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 아리랑 - 망간탄광에 새겨진 차별과 가해의 역사
이용식 지음, 배지원 옮김 / 논형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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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100년이다. 최근 언론에서 국민의 51%정도가 올해가 한일강제병합 100년인지 모른다고 답했다지만, 아무튼 올해가 100년이 되는 해이다. 국민의 절반이 경술국치 100년을 모르지만, 또 한편 “지금까지 일제 잔재가 잘 청산되었다고 생각하는가”란 질문엔 97.3%가 ‘아니’라고 답했다. 씁쓸하다.

 

역사는 일부러 외면한다고 해서 외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인간이라 하더라도 결국 역사와 함께 숨을 쉰다. 어두웠던 과거,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과거라 할지라도 그것이 엄연히 실재했던 사실이라면 결코 숨길 수 없다.

 

하지만 아직 그때의 암울했고 처참했던 기억들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역사의 증언자’들이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고 무시하고 덮어버리려 하는 이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집단이 바로 일본이다. 물론 일본 국민 전부를 그런 ‘싸가지 없는 것들’이라고 매도할 순 없다. 사실 요새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과거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뻥이라고? 최근 국내 언론과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공동으로 설문조사한 결과가 그렇다. 전체 일본 국민 중 26%, 특히 젊은 세대는 34%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 사실을 몰랐다.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우연히 취재로 저자를 인터뷰하게 됐기 때문이었다. 인터뷰가 끝난 후에 먹먹한 감정을 어찌할 줄 몰랐고, 그의 책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지난 6월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주저할 수 없었다.

 

책의 부제는 ‘망간광산에 새겨진 차별과 가해의 역사’다. 저자의 부친 이정호 씨가 어린 나이에 일본에 건너와 망간 광산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며, 결국 진폐증으로 숨을 거두게 될 때까지. 그리고 자신과 동료 조선인들의 ‘피와 눈물로 얼룩진 역사’를 남겨야 한다는 심정으로 생을 마칠 때까지 놓지 않았던 ‘단바망간기념관’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는 이정호 선생의 아들로 이정호 선생이 사망한 뒤부터 기념관의 2대 관장이 되어 폐관된 지난해까지 기념관을 운영해왔다.

 

담담했다. 저자의 필치가 말이다. 결코 담담하게 적어 내려갈 수 없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마치 남의 일인 듯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조금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자신과 자신의 부친이 감당해야 했던 그 수많은 세월, 억압과 차별과 모멸이 살아 숨 쉬는 일본 땅에서 일본의 ‘죄’를 기억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만든 기념관. 그 기념관에 대한 일본 정부, 지자체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차가운 눈빛에도 불구하고, 끝내 ‘조선인의 역사를 남겨야 한다’는 책임을 피하지 않았던 이들. 그 피눈물의 역사를 저자는 그저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일본인으로 귀화하고 일본에 동화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 자신이 변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변화시키는 것에 도전하며, 재일조선인이 있는 그대로 민족의 자긍심을 갖고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 그 자손들도 다름을 인정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 이것이 아버지의 염원이었을 것입니다.”

 

살기 위해, 혹은 강압적인 강제연행으로 일본으로 끌려온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들. 그들은 변변한 안전장비 없이 좁은 탄광에 기어 들어가 300kg의 망간을 등에 짊어지고 쭈그린 자세로 이동해 옮겨야 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가혹한 노동조건에서 이루어진 망간 채취. 그렇게 채취된 망간은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산업화를 위해 쓰여 졌다.

 

변변한 보수가 있을 리 없었다. 수많은 조선인들이 중노동에 견디다 못해 탈출하기도 했고, 또한 그 과정에서 죽어가기도 했다. 장례식은 꿈도 꿀 수 없는, 말 그대로 개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이들이 몇이나 되었을까.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당연히 여겼고, 마치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물건처럼 조선인 노동자들을 착취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날카로운 송곳으로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통을 주었던 진폐증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서 보내야 했고, 결국 외로운 죽음을 맞이했다. 생존자들의 증언, 그리고 죽어간 이들의 기록은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망간 광산 노동으로 진폐증에 걸려도 글자를 몰라 노동재해보상 신청도 하지 못한 조선인, 생활보호를 받으며 혼자 살고 있지만 불 사용이 위험하다며 화기엄금 명령을 받아 매일 같이 인스턴트 라면을 물에 불려 먹다가 혈압이 올라 뇌경색을 앓고 만 조선인, 정신병을 얻어 병원을 전전하는 조선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다음 날 산재인정서를 받은 조선인.”

 

이정호 선생은 지옥 같은 노동을 함께 해왔던, 지옥 같은 삶을 같이 강요받았던 이들의 무덤을, 그들의 역사를 남기는 일이라 생각하고 기념관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 이용식 씨 역시 아버지의 한을, 재일조선인의 한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싸워 온 것이다.

 

저자와의 인터뷰 중 더욱 기가 막히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 해 도저히 만성적인 적자 운영을 감당할 수 없었던 저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사카 한국 총영사관을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간의 기념관 운영 과정과 현재 처한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한다. 일본의 잘못된 역사를 일본 현지 내에서 기록하고 전시하는 유일한 기념관인 이곳을 계속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겠는지, 이런 기념관을 더 이상 개인 차원이 아닌 공공 차원으로 유지할 수는 없겠는지.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 황당했다. 총영사관에서는 이용식 선생에게 국민포장을 주었다고 한다. 20년 동안 기념관을 운영하느라 고생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곤 말했다고 한다. “우리도 돈이 없다. 지원할 수 없다”

 

결국 그동안 니들끼리 하느라 수고했다. 어차피 문 닫을 것 훈장이나 하나 받아라. 이런 것이었다. 이용식 관장은 사실 그리 큰 기대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느낀 감정이 어땠을지, 감히 상상이 된다. 그랬다. 그에게 부모들의 고향, 이른바 조국이라 여기던 그곳은 끝까지 그를 외면했다.

 

책은 이루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며 기념관을 세우고, 운영해 온 이정호, 이용식 부자의 눈물겨운 투쟁기이자, 일본 내에서의 레지스탕스다. 아버지와 아들이기 전 재일조선인이라는 굴레를 안고 살아가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멈출 수 없다. 60만이 넘는 재일조선인, 일본 국적을 취득한 이들까지 합하면 수백 만에 이르는 조선인들은 바로 오늘도! 숱한 차별과 모멸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그들을 일본과 마찬가지로 외면해 왔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한류 열풍이 불면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는 개소리만 가끔 들릴 뿐이다.

 

그들은 그들의 역사를 무덤 대신 남겨야 한다는 일념으로 싸워왔다. 우리는 이제 그들을 바라보고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일본에게 사죄하지 않는다고 떠들기 전에 우리부터 진심으로 그들에게 사죄하고 보듬어야 한다. 경제적 이득, 양국을 잇는 가교 따위에 헛소리를 집어치우고, 일본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우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당장 지금도 개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국적이 한국적이 아닌 조선적(북한 국적이 아니다) 이라는 이유로 재일동포의 입국이 거부되고 있다. 결혼 날짜를 잡아두고 한국에 오지 못해 결혼이 불투명해진 커플도 있다. 이런 비인간적인 행태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일본을 욕하기 전에, 한일전 축구 보며 일본 팀에게 쌍욕하거나, 쪽바리 운운하기 전에 먼저 우리부터 진정한 조선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일본이 우리를 비하하던 ‘조센진’에 걸맞은 꼬라지로 살고 있다. 욕먹기 싫으면 행동부터,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외로운 싸움을 하다 돌아가신 이정호 선생에게 다시 한 번 존경과 애도의 말씀을 올린다. 그리고 그 외로운 싸움을 이어 받아 16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념관을 운영해 온 이용식 선생에게도 존경과 감사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기념관이 재건되든 그렇지 못하든, 이용식 선생의 헌신과 용기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또 다시 내가, 우리 사회가 부끄러워진다. 도대체 언제 쯤 우리는 사람 구실하며 살 수 있을까. 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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