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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 두 장으로 한국사회 읽기 2008-2009 - MB시대, 정치.사회.문화의 쟁점들
최태욱, 염종선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내가 분노해야 하는 이유
매주 이메일로 〈창비주간논평〉을 받았다.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없더라도 이것만큼은 꼭 읽으려 노력했다. 두 개의 짧은 글이라 시간이 그리 많이 소요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허투루 읽을 수 없는 글들이었다.
창비가 우리 사회에 가지고 있는 상징성, 그리고 적지 않은 역사와 굴곡 속에 다져진 내공이 있기 때문에 창비주간논평의 글들 역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읽을 수 없는 것들이다. 이 시대 각 분야의 전문가, 진보개혁진영의 인사, 사회활동가, 칼럼니스트, 학자 등 많은 이들의 내공과 고민이 담긴 글들은 그대로 나에게 하나의 지침이자, 자극제가 되어왔다.
때문에 2008년부터 2009년까지의 사회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이 책은 소장의 가치와 재성찰의 의미를 동시에 전해준다. 이명박 이라는 도저히 국가의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이가 대통령이 된 이후 우리 사회 모든 부분들이 어떻게 왜곡되고 퇴행되고 추락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간 MB정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자 대안이 살아 숨 쉬는 책이다.
어떤 이들은 일개 정부의 제한성과 비영속성을 지적한다. 어차피 아무리 날고 뛰어봤자 5년 뿐이라는 생각이다. 일견 맞지만 상당히 위험한 생각이기도 하다. 대통령제라는 특성상, 그리고 기형적인 우리나라 정치 구조상 ‘일개 정권’이 때로는 그 이후 수 십년, 혹은 그 이상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군사장기독재정권이라는 특수성이 있기는 하지만 박정희 한 인간의 영향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맹렬히 살아있지 않은가.
때문에 이명박 정권의 5년은 결코 만만히 생각할 것이 아니다. 참고 참고 또 참고 견디면 어차피 물러갈 정권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벌써 수많은 피해와 고통을 국민들에게 떠넘기게 만들었다. 지식인, 정치인, 노동자 할 것 없이 뼈를 깎는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이유이다.
흔히 현 정권은 상식과 염치와 비전이 없는 정권이라 말한다.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말이다. 오로지 땅을 파헤쳐 경제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용산의 노동자들을 테러범 소탕하듯 진압하고, 살인한 정권이다.
“경찰은 그들을 적으로 생각하였다.…경찰 병력 20개 중대 1600명과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대테러 담당 경찰특공대 49명, 그리고 살수차 4대가 배치되었다. 경찰은 처음부터 철거민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경찰은 쥐처럼 흠뻑 젖은 시민을 중요 범죄자나 테러범으로 생각하는 듯했다.…이때 불길 속에서 뛰쳐나온 농성자 3, 4명이 연기를 피해 옥상 난간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외쳤으나 아무도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매트리스도 없는 차가운 길바닥 위로 떨어졌다. 이날의 투입작전은 경찰 한명을 포함, 여섯구의 숯처럼 까맣게 탄 시신을 망루 안에 남긴 채 끝났으나 애초에 경찰은 철거민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철거민 또한 그들을 전혀 자신의 경찰로 여기지 않았다.”
- 「詩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이시영 시인 중에서 -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어 원안대로 간다고 한다. 그동안 세종시를 둘러싸고 발생한 수많은 갈등과 소요 비용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정운찬 하나 나간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가. 오직 정쟁과 제 잇속 차리기에 정신없는 시정 잡배들의 놀음에 죽어나가는 것은 결국 서민, 국민, 우리들일 뿐이다. 세종시를 또 다른 대기업을 위한 ‘파티 장소’로 바꾸려 했던 정부는 이제 원안 시행에 미적거릴 것이 뻔하다. 대기업이나 그에 못지않게 기업화된 일류 대학들은 세종시 이전을 다시금 생각할 것이다. 돈이 안 되는데 가겠나. 이런 쓰레기 같은 나라를 만들고 있는 장본인들이 지금도 좋은 차에 좋은 집에서 살고 있다.
그러는 사이 시민들은 고통 받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를 처먹으라고 윽박지르다가 국민들의 분노에 ‘아침이슬’을 살짝 부르고 명박산성을 쌓았다. 방송을 장악해 국민들을 바보로 만들려 노력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국민들은 불의에 눈 감고 이웃의 고통에 나몰라라 했다. 용산 참사는 국민들의 책임도 무겁다.
경찰과 검찰은 태생적인 비열함을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법은 ‘만인’이 아닌 ‘만명’한테만 평등했고, 성 접대나 돈을 받는 검사들이 사회의 지도층 행세를 하고 있다. 오직 효율, 돈 만을 외치며 전 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온 나라가 공사장처럼”되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발상이 더러운 입에서 튀어 나왔다.
MB의 분신이라는 공정택은 역시나 그의 분신답게 부패의 극치를 보여주며 서울 교육, 나아가 전국의 교육을 경쟁의 전쟁터로 만들었고, 천안함을 이용해 다시 한 번 국민들을 로봇으로 만들려 했다.
복지에 들어가는 돈을 건설에 쏟았고, 아이들은 굶어갔다. 디자인 서울을 만들겠다는 시장의 오만으로 우리 아이들은 아름다운 굶주림을 감당해야 했다. 비열함과 몰상식, 무례함의 극치를 달리며 전직 대통령 두 명을 떠나보내게 했으며, 할 수도 없는 능력을 숨긴 채 북과의 전쟁 운운하며 국내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했다.
정상회담에서 자국의 군 작전권을 미국이 제발 더 갖고 있으라고 애걸하는 대통령. 자국의 안보를 미국에 맡기며 이것을 성과라 말하는 정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비전하나 없이 서민 경제를 살리겠다며 거짓말하는 정부, 최저임금 10원을 인상하며 거들먹거리는 기업들. 능동적 복지, 복지민영화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의 복지를 내팽개치는 정부.
이러한 온갖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바라보면 과연 5년이 짧다고 할 수 있을까. 그냥 닥치고 참고 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 믿어야 하는가. 이 시간에도 죽어가는 아이들과 노동자들. 열악한 환경에서 언제 잘릴지 몰라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우리 어머니들. 아버지들. 그리고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이주 노동자들.
등록금 때문에 부모와 자식이 모두 자살하는 시대. 학교를 멀티플렉스로 만들며 “돈을 가져와라! 돈을!”외치는 대학. 비정규직은, 공고, 상고를 다니는 아이들은, 지방대(요새는‘지잡대’라 부른다고 한다. 지방 잡대란 뜻이란다) 학생들은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으로 전락한 세상. 이 더럽고 엿 같은 사회를 더욱 공고히 만들고 있는 것이 과연 누구인가.
내가 분노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보다 더 선명할 순 없다. 난 게으르지 말아야 하며, 무식하지 말아야 하며, 속지 말아야 한다. 돈과 자본, 상품이라는 유혹 속에 인간성을 팔아버리고, 자존감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죄악에 대한 대가는 치르게 마련이다. 그리고 잘못된 것은 끊임없이 지적되어야 하고 수정되어야 한다. 적어도 역사의 발전이라는 것이 있다면 말이다.
때문에 책은 소중하고, 안타깝고, 치열하고, 절실하다.
분노하지 않는 인간은, 행복해야 할 자격도 없다. 난 그렇게 믿는다.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