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약육강식 - 애니멀 카툰
최정훈 지음 / 윗샘과아랫샘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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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 카툰’이라는 책 소개가 보이네요. 아주 짧은 분량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그리 만만치 않다고 생각됩니다. 제목처럼 폭력적 강자에게 유린당하는 ‘약한 존재’들의 슬픔을 담고 있지요.

 

하지만 전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눈물을 쏟고 고통에 우는 착한 초식동물들의 일상을 통해 DNA가 악한 육식동물과의 관계를 스토리텔링식으로 풍자한 내용”이라는 책 소개에서 일단 멈칫 했거든요.

 

저자께서 채식주의자이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DNA를 운운하며 육식동물을 일방적으로 악인화 하는 것은 올바른 생각이 아니라는 느낌입니다. 더구나 육식동물로 상징되는 ‘DNA가 악한 이들’의 예를 든 것만 봐도 어딘지 좁고 한정된 시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천안함 사건에 이은 무자비한 연평도 공격을 한 북한의 DNA는 무엇인가? 일상에 파고드는 보이스 피싱, 갖가지 사기 행각으로 인한 법정 싸움, 크고 작은 횡령 음모와 사회 분열 책동 등 우리는 악한 DNA가 판을 치는 끔찍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저자의 말씀. 전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선 분열 책동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불순함이 싫고요. 북을 악의 DNA로 묘사한 부분은 정말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전쟁 후 지금까지 남과 북이 비슷비슷하게 서로를 증오하고 살육을 일삼아 온 것을 보자면 우리 역시 악의 DNA 아닌가요? 그리고 악의 DNA는 성품이나 행동이 타고 난 것인양 오해할 수 있습니다. 전 세상 어디에도 ‘타고 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역사가 기록된 이래 ‘규정짓기’가 가져온 엄청난 해악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이 악의 DNA를 타고 났다면 우리는 북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요즘 머리에 띠 두르고 성조기를 흔들며 흥분하시는 어르신들처럼 북을 ‘말살’‘처단’해야 끝나는 것이지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이야기가 확 달라집니다. 북이라는 한 국가에서 보이스피싱, 사기, 횡령 등등으로 넘어가죠. 물론 이런 것들도 사회를 어지럽히고 서민들을 괴롭히는 나쁜 범죄죠. 그런데 정작 정부의 무능이나 사회 고위층들의 부패나 무능은 전혀 언급되지 않네요. 고의로 무시하신 것인지, 아니면 글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전 국민이 알고 있기 때문인지 전 의아했습니다.

 

책 표지를 장식하는 붉은 눈의 육식동물. 그 붉은 눈을 보았을 때 순간 떠오른 것은 불행히도 ‘레드 콤플렉스’였습니다. 물론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말이죠. 북괴에서 다시 북으로 또 다시 북괴로 바뀌어 가는 이 기막힌 세상에서, 과연 저자처럼 악한 DNA, 선한 DNA를 나눠 대결해야만 하는지 여전히 가슴이 아픕니다.

 

저자는 “우리는 주변에서 호시탐탐 노리는 악한 DNA를 살피고 재발견하여 그들의 마수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그들을 교화시키고 탈바꿈 시켜야 한다. 그것이 어려우면 엄중한 정의의 힘으로 그들의 악한 DNA를 완전히 소멸시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무서운 말이죠. ‘교화’‘마수’‘정의’‘소멸’등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연이어 등장합니다. 과연 저자가 생각하는 악의 무리는 무엇일까요.

 

카툰 예술가로 소개된 저자는 “기업의 브랜드와 아이콘을 위한 연구소 소장”으로 계시더군요. 물론 좋죠. 하지만 이 시대는, 저자가 말하는 이 험난한 시대에는 기업의 브랜드보다 더 필요한 것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런 기업들을 많이 소개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물론 그런 기업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전 아직 DNA의 정체를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알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평화와 공존과 화해를 원하는 이 땅의 수많은 민중들을 알고, 또 믿고 있을 따름입니다.

 

제 서툰 서평이 행여나 저자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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