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심리학 -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옌스 푀르스터 지음, 장혜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누구나 편견을 가지고 있다. 어디에선가, 누구에겐가 영향을 받았는지는 정확히 콕 집어 말할 수 없지만, 고정관념도 적지 않다.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없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어쩌면 삶은 새로운 편견과 고정관념을 만들어가고, 또한 기존의 그것들을 깨버리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편견을 “우리를 상처주고 바보로 만드는 이유 없는 마음의 벽”이라고 정의한다. 이유가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 스스로 바보가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쉽사리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든 것은 ‘파시스트’였다. 일단 상대방이 파시스트라고 판단되면 연상되는 여럿의 행동이나 사고들이 있다. 파시스트이기에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등등.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에게 고정관념, 혹은 편견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사소한 것에서부터, 정치적인 신념까지 다양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이거 말하다 보니 무슨 참회록, 반성문 느낌이다. 어쩔 수 없다. 어쩌면 책이, 저자가 우리에게 요구한 것이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측면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난 일단 연예인들에 대한 편견이 있다. 아주 나쁜 것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스스로는 많은 이유와 근거를 댈 수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편견인 것은 숨길 수 없다. 최근에는 아나운서에 대한 편견도 생겼다. 물론 부정적인 것이다. 노현정 아나운서의 결혼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그 후 방송3사 아나운서들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다시 한 번 부정적인 편견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강수정, 최송현 등등은 내 편견에 확신을 더해준 사례이다.

정치적인 면을 보자면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 보수 정치인들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이걸 마땅히 고정관념이라고 해야 하는지는 조금 망설여지지만, 일단 한나라당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고, 거기에 속해 있는 인간들의 행동에 일정한 패턴을 읽는다. 수구 보수 세력 역시 마찬가지다. 아마 죽을 때까지 나와는 동화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 언론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행동이나 글들은 놀랄 만큼 예측가능하다. 어떤 사건이 발생한 후, 다음 날 이들 신문의 헤드라인을 거의 정확하게 맞춘 경우도 적지 않다. 내가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만큼 패턴이 정해져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당혹스러울 때가 있음을 숨기지 말아야겠다. 집단으로 보았을 때 놀랄 만큼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던 이들도 막상 개인적으로 살펴본다면 의외에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럴 때에 느끼는 당혹감이란.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에서 일정 부분 벗어나게 되면 인간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이것이 인간 본래의 특성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잖이 당혹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이 더욱 큰 분노를 느끼게 만든다.

예를 들자.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을 떠난 수구 보수 정치인 혹은 언론인이 막상 떠난 후에는 자신이 그토록 저주했던 반대 세력의 행동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물론 반대 역시 존재한다. 진보 진영에서 전설로 알려졌던 인물이 한순간 변절하여 한나라당의 똘마니나 수구세력의 충견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인물들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 것이다. 하지만 물론 이런 이들의 행동을 인간의 본래 특성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이런 인간들은 다만 변절한 것이고, 심하게 말하면 가치 없는 존재일 뿐이다.

저자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또한 수많은 학자들의 실험 결과나 이론을 통해 편견이 가지고 있는 여러 특성, 고정관념의 근원적 발생 원인과 이론 인한 인간의 행동 패턴을 설명한다. 편견은 인간이 생존함에 있어 최소한의 노력으로 보다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영위하는 데 도움을 준다. 때문에 편견은 생각보다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깨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길거리나 훤한 대낮에 덩치 큰 흑인 4~5명이 앞에서 우울한 표정으로 걸어온다면 약간 놀라긴 하겠지만, 그리 큰 위험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같은 상황이 아무도 없는 늦은 밤거리, 혹은 할렘의 어느 지하 주차장에서 벌어진다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편견이다. 흑인이라는 인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신의 편견, 고정관념이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예전에 TV 다큐프로에서 했던 실험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 초라한 옷을 입히고 쇼 윈도우에 서게 했다. 그리고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질문했다. 저 사람의 직업이 무엇인 것 같냐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건설직 노동자나 무직자, 힘든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대답했다. 또한 그 사람과 만나 볼 생각이 있느냐란 질문에 대부분이 거절했다.

하지만 같은 사람에게 비싸 보이는 정장을 입히고 다시 쇼 윈도우에 서게 했다. 그리곤 같은 질문을 했다. 어떤 답변이 나왔을까. 대부분 예상한 것과 같다. 여성들은 전문직 종사자, 변호사, 혹은 의사 등의 답변을 했고, 대부분 흔쾌히 만나볼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여성차별적인 실험이 아니냐고? 물론 성별을 바꾸어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이처럼 편견은 우리의 삶 속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인종, 성별에 대한 편견. 지역과, 나처럼 특정 직업, 정당, 단체에 대한 편견은 보다 안전한 선택을 위한 본능적인 판단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스스로를 좁은 틀 안에 가두게 되고, 결과적으로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는 데 방해가 된다.

한국 사회가 가장 많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히 많은 편견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할 것이다. 망국병이라는 지역 차별은 이제 같은 지역 안에서도 존재한다. 같은 주공아파트에 사는 주민들끼리도 평수에 따라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고 무시하는 일이 생긴다. 20평대에 사는 부모들은 자녀에게 10평대에 사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어처구니없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이것이 단순히 개인적인 편견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발언이다. 한국사회는 편견을 조장하며 권력을 유지해 온 집단이 엄연히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이번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를 바라보는 네티즌 중에서도 이런 편견이 철철 넘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어떤 댓글은 “완전히 (전)라도 세상이구만”이란 표현을 썼고, 어떤 이들은 “원래 더러운 야구는 SK가 전문이지”란 비방을 서슴지 않았다. 축제이긴 하지만 ‘우리’들만의 축제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당시에도 차마 입에 담지 못할(이 표현은 나의 고정관념, 편견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말들이 인터넷 상을 장식하곤 했다. “이제 갈 때가 되어서 간 건데 뭐가 그리 슬퍼”“잘 뒈X다”등등.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편견, 전라도라는 지역에 대한 편견은 이처럼 가장 상식적인, 고인에 대한 예우마저도 잊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편견은 우리를 일정한 상자 안에 가두어 스스로를 바보로 만든다. 반북감정을 비롯해, 반중, 반일, 반미까지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야말로 공정한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일본을 싫어하는 것인지, 일본인들을 싫어하는 것인지 판단하지 못하고, 북한이란 국가를 싫어하는 것인지, 김일성, 김정일이란 개인을 싫어하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 인민들을 싫어하는 것인지 기준이 명확치 않다. 혹은 일부러 모호하게 만든다.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는 행동이다.

참고로 이번 MB정부가 인도적 대북지원은 전임 정부들과 같이 변함없다고 하면서도 1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지원을 중단시켜 결과적으로 많은 북의 어린이, 노약자들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 나가게 만든 다음, 이제야 그것도 기껏 옥수수 가루 1만 톤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치가 떨렸던 기억이 있다. 이것은 순전히 북한이란 국가, 혹은 북한 사회에 대해 가지고 있는 대통령과 그 외 똘마니들의 편견으로 인한 결과였다. 핵과 미사일과 아이들의 생명, 굶주림은 하등 관계가 없다. 더 치가 떨리는 것은 대통령을 비롯한 떨거지들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편견과 싸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슬람권 이웃들에게 대한 편견,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편견, 북한에 대한 편견, 호남 상호 간의 편견, 수도권과 비수도권과의 편견, 진보와 보수 간의 편견 등 우리 삶과 밀접한 편견들이 너무나 많다. 이러한 편견들을 극복해 나갈 때 그나마 이 사회는 살만해지지 않을까.

용산참사 피해자들에게 5~6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그들이 단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불법 폭력 행위를 하여 많은 피해를 낳았다는 편견, 약자는 밟으면 결국 해결된다는 고정관념, 권력이 승리한다는 허황된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이 시대의 비극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총리 등등 거의 모든 고위직 인사들의 비리, 불법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떠들지 못하는, 아니 당장 효성 그룹의 비리에 대해서도 대통령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굽실거리기만 하는 ‘이 나라의 법’이 용산의 가난한 이웃들에겐 이처럼 비정하고 참혹할 수 있는 이유. 이들이 이렇게 더러운 짓거리를 해도 무사하리라 믿는 이유.

그것은 바로 정부의, 권력의, 대통령의 행동은 막을 수 없고, 그러한 행동은 아마도 정당하리라 믿는 시민들의 편견이 깨질 때에만 없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편견이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편견이 아니라 상식일 테지만. 불행히 우리는 비정상적인 국가에서 살고 있다. 그것은 기억해야 한다. 이것도 내 편견이라면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많은 편견과 고정관념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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