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
도미니크 보나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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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란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란 궁금증을 가졌었다.  

얼마나 다양한 삶의 경험을 했기에, 특정한 나라, 특정한 역사를 공유한 누군가가 아니라, 세계 곳곳에 어디선가 숨쉬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이토록 다채롭게 표현해 낼 수 있었을까? 짧은 단편이나 중편이 주는 강렬한 이야기에 비해,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된 소설 [자기 앞의 생]은 또 얼마나 따뜻한 느낌인가? 한 사람이 이렇게 다른 스타일로 글을 쓰는 게 가능할까? 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내세워 소설을 발표했을까? 왜 자살했을까? 등등   

로맹 가리의 일생을 담담히 읊어주는 이 책을 보자마자 저절로 손이 갔던 이유는 아마도 그런 궁금증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의 앞부분에 그와 그의 가족들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 사진을 넘기면서, 영화배우처럼 아름다운 그의 두 아내, 레이첼과 진과 함께하는 잘생긴 그의 모습을 보면서.. 글쎄, 뭐랄까? 막연하게 내가 생각해 오던 이미지와 많이 달라서 놀라웠다.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상상한 그는 약간의  사회 부적응자, 이방인, 혹은 예민한 신경증 환자 같은 느낌이었는데, 실제의 그는 사교성도 강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고, 미국 주재 프랑스 영사로 오랫동안 활동할 만큼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소설가로서의 로맹 가리는 [하늘의 뿌리]란 작품으로 일찌감치 콩쿠르 상을 수상한 이후로 로맹 가리는 자신이 원했던 것이 아님에도 너무 일찍 대가 취급을 받게 되었고 그런 세간의 시선을 부담스러워 했다고 한다. 거장이기는 하지만, 특정한 이야기만을 줄창 써 대는 판에 박힌 소설가, 그래서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꾼이라는 평단의 평가가 그에게는 받아 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소설 속 인물을 상상해 내듯, 전혀 새로운 인물 에밀 아자르라는 분신을 창조해 낸다. 혜성처럼 등단해 그해의 콩쿠르 작을 수상하면서 대중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베일에 쌓인 신비한 소설가라는 타이틀을 위해, 치밀하게 그는 모든 준비한다. 에밀 아자르라는 재능 있는 신진 작가를 찾고자 하는 추적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자신의 조카에게 에밀 아자르역을 하도록 연출까지 한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벌어지는 소동을 즐기는 그의 모습!  로맹 가리는 자신의 이름으로, 또 에밀 아자르라는 또 다른 필명으로 전혀 다른 스타일의 소설을 계속 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물론 동일인이 쓴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작품의 색깔이 다른 탓도 있었지만, 에밀 아자르로 분한 로맹 가리의 조카가 스스로도 자신이 작품을 썼다고 믿을 만큼 배역에 몰두한 영향도 컸을 것이다. 

 로맹가리는 소설을 쓰는 소설가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삶 자체를 소설로 만들어 버렸다. 그의 삶은 권총 자살로 마감되었다. 더이상 쓰고 싶은 게 없고 더이상 이룰 것이 없기에 더  삶을 연장하기를 거부하고 죽음을 선택한 소설가!  그가 죽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로맹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인임을 알았으니까, 로맹 가리의 삶은 놀라운 반전으로 마감되는 놀라운 작품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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