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그만 가자!
진주 지음 / 북극곰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솔직히 말해야겠다. 히말라야에 대해서, 안나푸르나에 대해서 아는 지식이 전혀 없었다. 아울러 네팔이란 국가에 대해서도 막연했다. 고작해야 네오 마오이즘 정도. 여행, 특히 등산을 즐겨하지 않는 나의 게으름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한비야의 글이나 여러 글들을 통해 네팔인들의 삶을 조금 엿볼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이 책과 같이 그들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다큐프로그램을 즐겨본다. 성격상 “내가 왜 연예인들의 시시껄렁한 잡담이나 뒷 담화를 아까운 시간을 들여가며 보아야 하는지”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프로를 즐겨보는 이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또 즐겨보는 이들이 많기에 그런 프로그램들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겠지만, 적어도 내 취향은 아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난 그렇게 한가하지도, 그렇게 호기심이 많은 사람도 아니다.

다큐 프로그램 중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너무나 아름답고 깨끗한 곳을 소개하는 것들이 심심치 않게 있다.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마지막 자연의 낙원, 혹은 옛 전통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소수의 이들,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은 결코 연예인 잡담과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매스컴이란 괴물이 가지고 있는 무서운 파급 효과를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알게 되면 더 이상 그곳은 깨끗해 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옛 모습은 한 순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러한 다큐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차라리 영원히, 그게 불가능하다면 될 수 있는 한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공정무역, 공정여행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사람들이 여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될 수 있는 한 양심적인 소비, 여행을 하자는 취지다. 당연히 공감한다.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기엔 이미 늦어버린 이 시대에, 그나마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는 방법 중 하나다. 또한 나로 인해 어디에선가 고통 받고 피해를 입고 있을 누군가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다.

때문에 조금은 서툴게 이어지는 저자의 표현과 생각의 조각들은 오히려 투박한 정감과 안도감을 전해준다. 저렇게 꾸미지 않고 자신의 여행을 기록하고 누구나에게 보여줄 수 있는 이들이 너무나 적어진 오늘이기 때문이다. 기행문이라면 평범한 이들은 결코 느낄 수 없는 심오한 철학이나 혹은 정치적 각성, 사회적 인식의 변화 필요성을 거창하게 늘어놓기 일쑤다. 그런 기행문을 심심치 않게 봐왔다. 때문이다. 저자의 글이 편안하게 그리고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이.

오직 인간만이 여행을 할 수 있다. 철새들의 머나먼 이동이나 연어들의 거친 몸짓도 여행이라 부를 순 없다. 생존을 위한 치열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구태여 자신의 시간과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소모해 가며 여행을 떠난다. 목적이 있는 여행보다 그냥 떠나는 것이다. 인간이 본디 유목으로 삶을 시작했다는 역사적 근거를 따질 필요도 없다. 우리는 다만 떠나고 싶다.

하지만 그러한 인간의 여행을 다른 지구상의 생물들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과연 그들도 우리의 몸짓을 여행이라 부를 수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그럴 수 없다. 그들에게 인간은 생존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듯 우리는 안나푸르나라는 곳에 가기 위해, 그리고 가는 여정에서 수많은 쓰레기를 버리고, 많은 자연을 파괴한다. 저자와 같이 개념찬 이들이 최대한 줄이고 줄인다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자연에게,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에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재앙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이 사라지지 않는 한 여행의 욕망, 이동의 본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지구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우주로 나갈 것이고, 죽는 그 순간까지 호기심과 고독을 참아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는 삶, 보다 간소하고 단순하게 살고자 하는 알맹이 때문에 우린 이 격변의 세상에서 스스로 해체되지 않는다고 법정 스님은 말씀하셨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대자연 안에서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귀하고 고매해질 수 있는지 난 뼈저리게 깨달았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대자연. 저자는 안나푸르나에서 자연의 위대함에 압도당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왜소함, 보잘 것 없음을 느낀다. 그런 인간들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고, 자연을 무참히 파괴하고 있는 현실에 절망과 분노를 함께 느끼면서 말이다.

세계 많은 이들이 안나푸르나를 찾는다. 그들이 안나푸르나로 가는 것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대자연의 웅장함과 네팔인들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삶을 동경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모순은 바로 거기에 존재한다. 정작 많은 트래커들이 안나푸르나를 찾기에 현지의 네팔인들은 정체성을 상실해간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달콤함에 그들의 삶을 내맡기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네팔을 찾는 이들은 실망하게 된다.
기막힌 모순의 반복이다.

라다크가 《오래된 미래》가 알려진 이후 오히려 더 많은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현지인들이 개념조차 몰랐던 빈곤층으로 전락해버린 것처럼, 세계 여러 오지를 탐방하는 서구를 비롯한 이른 바 돈 많은 국가 관광객들로 인해 정작 현지인들은 변화를 강요당한다. 그들의 아름다운 심성은 그들의 삶의 터전과 함께 더럽혀지기 시작한다. 변화는 스스로의 판단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그것은 자의가 아니다.

저자가 왜 책 제목을 이렇게 정했는지 공감한다. 물론 저자는 그곳에 가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가더라도 제대로 알고, 연대와 존중의 마음을 가지고 떠나라는 애정 어린 충고일 것이다. 자신의 여행으로 최대한의 기쁨을 얻고 대신 최소한의 피해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마음이 결국 할 수 있는 최선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섬이나 다를 바 없는 이 땅에서 여행은 새로운 문화적 충격이었고, 그야말로 대단한 모험이었다. 그야말로 큰맘 먹고 떠나야 하는 것이 해외여행이었다. 하지만 어느 새 사람들은 해외여행에 대해 당연시하는 모습이다. 벌 만큼 벌었고, 이만하면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럴까. 과연? 아직도 이 땅에 수많은 이들은 여행을 꿈꾸기엔 너무 힘들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여행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며 살고 있다. 이는 우리가 떠나는 그곳의 현지인들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들은 더욱 더 여행을 꿈꿀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오직 제3세계를 비롯한 가난한 이들의 거주 이전, 여행의 자유만 허락되지 않았다는 사실. 온갖 자본이 초 단위, 분 단위로 세계를 누비는 동안, 정작 비행기 값을 마련하지 못해, 과다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어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미 우리들은 잊은 것 같다.

때문이다. 저자와 같이 개념찬 여행자들이 늘어야 함이. 자신이 어디를 가더라도 이것이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이들. 현지인들을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친구로, 이 시간을 공유하는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들이 더욱 늘어나야 한다. 그래야 세계 어디에서든 술에 절어 고성방가를 일삼고, 섹스 관광에 몰두하는 쓰레기 같은 여행자들이 줄어들 것이다.

보다 많은 이들을 생각하며 떠나야 한다. 그곳에 가서 많은 이들을 만나는 것도 소중하지만, 떠나는 과정이 만나고 부대끼는 시간이어야 한다. 홀로 있지 않음을 느껴야 한다. 많은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느껴야 한다. 그것이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참 여행이다.  


저자의 친절함과 자상함으로 당장 이 책을 배낭에 넣고 안나푸르나로 떠나도 든든할 듯하다. 또한 저자의 있는 그대로 꾸밈없는 알뜰한 문장들로 안나푸르나가 눈앞에 그려지기도 한다. 산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몸이 근질근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 자연에 대한 겸손함과 부끄러움을 미처 챙기지 못했다면, 저자의 말을 따르는 것이 좋다.

안나푸르나, 그만 가자!

이 땅을 사랑하는 이들과 이 땅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들의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