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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어라운드 - 88만원 세대의 비상식적 사회 혁명론 ㅣ 2030 Passion Report 2
이승환 지음 / 라이온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꾸준한 자기 검열과 성찰이 없다면 얼마든지 상황에 먹혀버릴 수 있다. 사실상 좌절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얼마 전 지인이 펴낸 《요새 젊은 것들》이란 책을 재미있게 읽는 적이 있다. 좌절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에서 좌절 대신 유쾌한 발란을 시도하는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가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다.
하지만, 앞의 말처럼 ‘좌절하지 않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누구나 인정하는 지금 젊은 세대들의 어려움을 본다면 “용기를 내! 희망을 잃지 마!”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한 뻔뻔함을 수반해야 함을 알고 있다.
때문에 이른 바 나이 좀 드시고 사회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인간들이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내랍시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게 영 같잖았다. 자기들의 유년 시절은 온통 가난과 배고픔뿐이었다며, 그래도 너희들은 우리 때보다는 조건이 좋다는 둥, 떠들어 대는 그들을 볼 때마다 참 한심하곤 했다. 솔직한 마음이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에게 “너희들이 그때의 처절함을 알어? 이 철없는 것들아!”라고 말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전쟁이란 것이 얼마나 참혹하고, 그것이 일어난다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인지, 꼭 몸으로 겪어야만 한단 말인가. 꼭 젊은이들이 피를 봐야만 직성이 풀리느냔 말이다.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어려웠던 지난 시절을 당연히 겪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우왁 우왁 겁주고 윽박지르는 것은 전혀 어른답지 못한 찌질한 행동이다. 오히려 지금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수많은 어려움들의 원인이 어디에서 왔는지, 혹시나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벌어진 재앙은 아닌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쓸데없이 훈계나 하지 말고 말이다.
때문에 이 책은 매우 신선하고 또한 눈물겨웠다고 할 수 있다. 일단 같이 죽어라 고생하고 있는 젊은이가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고, 그가 이른바 명문대를 나오거나 집안이 빵빵하거나 하는 예외성이 없는 그야말로 평범한 이라는 점이 좋다.
아울러 그가 힘들고 괴로웠던 시절을 스스로 극복하려 노력했고,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에 마냥 굴복하기 보다는 스스로 맞써 싸워왔다는 점. 그것이 가장 듬직하고 대견하고 고마웠던 것이다.
책을 보면 알겠지만, 저자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패싸움 누명을 쓰고 구치소 사교육을 받았기도 했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독학사 고시로 대학을 졸업했다. 책만 읽고 책 속에 파묻혀 왜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든지 스스로 고뇌해 온 사람이다.
그런 저자이기에 그가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한 훈계도 선동도 아니다. 자신의 고민과 갈등과 상처가 모두 담겨있는 솔직한 삶의 이야기다. 물론 다방면의 독서를 통한 해박함과 문장의 간결함이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살짝 암시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는 빌어먹을 88만원 세대고, 언제 잘릴지 몰라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비정규직인 것이다. 때문에 진솔하게 이야기들이 다가온다.
어른들이,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아비규환의 지옥에서 결국 살아남으려면 남을 짓밟아야 하고, 죽여야 하고, 이겨야 한다. 그렇게 움직일 것인가? 저자는 단호하게 묻는다. 그리고 외친다. 엿 같은 세상이지만 우리가 바꿔보자고!
반나절 만에 책을 읽었지만, 여운은 오래가는 책이다. 지금 이 땅의 헐떡거리고 있는 젊은이들이 부디 한 번 쯤을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빌어먹을 써먹지지 않을 토익 책 대신에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든 젊은이들의 건투를 빈다. 너희들 잘못이 아니다. 나 역시 애매한 세대에 끼여 개고생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릎을 꿇지는 말자. 너희를 구속하려는 모든 것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슬며시 들어주고 이렇게 외치자.
“됐거든!?”
저자의 마지막 문장을 옮긴다. 저자 역시 건투를 빈다.
“우리의 눈으로 시대를 보자. 우리의 문제 앞에 정직하게 당면하고 우리 문제의 사슬을 끊어버리자. 그리고 다시 우리의 인생과 우리가 살아갈 시대를 책임지자. 저 통장의 잔고가 우리의 이름을 대변하지 못하도록, 의미도 가치도 없는 졸업장이 우리의 이름을 대신하지 못하도록, 내 인격도 가능성도 모르면서 서류상의 숫자들로 나를 평가하지 못하도록, 그들이 나를 넥타이 맨 바보로 만들지 못하도록, 우리 인생과 시대를 이제는 우리가 책임지자. 미흡해도 우리 인생과 시대는 우리가 책임지자. 그 한 마디가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