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솔직하다고 생각되었다. 며칠 만에 몇 십 년 동안 자신을 지배하던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개망나니 생각’을 비워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거짓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책이 많다. 이 책은 그런 거짓말은 최소한 하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점이다.

 

 

“그처럼 극적이지는 않더라도 삶의 행로를 바꿔놓는 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마련이다. 내 경우에는 어느 바닷가 펜션의 마룻바닥에 앉아 있을 때 찾아왔다.” (p.173)

 

 

이 부분에 대해서는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점이 다를 것이다. 나는 저자와 비슷한 영적인 체험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 신앙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판단이기 때문에 타인을 설득할 수 없다.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는 영역이라 그렇다. 만약 나와 이 책의 저자처럼 뭔가 인생에서 극적인 영적 체험을 한 사람이라면 ‘아! 그런 거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혹은 그런 영적인 영역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이야기다. 뭐,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저자와 같은 영적인 체험을 한 터라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트라인>과 <굿모닝 아메리카> 둘 중 어느 것도 차지하지 못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다시 머릿속 목소리가 준동하기 시작했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자꾸만 연상되어서 마음이 부대끼기 시작한 것이다.” (p.186)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저자는 명상센터의 수련을 통해 어떤 극적인 체험을 했고 명상의 깊은 세계로 빠져들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뭔가 대단한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주변의 변화를 일으켰다고 했다면 ‘에이~ 과장하고 있네~’생각했을 것이다. 이 책은 끝까지 솔직한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일상으로 돌아온 이후 여전히 그 이전의 고민과 ‘개망나니 생각’과 싸우는 저자의 솔직한 고백이 마음에 와 닿았다. 물론, 이전 같으면 사무실 집기를 집어 던지거나 바로 상사를 찾아가 따지고 화를 냈겠지만 지금은 명상을 하기 위해 자리를 잡는 다는 것이다. 어렵게 자리를 잡은 명상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도 많지만 자신을 다스리고 컨트롤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당신은 절대로 그런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다.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에고가 만든 허상일 뿐이다.” (p.114)

“최소한 10%는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p.386)

 

 

우리가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하는 ‘개망나니 생각들’은 정말 저자의 말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 천지다.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문제다. 다만 그 허상이 실제적이고 당장 내게 불어 닥칠 쓰나미로 느껴지기 때문에 골치 아픈 것이다. 하지만 정말 해결할 방법은 없다. 해결할 방법이 있는 것은 이미 ‘개망나니 생각’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은 없다. 또 다시 ‘개망나니 생각’에 사로잡혀 잠 못 자고 스트레스 받을 내가 뻔 하니까.

저자는 무조건 명상을 해야 10% 행복하게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마다 자신만의 명상거리가 있을 것이다. 기도가 될 수도 있고 취미 생활이 될 수도 있고 등등. 어느 순간 ‘아~ 내가 별 거 아닌 일에 이렇게 목을 매고 있었구나~’깨닫는 순간이 있다. 분명 있다. 그럴 때 툴툴 털어버리는 경험이 필요하다. 물론, 내일이 되면 또 다시 털어버린 그것을 주워 들고 목을 매고 있을 것도 뻔하지만 그 이후에 또 다시 툴툴 털어버리면 그만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최소한 10% 더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는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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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 개정판 한창훈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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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회 많이 먹어봤겠네?”

 

 

대학 신입생 때, 선배들과 동기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동해안 도시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들은 내가 당장 바다에 뛰어 들어가면 물고기 몇 마리 쯤 작살로 잡아 올리고, 한참 잠수해 들어가 어른 머리통만 한 문어 한 마리 입에 물고 나올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당연히 어릴 때부터 김치보다 더 흔하게 밥상 위에 생선회를 먹어봤을 거라 생각했다.

모두 아니다.

나는 해안 도시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모님이 바다라고는 인접해 있지 않은 충청북도가 고향이시고, 충청북도에서도 가장 북쪽 시골 출신이시라 내 도시락에는 고들빼기를 비롯한 각종 충청북도 반찬이 들어있었다. 부모님이 회를 좋아하지 않으시니 나와 동생도 당연히 회를 먹는 일이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한치회정도. 오징어회보다 더 얇고 비린내가 덜 나는 한치회를 한 사발 가져다 놓고 먹는 것이 우리 식구 회 한 상의 전부였다. 해안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회를 쌈장이나 간장에 찍어 먹는 것을 본 것도 한참 후의 일이다. 나는 전형적으로 회를 못 먹는 사람들이 찍어 먹는다는 초고추장이 제일이었다. 회 한 접보다 더 많은 양의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 나를 보고 어떤 다른 해안 도시가 고향인 친구는 초장을 먹는 지 회를 먹는지 모르겠다며 타박을 하기도 했다.

나는 수영도 못한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문을 나서 도로를 하나 건너면 유명한 해수욕장이 있었다. 학교를 파하고 그 백사장에서 축구도 하고 오징어 달구지 놀이도 하고 조개도 잡고 한참을 땀을 흘리고 놀고 나면, 친구들은 모두 바다로 뛰어 들었다. 개헤엄인지 자유형인지 모를 헤엄을 치며 바다 저 편까지 갔다가 오는 친구들을 나는 물끄러미 지켜봤다. 수영을 배워본 적도 아버지와 바다에 나와 함께 수영을 한 적도 없는 나는 ‘다음에는 꼭 주브(그때는 튜브를 주브로 불렀다)를 가져와야지’ 생각할 뿐이었다.

종종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가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참을성이 없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구르던 것을 좋아하던 내게 낚시는 최악이었다. 언제 잡힐지도 모를 고기를 기다리며 긴 낚싯대를 바라보는 것은 고역이었다.

나는 바다에서 나고 바다에서 자랐지만 바다사람은 아니었다.

 

한창훈은 완전히 바다사람이다.

바다 중에서도 섬에서 나고 자라 뭍으로 나왔다가 다시 섬에 들어가 생계형 낚시를 하고 있는 완전한 바다사람이다.

이 책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는 완전한 바다사람의 일기다.

한창훈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작품은 「홍합」이었다. ‘홍합’이라는 단어가 주는 친숙하고도 에로틱하며 감칠맛 나는 이미지가 한창훈의 글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긴 겨울밤 작정하고 들른 포장마차에서 기똥찬 홍합탕 국물을 들이키는 것 같았다. 「홍합」을 읽고 한창훈의 팬이 되었다. 그의 다른 소설을 몇 편 읽고 얼마 전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를 읽었다. 한 번 좋아하기가 어려운 나는, 일단 한 번 좋아하면 끝까지 좋아하는 편이다. 연이은 작품들도 좋았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는 처음 읽었던 「홍합」다음으로 좋았다.

비록 한창훈 작가처럼 완전한 바다사람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바다냄새를 맡고 바다 일출을 보고 자랐던 내게 이 책은 결코 낯설지 않았다.

 

 

“지금도 감성돔 철이기는 한데 이놈들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면 낚싯배 타고 섬 뒤편 벼랑 포인트까지 가야 합니다. 종일 낑낑거려봐야 얼굴이나 한번 볼까 말까입니다.” (p.277)

 

무슨 운명인지, 군 생활의 절반도 바다에서 했다. 밤바다를 지키는 일이 주된 임무였는데, 고되고 지루했다. 모두가 고되고 지루하다 보니 재미있는 걸 스스로 찾았다. 독립부대이다 보니 부대장인 내 재량껏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감성돔이다. 해당 지역 상근현역들이 있었다. 말 그대로 그 바다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다. 저녁쯤 출근해서 근무서고 아침에 퇴근하는 친구들이었다. 휴일이나 쉬는 날 놀러와서 바다에 들어가기도 했다. 군사지역과 민간지역의 경계가 모호한 어디쯤 그들만이 아는 포인트가 있었다. “소초장님 전복이랑 감성돔 좀 드셔야죠~!” 하면서 바다 속에 한참 들어가 있다 나왔다를 반복하더니, 양손에 주먹만 한 전복 몇 개와 손바닥을 편 것 보다 더 큰 시커먼 물고기 몇 마리를 잡아 왔다. 전복보다 물고기에 눈이 갔다. 감성돔이란다. 근무하고 있던 소초의 책임구역 내 감성돔 포인트가 있어서 우리가 하는 주된 임무가 특정 시기에는 낚시꾼들 쫓는 일이 되기도 했다. 밤에는 간첩이 넘어오지 않나 살펴야 하고 낮에는 낚시꾼들이 넘어오지 않나 살펴야 했다. 인접 국도에서 산을 하나 넘어 들어와야 하는 곳이었음에도 낚시꾼들은 산을 넘어 절벽을 타고 넘어오기도 하고 아예 배를 빌려 먼 바다에서부터 해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대부분의 낚시꾼들이 그곳에 부대에 있는 것도 알고 들어오면 안 되는 것도 알았지만 멀리에서부터 많은 돈을 들여 감성돔 낚겠다고 들어 온 그들의 막무가내는 매번 받아내기 힘들었다. 어떤 낚시꾼들은 유화책을 쓰기도 했다. 소초 정문으로 들어와 라면 박스와 과일 박스를 보이며 사정을 하기도 했다. 내가 말이야~ 예전 이 부대 대대장님 하고 말이야~ 라거나 연대장 하고 우리 동네 형님이 말이야~ 라고 하는 허풍은 귀여울 정도였다.

아무튼, 쉬는 날 굳이 바다로 들어가 전복과 감성돔을 잡아 온 상근 부대원들의 노력이 한 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전복과 감성돔의 맛은 기가 막혔다. 제대로 된 회 맛을 알지 못하는 내가 먹어도 기가 찰 맛이었다. 부대에서 쓰는 성긴 칼도 쓱쓱 갈아 회를 떠 주는 데 초고추장을 듬뿍 찍지 않고 그냥 날 생선회로 먹어도 정말 환상적이었다.

자산어보를 쓴 송암 정약전 선생은 감성돔에 대해 한 줄로 그쳤다고 한다. 한창훈 작가는 그것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하며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감성돔’편에서 한참 설명한다. 나는 그런 설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역 후 감성돔을 몇 번 먹어도 그때 부대에서 먹었던 그 감성돔 맛이 나지 않는다. 그 맛이 생각날 뿐이었다.

 

 

 

“비린내는 산소를 만나 생기는 산화작용, 즉 산패 때문에 생긴다. 중국산이나 트롤선이나 그물로 잡아 냉동해온 것이 그렇다.” (p.16)

“활어회는 의심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주인을 믿을 수가 없어, 살아 있는 놈을 눈앞에서 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하지만 회는 여덟 시간 정도 지난 것이 가장 맛 좋다. 죽음의 시간이 주는 맛이다.” (p.143)

“삼치회는 내륙 횟집에서는 못 먹는다. 선어 보관이 용이치 않기 때문이다. 막 잡은 삼치를 얼음에 채워놔도 이틀이 한계이다. 회뜨기도 쉽지 않다.” (p.33)

 

 

생선에서 나는 비린내와 활어회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편견, 삼치회에 대한 상식까지 책에는 내가 모르던 이야기가 많다. 완전한 바다사람은 아니지만 바다가 고향인 내가 보기에도 낯선 것이 많았다. 책에서도 작가는 여러 번 ‘아는 만큼 먹는다.’라는 표현을 하는 데, 맞는 말이다.

 

 

“섬에서 자란 탓에 나는 낚시를 일곱 살 때 배웠다. 낚시 장비라 해봤자 두 뼘 막대기에 봉돌과 바늘 하나 묶은 거였지만 말이다. 오죽잖은 그 채비 가지고 바닷가 쏘다니다가 여수로 전학을 한 게 열 살 때였다.” (p.255)

 

섬에서 자라 일곱 살 때부터 낚시를 한 작가에게 바다, 섬은 아직도 모르는 존재라고 한다. ‘바다는 말이야 이런 거야, 섬은 말이야 저런 거야.’라고 말하는 어쭙잖은 정의보다 멋있다. 내가 작가 한창훈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경험이다. 공장과 공사판, 농장과 배로 순간이동 하듯이 짧게 소개되는 그의 이력을 자세히 살펴보면 치열하다. 한 줄짜리 문장으로 옮길 수 없는 삶의 태도다. 물론, 작가라고 해서 무조건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고 작가가 아닌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경험을 찾아서 도전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가만히 컴퓨터 앞에 앉아서 대단한 작품을 쓰는 작가들도 분명 있을 테고,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니까. 다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한창훈이고 그의 삶의 이력이 그렇게 양각과 음각이 빼곡히 들어박힌 판화 같아서 그것에서 의미를 건져 올리고 싶은 것일 테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니까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미화하고 싶은 것도 물론 아니다. 작가는 그의 작품에서 지금의 생활에 대한 만족감을 매번 드러낸다. 섬으로 돌아와 생계형 낚시를 하는 지금도 밤하늘과 밤바다를 보며 문장을 생각하고 사진을 찍는다. ‘아~ 저렇게 살면 좋겠다’ 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평온하다. 어설프게 따라했다가 어떤 위험이 따르게 될지는 짐작하는 바다. 한창훈의 작품으로 만족하련다.

 

 

그냥,

돌아간 곳에 섬이 있었고 그곳에 섬의 사람들과 이야기가 있었다. 섬에서 나는 밥상위의 자산어보도 있었다.

작가도 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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