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 진실 : 빈곤과 인권
아이린 칸 지음, 우진하 옮김 / 바오밥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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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10위권 안팎을 오가는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G20정상회의를 개최했다고 호들갑을 떨었고, 미국과 FTA를 체결해 더 많은 수출을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구 중 30억이 넘는 인구가 여전히 빈곤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하루 1.25달러 이하로 생계를 이어가는 계층을 ‘극빈곤층’으로, 2달러 이하를 ‘빈곤층’으로 분류한다. 여기에 따르자면 세계 인구 중 10억 명은 극빈곤층, 20억 명은 빈곤층에 속한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선봉인 세계은행이기 때문에, 당연히 수입에 따라 빈곤층을 나누는 아주 간단한 방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을 맡으며, 전 세계에 만연해 있는 빈곤을 끝장내려 노력하고 있는 아이린 칸은 이런 계산법에 의문을 제기한다. 세계은행의 말에 따르면 결국 소득수준을 높이는 것이 빈곤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혀! 소득수준이 몰라보게 높아진 국가들에서도 빈곤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득수준의 향상, 이는 한 국가의 노력으로 더 이상 가능치 않다. 그렇다면 결국 세계 경제의 흥망에 따라 빈곤층의 운명이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아이린 칸이 빈곤 문제를 ‘인권’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녀는 경제성장이 빈곤을 종식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열쇠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또 다른 해결책에 우리 모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 희생자가 아니라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기 위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힘을 부여하는 일”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경제적 문제 이상의 벽들과 마주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박탈과 불안, 차별과 무기력한 침묵이다. 빈곤층이라는 이유로 시민권을 존중받지 못하고,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에 달한다는 사실. 여기에 물론 대한민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는 아직 용산의 참혹했던 밤을 잊지 못한다. 생존을 위해 옥상으로 올라야 했던 국민들은, 그들이 선출한 대통령에 의해 살해당했다. 용산구와 서울시 나아가 대한민국 경제의 발전을 위해, 그들의 생명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는 사실. 만약 그들이 경제적 강자였다면, 그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죽음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적 약자는 이미 지역사회와 국가의 ‘소수파’로 분류되고 배제된다. 그들은 단지 지원이나 시혜를 받아 연명해야 할 ‘부차적 집단’으로 인식된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복지를 권리가 아닌 ‘시혜’라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부유한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빈곤층을 차별과 배척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고 있다. 이젠 무너진 세계 경제 대국 미국에서는 수만 명의 노숙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유럽의 집시사회는 그들이 살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평균 이하의 생활수준을 보여준다.

 

여기에 권력자들의 부패와 탐욕이 더해져, 1%와 99%의 간극은 점점 벌어진다.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아래 탐욕스러운 정치가들과 자본가들에 의해 더욱 커져만 간다. 부패는 가난한 이들을 수탈해 국가의 재산을 부자들의 손에 몰아준다.

 

아이린 칸은 전 세계 빈곤국가를 둘러보며, 빈곤의 원인, 문제, 해결책을 고민한다. 소수를 위해 다수가 굶주려야 하는 아이러니, 그 원인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아울러 인권의 개념으로 빈곤문제를 바라보면 지금보다 더 나은 희망적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호소한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한미FTA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으로 여긴다. 수출로 이만큼 살게 된 우리가 더 많은 수출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을 들이댄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영원한 수출 증대, 영원한 흑자 창출이 가능할까. 지속가능하다는 단어처럼 무책임한 것이 또 있을까.

 

아니, 백 번 양보하여 한미FTA가 체결되면 우리 경제가 나아진다고 가정하자. 그 창출된 이익이 빈곤층에게까지 전달되려면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과연 전달되기는 할까. 그 사이 무너지는 서민경제와 농어촌 그리고 대다수 중산층의 삶은 누가 살필 수 있을까. 수출 기업의 배를 불려주면 결국 우리에게도 ‘떡고물’이 떨어질 것이란 ‘낙수효과’의 허구성이 진즉에 드러나지 않았나.

 

한국의 대통령은 미국의 대통령 재선을 위해 미국의 공장에서 미국의 노동자들을 위한 연설을 한다. 미국 국회에서 미국 회사가 만들어준 연설문을 가지고 당당히 연설한다. 기립박수가 나왔다고 흐뭇해한다. 그에게 300일이 넘도록 하늘에서 투쟁한 한국 노동자는 당장 집어넣어야 할 범법자이고, 미국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노동자들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4대강이 자연을 보호하고,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창출한다는 괴담 이전에, 자신이 도덕적으로 역대 최고의 정권을 만들었다는 괴담 이전에, 이명박 대통령은 호언장담한 대로 G20으로 400조 원이 넘는 경제적 이익이 창출됐는지, 정확한 ‘명세서’를 먼저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일단 한미FTA를 비준하면 3개월 안에 재협상하겠다는 거짓말 대신에 말이다.

 

아이린 칸은 강력한 시민의 힘 그리고 엄정한 법질서 집행을 통해 빈곤에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원래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은 자랑스러운 보수 세력들의 전매특허다. 그들은 원칙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 그게 진정한 보수다. 하지만 우리나라엔 진정한 보수가 애초부터 없었다.

 

자기 지역구의 노숙자들은 처리(!)하겠다고 공약한 정치인이 당선되는 현실, 개그맨의 풍자를 ‘국회의원 집단 모독죄’로 고소하는 정치인. 그런 쓰레기들이 설치게 방치해 둔 우리들의 책임도 크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더 이상 젊은이들은 조·중·동 쓰레기 조폭 언론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들 자체가 이미 하나의 미디어이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기성세대들은 지겹게 말했다. 요즘 것들은 철이 없다고. 아무 것도 모르고, 나약하고 게으르다고. 미안하지만, 이젠 닥치시라. 당신들이 반세기가 넘도록 하지 못한 일들을 이제 젊은이들이 하고 있다. 당신들이 조·중·동의 쓰레기 철자에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그들은 새로운 정치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 99%를 위한 정치 혁명을 이끌고 있다. 그러니 닥치시라.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라도 있으면, 이제 기성세대는 잠자코 있어야 할 듯하다. 이렇게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나라를 망쳐놓은 죄를 반성하고, 이렇게 대기업, 조폭 언론들이 한국 정치와 경제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어지럽히게 한 기성세대들은 닥치고 있어야 하리라.

 

이제 당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다.

 

빈곤 문제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갖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아울러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줄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이 선진국인가 하는 고민 말이다.

 

세상은 만만치 않다. 기존 수구세력들의 힘 역시 여전히 막강하다. 하지만 긴장하시라.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리고 불의는 언젠가 반드시 정의에 의해 심판받게 된다. 그 형태가 어떻게 되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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