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 - 김대중 잠언집
김대중 지음, 최성 엮음 / 다산책방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전진해야 할 때 주저하지 말며, 인내해야 할 때 초조해하지 말며, 후회해야 할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용기란 바른 일을 위해 결속적으로 노력하고 투쟁하는 힘이다. 용기는 모든 도덕 중 최고의 적이다. 용기만이 공포와 유혹과 나태를 물리칠 수 있다」

「논리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경험은 잡담이며, 경험의 검증을 거치지 않는 논리는 공론이다」

「국민이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심은 마지막에 가장 현명하다. 국민이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자는 국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따른 자는 흥하고 하늘을 거역한 자는 망한다고 했는데, 하늘이 바로 국민인 것이다. 유일하게 현명하고, 유일하게 승리할 수 있는 국민에게 배우고 국민과 같이 가는 사람에게는 오판도 패배도 없다」

「인격의 바탕 위에 서지 않은 학문은 천박한 지적 기술에 불과하다」

「가난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가난한 자들이 자신의 가난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는 아무리 물질적으로 성장하더라도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

「나는 두렵고 겁이 나더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런 신념이 용기 아닌 용기를 주었다. 그 믿음이 나의 타고난 소심함과 겁을 극복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한창 마감에 쫓겨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수상자로 선정됐다는 뉴스를 봤다. 지금까지의 업적이 아닌 향후 업적을 기대해 선정한 측면이 크다는 설명도 함께 읽었다. 참 특이한 선정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프랑스의 정력 좋으신 대통령께서는 전 세계가 다시 미국을 품에 안았다는 다소 낯 뜨거운 찬사를 선사했다. 그에겐 노벨상 위원회가 전 세계였을까. 그냥 조금은 씁쓸했다. 그리곤 모니터 옆에 놓여있는 책으로 눈길이 갔다.

이 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사상, 통일철학과 관련된 정책 제언을 10년 가까이 담당했던 최성 전 의원이 김 전 대통령의 저서 중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구절들을 모은 것이다. 2007년에 출간됐지만, 정작 난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야 읽을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해 지금까지 있어왔던 수많은 논란과 음해, 인간적인 모독에서 음모론까지,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아니 지금 역시 그의 노벨상 수상이 음모로 이루어진 것이라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에는 기가 막혔지만 나중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수상 소식을 들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한 평생을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기며 분단된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이에게 수여했던 상과 아직까지 세계 평화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하지만 세계 최강의 패권국가 대통령에게 안긴 상. 적어도 난 같은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 듯하다. 그냥 오바마가 부디 수상이 부끄럽지 않도록 세계 평화를 위해 아주 조금이나마 기여하길 바랄 뿐이다.

책은 말 그대로 잠언집이다. 평소 김 대통령의 생각이나 철학, 삶의 지혜들이 담겨 있는 짧은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그냥 읽는다면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그런 책이 있질 않는가. 다 읽은 후에도 왠지 모두 읽지 않은 듯한 느낌을 주는 책. 곁에 두고 몇 번이라도 곱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 지금 내게 이 책은 바로 그런 의미의 책이 되고 있다. 책장에 꽃아 두기 보다는 항상 곁에 두고 생각이 날 때마다 몇 구절씩 읽는 책 말이다.

지극히 당연한 소리지만 무엇이든 말하기는 참 쉽다. 때문에 인간은 함부로 떠들어대기도 하고 또한 함부로 충고랍시고 일장 훈계를 늘어놓기도 한다. 게다가 자신이 사회적으로 조금이라도 인정받는 위치에 있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훈계에 당신은 뼈저리게 동감하고 혹은 깊은 성찰과 반성을 한 기억이 있는가.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과 노태우 대통령 등도 입으로는 구구절절 옳은 말만 했었다. 기억나지 않는가?

지금의 위장전입 집단은 또 어떤가? 말로는 서민들의 아픔을 절감하고 함께 고통을 나누어 나가겠다고 하질 않는가? 그래놓고 정부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이들의 유가족 앞에서 “정부 차원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다”고 말하질 않는가. 그것도 총리라는 이가 말이다. 말로 지껄이는 것은 참으로 쉽다. 연쇄살인마도 자신의 자녀에겐 좋은 말만 늘어놓는 법이다.

그래서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말과 글이 더욱 소중하고 오롯한 이유가. 그는 자신의 생각, 철학에 의해 행동했고, 행동하려 했다. 자신의 글이 거짓됨으로 더럽혀지지 않도록 평생을 자신과 투쟁하며 살았다. 그런 일생의 의지가 담겨있는 글을 읽을 때 사람들은 비록 동어 반복일지 모르지만 진정한 진정성이 무엇인지 느끼게 된다. 요새 하도 진정성이란 단어를 더럽히는 족속들이 많아서….

그는 가난보다 더 두려운 것이 가난한 자들이 자신의 가난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한 사회는 아무리 물질적으로 성장하더라도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담 지금 우리 사회는 아프다 못해 죽기 직전의 상황이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대우를 받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니 솔직히 그냥 말하자. 그런 믿음이 사라진 지 오래다. 온갖 부정과 편법, 부조리가 판치는 지금, 그러한 더러운 짓들을 지도층부터 솔선수범해 보이고 있는 지금, 건강한 사회는 4대강에나 가서 찾아야 할 지 모른다.

누군가 말할지 모른다. 지금과 같은 살인적인 경쟁사회, 신자유주의의 급속한 전파가 이루어진 것이 바로 김대중 대통령 시기가 아니었느냐고.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그런 사회를 맞이했을 때 대처 모습을 보자. 그렇담 다시 그 말을 한 사람은 침묵을 지켜야 한다. 현 정권의 멋들어진 모습을 알고 있다면 말이다. 양심과 책임감, 타인에 대한 존중이 있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비교의 대상이 아니란 소리다. 김대중 정권 당시가 온갖 아름다움으로 넘쳤다는 말은 절대 아니지만, 지금이 그렇다고 말한다면 그건 미친 소리로 들리지 않을까. 적어도 일반 시민들이라면 말이다.

김 대통령은 국민이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니지만 민심은 마지막에 가장 현명하다고 했다. 국민이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 승리자는 국민이라고 했다. 때문에 하늘을 따른 자는 흥하고 하늘을 거역한 자는 망한다고 했는데, 하늘이 바로 국민이라고 했다. 유일하게 현명하고, 유일하게 승리할 수 있는 국민에게 배우고 국민과 같이 가는 사람에게는 오판도 패배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현 정부는 국민을 무참히 죽음으로 내몰았고,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훈계하려고 했으며, 철저히 무시하고 조롱했다. 국민의 의사를 듣기조차 거부했고, 국민의 의사표현 자체를 막으려 했다. 이것은 물론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국민을 가르치고 국민이 자신의 뒤를 입 닥치고 따라오기만을 바랐다. 이것도 물론 현재진행형이다. 참으로 슬픈 대조다. 비교다. 차이다. 

논리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잡담을 일삼고, 경험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공론을 내세운다. 인격의 바탕 위에 서지 않은 천박한 지적 기술을 통해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들겠다고 떠든다. 이미 크게 한 번 나라를 위기에 몰아넣고도 하는 말이라 더 어이가 없다. 바로 위에서는 쌀이 없어 죽어 가는데, 여기는 쌀이 썩어 농부들이 죽을 판이다. 사회 구성원, 같은 민족마저 경쟁의 논리로, 돈의 논리로 몰아붙인다. 천박한 건 알겠는데, 그나마 지적 기술이라도 있는지 의심스럽다. 한마디로 1년이 넘을 동안 유일하게 삽질만 하고 있다.

「우리는 전진해야 할 때 주저하지 말며, 인내해야 할 때 초조해하지 말며, 후회해야 할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용기란 바른 일을 위해 결속적으로 노력하고 투쟁하는 힘이다. 용기는 모든 도덕 중 최고의 적이다. 용기만이 공포와 유혹과 나태를 물리칠 수 있다」

그래서이다. 김 대통령의 말들이 가슴에 더욱 맺히는 이유가. 작지만 소중한 용기를 가지고 이 세상을 똑바로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 두 눈 똑바로 지금의 부정한 모습을 바라보고 기억하는 것.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불의인지 온전히 가려내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겐 절실히 필요하다. 때문에 책은 더욱 소중하고 애틋하다.

자산플래너와 보험설계사는 있지만 정작 인생의 멘토는 찾기 어려운 지금. 비록 책이나마 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깨우치게 해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런 고마운 책이 누구에게나 한 권쯤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를 전해줄 수 있다면 김 대통령은 멀리에서나마 기뻐하지 않을까.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고 위로하지 않을까.  


끝없이 배우고 끝없이 깨우칠 일이다.   

 

 

** 이 리뷰는 온북리뷰에르로 작성한 글입니다. http://www.onbooktv.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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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개인주의자를 요구한다 - 마광수 문화비평집
마광수 지음 / 새빛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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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나라 밖 마 선생들을 이야기한 바 있다. 대개 치열한 삶을 살다 간 이들이다. 이번에는 우리 안에 있는 마 선생을 살펴보자.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마 선생은 누가 있을까. 난 주저 없이 스타크래프트 저그의 마에스트로 ‘마재윤’ 선수와 「즐거운 사라」의 마광수 교수를 꼽는다. 스타크래프트를 잘 모르는 분들은 모르시겠지만, 마재윤 선수는 지금의 이재동 선수 정도의 커다란 활약을 보였던 저그의 귀재였다.^^ 지금은 약간 침체기지만 곧 다시 부활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마광수 교수. 사실 이 사람처럼 한국 사회 마녀 사냥에 제대로 희생당한 이도 드물 것 같다. 연예인으로 치면 과거 유승준과 지금의 재범정도? 일단 한 번 걸렸다 하면 사정없이 파멸시켜버리는 우리 사회의 저열하고 치졸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들이다.

비록 나도 글을 써서 벌어먹고 사는 인간이지만 기자들이란 종족, 작가라는 종족들이 한없이 경멸스러울 때가 많다. 직업상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물론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엔 안 그래도 될 일에 오버해서 사람들을 죽이곤 한다. 펜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도 엄연한 살인이다. 그리고 그 피해자들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곤 한다.

성, 섹스 문제를 생각해보자. 우리 현대사를 보면 그야말로 섹스 산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영원한 아름다운 혈맹인 미국의 섹스 문화와 그야말로 별의별 장르를 다 나눠가며 포르노 산업을 글로벌 비즈니스로 육성한 일본이 바로 옆에 있는 관계로 우리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빠른 속도로 섹스 산업에 눈을 뜨게 되었다. 아울러 정력에 좋다면 그야말로 모든 것을 전멸시켜버리는 한국 남성들의 야만성도 크게 한 몫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 상황에서 왜 유독 마광수, 장정일 같은 이들이 고난을 겪어야 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뒤에서 떠들지 않고 앞에서 떠들었기 때문이다. 감히 동방예의지국에서 상놈처럼 굴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는 상관없다. 그냥 앞에서 당당하게 떠드는 꼴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마 선생의 작품들이 청소년들에게 크게 유해하고 또 성 윤리를 타락시킨다고 떠들며 사회는 그를 매장시켜버렸다. 강단에서 쫓겨난 것은 물론 어이없게 수감생활까지 했다. 만약 마 선생이 사드와 같은 변태 행각을 실재로 벌였다면, 또한 그의 직접적인 행동으로 가정이나 사회를 파탄 내지 위험하게 만들었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한 일은 그냥 자신의 생각, 담론, 상상을 글로 표현한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게 유죄가 되고 불법이 되고 죄악시 되는 것이 한국 사회였다.

지금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마 교수를 둘러싼 파문이나 여러 가지 논쟁들은 우습기만 하다. 그의 책이 제목처럼 정말 야할까? 그렇담 지금 이 사회는? 어처구니가 없어진다. 자~! 숨 한 번 크게 쉬고 지금부터 내가 한 번 아는 것만 떠들어볼까?

일제 시대부터 있었던 유곽에 대한 당시 지도층의 인식은 그렇다 치자. 박정희 정권은 성매매 여성들에게 허가증까지 주며 해외관광객을 상대로 매춘을 강요했다. 그 자신도 육영수 여사의 죽음 이후 여러 여자들에게 이른 바 위로를 받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 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아예 섹스 산업을 크게 발전시켜 국민들을 본능에 충실한 무뇌아로 만들려 했다. 김대중 대통령 들어 그나마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성매매촌을 없애려 했지만, 이미 성매매 관련 산업의 규모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까지 이른 후였다. 더구나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은 아예 생각도 않고 일방적으로 때려 부수려 했다. 무서운 생각이었고, 무서운 결과를 낳았다. 결국 지금도 전국 어디에서나 남성들은 마음만 먹으면 성매매를 할 수 있다. 상식이다.

그렇담 우리 사회의 성 인식을 볼까? 문화를 볼까? 과거 적어도 내 세대 정도까지는 이른 바 빨간 책을 돌려보고 포르노 비디오 테잎을 세운상가에서 작전하듯 몰래 구입해서 돌려 보곤 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 클릭 한 방에 끝없이 포르노물이 쏟아진다. 성인 영화가 아니라 포르노물 말이다. 이것을 즐기는 연령층도 갈수록 낮아진다. 결국엔 중학생들이 집단으로 여학생을 강간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요즘 애들이 정말 문제가 많다고? 닥치시라. 이를 조장한 것은 기성 세대다. 아이들은 100% 어른을 따라 하기 마련이다. 온갖 문화가 모조리 섹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일반 댄스 여가수들은 섹시 컨셉이 아니면 나오지도 못하고, 그것도 이젠 중학생, 고등학생 가수들이 벗어 제낀다. 발육도 아주 좋아서 어른들은 군침을 흘리며 그들을 바라본다. 가수가 아니라 성적 대상으로 바라본다. 당연한 것 아닌가?

육덕지다, 초글래머, 거유, 쌈박하다 뭐 이딴 대화들이 버젓이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한다. 모든 여성들의 수명은 섹시미가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만이다. 무조건 섹시해야 하고 잘 빠져야 한다. 때문에 이 시대 여성들은 얼굴을 고치고 몸에 수없이 칼을 대야 한다. 그래야 면접이라도 볼 수 있다. 뚱뚱한 여성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성적 매력이 없는 아줌마는 이미 여성이 아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지도층이라는 ‘지도충’들은 잊혀질만한 하면 성 추행 사건을 뻥뻥 터뜨리고, 돈 좀 있다는 것들은 해외로 원정 섹스 여행을 떠난다. 과거 돈 많은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했던 짓거리를 이젠 우리가 해외에 나가서 한다. 참 국위선양 하는 새끼들이다. 금메달 줄까.

드라마는 불륜이 아니면 스토리가 안 나가고, 모든 제품들도 여성들이 벗어 제껴야 팔린다. 자동차든 보험이든 소주든 여성과 그리 관련이 없어 보이는 상품들에 무조건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것도 다들 아시다시피 잘 빠지고 섹시한 여성이. 난 뚱뚱한 여성들이 주로 나오는 광고를 본 기억이 없다. 당신은 있는가?

올바른 성, 바른 성생활이라는 것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겠냐만 적어도 그마나 정상적인 성이 무엇이다 라고 가르쳐 주는 것은 이미 공교육의 역할이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성을 배워 나가고 부모들은 이를 방관한다. 인터넷 성인 사이트에 접속하지 못하게 막으면 끝이 아니다. 장난치나? 아이들은 맘만 먹으면 언제라도 성인물을 볼 수 있다.

길거리에는 성을 매개로 하는 산업이 넘쳐난다. 이젠 하다못해 키스방까지 등장한다. 유사 성행위를 통해 법망을 피해가는 동시에(물론 성행위도 가능하다), 짭짤한 수입이 가능하다. 노래방엔 란제리만 입는 여성들이 도우미라고 나오고(도대체 뭘 돕자는 것인지), 전국 모든 관광지, 이른 바 좋다는 곳에는 식당 다음으로 모텔이 많다.

성매매촌을 단속하고 없애고 이러니까, 인터넷 상으로 매매가 이루어지고, 길거리를 지나가면 휴대폰 번호가 적힌 성매매 광고 찌라시가 널린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맘만 먹으면 자신의 성을 팔 수 있고, 구매자들은 줄을 섰다. 가히 섹스의 왕국이고, 송강호가 말한 강간의 천국이다.

그런데, 마광수 교수의 그깟 소설 몇 권이 이 사회를 붕괴시킬까? 개소리다. 오히려 마 교수의 소설들은 성 담론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어떠한 섹스론이, 어떠한 성 담론이 이 시대를 더욱 밝게 할 수 있을지 진지한 성찰이 가능한 구실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위선자들이고, 쓰레기들이다. 감히 마 교수를 집어넣을 생각을 한 것은 파시즘과도 같았다. 광기였다.

워낙 힘 있는 것들이 관련되어 있다 보니 장자연 리스트 사건도 조용히 묻히고 있다. 한 어린 여배우가 자신의 생명을 버려가며 절규했던 현실. 그 현실은 바로 지금 이 시간에도 변하지 않았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성 문화가 우리보다 몇 배는 발달했다고 하는 미국과 일본은 차라리 성 산업을 전면에 부각시켜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물론 워낙 자본주의를 신처럼 받드는 인간들이니 산업으로서의 가치도 진작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우린 멀었다. 우리는 여전히 뒤에서 몰래 즐긴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이를 모를 것이라 믿는다. 웃긴다. 아이들은 이미 기성세대들의 머리 위에 있다.

마 선생의 고난의 삶은 어쩌면 아직은 요원한 우리 사회의 성담론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금지된 것에 끝없이 도전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외치던 마 선생의 열정은 이제 시간이 지날수록 식어간다. 그가 변한 것일까. 아니다. 내가 보기엔 그는 이미 너무 지쳤다.

책은 그가 지금껏 써왔던 문화 비평을 담았다. 그의 생각에 동감을 하든 안 하든 읽어볼 만한 구절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성 알레르기에 걸려있는 이 시대 기성세대들과 문화인들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전통이란 이름으로 자유와 상상력을 말살하는 정책들도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다. 전체적으로 아주 오래 전 글들도 있어 약간은 시대 상황과 동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읽고 생각할 만한 내용들이 많이 담겨져 있다.

마 선생과 나는 공통점이 있다. 나 역시 야한 여자가 좋고(솔직히 싫다는 남자 나와 보시라), 사라와 함께 즐기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사라는 침묵 속에 유배되어 있다. 이 시대 많은 남성들이 은밀히 즐기고 있지만, 사라는 아직 즐기지 못하고 있다.

이젠 사라를 풀어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겉과 속이 다 야해 오히려 천진난만”한 우리의 사라를 전통과 위선, 거짓과 억압 속에서 해방 시켜줘야 하지 않을까. 다양성을 잃어버린 사회는 곧 멸망의 문에 이르게 된다. 획일성을 단결과 화합으로 믿는 지금 이 정권에서는 더 어려운 일이겠지만, 성 담론에 대한 끝임 없는 대화와 고민은 오히려 성 범죄를 확연히 줄이게 할 것이다. 장담한다.

아~ 기분도 그렇고 오늘은 화끈한 야동이나 한 편 감상해야 겠다. 제목은 ‘수렁에 빠진 MB’정도면 어떨까.

** 이 리뷰는 온북리뷰에르로 작성한 글입니다. http://www.onbooktv.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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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 강력한 통치가가 갖추어야 할 정치의 기술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19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박철규 옮김 / 홍신문화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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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은혜를 베푸는 일로 옛 원한을 잊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기기만에 빠지는 일이다」

「사람을 다룰 때는 너그럽게 포용하거나 아니면 철저하게 짓밟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을 꾀하지만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경우에는 감히 보복할 생각도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자는 자멸을 초래 한다」

「가해 행위는 단번에 전격적으로 저질러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의 반감도 그만큼 적어진다. 그 반면, 은혜는 아주 조금씩 천천히 베풀어야 그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사람이란 해를 끼칠 것으로 예상했던 사람으로부터 우대를 받으면 그에게 더 큰 고마움을 느끼게 마련이다」

「받은 은혜는 물론 베푼 은혜에 의해서도 유대가 강화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어떤 상황에서나 완벽한 선의 추구를 고집하는 사람은 선량하지 못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파멸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필요에 따라 부도덕하게 행동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인간은 두려워하는 자를 해칠 때보다 사랑하는 자를 해칠 때 덜 주저한다. 인간이란 비열한 존재이므로, 일종의 의무감에 의해 유지되는 사랑 따위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쉽게 팽개쳐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에 버릴 수가 없다」

「군주는 비난받을 만한 일은 남에게 맡기고 자비를 보일 수 있는 일은 자신이 해야 한다」  


「꼭 필요할 때 하는 전쟁은 정의로운 것이며, 무력에 호소하는 것 이외에는 희망이 없을 때는 무력 또한 신성하다」

나라 밖을 살펴보면 역사적으로 큰 풍파를 일으킨 이중에 ‘마’선생들이 몇 있음을 알게 된다. 우선 전 세계의 반을 붉은 깃발로 나부끼게 했던 독일의 ‘마’선생이 있었고, 중국의 붉은 별 ‘마’선생도 있었다. 아울러 이 책의 주인공 마키아벨리 선생도 빼놓을 수 없다. 이른바 마키아벨리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뜻으로 통용되는 정치 철학을 설파하신 분이다.

비교적 쉽게 풀어쓴 군주론 중 하나인데, 역시나 무지한 나는 몇 번이나 곱씹어 읽었다. 읽을 때마다 재미도 있을뿐더러 다른 생각들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즐거운 경험이었다. ‘역시 마 선생들은 뭔가 있어’ 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때론 키득키득 거리며 읽어나갔다.

한때 군주론은 악마의 사상, 악마의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로마 교황청에서는 금서 목록을 발표하고 군주론을 비롯한 마 선생의 모든 책을 그 속에 포함시켰다. 그 이후 250년이 지난 후에야 루소에 의해 재평가 될 때까지 마 선생의 책은 이른 바 교황청 선정 ‘불온 도서’였던 셈이다.

왜 교황청은 이토록 대한민국의 국방부스러운 작태를 보였을까. 당시 상황을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마 선생이 한창 집필에 열중했던 때는 16세기 초, 이른 바 르네상스 시대의 말기로 중세의 질서가 무너지고, 근대국가의 틀이 잡혀가기 시작할 때였다. 교황의 권위가 점차 떨어지고 있을 때였다.

이러한 때 오로지 군주의 영민한 지혜와 냉정한 판단력, 추호의 타협도 없는 행동으로 세상을 정화시켜야 한다는 마 선생의 주장은 극히 불온했을 것. 종교보안법 위반으로 당장 독방에 쳐 넣어야 할 대상이 되고도 남았던 것이다. 당시 새로운 가치관을 절실히 원하던 이탈리아의 상황 속에서 나온 군주론이었기에 당연히 기존의 가치관을 전복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군주론을 고대와 중세의 전통적인 사상과 윤리에 반기를 들었던 최초의 근대 철학서로 평가한다.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뛰어난 통찰력과 인간에 대한 이해는 지금 이 시대에도 많은 이들이 이 책을 들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마 선생은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애초부터 신뢰하지 않았다. 3살 때부터 신용을 잃은 셈이다. 어리석고 비열하고 나약한 군중을 한 명의 뛰어나고 위대한 군주가 힘과 권위, 자비와 잔혹함으로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때론 배신과 음모가 판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세상의 이치다. 그는 그렇게 강한 국가, 강한 군주를 꿈꾸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를 보면 오히려 마 선생은 지극히 순진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는 부정적인 행동을 통해 군주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비난받을 만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광과 존경을 받을 수도 없다고 말한다. 아울러 귀족과 백성 중 백성의 마음을 얻고 그들을 잘 다스려야 군주는 성공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차라리 귀족을 모조리 죽여 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백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지금? 과연? 정말?

예나 지금이나 통치자들이 보기에 백성들은 한 없이 나약하고 때론 비열하고 멍청하다. 그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국가를 통치하고 권력을 얻기 위함이지 백성들을 위한 것은 절대 아니다. 이러한 지배자, 통치자들의 백성관은 만고불변인 듯하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변하지 않는 안영미의 법칙이다. 또 한 번 세상의 이치다.

마 선생은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한 군주는 권력을 제대로 잡을 수 없다고 말한다.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면 반드시 이를 지원하는 외세가 있을 것이라 경고한다. 그들이 그 정도로 분노하지 않게 때론 관대하게 때론 냉정하게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말씀이다.

때에 따라서는 오직 권력만을 위한 냉정함이 싫기도 하지만 이를 지금 우리 시대에 적용시켜보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권력자들에게 백성, 오늘의 국민, 시민들은 단지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인적자원, 인재양성 뭐 이따위 말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쓰일 수 있는 것도 바로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인식의 반영이다. 우리는 자원이다. 그것도 재활용이 극히 어려운.

때문에 재활용도 안 되는 자원의 소모와 고장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새로운 부속으로 교체하면 그만이다. 이러한 인식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다. 이들은 한국의 일반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끔찍한 상황에서 살아간다. 다문화가 어쩌고 하면서 가증스러운 꼬라지들을 보여주곤 있지만, 그건 순전히 ‘한국’ 남자에게 시집온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것. 왜? 그들은 우리 ‘한국’의 아이들을 낳아주는, 즉 새로운 자원을 만들어내는 생산기계이기 때문이다. 당연 아끼고 보살펴줘야 하지 않겠나. 더구나 살기 어려운 세상살이에 우리 오리지널 ‘한국 자원’ 생산기계들이 생산을 기피하고 있지 않은가.

외국인 노동자는 노동자로 왔기에 노동만 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가 공부를 한다고 학교에 가려하면 추방당한다. 반대 역시 마찬가지. 유학생이 노동을 해도 추방당한다. 왜? 정해진 파트에만 전념하다 사용기간 다 지나면 꺼지라는 소리다. 이야~! 이 정도면 마 선생이 “형님~!!!” 하지 않을까.

외국인 노동자들을 차별하지 말고 잘 대해줘야 한다고 정부는 떠든다. 하지만 그들이 막상 한국 땅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고자 한다면 바로 추방이다. 아직까지 우리 정부, 그리고 일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얘네 들은 불쌍한 나라에서 온 불쌍한 아이들. 열심히 돈 벌고 때 되면 어서 가렴”에서 못 벗어나 있다. 물론 여기까지 온 것도 큰 발전이긴 하다. 예전에는 그들의 존재조차 인식하려 하지 않았으니.

마 선생은 한 자리 얻어서 이름을 떨쳐보겠다고 비굴한 아첨을 섞어 책을 “위대한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 전하”께 올렸다. 이탈리아를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는 명분이 있지만, 정녕 백성을 위한 마음이 있었는지는 하늘만 아시겠지. 물론 루소 선생은 《사회계약론》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공화주의자의 교과서”라고 한껏 올려주셨다. 마 선생이 부러 군주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처럼 가장하여 백성들에게 위대한 교훈을 주었다는 것이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상상을 해본다. 지금 이 시대에 정말 싸가지 없고, 국민 알기를 백구 알 듯 하는 무개념 선생 중 누구라도 《대통령론》을 쓴다면 어떨까 하고. 대통령도 읽고 국민들도 읽어서 서로 서로 좋게 좋게 살아가보자는 위대한 목적으로 말이다. 흔쾌히 한 권 구입할 용의 있다. 미리 예약 판매하면 주문하겠다.

얼마 전 김민웅 교수가 보내준 기고 중에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국민들 대다수는 자신의 권리가 박탈당하고 있으며, 자신의 미래가 얼마나 불안한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50% 대에 육박하고 있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다. 이젠 정부가, 대통령이 지금보다 더한 깽판을 쳐도 국민들은 닥치고 있어야 한다. 왜? 지지한다며? 남대문 시장에 이 대통령이 납시면 환호하잖아? 좋아 죽잖아? 악수 한 번 하면 영광이지? 사인 받아서 코팅할래?

여기까지 생각하니 또 마음이 바뀐다. 군주론, 대통령론, 총리론, 장관론 다 때려치우자. 어쩜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따로 있을지 모른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정확히 콕콕 집어주는 《시민론》《백성론》이 필요하다.

전국에 계신 수많은 마 선생 중 영민하신 분이 도전하시라. 1권 판매는 예약이다.

** 이 리뷰는 온북리뷰에르로 작성한 글입니다. http://www.onbooktv.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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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사냥꾼들 - 추리하고 탐험하는 영문학 이야기
이창국 지음 / 아모르문디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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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과 동대문 운동장 근처에 있는 헌책방을 즐겨 갔다. 지금은 내가 분가한지라 예전처럼 자주 가지 못하고, 또 예전에 비해 책방들이 많이 사라져서 아쉽긴 하지만, 여전히 가끔씩은 구경삼아 들르곤 한다. 그곳에 가면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 그 자체가 좋은 나들이다.

예전에는 돈 만원으로 5~6권의 책을 사들고 오기도 했다. 우선 양적인 뿌듯함과 함께 무언가 크게 횡재했다는 기분도 유쾌했다. 그러다 간혹 예전에 절판된 책들을 구하는 기분이란. 마치 금지곡 등등으로 우리나라엔 정식으로 발매되지 않은 앨범을 구했을 때의 그 느낌과 같다. 한마디로 아싸! 였다.

북을 전공한 지라(악기가 아닌 국가) 북과 관련된 책들을 구하는 데는 오히려 헌책방이 영풍이나 교보보다 나았다. 조악한 형태로 반은 몰래, 반은 정식으로 출간되곤 했던 북 관련 서적들은 마치 비밀문서를 입수하는 듯한 기분을 주곤 했다. 물론 현재는 다시 예쁘게 디자인되어 출간된 책들도 있다. 하지만 그 때 이후 영영 사라진 책들도 많다.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문학 사냥꾼〉은 더없이 즐거운 책이다. 사실 이 책도 사무실 근처 책방에서 뒤적거리다 제목이 눈에 띄어 집어든 책이었다. 그리고 사무실이 바뀐 이후에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던 이른바 “쌓아둔 책 더미”중 하나였다. 그러던 녀석을 8월 말 갑자기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고, 곧 쏠쏠한 재미를 느끼며 읽어나갔다.

학자들은 - 여기서 말하는 학자는 학문 외에는 정말 쓸모없는 군상들을 말한다. 하다못해 형광등 하나 다는 것도 서툴고, 컴퓨터 다운되면 울먹울먹 거리는 종이다 -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점이 몇 있다. 현대사회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 전공 분야가 아닌 분야에는 정말 무지하다는 것과, 참을성으로 치면 생살을 찢고 뼈를 긁는 고통 속에서 장기를 두던 관운장 못지않다는 점이다.

논문 하나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위궤양 한 번 걸리지 않는 학자들이 없고, 치질과 각종 질환들을 달고 다닌다. 물론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아주 아름다운 말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그런 학자들은 앞에 ‘폴리’라는 접두어가 붙곤 한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암튼 학자들은 지긋이 엉덩이를 의자에 갖다 붙이고 오직 항문에 힘을 주어 학문에만 정진하는 참을성 많은 종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책의 주된 내용이기도 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전혀 쓸모없을 것 같은 가설 하나를 밝혀내기 위해 수년, 심하게는 평생을 달라붙기도 한다. 필자인 우리의 노 교수님 역시 이런 학자들의 습성을 이야기마다 강조하신다. “학자라는 종들은 ~~ 이러이러 하다”는 식으로. 물론 이러한 표현은 같은 학자로서 보내는 애정 어린 찬사이기도 하다. 남들이 보기엔 전혀 무의미한 일들을 평생에 걸쳐 이루어내는 동업자들에 대한 동병상련의 심정이랄까. 이런 학자들에게 국적과 시대는 아무 상관없다. 그야말로 대단한 종들이 아닐 수 없다.

책은 정말 흥미롭다. 유명작가의 미발표된 원고를 찾기 위한 수많은 학자들의 노력, 그 과정에서의 영화 같은 이야기들. 고서적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모험, 소설 속의 한 구절, 시의 한 문장 속에 담겨진 비밀을 찾기 위한 후대 학자들의 집념과 끈기.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정말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1부 1장의 「흑단나무 장롱 속의 비밀」을 보자. 영국의 유명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새뮤얼 존슨의 전기를 쓴 제임스 보즈웰의 얽힌 이야기다. 보즈웰은 존슨의 전기를 써서 일약 유명해졌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의 명성이 능력이나 성취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존슨의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명성을 위해 유명한 사람의 생애를 철저히 이용한 얌체 정도로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말하는 실력 없는 얌체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충분히 떨칠만한 능력과 업적이 있는 이었다. 물론 이는 흑단나무 장롱이 발견된 이후의 일이다. 보즈웰은 기록의 대가였다. 존슨의 전기 역시 존슨의 사후가 아니라 생전에 그를 하루 종일 달라붙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그것도 20년 동안이나!) 기록한 것이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그는 죽을 때 후손들에게 흑단나무로 짠 장롱 하나를 물려주며 부디 잘 보관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이 장롱 속에는 생전에 자신에게 온 편지들은 물론, 수십 년에 걸쳐 자신의 생활과 사색을 기록한 일기를 보관해 두었다. 인간 보즈웰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장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어찌 어찌 하다 보니 결국 그 장롱의 행방은 묘연해졌고, 자신들의 조상이 얌체, 위선자라는 평을 듣기 싫어했던 후손들은 그 장롱과 함께 그 안에 담겨있는 모든 문서들이 불타 없어졌다고 말했다. 보즈웰에 대한 연구를 하려 했던 후대 작가들에겐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아울러 새뮤얼 존슨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학자들에게도 불운이었다. 전기에 담겨있지 않은 내용들이 분명 그 장롱 속에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가. 보즈웰이 죽은 후 55년이 지난 1850년 (보즈웰은 1795년 사망했다) 영국이 아닌 프랑스의 어느 조그만 마을의 식료품 가게에서 보즈웰의 서명이 있는 포장지가 발견된다. 발견한 이가 문학에 조예가 있은 이가 아니었다면 그 문서들은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던져졌을 것이다. 그 포장지를 발견한 이는 그 문서의 출처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흑단나무 장롱은 더블린 말라하이드 성에서 발견된다. 그 성의 주인은 보즈웰의 증증손자인 탤보트 경의 소유였다.

그 장롱 속에는 탄식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자료들이 쏟아져 나왔다. 영문학자 50명이 달라붙어 부지런히 정리해도 5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보즈웰의 꼼꼼히 정리된 문서들을 통해 18세기 영국의 시대상과 문인들의 활동상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보즈웰이 단순히 운이 좋은 얌체가 아닌 오히려 존슨에 버금가는 문장력과 업적을 남긴 당대 그 누구보다 뛰어난 문인이었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런 보즈웰의 원고는 1928년부터 1934년까지 6년에 걸쳐 화려한 장정의 전체 열여덟 권짜리 총서로 출판되었다. 보즈웰의 사후 130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현재 그의 원고는 예일 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밖에도 책은 영문학의 역사를 바꾸어버린 수많은 일화들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영문학사에서 가장 오래된 서사시인 ‘베어울프’의 기구한 운명, 시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고서적 위조에 얽힌 이야기들, 바이런이 남겼다는 자서전을 찾기 위한 학자들의 열정과 좌절 등  소문으로만 전해지는 문서, 원서들을 찾기 위한 노력들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또한 2부 ‘문학사의 미스터리’에는 문학작품 속에 숨겨 있는 비밀, 유명 작가들의 미스터리한 삶을 파헤치는 학자들의 끈질긴 연구와 노력이 담겨 있다.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가 쏠쏠하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전혀 궁금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지만, 학자들에겐 그야말로 필생의 과업이 되었던 수많은 일화, 이러한 것들이 결국은 영문학의 역사를 바꾸어왔고, 우리에겐 소설과도 같은 즐거움을 주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노력을 보며 문득 한국의 기록문화랄까, 기록의 습성을 돌아보게 된다.

흔히 5천년의 역사 어쩌구 하지만 우리처럼 기록에 게으른 이들이 있었나 싶다. 물론 우리 조상들이야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각종 야사들을 통해 꼼꼼한 심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떨까? 세월이 하 수상하고, 먹고 사느라 바빠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기록에 대한 정성이 상대적으로 덜하지 않았을까. 그냥 문득 들었던 생각이다.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의 그 모습이 사진 한 장에라도 남아있다면, 내가 예전에 읽었던 책들이 아직도 보관되어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기록하지 않는 민족은 곧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 과거에 대한 존중과 그를 기반으로 한 현재와 미래에 대한 설계, 이것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좋았든 나빴든 과거를 보다 소중히 담는 정성과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제대로 된 대통령 기록관 하나 없다는 것이 단적으로 보여주지 않나.

물론 기록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야 백 번 이해야 한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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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DJ - 김대중 평전
박호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후배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흔히 요즘 젊은이들이 아무 고민 없이 살고 있다고 빈정거리는 어른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세상에 어찌 그리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까.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처참한 시스템 속에서 생존해야 하는 이들에게 기성세대의 빈정거림은 사실 가소롭게 느껴진다.  


이야기는 흘러 현 시국 이야기가 나왔다. 과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행여 부족하다 하더라도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겐 지금 이 시간 역시 엄중하다. 과거를 모두 꿰뚫어야만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기성세대들의 오만이자 엄청난 착각이다. 그러는 자신들은 정작 바로 어제 일을 마치 언제 있었냐는 듯 잊지 않았던가.

어찌하다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승만부터 지금의 이명박까지. 이야기를 하는 도중 문득 두려웠다. 예전 서울대 학생들이 뽑은 가장 복제하고픈 인물 1위가 박정희였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건 역사에 대한 망각 차원이 아닌 철학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복제라는 단어 단체가 주는 혐오감과 무참함을 넘어 왜 박정희를 복제하고 싶었을까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수밖에 없다. 
 

 

다행히 후배들의 입에서 그런 무참한 언사가 나오지는 않았다. 안도하는 내 스스로가 다시 한 번 무참해졌다.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나는. 대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그의 서거가 안타깝고, 이것이 웬일인지 자연스럽지가 않다는 이야기였다. 고령의 노인이, 그것도 지병을 가지고 있는 이가 떠나갔는데 무엇이 이들에겐 부자연스러웠을까.

하지만 생각을 해보면 그런 당혹감은 비단 그들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나 역시 체념 속의 숨긴 당혹감과 억울함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생동안 참으로 지독한 편견과 오해 속에 살아왔던 한 인간에 대한 생각이 새삼 술잔을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유 없이 후배들이 고마웠으며, 내 자신이 심하게 혐오스럽기 시작했다.

난 누구에게 배우지도 않았건만 김대중을 이야기할 때마다 내가 전라도 출신이 아님을 밝혀야 했다. 물론 어느 누구도 나에게 출신을 묻지 않았다. 자기 검열의 무참한 발로였다. 한심했다. 출신 지역에 따라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 시대가 증오스러웠다. 그리고 그러한 굴레 속에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이들이 부적절했다. 적당한 모습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아주 쉽게. 어떤 이를 평가할 때 그의 공과 과를 객관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박정희에 대한 공과 과를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이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있다. 이해와 인정, 혹은 동감은 적어도 나에겐 커다란 간극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비굴하게 고개 숙이고 있을 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이가 만들어낸 것과,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만들어낸 것은 분명 그 평가에 있어도 차이가 있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과정을 결과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 믿음의 결과다.

때문이다. 내가 김대중을 박정희보다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빨갱이, 절름발이, 기회주의자, 그리고 신자유주의자. 모든 수식어들이 그에겐 적절치 않았다. 마찬가지이다. 조국 중흥의 아버지, 한국 경제 발전의 신화를 이룩해낸 애국자. 이따위 수식어 역시 박정희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만, 사실과 바람을 혼동하는 일은 언제나 당혹감과 무참함을 동반하게 된다.

김대중은 마지막 순간까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염원했다. 이 땅의 평화와 화해를 염원했다. 그리고 죽어서까지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자신의 죽음으로 녹게 만들었다. 적어도 남북이 함께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것만으로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돌아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김대중은 서럽게 울었다.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문익환 목사의 마지막 길에서도 그는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살다 간 동지들의 죽음을 서러운 눈물로 함께 했다. 온갖 위선과 모욕이 가득 찬 추모사 따위는 그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마음으로 민주주의를 떠나보내고 있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이라 말했다. 어쩜 그는 행복했던 사람이었으리라. 평생 고난과 함께 했지만 그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이 땅의 수많은 이들이 자신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도 잊은 채 하루하루 버티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그는 진정 행복한 이였다.

매일 매일 거짓과 위선 속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이들. 자신의 권리보다는 하찮은 이익을 위해 인간성을 포기해야 하는 이들. 모욕을 당하며 그 모욕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들. 김대중은 그들을 위해 엉엉 울다, 그렇게 돌아갔다. 그리고 남겨졌다. 이렇게 우리는 남겨지고 말았다. 어디를 봐야 하는지, 제대로 보고는 있는지 알 수 없다.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도, 주변을 살핀 후에 비로소 마음을 놓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생전 바른 말, 적어도 상식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말을 겁 없이 했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이고, 그런 이가 다시 한국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국가적 수치라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 그토록 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4대강 살리기로 숨겨진 대운하 사업이 결국 이 나라 이 땅을 모조리 죽게 만들 것이란 말이 그토록 어려운 말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땅에 새로운 독재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망령이 났다고 했다. 그래도 전직 대통령이란 자가 어찌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있느냐고 오히려 김대중을 모욕했다. 자신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을 보라. 정말 한 마디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제발 닥쳐라. 그 더러운 입을 다물라.

어디엘 가든 어느 누구와 있든 이 말을 빼놓을 수 없다.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을 위해 국가가, 아닌 이명박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여지껏 장례도 치르지 못한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슬픔과 분노에 찬 가족들과 시신을 보관하는 비용을 치르지 못해 쌓인 빚 5억 원 뿐이다. 임진강 유가족들에겐 희생자 한 명당 5억 원의 보상비가 지급된다고 들었다. 그들의 죽음 역시 안타깝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들과 국가의 폭력으로 살해당한 이들에 대한 처우가 어찌 이리 다를까. 누가 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체 게바라는 이 세상 어디에선가 단 한 명이라도 억압과 고통 속에 살아간다면 편안히 지낼 수 없다고 했다. 무참하다. 우리는 바로 우리의 이웃이 당하고 있는 슬픔과 눈물을 외면하며 웃고 떠든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소를 지으며 재래시장을 누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존권을 다국적 기업과 몇몇 대기업에게 팔아넘긴 이에게 환호한다. 지극히 무참하다.

책은 김대중 대통령의 일생을 읽기 쉽게 짧은 분량으로 엮어냈다. 그의 일생이 이 책 한 권으로 설명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것이 무엇인지, 그가 남긴 것이 무언지 생각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전해준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함께 생각하게 만든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당신은 다리를 절었지만 절름발이가 아니었다. 당신을 평생 장애인으로 만들어버린 그 정권에 대해서도 당신은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 했다. 박정희 기념관을 짓겠다는 쓰레기들에게까지 양보한 것은 지나쳤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당신은 지금 이 정권과 같이 치졸하지는 않았다. 당신은 분명 대인이었다.

당신은 당신을 평생 괴롭게 만든 빨갱이라는 굴레 속에서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꺼이 북으로 향했다. 노벨상을 돈 주고 샀다는 정신 이상자들 속에서도 당신은 한마디 변명을 하지 않았다. 당신은 대인이었다. 당신은 한반도 분단체제에 균열을 일으킨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당신은 이 땅의 주인인 국민들을 위해 눈물을 아끼지 않았다. IMF의 수렁 속에 수많은 국민들이 국가를 대신하여 죽어갔음을 잊지 않았다. 그들의 희생 속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음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당신의 결정으로 인해 상처받았던 많은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당신은 대인이었다.

물론 당신은 정치인이었다. 대권을 잡겠다는 현실적인 목표를 한 시도 잊지 않았다. 당신은 영리한 사람이었다. 타협을 할 줄 알고 적과의 포옹도 감수했다. 하지만 적어도 당신은 김영삼과 같이 대권을 위해 대의를 버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온갖 비리를 모두 갖춘 전과 14범이 아니었다. 당신은 친일파가 아니었다. 당신은 미국에 일방적으로 굴복하는 하수인도 아니었다. 당신은 독재를 원하지 않았다. 당신은 대인이었다.

술자리는 이어졌다. 이윽고 난 취하고 소리 없이 울었다. 내 추태로 후배들이 웃기를 기대했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내 어리석음으로 많은 이들이 즐겁기를 바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난 그대로 울고 말았다.

그리운 두 사람. 바보와 절름발이. 그 어디에 있든 함께 행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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