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 개정판 한창훈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 회 많이 먹어봤겠네?”

 

 

대학 신입생 때, 선배들과 동기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동해안 도시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들은 내가 당장 바다에 뛰어 들어가면 물고기 몇 마리 쯤 작살로 잡아 올리고, 한참 잠수해 들어가 어른 머리통만 한 문어 한 마리 입에 물고 나올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당연히 어릴 때부터 김치보다 더 흔하게 밥상 위에 생선회를 먹어봤을 거라 생각했다.

모두 아니다.

나는 해안 도시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모님이 바다라고는 인접해 있지 않은 충청북도가 고향이시고, 충청북도에서도 가장 북쪽 시골 출신이시라 내 도시락에는 고들빼기를 비롯한 각종 충청북도 반찬이 들어있었다. 부모님이 회를 좋아하지 않으시니 나와 동생도 당연히 회를 먹는 일이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한치회정도. 오징어회보다 더 얇고 비린내가 덜 나는 한치회를 한 사발 가져다 놓고 먹는 것이 우리 식구 회 한 상의 전부였다. 해안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회를 쌈장이나 간장에 찍어 먹는 것을 본 것도 한참 후의 일이다. 나는 전형적으로 회를 못 먹는 사람들이 찍어 먹는다는 초고추장이 제일이었다. 회 한 접보다 더 많은 양의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 나를 보고 어떤 다른 해안 도시가 고향인 친구는 초장을 먹는 지 회를 먹는지 모르겠다며 타박을 하기도 했다.

나는 수영도 못한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문을 나서 도로를 하나 건너면 유명한 해수욕장이 있었다. 학교를 파하고 그 백사장에서 축구도 하고 오징어 달구지 놀이도 하고 조개도 잡고 한참을 땀을 흘리고 놀고 나면, 친구들은 모두 바다로 뛰어 들었다. 개헤엄인지 자유형인지 모를 헤엄을 치며 바다 저 편까지 갔다가 오는 친구들을 나는 물끄러미 지켜봤다. 수영을 배워본 적도 아버지와 바다에 나와 함께 수영을 한 적도 없는 나는 ‘다음에는 꼭 주브(그때는 튜브를 주브로 불렀다)를 가져와야지’ 생각할 뿐이었다.

종종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가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참을성이 없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구르던 것을 좋아하던 내게 낚시는 최악이었다. 언제 잡힐지도 모를 고기를 기다리며 긴 낚싯대를 바라보는 것은 고역이었다.

나는 바다에서 나고 바다에서 자랐지만 바다사람은 아니었다.

 

한창훈은 완전히 바다사람이다.

바다 중에서도 섬에서 나고 자라 뭍으로 나왔다가 다시 섬에 들어가 생계형 낚시를 하고 있는 완전한 바다사람이다.

이 책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는 완전한 바다사람의 일기다.

한창훈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작품은 「홍합」이었다. ‘홍합’이라는 단어가 주는 친숙하고도 에로틱하며 감칠맛 나는 이미지가 한창훈의 글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긴 겨울밤 작정하고 들른 포장마차에서 기똥찬 홍합탕 국물을 들이키는 것 같았다. 「홍합」을 읽고 한창훈의 팬이 되었다. 그의 다른 소설을 몇 편 읽고 얼마 전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를 읽었다. 한 번 좋아하기가 어려운 나는, 일단 한 번 좋아하면 끝까지 좋아하는 편이다. 연이은 작품들도 좋았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는 처음 읽었던 「홍합」다음으로 좋았다.

비록 한창훈 작가처럼 완전한 바다사람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바다냄새를 맡고 바다 일출을 보고 자랐던 내게 이 책은 결코 낯설지 않았다.

 

 

“지금도 감성돔 철이기는 한데 이놈들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면 낚싯배 타고 섬 뒤편 벼랑 포인트까지 가야 합니다. 종일 낑낑거려봐야 얼굴이나 한번 볼까 말까입니다.” (p.277)

 

무슨 운명인지, 군 생활의 절반도 바다에서 했다. 밤바다를 지키는 일이 주된 임무였는데, 고되고 지루했다. 모두가 고되고 지루하다 보니 재미있는 걸 스스로 찾았다. 독립부대이다 보니 부대장인 내 재량껏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감성돔이다. 해당 지역 상근현역들이 있었다. 말 그대로 그 바다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다. 저녁쯤 출근해서 근무서고 아침에 퇴근하는 친구들이었다. 휴일이나 쉬는 날 놀러와서 바다에 들어가기도 했다. 군사지역과 민간지역의 경계가 모호한 어디쯤 그들만이 아는 포인트가 있었다. “소초장님 전복이랑 감성돔 좀 드셔야죠~!” 하면서 바다 속에 한참 들어가 있다 나왔다를 반복하더니, 양손에 주먹만 한 전복 몇 개와 손바닥을 편 것 보다 더 큰 시커먼 물고기 몇 마리를 잡아 왔다. 전복보다 물고기에 눈이 갔다. 감성돔이란다. 근무하고 있던 소초의 책임구역 내 감성돔 포인트가 있어서 우리가 하는 주된 임무가 특정 시기에는 낚시꾼들 쫓는 일이 되기도 했다. 밤에는 간첩이 넘어오지 않나 살펴야 하고 낮에는 낚시꾼들이 넘어오지 않나 살펴야 했다. 인접 국도에서 산을 하나 넘어 들어와야 하는 곳이었음에도 낚시꾼들은 산을 넘어 절벽을 타고 넘어오기도 하고 아예 배를 빌려 먼 바다에서부터 해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대부분의 낚시꾼들이 그곳에 부대에 있는 것도 알고 들어오면 안 되는 것도 알았지만 멀리에서부터 많은 돈을 들여 감성돔 낚겠다고 들어 온 그들의 막무가내는 매번 받아내기 힘들었다. 어떤 낚시꾼들은 유화책을 쓰기도 했다. 소초 정문으로 들어와 라면 박스와 과일 박스를 보이며 사정을 하기도 했다. 내가 말이야~ 예전 이 부대 대대장님 하고 말이야~ 라거나 연대장 하고 우리 동네 형님이 말이야~ 라고 하는 허풍은 귀여울 정도였다.

아무튼, 쉬는 날 굳이 바다로 들어가 전복과 감성돔을 잡아 온 상근 부대원들의 노력이 한 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전복과 감성돔의 맛은 기가 막혔다. 제대로 된 회 맛을 알지 못하는 내가 먹어도 기가 찰 맛이었다. 부대에서 쓰는 성긴 칼도 쓱쓱 갈아 회를 떠 주는 데 초고추장을 듬뿍 찍지 않고 그냥 날 생선회로 먹어도 정말 환상적이었다.

자산어보를 쓴 송암 정약전 선생은 감성돔에 대해 한 줄로 그쳤다고 한다. 한창훈 작가는 그것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하며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감성돔’편에서 한참 설명한다. 나는 그런 설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역 후 감성돔을 몇 번 먹어도 그때 부대에서 먹었던 그 감성돔 맛이 나지 않는다. 그 맛이 생각날 뿐이었다.

 

 

 

“비린내는 산소를 만나 생기는 산화작용, 즉 산패 때문에 생긴다. 중국산이나 트롤선이나 그물로 잡아 냉동해온 것이 그렇다.” (p.16)

“활어회는 의심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주인을 믿을 수가 없어, 살아 있는 놈을 눈앞에서 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하지만 회는 여덟 시간 정도 지난 것이 가장 맛 좋다. 죽음의 시간이 주는 맛이다.” (p.143)

“삼치회는 내륙 횟집에서는 못 먹는다. 선어 보관이 용이치 않기 때문이다. 막 잡은 삼치를 얼음에 채워놔도 이틀이 한계이다. 회뜨기도 쉽지 않다.” (p.33)

 

 

생선에서 나는 비린내와 활어회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편견, 삼치회에 대한 상식까지 책에는 내가 모르던 이야기가 많다. 완전한 바다사람은 아니지만 바다가 고향인 내가 보기에도 낯선 것이 많았다. 책에서도 작가는 여러 번 ‘아는 만큼 먹는다.’라는 표현을 하는 데, 맞는 말이다.

 

 

“섬에서 자란 탓에 나는 낚시를 일곱 살 때 배웠다. 낚시 장비라 해봤자 두 뼘 막대기에 봉돌과 바늘 하나 묶은 거였지만 말이다. 오죽잖은 그 채비 가지고 바닷가 쏘다니다가 여수로 전학을 한 게 열 살 때였다.” (p.255)

 

섬에서 자라 일곱 살 때부터 낚시를 한 작가에게 바다, 섬은 아직도 모르는 존재라고 한다. ‘바다는 말이야 이런 거야, 섬은 말이야 저런 거야.’라고 말하는 어쭙잖은 정의보다 멋있다. 내가 작가 한창훈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경험이다. 공장과 공사판, 농장과 배로 순간이동 하듯이 짧게 소개되는 그의 이력을 자세히 살펴보면 치열하다. 한 줄짜리 문장으로 옮길 수 없는 삶의 태도다. 물론, 작가라고 해서 무조건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고 작가가 아닌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경험을 찾아서 도전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가만히 컴퓨터 앞에 앉아서 대단한 작품을 쓰는 작가들도 분명 있을 테고,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니까. 다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한창훈이고 그의 삶의 이력이 그렇게 양각과 음각이 빼곡히 들어박힌 판화 같아서 그것에서 의미를 건져 올리고 싶은 것일 테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니까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미화하고 싶은 것도 물론 아니다. 작가는 그의 작품에서 지금의 생활에 대한 만족감을 매번 드러낸다. 섬으로 돌아와 생계형 낚시를 하는 지금도 밤하늘과 밤바다를 보며 문장을 생각하고 사진을 찍는다. ‘아~ 저렇게 살면 좋겠다’ 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평온하다. 어설프게 따라했다가 어떤 위험이 따르게 될지는 짐작하는 바다. 한창훈의 작품으로 만족하련다.

 

 

그냥,

돌아간 곳에 섬이 있었고 그곳에 섬의 사람들과 이야기가 있었다. 섬에서 나는 밥상위의 자산어보도 있었다.

작가도 섬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