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 - 김대중 잠언집
김대중 지음, 최성 엮음 / 다산책방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전진해야 할 때 주저하지 말며, 인내해야 할 때 초조해하지 말며, 후회해야 할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용기란 바른 일을 위해 결속적으로 노력하고 투쟁하는 힘이다. 용기는 모든 도덕 중 최고의 적이다. 용기만이 공포와 유혹과 나태를 물리칠 수 있다」

「논리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경험은 잡담이며, 경험의 검증을 거치지 않는 논리는 공론이다」

「국민이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심은 마지막에 가장 현명하다. 국민이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자는 국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따른 자는 흥하고 하늘을 거역한 자는 망한다고 했는데, 하늘이 바로 국민인 것이다. 유일하게 현명하고, 유일하게 승리할 수 있는 국민에게 배우고 국민과 같이 가는 사람에게는 오판도 패배도 없다」

「인격의 바탕 위에 서지 않은 학문은 천박한 지적 기술에 불과하다」

「가난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가난한 자들이 자신의 가난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는 아무리 물질적으로 성장하더라도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

「나는 두렵고 겁이 나더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런 신념이 용기 아닌 용기를 주었다. 그 믿음이 나의 타고난 소심함과 겁을 극복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한창 마감에 쫓겨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수상자로 선정됐다는 뉴스를 봤다. 지금까지의 업적이 아닌 향후 업적을 기대해 선정한 측면이 크다는 설명도 함께 읽었다. 참 특이한 선정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프랑스의 정력 좋으신 대통령께서는 전 세계가 다시 미국을 품에 안았다는 다소 낯 뜨거운 찬사를 선사했다. 그에겐 노벨상 위원회가 전 세계였을까. 그냥 조금은 씁쓸했다. 그리곤 모니터 옆에 놓여있는 책으로 눈길이 갔다.

이 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사상, 통일철학과 관련된 정책 제언을 10년 가까이 담당했던 최성 전 의원이 김 전 대통령의 저서 중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구절들을 모은 것이다. 2007년에 출간됐지만, 정작 난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야 읽을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해 지금까지 있어왔던 수많은 논란과 음해, 인간적인 모독에서 음모론까지,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아니 지금 역시 그의 노벨상 수상이 음모로 이루어진 것이라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에는 기가 막혔지만 나중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수상 소식을 들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한 평생을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기며 분단된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이에게 수여했던 상과 아직까지 세계 평화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하지만 세계 최강의 패권국가 대통령에게 안긴 상. 적어도 난 같은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 듯하다. 그냥 오바마가 부디 수상이 부끄럽지 않도록 세계 평화를 위해 아주 조금이나마 기여하길 바랄 뿐이다.

책은 말 그대로 잠언집이다. 평소 김 대통령의 생각이나 철학, 삶의 지혜들이 담겨 있는 짧은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그냥 읽는다면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그런 책이 있질 않는가. 다 읽은 후에도 왠지 모두 읽지 않은 듯한 느낌을 주는 책. 곁에 두고 몇 번이라도 곱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 지금 내게 이 책은 바로 그런 의미의 책이 되고 있다. 책장에 꽃아 두기 보다는 항상 곁에 두고 생각이 날 때마다 몇 구절씩 읽는 책 말이다.

지극히 당연한 소리지만 무엇이든 말하기는 참 쉽다. 때문에 인간은 함부로 떠들어대기도 하고 또한 함부로 충고랍시고 일장 훈계를 늘어놓기도 한다. 게다가 자신이 사회적으로 조금이라도 인정받는 위치에 있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훈계에 당신은 뼈저리게 동감하고 혹은 깊은 성찰과 반성을 한 기억이 있는가.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과 노태우 대통령 등도 입으로는 구구절절 옳은 말만 했었다. 기억나지 않는가?

지금의 위장전입 집단은 또 어떤가? 말로는 서민들의 아픔을 절감하고 함께 고통을 나누어 나가겠다고 하질 않는가? 그래놓고 정부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이들의 유가족 앞에서 “정부 차원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다”고 말하질 않는가. 그것도 총리라는 이가 말이다. 말로 지껄이는 것은 참으로 쉽다. 연쇄살인마도 자신의 자녀에겐 좋은 말만 늘어놓는 법이다.

그래서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말과 글이 더욱 소중하고 오롯한 이유가. 그는 자신의 생각, 철학에 의해 행동했고, 행동하려 했다. 자신의 글이 거짓됨으로 더럽혀지지 않도록 평생을 자신과 투쟁하며 살았다. 그런 일생의 의지가 담겨있는 글을 읽을 때 사람들은 비록 동어 반복일지 모르지만 진정한 진정성이 무엇인지 느끼게 된다. 요새 하도 진정성이란 단어를 더럽히는 족속들이 많아서….

그는 가난보다 더 두려운 것이 가난한 자들이 자신의 가난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한 사회는 아무리 물질적으로 성장하더라도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담 지금 우리 사회는 아프다 못해 죽기 직전의 상황이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대우를 받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니 솔직히 그냥 말하자. 그런 믿음이 사라진 지 오래다. 온갖 부정과 편법, 부조리가 판치는 지금, 그러한 더러운 짓들을 지도층부터 솔선수범해 보이고 있는 지금, 건강한 사회는 4대강에나 가서 찾아야 할 지 모른다.

누군가 말할지 모른다. 지금과 같은 살인적인 경쟁사회, 신자유주의의 급속한 전파가 이루어진 것이 바로 김대중 대통령 시기가 아니었느냐고.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그런 사회를 맞이했을 때 대처 모습을 보자. 그렇담 다시 그 말을 한 사람은 침묵을 지켜야 한다. 현 정권의 멋들어진 모습을 알고 있다면 말이다. 양심과 책임감, 타인에 대한 존중이 있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비교의 대상이 아니란 소리다. 김대중 정권 당시가 온갖 아름다움으로 넘쳤다는 말은 절대 아니지만, 지금이 그렇다고 말한다면 그건 미친 소리로 들리지 않을까. 적어도 일반 시민들이라면 말이다.

김 대통령은 국민이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니지만 민심은 마지막에 가장 현명하다고 했다. 국민이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 승리자는 국민이라고 했다. 때문에 하늘을 따른 자는 흥하고 하늘을 거역한 자는 망한다고 했는데, 하늘이 바로 국민이라고 했다. 유일하게 현명하고, 유일하게 승리할 수 있는 국민에게 배우고 국민과 같이 가는 사람에게는 오판도 패배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현 정부는 국민을 무참히 죽음으로 내몰았고,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훈계하려고 했으며, 철저히 무시하고 조롱했다. 국민의 의사를 듣기조차 거부했고, 국민의 의사표현 자체를 막으려 했다. 이것은 물론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국민을 가르치고 국민이 자신의 뒤를 입 닥치고 따라오기만을 바랐다. 이것도 물론 현재진행형이다. 참으로 슬픈 대조다. 비교다. 차이다. 

논리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잡담을 일삼고, 경험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공론을 내세운다. 인격의 바탕 위에 서지 않은 천박한 지적 기술을 통해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들겠다고 떠든다. 이미 크게 한 번 나라를 위기에 몰아넣고도 하는 말이라 더 어이가 없다. 바로 위에서는 쌀이 없어 죽어 가는데, 여기는 쌀이 썩어 농부들이 죽을 판이다. 사회 구성원, 같은 민족마저 경쟁의 논리로, 돈의 논리로 몰아붙인다. 천박한 건 알겠는데, 그나마 지적 기술이라도 있는지 의심스럽다. 한마디로 1년이 넘을 동안 유일하게 삽질만 하고 있다.

「우리는 전진해야 할 때 주저하지 말며, 인내해야 할 때 초조해하지 말며, 후회해야 할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용기란 바른 일을 위해 결속적으로 노력하고 투쟁하는 힘이다. 용기는 모든 도덕 중 최고의 적이다. 용기만이 공포와 유혹과 나태를 물리칠 수 있다」

그래서이다. 김 대통령의 말들이 가슴에 더욱 맺히는 이유가. 작지만 소중한 용기를 가지고 이 세상을 똑바로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 두 눈 똑바로 지금의 부정한 모습을 바라보고 기억하는 것.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불의인지 온전히 가려내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겐 절실히 필요하다. 때문에 책은 더욱 소중하고 애틋하다.

자산플래너와 보험설계사는 있지만 정작 인생의 멘토는 찾기 어려운 지금. 비록 책이나마 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깨우치게 해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런 고마운 책이 누구에게나 한 권쯤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를 전해줄 수 있다면 김 대통령은 멀리에서나마 기뻐하지 않을까.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고 위로하지 않을까.  


끝없이 배우고 끝없이 깨우칠 일이다.   

 

 

** 이 리뷰는 온북리뷰에르로 작성한 글입니다. http://www.onbooktv.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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