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와 위선 - 좌파 인물 15인의 사상과 활동
김광동 외 지음 / 북마크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가슴이 아프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틀키드 2009-12-24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 만들 시간에 스스로 좀 정체성에 대해 고민 좀 해봤으면 한다. 역겹다.
 
성찰하는 진보
지성사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진보는 멍청하다? 생각이 없다? 아님 개념이 덜 됐다?

뭐 이명박과 같은 이가 대통령이 될 정도로 무능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인정해야 할 것 같고, 그럼 앞으로도 희망은 별로 없다?

“몽양과 죽산 같은 보수가 필요하다. 백범이 한국 진보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황홀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흔쾌히 보수 정당에 가입할 용의도 있다. 암암. 있고말고.

조국 교수는 명민한 학자다. 아니 뛰어나다고 해야 맞을지 모른다. 젊은 나이에 교수라는 결코 쉽지 않은 자리에 오른 것도 그렇고, 또한 자신의 능력과 행운으로 이룬 모든 것들이 결코 ‘제 잘나서’ 이룬 것이 아님을 알고 있을 정도로 염치도 있는 사람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정말 찾기 힘든 부류다.

게다가 뛰어난 글 솜씨에 말도 잘한다. 뭐 알 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얼굴도 미남이다. 뭐 부족한 게 없어 보인다. 뭐 하나 잘 하는 게 없어 정말 앞날이 걱정인 나 같은 이들에게는 선망과 시기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건 뭐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조국 교수와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교해 본 적이 있었다. 모두 미남이고 배경도 좋고, 일단 첫인상이 참 좋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두 사람의 운명은 그들의 행동으로, 또한 생각으로 극명하게 갈려있다. 앞으로도 그 엇갈림이 다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한 명은 참 존경스러운 반면, 한 사람은 참 안쓰럽고, 짜증난다. 뭐 할 수 없다. 그것도 자기 복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책은 진보 세력들도 꼴통 짓 하지 말고 개념 차게 반성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라는 내용이다. 사회 각 분야의 현존하는 머리 아픈 문제들을 돌아보고, 과연 이 시대의 진보들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양심적으로다가 살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솔직히 개념 상실의 꼴통들이 보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충분히 공감하면서 때로는 반성도 하면서 읽었다.

사람은 결국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며 살아간다. 그 행동에 따른 결과, 혹은 대가 역시 온전히 자기 몫이다. 때문에 후회할 짓은 처음부터 안 하는 것이 좋다. 제일 좋은 모습이다. 하지만 세상사가 어찌 마음대로 되는가. 때론 하기 싫은 일도, 때론 하지 말아야 할 일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인간은 고뇌하고 최소한 양심에 찔리기라도 한다.

하지만 지금 세상을 보면 당최 양심이라는 게 원래 인간에게 있었던 것인가 묻고 싶을 정도로 개념을 분실한 채 똥밭을 나뒹구는 인간들 천지다. 게다가 더욱 웃긴 건 그런 인간들이 사회 명사네 인사네 하며 거들먹거린다는 사실. 세상이 아무리 엿 같아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인데, 이젠 아닌 것이 맞는 게 되어버린 세상이라.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속 트리플로 벌어지곤 한다. 머리가 아프지만, 이게 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니 귀 닫고 입 닫고 눈도 감은 채 살아가기엔 한계가 따른다.

하지만 분명한 조국 교수와 같이 끊임없이 사유하고 고민하고 성찰하는 이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생각 없이 월급에서 카드값 빼고 공과금 빼고 이것 저것 제외하고 얼마나 남을까 고민하며 세월을 축내다가도 별안간 번개를 맞은 듯 각성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스펙터클한 세상, 직접 내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널린 세상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조목조목 요약 정리를 해주는 이들이 필요한 것이 사실 아닌가. 난 머리가 심히 나빠서 가끔씩 이런 슬기로운 사람들이 깨우쳐줘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사람구실을 하고 살아간다.

노무현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난 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개판이 되어가고 있다. 일일이 말하기도 짜증날 정도로 기가 막힌 일들만 벌어지고 상식과 정의는 지나가는 개가 물어가 버렸다. 오늘 아침도 이명박 대통령님께서 고위층의 청렴도를 평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장면을 보며 출근했다. 전과 17범이 말이다. 어제는 정운찬 총리가 공군인가 해군인가 어딜 가서 경례를 받는 것도 봤다. 군 면제자가 말이다.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이 진보였나? 애매하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보수다? 그건 더 웃긴 소리다. 진정한 보수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서슴없이 목숨을 내놓는다. 그게 보수고 그게 보수주의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과 그 근처에 있는 족속들은 과연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이 한 목숨 바칠까~요? 답은 뭐….

제일 짜증나는 게 포기하는 모습이다. 희망이 100%일 때 포기하는 것은 미친 짓이지만 10%일 때 포기하는 것은 배신이고, 스스로에 대한 부정이다. 때문에 조국 교수의 “그래, 나는 꿈꾸고 있다. 아직 나는 꿈꾸고 있다. 매일 나는 꿈꾸고 있다.”는 말이 멋지게 들린다. 그렇다. 꿈조차 꾸지 못하면 송장이다. 곧 썩는단 말이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많은 생각을 이끌어내고, 재미도 있는 데다, 울화통까지 터지게 만드는 책. 이 책이 그렇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안이 뭔데? 오세훈 대안이 뭔데? 김문수, 박근혜 대안이 뭔데?”라고 병신 같이 주저하는 것보다 이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고 정신 건강에도 좋을 것이라 단언한다.

때문이다.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보는 죽은 사상인가
막스 갈로 지음, 홍세화 옮김 / 당대 / 1997년 8월
평점 :
품절


 

“생산력의 발전을 통하여 인간해방을 이룰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진보주의 이데올로기가 빠진 함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냉전의 해체, 사회주의의 명백한 패배. 그 이후 “역사의 종말”을 외치며 희희낙락하던 자본주의의 휘청거림. 온 인류에게 오직 평화만이 남았다고 들뜨던 이들에게 닥친 전쟁의 반복, 또 살육과 학살.

책은 1996년 프랑스의 《르 몽드》에 실린 글을 모은 것이다. 미국 평론가인 윌리엄 파프가 던진 “진보는 이제 죽은 사상인가?”라는 질문에 프랑스의 정치가, 철학자, 학자, 언론인 등이 답하는 형식이다. 짧게는 원고지 20~30매의 분량부터 다소 긴 글까지 각자가 생각하고 믿어 온 진보를 말하고 있다.

그 후 10년이 지났다. 이제 사회주의의 부활을 점치거나 자본주의의 영원함을 외치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10년 전 이들이 고민하고 우려했던 이들은 여지없이 찾아왔다. 과학적 진보로 인해 인류에게 새로운 유토피아가 찾아올 것이라 믿었던 대다수 사람들에게 조용한 경고를 던졌던 이들이다. 때문에 1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섬뜩하고, 우울하다.

「진보 사상의 종말은, 근대화라는 괄호를 굳게 닫았지만, 전지구적 차원에서 문명화된 삶에 대한 논의에 괄호를 여는 아시아의 그 엄청난 봉기가 유럽인들에게 준 긴 파장의 결과일 뿐이다. 시간의 화살을 쏘는 것을 보지 못한다고 실망하고 있기보다, 우리들 자신의 그릇된 역사관을 버림으로써만이 우리들은 남은 역사적 과제에 공헌하게 될 것이다.」

「미래는 항상 과거를 정당화시키고, 정복에 따른 잘못된 희생이 어떻든 간에, 현재는 아무 거리낌 없이 새로운 개척지를 향한 척후의 역할을 담당하는 그런 틀 속에서 시간과 역사, 그리고 과학과 기술은 보조를 맞추어, 하나의 방향으로, 행복한 결말을 향해 나아갔다.」

「진보주의자 ‘특유의’ 환상은, 이 진보가 자동적이며 무의식적으로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그리고 문화적인 면에도 대등한 진보를 가져올 것이라는 확신에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상품교환과 통신의 국제화는 국경 없이 연대하는 지구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게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모순적이고 훼손된 상업적 글로벌리제이션이 되어, 불평등을 더욱 강화시키고 공동체의 공황, 외국인 혐오와 인종주의, 민족주의와 정체성 추구의 광신주의로 몰아가고 있다.」

「우리는 금세기의 추악함과 끔찍함을 통하여 겸허해져야 할 것이다. 안락함이 인간의 마음에 있는 잔인성을 없애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하며, 18세기의 기대했던 것과는 반대로 진보는 윤리적 진보와 전혀 동의어가 되지 못한다.」

「여기에 우리 미래의 비밀이 있다. 지독스럽게 얽혀 있고 복잡하며 상호의존적이고 역설적인 이 세계, 잡다한 망이 뒤섞인, 온갖 징후를 보이는 이 세계에서, 오직 자신의 잘못을 기억하고, 자신의 잔악행위를 잊지 않는 인간만이, 실종되지 않을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오직 그런 인간만이 선으로 이루어진 이념을 향해 나아갈 - 만약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면 - 것이다. 기억상실증으로 스스로를 살찌우고 있는 자본주의는 이것에 대비하지 못한다. 산업의 승리가 있던 세기에 한정된 진보에 대한 서양의 개념을 흉내내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사회는 영혼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디자인’이라는 추상적 관념의 충족을 위해 ‘사람’이라는 명백함을 거부하고 있는 서울시. 아니 대한민국. 진보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지만 정작 주체를 상실하게 만드는 지독한 오류에 빠져들고 있다. 효율성,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무수히 많은 죄악들이 정당화되는 시대. 사회주의의 붕괴는 허무맹랑함을 자본주의에게 선사했다. 최후의 일격일 수도 있고, 자본주의 스스로 불러들인 치명적 무기일수도 있다.

10년이 더 지난 지금, 앞으로의 10년을 생각해보면 가슴이 턱턱 막히는 것. 비난 나 뿐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더 우울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 가려 뽑은 함석헌 선생님 말씀
함석헌 지음, 김영호 엮음 / 한길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가만히 있어보면, 아니 그냥 스쳐 지나가듯 봐도 난 참 무지하다. 교양 없고 상식도 꽝인데다 당최 눈치도 없다. ‘100대 1’에 출전한다면 1~2문제에서 바로 탈락할 것이란 예감으로 창피하고, ‘도전! 골든벨’에 나간다면 학생들 볼 면목이 없어 조용히 사라질 것 같다. 암튼 참 무식한 녀석이다.

함석헌 선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생각하고 흠모하고 따라야 할 큰 어른임에도 여지껏 난 선생에 대해 거의 무지했다. ‘씨알의 소리’‘그 사람을 가졌는가’정도만이 기껏 알고 있는 전부였다.

책을 읽게 된 것도 순전히 우연이었음을 고백해야겠다. 책은 본디 〈함석헌 저작집 전30권 출간기념기획〉으로 선생이 하셨던 너무도 귀한 말씀 중 일부를 가려 뽑은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난 저작집 30권 중 단 한 권도 읽지 못한 녀석이다. 이를테면 염치없게도 요약집을 먼저 읽은 셈이다.

하지만 진정 거인의 흔적은 일개 서생이 봐도 통한다고 하지 않는가. 무지한 내가 읽어도 선생의 글은 하나 같이 커다란 울림을 전해준다. 삶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정작 나는 이 세계에서 어떤 존재인가. 이 모든 것들을 되짚어 주는 선생의 말씀은 그 자체로 한 없이 귀한 나침반이다.

민주주의, 인권을 위한 선생의 거룩한 시간들. 참된 종교를 위한 희생의 시간들. 선생의 길은 가시밭길이었지만 너무도 복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때문에 지금도 많은 제자, 후손들이 선생의 가르침에 눈물 흘리고 선생의 죽비와 같은 꾸짖음에 정신을 번쩍 차리곤 한다.

사실 흔히 보수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땅에 어른들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온전히 틀린 말은 아님을 알고 있다. 어른이 없는 세상은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정작 우리는 그렇지도 않고 오히려 억압과 무지만이 판친다. 그들이 말하는 어른이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생각하는 어른인지는 몰라도, 우리 모두가 우러러 볼 수 있는 어른이 아님은 슬프지만 사실이다.

이 나라가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을 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성조기를 들고 울부짖고, 진보단체의 엄연한 행사장에 쳐들어가 삿대질과 고함을 서슴지 않는 이들을 어른이라고 부를 수는 도저히 없지 않는가. 전직 대통령들을 싸잡아 빨갱이라 매도하고, 전라도 것들은 죄다 쓸어 죽여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이들, 북한이 여전히 북괴고, 이명박 대통령이 선정을 베풀어 그나마 망해가던 이 나라가 살아나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 친일인명사전에 움찔해 스스로 ‘친북인명사전’을 만들겠다고 입에 거품을 무는 이들. 미국으로부터 우리의 당연한 주권인 전시작전권을 되찾아오겠다는데, 그걸 앞장서서 반대하는 해괴한 이들. 도대체 이들을 어떻게 어른이라 부를 수 있냐는 말이다.

때문에 함석헌 선생과 같은 이들이 너무나 그립고 눈물겨운 지금이다. 선생은 자신이 죽어야 나라가 살고, 민족이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모두가 죽을 정도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뼈아픈 자성의 촉구였다.

「역사는 언제나 기적의 기록입니다. 눌린 놈은 꼭 영원히 망할 것만 같은데 새 시대의 주인이 되고, 권세를 쥔 놈은 틀림없이 영원히 지배자일 듯 한데 반드시 망하고야 마니 기적 아닙니까. … 겁내지 않고 나가고 보면 바다 밑에도 길이 열리고, 남의 것 빼앗아 먹을 생각 말고 욕심 부리지 않고 하면 거친 들을 들여다봐도 거기 먹을 것이 있더라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입니다.」

꿈같은 이야기라 무시할 수 있는가. 이 단순한 진리를 외면해 역사의 죄인, 민족의 죄인으로 기억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단순함을 망각하는 순간, 역사는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선생은 정신이 살아있고, 생각이 살아있는 민족이 결국 승리할 것임을 말씀하셨다. 잊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이 결국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음을 강조하셨다. 그것은 단순한 승리의 길이 아닌, 공생과 나눔과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는 기꺼운 삶으로의 길이었다.

「정신이 빠지면 춤을 추어도 미친 짓이요, 장식을 해도 시체에 달린 부장품입니다. 옥 같은 손가락이라도 한번 내 몸에서 끊어지면 더러운 것이 되고, 꾀꼬리 같은 노래라도 나를 잊게 하는 것이면 독한 주문입니다. 즐거움도 아름다움도 전체를 하나로 살리는 의미가 있어야만 됩니다.」

나를 포함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산송장’들이 돌아다니는지, 부끄럽고 면목 없을 따름이다. 생은 그렇게 소중한 것인데, 정작 생을 살아가는 이들은 그 소중함에 걸맞는 삶을 꾸리고 있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볼 일이다.

선생은 결코 지지 말라고 하셨다. 지지 않는 것이 곧 이기는 것임을 잊지 말라 하셨다. 곤궁하고 때론 비참해지는 이 삶 속에서 결코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다. 삶이기에 넘어지는 것이다. 삶이기에 눈물겨운 것이다. 하지만 결코 무릎 꿇지는 말 일이다.

「생명은 지속이다. 끊이지 않고, 끊어졌다가도 다시 잇는 것이 생명이다. 또 한 번 해보는 것이 생명이다. 지지 않는 것이 이김이다. 져도 졌다 하지 않는 것이 이김이다. 놓지 않는 것이 믿음이다. 살려니 되려니 믿음이다.」

정녕 아름다운 삶을 마치고 떠나신 함석헌 선생. 선생이 가신 뒤로도 삶은 이어지고 역사는 흘러간다. 하지만 정작 아름다움을 위한 투쟁은 멈춰선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간절히 원하기에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는 이들이 숨 쉬고 있는 한 정녕 져도 지는 일은 아닐 것이다.

「삶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퍼져나가는 가지같이 그칠 줄 모르는 삶의 음악을

손에, 발에, 소리에, 얼굴에 넘쳐흐르게 하는 일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러나 

한 맘을 묶어 정성껏 바친 한 사람을 위해

맘껏 일하다가 힘껏 싸워 죽을 수 있다면

그는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보다도 

흘러가는 세상 물결 속에 흐르지 않는 사업을 쌓아

바위 위에 서서 죽는 등대지기같이 그 위에 서서 죽는다면

그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그보다도 또

영원히 실현될 길 없는 이상의 맑은 불꽃을 안고

새파란 나래째 부나비 되어 그 안에 뛰어들어 타죽고 만다면

그것은 그것은 얼마나 눈물이 나는 일인가


즐거움, 아름다움, 행복, 영광을 다 모르고

나도, 세상도, 온 길도, 앞날도 다 볼 줄을 모르고

그저 타, 타, 타, 영원한 불길을 타오르고만 마는 그 일은

아아, 그 일은 얼마나 눈물나게 거룩한 일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무례하게도 감히 필명으로 쓰고 있는 간서치(看書痴)의 제 주인 이덕무와 그의 벗, 스승들이 함께 만들어간 아름다운 이야기. 정말 눈물이 다 나올 정도니 그 어떤 감동적인 소설에도 미치지 못함이 없다. 아마도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눈물겹게 아름다운 책이 아니었나싶다. 이덕무에 대한 개인적인 흠모의 정이 상당 부분 들어간 평가이긴 하다.

‘선비’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부정적 느낌은 아마도 일제가 무던히도 노력한 결과가 조금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무위도식하며, 꿈같은 이야기만 늘어놓고 정작 백성들의 고통은 나 몰라라 했던 무능과 무력함의 상징. 지금도 ‘선비 같은 사람이야’라는 말이 온전히 칭찬만은 아닌 이유다.

물론 무능력한 선비가 왜 없었을까, 또한 백성들의 고초에는 아무 관심 없이 평생 한 번 가보지도 못한 대국(중국)을 향한 일편단심 짝사랑만 하다 사라진 이들이 왜 없었겠나. 지금도 망국의 근원인 사대굴종주의가 사라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선비의 상징은 결코 아니었다. 당파싸움, 붕당 정치 등의 부정적인 단어들을 제외한다면 선비는 우리의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해왔고, 또 지금도 많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간서치라는 다소 비꼬는 듯한 별명을 유쾌히 받아들이며 백성들의 따뜻하고 굶주리지 않아도 되는 삶에 온 힘을 기울였던 이덕무. 그리고 그와 함께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며 백성들에 대한 사랑도 잊지 않았던 벗들, 스승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눈에 박히는 아름다운 그림과 문장들은 순간이나마 지금의 더러운 세상을 잊게 만들어준다. 이들이 선비였구나, 이들이 진정 선비였구나.

달빛 아름다운 밤, 수표교에서 펼쳐진 조그만 음악회. 그 아름다운 선율이 환청처럼 다가온다. 벗들과 함께, 스승과 함께, 자신의 신분적 굴레와 모든 고통, 상처를 잊고 다만 그렇게 음악과 밤에 취해 미소 지었던 밤. 이덕무와 벗들에게 그 밤의 선율과 달빛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삶의 빛이었으리라.  


지금 그 옛날 이덕무가 벗들과 함께 음악회를 감상했던 수표교는 현존하는 위대한 대통령께서 한양의 수장이었을 적, 디자인 한양을 만들기 위해 갈아엎으셨다. 더 이상 그 때의 흥취가 묻어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 간서치라 불리던 이덕무가 지금의 한양과 조선을 본다면 무어라 할지 두렵기만 하다. 간전(錢)치가 버글거리는 세상이라 하지 않을까.

 

이덕무는 어린 시절부터 책읽기를 좋아하여 박식하고 시와 문장에도 능했지만, 서자 출신이라는 신분의 제약으로 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청춘을 보냈다. 그러다 정조의 발탁으로 마흔이 다 되어 규장각의 초대 검서관으로 임명된다. 그의 벗들 역시 마찬가지다. 끝내 자신을 알아준 군주를 만난 이덕무와 벗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옛 시절 옛 사람들의 고리타분한 이야기라 넘겨짚지 말 일이다. 책은 보다 많은 것을 품고 있으며, 보다 많은 시대를 논하고 있다. 이덕무와 벗들은 “꼴 베고 나무하는 사람에게도 묻는다”는 시경의 구절을 늘 가슴에 새기며 살았다. 민초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이는 군주든, 고관대작이든 모두 다 부질없는 허상에 불과함을 잘 알고 있었다.

 

어지러운 이 시대, 부끄러움이 없어지고 염치가 사라진 지금. 진정 그들이 그리운 이유다. 자신의 더러움을 보지 못한 채 오직 탐욕과 증오에 눈이 먼 장님들의 세상. 오로지 ‘책만 보던 바보’가 그리운 이유다. 

시간을 초월해 나누었던 간서치와의 대화. 한없이 소중해 다시 눈을 훔치게 된다. 선비가 죽은 시대, 어리석었으나 참으로 현명했던 한 선비를 그리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