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1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199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명탐정 셜록 홈즈를 탄생시킨 최고의 추리소설작가 코난 도일, 그리고 그와 필적될 정도로, 어쩌면 더 큰 영광과 명성을 누렸던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 그녀가 탄생시킨 벨기에 출신의 명탐정 엘큘 포와로와 미스 마플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예고 살인〉은 그 중 미스 마플이 활약하는 작품입니다. 어느 조용한 시골 동네에서 벌어진 믿을 수 없는 살인사건. 이를 둘러싸고 점차 드러나는 음모와 충격적 결말. 추리소설의 모든 미덕을 갖추고 있는 이 작품은 아가사의 뛰어난 문장력과 번득이는 재치를 느낄 수 있는 명작 중 하나입니다.

 

책을 구입한 것이 언제인가 살펴보니 무려 20년이 지났더군요. 사실 요즘 제가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찾아내는 재미에 푹 빠졌거든요. 읽어야 할 책이 산더미이지만, 문득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들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때 독서의 느낌이 지금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추리소설의 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 의견이지만, 우선 범죄자의 시선입니다. 범인은 최대한 완벽한 범죄를 꿈꿉니다. 그리고 철저한 준비와 사전 계획을 통해 범행을 저지르죠.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범인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시선, 즉 탐정의 시선이 있습니다. 탐정은 시시콜콜한 것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기억합니다. 또한 찾아내죠. 때론 너무나 사소한 것 하나가 범인을 밝혀내는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뭐 대부분 범인은 사소한 실수 하나로 꼬리를 잡히고 말죠.

 

이 과정을 처음부터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재미를 선사합니다. 독자 역시 탐정과 같은 시선으로 사건을 차근차근 살펴나가기 시작하고, 나름대로 범인을 짐작합니다. 결말에 이르러 범인의 실체가 드러났을 때의 그 충격. 혹은 스스로 생각했던 이가 범인으로 밝혀졌을 때의 흥분은 이루 말할 수 없죠.

 

미스 마플은 80세에 가까운 노처녀입니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미스 마플의 모델이 자신의 할머니라고 밝힌 바 있지만, 독자들은 오히려 아가사의 분신으로 미스 마플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뜨개질을 좋아하고, 조용하면서도 때론 수다떨기를 좋아하는 노부인. 하지만 사소한 그 무엇도 놓치지 않고 결국 범인을 찾아내고야 마는 놀라운 추리력은 엘큘 포와로와 함께 아가사 소설의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어린 시절 홈즈, 뤼팽과 함께 포와로, 미스 마플은 매우 친근한 캐릭터였습니다. 홈즈와 함께 아가사의 작품을 통해 추리소설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고, 지금도 추리소설을 무척 즐기고 있습니다. 비록 본격 문학의 눈으론 추리 소설이 다소 홀대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엄연히 추리소설도 문학적 가치와 구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매력은 결코 작지 않죠.

 

지역 신문 〈인사란〉에 버젓이 게재된 살인예고, 모두들 그 광고를 게임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게임에 동참하기 위해 예정된 시각에 예정된 장소로 향하죠. 사실 그 예고에 언급된 장소. 즉 블랙로크 여사가 살고 있는 리틀 패덕스에서조차 알지 못하는 광고였습니다. 여사는 그런 광고를 낸 적이 없거든요.

 

어쨌든 이웃 사람들은 게임을 위해 그곳에 당도하고, 예정된 시각이 되자 갑자기 전원이 꺼집니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의 귓가에 “당신은 이제 살해당합니다”라고 말할까 두려워합니다. 그럼 자신은 피해자가 되어 비명을 지른 채 쓰러진 척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어둠 속 울리는 연이은 총성에 모두들 얼어붙고 맙니다. 이는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후 불이 켜진 뒤, 나타난 놀라운 광경.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요?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작품. 〈예고살인〉. 자, 미스 마플과 함께 범인 찾기에 나서볼까요?

 

“고통이란 그것을 겪은 뒤에 오는 최상의 기쁨의 시기를 어떻게 즐겨야 하는가를 가르쳐 준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털없는 원숭이 - 동물학적 인간론
데즈몬드 모리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정신세계사 / 199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동물학적 인간론’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인간이 그 어떤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닌 그저 ‘동물’임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수많은 동물 중 가장 뛰어난 생존력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91년에 구입한 책이니 2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다시 책장을 넘기다가 페이지가 저절로 떨어져 나갈 만큼 오래된 책이다. 그 때문일까, 더 애착이 가고 20년 전의 기억들이 떠올라 슬쩍 웃음 짓기도 했다.

 

오래된 책이라 하더라도, 책에 담긴 내용까지 뒤떨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책은 울림을 주고 그 울림은 적지 않다. 인간이 가진 오만함의 근원은 무엇인지, 왜 인간이 수많은 동물들과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순전히 ‘동물학적’ 차원에서 접근한 책은 자부심과 수치심, 겸손과 오만을 함께 전해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책은 인간의 기원부터 시작해 짝짓기, 기르기, 모험심, 싸움, 먹기, 몸손질, 다른 동물들과의 관계까지 인간의 동물적 특성이 현대 사회에 어떻게 남아있는지, 또한 어떻게 변형되어 왔는지 말해주고 있다.

 

인간은 다른 친척들, 그러니까 ‘털많은 원숭이’들처럼 영장류로 생존경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단순히 ‘영장류로 남을 것인가’하는 결단의 순간에 이르게 되고, 육식동물의 특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영장류로 태어나 육식동물의 본성까지 얻게 된 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허약한 체격과 ‘털 없음’의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었고, 두뇌의 발달이라는 행운 아닌 행운으로 마침내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방자함까지 가지게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은 역시나 동물일 수밖에 없다. 동물로서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습성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 지금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동물이기에 어쩔 수 없는 본능. 우리는 그것을 용케 순화 내지 억제시키며, 오늘날까지 살아있다.

 

저자는 동물학자이자 뛰어난 문장가다. 때론 복잡해지고 지루할 수도 있는 내용도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힘이 있다. 자칫 시니컬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내 입장에선 충분히 타당했다. 한마디로 내 맘에 들었다는 말씀. 중간 중간 맘에 드는 문장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도 나에겐 즐거움을 주었다.

 

“어떤 동물이 멸종하지 않으려면 동족을 멋대로 죽일 수는 없다. 동족상잔은 금지되고 통제되어야 한다. 먹이를 죽일 때 사용하는 무기가 더욱 강력해지고 잔인해질수록, 경쟁자인 동족과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그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더욱 강력히 금지되어야 한다. 텃세권과 계급제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분쟁에 관한 한, 이것이 ‘정글의 법칙’이다. 이 법칙에 따르지 않은 동물은 오래 전에 멸종했다.”

 

“연애하는 남녀는 흔히‘유아어’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장차 부모가 될 예정이기 때문이 아니라 유아어가 짝에게 다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유아어는 모든 남녀가 갖고 있는 어머니나 아버지다운 보호 본능을 자극하여 공격적인 감정(또는 좀 더 무서운 감정)을 억눌러준다. 새들의 경우에는 이것이 짝에게 먹이를 갖다 주는 행동양식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 인간의 구애 단계에서 서로 음식을 먹여주는 행동이 놀랄 만큼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재미있다. 우리가 상대편의 입에 맛있는 음식을 넣어주거나 초콜릿을 선물하느라 그토록 애를 쓰는 것은 연애할 때뿐이다.”

 

“같은 종끼리 싸울 때 생물학적 차원에서 적절한 공격은 적을 죽이는 게 아니라 복종시키는 것이다. 적은 궁지에 몰리면 달아나거나 복종하기 때문에, 생명을 파괴하는 마지막 단계는 오지 않는다. 도망치든 복종하든, 전투는 그것으로 끝나고 분쟁은 해결된다. 그러나 공격이 이루어지는 순간 두 경쟁자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승자가 패자의 복종 신호를 읽을 수 없는 때는 격렬한 공격이 계속된다. 원래 공격은 승자가 패자의 비굴한 복종의 몸짓을 직접 목격하거나 적이 꽁지 빠지게 도망쳐야만 멈출 수 있다. 오늘날처럼 공격 거리가 멀어지면 복종의 몸짓도 도망치는 모습도 볼 수 없고, 그 결과는 다른 어떤 동물한테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의 무차별 학살이 될 수밖에 없다.”

 

“동물을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고 싶은 우리의 욕망은 너무 강력해서 때로는 동물의 이빨을 희생해서라도 이 욕망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러나 동물에 대한 이 같은 접근방식은 순전히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는 동물을 동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거울에 비친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간주한다. 그 거울이 지나치게 일그러져 있으면, 우리는 거울을 구부려서라도 우리한테 편리한 모양으로 바꾸려고 애쓴다.”

 

이상의 글들에서 볼 수 있듯 인간은 동물적 본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이상의 잔혹함을 보여준다. 물론 연애할 때는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서로의 관심을 얻고자 아양을 떨지만, 사실 이도 지금은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지극히 불손하고 미안한 맘이지만, 인간은 참 아무리 봐도 재수 없는 구석이 있다.

 

여전히 인간의 진화론을 믿지 않는 이들이 많다. 물론 종교적 신앙을 무시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어찌 감히 인간을 동물과 같은 반열에 두고자 하는가! 하고 분노하시는 분들은 잘 생각하셔야 한다. 그 건방진 생각이 온 지구를 썩어 들어가게 만들었고, 수많은 동물들을 멸종으로 몰아갔으며,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인 아비규환의 지옥세상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선봉엔 언제나 종교라는 거룩함이 있었음을 말이다.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예수를 믿지 않아 불신지옥이 아니라, 예수님을 ‘잘못’ 믿어 지옥인 것이다. 주제 파악을 해야 하고, 스스로 우리가 원숭이임을 알아야 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193종의 원숭이와 유인원 중 우리가 가장 뛰어난 존재인 것은 맞지만, 이 지구상에서 가장 추악하고 위험한 원숭이라는 사실도 분명 자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만 시간의 문제일 뿐, 우리 역시 멸종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웅대한 사상과 오만한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그래도 역시 동물의 기본적 행동법칙에 모두 복종하는 겸손한 동물이다.… 흥미로운 동물들이 과거에 수없이 멸종했듯이,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조만간 우리는 사라질 테고, 다른 동물에게 길을 열어줄 것이다. 그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추려면, 우리는 자신을 생물하적 표본으로 철저히 인식하고 우리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화 한권으로 보는 필독 명작 90
헨릭 랭 지음, 스포츠서울 P&B 편집부 옮김 / 스포츠서울 P&B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엄청난 분량의 고전 명작을 단 4컷의 만화로 표현해야 한다면? 급기야 성경까지 말이다! 와! 입이 떡 벌어지지 않을까. 그런데 실재 이러한 엄청난 작업을 한 작가가 있다. 그가 헨릭 랭이고 그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스웨덴에서 유명한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한다. 나는 그의 일러두기(혹시 출판사가 첨부한 것일 수도 있지만)에 일단 호감이 갔다.

 

“책에 관한 설명은 아직 책을 읽지 못한 독자를 위해 줄거리 위주로 설명한 것이며 깊은 해석은 전문가의 몫이다”

 

그는 총 90권의 책을 소개한다. 여기엔 장르도 다양하다. 추리·SF·판타지·공포·그래픽노블부터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등의 본격 문학까지 아우른다. 동양의 고전들을 소개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이는 아무래도 저자가 담기엔 벅찼을 것이란 생각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율리시스》 같은 방대한 고전부터 《와치맨》과 같은 만화까지 그가 다루는 책들은 모두 크나큰 명성과 업적을 이룬 책들이다. 90권의 책 중 비록 내가 읽은 책들이 턱없이 적음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는 오히려 새로운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자극제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율리시스》를 어떻게 4컷으로 줄였는지 볼까? 1컷은 제목이니 실상 3컷이다.

 

1. 매일 하루의 시작은 훌륭한 아침식사와 함께 해야 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책 중 하나인 율리시스가 왜 리오폴드 블룸과 스티븐 디덜러스의 더블린 아침식사 장면에서 시작하겠는가?

 

2. 리오폴드와 스티븐은 더블린 전역의 아일랜드인들이 그렇듯 결국 만나서 술을 마신다. 그리고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중요한 산문이 있다.

 

3. 함께 사창가를 방문한 뒤, 스티븐은 리오폴드의 집에서 떠나간다. 뒤이어 리오폴드의 아내 몰리가 백만 페이지쯤 될 것 같은, 마침표 사용법을 잊어버린 이 책을 끝낸다.

 

다른 모든 작품 소개가 이런 방식은 물론 아니지만, 저자는 위트와 때론 날카로움으로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잡아낸다. 이는 그야말로 저 깊숙이 자리 잡은 내공이 없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고전에 대한 나의 무식은 항상 뼛속 깊이 느끼며 살지만, 이번에는 좌절보다는 왠지 새로운 의욕이 생겨난다. 이렇게 멋진 고전들을 아직 맛보지 않았다는 설레임? 이것도 쏠쏠하다.

 

아내의 무언의 압박에도 어느 새 인터넷 서점의 장바구니엔 책들로 빼곡하다. 이러다 정말 책 때문에 이사를 고려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르지만, 뭐 그렇게 되면 다른 훌륭하신 분들처럼 이웃들과 돌려보면 되겠지?

 

이미 90권의 고전을 다 읽은 이들도, 혹은 읽지 않은 책들이 더 많은 분들에게도 이 책은 분명 새로운 자극제가 되리라 의심치 않는다. 영원불멸한 고전에 대한 찬사~! 여러분도 함께 느껴보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 약육강식 - 애니멀 카툰
최정훈 지음 / 윗샘과아랫샘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니멀 카툰’이라는 책 소개가 보이네요. 아주 짧은 분량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그리 만만치 않다고 생각됩니다. 제목처럼 폭력적 강자에게 유린당하는 ‘약한 존재’들의 슬픔을 담고 있지요.

 

하지만 전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눈물을 쏟고 고통에 우는 착한 초식동물들의 일상을 통해 DNA가 악한 육식동물과의 관계를 스토리텔링식으로 풍자한 내용”이라는 책 소개에서 일단 멈칫 했거든요.

 

저자께서 채식주의자이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DNA를 운운하며 육식동물을 일방적으로 악인화 하는 것은 올바른 생각이 아니라는 느낌입니다. 더구나 육식동물로 상징되는 ‘DNA가 악한 이들’의 예를 든 것만 봐도 어딘지 좁고 한정된 시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천안함 사건에 이은 무자비한 연평도 공격을 한 북한의 DNA는 무엇인가? 일상에 파고드는 보이스 피싱, 갖가지 사기 행각으로 인한 법정 싸움, 크고 작은 횡령 음모와 사회 분열 책동 등 우리는 악한 DNA가 판을 치는 끔찍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저자의 말씀. 전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선 분열 책동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불순함이 싫고요. 북을 악의 DNA로 묘사한 부분은 정말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전쟁 후 지금까지 남과 북이 비슷비슷하게 서로를 증오하고 살육을 일삼아 온 것을 보자면 우리 역시 악의 DNA 아닌가요? 그리고 악의 DNA는 성품이나 행동이 타고 난 것인양 오해할 수 있습니다. 전 세상 어디에도 ‘타고 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역사가 기록된 이래 ‘규정짓기’가 가져온 엄청난 해악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이 악의 DNA를 타고 났다면 우리는 북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요즘 머리에 띠 두르고 성조기를 흔들며 흥분하시는 어르신들처럼 북을 ‘말살’‘처단’해야 끝나는 것이지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이야기가 확 달라집니다. 북이라는 한 국가에서 보이스피싱, 사기, 횡령 등등으로 넘어가죠. 물론 이런 것들도 사회를 어지럽히고 서민들을 괴롭히는 나쁜 범죄죠. 그런데 정작 정부의 무능이나 사회 고위층들의 부패나 무능은 전혀 언급되지 않네요. 고의로 무시하신 것인지, 아니면 글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전 국민이 알고 있기 때문인지 전 의아했습니다.

 

책 표지를 장식하는 붉은 눈의 육식동물. 그 붉은 눈을 보았을 때 순간 떠오른 것은 불행히도 ‘레드 콤플렉스’였습니다. 물론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말이죠. 북괴에서 다시 북으로 또 다시 북괴로 바뀌어 가는 이 기막힌 세상에서, 과연 저자처럼 악한 DNA, 선한 DNA를 나눠 대결해야만 하는지 여전히 가슴이 아픕니다.

 

저자는 “우리는 주변에서 호시탐탐 노리는 악한 DNA를 살피고 재발견하여 그들의 마수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그들을 교화시키고 탈바꿈 시켜야 한다. 그것이 어려우면 엄중한 정의의 힘으로 그들의 악한 DNA를 완전히 소멸시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무서운 말이죠. ‘교화’‘마수’‘정의’‘소멸’등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연이어 등장합니다. 과연 저자가 생각하는 악의 무리는 무엇일까요.

 

카툰 예술가로 소개된 저자는 “기업의 브랜드와 아이콘을 위한 연구소 소장”으로 계시더군요. 물론 좋죠. 하지만 이 시대는, 저자가 말하는 이 험난한 시대에는 기업의 브랜드보다 더 필요한 것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런 기업들을 많이 소개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물론 그런 기업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전 아직 DNA의 정체를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알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평화와 공존과 화해를 원하는 이 땅의 수많은 민중들을 알고, 또 믿고 있을 따름입니다.

 

제 서툰 서평이 행여나 저자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른 알약 - 증보판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프레데릭 페테르스 글.그림, 유영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때론 그림이 문자를 능가할 때가 있다. 또한 그림이 문자보다 더 큰 감동을 전해줄 때가 있다. 사실 그 어떤 것이 우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도 우스울지 모를 일이다. 이 책을 두 번째로 읽고 난 지금, 다시 한 번 느낀다. 그 경계와 구분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80년대 후반인가 90년대 초로 기억된다. 당시 에이즈의 감염된 이들이 집단으로 자신들의 권익을 위한 집회를 열었다. 물론 미국에서다. 당시 에이즈 보균자들은 가두시위를 감행했고, 이를 저지하는 경찰의 손에는 하나같이 고무장갑이 끼워 있었다. 농담 아니다. 정말 그들은 모두 고무장갑을 낀 상태였다.

 

그랬다. 그 정도로 사람들은 에이즈라는 질병에 무지했다. 걸리면 바로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재앙, 게다가 도덕적으로 타락한 이들이 걸리는 신의 분노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 2011년 현재를 둘러보자. 그렇게 말하는 인종을 본 적 있는가. 뭐 있다면 참 아쉬운 일이겠다.

 

책은 저자의 실재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어린 시절 잠깐 스쳤던, 하지만 오랜 여운을 남겼던 그 여인을 6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나게 된 주인공. 그 여인은 그 사이 이혼을 했고,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다시 만나게 된 이들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곧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곧 만만치 않은 벽과 부딪쳐야 했다. 그녀와 그녀의 아들이 에이즈 양성보균자란 사실 앞에서. 자,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랑인가, 애매모호한 안전(!)인가.

 

우리 사회에 에이즈라는 질병이 처음 알려졌을 때 종교계를 비롯한 소위 윤리적인 채 하는 집단에서 난리 브루스를 추었던 기억이 난다. 도덕적 타락에 개탄하고, 보균자들을 마치 악마인양 저주했다. 그리고 수혈 중 에이즈에 감염된 이들은 가족에게조차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곤 했다. 말이 자살이지, 강요된 타살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에이즈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지 못하다. 과거보다야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에이즈는 낙인이다. 때문에 주인공의 선택은 사랑이라는 당연함이 있다 하더라도 감동적이다. 스스로는 자신이 이 여인을 사랑함에 있어 동정이라는 감정이 조금이라도 덧붙여 있을까 전전긍긍하지만, 이마저도 우리에겐 감탄과 존경을 불러일으킨다. 당연한 것에 감탄하는 우리. 잘못된 것은 과연 누구일까.

 

한 여인을 사랑하지만 그 여인과는 평생 콘돔만을 사용해 사랑할 수밖에 없다면? 그리고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면? 언제라도 에이즈에 감염될 위험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결코 쉽지 않은 질문일 것이다. 때문에 책은 역시 적지 않은 생각을 안겨 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사회가, 국가가 규정지어 놓은 그 틀 안에서 사실 우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낙인이 된다는 두려움. 나만 버려진다는 공포. 우린 때론 그러한 두려움으로 더 큰 죄악을 저지르곤 한다는 사실. 그게 더 무서운 일 아닐까.

 

책은 신파도 뭐도 아니다. 에이즈를 초월한 숭고한 사랑 운운하지도 않는다. 다만 조금은 특별한 사랑을 해야 하는, 조금은 귀찮지만 그 에이즈라는 귀찮음을 감수하며 함께 살아가는 남녀의 이야기일 뿐이다.

 

때문이다. 더 감동스럽고, 더 와닿는 이유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