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 아리랑 - 망간탄광에 새겨진 차별과 가해의 역사
이용식 지음, 배지원 옮김 / 논형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경술국치 100년이다. 최근 언론에서 국민의 51%정도가 올해가 한일강제병합 100년인지 모른다고 답했다지만, 아무튼 올해가 100년이 되는 해이다. 국민의 절반이 경술국치 100년을 모르지만, 또 한편 “지금까지 일제 잔재가 잘 청산되었다고 생각하는가”란 질문엔 97.3%가 ‘아니’라고 답했다. 씁쓸하다.

 

역사는 일부러 외면한다고 해서 외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인간이라 하더라도 결국 역사와 함께 숨을 쉰다. 어두웠던 과거,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과거라 할지라도 그것이 엄연히 실재했던 사실이라면 결코 숨길 수 없다.

 

하지만 아직 그때의 암울했고 처참했던 기억들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역사의 증언자’들이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고 무시하고 덮어버리려 하는 이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집단이 바로 일본이다. 물론 일본 국민 전부를 그런 ‘싸가지 없는 것들’이라고 매도할 순 없다. 사실 요새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과거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뻥이라고? 최근 국내 언론과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공동으로 설문조사한 결과가 그렇다. 전체 일본 국민 중 26%, 특히 젊은 세대는 34%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 사실을 몰랐다.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우연히 취재로 저자를 인터뷰하게 됐기 때문이었다. 인터뷰가 끝난 후에 먹먹한 감정을 어찌할 줄 몰랐고, 그의 책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지난 6월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주저할 수 없었다.

 

책의 부제는 ‘망간광산에 새겨진 차별과 가해의 역사’다. 저자의 부친 이정호 씨가 어린 나이에 일본에 건너와 망간 광산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며, 결국 진폐증으로 숨을 거두게 될 때까지. 그리고 자신과 동료 조선인들의 ‘피와 눈물로 얼룩진 역사’를 남겨야 한다는 심정으로 생을 마칠 때까지 놓지 않았던 ‘단바망간기념관’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는 이정호 선생의 아들로 이정호 선생이 사망한 뒤부터 기념관의 2대 관장이 되어 폐관된 지난해까지 기념관을 운영해왔다.

 

담담했다. 저자의 필치가 말이다. 결코 담담하게 적어 내려갈 수 없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마치 남의 일인 듯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조금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자신과 자신의 부친이 감당해야 했던 그 수많은 세월, 억압과 차별과 모멸이 살아 숨 쉬는 일본 땅에서 일본의 ‘죄’를 기억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만든 기념관. 그 기념관에 대한 일본 정부, 지자체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차가운 눈빛에도 불구하고, 끝내 ‘조선인의 역사를 남겨야 한다’는 책임을 피하지 않았던 이들. 그 피눈물의 역사를 저자는 그저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일본인으로 귀화하고 일본에 동화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 자신이 변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변화시키는 것에 도전하며, 재일조선인이 있는 그대로 민족의 자긍심을 갖고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 그 자손들도 다름을 인정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 이것이 아버지의 염원이었을 것입니다.”

 

살기 위해, 혹은 강압적인 강제연행으로 일본으로 끌려온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들. 그들은 변변한 안전장비 없이 좁은 탄광에 기어 들어가 300kg의 망간을 등에 짊어지고 쭈그린 자세로 이동해 옮겨야 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가혹한 노동조건에서 이루어진 망간 채취. 그렇게 채취된 망간은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산업화를 위해 쓰여 졌다.

 

변변한 보수가 있을 리 없었다. 수많은 조선인들이 중노동에 견디다 못해 탈출하기도 했고, 또한 그 과정에서 죽어가기도 했다. 장례식은 꿈도 꿀 수 없는, 말 그대로 개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이들이 몇이나 되었을까.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당연히 여겼고, 마치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물건처럼 조선인 노동자들을 착취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날카로운 송곳으로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통을 주었던 진폐증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서 보내야 했고, 결국 외로운 죽음을 맞이했다. 생존자들의 증언, 그리고 죽어간 이들의 기록은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망간 광산 노동으로 진폐증에 걸려도 글자를 몰라 노동재해보상 신청도 하지 못한 조선인, 생활보호를 받으며 혼자 살고 있지만 불 사용이 위험하다며 화기엄금 명령을 받아 매일 같이 인스턴트 라면을 물에 불려 먹다가 혈압이 올라 뇌경색을 앓고 만 조선인, 정신병을 얻어 병원을 전전하는 조선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다음 날 산재인정서를 받은 조선인.”

 

이정호 선생은 지옥 같은 노동을 함께 해왔던, 지옥 같은 삶을 같이 강요받았던 이들의 무덤을, 그들의 역사를 남기는 일이라 생각하고 기념관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 이용식 씨 역시 아버지의 한을, 재일조선인의 한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싸워 온 것이다.

 

저자와의 인터뷰 중 더욱 기가 막히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 해 도저히 만성적인 적자 운영을 감당할 수 없었던 저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사카 한국 총영사관을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간의 기념관 운영 과정과 현재 처한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한다. 일본의 잘못된 역사를 일본 현지 내에서 기록하고 전시하는 유일한 기념관인 이곳을 계속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겠는지, 이런 기념관을 더 이상 개인 차원이 아닌 공공 차원으로 유지할 수는 없겠는지.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 황당했다. 총영사관에서는 이용식 선생에게 국민포장을 주었다고 한다. 20년 동안 기념관을 운영하느라 고생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곤 말했다고 한다. “우리도 돈이 없다. 지원할 수 없다”

 

결국 그동안 니들끼리 하느라 수고했다. 어차피 문 닫을 것 훈장이나 하나 받아라. 이런 것이었다. 이용식 관장은 사실 그리 큰 기대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느낀 감정이 어땠을지, 감히 상상이 된다. 그랬다. 그에게 부모들의 고향, 이른바 조국이라 여기던 그곳은 끝까지 그를 외면했다.

 

책은 이루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며 기념관을 세우고, 운영해 온 이정호, 이용식 부자의 눈물겨운 투쟁기이자, 일본 내에서의 레지스탕스다. 아버지와 아들이기 전 재일조선인이라는 굴레를 안고 살아가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멈출 수 없다. 60만이 넘는 재일조선인, 일본 국적을 취득한 이들까지 합하면 수백 만에 이르는 조선인들은 바로 오늘도! 숱한 차별과 모멸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그들을 일본과 마찬가지로 외면해 왔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한류 열풍이 불면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는 개소리만 가끔 들릴 뿐이다.

 

그들은 그들의 역사를 무덤 대신 남겨야 한다는 일념으로 싸워왔다. 우리는 이제 그들을 바라보고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일본에게 사죄하지 않는다고 떠들기 전에 우리부터 진심으로 그들에게 사죄하고 보듬어야 한다. 경제적 이득, 양국을 잇는 가교 따위에 헛소리를 집어치우고, 일본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우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당장 지금도 개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국적이 한국적이 아닌 조선적(북한 국적이 아니다) 이라는 이유로 재일동포의 입국이 거부되고 있다. 결혼 날짜를 잡아두고 한국에 오지 못해 결혼이 불투명해진 커플도 있다. 이런 비인간적인 행태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일본을 욕하기 전에, 한일전 축구 보며 일본 팀에게 쌍욕하거나, 쪽바리 운운하기 전에 먼저 우리부터 진정한 조선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일본이 우리를 비하하던 ‘조센진’에 걸맞은 꼬라지로 살고 있다. 욕먹기 싫으면 행동부터,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외로운 싸움을 하다 돌아가신 이정호 선생에게 다시 한 번 존경과 애도의 말씀을 올린다. 그리고 그 외로운 싸움을 이어 받아 16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념관을 운영해 온 이용식 선생에게도 존경과 감사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기념관이 재건되든 그렇지 못하든, 이용식 선생의 헌신과 용기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또 다시 내가, 우리 사회가 부끄러워진다. 도대체 언제 쯤 우리는 사람 구실하며 살 수 있을까. 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보군수의 희망보고서 - 완주군수 임정엽 희망을 여는 사람들 8
희망제작소 기획, 권지희 글 / 푸른나무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오세훈 서울시장의 책을 읽고 글을 쓴 바 있다. 결론은 그저 그런 홍보책자였고, 굳이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었다는 것이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졸속으로 만든 책이기도 하고, 내용 또한 진실성이 충분히 담보되지 않았다고 느꼈던 것이다.

 

자, 이번에도 선거를 앞두고 나온 지자체 장의 책이다. 이번엔 군수다. 전북 완주군 임정엽 군수. 인구 8만 명의 작은 도시 완주를 단 4년 만에 희망 바이러스로 전염시켜버렸다는 주인공. 하지만 난 역시나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저자가 나와 안면이 있는 이라도 말이다. 어디까지나 평가는 공정해야 한다.

 

물론 대한민국 중심이라 자부하는 서울시장과 인구 8만의 소도시 완주를 온전히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각자 처한 위치와 역량이 차이 날 수밖에 없다. 사실 그 차이는 짐작하는 것보다 더욱 엄청나다.

 

그런 면에서 우선 임 군수에게 느껴지는 것은 저돌성과 함께 4년 임기 동안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는 장기적 차원으로 완주를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그는 단순히 가시적 성과를 위해 대형 건축물이나 공사판을 벌이는 부류는 일단 아니었던 것이다. 하긴 완주에 광화문 광장과 같은 곳이 없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는 될 것이다.

 

임정엽 군수는 도종환 시인의 “목민을 위해 고뇌하고 싸운 시간만이 운동하는 역사” 라는 말이 참이라면, 그에 걸맞은 역사를 완주군에 만들어가고 있는 이였다. 지역이 살아나야 나라가 살 수 있다는 참으로 당연한 진리가 외면 받는 지금, 임 군수의 고군분투기는 분명 의미 있는 모습이다. 교육 예산 7억 원을 100억 원 가까이 올려 교육 도시라 불리는 전주(학생 당 교육지원비 17만 원)보다 월등히 높은 교육비(학생 당 74만 원)를 지원하고, 완주군청 직원을 시민단체에 1년 동안 파견 보내 민간단체의 경험을 쌓게 만들었다. 이는 매년 진행된다.

 

완주 동상보건지소 신축 과정에서 인체에도 해롭고 환경을 해치는 콘크리트보다 목재로 지어야 한다며 중앙부처와 2년 동안 싸워 결국 관철해냈다. 취임 2년 만에 군 예산을 2배 이상 올려 5000억 원으로 만들고(이는 중앙부처에서 실시하는 각종 공모사업에 적극 신청해 얻어낸 예산이었다), 완주군청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전주를 떠나 완주로 청사를 이전했다. 43년간 거래를 튼 농협 대신 전북은행에 군 금고를 맡겼다. 이는 군 지원금을 더 많이 받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늘어난 지역협력사업비는 매년 풍수해보험(주택) 가입지원, 완주군 애향 장학재단 기금 출연, 저소득층 자녀 대학 입학금지원, 1경로당 1일거리 갖기 사업, 소형 농기계 지원사업 등 지역 주민들의 복지와 교육 사업에 사용되고 있다.

 

2007년부터 65세 어르신을 대상으로 무료 암 검진 사업을 벌이고 있다. 2009년 말 현재 모두 5200명의 어르신들이 암 검진 혜택을 받았다. 2009년 현재 완주군이 어르신 1인에게 투입하는 복지 예산은 157만 원이다. 관내 15000명에 이르는 인원에 매년 235억 원을 투자하고 있다.

 

단순히 돈만 투입하는 것은 아니다. 생활민원 8272팀을 가동해 486개 전 마을을 매일 직접 찾아가 주민들의 어려움과 불편 사항을 즉석에서 처리해준다. 결국 마음의 복지, 따뜻한 복지를 중요 가치로 인식하고 있는 것.

 

이밖에도 임 군수가 추진하고 있거나 성과를 거둔 것들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고장의 특색을 살린 파워 빌리지 조성사업과 단순히 세제 혜택 등의 유인책이 아닌 고장 인재의 채용을 조건으로 하는 기업 유치, 로컬 푸드 시스템, 두레 농장, 자원순환시스템 등 단순히 돈이 아닌 사람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완주군이 어르신부터 아이에 할 것 없이 모두 새로운 ‘희망’이란 바이러스에 감염된 주 원인이다.

 

희망이란 단어는 결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단순히 화려한 공약이나 선심성 건설 경기 부양 등으로 만들어 낼 수 없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도시보다는 완주에서 희망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곳에 사는 이들을 위한 정책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 앞에 임정엽 군수가 바보처럼 묵묵히 일하고 있었다.

 

물론 이 책 역시 선거를 앞두고 만들어진 ‘홍보책자’의 성격을 100% 버릴 순 없다. 4년 이란 시간동안 임 군수가 이뤄놓은 것들을 알리며 그의 재선을 호소하는 성격이 없을 리 없다. 하지만 적어도 오세훈 시장의 책과 다른 점은, 순전히 내 생각인지는 몰라도 진실성과 공감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겉모습에 치중해 외부인들에게 인정받으려 하기 보다는 군민들의 실질적인 행복과 경제적 안정을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 땅에 살고 있는 이들의 행복을 침해하면서까지 꾸미거나 치장하지는 않겠다는 의지. 그것이 새로운 신선함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는 대부분 사람들의 예상대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취임식을 취소하고 대신 주민 간담회로 2기를 시작했다. 완주군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더욱 더 열심히 일하겠다는 의지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임 군수답고, 또한 당연해 보인다.

 

그는 지자체 장 중 처음으로 정부의 4대강 사업을 공식적으로 비판한 인물이다. 그것 때문에 설사 불이익이 와도 거짓을 참이라 할 수는 없는 이다. 서울시장이라는 막중한 역할을 맡으면서도 정작 정부와 각을 세우지 못하는 오세훈 시장에 비해 임 군수의 행보는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사람이다. 옳지 못한 것을 옳다고 할 수 있는 배짱이 없다. 거짓말을 할 배포도 없다. 다만 군민을 위해 싸울 의지는 충만하다.

 

오랜 관행으로 이어져 온 구태를 청산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지레 겁먹고 포기하기 일쑤다. 하지만 적어도 할 수 있다는 열정과 의지만 있다면, 변화는 가능하다.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완주라는 작은 고장이다. 돈이 아닌, 이익관계가 아닌, 오직 사람을 위한 고뇌와 헌신, 봉사와 열정은 결국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임정엽 군수의 파이팅을 기원한다. 결국 시간은 찌질이와 주인공을 선별해 낸다. 그가 영원히 바보 같은 리더가 되어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몽유도원 - 안견과 목효지 꿈속에서 노닐다
권정현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운찬 총리가 결국 사임을 발표했습니다. 조금 허무하더군요. 300일 정도 국무총리에 있었나요? 그가 300일 동안 이루고자 했던 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동안 학자로서 쌓아왔던 명성이나 존경을 내팽개치고 이명박 정권의 총리라는 권력을 얻은 결과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소설 몽유도원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 그리고 세월의 무상함. 뭐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았던 안견과 목효지. 그리고 시와 그림을 아끼며 의로움을 지키려 했던 안평대군과 역시 야망을 위해 살생을 서슴지 않았던 수양대군. 목효지를 사랑했지만, 자신의 평온한 삶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여인 초요갱.

 

책은 몽유도원도라는 그림을 배경으로 인간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서로 상처 주며 살아가고 있는지. 그 물음은 선뜻 답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사실은 누구도 그 이유를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이었던 안평대군은 시와 음악, 그림을 사랑했던 풍류가였던 모양입니다. 그의 둘째 형 수양이 활쏘기와 사냥을 즐기던 무인의 기질을 타고 난 것에 반해 말입니다. 언제나 그의 집에는 시인과 문인들이 끊이지 않았고, 노랫소리와 시 읊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만약 왕실이 아닌 여느 양반집에서 태어났다면 한 세상 잘 노래하다 갔을 위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이 꾼 꿈을 안견에게 그림으로 표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안견은 ‘안평대군의 꿈이되 또한 나의 꿈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단 삼 일만에 화폭에 그의 꿈을 담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몽유도원도입니다. 안평이 꿈꾸었던 이상의 세계. 그의 무릉도원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죠.

 

안평은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이를 모두 담을 수 있는 정치를 하고자 꿈꾸었을지 모릅니다. 몽유도원도처럼 꿈속의 이상향을 현실로 만들고자 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같은 피를 나눈 형제끼리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해야 했고, 결국 패배자가 되어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소설은 수양대군 즉 세조가 난을 일으켜 단종을 폐위하고 권력을 찬탈하는 과정을 중심축으로 진행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 화가 안견과 풍수가 목효지의 꿈과 삶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이긴 자들이 아닌 역사의 패배자들을 중심에 두고 그들이 꿈꾸었던 삶과 꿈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 사이 소설은 다양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특히 목효지와 안평의 모사인 이현로의 풍수대결은 흥미롭습니다. 같은 땅, 같은 곳에 대한 상이한 해석. 풍수지리를 단순한 미신으로 치부하면서도 이를 가벼이 넘기지 않은 당시 권력자들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땅의 기운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것. 이는 풍수가 단순히 미신으로 치부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사실 인간이 자연의 뜻을 거스른 대가로 돌아온 것들은 무엇일까요.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지금의 우리들을 생각해보면 나무 한 그루, 땅 한 뙈기도 소중히 여기던 조상의 슬기가 새삼 그리워집니다.

 

조상의 잘못으로 노비가 되어버린 목효지는 자신의 풍수적 지식을 이용해 신분 상승을 꿈꿉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묘를 새로 모실 천하제일의 명당을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어느 이름 모를 여인의 시신이 제대로 된 묘하나 없이 산속에 버려지는 것을 본 뒤 그는 다시 깨닫게 됩니다. 진정한 명당 자리는 무엇인지 말이죠.

 

“언젠가 소덕문 밖에 버려지는 죽은 처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들짐승 먹이로 방치된 시신을 보며 죽어 누울 곳조차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였소. 좋은 땅, 나쁜 땅 가리지 않고 그저 죽어 시신이 훼손을 면할 수 있는 땅 한 평, 그들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 손바닥만 한 땅이지 명당이 아니었단 말이오”

 

안견은 부끄러웠다. 모두들 죽음을 무릅쓰고 사지를 향해 뛰어가는데 홀로 등을 보인 채 그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육 년 전 삼각산에서의 일이 새삼스러웠다. 명당을 찾겠다고 거친 산줄기를 짐승처럼 뛰어다니는 한 사내. 풍수를 배워 노비 신세를 면했다가 다시 노비로 내쳐지고 만 지독히도 운이 없던 그 사내. 그가 이제 명당이 아닌, 가난한 백성을 위한 땅 한 평을 찾겠다고 목숨까지 내놓은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남았지만, 지금까지 임기 중 이른 바 ‘회전문 인사’로 여러 요직을 거친 인물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참여연대의 보고서를 보니, 그들이 단 몇 년 만에 수십억의 재산을 불렸다고 하더군요. 수완이 대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묻고 싶습니다. 그렇게 이름을 더럽히면서 모은 재산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요. 제가 아직 무지한 까닭에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아직 어린 저이지만, 인생은 한 편의 그림과도 같다는 생각을 책을 읽으며 해봤습니다. 안평대군의 바람대로 몽유도원도는 숱한 시간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아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것이 아닌 일본의 국보로 보관되어 있다는 아이러니도 있지만요.

 

안평의 꿈은 사라졌고, 안견의 이름도 잊혀졌지만, 그림은 살아남아 지금도 그들의 이상향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두렵습니다. 짧고도 짧은 시간 동안 마치 하루살이처럼 살다 스러져갈 우리들이 남겨야 할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수많은 재산과 명예, 그리고 또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들은 온전히 소중한 것일까요.

 

꿈을 잃어버린 이들의 한숨 소리가 보다 더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하룻밤 꿈과도 같은 인생길. 모두들 아름답고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화 박정희 특가 세트
시대의창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8년. 긴 시간이다. 한 생명이 태어나 청년으로 성장하는 시간. 강산이 거의 두 번 바뀌고, 요즘 같이 정신없이 빠른 시대에는 그 몇 배로 강산이 바뀔 수 있는 시간. 하긴 요즘 강산이라는 것이 온전히 남아 있을 수 있기는 한 지 궁금하지만 말이다.

 

그 긴 시간동안 대한민국은 오직 단 한 사람에 의해 작동되었다. 그의 말에 수많은 이들이 생명을 잃었고, 그의 눈짓에 수많은 여성들은 노리개로 전락했다. 물론 그 반대도 있었다. 그의 묵인 혹은 동조 하에 적지 않은 이들이 배를 채웠으며, 그 부를 대를 이어 물려주었다.

 

박정희. 그는 대한민국 자체였고, 지금도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거대한 그림자이다. 부인하고 싶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그의 딸은 여전히 한국 정치의 핵심 세력으로 건재하고, 그가 죽은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그를 온전히 비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해외 토픽에 나올 일이다. 박근혜가 정치가로 계속 건재한 것은. 다른 국가도 이런 사례가 있을까. 지독한 독재자의 딸이 거대 정당의 대표가 되어버리는 것이.

 

그의 영광스러운 길을 답습한 신군부는 “다시는 이 땅에 나와 같은 불행한 군인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박정희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후 다시금 총칼로 대한민국을 지배했으며, 대통령이란 자리를 친구에게 물려주는 눈물겨운 우정을 보여줬다. 그렇게 박정희는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박정희는 서울대생이 뽑은 가장 복제하고 싶은 인물 1위로 뽑힌 바 있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서울대는 역시 무개념 집합소. 노인들은 그의 딸 손을 잡으며 눈물을 흘린다. 그 아들의 방탕한 생활이 정당화된다.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모든 공은 그에게 있으며, 그는 조국 근대화의 살아있는 신화다.

 

내가 그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을 쉰 것은 사실 3년이 채 안 된다. 그렇다. 그는 내가 3살이 된 해에 심복에게 살해당했다. 평생 근면함이 몸에 배어 청와대에서 에어컨을 끄고 파리채를 휘두르며 파리를 잡았다는 그, 구멍 난 속옷과 다 헤어진 혁대를 보고 그가 대통령인 줄 몰랐다는 사고 당시의 의사, 농부들과 들판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웃었던 그는, 그러나 젊은 여대생의 접대를 받고 여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양주잔을 기울이다 그렇게 죽었다. 참고로 박정희는 김대중과의 대선(1971년) 당시 그해 국가예산의 10%가 넘는 액수를 선거자금으로 뿌린 바 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출세하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의 충실한 황민이 되기 위해 군대에 들어간 그, 독립군을 때려잡는 만주군으로, 박정희가 아닌 다카키 마사오로 살고 싶었던 그는, 일제의 패망으로 다시 추락한다. 이후 자신이 몸담았던 남로당의 조직을 모조리 불어버린 대가를 목숨을 건진 그. 그와 함께 일본에 충성을 바쳤던 선배,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리고 6·25전쟁이란 구원으로 다시금 권력의 곁에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5·16 군사쿠데타. 이승만의 독재를 학생들의 피로 끝장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대한민국은 다시금, 민주주의가 밟히는 역사의 반복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18년의 시간 동안 그는 경제성장과 독재자, 검소한 대통령과 부정축재와 정경유착의 근원, 새마을의 신화와 IMF의 시초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는 인물이 되어 우리의 기억을 혼란스럽게 한다.

 

박정희가 일생동안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콤플렉스를 느끼고, 심지어 죽여 버리려 한 인물이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교통사고를 위장한 첫 번째 살해 시도는 김대중 대통령을 평생 ‘절뚝발이’로 만들었고, 일본에서의 납치사건 역시 미국의 개입이 없었다면 성공할 뻔 했다. 그렇게 박정희는 김대중을 미워했다. 왜 그랬을까.

 

자신과는 너무 다른 인생을 살았고, 너무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김대중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 폭력과 협박으로 모든 이들을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정작 인간 김대중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은 오직 출세를 위해 일본에게 충성을 바쳤지만,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국민들에게 온 마음을 다 바쳤기 때문이다. 그 결정적 차이가 그로 하여금 김대중을 일생동안 미워하게 만든 것이다.

 

얼마 전 마침내 김대중 대통령의 자서전이 출간됐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김 대통령의 삶 자체가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와 같았고, 또한 그 스스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그에 비해 박정희에게 쏟아지는 “조국 근대화와 경제 성장의 화신”이란 수식어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은 6·25전쟁 이래 최대의 국난이라 했던 IMF를, 그것도 박정희로 시작해 김영삼까지 모든 대통령들의 책임이 있는 그 IMF를 극복하고 외환보유고를 1천억 달러 이상 끌어올린 인물이다. 이는 세계 5위의 외환보유고였다. 당시 세계 모든 국가가 마이너스 성장이나 멈춤 상태였을 때에도 대한민국은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 너무도 많은 이들이 큰 고통과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항상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국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경제가 일어섰음을 분명히 밝혔다. 적어도 부끄러움과 고마움을 알았던 대통령이란 소리다. 지금 계신 분에겐 결정적으로 부족한 부분이다.

 

박정희는 일본인이 인정한 ‘일본인’이었다. ‘진충보국 멸사봉공’이란 혈서를 일본 천황에게 바친 인물은 우리 식민지 역사상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가 김재규에게 살해당하자, 주한 일본대사관의 한 외교관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일본제국 최후의 군인이 죽었다”고.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

 

박정희의 말이다. 만주군관학교 졸업생을 대표로 그가 한 선서였다.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 후에 다카키 마사오에서 조선의 냄새가 난다고 하여 다시 그가 고친 이름은 오카모토 미노루였다. 뼛속까지 철저히 일본인이 되고자 했던 박정희. 우리는 그를 대통령이라 불렀고, 그의 지휘에 따라 일개미마냥 일해야 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여전히 논란이 되는 것은 그대로 우리 사회, 역사관의 현실을 보여준다. 아직도 그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그가 남긴 유산들이 곳곳에 숨 쉬고 있다는 소리다. 경제성장이라는 구호 아래 수많은 전태일이 죽어가고, 수많은 ‘열사’들이 죽어가야 했던 그 때 그 시절. 과연 누구를 위한 경제성장이었고, 누구를 위한 10억 불 수출이었는지,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아직도 그로 인해 은혜를 입고, 떵떵거리고 살고 있는 수많은 이들, 그리고 그에게 단 한 푼의 돈도 받지 못했지만, 그 어떤 은혜도 입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고, 그의 딸에게 동정의 표를 던지는 우리 아버지 세대.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복종적이고 노예적이며, 또한 과거 회귀적인지 느낄 수 있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물질주의를 확산시키고, 북에 대한 만들어진 분노를 작동시키며, 여전히 미국이 우리의 구세주라고 믿는 이들. 이들에게 박정희는 여전히 위대한 대통령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그러한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너무나 팍팍하고, 피곤하다. 일생을 기회주의자로 살았던 박정희를 어느 새 닮아버린 우리들. 내 안의 ‘박정희’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삼류를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제2의, 제3의 박정희들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끔찍한 반복은 이제 여기까지만 했으면 싶다.

 

김대중 대통령의 절뚝거리며 걷는 모습이 무참하게 그리워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그다드의 오디세우스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 밝은세상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두 차례나 전직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성사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던 국제정치학자 박한식 교수는 중국에서 태어나 국공내전과 혁명을 피해 북으로 갔다가 다시 터진 6·25전쟁으로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전쟁이라면 너무나 지긋지긋했던 그는, 흡사 그를 따라다니는 것처럼 느꼈던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다.

 

하지만 박 교수는 말한다. “전쟁이 싫어 갔던 미국이 알고 보니 모든 전쟁의 근원이자, 전쟁 제조국가였다. 그래서 느꼈다. 전쟁을 피하지만 말고 전쟁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내가 노력해야겠다고”

 

그렇다. 미국은 건국부터 전쟁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인류 역사 대부분의 전쟁을 도맡아왔다. 경찰국가라는 이름아래 말이다. 때문에 미국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피비린내는 미국의 어쩔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 이라크란 단어를 떠올려보자. 무엇이 떠오르는가. 사담 후세인의 장기독재, 이란과의 오랜 전쟁, 걸프전쟁 그리고 부시, 미국, 9·11 테러. 온갖 부정적인 단어만 튀어나온다.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역사적 도시, 풍부한 석유 매장량, 순박하지만 자존심 강한 민족에 대한 이미지는 어느 새 CNN의 전쟁 생중계 속에서 사라져갔다.

 

1차 걸프전 이후 미국은 금수조치를 단행했다. 흡사 지금 MB가 미국 등 큰 형님들의 힘을 빌어 북에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약 10년간의 경제제재로 이라크는 수많은 아이들을 굶주림과 하찮은 질병으로 묻어야 했다. 노약자, 임산부 등은 말할 것도 없다. 수백만의 아이들이 단지 이라크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죽어나가야 했다. 물론 당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후세인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이를 정당화했지만, 정작 후세인은 미국의 2003년 이라크 침공으로 인해 2006년 사형 당했다. 그는 결코 굶주리지 않았으며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다만 아이들이 그를 대신해 죽어야 했던 것이다.

 

소설은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철학자인 저자가 밝히는 제국주의의 비판서이자, 노마드로 교묘히 위장되는 디아스포라 문제 제기다. 자신이 스스로 여유를 가지고 떠나는 여행, 이민이 아닌 그야말로 처절한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어야 하는 이들의 고통을 다룬다. 하지만 이렇게 무거운 주제임에도 유머와 위트가 살아있다. 블랙 유머라고도 느껴질 만큼 그의 문장은 뼈아픈 웃음을 준다.

 

살려달라고 외치는 아버지를 사살한 미군. 미군은 후세인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주인공 ‘사드 사드’는 후세인을 무찌른 미군이 정작 이라크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꿈을 위해, 그리고 ‘살기 위해’영국으로 향한다. 이라크에서 영국으로 이어지는 여정에서 그는 몇 번이나 죽음의 위기를 겪으며, 어느 새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난민도 뭐도 아닌 ‘불법체류자’인 자신을.

 

책은 말한다. 과연 인류의 진보는 어디까지 왔는지, 그리고 그 진보가 평등적 진보인지, 선별적 진보인지. 단지 이라크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착취당해야 하는 주인공의 삶은 수많은 불법체류자, 제3세계 국민들을 대신해 묻고 있다. 과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말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생활력이 강한 당신들보다 제 밥벌이도 못하는 멍청이들을 돌보는 게 더 낫다고 여기죠. 매일 눈물과 피땀을 흘리며 사는 당신들보다 될 대로 되라 식으로 사는 자국민들을 더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죠. 당신 같은 사람들은 눈에 거슬리니까 차라리 없는 셈 치는 거예요. 당신네들은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알아서 잘들 사는데 뭐 하러 도와야 하냐고 빈정대기 일쑤죠. 아무리 힘들어도 제 나라보다 나으니까 머물러 있는 것 아니냐며 간단하게들 치부하죠. 당신들이 안 보이는 데서 죽은 듯 조용히 사니까 존재 자체를 깡그리 잊어버리는 거예요. 일종의 집단적 무관심인데, 인간에게 무관심보다 심한 모욕은 없잖아요. 그들은 당신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고, 아무리 추워도 끄떡없고, 아무리 때려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들이라 여기죠. 이런 게 바로 야만이 아니고 뭐겠어요. 타인을 나와 동일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순간, 나보다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하는 순간, 인간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우열을 나누는 순간, 인간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순간, 미개한 사회가 되는 거라고 봐요. 난 항상 문명을 선택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회는 미개한 사회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이 일을 하다가 잡히면 징역 오 년이지만 상관하지 않아요. 미개인들한테 아무리 날 가둬보라고 해봐요. 아무도 날 막을 수 없어요. 아무리 날 가둬도 감옥에서 나오는 순간 이 일을 다시 시작할 테니까. 나와 다른 사람을 모자라거나 개화 대상으로 치부하는 사회는 문명사회가 아니죠. 그런 사회는 보존할 가치가 없어요.”

 

불법체류자를 돕는 프랑스 운동가의 말을 빌어 저자는 말한다. 프랑스가 과연 문명사회인지. 그럼 난 되묻는다. 한국은? 외국인 노동자들은커녕 자국민들마저도 오로지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는 한국 사회는 문명사회인가?

 

주인공 사드 사드의 이름은 아랍어로 ‘희망 희망’이고, 영어는 ‘슬픔 슬픔’이다. 그의 이름이 말해주듯, 아랍인을 버리고 온갖 자유와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서구 사회로 들어가려 했던 주인공은 처절한 슬픔을 겪어야 했다. 오직 자기들만의 인권, 자기들만의 자유를 찬양하는 서구 사회와 그들에게 외면당하면서도 노동 착취를 당하는 비서구인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과 얼마나 차이가 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다. 다문화 가정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어색하지 않고,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평등과 자유가 그 아이들에게, 그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주어졌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인간에게 이방인은 비인간일 뿐”이라는 말이 무참해지는 사회는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 인간이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사회는 보존해야 할 이유가 없다.

 

G20 정상회의를 하든지, GDP가 몇 만 달러를 넘든지 그딴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곳이 진정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믿음을 이 안에 살고 있는 모두에게 주어야 한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한 번 생기면 절대 떨어지지 않는 티눈을 주인공의 아버지는 부정적 이름을 붙여 떼어내라고 말한다. 티눈에 부정적인 이름을 붙이면 쉽게 떨어져 나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끝내 주인공 사드 사드는 그 티눈에 ‘희망’이란 이름을 붙인다. 자신의 이름과도 같은 단어. 희망.

 

희망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세상을 그린다. 그런데 내가 티눈이 생기면 무어라 이름을 붙일까. 이미 짐작한 이들도 있으리라. 극비다. 2년 후에 공개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