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좌절할 것인가, 승리할 것인가? - 마재광-공희준 긴급 정치대담집
마재광.공희준 지음 / 공감리퍼블릭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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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 새로운 감동과 희망을 제시하겠다고 만들어진 민주통합당. 시민사회, 노동계까지 함께 힘을 모아 만들어진 당이죠. 우여곡절 끝에 탄생된 당이기에, 그리고 이명박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염원이 있었기에, 그만큼 기대도 컸습니다.

 

하지만 지금 민주통합당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보수 언론들의 저열한 프레임이 떠오릅니다. ‘정치하는 것들은 다 그 놈이 그 놈’이라는 말이죠. 정말 한심하다 못해 처량할 정도입니다.

 

지금 민주통합당은 아주 커다란 착각 속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들의 반MB 정서가 그대로 자신들에게 축복으로 돌아갈 것이란 착각. 또 다시 반사이익에 대한 강렬한 유혹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어쩌면 좋을까요. 대책이 없습니다. 오늘은 또 국민경선 선거인단 모집 과정에서 사망 사고까지 났습니다. 그토록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한 것은 어디로 갔을까요.

 

통합진보당과의 선거연대도 일단은 힘들게 됐습니다. 이제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연대할 수 있는 조건은 깨진 것이지요. 추후 지역별로 정치적 ‘거래’만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당에서 할 짓인지 궁금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4년은 말 그대로 대다수 서민들에게 지옥과 같은 나날들이었습니다. 전방위적인 퇴행과 부패는 상상을 초월했고, 임기를 1년 정도 앞둔 지금은 부패의 퍼레이드를 보여주고 있죠.

 

하지만 상상해 봅니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이 아닌 정동영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민주당이 다시 집권여당이 되었다면, 우린 행복했을까요? 과연 그들이 과거를 반성하고 오직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했을까요. 전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차라리 상식과 상상을 초월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것이 다행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아죽을 소리인 것은 압니다. 하지만 적어도 대통령 하나 잘못 뽑으면, 투표 한 번 잘못하면, 아니 투표 한 번 참여 안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 똑똑히 알았으니까요. 게다가 우리는 대부분 전 국정 분야에 대해 전문가 수준이 되는 학습의 시간도 갖지 않았습니까.

 

이 책은 강남구에 출마하려는 민주당 예비후보가 시민논객 공희준과 짧게나마 나눈 대화를 담았습니다. 맞습니다. 이 책 역시 선거철을 앞두고 나오는 그런 홍보 책자의 성격이 강합니다.

 

책에서 공희준은 민주당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보여줍니다. 아울러 해답이 없는 정당이라 말합니다. 전혀 반성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지요. 다만 선거를 위해 모인 정당. 열린우리당의 복사판이 될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모르겠습니다. 공희준의 전망이 현실로 드러날지, 아니면 정말 민주통합당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밥그릇을 위해 새누리당과 야합하고, 한미FTA를 비롯해 각종 시급한 현안에 대해 지금껏 그래왔든 적당히 ‘쇼’만 보여준다면, 글쎄요. 그래도 국민들이 민주통합당에 표를 줄까요.

 

통합진보당에 대한 그들의 인식 자체는 놀라울 뿐입니다. 진보를 위해, 더 나은 세상, 조금이나마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러한 기준 아래 선거연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거래이고, 선심이고, 생색내기로 보일 뿐입니다.

 

이 책의 저자, 즉 강남구에 도전하는 민주통합당 예비후보나, 공희준의 생각과 같이 민주통합당의 그 어떠한 미래,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금 보여줘야 합니다. 국민들은 더 이상 봐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자들은 이런 단어 자체를 부정했고, 저 역시 개인적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단어지만, 이른 바 386세대, 강남좌파들이 정말 쓰레기인지, 아님 조금이나마 양심과 철학이 있는 집단인지는 곧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국민들은 선택을 할 것입니다.

 

민주통합당이 완전히 무너지는 모습을 상당히 안타깝게 바라볼 것이 뻔하기 때문에, 부디 정신 차리기 바랍니다. 국민들은 그대들에게 그냥 표를 주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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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체제 만들기
백낙청 지음 / 창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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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일 년 남짓 남아있다. 하지만 이미 정치권을 비롯한 시민사회, 나아가 국민들에게 이 대통령의 잔여 임기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2012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너도나도 ‘2013년’을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지금처럼 살 수 없다는 절박함, 분노와 맞물려 이미 ‘2013년체제’ 만들기는 진행형이다. 한편 2011년 처음 ‘2013년체제’라는 화두를 던졌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87년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평화체제, 복지국가, 공정·공평사회 등 중요한 시대적 과제들이 상호 맞물려 발전하고, 남북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체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연 2013년체제는 무엇이고, 이는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까.

 

노 학자가 새해 벽두 서둘러 작은 책을 펴냈다. 평소 그답지 않은 모습이다. 오랜 시간동안 “더러는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논의를 포함하여 제법 두툼한 책으로 묶어내는 것”이 습관이었던 그가 채 200면이 되지 않는 책을 서둘러 세상에 내놓은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를 이토록 절박하게 만들었을까. 《2013년체제 만들기》는 이런 백 교수의 고민과 간절함이 그대로 담겨 있다.

 

백 교수가 말하는 2013년체제는 “1987년 6월항쟁으로 한국사회가 일대 전환을 이룬 것을 ‘87년체제’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기도 하듯이, 2013년 이후의 세상 또한 별개의 ‘체제’라 일컬을 정도로 또 한 번 크게 바꿔보자는 것”이다.

 

87년체제가 직선제 개헌과 대선을 통해 군사독재 시대를 마감하고 민주화 시대로 이행한 것이었다면, 2013년을 시작으로 무한경쟁과 성장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넘어 민주주의·복지·남북관계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여기에 진보진영과 시민사회가 호응해 2011년 7월 야권통합의 촉매제 구실을 자임한 ‘희망 2013·승리 2103’ 원탁회의가 출범되는 등 구체적인 행동이 이어졌고, 여야·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저마다 2013년에 대한 구체적 비전 만들기에 정신 없는 모습이다. 백 교수의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모두 2013년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을 공감하고 있는 셈이다.

 

2013년은 올해 치러질 총선과 대선을 통해 새로이 정치 지형이 바뀌는 원년이다. 이명박 정부 기간 동안 지칠 대로 지친 국민들에게 무언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희망을 제시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때문에 올해 양대 선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백 교수가 ‘2103년’을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2013년 이후에 대한 바람을 크게 세울 때에만 2012년 선거도 제대로 치를 수 있다고 말한다. 올해의 선택이 비록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선거에만 논의가 너무 집중됨으로써 우리가 목표하는 선거 이후의 삶에 관한 사고를 제약하고 때 이른 정치공학적 논의에 몰입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이명박 대통령은 2013년 2월에 물러난다. 후임이 설혹 한나라당(새누리당)에서 나오더라도 ‘포스트 MB’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게다가 야당이 다시 집권한다면 또 한 번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단순히 ‘잃어버린 5년’을 건너뛰어 그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백 교수는 ‘2013년체제’론이 오늘의 혼란상이 모두 이명박 정부의 실정 때문이라는 입장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87년체제가 만들어낸 세 가지 동력, 즉 민주화·경제적 자유화·자주와 통일에 대한 요구가 원만히 결합해 지속성과 상승효과를 얻음으로서 너무 길지 않은 시간 내에 87년체제 자체의 한계를 돌파했어야 했는데, 그러한 시대적 과제를 현 정부가 제대로 수행하기는커녕 대대적으로 역행했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소설가 황석영 역시 이러한 백 교수의 지적에 공감한다. 한국사회를 지탱하는 ‘87년체제’가 한계에 달했다는 것이다. 그는 6월 항쟁의 결과인 87년체제가 “수구세력과 민주세력의 일종의 합의”였다고 지적하며, “혁명이 아닌 리모델링에 불과한 체제는 노무현 정부 때 끝장을 냈어야 했다”고 말한다. 민주화 세력이 그걸 해내지 못해 발생한 정치적·경제적 짐을 지금의 20∼40대가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 여기저기서 비리 사건이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온갖 썩은 내가 진동한다. 역대 가장 도덕적인 정권이라 감히 떠들던 그들이 역대 가장 추악하고 더럽고 썩은 정권으로 기록될 것처럼 보인다.

 

백 교수의 지적처럼 이미 2013년체제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 하나를 잊어선 안 된다. 개혁과 변화는 정치권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며 함께 참여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지난 5년 동안 얼마나 무너졌는지, 이 땅의 상식과 소통이 얼마나 무너졌는지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결코 올해를 그냥 넘길 수 없다.

 

투표는 기본이요, 감시와 감독은 필수과제다. 벌써부터 이름만 새누리로 바꾼 한나라당의 중진들이 공천에 굴복하지 않고 떼거리로 출마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 정치 개혁, 국가와 사회를 위한 결단, 자기 당에 대한 존중 뭐 이 따위와는 어차피 상관없는 것들이긴 하지만, 역시 썩은 내가 진동한다. 그런 인간들이 다시 국회에 들어갈 수 없도록 국민의 무서운 눈이 필요할 것이다.

 

《2013년체제 만들기》. 두껍지 않은 분량이다. 하지만 그 어떤 책보다 강한 희망과 고뇌가 담겨 있다. 우리가 보내는 올해가 과연 어떤 해로 기억되느냐. 그 결과에 우리는 물론 후손의 운명이 달려있다. 빈 말이 아니다.

 

반드시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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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화 2012-03-22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2013년 홍익민주주의,홍익경제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함께 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http://cafe.naver.com/hongiksystem/120

http://cafe.naver.com/hongiksystem/126
 
삶이라는 무게로부터 가벼워지는 기술
기젤라 크레머 지음, 이만수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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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았으면 자기계발서적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나에게 어쩌면 이 책은 그리 큰 여운을 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책들이 언제나 구구절절 맞는 말씀들이긴 하지만 어딘가 공허하고 실제 현실과는 맞지 않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방지게도 나이를 하나씩 먹으면서 달라지는 것인지, 과거에 가지고 있던 오만함이 차츰 수그러드는 느낌이다. 당연히 옳은 이야기니까 읽을 필요 없다는 생각에서,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회가 생기면 읽고 또 읽어둘 필요가 있다, 적어도 매 순간 나를 일깨워주는 효과는 있으리라 믿게 된 것이다.

 

원제인 《게으르지 않고 느리게 산다는 것》에서 말해주듯, 책은 무거운 삶, 우울한 인생에서 벗어나 최대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뭐, 언제나 그렇지만 여기엔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균형과 행복 찾기. 각 파트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가 진정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가볍게 삶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삶의 진정성을 찾는 것이다.

 

때론 익숙한 것들과 과감히 이별할 용기도 필요하고, 언제나 더불어 산다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사소한 것이지만 나누며 사는 것. 숨 쉴 틈 없이 바쁘게 뛰어다니며, 정작 그 이유를 감당하지 못하는 삶이 아닌, 조금 늦고 뒤떨어지더라도 내 안의 소중한 가치를 잃지 않는 삶. 바로 그것이 진정 행복한 삶이 아닐까.

 

저자의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글들은 깊은 공감과 함께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성질 급하기로는 세계 최고를 다투는 한민족, 그 중에서도 나는 주위에서 공히 인정하는 성질 급한 녀석이 아닌가. 타고난 성정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요, 때론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 번 씩 나를 돌아오는 시간을 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이 책의 내용에 감히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제 때에 분노하라’다. 우리는 제 때 분노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고, 수명을 단축시키며, 타인을 불행하게 만든다. 그것도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을 말이다.

 

정당한 분노는 정신건강에 매우 좋다. 나의 분노로 우주의 평화가 위협받고, 인류의 생존에 치명적 악영향을 끼치고, 남북통일과 동북아 평화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면, 분노하라!

 

이는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정작 나의 행복을 유예하거나 포기하는 실수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럴 필요 없다. 극단적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내 행복은 존중받아야 한다.

 

자기계발서라고 다 쓰레기는 아니다. 돈 얼마 모으기, 어느 학교 남들 제끼고 먼저 입학하기, 어느 땅 사고 어디에 투자하기 등등의 쓰레기 도서(내 기준)도 넘치지만, 가끔 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어주는 책들도 존재한다. 그런 책들은 적어도 자연파괴와 활자공해, 시력감퇴의 부작용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멋진 구절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도 신나게 살아보자~!

 

돈이 필요치 않은 것처럼 일하라.

한 번도 상처받은 적이 없는 것처럼 사랑하라.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춤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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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1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다거품 오두막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7
멕 로소프 지음, 박윤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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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사람들이 나에게 ‘불편한 책을 잘도 읽는다’고 말하곤 한다. 그들이 말하는 불편한 책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 특히 더 힘들고 더 고통스러운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썩을 대로 썩은 정치, 법조계, 권력 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긴 책, 그리고 이미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는 책 등이다. 하나같이 무덤덤하게 읽기 참 어려운 책임은 인정한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난 문학을 열심히 읽는 이들이 더 대단하게 보인다. 난 우선 아픈 것이 싫다. 참 싫다. 끝내 눈물을 떨구도록 만드는 이야기들은 날 참 약하게 만든다. 결국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길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주저하게 되고 머뭇거린다.

 

차라리 현실이 그대로 보여주는 아픔에 더 무덤덤한 것일까. 현실은 말 그대로 현실인데. 그럼에도 이상하게 난 문학 작품이 전해주는 아련하고, 때론 싸한 아픔을 겁낸다. 마치 그것이 현실인 것 마냥 진하게 전해진다. 아프다.

 

성장소설의 대부분이 그렇듯, 《바다거품 오두막》역시 아프다. 그리고 진하다. ‘핀’을 향한 주인공의 사랑이 아팠고, 눈부시게 하얀, 깨끗한, 끝없는 바다와 해변이 아팠다. ‘리즈’의 집착이 서글펐고, 또 이별이 아팠다.

 

이 작품은 평범한(물론 평범한 성장소설은 없다. 모두가 다 특별하다.) 성장소설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문명에서 살짝 벗어난 삶을 살고 있는 핀과,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서 질식당하고 있던 주인공의 만남은 동성애적 우정, 사랑을 말하지만, 사실 주인공의 또 다른 자아들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나’가 이루지 못한 ‘나’와, 이루고 싶지 않은 ‘나’를 동시에 만나며, 헤어지고, 사랑하는 과정. 인간은 그렇게 성장한다.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결국 그것이 사랑이었고, 그것이 핀이었으며, 그것이 내 자신이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 지극히 위태롭게 서 있는 낡은 오두막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죽을 것만 같은 위험과 공포가 덮쳐도, 결국 아침엔 따뜻한 햇살이 쏟아진다.

 

작품은 백 살의 노인이 열여섯 살 처음 느꼈던 사랑을 추억하는 내용이다. 그 사랑은 순수했고, 무모했고, 무책임했다. 때문에 아름다웠다. 주인공은 핀을 통해 우정과 사랑과 배신과 공포와 나약함과 자립과 고독과 죽음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삶의 덧없음과 유한함을 깨달았다. ‘무조건적 적응과 강력한 융합을 통한 전 시민의 개선에 혈안인 이 20세기 현대국가에서’주인공은 전혀 ‘현대’스럽지 않은 사랑을 만난다.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 먼 훗날 ‘아주 작은 것도 한 사람의 삶을 더 행복하게 또는 더 불행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하나의 사건 혹은 한 가지 생각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주인공이 기억하는 핀의 모습. ‘피곤할 때는 나른하고 우아하게 몸을 쭉 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민첩하고 단호하게 움직이며, 말수가 적되 말을 할 때는 힘을 줘서 하고, 세상에 보답하는 식으로 미소를 짓’는 모습. 그런 핀을 사랑한 주인공은 이제 자신이 핀과 같은 모습임을 알고 있다.

 

유년 시절의 기억은 모자이크처럼 파편화 되어있다. 나에겐 그렇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억지로 끼워 맞출 생각은 없다. 살다가 문득 ‘딱’소리를 내며, 그 중 어느 것이 맞춰지는 순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난 계속 성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성장하고 살아가는 것이 최선일까. 백세가 된 주인공은 어느 날 눈을 떠보면, 삶이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잔인한 속도로 달아나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시간은 ‘우리 모두를 잠식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만든 바다 속에 빠져들기 시작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목가(牧歌)는 이미 사라져버렸고, 우리는 미래를 향해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데 에너지를 허비하고 있다. 그 때문에 이 불안정한 곳에서의 삶은 이미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지치고 망가져, 회한에 가득 차 어둠 속에서 나오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이제 나에게 다가왔던 첫사랑의 기억은 희미하다. 그 설렘도 무참하다. 하지만 저자처럼 나 역시 내가 ‘지구상에서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들과 우리 사이에 없었던 일들을 모두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는?

 

모든 사라진 존재들에게, 모든 사라져가는 존재들에게, 아직 오지 않은 모든 존재들에게, 나 역시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밖에.

 

오래 기억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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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는 섬이다 - 김상훈 포토에세이
김상훈 지음 / 매일피앤아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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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선거의 계절이다. 온 나라가 들썩거린다. 너도 나도 국민의 머슴으로 열심히 일하겠다고 떠들어댄다. 이른 바 애국자들의 계절인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누가 정말 일꾼인지, 누가 협잡꾼인지, 누가 도둑놈인지. 국민들이 바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바보다.

 

개인적으로 대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곳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우연인지, 아님 부러 그 지역을 가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개인적인 유감은 그 도시에 없다. 친척은 물론 내가 좋아하는 선배, 동기, 후배 중에서도 대구 출신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구는 싫다.

 

대구 출신의 한 문인이 《반성》이란 책에서 자신의 유년시절을 돌아본 글을 담았다. 읽어보았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 뜨거운 피가 뿌려지고 있을 때, 대구는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는, 자신이 바로 그 시간에 있었던 공원의 그 느긋한 외면에 대해, 그는 이야기했다. 시간이 흐른 뒤, 바로 그 때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를 알았을 때, 그때 문인은 자신의 고향 대구에 전율을 느꼈다.

 

이 책의 저자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이 책을 펴냈다. 선거철만 되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수많은 정치지망생, 정치인들의 홍보 책 중 하나다. 하지만 조금 다른 형식을 취했다. 어차피 펴내봤자, 읽는 이들도 별로 없고, 내용도 부실할 것이 뻔한 자전 에세이 보다는 자신이 출마할 지역의 사람들, 동네 모습을 담은 포토 에세이 형식을 취했다.

 

나쁘지 않았다. 지겹다 못해 나무에 대한 극도의 죄스러움이 들 수밖에 없는 선거철 정치인들의 자서전 등에 비해 이 책은 그나마 덜 위선적이고, 덜 촌스럽고, 덜 가증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구광역시 서구에서 출마하겠다고 나온 저자는 서구라는 동네의 낙후된 면, 못 사는 사람들, 때려 부수어야 할 오래된 시설물들을 카메라에 담아 항의하듯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들을 전부 바꿔야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

 

과연 누구를 겨냥한 항의인가? 서구 주민들에 대한 협박인가? 아니면 또 다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겨냥하며, 비난과 저주의 한탄을 늘어놓을 셈인가? 대구광역시 서구가 저자의 말처럼 낙후되고, 외로운 섬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면, 그것이 온전히 지난 두 정권의 잘못인가? 철저히 지역 투표에 반세기를 올인해 온 대구에서 감히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한나라당, 아니 새누리당의 깃발만 꽂으면 당선 가능 100%인 대구에서, 그렇다면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은 왜 없을까? 현 정권이 당신들이 그리도 저주하는 전라도 정권인가? 저자가 대구시 경제통상국장까지 지냈다면 아마 공직 생활을 오래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또 그것을 내세워 경제전문가 운운 하는 것 같은데, 미국 오리건주립대 정책대학원 석사까지 취득한 이로서 현 대구광역시 서구의 경제적 낙후가 온전히 누구의 책임인지, 본인은 스스로 알고 있지 않을까.

 

저자가 서구의 낙후함을 강조하기 위해 찍은 사진들 중에 오히려 나는 정감을 느낀 것들이 많았다. 서민들의 모습, 그들의 웃음, 좁은 골목길과 시장통의 정겨움까지.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그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어져야 할 구태에 다름 아닌 것 같다.

 

만약 내 짐작이 맞다면, 저자는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무조건 때려 부수고, 그 소멸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과 경제성장을 원한다면, 이미 실패의 사례는 너무나 많다. 현 정권의 고귀한 가르침 중 하나 아닌가.

 

대구를 고담시로 부르며 폄하하는 이들이 있다. 심한 행동이다. 대구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들을 모독하는 행위다. 그러면 안 된다. 어찌 보면 대구는 이 시대, 또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이다.

 

하지만 모든 현상엔 원인과 배경과 근거가 존재한다. 왜 다른 지역 사람들이 대구를 싫어하고, 모욕을 주려 하는지, 한 번 쯤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초지일관 지역감정과 이해에 기반한 투표를 해왔던 대구가 왜 경제적으로 낙후되었는지,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한다.

 

감히 대구를 모르는, 감히 저자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이런 말을 지껄인다면, 많은 이들이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난 잘 모른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가르쳐 달라. 정중히 사과하고, 배우겠다.

 

하지만 난 대구의 침묵과 대구의 추종과 대구의 오만과 대구의 슬픔을 느낀다. 대구 지역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대구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모든 일꾼, 활동가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결국 대구는 대구 사람들이 바꿀 수 있을 뿐이다.

 

이번 총선, 대선 결과가 다시 한 번 대구 지역을 말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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