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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기억
호사카 가즈시 지음, 이상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한때 소설을 꿈꾸었다가 지금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조그만 휴대용 책자를 기획하는 아버지, 그리고 호기심 많고, 무지하게 활동적인 다섯 살 아들. 이들이 도쿄에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시골 마을 이나무라가사키에서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
소설의 내용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웃집에 살고 있는 오누이와의 대화, 산책, 식사가 이어지고, 다음 날도 이어집니다. 정말 소소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의 이어짐.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이들의 평범한 이야기.
하지만 왜 그럴까요. 책장을 덮고 설명하기 힘든 먹먹함이 다가옵니다. 끝없는 시간과 광활한 우주 그리고 인간의 품에 다 안을 수 없는 자연 앞에서 겸손하고, 순응하며 또한 이웃과 함께 하는 이들의 ‘인간’다운 이야기 자체에 감동의 힘이 있었던 것일까요.
귀엽고 천진난만한 ‘구이짱’과 언제나 구이짱을 잘 보살펴주는 이웃집 누나 ‘미사짱’ 그리고 무엇이든 고치는 심부름센터 주인 ‘마쓰이 씨’와 산책을 즐기고, ‘조금 일하고 조금 돈을 버는’주인공. 네 사람이 엮어가는 일상은 잔잔하고 평온합니다. 그리고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여기에 감초와 같은 인물들이 몇 추가됩니다. 맘 착하고 나름 분석력이 뛰어난 게이 니카이도, 이혼 후 전 남편과의 기억에서 벗어나려 하는 닛짱과 딸 쓰보미짱. 항상 적절한 시간에 전화해, 장황하지만 즐거운 이야기를 떠들고 정작 용건은 미처 말하지 못한 채 끊는 에비노키 등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이나 대화, 행동 역시 그 어떤 극단성이나 눈물을 쏙 빼놓을 만큼의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들의 삶 하나하나가 우리 모두 이해할 수 있고, 또 살아가고 있는 삶일 뿐입니다.
한적한 시골길을 걸었던 기억, 그 길을 홀로 걸었는지, 혹은 누군가와 함께 걸었는지, 희미한 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길을 걸었다는 자체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그 시간이 당신에게 조금은 특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겠죠.
인간의 유한성, 설명할 수 없는 시간과 우주 그리고 자연. 희미한 슬픔과 조금은 부족하지만 여전히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우리는 유한하기에 서럽도록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특별한 경험, 특별한 독서였습니다.
나는 언젠가 몇 년이 지나 기억나는 날이 있다면 오늘 같은 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서, 두 사람과 함께 절벽 사이를 빠져나오는 자동차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