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하는 민주주의 - 서른 살, 사회과학을 만나다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5
손석춘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1%의 대한민국》에 이은 세 번째 《작은책》기획 강연을 담은 책이다. 얼마 전 《작은책》사무실에 반은 일하러 반은 놀러 간 적이 있다. 점심을 맛있게 얻어먹었다.

언제나 그렇듯 강연을 맡아주신 분들의 면면이 심상치 않다. 모두들 치열하게 사시는 분들일뿐더러 존경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도, 아깝지도 않은 분들이다. 이런 분들을 한꺼번에 뵐 수 있다는 것이 《작은책》특강의 장점이자 미덕이다. 많은 분들이 《작은책》구독과 함께 강연을 들으셨음 하는 바람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강연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다음 강연엔 반드시 참석하겠다는 변명만 늘어놓는다.) 《작은책》구독은 한 달에 3000원이다. 커피 한 잔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세상은 아름답다. 세상은 아름답지 못하다. 정답은 무엇인가? 정답은 없다. 세상은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다. 나고 죽고, 웃고 울고, 죽임을 당하고 죽인다. 우주란 것이 어느 한 순간 뚝딱 하고 탄생한 것이라면 바로 그 순간부터 변함없이 이어져 온 것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하찮은 인간 따위가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또한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인간이다. 사회란 것을 만들어 정신적․신체적 약자들을 보호하고, 그들과 연대하며 공생을 이루어왔다는 사실은 인간이란 종들이 대책 없는 쓰레기는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 없이도, 자연스레 함께 모여 힘을 합해 살아왔다. 아울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 정직하게 순응하며 살아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이 또한 크나 큰 미덕이다.

손석춘 원장《혁명은 다가오는가?》김규항 발행인《진보란 무엇인가?》박노자 교수《대한민국 주식회사》손낙구 선생《집이 많은 놈, 집은 있는 놈, 집도 없는 놈》김상봉 교수《학벌 사회를 무너뜨리자》김송이 선생《재일 조선인은 어떻게 살아가는가?》하종강․서경식 대담《한국 노동 운동의 현 주소를 묻는다》

어느 제목 하나라도 아프지 않은 게 없다. 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고 살아가야 하는가를 걱정하기 전에, 정작 우리는 어떻게 왜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절박함. 그 이유를 강연들은 솔직담백하게, 그리고 비장하게 말하고 있다. 두껍지 않은 분량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유다.

손석춘 원장의 이야기를 잠깐 옮겨본다. 조금 길지만 내 서평 따위는 넘어가더라도 이 글은 꼭 읽길 바란다.  


“텔레비전 화면에 고통 받고 있는 민중들의 삶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화면에 나타나는 모습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화려한 집안입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의 아들딸은 건방지지만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순수해 보이기도 하고, 꼭 가난한 누구와 사랑을 나누죠.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 젖어 들어 자본에 대한 적개심이나 적대감을 해소시켜 가고 있습니다. 870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주인공으로 나오거나, 또 나온다 하더라도 고통 받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출한 것은 없습니다. 맞아 죽는 농민의 모습, 뉴스는 물론 드라마에는 더더욱 안 나옵니다. 텔레비전만 보면 즐겁습니다. 현실에 대한 마취 기능이 있는 거죠. 이러다 보니까 우리는 그렇게 잘살지도 못하면서 막연하게 한국 사회가 참 괜찮은 사회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살려 달라고 애원하던 아이가 엄마 손에 생명을 빼앗긴 나라에서,(노무현 정부 당시 가장의 실직으로 힘든 삶을 살던 주부가 세 아이를 고층 아파트로 데려가 떠밀고 자신도 떨어져 자살한 사건) 우리 대다수는 대수롭지 않게 망각하며 살아갑니다. 평생 농사를 지은 69세 농부가, 45세 건설 일용직 노동자가 대낮에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 아래 맞아 죽어도 우리는 그냥 넘어갑니다.”  


물론 전쟁 같은 삶 속에서 화면에서나마 현실을 잊고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은 그 마음을 왜 모를까, 알고 있다. 하지만 난 도대체 텔레비전을 제대로 보기 힘들다. 뉴스는 아프고 드라마는 무참하다. 어느 곳에서도 용산은 기억하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도 비정규직은 찾기 힘들다. 다만 웃음과 농담 따먹기, 연예인들의 신변잡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개념찬 연예인들은 사라지고, 무개념 종자들이 넘친다. 그걸 보며 아이들은 유일한 위안을 얻는다.

책은 각 분야에서 “좋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의 삶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장 내 위치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조언해 준다. “그래도 세상이 바뀌겠나?”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반대인 사람들도 적지 않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리라고 예상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결과는 서글펐지만 우리는 항상 기적을 만들어왔다. 월드컵 4강 따위의 기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역시나 세상은 만만치 않다. 그리고 자신의 권력으로 돈으로 세상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은 쉽사리 그것을 놓지 않는다. 아니 죽기 전까지 그럴 수 없다. 손낙구 선생의 말을 들어보자. 물론 이미 다 알려져 있는 사실이긴 하다.

“‘집 많은 놈’은 도대체 집을 몇 채 가지고 있을까? 정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집을 제일 많이 가진 사람은 1,083채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상위 10명은 5,500채를 갖고 있고, 30명은 9,900채, 100명은 15,000채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17퍼센트가 전체 주택의 6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어요. 집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은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다는 뜻도 되지만, 아주 비싼 집을 많이 갖고 있다는 뜻도 되겠죠. 우리나라에 집이 1,300만 채 정도 있는데, 그중에 제일 싼 집은 강화도에 있는 9만 원짜리 농가 주택이래요. 이태원동에 있는 이건희 삼성 전 회장 집은 120억 원이라고 하죠.”

어찌해야 할까? 무장 혁명? 폭력 혁명? 안타깝지만 현실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결국은 주권 혁명, 선거 혁명만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밖에 없는가. 아쉽지만 현 상황은 그렇다. 그러면 무엇이 혁명일까? 어떻게 해야 뒤틀린 세상을 바로 잡고 사람들이 모두 제 각각 행복을 추구하며 살 수 있을까. 원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김규항 발행인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너희들, 부르주아들이 지금까지 우리 것 착취해서 그렇게 잘 먹고 잘살았으니까, 우리도 세상 뒤집어서 한번 잘 먹고 잘살아 보겠다.’이것이 혁명이 아니라는 것이죠. 남보다 잘살고 남보다 많이 가진 것을 자랑하는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를, 남보다 잘살고 남보다 많이 가진 것을 불편해하는, 같이 가고 연대하는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 혁명입니다.”

참 쉽죠 잉? 물론 쉽지 않다. 우리가 기계나 동물이 아닌 인간임을 자각하는 그 순간이 바로 혁명의 순간이 아닐까. 책은 이밖에도 주먹을 꽉 쥐게 만드는 이야기, 헛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이야기, 그리고 가슴 벅찬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이런 감정을 나 혼자만 느낄 수는 없기에. 연대와 공생으로 가는 길에 이 책을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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