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어라운드 - 88만원 세대의 비상식적 사회 혁명론 2030 Passion Report 2
이승환 지음 / 라이온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꾸준한 자기 검열과 성찰이 없다면 얼마든지 상황에 먹혀버릴 수 있다. 사실상 좌절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얼마 전 지인이 펴낸 《요새 젊은 것들》이란 책을 재미있게 읽는 적이 있다. 좌절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에서 좌절 대신 유쾌한 발란을 시도하는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가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다.

 

하지만, 앞의 말처럼 ‘좌절하지 않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누구나 인정하는 지금 젊은 세대들의 어려움을 본다면 “용기를 내! 희망을 잃지 마!”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한 뻔뻔함을 수반해야 함을 알고 있다.

 

때문에 이른 바 나이 좀 드시고 사회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인간들이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내랍시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게 영 같잖았다. 자기들의 유년 시절은 온통 가난과 배고픔뿐이었다며, 그래도 너희들은 우리 때보다는 조건이 좋다는 둥, 떠들어 대는 그들을 볼 때마다 참 한심하곤 했다. 솔직한 마음이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에게 “너희들이 그때의 처절함을 알어? 이 철없는 것들아!”라고 말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전쟁이란 것이 얼마나 참혹하고, 그것이 일어난다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인지, 꼭 몸으로 겪어야만 한단 말인가. 꼭 젊은이들이 피를 봐야만 직성이 풀리느냔 말이다.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어려웠던 지난 시절을 당연히 겪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우왁 우왁 겁주고 윽박지르는 것은 전혀 어른답지 못한 찌질한 행동이다. 오히려 지금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수많은 어려움들의 원인이 어디에서 왔는지, 혹시나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벌어진 재앙은 아닌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쓸데없이 훈계나 하지 말고 말이다.

 

때문에 이 책은 매우 신선하고 또한 눈물겨웠다고 할 수 있다. 일단 같이 죽어라 고생하고 있는 젊은이가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고, 그가 이른바 명문대를 나오거나 집안이 빵빵하거나 하는 예외성이 없는 그야말로 평범한 이라는 점이 좋다.

 

아울러 그가 힘들고 괴로웠던 시절을 스스로 극복하려 노력했고,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에 마냥 굴복하기 보다는 스스로 맞써 싸워왔다는 점. 그것이 가장 듬직하고 대견하고 고마웠던 것이다.

 

책을 보면 알겠지만, 저자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패싸움 누명을 쓰고 구치소 사교육을 받았기도 했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독학사 고시로 대학을 졸업했다. 책만 읽고 책 속에 파묻혀 왜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든지 스스로 고뇌해 온 사람이다.

 

그런 저자이기에 그가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한 훈계도 선동도 아니다. 자신의 고민과 갈등과 상처가 모두 담겨있는 솔직한 삶의 이야기다. 물론 다방면의 독서를 통한 해박함과 문장의 간결함이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살짝 암시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는 빌어먹을 88만원 세대고, 언제 잘릴지 몰라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비정규직인 것이다. 때문에 진솔하게 이야기들이 다가온다.

 

어른들이,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아비규환의 지옥에서 결국 살아남으려면 남을 짓밟아야 하고, 죽여야 하고, 이겨야 한다. 그렇게 움직일 것인가? 저자는 단호하게 묻는다. 그리고 외친다. 엿 같은 세상이지만 우리가 바꿔보자고!

 

반나절 만에 책을 읽었지만, 여운은 오래가는 책이다. 지금 이 땅의 헐떡거리고 있는 젊은이들이 부디 한 번 쯤을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빌어먹을 써먹지지 않을 토익 책 대신에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든 젊은이들의 건투를 빈다. 너희들 잘못이 아니다. 나 역시 애매한 세대에 끼여 개고생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릎을 꿇지는 말자. 너희를 구속하려는 모든 것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슬며시 들어주고 이렇게 외치자.

 

“됐거든!?”

 

저자의 마지막 문장을 옮긴다. 저자 역시 건투를 빈다.

 

“우리의 눈으로 시대를 보자. 우리의 문제 앞에 정직하게 당면하고 우리 문제의 사슬을 끊어버리자. 그리고 다시 우리의 인생과 우리가 살아갈 시대를 책임지자. 저 통장의 잔고가 우리의 이름을 대변하지 못하도록, 의미도 가치도 없는 졸업장이 우리의 이름을 대신하지 못하도록, 내 인격도 가능성도 모르면서 서류상의 숫자들로 나를 평가하지 못하도록, 그들이 나를 넥타이 맨 바보로 만들지 못하도록, 우리 인생과 시대를 이제는 우리가 책임지자. 미흡해도 우리 인생과 시대는 우리가 책임지자. 그 한 마디가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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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마다 살아온 시간이 다른 만큼 추억도 다르다. 아직 어린 내 세대의 아래 위를 살펴봐도 모두 나름마다의 추억이 있고, 또 낭만이 있었다. 황야의 무법자들이 악당을 소탕하는 웨스턴 무비에 열광했던 우리 윗세대가 있다면 주윤발과 장국영에 매혹되었던 내 또래들이 있었고, 지금 또래들은…. 음, 솔직히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내가 잘 모른다)

 

남자들의 로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무협 소설이 아닐까. 권 당 50원, 때론 1000원에 하루 종일 만화책과 무협지들을 읽을 수 있었던 만화 가게. 내 바로 위 또래들. 또는 내 또래들이 열광했던 것 들 중 하나가 바로 만화 가게, 또 무협지였다.

 

온갖 마도의 세력이 중원을 어지럽히고 있을 때 홀연히 나타난 절대 무림 고수. 그는 부모님을 살해한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 극강의 무공을 닦아왔다. 하지만 채 익지 않은 무공은 그를 주화입마라는 절망적 상태로 만들어버리고, 이대로 무너질 위기에 있던 그를 구한 것은 사부님의 외동딸이자 평생 홀로 짝사랑했던 한 여인.

 

뭐 대충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스토리들. 기억하시는가. 무협지는 수업 시간 국어 혹은 영어 교과서 밑에 깔려 수업 시간의 진행 속도를 배로 급강시켜 주었고, 종종 선생님께 걸려 호되게 야단을 맞기도 한 원인 중 하나였다.

 

과거 구무협부터 공장무협, 중국무협, 신무협에 이르기까지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한국 무협의 역사 속에 얼마나 주옥같은 극강 비급들이 존재했었나. 그 수많은 명작들을 밤을 새워가며 읽어본 경험. 80~90년대를 살아간 남자들이라면 적어도 몇 번 쯤은 있으리라.

 

얼마 전 즐겨 놀러가는 딴지일보 게시판에서 한국 무협에 대한 절정 고수님들의 글을 접한 후 옛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음은 물론이다. 때문에 과연 나는 얼마나 많은 책들을 전수받았는지, 돌이켜 보았고, 강호에 출호한 이래 이날 이때까지, 허접스런 무공에 머물러 있는 내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강호에 숨어있는 초절정 고수들이 몇이란 말인가!

 

서효원 작가의 책은 재작년인가 폐업정리하는 도서대여점 세일 코너에서 입수한 비급이었다. 사실 예전 무협지 좀 읽었다는 이들에겐 아직까지 전설로 남아있는 이가 서효원이다. 하지만 통탄할 지고, 온갖 판타지 퓨전 무협지들이 강호를 접수하고 있는 이 때, 서효원을 기억하는 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그는 대학 시절 강호에 출호한 이래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10년 간 무려 128편이라는 작품을 쏟아낸 전설의 작가였다. 〈대자객교〉〈실명대협〉〈실명천하〉〈대중원〉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던 그는 안타깝게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짧은 시간 동안 다량의 작품을 만들어낸 그는 작품마다 스토리가 비슷하다는 단점이 지적되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 무협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완벽한 주인공이 갑자기 강호에 나타나 온갖 절정 고수들을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한다는 다소 뻔한 스토리에서 벗어나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주인공이 자신과의 처절한 갈등을 극복하고 비로소 정의의 세계에 돌아온다는 구상은 무협지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려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무협의 새로운 갈래를 만들어낸 것이다. 애초 무공에는 소질을 보이지 못한 채 백면 서생으로 책장이나 넘기던 내가 서효원 작가의 대표작을 읽을 기회는 없었다. 천마삼세는 다만 그의 128편의 작품 중 하나였을 뿐이다. 하지만 나의 유년 시절, 철없었지만, 정의감에 불타고, 약자에 대한 동정과 강자에 대한 패기와 도전의식이 넘쳤던 그 시절을 떠올리기엔 충분한 비급이었다.

 

무협지가 그토록 많은 이들의 신금을 울렸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박진감 넘치는 액션과 끈끈한 의리, 그리고 너무도 고혹적이면서도 때론 가슴 아프게 애절한 사랑이 담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또 하나 있다. 온갖 부조리가 판치는 현실 세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 정의는 결국 〈완결편〉에서 이뤄지고 만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악한 마의 무리들이 온갖 거짓말과 폭력으로 무림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선량한 백성들을 고통에 빠지게 만들었던 그때. 사람들은 거짓과 속임수와 억압만이 존재하는 그 시절. 꽁꽁 숨어 무협지를 읽으며 이 더러운 세상을 조롱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도 액션 판타지 무협 소설들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도 이해가 간다. 뭐 다들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공권력이 민간인을 사찰하는 이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천마이세의 못다 이룬 천하 마업을 이루기 위해 키워진 천마삼세 공야릉. 그는 무서운 속도로 마도와 백도의 초절정 비급들을 전수받으며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천하 제일의 고수가 된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난 후 하나 하나 무림의 초고수들을 쓰러뜨리며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만화책을 우습게 아는 이들은 대부분 무협지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전혀 쓸모없는 쓰레기라 치부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반드시 매일 매일 칸트와 니체를 논할 수도, 라캉과 지젝을 노래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무협지라는 장르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미덕을 굳이 부정할 필요가 없다. 짜증나고 열 받는 세상. 현실에선 이뤄지지 않는 권선징악을 대신 시원하게 보여주는 무협지가 있기에 그래도 우리가 가끔은 통쾌하게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아! 다시 영웅문부터 찾아 잃어버린 강호의 열정을 되찾아야 겠다.

영웅들이 뜨겁게 숨 쉬는 무림의 세계로 초절정 비급을 얻기 위해 떠나보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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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틀키드 2010-07-07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효원 지음 / 서울창작 펴냄 (1998년 8월) / 독서기간 2010년 7월 1일 ~ 7월 5일 / 독서번호 1138, 1140
 
그린북 - 할리우드 유명 스타 12명이 함께 쓴 실천형 환경 가이드북 일상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것들
엘리자베스 로저스 외 지음, 김영석 옮김 / 사문난적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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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굳이 말을 안 해도 지금 지구가 얼마나 황폐화되었고, 자연이 훼손되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매일 매일 여의도 면적의 수십 배에 달하는 면적이 황폐화되고 있고, 바다 역시 그 이상의 면적으로 썩어간다. 뭐 알면서도 대충 살아가는 게 인간이다.

 

책은 참 대견스럽다. 대견이란 말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게 미국이, 한 번 더 강조하자. ‘미국!’이 지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책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유명 스타 12명이 함께 쓴 실천형 환경 가이드북’이란 문구에서 할리우드 스타는 집어치우고, 아무튼 환경을 살릴 수 있는 가이드북이란 것을 펴냈다는 자체가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다. 왜냐고?

 

미국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고 공기를 제일 많이 더럽히고, 바다를 제 집처럼 사용하고, 석유를 그야말로 물 쓰듯 하는 나라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국가라는 소리다.

 

그런 미국에서 비록 소수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환경을 생각하는 가이드북을 펴냈다는 것이 어찌 놀랍지 않을까. 시시콜콜히 집부터 시작해서 엔터테인먼트, 여행, 통신과 기술, 학교, 일, 쇼핑, 건강과 아름다움, 스포츠, 돈과 금융, 건축물 등에 이르기까지 작은 실천으로 환경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은 말 그대로 ‘오호라~!’를 연발케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 하나, 책의 내용이 아무리 좋으면 무엇하랴. 실천이 먼저 이뤄져야 하는 것을. 책의 가장 큰 맹점이자, 어쩌면 부러 눈감은 부분이 어쩔 수 없이 보인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미국인들이 실질적으로 실천하기 참! 힘든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왜 실천하기 힘들다는 것일까. 내용을 보면 다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인데 말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책의 내용대로 미국 인구의 절반만 실천해도,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미국이란 나라는 소비와 낭비, 무절제와 사치로 움직이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아끼고 재활용하는 습관을 제대로 들인다면 미국의 대부분의 기업은 도산하기 때문이다.

 

대충만 볼까?

 

미국인들은 매년 보통의 두 겹짜리 냅킨을 일인당 평균 2200장 소비한다. 매일 6장 이상 사용하는 것. 미국인들은 병에 담긴 물을 하루에 평균 0.24리터 마신다. 플라스틱이 석유에서 추출된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미국인이 마시는 병에 담긴 물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연간 150만 배럴의 석유가 필요하다. 학교로부터 3.2킬로미터 이내에 거주하는 학생들의 2.5퍼센트만이 자전거로 학교에 간다. 버스나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는 그 60만 명의 학생들로 인해 하루에 거의 38만 리터의 휘발유가 절약된다. 미국의 모든 사업장에서는 연간 2100만 톤의 복사지가 소비된다. 즉 종이 4조 장 이상이 사용된다. 매년 약 4천억 장에 달하는 사진 복사를 하는데, 그것은 매분 75만 장의 종이가 복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로자들은 1년에 평균 1만 6천 킬로미터 정도 차를 운전한다. 우리가 통근 거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2550억 리터의 휘발유를 소비한다. 근로자들의 3분의 1은 음식을 사려고 사무실을 떠나며, 점심 식사를 하는 데 대개 한 시간가량을 보낸다. 매일의 노동 시간 중 점심 식사 때 버려지는 일회용 컵과 플라스틱 용기만 해도 지구의 적도를 한 바퀴 두를 수 있는 양보다 많다. 미국인들은 매년 140억 개 이상의 종이컵을 사용한다. 지구를 55바퀴 두를 수 있는 양이다. 스티로폼 종류의 컵은 9세대에 걸쳐 썩지 않고 지구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동안 당신의 후손들이 계속 태어날 것이다. 매년 미국에서는 팩스 용지를 공급하기 위해 1700만 그루의 나무가 베어진다. 전 세계의 보통 가정은 집에 127개나 되는 물품을 소유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보통의 가정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 총 만 개에 이른다. 매년 미국에서 판매된 300만 벌의 진짜 모피 의류 중에서 10퍼센트만 다른 의류로 대체되어도 평균 1900만 리터의 석유가 절약되고 500만 마리의 동물이 목숨을 건질 수 있다.

 

정말이다. 대충만 본 거다. 일일이 다 소개하자면 끝도 없다.

 

물론 이 지구라는 것을 미국 혼자 다 전세 낸 것도 아니고, 또 우리 자랑스런 대~한민국도 지구 온난화와 오염에 한 몫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미국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인 한 가정이 아프리카 인구 몇 명의 물을 소비할 것인지 상상해보라. 잔디에 물주는 것만 아껴도 아프리카인들은 지금처럼 물 때문에 죽어나가지는 않지 않을까.

 

미국의 소비 문화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소비주의에 빠진 미국이 우리가 따라가야 할 롤 모델은 더더욱 아니다. 미국은 비정상적 국가다. 그런 비정상을 추종하게 되면 우리도 역시 비정상이 된다. 물론 이미 50년 전부터 우리는 추종해 왔고, 추종하고 있다.

 

양심적으로 산다는 것은 별 것 아니다. 정말 마음에 께름칙한 것들이 없게 행동하면 된다. 강약의 차이를 떠나 울렁거림이 없으면 된다. 하지만 난 얼마나 울렁거리며 살아가고 있나.

책은 어찌 보면 세련된 반미 도서나(!) 반자본주의 책처럼 보인다. 물론 순진무구하신 저자들께서 그런 의도로 쓰신 것은 아닐 테다.

 

책의 내용의 10분의 1이라도 미국인들이 행동해 준다면, 글쎄 세상은 더욱 아름답지 않을까. 기대가 큰 것은 알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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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 두 장으로 한국사회 읽기 2008-2009 - MB시대, 정치.사회.문화의 쟁점들
최태욱, 염종선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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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분노해야 하는 이유

 

매주 이메일로 〈창비주간논평〉을 받았다.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없더라도 이것만큼은 꼭 읽으려 노력했다. 두 개의 짧은 글이라 시간이 그리 많이 소요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허투루 읽을 수 없는 글들이었다.

 

창비가 우리 사회에 가지고 있는 상징성, 그리고 적지 않은 역사와 굴곡 속에 다져진 내공이 있기 때문에 창비주간논평의 글들 역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읽을 수 없는 것들이다. 이 시대 각 분야의 전문가, 진보개혁진영의 인사, 사회활동가, 칼럼니스트, 학자 등 많은 이들의 내공과 고민이 담긴 글들은 그대로 나에게 하나의 지침이자, 자극제가 되어왔다.

 

때문에 2008년부터 2009년까지의 사회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이 책은 소장의 가치와 재성찰의 의미를 동시에 전해준다. 이명박 이라는 도저히 국가의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이가 대통령이 된 이후 우리 사회 모든 부분들이 어떻게 왜곡되고 퇴행되고 추락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간 MB정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자 대안이 살아 숨 쉬는 책이다.

 

어떤 이들은 일개 정부의 제한성과 비영속성을 지적한다. 어차피 아무리 날고 뛰어봤자 5년 뿐이라는 생각이다. 일견 맞지만 상당히 위험한 생각이기도 하다. 대통령제라는 특성상, 그리고 기형적인 우리나라 정치 구조상 ‘일개 정권’이 때로는 그 이후 수 십년, 혹은 그 이상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군사장기독재정권이라는 특수성이 있기는 하지만 박정희 한 인간의 영향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맹렬히 살아있지 않은가.

 

때문에 이명박 정권의 5년은 결코 만만히 생각할 것이 아니다. 참고 참고 또 참고 견디면 어차피 물러갈 정권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벌써 수많은 피해와 고통을 국민들에게 떠넘기게 만들었다. 지식인, 정치인, 노동자 할 것 없이 뼈를 깎는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이유이다.

 

흔히 현 정권은 상식과 염치와 비전이 없는 정권이라 말한다.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말이다. 오로지 땅을 파헤쳐 경제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용산의 노동자들을 테러범 소탕하듯 진압하고, 살인한 정권이다.

 

“경찰은 그들을 적으로 생각하였다.…경찰 병력 20개 중대 1600명과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대테러 담당 경찰특공대 49명, 그리고 살수차 4대가 배치되었다. 경찰은 처음부터 철거민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경찰은 쥐처럼 흠뻑 젖은 시민을 중요 범죄자나 테러범으로 생각하는 듯했다.…이때 불길 속에서 뛰쳐나온 농성자 3, 4명이 연기를 피해 옥상 난간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외쳤으나 아무도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매트리스도 없는 차가운 길바닥 위로 떨어졌다. 이날의 투입작전은 경찰 한명을 포함, 여섯구의 숯처럼 까맣게 탄 시신을 망루 안에 남긴 채 끝났으나 애초에 경찰은 철거민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철거민 또한 그들을 전혀 자신의 경찰로 여기지 않았다.”

- 「詩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이시영 시인 중에서 -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어 원안대로 간다고 한다. 그동안 세종시를 둘러싸고 발생한 수많은 갈등과 소요 비용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정운찬 하나 나간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가. 오직 정쟁과 제 잇속 차리기에 정신없는 시정 잡배들의 놀음에 죽어나가는 것은 결국 서민, 국민, 우리들일 뿐이다. 세종시를 또 다른 대기업을 위한 ‘파티 장소’로 바꾸려 했던 정부는 이제 원안 시행에 미적거릴 것이 뻔하다. 대기업이나 그에 못지않게 기업화된 일류 대학들은 세종시 이전을 다시금 생각할 것이다. 돈이 안 되는데 가겠나. 이런 쓰레기 같은 나라를 만들고 있는 장본인들이 지금도 좋은 차에 좋은 집에서 살고 있다.

 

그러는 사이 시민들은 고통 받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를 처먹으라고 윽박지르다가 국민들의 분노에 ‘아침이슬’을 살짝 부르고 명박산성을 쌓았다. 방송을 장악해 국민들을 바보로 만들려 노력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국민들은 불의에 눈 감고 이웃의 고통에 나몰라라 했다. 용산 참사는 국민들의 책임도 무겁다.

 

경찰과 검찰은 태생적인 비열함을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법은 ‘만인’이 아닌 ‘만명’한테만 평등했고, 성 접대나 돈을 받는 검사들이 사회의 지도층 행세를 하고 있다. 오직 효율, 돈 만을 외치며 전 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온 나라가 공사장처럼”되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발상이 더러운 입에서 튀어 나왔다.

 

MB의 분신이라는 공정택은 역시나 그의 분신답게 부패의 극치를 보여주며 서울 교육, 나아가 전국의 교육을 경쟁의 전쟁터로 만들었고, 천안함을 이용해 다시 한 번 국민들을 로봇으로 만들려 했다.

 

복지에 들어가는 돈을 건설에 쏟았고, 아이들은 굶어갔다. 디자인 서울을 만들겠다는 시장의 오만으로 우리 아이들은 아름다운 굶주림을 감당해야 했다. 비열함과 몰상식, 무례함의 극치를 달리며 전직 대통령 두 명을 떠나보내게 했으며, 할 수도 없는 능력을 숨긴 채 북과의 전쟁 운운하며 국내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했다.

 

정상회담에서 자국의 군 작전권을 미국이 제발 더 갖고 있으라고 애걸하는 대통령. 자국의 안보를 미국에 맡기며 이것을 성과라 말하는 정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비전하나 없이 서민 경제를 살리겠다며 거짓말하는 정부, 최저임금 10원을 인상하며 거들먹거리는 기업들. 능동적 복지, 복지민영화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의 복지를 내팽개치는 정부.

 

이러한 온갖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바라보면 과연 5년이 짧다고 할 수 있을까. 그냥 닥치고 참고 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 믿어야 하는가. 이 시간에도 죽어가는 아이들과 노동자들. 열악한 환경에서 언제 잘릴지 몰라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우리 어머니들. 아버지들. 그리고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이주 노동자들.

 

등록금 때문에 부모와 자식이 모두 자살하는 시대. 학교를 멀티플렉스로 만들며 “돈을 가져와라! 돈을!”외치는 대학. 비정규직은, 공고, 상고를 다니는 아이들은, 지방대(요새는‘지잡대’라 부른다고 한다. 지방 잡대란 뜻이란다) 학생들은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으로 전락한 세상. 이 더럽고 엿 같은 사회를 더욱 공고히 만들고 있는 것이 과연 누구인가.

 

내가 분노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보다 더 선명할 순 없다. 난 게으르지 말아야 하며, 무식하지 말아야 하며, 속지 말아야 한다. 돈과 자본, 상품이라는 유혹 속에 인간성을 팔아버리고, 자존감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죄악에 대한 대가는 치르게 마련이다. 그리고 잘못된 것은 끊임없이 지적되어야 하고 수정되어야 한다. 적어도 역사의 발전이라는 것이 있다면 말이다.

 

때문에 책은 소중하고, 안타깝고, 치열하고, 절실하다.

 

분노하지 않는 인간은, 행복해야 할 자격도 없다. 난 그렇게 믿는다.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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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체
박범신 지음 / 푸른숲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제가 원래 뭐 하나에 꽂히면 당분간 정신 못 차리고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난 번 《백수산행기》를 읽은 뒤, 등산에 다시 마음이 동해 한 달 정도 등산을 하고 있어요. 그러던 중 예전에 사두고 고이 모셔두었던 이 책을 찾게 되었지요. 산 생각만 하다 보니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작가야 뭐 워낙 유명한 분이니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고, 참고로 제 개인적인 인연이라면 1996년 대학 입학 시 면접을 잠깐 봤던 기억이 납니다. 주제넘게도 제가 그때 문예창작과에 지원했었거든요. 한국 문학과 나아가 세계 문학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다행히, 그리고 당연히 떨어졌지만요.

 

그때 작가님이 “인상 깊게 읽은 책이 무어냐”라고 물으신 게 생각납니다. 그때 제 대답이 그야말로 압권이었죠. “백...백범일지요. 그리고 굳이 또 하나를 물으신다면 다케이코 이노우에의 《슬램덩크》라고 말씀드릴 수….”

작가님의 얼굴이 상상 되시죠? 늦게나마 참 죄송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저는 참 무지한 천둥벌거숭이였답니다.

 

암튼 작가와의 인연은 그게 다고요. 작가의 소설은 한 두 권정도 읽었던 것으로 기업합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촐라체를 집어 들었고요.

 

촐라체는 산 이야기죠.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산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겐, 아니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도저히 무모해 보일 수밖에 없는 도전을 하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추운 것을 정말 못 참는 편입니다. 몸이 매우 마른 편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여름보다 전 겨울에 특히 맥을 못 춥니다. 때문에 높이는 그만두고서라도 살인적으로 춥다는 이유 하나로 전 이미 히말라야나 에베레스트, 안나 프루나 등등의 전설적인 이름들과는 괴리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가 덕분에 이렇게 책을 접하게 됐습니다. 그리곤 참 많은 생각을 했어요. 인간이란 나약한 존재의 위대함. 자연이라는 위대한 존재의 고독감.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라는 어쩔 수 없이 서러운 관계. 촐라체는 무지한 저에게 깊은 울림의 소리를 전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수히 쏟아지는 산악 용어를 몰라도 괜찮았습니다. 그것이 감동의 깊이를 덜어주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게 무얼까 하는 호기심을 주었죠. 그리고 막연하게나마 히말라야를 오르고 있는 저를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감히 현실화될 수 없는 아름다운 상상이었죠.

 

라인홀트 메스너는 ‘죽음이 지대’를 뚫고 나가려면 어떤 ‘모럴’이 필요하다고 썼다. ‘무덤과 정상 사이’는 ‘종이 한 장’차이밖에 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뚫고 나갈 때 ‘오히려 지각이 맑아지고 민감해지며’마침내는 ‘전혀 새로운 생의 비전을 연다’는 것이다. 그는 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를 올랐고, 낭가파르바트 8천 미터 리지에선 ‘갑자기 둥근 모양을 한 투명체가 등 뒤에 구름처럼 떠 있는 걸’본 사람이었다.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무모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 강약의 차이, 성격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책을 덮고 제가 처음 생각한 것도 ‘나는 그동안 얼마나 무모한 일에 생명을 걸어왔나’였습니다. 타고난 겁쟁이에다가 모험을 특히나 안 좋아하는 무사안일주의자인 저로서는 그리 떠오르는 것이 없더군요.

 

하지만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모하게 도전해서 잔인하게 깨져본 경험이 없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만약 그런 분들이 있다면 쪼금 행복한 분들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과 사소함의 위대함은 끝내 모르시겠죠.

 

사람은 사람을 믿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고양이도 강아지도 믿지만, 아쉽게도 그들에게 제 생명을 100% 맡긴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굳이 생명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야말로 홀로는 절대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사람을 미워하게 되고 이용하려 하고 버리려 합니다.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듯이 굴기도 하고요. 그리고 제 멋대로 사람을 단정 짓고 평가합니다. 무서운 일이죠. 감히 어느 누가 사람을 알겠습니까.

 

서로를 위한 배려나 애정이 소중하다는 흔한 말은 소용도 없겠습니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 사람이 필요함에도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부정하는 멍청한 행동을 하곤 합니다. 아무 말 없이 사람들을 보듬어주는 자연과 비교할 수조차 없죠.

 

촐라체는 위대한 자연의 숭고함.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끝끝내 지켜낸 이들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위대한 자연과 버금갈 정도로 위대한 생명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전부 동의하실 수는 없겠죠. 세상엔 사람의 제 몫을 하지 못하는,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눈물과 고통을 주는 이들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믿습니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을요.

 

아름답고도 가슴 아픈, 기억에 남는 독서였습니다. 이제 전 다시 촐라체 대신 북한산을 오릅니다. 건승하세요.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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