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지 않다 - 자신감과 열등감 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자들을 위한 심리처방전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강희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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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독 그 사람이 힘들다>의 저자 배르벨 바르데츠키의 이번 신작 <나는 괜찮지 않다>는 역시 나르시시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감 부족이나 대인관계 장애의 원인이 나르시시즘이라고 말한다. 특히 이 책에서는 자신감과 열등감 사이를 방황하는 여자들을 말하고 있다. 저자가 예를 들고 있는 많은 여인들은 거식증이거나 혹은 폭식증 등 섭식장애를 앓고 있다. 그 기저에는 여성적 나르시시즘이 있어 자기 회의나 깊은 열등감에 빠지게 하고 그것을 몸매와 얼굴 등 겉치장으로 상쇄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만능 인간, 잘난 사람이 되라고 끝없이 가르치는 나르시시즘적 사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 사회가 우리를 타인으로부터도 소외시키지만, 특히 자기 자신을 매우 낯설게 느끼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면이 있다. 특히 밥을 먹는다는 것은 내면의 공허감을 채워주는 대안이 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섭식장애를 앓고 있다.  섭식장애를 앓고 있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조차 거의 평생을 다이어트를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백설공주의 계모처럼 타인의 인정을 갈망한다. 비록 거울을 들여다보며 '거울아, 거울아~'를 외치고 있지는 않지만, 주변인들을 통해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끝없이 확인하고 있다. 만약 내가 특별한 존재가 아닐 때는, 그리고 나의 욕망이 투영된 대상이- 특히 자식- 특별한 존재가 되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이 책에서 백설공주의 동화를 재해석한 부분이 특히 재미있었다.

백설공주는 세 번이나 왕비의 유혹에 빠졌다. '거짓'자아의 유혹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증거다. 첫 번째 유혹은 가슴 끈으로 대변되는 것으로, 완벽주의와 매력적 외모를 상징하단.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이를 위해 욕구를 억누르고 꽉 끼는 코르셋으로 자기 몸을 옥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기도 한다. 자기의 욕구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면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다고 유혹하는 광고들이 많은데, 이들은 그러한 각종 비법들에 휘둘린다.... (중략) 그러나 세 번째 유혹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독이 든 사과는 '독이 든' 메시지와 자기애적 착취를 상징한다. 자기애적 착취는 착취로 인식하지 못할 만큼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있어서 그 안의 독성을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나르시시즘의 관점에서 볼 대 사과에 든 독은 사회적 성공과 외모를 상징한다. '진정한 자아'를 버리면서까지 자기 자신을 속이는 태도가 바로 독이다.

이 책의 백설공주에 대한 여러 재미있는 해석들은 고개를 끄덕이게도 하지만, 억지로 짜 맞추고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유리관을 옮기던 시종들이 덤불에 걸려 넘어지면서 백설공주가 목숨을 되찾게 되는데 이 시종들의 실수를 아이처럼 수동적 입장을 고수하는 여성에게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끊어버리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는 해석에서는 공감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다는 말은 우리 모두가 새겨두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외모도 성공도 모두 자신이 잘 해서, 혹은 잘나서 그런 것처럼 해석되고 평가받는 요즘, 우리는 보다 더 겸손해져야 한다. 주어진 것과 자신이 힘써 이룬 것을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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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심장 여행 - 생명의 엔진, 심장에 관한 놀라운 지식 프로젝트 매력적인 여행
요하네스 폰 보르스텔 지음, 배명자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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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척 재미있다. 그리고 유익하다.
저자는 1988년생의 심장의학을 전공한 젊은 의학도로 그야말로 톡톡 튀는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심장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놓는다.
심장이 어떻게 생겨나고 자라는지, 그리고 연극, 매듭, 귀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 책은 이야기해준다. 나는 이 문장에 물음표를 표시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이 언급된 단어보다도 더 재미있는 문장을 많이 만나 결국 이 이야기는 잊어버리고 말았다.
우리의 몸은 25세가 지나면 관상동맥(심장근육에 피를 공급하는 동맥) 내벽에 벌써 잔여물이 쌓이며 굳기 시작한다고 한다. ㅠㅠ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니 부모님 세대는 여러 가지 건강 문제로 병원에 주기적으로 다니고 남편은 혈압이 높아서 매일 약을 먹는 그런 일들이 일상이 되었다. 아직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는 그야말로 숨 쉬는 운동 말고는 아무런 운동도 하지 않고 있어 은근히 건강에 대한 걱정이 쌓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 그리고 응급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 특히 재미있는 설명에 키득대기도 하면서 .....
심장의 방실결절을 클럽 입구의 무서운 형님으로 묘사한달지, 교회 첨탑이 보이면 공동묘지가 멀지 않았다는 경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아래의 그래프는 심전도를 나타낸다. 위에 있는 그래프는 정상이고 아래의 것은 비정상이다. 바로 이 비정상적인 그래프는 교회 첨탑의 모양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모양이라면 위험하다.

정상적인
비정상적인

작가는 시종 유쾌하고 발랄한 농담을 섞어가며 심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심장에 위험한 여러 가지 것들-음주, 흡연 -을 아예 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특히 약간의 술이 좋다는 말이 가진 문제점도 언급한다. 특히 흡연은 혼자서 위험천만한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심장에 좋은 삶은 무엇일까?
희극이다. 많이 웃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것.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기억해두어야 할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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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차가운 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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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에 빠지면 그 작품을 쓴 작가의 모든 작품이 궁금하다. 나는 한강의 <희랍어 시간>을 읽고 그의 다른 책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 뒤에 다른 어떤 책을 읽었는지, 곧 그저 기억의 저편으로 가버렸다. 맨 부커상에 대한 기대가 차오르던 때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강렬했다. 그리고 섬세했다. 그리고 다시 한강의 <희랍어 시간>을 읽었다. 나에게는 <채식주의자>보다 <희랍어 시간>이 더욱 아름다운 작품이다. 그리고 그 뒤에 조금씩 한강의 작품을 읽고 있다.
이번에 읽은 책은 <그대의 차가운 손>이다.

이 소설은 작가 H(한강 자신을 말하고 있는 듯 보인다)가 우연히 세 번 접하게 된 조각 작품을 만든 조각가를 한 연극의 뒤풀이에서 만난 뒤 알게 된 이야기다.  갑자기 사라진 조각가 장운형의 동생이 오빠가 기록한 글을 토대로 오빠를 찾다가 마지막으로 그의 글에 언급된 작가 H에게 연락을 하고, 오빠의 글을 보내온다. 글의 이야기는 조작가 장운형이 끌어가지만, 이야기를 지어내는 작가와 작품을 만들어가는 조각가는 서로 같은 인물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조각가가 글을 남겼으니. 이 작품 속 인물들은 조각가와 그의 동생을 제외하고는 이니셜로 등장한다.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했는지 궁금하다.

<그대의 차가운 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 감추고 싶은 것, 숨기고 싶은 것-이 한 사람을 어디까지 몰고 가는지 보여준다. 장운형의 삼촌은 손가락이 잘렸다. 그 손가락 없음을 그는 보이지 않도록 하고 살면서 삐뚤어지고 포악하게 살다 죽는다. 조카인 장운형은 그의 장례식에서 그 감추었던 손을 본다.

더 이상 자신을 방어할 수도 은폐할 수도 없는 것. 그것이 그때 내가 알게 된 죽음이라는 것이었다. 진실은 불쌍한 것이었다. 저렇게 누추한 것이었다. 대대로 고이 물려받아온 보물이 실은 10원 한 장의 가치도 없는 가짜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처럼 나는 허전했다.

그게 뭐라고. 하지만 한발 떨어져 보는 이들에게는 그게 별게 아닐지라도 당사자들은 '전부'일 수 있다. 우연히 만난 뚱뚱한 대학생 L. 조각가는 그녀의 손에 끌린다. 그녀의 손으로 인해 조각가는 손을 떠서 석고상으로 만드는 것에 천착하게 된다. 아름다운 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손의 진실을 보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청소년 시기 계부에게서 성폭행을 당한 뒤 먹는 것에 집착해서 거구의 몸이 되었다. 자신의 몸을 감추고 싶고 그것에서 탈출해버리고 싶은 그녀는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자 토하기를 거듭하면서 살을 빼기 시작한다. 살을 빼기 위해 시작한 단식과 운동에 그녀는 병적으로 집착해 건강을 잃게 된다.

손가락 없음이 감추고 싶은 내면의 진실이었던 삼촌과는 달리 손가락이 하나 더 있음(육손이)이 감추고 싶은 진실인 실내 인테리어 작가인 E.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진실(자신이 육손이였음)을 말했고, 그와 멀어졌다.

애정을 느끼지만 결코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조각가 장운형은 겉이 아니라 그 안쪽을 보고 싶어 한다. 석고로 떠진 인체의 껍데기 속 텅 빈 공간이 말해주는 그 진실을 찾는 조각가의 눈에 자신이 만든 조각도 그리고 작가들이 쓰는 글도 실제의 삶과는 간극이 존재함이 보인다. 그래서 조금은 떨어져서 세상을 보는 그들에게 내면의 콤플렉스를 드러내 보이게 된다.

가면을 벗는 것, 차가운 손에 따스한 온기가 흐르는 것. 그것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그것이 결코 내 존재의 처음과 끝이 아님을 아는 데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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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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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거트의 <나라 없는 사람>을 시원한 도서관에서 읽었다.
책을 읽는 내내 도서관의 시원한 에어컨이 필요 없을 만큼 시원스러운 유머에 즐거웠다.
하지만, 결코 즐거울 수만은 없는 그 묵직하고 답답한 작가의 고민과 관심은 마지막에 웃음을 잃게 했다.
책에서 작가가 언급한 세상을 안전하게 바라볼 수 있는, 그리고 조금은 무겁고 힘든 마음을 가볍게 덜어낼 수 있는 유머가 지금은 아무 효험이 없다는 걸 요즘 느낀다.
세상이 점점 이상하게 변해가는 걸까? 내가 이상하게 변해가는 걸까?
큰 의문이다.

유머는 인생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한 발 물러서서 안전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다. 그러다 결국 마음이 지치고 뉴스가 너무 끔찍하면 유머는 효력을 잃게 된다.

커트 보네거트는 이 문장의 다음에 이런 말을 적어둔다.
'너무 많은 충격과 실망을 겪은 탓에 이제 나는 더 이상 유머로 방어할 수가 없다. '
지금 우리가 그렇다.
어마어마한 충격을 그리고 그것에 대한 실망을 여전히 몸에 안고 있는데도 조금의 변화도 없다. 우리는 웃음을 잃었다.
커트 보네거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랑했던(ㅎㅎ) 미국은 아직도 '공공도서관의 접수창구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커트 보네거트의 책이 작은 위로가 되는 것처럼 미국에서도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빌려보는 모든 이들에게서 위로와 희망을 읽을 수 있나 보다.
커트 보네거트의 촌철살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더운 여름 책을 읽는 이유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는 게 바로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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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괴물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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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로변에서 한 남자가 폭사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으로 폴 오스터의 <거대한 괴물>은 시작한다. 이 소설의 화자는 피터 아론이라는 이름의 작가다. (재미있게도 이 주인공의 이름은 폴 오스터의 첫 글자와 같다. P.A) 폭사한 남자의 신원이 밝혀지기 전에 나는 이 글을 쓰려고 한다. 그가 누구인지 설명을 하고, 어떻게 해서 그 길에 있었는지를 알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는 나, 피터의 친구인 작가 벤저민 삭스다. 나는 삭스를 만나게 된 데서부터 삭스와 그의 부인과 나의 만남, 그리고 그와 관계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이어가며 삭스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자신과 주변 인물의 증언 그리고 삭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반듯한 소설가가 우연히 살인자로 거기서 더 나아가 미국의 곳곳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파괴하는 테러리스트로 변해야 했는지를 폴 오스터 특유의 문체로 담담하게 그리고 밀도 있게 서술해 나간다.
폴 오스터는 <뉴욕3부작>, <달의 궁전>, <빵 굽는 타자기> 등으로 알려진 작가다. 그의 작품은 꼭 다 읽겠다고 다짐한(?) 나는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가 소설 속에서 그려내는 어떤 것에 끌린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은 '작가'인 경우가 많다. <뉴욕 3부작>,<환상의 책>,<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도. 그리고 꼭 어떤 인물은 사라진다. 그리고 사라진 인물을 추적하는 인물이 또 있다. 배경은 뉴욕인 경우가 많고, 그의 작품에서 글쓰기는 매우 중요한 테마가 된다.

원제가 <리바이어던>인 <거대한 괴물>도 마찬가지로 비교적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잘 나가던 한 작가가 홀연히 사라진다. 물론 그가 사라지고 난 뒤, 그리고 그가 자유의 여신상을 파괴하는 행동을 하고 다니는 걸 알고 난 뒤 돌이켜 보면 그는 자유의 여신상과 계속되는 우연적인 연관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원인과 결과에 따른 잘 직조된 길을 걷는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의 이 행동은 결정적인 어떤 이유에 의해 이루어지며 어떤 사건의 결정적인 원인은 우리가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서 그렇지 꼭 있을 것이라는 사고가 지배적이다. 사실 그것이 우리의 삶에 안정감을 주기는 한다. 매일 혹은 매번 우연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의 연속에 우리가 던져졌다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그렇게 필연적인 적이 사실 있는가? 폴 오스터는 우연한 일로 엮여진 관계와 사건들로 인간이 어떤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는지 그려내고 있다. 특히 거짓을 꾸며내는 작가이면서도 현실이 더욱 허무맹랑하고 예측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을 앞질러 간다. 우리가 허구로 꾸며내는 일들이 아무리 허무맹랑하더라도 현실세계가 끊임없이 토해내는 예측 불가능한 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가 <거대한 괴물>을 통해서 그려내고자 한 우리의 현실은 무엇일까?
원제 <리바이어던>이 말하고 있듯이 국가라는 거대한 창조물을 말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거기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거대한 권력과 힘으로 우리를 다스리고 있는 것, 그것을 우리는 인식하고 있는지 묻는다. 이 거대한 권력에 이 소설 속 인물인 삭스는 자신이 우연히 죽인 인물인 디마지오처럼 작은 균열을 내려고 한다. 미국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을 파괴하며 '깨어나라, 아메리카여!'를 외치는 것. 거대한 괴물에 맞서 혼자 게릴라전을 벌이듯 상징물을 파괴해 나가는 것, 그리고 이렇게 글로 그것을 알리는 것.
그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는 또다시 책으로 돌아온다. 그의 친구인 삭스가 쓰던 책의 제목이던 '거대한 괴물'이 삭스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이 책의 제목이 되어 폭사한 인물을 찾던 FBI의 손에 들어간다.

책이 어떻게 쓰이는지 누구도 말할 수 없다. 심지어는 그 책을 쓰고 있는 사람도 모른다. 책은 무지에서 태어난다. 책이 쓰인 다음에도 계속 생명력을 유지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이 책들이 이해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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