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기억
호사카 가즈시 지음, 이상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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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소설을 꿈꾸었다가 지금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조그만 휴대용 책자를 기획하는 아버지, 그리고 호기심 많고, 무지하게 활동적인 다섯 살 아들. 이들이 도쿄에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시골 마을 이나무라가사키에서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

 

소설의 내용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웃집에 살고 있는 오누이와의 대화, 산책, 식사가 이어지고, 다음 날도 이어집니다. 정말 소소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의 이어짐.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이들의 평범한 이야기.

 

하지만 왜 그럴까요. 책장을 덮고 설명하기 힘든 먹먹함이 다가옵니다. 끝없는 시간과 광활한 우주 그리고 인간의 품에 다 안을 수 없는 자연 앞에서 겸손하고, 순응하며 또한 이웃과 함께 하는 이들의 ‘인간’다운 이야기 자체에 감동의 힘이 있었던 것일까요.

 

귀엽고 천진난만한 ‘구이짱’과 언제나 구이짱을 잘 보살펴주는 이웃집 누나 ‘미사짱’ 그리고 무엇이든 고치는 심부름센터 주인 ‘마쓰이 씨’와 산책을 즐기고, ‘조금 일하고 조금 돈을 버는’주인공. 네 사람이 엮어가는 일상은 잔잔하고 평온합니다. 그리고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여기에 감초와 같은 인물들이 몇 추가됩니다. 맘 착하고 나름 분석력이 뛰어난 게이 니카이도, 이혼 후 전 남편과의 기억에서 벗어나려 하는 닛짱과 딸 쓰보미짱. 항상 적절한 시간에 전화해, 장황하지만 즐거운 이야기를 떠들고 정작 용건은 미처 말하지 못한 채 끊는 에비노키 등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이나 대화, 행동 역시 그 어떤 극단성이나 눈물을 쏙 빼놓을 만큼의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들의 삶 하나하나가 우리 모두 이해할 수 있고, 또 살아가고 있는 삶일 뿐입니다.

 

한적한 시골길을 걸었던 기억, 그 길을 홀로 걸었는지, 혹은 누군가와 함께 걸었는지, 희미한 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길을 걸었다는 자체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그 시간이 당신에게 조금은 특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겠죠.

 

인간의 유한성, 설명할 수 없는 시간과 우주 그리고 자연. 희미한 슬픔과 조금은 부족하지만 여전히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우리는 유한하기에 서럽도록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특별한 경험, 특별한 독서였습니다.

 

나는 언젠가 몇 년이 지나 기억나는 날이 있다면 오늘 같은 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서, 두 사람과 함께 절벽 사이를 빠져나오는 자동차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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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시간 1~3 세트 - 전3권 - 여름방학편
노란구미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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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청춘’으로 살아가기 힘든 시절입니다. 스펙을 위한 무한경쟁 뒤에도 삶을 죄어오는 등록금의 고통으로 사랑도 낭만도 도서관에 처박아야 하는 젊음입니다. 무참하고 또 한없이 미안한 세대들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IMF의 혹한 속에 대학을 멈추고 군대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엔 상황의 심각성도 모르고, 마냥 철없이 굴던 어린아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제 대학시절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후배들은 정말 많이 성숙하고, 또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이 미안합니다.

 

재일동포 2.5세대로 일본과 조국 한반도를 향한 특별한 감정을 안고 있는 젊은이의 작품인 《세 개의 시간》은 세 청춘의 발랄한 사랑이야기에 더해 지금 젊은이들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함께 풀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 끝이 정확히 보이지 않아 방황하고 때론 두려움에 멈칫거리는 청춘,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꿈이 무엇인지 끝없이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쉽사리 상처받는 청춘. 이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젊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준호, 성훈 그리고 히나가 엮어가는 사랑과 방황의 이야기는 읽는 이를 금새 빠져들게 합니다. 그리고 결코 가볍지만은 아야기를 풀어나감에도 전혀 어둡지 않고, 사이사이 키득거리게 만드는 힘은 분명 작가의 미덕입니다.

 

부모의 일방적 기대와 사회의 냉혹함, 오로지 돈이 되는 것만이 진리가 되어버린 세상에, 젊은이들은 숨 막혀 합니다. 하지만 그대로 절망하지는 않습니다. 자신들의 꿈을 소중히 간직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 그 꿈이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소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꿈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말합니다. “시도조차 하지 않은 마음은 포기가 아니야. 죽음 마음이라고 생각해.”

그렇지요.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내 마음은 아직 죽지 않았는지, 난 아직 살아있는지.

 

세 권의 코믹스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따뜻하고, 단호하고, 흐뭇합니다. 여전히 세상은 돌아가고, 여전히 청춘은 뜨겁습니다. 그들의 미래가 불확실하다 하더라도, 삶은 반드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삶을 더욱 아름답게 해주는 희망이 있는 한, 미소를 잃을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 모든 청춘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물론 저도 포함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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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
김용택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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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나서면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아침마다 아이들의 시끄러운 등교소리가 들려오고, 아이들을 챙겨주는 선생님들, 학교보안관 아저씨의 호루라기 소리도 들립니다. 아파트 단지 앞이기에 출근을 위해 나가는 차들이 많아, 보안관 아저씨의 지도가 필요합니다.

 

여행용 카트를 끄는 것처럼 책가방을 끌며 오는 아이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들이 정겹습니다. 가을 운동회는 또 얼마나 요란한지요. 아이들의 함성소리가 이내 아파트 단지를 들썩이게 합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항상, 어느 때고 아이들이었습니다. 늘 그렇게 해맑고 즐겁고, 사소함에 기뻐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변한 것은 세상이고, 어른이고, 또 다시 세상일 따름이죠. 언제나 아이들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섬진강 선생님 김용택 시인은 이런 아이들과 평생을 함께 살았습니다. 시골 조그만 초등학교에서 많지 않은 아이들과 행복하게 사셨습니다. 그 소박한 삶이 시가 되었고, 예쁜 글이 되어 알려졌습니다. 사람들은 김용택 시인의 글로 위안을 얻었고, 김용택 선생님은 아이들로부터 행복과 기쁨을 얻었습니다.

 

7월 말 선생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인터뷰를 위한 만남이었지만, 기실은 꼭 한 번 뵙고 싶었기에 욕심을 부렸습니다. 원래는 제가 아닌 사람이 만나러 가는 것이었지만, 사정이 생겼고, 뜻하지 않게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닌, 승진과 개인적 출세에 눈이 어두워, 거기에 더 많은 정성을 쏟는 선생들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을 만들어버린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마구 파헤쳐지는 강과 산을 무참해 했습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망가지는 자연. 이는 그 어떤 변명으로도 덮을 수 없는 인간의 죄악이었습니다. 평생 아이들과, 자연 속에서 살아온 선생에게 지금의 세상은 무참함 자체일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만큼 세상을 사랑했고, 망가지고 더러워지는 그 만큼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잊혀지는 것들을 사랑했고, 서러운 것들을 기억하려 했습니다. 그것이 시인의 마음이고, 아이들과 함께 살아온 선생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자연이 언제나 인간에게 포근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때로 무서운 재앙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앞에 인간은 늘 초라했고, 겸손했습니다. 자연에 순응하며 그 안에서 삶을 이어가야 했던 우리들은 딱 그만큼 겸손하고 슬기로울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눈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의 눈조차 어지러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 무책임하게 만들어놓은 굴레 속에서 아이들도 점점 어른의 눈을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언제 다시 우리들은 아이들의 눈을 가질 수 있을까요. 농부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농사꾼들은 예술가들이었고, 쟁이들이었고, 자연을 가장 잘 이해하는 생태주의자들이었다. 또 위대한 시인이었다. 말하자면 농사꾼들은 세상과 자연을 종합하고 해석하고 정리, 응용, 적용할 줄 아는 철학자였던 것이다.”

 

“더디고 느린 삶, 오래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은 나를 그리움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 자연에서 얻은 삶에 대한 깊고 깊은 통찰의 힘은 자연을 닮았다. 농사를 짓고 사는 농부들이 생태와 순환의 이치를 삶에 적용하는 힘은 놀랍다. 인격은 지식이 다가 아니다. 외워 답을 쓰는 그런 공부가 아니다. 인격은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농사다.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곡식을 가꾸어 거두는 일같이 진지하고, 그러한 진정성 속에서, 땅을 고르듯 마음을 고른 불변의 인간성이 길러지고 땅에 뿌리를 둔 나무처럼 세워지는 것이다.”

 

자연과 함께 한, 자연을 닮은 아이들과 함께 한 선생님의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선생님의 스승은 오히려 아이들이었다는, 그리움과 따뜻함과 연민과 사랑이 있었던 삶. 우리는 조금은 엇나간 지금의 모습을 선생님의 글을 통해 다시 잡아나갑니다.

 

아름다운 아이들의 글과 선생님의 글 그리고 예쁜 그림까지 함께 한 소중한 책입니다. 선생님의 서명도 받은, 제 보물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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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는 진실 : 빈곤과 인권
아이린 칸 지음, 우진하 옮김 / 바오밥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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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10위권 안팎을 오가는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G20정상회의를 개최했다고 호들갑을 떨었고, 미국과 FTA를 체결해 더 많은 수출을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구 중 30억이 넘는 인구가 여전히 빈곤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하루 1.25달러 이하로 생계를 이어가는 계층을 ‘극빈곤층’으로, 2달러 이하를 ‘빈곤층’으로 분류한다. 여기에 따르자면 세계 인구 중 10억 명은 극빈곤층, 20억 명은 빈곤층에 속한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선봉인 세계은행이기 때문에, 당연히 수입에 따라 빈곤층을 나누는 아주 간단한 방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을 맡으며, 전 세계에 만연해 있는 빈곤을 끝장내려 노력하고 있는 아이린 칸은 이런 계산법에 의문을 제기한다. 세계은행의 말에 따르면 결국 소득수준을 높이는 것이 빈곤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혀! 소득수준이 몰라보게 높아진 국가들에서도 빈곤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득수준의 향상, 이는 한 국가의 노력으로 더 이상 가능치 않다. 그렇다면 결국 세계 경제의 흥망에 따라 빈곤층의 운명이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아이린 칸이 빈곤 문제를 ‘인권’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녀는 경제성장이 빈곤을 종식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열쇠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또 다른 해결책에 우리 모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 희생자가 아니라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기 위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힘을 부여하는 일”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경제적 문제 이상의 벽들과 마주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박탈과 불안, 차별과 무기력한 침묵이다. 빈곤층이라는 이유로 시민권을 존중받지 못하고,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에 달한다는 사실. 여기에 물론 대한민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는 아직 용산의 참혹했던 밤을 잊지 못한다. 생존을 위해 옥상으로 올라야 했던 국민들은, 그들이 선출한 대통령에 의해 살해당했다. 용산구와 서울시 나아가 대한민국 경제의 발전을 위해, 그들의 생명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는 사실. 만약 그들이 경제적 강자였다면, 그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죽음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적 약자는 이미 지역사회와 국가의 ‘소수파’로 분류되고 배제된다. 그들은 단지 지원이나 시혜를 받아 연명해야 할 ‘부차적 집단’으로 인식된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복지를 권리가 아닌 ‘시혜’라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부유한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빈곤층을 차별과 배척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고 있다. 이젠 무너진 세계 경제 대국 미국에서는 수만 명의 노숙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유럽의 집시사회는 그들이 살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평균 이하의 생활수준을 보여준다.

 

여기에 권력자들의 부패와 탐욕이 더해져, 1%와 99%의 간극은 점점 벌어진다.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아래 탐욕스러운 정치가들과 자본가들에 의해 더욱 커져만 간다. 부패는 가난한 이들을 수탈해 국가의 재산을 부자들의 손에 몰아준다.

 

아이린 칸은 전 세계 빈곤국가를 둘러보며, 빈곤의 원인, 문제, 해결책을 고민한다. 소수를 위해 다수가 굶주려야 하는 아이러니, 그 원인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아울러 인권의 개념으로 빈곤문제를 바라보면 지금보다 더 나은 희망적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호소한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한미FTA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으로 여긴다. 수출로 이만큼 살게 된 우리가 더 많은 수출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을 들이댄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영원한 수출 증대, 영원한 흑자 창출이 가능할까. 지속가능하다는 단어처럼 무책임한 것이 또 있을까.

 

아니, 백 번 양보하여 한미FTA가 체결되면 우리 경제가 나아진다고 가정하자. 그 창출된 이익이 빈곤층에게까지 전달되려면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과연 전달되기는 할까. 그 사이 무너지는 서민경제와 농어촌 그리고 대다수 중산층의 삶은 누가 살필 수 있을까. 수출 기업의 배를 불려주면 결국 우리에게도 ‘떡고물’이 떨어질 것이란 ‘낙수효과’의 허구성이 진즉에 드러나지 않았나.

 

한국의 대통령은 미국의 대통령 재선을 위해 미국의 공장에서 미국의 노동자들을 위한 연설을 한다. 미국 국회에서 미국 회사가 만들어준 연설문을 가지고 당당히 연설한다. 기립박수가 나왔다고 흐뭇해한다. 그에게 300일이 넘도록 하늘에서 투쟁한 한국 노동자는 당장 집어넣어야 할 범법자이고, 미국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노동자들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4대강이 자연을 보호하고,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창출한다는 괴담 이전에, 자신이 도덕적으로 역대 최고의 정권을 만들었다는 괴담 이전에, 이명박 대통령은 호언장담한 대로 G20으로 400조 원이 넘는 경제적 이익이 창출됐는지, 정확한 ‘명세서’를 먼저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일단 한미FTA를 비준하면 3개월 안에 재협상하겠다는 거짓말 대신에 말이다.

 

아이린 칸은 강력한 시민의 힘 그리고 엄정한 법질서 집행을 통해 빈곤에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원래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은 자랑스러운 보수 세력들의 전매특허다. 그들은 원칙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 그게 진정한 보수다. 하지만 우리나라엔 진정한 보수가 애초부터 없었다.

 

자기 지역구의 노숙자들은 처리(!)하겠다고 공약한 정치인이 당선되는 현실, 개그맨의 풍자를 ‘국회의원 집단 모독죄’로 고소하는 정치인. 그런 쓰레기들이 설치게 방치해 둔 우리들의 책임도 크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더 이상 젊은이들은 조·중·동 쓰레기 조폭 언론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들 자체가 이미 하나의 미디어이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기성세대들은 지겹게 말했다. 요즘 것들은 철이 없다고. 아무 것도 모르고, 나약하고 게으르다고. 미안하지만, 이젠 닥치시라. 당신들이 반세기가 넘도록 하지 못한 일들을 이제 젊은이들이 하고 있다. 당신들이 조·중·동의 쓰레기 철자에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그들은 새로운 정치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 99%를 위한 정치 혁명을 이끌고 있다. 그러니 닥치시라.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라도 있으면, 이제 기성세대는 잠자코 있어야 할 듯하다. 이렇게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나라를 망쳐놓은 죄를 반성하고, 이렇게 대기업, 조폭 언론들이 한국 정치와 경제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어지럽히게 한 기성세대들은 닥치고 있어야 하리라.

 

이제 당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다.

 

빈곤 문제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갖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아울러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줄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이 선진국인가 하는 고민 말이다.

 

세상은 만만치 않다. 기존 수구세력들의 힘 역시 여전히 막강하다. 하지만 긴장하시라.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리고 불의는 언젠가 반드시 정의에 의해 심판받게 된다. 그 형태가 어떻게 되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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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이야기
김종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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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뭐.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고.”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느낀 감정이었다. 나 역시 책의 주인공 ‘소판범’과 마찬가지로 돈도 빽도 없었기에, 당연히 현역으로 군대에 다녀왔다. 평소 삐쩍 말라 주위 사람들로부터 “넌 조금만 더 살을 빼면 체중 미달로 군 면제일 꺼다. 알아서 빼라”는 충고를 들어왔던 나였지만, 웬걸. 국방부는 나에게 자랑스럽게도 신체등급 1급을 선사했다. 오호라, 드디어 국가가 나를 알아보는 것인가.

 

내가 입대할 때는 IMF의 직격탄을 전 국가적으로 받아내고 있었던 시기였다. 아니, 조금은 그 환란에 적응하고 있을 때였다고 해야 하나. 1998년 12월 14일, 논산으로 향하는 내 마음은 그냥 어중간 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다 보니, 여자 친구를 비롯한 친구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훈련소로 갔다. 들어가기 전 먹었던 설렁탕 비슷한 그 무엇은 정말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머리칼은 미리 자르고 갔기에, 밥만 먹고 바로 들어가면 되는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지만, 여친도 나도 약간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훈련소에서 여친이 울면 100% 고무신을 반대방향으로 신는다는 속설도 있었지만, 실상은 둘 다 그 순간까지도 실감을 하지 못한 것이다.

 

먼 훗날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여친도 어머니도 돌아오는 기차에서 울었다고 한다. 참나, 그냥 내 앞에서 울면 되지 뭘. 암튼 난 아무런 감정 없이 조교들의 쏟아지는 욕설을 들으며 입소대대에 들어갔다.

 

어딜 가나 마찬가지겠지만, 적응의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 살만 한 법이다. 논산의 6주는 더디게 흘러갔지만, 점차 나와 내 동기들은 찌질이에서 각잡힌 군바리가 되어갔고, 책의 주인공처럼 ‘거지처럼’밥에 환장했다. 설날에 나온 떡이 내무실 바닥에 떨어졌는데, 그걸 주워 먹는 인간들도 있었다. 물론 나 역시 타이밍이 맞았으면 주워 먹었을 것이다. 내 생애 그렇게 먹는 것에 탐욕적이던 때는 그 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다.

 

난 양심적인 병역거부를 찬성한다. 동시에 군가산점 제도에 반대한다. 군가산점 제도는 엉뚱하게 예비역과 여성, 그리고 예비역과 군에 가지 못한 이들을 이간질시키고, 갈등하게 만든다. 우스운 짓이다. 예비역들은 국가에 짜증을 내야하고, 국가에 요구를 해야 한다. 여성들에게 찌질이처럼 굴 일은 전혀 아니다.

 

그래서 내 군 생활을 아름답고 숭고하고 온갖 소중한 추억이 난무하는 기억들로 치장할 마음은 전혀 없다. 그냥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남성처럼 군대에 다녀왔을 뿐이다. 해병대처럼 무지하게 빡세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메이드 인 당나라 부대도 아니었다. 아주 평범해서 책으로 쓴다면 단박에 망할 스토리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을 읽으며 내가 군대에서 보낸 2년 6개월의 시간들이 새록새록 다시 떠올랐다. 힘들고 짜증나고 어느 땐 고통스러웠지만, 100% 나빴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었다. 그 시절에도 분명 좋은 일들, 추억들이 있었다.

 

저자는 정말 놀랄 만한 기억력으로 자신의 군 생활을 들려준다. 난 그 정도의 자신은 없다. 물론 저자 역시 이후 여러 가지 자료들을 찾아 기억을 보완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단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훈련소에 따라와 준 여친은 눈물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병장을 달고 나온 휴가 때 이별을 통보했다. 그 자리에선 상당히 쿨하게 “잘 살아라”를 외치고 나왔지만, 무고한 친구 녀석을 붙잡고 밤새 징징거리며 술을 펐던 기억이 난다.

 

제대 후에도 난 찌질한 짓거리를 또 했다. 꼭 맨 정신이 아니고 술에 취해 전화를 걸어 다시 만나주면 안 되겠냐는 눈물어린 호소를 했다. 결과는 뭐, 예상대로다.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취해서 떠드는 놈을 누가 좋아하겠나. 그 정도로 당시엔 그 친구를 정말 좋아했던 것 같다. 뭐 억울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기껏 병장까지 기다려주고, 이게 뭔가. 자세 안 나오게.

 

이후 세월이 흘러 난 결혼을 했고, 그 친구도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다행이다. 뭐 나 같은 녀석과 사귀어 봤으니 더 훌륭하고 멋진 남자를 만나 잘 살 수 있겠지. 위로해본다.

 

대통령이나 장차관, 대기업 간부 등등을 아버지나 어머니로 두지 않은 대한민국 청년들은 누구나 군대에 간다. 그리고 개고생을 한다. 어떤 단어든 앞에 ‘개’를 붙이면 곱하기 100을 생각하면 된다. 향토사단이든 해병대든 암튼 부대 안에 들어가면 누구나 고생이다. 오늘도 이 조국의 안녕을 위해 자신들의 안녕을 잠시나마 유보하는 이들. 국군장병 아저씨에서 이제 그냥 동생들 조카들이 됐지만, 세월이 아무리 좋아져도 군대는 힘들다.

 

하지만 분명 군대는 남자를 변화시킨다. 군대 가야 철든다는 개소리는 아니다. 그건 정말 개소리다. 대신 남자는 군대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차피 대한민국 사회는 군대화된 사회였다. 직장이나 학교나 군대식 서열의식은 살아 숨 쉬고 있다. 다만 군대는 그것을 다시 한 번 제대로 확인시켜줄 뿐이다.

 

남자가 변한다는 것은 더 현실적인 사람이 된다거나, 더 현명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 안에 숨겨져 있는 비굴함과 잔인함, 동정심과 적개심을 동시다발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판단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한다면. 그것은 내가 어떤 녀석인 것을 알았으니,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선택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냥 군대식으로 사회에 나와서도 그렇게 살아갈지, 아니면 잘못된, 모순된 부분들을 최대한 고쳐나가며 살 것인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즐거운 군대의 추억들과 기억하기 싫은 부분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일깨워준 책이다. 눈물 찔끔 나게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고, 키득거리며 웃어넘긴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을 생각하며 울컥했던 기억들까지.

 

예비역을 비롯한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동생들, 그리고 군대에 남친을 보내놓고 고무신의 착용 방향을 심각하게 고민 중인 아가씨들의 일독을 권한다. 물론 누구나 읽어도, 재미있다.

 

통장 계좌번호, 카드 번호는 잊어도. 왜 나는 아직 군번을 잊지 못하는 것일까. 책을 읽으며 그냥 다시 생각난 것일까. 아무튼. 난 대한민국 군바리였다. 자랑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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