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심리학 -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옌스 푀르스터 지음, 장혜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누구나 편견을 가지고 있다. 어디에선가, 누구에겐가 영향을 받았는지는 정확히 콕 집어 말할 수 없지만, 고정관념도 적지 않다.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없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어쩌면 삶은 새로운 편견과 고정관념을 만들어가고, 또한 기존의 그것들을 깨버리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편견을 “우리를 상처주고 바보로 만드는 이유 없는 마음의 벽”이라고 정의한다. 이유가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 스스로 바보가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쉽사리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든 것은 ‘파시스트’였다. 일단 상대방이 파시스트라고 판단되면 연상되는 여럿의 행동이나 사고들이 있다. 파시스트이기에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등등.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에게 고정관념, 혹은 편견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사소한 것에서부터, 정치적인 신념까지 다양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이거 말하다 보니 무슨 참회록, 반성문 느낌이다. 어쩔 수 없다. 어쩌면 책이, 저자가 우리에게 요구한 것이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측면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난 일단 연예인들에 대한 편견이 있다. 아주 나쁜 것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스스로는 많은 이유와 근거를 댈 수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편견인 것은 숨길 수 없다. 최근에는 아나운서에 대한 편견도 생겼다. 물론 부정적인 것이다. 노현정 아나운서의 결혼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그 후 방송3사 아나운서들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다시 한 번 부정적인 편견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강수정, 최송현 등등은 내 편견에 확신을 더해준 사례이다.

정치적인 면을 보자면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 보수 정치인들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이걸 마땅히 고정관념이라고 해야 하는지는 조금 망설여지지만, 일단 한나라당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고, 거기에 속해 있는 인간들의 행동에 일정한 패턴을 읽는다. 수구 보수 세력 역시 마찬가지다. 아마 죽을 때까지 나와는 동화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 언론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행동이나 글들은 놀랄 만큼 예측가능하다. 어떤 사건이 발생한 후, 다음 날 이들 신문의 헤드라인을 거의 정확하게 맞춘 경우도 적지 않다. 내가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만큼 패턴이 정해져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당혹스러울 때가 있음을 숨기지 말아야겠다. 집단으로 보았을 때 놀랄 만큼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던 이들도 막상 개인적으로 살펴본다면 의외에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럴 때에 느끼는 당혹감이란.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에서 일정 부분 벗어나게 되면 인간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이것이 인간 본래의 특성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잖이 당혹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이 더욱 큰 분노를 느끼게 만든다.

예를 들자.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을 떠난 수구 보수 정치인 혹은 언론인이 막상 떠난 후에는 자신이 그토록 저주했던 반대 세력의 행동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물론 반대 역시 존재한다. 진보 진영에서 전설로 알려졌던 인물이 한순간 변절하여 한나라당의 똘마니나 수구세력의 충견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인물들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 것이다. 하지만 물론 이런 이들의 행동을 인간의 본래 특성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이런 인간들은 다만 변절한 것이고, 심하게 말하면 가치 없는 존재일 뿐이다.

저자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또한 수많은 학자들의 실험 결과나 이론을 통해 편견이 가지고 있는 여러 특성, 고정관념의 근원적 발생 원인과 이론 인한 인간의 행동 패턴을 설명한다. 편견은 인간이 생존함에 있어 최소한의 노력으로 보다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영위하는 데 도움을 준다. 때문에 편견은 생각보다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깨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길거리나 훤한 대낮에 덩치 큰 흑인 4~5명이 앞에서 우울한 표정으로 걸어온다면 약간 놀라긴 하겠지만, 그리 큰 위험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같은 상황이 아무도 없는 늦은 밤거리, 혹은 할렘의 어느 지하 주차장에서 벌어진다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편견이다. 흑인이라는 인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신의 편견, 고정관념이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예전에 TV 다큐프로에서 했던 실험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 초라한 옷을 입히고 쇼 윈도우에 서게 했다. 그리고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질문했다. 저 사람의 직업이 무엇인 것 같냐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건설직 노동자나 무직자, 힘든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대답했다. 또한 그 사람과 만나 볼 생각이 있느냐란 질문에 대부분이 거절했다.

하지만 같은 사람에게 비싸 보이는 정장을 입히고 다시 쇼 윈도우에 서게 했다. 그리곤 같은 질문을 했다. 어떤 답변이 나왔을까. 대부분 예상한 것과 같다. 여성들은 전문직 종사자, 변호사, 혹은 의사 등의 답변을 했고, 대부분 흔쾌히 만나볼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여성차별적인 실험이 아니냐고? 물론 성별을 바꾸어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이처럼 편견은 우리의 삶 속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인종, 성별에 대한 편견. 지역과, 나처럼 특정 직업, 정당, 단체에 대한 편견은 보다 안전한 선택을 위한 본능적인 판단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스스로를 좁은 틀 안에 가두게 되고, 결과적으로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는 데 방해가 된다.

한국 사회가 가장 많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히 많은 편견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할 것이다. 망국병이라는 지역 차별은 이제 같은 지역 안에서도 존재한다. 같은 주공아파트에 사는 주민들끼리도 평수에 따라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고 무시하는 일이 생긴다. 20평대에 사는 부모들은 자녀에게 10평대에 사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어처구니없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이것이 단순히 개인적인 편견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발언이다. 한국사회는 편견을 조장하며 권력을 유지해 온 집단이 엄연히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이번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를 바라보는 네티즌 중에서도 이런 편견이 철철 넘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어떤 댓글은 “완전히 (전)라도 세상이구만”이란 표현을 썼고, 어떤 이들은 “원래 더러운 야구는 SK가 전문이지”란 비방을 서슴지 않았다. 축제이긴 하지만 ‘우리’들만의 축제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당시에도 차마 입에 담지 못할(이 표현은 나의 고정관념, 편견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말들이 인터넷 상을 장식하곤 했다. “이제 갈 때가 되어서 간 건데 뭐가 그리 슬퍼”“잘 뒈X다”등등.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편견, 전라도라는 지역에 대한 편견은 이처럼 가장 상식적인, 고인에 대한 예우마저도 잊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편견은 우리를 일정한 상자 안에 가두어 스스로를 바보로 만든다. 반북감정을 비롯해, 반중, 반일, 반미까지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야말로 공정한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일본을 싫어하는 것인지, 일본인들을 싫어하는 것인지 판단하지 못하고, 북한이란 국가를 싫어하는 것인지, 김일성, 김정일이란 개인을 싫어하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 인민들을 싫어하는 것인지 기준이 명확치 않다. 혹은 일부러 모호하게 만든다.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는 행동이다.

참고로 이번 MB정부가 인도적 대북지원은 전임 정부들과 같이 변함없다고 하면서도 1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지원을 중단시켜 결과적으로 많은 북의 어린이, 노약자들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 나가게 만든 다음, 이제야 그것도 기껏 옥수수 가루 1만 톤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치가 떨렸던 기억이 있다. 이것은 순전히 북한이란 국가, 혹은 북한 사회에 대해 가지고 있는 대통령과 그 외 똘마니들의 편견으로 인한 결과였다. 핵과 미사일과 아이들의 생명, 굶주림은 하등 관계가 없다. 더 치가 떨리는 것은 대통령을 비롯한 떨거지들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편견과 싸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슬람권 이웃들에게 대한 편견,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편견, 북한에 대한 편견, 호남 상호 간의 편견, 수도권과 비수도권과의 편견, 진보와 보수 간의 편견 등 우리 삶과 밀접한 편견들이 너무나 많다. 이러한 편견들을 극복해 나갈 때 그나마 이 사회는 살만해지지 않을까.

용산참사 피해자들에게 5~6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그들이 단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불법 폭력 행위를 하여 많은 피해를 낳았다는 편견, 약자는 밟으면 결국 해결된다는 고정관념, 권력이 승리한다는 허황된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이 시대의 비극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총리 등등 거의 모든 고위직 인사들의 비리, 불법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떠들지 못하는, 아니 당장 효성 그룹의 비리에 대해서도 대통령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굽실거리기만 하는 ‘이 나라의 법’이 용산의 가난한 이웃들에겐 이처럼 비정하고 참혹할 수 있는 이유. 이들이 이렇게 더러운 짓거리를 해도 무사하리라 믿는 이유.

그것은 바로 정부의, 권력의, 대통령의 행동은 막을 수 없고, 그러한 행동은 아마도 정당하리라 믿는 시민들의 편견이 깨질 때에만 없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편견이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편견이 아니라 상식일 테지만. 불행히 우리는 비정상적인 국가에서 살고 있다. 그것은 기억해야 한다. 이것도 내 편견이라면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많은 편견과 고정관념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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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그만 가자!
진주 지음 / 북극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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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야겠다. 히말라야에 대해서, 안나푸르나에 대해서 아는 지식이 전혀 없었다. 아울러 네팔이란 국가에 대해서도 막연했다. 고작해야 네오 마오이즘 정도. 여행, 특히 등산을 즐겨하지 않는 나의 게으름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한비야의 글이나 여러 글들을 통해 네팔인들의 삶을 조금 엿볼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이 책과 같이 그들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다큐프로그램을 즐겨본다. 성격상 “내가 왜 연예인들의 시시껄렁한 잡담이나 뒷 담화를 아까운 시간을 들여가며 보아야 하는지”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프로를 즐겨보는 이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또 즐겨보는 이들이 많기에 그런 프로그램들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겠지만, 적어도 내 취향은 아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난 그렇게 한가하지도, 그렇게 호기심이 많은 사람도 아니다.

다큐 프로그램 중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너무나 아름답고 깨끗한 곳을 소개하는 것들이 심심치 않게 있다.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마지막 자연의 낙원, 혹은 옛 전통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소수의 이들,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은 결코 연예인 잡담과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매스컴이란 괴물이 가지고 있는 무서운 파급 효과를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알게 되면 더 이상 그곳은 깨끗해 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옛 모습은 한 순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러한 다큐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차라리 영원히, 그게 불가능하다면 될 수 있는 한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공정무역, 공정여행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사람들이 여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될 수 있는 한 양심적인 소비, 여행을 하자는 취지다. 당연히 공감한다.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기엔 이미 늦어버린 이 시대에, 그나마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는 방법 중 하나다. 또한 나로 인해 어디에선가 고통 받고 피해를 입고 있을 누군가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다.

때문에 조금은 서툴게 이어지는 저자의 표현과 생각의 조각들은 오히려 투박한 정감과 안도감을 전해준다. 저렇게 꾸미지 않고 자신의 여행을 기록하고 누구나에게 보여줄 수 있는 이들이 너무나 적어진 오늘이기 때문이다. 기행문이라면 평범한 이들은 결코 느낄 수 없는 심오한 철학이나 혹은 정치적 각성, 사회적 인식의 변화 필요성을 거창하게 늘어놓기 일쑤다. 그런 기행문을 심심치 않게 봐왔다. 때문이다. 저자의 글이 편안하게 그리고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이.

오직 인간만이 여행을 할 수 있다. 철새들의 머나먼 이동이나 연어들의 거친 몸짓도 여행이라 부를 순 없다. 생존을 위한 치열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구태여 자신의 시간과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소모해 가며 여행을 떠난다. 목적이 있는 여행보다 그냥 떠나는 것이다. 인간이 본디 유목으로 삶을 시작했다는 역사적 근거를 따질 필요도 없다. 우리는 다만 떠나고 싶다.

하지만 그러한 인간의 여행을 다른 지구상의 생물들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과연 그들도 우리의 몸짓을 여행이라 부를 수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그럴 수 없다. 그들에게 인간은 생존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듯 우리는 안나푸르나라는 곳에 가기 위해, 그리고 가는 여정에서 수많은 쓰레기를 버리고, 많은 자연을 파괴한다. 저자와 같이 개념찬 이들이 최대한 줄이고 줄인다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자연에게,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에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재앙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이 사라지지 않는 한 여행의 욕망, 이동의 본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지구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우주로 나갈 것이고, 죽는 그 순간까지 호기심과 고독을 참아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는 삶, 보다 간소하고 단순하게 살고자 하는 알맹이 때문에 우린 이 격변의 세상에서 스스로 해체되지 않는다고 법정 스님은 말씀하셨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대자연 안에서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귀하고 고매해질 수 있는지 난 뼈저리게 깨달았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대자연. 저자는 안나푸르나에서 자연의 위대함에 압도당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왜소함, 보잘 것 없음을 느낀다. 그런 인간들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고, 자연을 무참히 파괴하고 있는 현실에 절망과 분노를 함께 느끼면서 말이다.

세계 많은 이들이 안나푸르나를 찾는다. 그들이 안나푸르나로 가는 것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대자연의 웅장함과 네팔인들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삶을 동경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모순은 바로 거기에 존재한다. 정작 많은 트래커들이 안나푸르나를 찾기에 현지의 네팔인들은 정체성을 상실해간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달콤함에 그들의 삶을 내맡기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네팔을 찾는 이들은 실망하게 된다.
기막힌 모순의 반복이다.

라다크가 《오래된 미래》가 알려진 이후 오히려 더 많은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현지인들이 개념조차 몰랐던 빈곤층으로 전락해버린 것처럼, 세계 여러 오지를 탐방하는 서구를 비롯한 이른 바 돈 많은 국가 관광객들로 인해 정작 현지인들은 변화를 강요당한다. 그들의 아름다운 심성은 그들의 삶의 터전과 함께 더럽혀지기 시작한다. 변화는 스스로의 판단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그것은 자의가 아니다.

저자가 왜 책 제목을 이렇게 정했는지 공감한다. 물론 저자는 그곳에 가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가더라도 제대로 알고, 연대와 존중의 마음을 가지고 떠나라는 애정 어린 충고일 것이다. 자신의 여행으로 최대한의 기쁨을 얻고 대신 최소한의 피해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마음이 결국 할 수 있는 최선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섬이나 다를 바 없는 이 땅에서 여행은 새로운 문화적 충격이었고, 그야말로 대단한 모험이었다. 그야말로 큰맘 먹고 떠나야 하는 것이 해외여행이었다. 하지만 어느 새 사람들은 해외여행에 대해 당연시하는 모습이다. 벌 만큼 벌었고, 이만하면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럴까. 과연? 아직도 이 땅에 수많은 이들은 여행을 꿈꾸기엔 너무 힘들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여행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며 살고 있다. 이는 우리가 떠나는 그곳의 현지인들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들은 더욱 더 여행을 꿈꿀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오직 제3세계를 비롯한 가난한 이들의 거주 이전, 여행의 자유만 허락되지 않았다는 사실. 온갖 자본이 초 단위, 분 단위로 세계를 누비는 동안, 정작 비행기 값을 마련하지 못해, 과다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어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미 우리들은 잊은 것 같다.

때문이다. 저자와 같이 개념찬 여행자들이 늘어야 함이. 자신이 어디를 가더라도 이것이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이들. 현지인들을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친구로, 이 시간을 공유하는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들이 더욱 늘어나야 한다. 그래야 세계 어디에서든 술에 절어 고성방가를 일삼고, 섹스 관광에 몰두하는 쓰레기 같은 여행자들이 줄어들 것이다.

보다 많은 이들을 생각하며 떠나야 한다. 그곳에 가서 많은 이들을 만나는 것도 소중하지만, 떠나는 과정이 만나고 부대끼는 시간이어야 한다. 홀로 있지 않음을 느껴야 한다. 많은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느껴야 한다. 그것이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참 여행이다.  


저자의 친절함과 자상함으로 당장 이 책을 배낭에 넣고 안나푸르나로 떠나도 든든할 듯하다. 또한 저자의 있는 그대로 꾸밈없는 알뜰한 문장들로 안나푸르나가 눈앞에 그려지기도 한다. 산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몸이 근질근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 자연에 대한 겸손함과 부끄러움을 미처 챙기지 못했다면, 저자의 말을 따르는 것이 좋다.

안나푸르나, 그만 가자!

이 땅을 사랑하는 이들과 이 땅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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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여행에 대해 아직 친숙하지 않은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환경친화적인 여행자가 되는 가장 쉽고도 중요한 방법들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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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그만 가자!
진주 지음 / 북극곰 / 2009년 10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09년 10월 23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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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그리고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  

난 어떤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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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심리학-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옌스 푀르스터 지음, 장혜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5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09년 10월 2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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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하는 민주주의 - 서른 살, 사회과학을 만나다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5
손석춘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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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1%의 대한민국》에 이은 세 번째 《작은책》기획 강연을 담은 책이다. 얼마 전 《작은책》사무실에 반은 일하러 반은 놀러 간 적이 있다. 점심을 맛있게 얻어먹었다.

언제나 그렇듯 강연을 맡아주신 분들의 면면이 심상치 않다. 모두들 치열하게 사시는 분들일뿐더러 존경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도, 아깝지도 않은 분들이다. 이런 분들을 한꺼번에 뵐 수 있다는 것이 《작은책》특강의 장점이자 미덕이다. 많은 분들이 《작은책》구독과 함께 강연을 들으셨음 하는 바람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강연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다음 강연엔 반드시 참석하겠다는 변명만 늘어놓는다.) 《작은책》구독은 한 달에 3000원이다. 커피 한 잔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세상은 아름답다. 세상은 아름답지 못하다. 정답은 무엇인가? 정답은 없다. 세상은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다. 나고 죽고, 웃고 울고, 죽임을 당하고 죽인다. 우주란 것이 어느 한 순간 뚝딱 하고 탄생한 것이라면 바로 그 순간부터 변함없이 이어져 온 것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하찮은 인간 따위가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또한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인간이다. 사회란 것을 만들어 정신적․신체적 약자들을 보호하고, 그들과 연대하며 공생을 이루어왔다는 사실은 인간이란 종들이 대책 없는 쓰레기는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 없이도, 자연스레 함께 모여 힘을 합해 살아왔다. 아울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 정직하게 순응하며 살아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이 또한 크나 큰 미덕이다.

손석춘 원장《혁명은 다가오는가?》김규항 발행인《진보란 무엇인가?》박노자 교수《대한민국 주식회사》손낙구 선생《집이 많은 놈, 집은 있는 놈, 집도 없는 놈》김상봉 교수《학벌 사회를 무너뜨리자》김송이 선생《재일 조선인은 어떻게 살아가는가?》하종강․서경식 대담《한국 노동 운동의 현 주소를 묻는다》

어느 제목 하나라도 아프지 않은 게 없다. 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고 살아가야 하는가를 걱정하기 전에, 정작 우리는 어떻게 왜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절박함. 그 이유를 강연들은 솔직담백하게, 그리고 비장하게 말하고 있다. 두껍지 않은 분량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유다.

손석춘 원장의 이야기를 잠깐 옮겨본다. 조금 길지만 내 서평 따위는 넘어가더라도 이 글은 꼭 읽길 바란다.  


“텔레비전 화면에 고통 받고 있는 민중들의 삶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화면에 나타나는 모습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화려한 집안입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의 아들딸은 건방지지만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순수해 보이기도 하고, 꼭 가난한 누구와 사랑을 나누죠.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 젖어 들어 자본에 대한 적개심이나 적대감을 해소시켜 가고 있습니다. 870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주인공으로 나오거나, 또 나온다 하더라도 고통 받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출한 것은 없습니다. 맞아 죽는 농민의 모습, 뉴스는 물론 드라마에는 더더욱 안 나옵니다. 텔레비전만 보면 즐겁습니다. 현실에 대한 마취 기능이 있는 거죠. 이러다 보니까 우리는 그렇게 잘살지도 못하면서 막연하게 한국 사회가 참 괜찮은 사회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살려 달라고 애원하던 아이가 엄마 손에 생명을 빼앗긴 나라에서,(노무현 정부 당시 가장의 실직으로 힘든 삶을 살던 주부가 세 아이를 고층 아파트로 데려가 떠밀고 자신도 떨어져 자살한 사건) 우리 대다수는 대수롭지 않게 망각하며 살아갑니다. 평생 농사를 지은 69세 농부가, 45세 건설 일용직 노동자가 대낮에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 아래 맞아 죽어도 우리는 그냥 넘어갑니다.”  


물론 전쟁 같은 삶 속에서 화면에서나마 현실을 잊고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은 그 마음을 왜 모를까, 알고 있다. 하지만 난 도대체 텔레비전을 제대로 보기 힘들다. 뉴스는 아프고 드라마는 무참하다. 어느 곳에서도 용산은 기억하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도 비정규직은 찾기 힘들다. 다만 웃음과 농담 따먹기, 연예인들의 신변잡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개념찬 연예인들은 사라지고, 무개념 종자들이 넘친다. 그걸 보며 아이들은 유일한 위안을 얻는다.

책은 각 분야에서 “좋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의 삶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장 내 위치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조언해 준다. “그래도 세상이 바뀌겠나?”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반대인 사람들도 적지 않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리라고 예상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결과는 서글펐지만 우리는 항상 기적을 만들어왔다. 월드컵 4강 따위의 기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역시나 세상은 만만치 않다. 그리고 자신의 권력으로 돈으로 세상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은 쉽사리 그것을 놓지 않는다. 아니 죽기 전까지 그럴 수 없다. 손낙구 선생의 말을 들어보자. 물론 이미 다 알려져 있는 사실이긴 하다.

“‘집 많은 놈’은 도대체 집을 몇 채 가지고 있을까? 정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집을 제일 많이 가진 사람은 1,083채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상위 10명은 5,500채를 갖고 있고, 30명은 9,900채, 100명은 15,000채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17퍼센트가 전체 주택의 6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어요. 집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은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다는 뜻도 되지만, 아주 비싼 집을 많이 갖고 있다는 뜻도 되겠죠. 우리나라에 집이 1,300만 채 정도 있는데, 그중에 제일 싼 집은 강화도에 있는 9만 원짜리 농가 주택이래요. 이태원동에 있는 이건희 삼성 전 회장 집은 120억 원이라고 하죠.”

어찌해야 할까? 무장 혁명? 폭력 혁명? 안타깝지만 현실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결국은 주권 혁명, 선거 혁명만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밖에 없는가. 아쉽지만 현 상황은 그렇다. 그러면 무엇이 혁명일까? 어떻게 해야 뒤틀린 세상을 바로 잡고 사람들이 모두 제 각각 행복을 추구하며 살 수 있을까. 원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김규항 발행인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너희들, 부르주아들이 지금까지 우리 것 착취해서 그렇게 잘 먹고 잘살았으니까, 우리도 세상 뒤집어서 한번 잘 먹고 잘살아 보겠다.’이것이 혁명이 아니라는 것이죠. 남보다 잘살고 남보다 많이 가진 것을 자랑하는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를, 남보다 잘살고 남보다 많이 가진 것을 불편해하는, 같이 가고 연대하는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 혁명입니다.”

참 쉽죠 잉? 물론 쉽지 않다. 우리가 기계나 동물이 아닌 인간임을 자각하는 그 순간이 바로 혁명의 순간이 아닐까. 책은 이밖에도 주먹을 꽉 쥐게 만드는 이야기, 헛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이야기, 그리고 가슴 벅찬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이런 감정을 나 혼자만 느낄 수는 없기에. 연대와 공생으로 가는 길에 이 책을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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